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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4일 토요일

사도행전 2:17-28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사도행전 2:17-28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줄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2:18 그 날들에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줄 것이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놀라운 일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움으로 변하고, 달이 피로 변할 것이다. 

2:21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22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어라.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나사렛 사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너희 가운데서 행하신 기적들과 놀라운 일들과 표적들로 너희에게 확증하신 분이다. 

2:23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과 미리 아심을 따라 내어 주신 그분을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2:24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고통을 풀어 그 분을 살리셨으니, 그분께서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25 다윗이 그분에 대하여 말하였다. '나는 내 앞에 계신 주님을 항상 뵈었으니, 이는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2:26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즐거워하였으며 내 육체도 소망 중에 살 것이니, 

2:27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으시고, 주님의 거룩하신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2:28 주께서 내게 생명의 길들을 알려 주셨으므로 주님 앞에서 나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실 것이다.' 

1. 성경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음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행세를 안 하고 삽니다. 전부 일본 사람으로 이름으로 고쳐 가지고 일본사람 행세를 하고 삽니다. 한국 사람은 서울에서나 우쭐하지 외국에 나가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납작해집니다. 아예 “차이나” 할 것 같으면 쑥 올라갑니다. 그러나 “코리안”하면 중국 사람만큼도 못 봅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행세를 하고 삽니다. 이처럼 “갈릴리 사람들아”란 낮추는 것으로 늘 좀 낮추는 자리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때의 생각을 못 한다고 하는데, 개구리는 올챙이 때의 생각을 늘 하고 살아야 합니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된 것이지, 무엇이 개구리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므로 언제나 자기를 낮추고, 어린아이들과 같이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을 배우려고 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하나님을 닮아가려고 하여야 합니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신령한 예언의 말씀을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를 늘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하며, 신앙이 노쇠하지 않도록 해야 됩니다. 또 자라나지 못하고 현상 유지만 해도 안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서, 영혼이 자라나고, 인격이 자라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또 신령한 진리의 젖을 날마다 먹지 않으면 못 살 줄 알아 갈급증이 나서 먹고, 새김질하
고 또 먹으려고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예언의 말씀을 주십니다.

늙은이는 꿈꾼다고 하였고, 젊은이는 환상을 본다고 하였고, 자녀는 예언을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경을 떠나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 알아야 될 것은, 오순절날 성령께서 늙은 사람, 젊은 사람, 자녀들에게 다같이 성령을 주어서, 꿈으로, 환상으로, 예언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서 성경책을 기록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시 이렇게 반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표준계시는 사도와, 사도의 수종자들까지이며 이제는 종결이 되었습니다. 다시 표준계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성경말씀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놓았습니다. 
오늘날에는 우리가 성경말씀을 보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됩니다. 요새 묵시를 보려고 한다든지, 꿈꾸려고 한다든지, 환상을 보려고 한다든지 하면 안 됩니다. 지금은 표준계시가 종결되었으므로 그렇게 하는 때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는데, “예언적으로 날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서 영의 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이 있고, 또 환상적으로 보고 가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성경은 성경대로 있고 자기는 자기대로 있습니다. 또 성경을 보는데 어떤 사람은 꿈의 세계와 같이 자기의 세계는 다른 것이 있고, 성경은 그저 그런 세계가 있는가보다 하며 꿈에 보는 식으로 그렇게 보고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2.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시는 성령

본문 18-19절에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남종과 여종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므로 예언을 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종의 위치에 있어야만 이 말씀을 예언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주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예언의 말씀이 되지를 못합니다. 종의 위치에 있어야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예언의 말씀이 됩니다. 즉 걸어갈 말씀이 되고, 힘이 되고, 자기를 인도하는 말씀이 됩니다.

디모데전서 1:18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를 전에 예언의 말씀으로 지도를 했습니다.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의 말씀이라고 하면, 지금도 너를 지도하는 예언의 말씀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말입니다. 그러려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양심을 따라 가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너를 지도한 예언의 말씀이 되었는데, 지금도 너를 지도하는 예언의 말씀이 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되는가? 착한 양심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19절). 양심에 아닌 것은 “아니다” 하고 떠나야 하고, 양심에 옳은 것은 옳다 하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바로 써야만 예언의 말씀이 너를 지도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 성령이라고 하였는데 종에게 부어주시고, 종을 예언의 말씀으로 지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종의 특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종은 자기의 소유권이 없습니다.
주인의 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아니하고 주인을 위해서 삽니다.
종이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제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주인의 뜻대로 삽니다.
이것이 종입니다. 자기 위해서 예수 믿고, 제 뜻대로 살고,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제것을 만들려고 애를 쓰는 것은 종이 아닙니다. “이제는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주님의 것으로 삼아놓고 나갑니다” 하며 다 맡겨야 합니다. 나는 빈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가기까지 세상에 내 것이 하나도 없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그저 청지기로서 청지기 노릇만 잘 하면 됩니다.

종은 제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주인 되는 예수님을 위하고, 예수님의 뜻대로만 살아야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주를 위해서 살고자 합니다”하며 주님이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는 것이 종의 위치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가기 싫다고 안 가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가고 싶다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종은 주인의 한 마디에 움직입니다.

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고, 종이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어야 성경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은혜가 되고, 빛이 되고, 자기를 인도해주는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걸어갈 말씀이 되고, 자기가 마땅히 가야할 길이 바로 보이고,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고, 그 뜻대로 걸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종의 위치에 있습니까?, 주인의 위치에 있습니까? 종노릇을 잘 했습니까?, 못 했습니까? 이름은 종인데, 속은 다 주인입니다. 이름은 종이라고 간판을 붙여놓고 “주여, 주여”하며 따라 다니지만 실제는 제 마음대로, 제 고집대로, 제 뜻대로 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해도 하며, 먹지 말라도 해도 먹고,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안 오고 제 마음대로 합니다. 그것이 무슨 종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예언의 말씀이 되지 못하고, 자기를 인도해 주는 빛이 되지 못하고, 성령이 감동을 시키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종이 아니기 때문에 순종을 못합니다.

순종을 못하므로 성령이 쓰고자 하는 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성령의 능력이 입혀지지 못합니다. 종으로서 끝까지 순종하며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는 생활, 자기는 죽어지고, 주님의 뜻만 이루어 나가는 생활을 끝까지 하면 점점 능력이 입혀지고, 점점 귀히 쓰고, 점점 말씀이 그 사람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못 하면 종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못 됩니다.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신 성령이신데 남자가 종노릇을 잘 하는가? 여자가 종노릇을 잘 하는가? 종노릇을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녀 구별이 없이 종살이만 잘 하면 성령이 그 사람을 쓰시고, 능력으로 붙잡으시고, 예언을 그 사람에게 주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종의 위치에 서도록 항상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3. 하늘에서는 기사, 땅에서는 징조가 나타남

본문 19절에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늘은 신령한 영역을 가리키고, 기사는 구원의 기사를 말합니다. 즉 신령한 세계에서는 우리를 구원하는 기사가 계속해서 역사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게 된 것이 기사입니다. 이리와 타조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또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구원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리에 나오는 것을 보면 큰 기사가 생긴 것입니다.

또 땅에서는 징조를 베푼다는 것은 심판의 징조를 말합니다. 성령이 능력으로 역사하면 신령한 세계에 사는 사람은 구원의 기사가 나타나고, 불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아나니아 부부가 심판을 받은 것도 베드로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에, 불순종하고 믿음으로 나가지 않으므로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라고 하였는데 피는 사망, 불은 고통, 연기는 흑암을 말합니다.

“위에서는 기사, 땅에서는 피와 불과 연기의 징조”라고 하였는데 위에서 살아야겠습니까? 땅에서 살아야겠습니까? 위에서 살아야 합니다. 즉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몸은 땅에 있지만 신령한 세계에서 살아야 됩니다. 그러면 구원의 역사가 나타날 때마다 신기한 역사가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이 땅의 것을 가지고 살면 피와, 불과, 연기의 징조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땅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 2:15-17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고, 골로새서 3:2-3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1절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였고, 2절에는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고,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세상의 것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땅엣 것을 사랑하면 땅에는 징조가 나타나는데 피와 불과 연기라고 하였습니다. 즉 세상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 뿌리를 박은 사람으로 피와 불과 연기가 온다는 것입니다. 피는 사망, 불은 고통, 연기는 흑암을 말하는데 땅에 속한 신자는 언제나 이런 것이 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네가 요새 땅에 속해서 돌아가는구나, 땅의 것을 사랑하는구나, 선물을 좀 받아라, 세 봉지로 한 봉지는 피이고 한 봉지는 불이고 한 봉지는 연기이다”하며 땅엣 것을 사랑하므로 얼마 안 있으면 고통이 오고, 사망이 오고, 생명의 역사가 없어지고, 흑암을 만납니다. 이것이 땅엣 것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아예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에 위엣 것을 찾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기사로 기이한 은사를 보게 됩니다. 즉 그리스도를 좀 더 발견하게 되고, 좀 더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게 되고, 좀 더 새사람이 되고, 좀더 새로운 역사에 참여하게 되고, 좀 더 새 방언을 하게 되며, 언제나 기사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4. 주의 재림의 징조

진리가 어두워짐

본문 20절에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은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입니다. 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진리가 가리워진다는 말입니다. 너무 환난이 심하고, 악의 세력이 너무 득세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이 가리워집니다. 진리가 비추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어두워졌으므로 교회가 세상에 참 빛을 비추어 내보낼 수가 없습니다.

진리가 어두워지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어두워집니다. 물론 대 환난으로 기독교 박멸정책이 올 때에도 전하지 못하므로 진리가 어두워지고, 또 신신학자가 나와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도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도 있다, 풍속도 있고, 습관도 있다”고 하며 진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또 신비주의가 나와서 “꿈 꾼 것, 환상 본 것, 묵시 등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다, 성경은 볼 필요가 없고 자기의 말이 성경이다” 하며 진리를 어둡게 합니다. 묵시를 하나님의 계시로 성경과 동등으로 여깁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등한시하고 묵시를 따라가므로 진리를 어둡게 만듭니다. 또 향락주의, 현실주의자들이 나와서 천국은 이 세상이 천국이며,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며 성경을 어둡게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하여간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는 말세가 되었습니다. 성경을 집어내어 버리고 예수 믿는 시대가 왔습니다. 그것이 해가 어두워진 것입니다.

교회가 세속화됨

달이 변하여 피가 된다는 것은 달은 햇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천체로써 교회를 가리키며,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어 내보내야 하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받아서 세상에 비추어 내보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공무원시험, 기능사시험, 주산시험 등 전부 주일에 시험을 치므로 주일에 시험 안치도록 진정을 내자고 하니 어떤 목사가 한국 교회가 다 진정을 하면 그것은 희망이 있으나 지금 장로도 주일에 시험치고, 목사 딸도 주일에 시험치고, 집사도 주일에 시험치는 형편에 누가 진정을 하겠냐고 합니다.

성경이 지금 다 무너졌습니다. 성경대로 하자고 하면 별스럽게 예수 믿는다고 비난합니다. 그리고 주일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합니다. 주일에 급한 일 있으면 나가 일보고, 또 시험 칠 것 있으면 시험치고 그 다음에 예배당에 가는 것이지, 주일을 생명 내놓고 지킨다는 것은 옛날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요새 시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며 성경을 내놓고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 집사, 장로도 성경을 떠나서 믿는데 뭘 그렇게 하냐고 합니다. 요새는 성경대로 믿자고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움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집사들이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사먹고, 찬양대도 사다 먹입니다. 그것도 보수교회에서 그렇게 합니다. 주일에 음식 사서 먹는 교회가 무슨 보수입니까? 그것은 보수 아닙니다. 성경을 헌 신짝 내어 버리듯이 버리고 예수님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미국이 주일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선교사들 말을 들어보면 Hamilton 목사의 할아버지가 벼를 말리느라고 깔았는데 비가 오더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이 주일이라고 합니다. 일군들이 와서 벼를 거두려고 하니까 절대 못 거두게 하였다고 합니다. “주일날 어디라고 그것을 가져오느냐, 일 년 농사한 것 다 떠내려가도 못 가져온다”고 하여서 하나도 못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미국 사람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주일을 철저히 지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의도광장에서 집회하고 주일에 비행기 타고 간 사람 있지요? 빌리그레함 목사가 집회 하고 왜 주일에 비행기 타고 돌아가느냐 말입니다. 그 전날 갈 것이지. 요새 주일이 다 없어졌습니다. 성경 말씀이 다 없어졌으므로 해가 가리워졌습니다. 현실주의에 가리워지고, 신신학에 가리워지고, 신비주의에 가리워지고, 공산주의에 가리워졌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 지금 성경 말씀을 전할 수 있습니까? 중국에 요새 성경 들여보낼 수 있습니까? 정식으로 못 보냅니다. 그저 여행가는 사람의 가방에 얼마큼 넣어 가지고 가서 몰래 나누어 주는 정도입니다. 이북에는 이것도 못 합니다. 성경을 안 지키므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습니다. 성경을 안 지키는데 어떻게 교회가 빛이 나가겠습니까? 교회가 다 변해서 피가 되었습니다. 피는 사망의 빛입니다. 교회가 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는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는 때에도 말씀대로 신앙을 지켜 나가면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믿습니다”하며 신앙 고백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나는 성경대로 믿는다, 성경을 바로 붙들고, 바른 신앙 고백을 하면서 따라간다”하며 나아가는 사람은 구원을 이루어 나갈수 있습니다.

5.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증거함

본문 22-24절에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 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와 부활을 담대히 증거 했습니다.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살리셨다”하며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나가서 증거 했습니다. 이것이 전도의 핵심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이 기독교의 핵심인데, 이것이 빠져나가면 족제비의 꼬리 떨어진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족제비의 꼬리를 떼어 버리면 무엇에 쓰겠습니까? 하여간 전도할 때에 무조건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됩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여야 성령께서 그것을 가지고 역사하십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났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이고, 믿지 않으면 지옥이다”하는 이것을 밝히 전해주어야 됩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에게 나가서 “너희가 못 박힌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셨다”라고 담대히 전했습니다. 담대히 예수님의 구속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도 아무리 환난과 핍박이 많다고 할지라도, 담대히 나가서 생명의 도를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5-28절에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6:8 이하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증거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내 주”란 주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다윗이 육신으로는 그리스도의 조상이지만 영으로는 그리스도가 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영으로는 그리스도이므로 다윗의 주가 된다는 말입니다.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란 예수님은 우리가 항상 뵈올 수 있는 예수님이고, 또 우리를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내 우편에서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란 내가 항상 주 앞에 있을 때를 말합니다. 내가 항상 주 앞에 있을 때에 주님은 나를 요동치 않게 해주시고, 또 우편에서 나를 붙들어 주시고, 지켜주시고, 내 마음도 기뻐하게 해주시고, 입술도 즐거워하게 해주시고, 육체는 희망에 거하게 해주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제 육신의 병난 사람들은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머리 아프다, 혈압이다, 신경통이다, 관절염이다, 위병이다, 속병이다 하지 말고 ”항상 내 마음이 기쁘고, 입술도 즐겁고”하면 육체도 희망에 거할 날이 옵니다. 말씀이 약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잠언 3:8에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고 하였고, 잠언 4:22에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이 되면 육체에도 건강이 됩니다. 물론 믿는 사람이 약을 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약만 의존하려고 해서 낫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약이며, 육체의 건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항상 내 앞에 모시라는 말입니다. 네 앞에 계신 주를 항상 바라보라는 말입니
다. 그리고 주를 의뢰하고 견고하게 서므로 주님이 우편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는 자리에까지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마음이 항상 기뻐지고, 입술이 즐거워집니다. 신경성으로 오는 병은 다 낫습니다. 또 심장병 같은 것도 다 낫습니다. 마음이 항상 기쁘고, 든든하고, 입술이 즐겁고, 항상 주의 얼굴을 뵈옵고, 또 말씀을 늘 약으로 먹으므로 그 말씀이 생명이 되고, 육신의 건강이 됩니다. 그러면 자기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병이 다 낫습니다. 육체도 희망에 거하게 됩니다. 여기는 또 특별히 그리스도의 육체에 대해서 예언한 말씀도 되고, 우리 육체도 이런 신앙에 들어가면 희망에 거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나는 아무 소망이 없는 자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항상 살고, 그리스도를 의뢰하여 견고하게 서므로 하나님의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는 자리에 들어가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입술이 즐거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육체도 희망이 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육체가 오그렁 망태기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도 희망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희망에 거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여간에 내 앞에 계신 주님을 가까이 하고 뵈오란 말입니다. 그를 의뢰하며, 요동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능력의 손으로 보호를 받는 자리에 들어가라는 말입니다. 예수를 멀리서 그저 바깥마당이나 밟고 왔다, 갔다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바깥마당만 밟는 자리에 있으면 안 됩니다. 앞마당에까지, 성소에까지, 좀 더 가까이 지성소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이 어떻게 됩니까? 마음이 기뻐하고, 입술은 즐거워하고, 육체는 희망에 거합니다. 이렇게 되면 근심이 있습니까? 근심 걱정이 뚝뚝 다 떨어져 나갑니다. 항상 평안하고, 항상 기쁘고, 항상 안정된 생활이 됩니다.

본문 27절에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예언한 성경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는 사람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고 그 영혼이 썩지 않게 해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 28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길을 발견한 다음에는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예언입니다. 남종과 여종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신다고 하였고, 하늘에 속한 자는 기사가 있고, 땅에 속한 자는 즉 땅의 것에 애착심을 가지고 나가는 자는 피와 불과 연기가 온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와 고통이 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 생명의 신
앙을 가지고 나아가는 길을 걸어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