시대를 분별하라
누가복음 12:49~59
누가복음 12:49~59
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52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54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55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56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 57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58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불을 땅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
진리가 들어갈 때 분쟁이 생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쟁케 하러 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49절에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은 진리를 땅에 던지러 왔다는 것입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곳 마다 분쟁이 일어날 것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본문 51절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진리가 들어가면 진리를 믿는 사람이 생기고, 반면에 반대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분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은 “이것이 옳다”고 그러고, 반대하는 사람은 “그것 잘못 됐다”고 그러니까 분쟁이 일어납니다.
본문 51-52절에, “이후로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믿는 사람이 생기고 반대하는 사람도 생기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령 다섯 사람이 있는 집에 복음이 들어가게 되면, 두 사람은 믿고 세 사람은 안 믿게 되었을 때에, 서로 반대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분쟁이 일어납니다. 만약 세 사람이 믿고 두 사람이 안 믿어도 그래도 분쟁이 일어납니다.
본문 53절에,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고 했는데, 아비가 아들과 분쟁을 하고, 아들이 아비와 분쟁을 한다고 했는데, 누가 믿는 것 같습니까? 아버지가 믿나, 아들이 믿나? 여긴 아들이 믿는 것 같습니다. 아들이 믿으니까 아비가 반대한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아들이 아비와’에서 여기는 아버지가 믿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믿어도 아들이 또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미가 딸과 분쟁한다는 부분에서는 딸이 믿으니까 어미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딸이 어미’와 부분은, 어머니가 믿는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미가 믿고 딸이 안 믿습니다. 또, ‘시어미가 며느리와’에서는 며느리가 믿으니까 시어미가 반대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며느리와 시어미와’ 부분은 시어미가 믿으니까 며느리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왜 ‘어머니’라 안 그러고 ‘어미’라 그랬을까? 또, ‘시어미’라 그랬을까? 왜 ‘아버지’라 안 그러고 ‘아비’라 그랬을까? 왜 그랬겠느냐 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렇게 부릅니다. 윗사람이 있는데서 아랫사람 부를 때 그렇게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이니까 ‘아비’란 말입니다. ‘어미’고, ‘시어미’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믿어도 아들이 또한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어미가 딸과 분쟁한다는 부분에서는 딸이 믿으니까 어미가 반대하는 것입니다. 또한 ‘딸이 어미’와 부분은, 어머니가 믿는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미가 믿고 딸이 안 믿습니다. 또, ‘시어미가 며느리와’에서는 며느리가 믿으니까 시어미가 반대한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며느리와 시어미와’ 부분은 시어미가 믿으니까 며느리가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왜 ‘어머니’라 안 그러고 ‘어미’라 그랬을까? 또, ‘시어미’라 그랬을까? 왜 ‘아버지’라 안 그러고 ‘아비’라 그랬을까? 왜 그랬겠느냐 하면, 윗사람이 아랫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렇게 부릅니다. 윗사람이 있는데서 아랫사람 부를 때 그렇게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는 것이니까 ‘아비’란 말입니다. ‘어미’고, ‘시어미’고, 이렇게 불렀습니다.
진리를 깨닫는 면이 다르면 분쟁함
한사람이 믿으면 안 믿는 사람이 반대하게 됩니다. 또, 예수를 다같이 믿는다고 해도 진리를 한 사람이 깨달으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반대를 합니다. 진리에도 1계단의 진리가 있고, 2계단, 3계단, 4, 5, 6,7계단의 진리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2계단 정도의 진리를 깨달은 사람이 걸어가는 신앙의 길을, 1계단 깨달은 사람은 몰라서 반대하게 됩니다. 또한, 5계단의 진리를 걸어가는 사람을 3계단이나 2계단에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반대합니다. 7계단의 진리를 걸어가는 사람을, 4계단이나 5계단에 있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대하게 됩니다.
예수를 함께 믿어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모르면 반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반대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하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는 문제’ 같은 것에 대해서입니다. “왜 떠나느냐? 떠나지 말고 그냥 믿어라”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상황에서 “네가 우선권이 있는데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예수 믿는 사람도
그런 모습에 반대 할 수 있습니다. 또, 뭘 반대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이 했던 일 중에 독자 바치는 것이 있는데, 믿는 사람도 “왜 믿으면 믿었지, 독자는 왜 바치느냐?”하며 반대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행하는 일에 대해서도 누가 반대 했었습니까? 할례를 아들에게 행하려고 하니까 모세의 아내가 반대 했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진리의 길을 걸으려고 하면, 그런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이 반대하게 됩니다. 같이 믿는다고 해도, 순교의 길을 걷을 때에 있어서 반대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순교의 길을 걸으면 예수 믿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한번만 양보하고 믿으면 편안할건데 왜 죽는 데로 들어가느냐?”하며 반대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그렇게 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일날 결혼식 하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라도 주일날 결혼식 하자는 사람도 있고, 어떤 한 식구는 “주일날 결혼식하면 안 된다”고 하며 그렇게 못한다고 하는 사람이 생깁니다. 둘 다 믿긴 믿습니다. 하지만 분쟁이 일어납니다. 아들이나 딸의 결혼식을 하는 데에 있어서 사돈집에서 주일날 하자고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주일날 하자, 부인은 주일날 하면 안 된다 이렇게 분쟁합니다. 둘 다 교회 나오는데 서로 싸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면이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다른 결혼식 하는 집에 가는 문제에 있어서도, 한사람은 “교회 갔다 가자”고 그러고, 한사람은 “주일날인데 못갑니다”라고 합니다. 그런 분쟁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진리를 깨달은 면이 다르면 반드시 분쟁이 일어나게 되어있습니다. 한 식구라도 분쟁이 일어납니다. 교회 나오면서도 십일조를 반대하는 식구가 있습니다. 십일조 하자는 식구가 있고, 그렇게 되면 또 분쟁이 일어납니다. “하자”, “하지말자”하고 분쟁이 일어납니다. 분쟁 안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진리가 첫째입니다.
아나니아의 집 같은 데에선 분쟁이 일어났습니까? 거기선 안 일어났습니다. 차라리 분쟁이 일어났다면 그렇게 망하지 않을 뻔 했는데, 분쟁이 안 일어났기 때문에 다 망했습니다. 그 집은 ‘재산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바치자’고 했고, 둘 다 ‘바칩시다’라고 작정했습니다. 그건 둘 다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팔아다가 절반 감추자’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때에 누가먼저 감추자고 그랬을 것 같습니까? 남편인 아나니아가 먼저 감추자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무엇을 봐서 남편이 먼저 감췄을 것 같으냐 하면, 남편 아나니아가 먼저 죽은걸 보니까 그렇습니다. 아내는 회개할 기회를 준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아나니아의 가정의 경우는 남편이 먼저 감추자고 그랬을 것 같은데, 그때 그의 아내가 “안 됩니다”하고 나섰어야 됩니다. “아니,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 해놓고 감추는 게 뭐입니까? 그건 안 됩니다”라고 했어야 합니다. ‘감추고 나면 내가 베드로한테 가서 말하겠다’고 하며 막았어야 합니다. 남편이 만일 계속 감추겠다고 하면, 그 아내는 “베드로한테 가서 절반 가져왔다고 말하겠다”고 발 벗고 아예 대문간에서 남편을 막고 붙들고 있었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더라면 아나니아가 돈을 감출 수 있었겠습니까? 설사, 감춰 놓고 베드로한테 간다 해도, 아내가 미리 말해놓으면 다 탄로가 나는데, 어떻게 재산을 감추겠습니까? 만일 아내가 그렇게 했다면 아나니아는 못 감출 뻔 했고, 못 감췄더라면 아나니아도 안 죽고 삽비라도 벌 받지 않았을 텐데, 남편이 감추자고 할 때 아내도 ‘그렇게 합시다’하고 따라하니 둘 다 그만 망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진리를 바로 깨달았으면 그 진리대로 아예 양보하지 말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분쟁이 일어나고 핍박도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그것이 사는 길입니다.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고 사는 길입니다. 그렇게 해서 신앙을 세워 나가면, 그 다음엔 반대하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결국에는 좀 다른 데로 가다가도 성경말씀을 따라오게 됩니다. 처음엔 반대하다가도 따라오게 됩니다. 싸우지 않으려고 양보하고 진리를 양보하고 나아가면, 다 망하게 됩니다.
진리를 세워 나가지 않고 진리를 양보하면, 싸우지 않으려고 그렇게 하면 둘 다 한꺼번에 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를 세워 나가면 핍박을 받고 싸워도 그게 결국 사는 길이고, 또 핍박하던 사람도 언젠가는 회개하고 옳은 데로 돌아올 날이 오게 됩니다.
싸움 안하는 것, 분쟁 안하는 것이 첫째가 아니고 진리가 첫째입니다. 진리 안에서 화목을 해야 됩니다. 진리를 세워 나가면서 화평을 해야지, 진리를 양보하는 화평은 둘 다 망하는 화평이며, 그건 다 마귀에게 먹히는 화평입니다. 언제나 진리 안에서 진리를 세워 나가면서 우리가 화평하고, 사랑하고 의를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2. 시대를 분별하라
본문 54-55절에,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붊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고 했습니다.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합니까? ‘소나기가 오리라. 오늘 날이 궂겠다’고 합니다. 또 남풍이 부는걸 보면 어떻게 됩니까? 심히 더워지겠다고 생각합니다.
남풍이 불면 더워지는 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지구 반대편은 반대가 될 것 같은데, 오스트레일리아, 호주 같은 데에는 적도 남쪽이니까 반대일 텐데, 적도 북쪽은 남에서 바람이 올라오는 남풍이 불면 더워집니다. 그리고 구름이 서에서 일어나면, 서해 바다 있는 서쪽에서 구름이 올라오면 날이 굳는다고 합니다. 날이 굳으면 비가 온다는 것인데, 우리 한국도 그렇습니까? 서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소나기가 옵니다. 유대나라에도 서쪽에 있는 지중해에서 구름이 일어나 올 때에는 날이 흐려지고 비가오고 한 모양입니다. 소나기가 온다는 말입니다.
또한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가물겠다고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비가 오겠다고 합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동쪽하늘이 붉으면 비가 옵니다. 저녁에 서쪽 하늘이 붉으면 날이 가물어 집니다. 살면서 많이 지내보면 알게 됩니다.
본문 56절에,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변할 줄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변치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왜 분별하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어떻게 될 건지는 왜 모르느냐는 말입니다. 바람 부는 것도 ‘서에서 남풍이 불면 심히 덥겠다’하고, 또 ‘서에서 구름이 일어나면 소나기가 나겠다’며 그런 것은 너희가 분별을 잘 하는데, 왜 이 시대는 분별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시대도 알만한 징조가 많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구름이 서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남풍이 부는 것처럼 이 시대도 모든 그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왜 이 시대는 분별치 못하느냐고 책망을 하십니다.
말세의 징조
이 시대에 징조가 무엇입니까? 말세 된 징조가 나타났는데,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나고, 민족이 민족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고, 자기끼리 민족전이 일어나고, 그 다음은 무화과 나뭇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피고, 유대나라가 회복이 되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대나라가 회복이 된 걸 보면 말세인 줄 알라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서 사람들을 많이 미혹하고, 거짓그리스도가 많이 나타나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세의 징조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교회가 이 거짓선지자들 때문에 다 타락이 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다 없어지고, 말세교회가 신신학, 신비주의에 다 미혹이 된 이것이 말세 된 징조입니다. 이렇게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택한 백성도 미혹케 할 수만 있으면 미혹을 하는 이 시대가 되었습니다.
또, ‘반시 고요가 있어’라고 했는데, 반시 고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다가 다시 나오매 온 세상이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데, 그 머리 하나가 상한 것이 어느 나라겠느냐가 문제입니다. 그건 확실히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여간 전 세계적으로 권세를 잡았던 나라 가운데 하나가 망한다는 말입니다. 머리가 상하게 됩니다. 상해서 거반 죽게 됐다가 다시 나옵니다. 다시 나오면온 세상이 그 나라를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요새 소련일지도
모르고,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소련이라 하면 이제 그 나라가 다시 나와서 온 세상이 따라가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이 일본과 독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과거 일본이 머리가 상하지 않았습니까. 2차 대전 때 일본, 독일이 동맹 했었는데 머리가 상해서 다 깨졌고 다 망했었습니다. 근데 그것이 다시 나왔습니다. 지금 일본이 다시 일어서고, 독일이 다시 일어섰습니다. 미국서 지금 제일 무서워하는 나라가 일본하고 독일입니다.
소련은 지금 대상이 안 되는 나라고, 일본과 독일이 이차 대전 전으로 돌아가 전과 같은 세력을 회복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 머리가 2차 대전에 상했다가 다시 나온 것이 되지 않겠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러면 앞으로 일본과 독일이 전 세계적으로 권세를 잡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괜히 떠들썩하기만 하지, 일본 총리 온 다음에 지난 주간에 매우 떠들썩했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습니다. 껍데기만 떠들썩하고 돌아갔지 일본 총리가 와서 우리가 뭐 얻은 게 없습니다. 사실은 얻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해서 우리가 바로 서야지 일본 사람이 뭘 우릴 도와주겠습니까. 기술이전 해달라는데 기술을 왜 가르쳐주겠습니까. 그건 안 가르쳐 줍니다. 되지도 않을 것인데 괜히 억지 쓰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 같으면 다른 나라에 자기 기술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안 가르쳐 줍니다. 또 국가적으로 가르쳐 주라고 해도 그런 것은 회사에서 안 가르쳐 줍니다. 시계 만드는 기술 가르쳐 달라고 해도 세이코회사에서 안 가르쳐 주고, 자동차 만드는 기술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도요타 회사에서 안 가르쳐 줍니다.
또, 가르쳐 준다고 해도 우리가 그만큼 정성을 들여서 제대로 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성격이 대강 대강으로 해치우는 성격이기 때문에 물품 만들 때에 정성을 들이지 않습니다. 쏘니의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해도 그걸 왜 가르쳐 주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가르쳐 준다고 해도 그 사람들만큼 정성껏 하지 않습니다. 대강 해치워 가지고 잘 못합니다.
일본이 이제 세계적으로 이차대전 전으로 회복하는 중에 있는데,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강국이고, 이제 군사 강국이 되려고 합니다. 일본이 돈이 많으니까 모든 무기를 다 만들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발사는 벌써 오래 전에 했고, 미국서 인공위성을 만드는데 일본 부속품을 상당히 많이 가져다 넣는 답니다. 미국에서도 절반인지 얼마를 일본서 사다가 그 부속으로 인공위성을 만든답니다.
머리 하나 상했던 것이 다시 나는데, 온 세상이 그것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독일이 되겠는지, 소련이 되겠는지 하여간 다시 나와서 온 세상이 따라 갈 것이라고 성경이 그랬으니까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천기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이 시대 분별은 하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대가 어느 때인 줄을 왜 모르느냐 그 말입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되면 멸망한다고 그랬는데, 노아시대는 죄악이 가득했습니다. 요새가 노아시대와 같아졌습니다. 죄악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새 여자들 납치해서 팔아먹는답니다. 여자들 다닐 때 혼자 다니면 안 되겠습니다. 지켜 섰다가 나오면 자동차에다 싣고갔다 팔아먹는데, 팔아먹으면 못 나온답니다. 얼마나 악한 시대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법이 너무 물러서 지금 여자들이 마음 놓고 나가 다닐 수 없는 이 시대가 됐습니다. 이렇게 악한 세대입니다. 노아시대가 뭐 이보다 더 악했겠습니까? 노아시대와 같이 되었고 말세가 다 되었습니다. “이 시대가 어느 때인 줄을 왜 분별을 못하느냐”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왜 껍데기만보고 시대의 죄악은 왜 볼 줄 모르느냐’고 책망하십니다.
3. 양심이 고소할 때에 남김없이 회개하라
본문 57-59절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 넘겨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너를 고소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가느라고 길에 있을 때에 화해하라고 하십니다. 빨리 화해하고 상대가 고소하지 않도록, 송사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화해하는 게 제일 상책입니다. 송사하게 되면 그 다음엔 둘 다 손해가 막심합니다. 처음에 조금 손해를 봐도 화해했으면 그걸로 끝날 것인데, 싸우게 되면 그보다 몇 배, 몇 십 배, 몇 백 배 더 손해를 보는 수가 많습니다. 될 수 있는 데로 송사하지 않는 게 그것이 유익하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신령한 뜻은, ‘송사하는 자’는 양심입니다. 송사하는 자는 양심인데,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송사하는 건 양심이란 말입니다. 양심에 안 된다고 하고, 양심에 가책을 받는 게 ‘송사하는 것’인데, 즉시로 그때 그만두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그냥 가면 송사하는 자가 너를 재판장에 내어 주고 재판관이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2:48에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날에 저를 심판하리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율법이 재판관입니다. 율법이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그 다음은 ‘관속에게 내어준다’고 했는데, 본문에선 관속에게 내어 준다고 그랬고, 이사야 42:22을 보면, “이 백성이 도적 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 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라며 ‘옥에 가둔다’고 그랬습니다. 또한 시편 32:3-4에는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일 신음하므로... 주야로 나를 내리 누른다’는 것은 관에 있는 것입니다.
‘옥에 갇히도다’라고 했는데, 옥에 갇힌다는 것은 영적 감옥입니다. 흑암 속에 갇힌다는 말입니다.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지 아니하면 결단코 나오지 못한다’에서, ‘호리’는 동전 중에서 제일 작은 돈의 단위인데, 일 푼이라도 다 갚지 아니하면 못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회개를 할 때에 뿌리가 쪽 빠져나가도록 회개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속에 남겨 놓으면 거기서 못나옵니다. 완전히 쪽 빠져나오도록 회개해야만, 그 흑암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짓거나, 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든지 남을 미워 하던지 하면, 그것은 호리라도 남김없이 뿌리를 쪽 다 빼내 버리는 회개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거기서 못 나옵니다.
그렇게 죄지을 마음을 가졌다든지 했을 때, 뿌리를 쪽 다 빼내 버리면 다시는 그런 마음이 없어지게 됩니다. 회개하면 다시 그런 마음이 없어지고 죄는 보기도 싫어집니다. 술 먹던 거 뿌리가 쪽 빠져나가도록 회개하면, 술이 보기도 싫고 냄새 맡기도 싫게 됩니다. 어떠한 죄를 짓든지 뿌리가 쪽 빠져나가도록 회개를 하면 그건 생각만 해도 싫게 되고, 다시는 그런 마음이 안 들어옵니다. 또한, 미워하던 마음을 뿌리가 빠지도록 회개하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호리라도 남김없이 다 갚는 회개가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뿌리까지 뽑아 버리는 회개가 있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