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割禮)의 언약
창세기 17:1-27
창세기 17:1-27
1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3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4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6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19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 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24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 세이었고 25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삼 세이었더라 26당일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생장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1.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
본문 1절에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행하여 완전한 길로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성도가 완전한 데로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완전해 질 수 있습니까?
본문 2-4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린대 하나님이 또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지켜야 완전해진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지키면 완전해질 뿐만 아니라 심히 번성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시는데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비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고쳐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이름은 ‘아브람’이었는데 이제 부터는 ‘아브람'이라 하지 말고 '아브라함'이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이란 뜻은 '아버지는 높다'는 뜻인데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열국의 아비'라는 뜻으로 고쳐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6:14절에 '브엘라해로이'란 말이 있습니다 '브엘라해로이'는 '하나님을 보고도 살았다.'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아브람'은 '아버지는 높다', '아브라함’은 ‘열국 사람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는데 그 언약을 네가 믿고 행하면 완전해지고 열국의 아비가 되며 또 심히 번성해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언약이 무엇입니까? 그 언약은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워서 그 언약을 지키고 행하면 완전해지고 열국의 아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 하나님이 주신 영원한 언약
본문 7-8절에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지경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언약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언약-할례
첫째로 할례가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9-10절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둘째 언약-이삭
둘째 언약은 이삭을 주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본문 17:19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였고 또 본문 21절에도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이삭을 주시겠다는 언약은 이삭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주실 것이라는 언약입니다. 이삭을 통해서 그리스도 주실 것이라는 언약과 할례 언약 이 두 가지 언약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가지 언약을 아브라함과 세우셔서 이것을 행하므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만들고 또 심히 번성케 하고 또 가나안 지경을 영원한 네 기업이 되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언약을 받고 그대로 행하면 이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서 전능한 하나님을 믿고 그대로 행하여 점점 완전한 데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십니다. 모두 몇 가지입니까?
열국의 아비가 되는 것과, 심히 번성케 하는 것과, 가나안 기업 주는 것 등 모두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점점 완전한 데로 나가면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3. 할례의 언약
본문 9-10 절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고 하였는데 할례를 받으라는 언약입니다. 할례를 어떻게 행하라고 하셨는지는 11절과 12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본문 17:11-12절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할례의 방법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고 하였는데 ‘양피’, 이것은 남자 아이를 낳은지 팔 일 만에 양피 끝을 베라는 말입니다. 어렸을 때, 태어날 때 아예 가죽 끝을 좀 잘라 내는 것을 오늘날에는 ‘포경 수술’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할례’입니다. 할례 행하는 것이 위생적으로는 사람에게 상당히 좋다고 합니다. 양피가 그대로 있으면 그 안에 모든 균이 들어가 끼어서 아이 때 염증이 생기기 쉽고 불결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끝을 잘라 놓으면 균이 들어가서 있을 자리가 없어서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요새 미국 사람들은 낳자마자 포경수술을 하고 독일도 그렇답니다. 아마 예수 믿는 국가에서는 대개 다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자르는 것이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자르지 않으면 거기에 염증도 생기고 다른 병도 나서 할례 행하는 것이 위생적으로 상당히 좋은 모양 같습니다.
할례의 뜻
1) 정욕을 제거시킴
예레미야 4: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마음 가죽을 베는 것으로 정욕을 제거시킨다는 뜻입니다. 빌립보서 3:3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고 하였는데 성령으로 봉사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다 정욕을 제거시킨 증거입니다. 정욕대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살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참 할례입니다.
또 골로새서 2: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적 몸을 벗는 것이 할례입니다. 육체의 몸 즉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는 것이 할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벗어 버리는 것이 할레의 뜻이고, 마음 가죽을 베어버리는 것이 할례의 뜻입니다. 이것은 정욕의 모든 마음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할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은 오늘날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정욕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언약을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언약을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능력을 믿고 성령으로 행하여 육체를 의지하지 않고 정욕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깨끗하고 거룩한데로 날마다 나가서 완전한 데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창성케 하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셔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 골로새서 2: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적 몸을 벗는 것이 할례입니다. 육체의 몸 즉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는 것이 할례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을 벗어 버리는 것이 할레의 뜻이고, 마음 가죽을 베어버리는 것이 할례의 뜻입니다. 이것은 정욕의 모든 마음을 버린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할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너희가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말씀은 오늘날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속하여 정욕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언약을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언약을 행하여 완전하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 능력을 믿고 성령으로 행하여 육체를 의지하지 않고 정욕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점점 깨끗하고 거룩한데로 날마다 나가서 완전한 데로 나가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창성케 하고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셔서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기업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됩니다. 옛 사람을 점점 벗어 버리고 영으로 사는 사람이 되어야, 완전한 데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주시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옛 사람을 벗어버리지 못하면 완전한 데로 나가지 못하고 번성하지도 못하고 또 가나안 기업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 사람을 점점 벗어버리십시오. 욕심을 벗어버려야 됩니다. 힘써 이 욕심을 벗어버리고, 점점 거룩한 데로 나아가고, 깨끗한 데로 나아가고, 마음을 넓게 써야 됩니다. 마음을 좁게 쓰지 말고, 마음을 좁게 쓰면 지옥입니다. 마음을 넓게 써야 믿음이 생기고 하늘나라가 됩니다. 하늘나라는 넓은 나라입니다. 좁은 곳이 아닙니다. 무한한 나라입니다. 하늘나라는 막히는 데가 없습니다.
어디가나 막히면 그것은 벌써 지옥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포섭하고 넓게 마음을 써야 하나님의 나라가 그 속에 이루어지고 또 가나안 축복도 받고 번성의 축복을 해주십니다. 그리고 열국의 아비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을 통해서 구원받는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는 것
본문 13절에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음이라” 고 하였는데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언약에 참예하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언약에 참예하는 자가 아니고 할례를 받아야 언약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 속하는 것
할례를 행하므로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이젠 완전한 하나님의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속해야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4) 이스라엘 백성 된 표
본문 14절에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할례를 받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며 이스라엘 백성에서 끊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 된 표이기 때문에, 할례 받지 않은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것입니다.
4.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을 고치심
본문 15-19절에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래'를 사래라 하지 말고 이제 뭐라고 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라'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라'라는 뜻은 ‘여자 주인’이란 말입니다. 또 웃음은 누구의 이름입니까? 이삭입니다. ‘사래'의 뜻은 무엇입니까?‘ 사래는 ’여걸, 귀부인’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고, 사래는 사라라고 이름을 고쳤습니다.
이름을 고치신 이유
이름을 왜 고쳤습니까? 가만히 있는데 이름만 고쳤겠습니까? 고칠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아브라함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이루시기 위해서 이름을 고치신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게 하려고 이름을 고친 것입니다. 언약에 참예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면 이름이 고쳐집니다. 이름이 고쳐지는 것은 인격이 고쳐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면 인격이 이제는 변화됩니다.
신령한 언약의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그리스도께서 사라에게 잉태하게 하십니다. 창세기 21:1-2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셔서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 이삭을 낳게 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했습니다. 그때에 이름이 고쳐졌습니다.
이름이 고쳐지는 이유는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대로 구원 운동에 참예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말씀대로 믿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행하고, 자기 몸부터 말씀대로 이루어 놓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이루어놓고, 그런 다음에 말씀대로 구원 운동에 이용 당하면 이름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구원 운동에 말씀대로 이용당하는 것은 큰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제일 큰 복입니다.
말씀대로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면 이름이 고쳐짐
그러므로 이용하려고 하지 말고 이용당하려고 해야 됩니다. 이용해 먹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용당하려고 하십시오. 교역자도 교회에 이용당하려고 하십시오. 종살이하는, 교회에 이용당하는 교역자가 되십시오. 교역자 부인도 이용당해야 됩니다. ‘내가 어떻게 교인들에게 이용당할까? 여종 노릇을 바로 할까? 심부름 노릇을 바로 할까? 제자들의 발을 바로 좀 씻어 줄까?’ 하며 이용당하라는 말입니다. 이용당해야 복을 받지, 이용해 먹으려 하면 복을 못 받습니다. 대접을 받고 시키려고 하는 것은 절도요, 강도입니다. ‘내가 심부름해야 되겠다. 이용당해야 되겠다. 발을 씻어 줘야 되겠다. 도와줘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 받는 생활입니다. 이용당할 때 절대적으로 말씀대로 믿고, 자기가 먼저 행해야 합니다. 약속 받았다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약속하던 대로 행하려고 힘을 써야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 1절에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였습니다. 행하여 완전 하라는 것입니다. 그냥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누워서 자다가 완전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고 또 말씀대로 자기가 구원 운동에 이용 당하면 자신이 점점 완전해지고 인격이 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이름이 고쳐진다’는 것은 ‘인격이 변화가 된다’는 뜻이고 또 ‘존귀해진다’는 뜻입니다. 존귀해지고 또 커집니다. 열국의 아비와 열국의 어미가 되었으니 얼마나 커졌는지 모릅니다. 이름이 변화가 되는 동시에 존귀해지고 인격이 커집니다. 열국으로 커질 뿐만 아니라, 영혼이 자라나서 완전한 데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까지 큰 인격이 된단 말입니다. 그 세 가지만 하면 인격이 변화가 되고 존귀해지고 또 열국으로 커지고 영혼이 자라난 만큼 하늘에서도 영원히 있습니다. 이름이 고쳐져서 믿는 일 잘 하고 사랑하고 근신하면 점점 거룩해지고 존귀해집니다. 큰 인격이 돼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름 고쳐지는 비결입니다.
이름이 고쳐지면 과거의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에는 무능하고 남을 미워하고 방탕하고 더럽고 비천하고 좁고 쓸모없는 자였지만, 말씀대로 바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고, 구원 운동에 이용을 바로 당하면 그때는 이름이 고쳐진다는 말입니다. 교역자도 말씀대로 이용을 바로 당해야 합니다. 되는대로 비 진리대로, 인본주의로 하지 말고 말씀대로 바로 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구원 운동에 이용을 당하려고 하면 인격 변화가 되고, 존귀해지고, 이름이 고쳐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커지고 영혼이 자라나고, 영이 세계적으로 넓어지고, 능하고, 사랑하고, 근신하고, 거룩하고, 존귀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격이 변화가 됩니다. 이제 마음이 넓어집니다. 세계적인 마음입니다. 말씀대로 믿고 행하고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면 세계적이고 국제적인 수준에 올라갑니다. 어디에다 갖다 놔도 문제가 없게 됩니다. 이렇게 이용당해야 변화가 됩니다. 변화된 사람은 새 사람이 되고, 큰 사람이 되고, 존귀한 사람이 되고, 넓은 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을 다 포섭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이름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라고 바뀌게 됩니다. 말씀대로 바로 믿고 바로 행하고 바로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는 그것이 큰 복이란 말입니다.
그 반면에 고생은 많이 있습니다. 교역자 가정도 고생은 막심합니다. 고생은 막심하지만 그래도 이런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고생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복을 생각하십시오. ‘이건 못해 먹겠다', ’무슨 팔자에 이런 데 시집을 와가지고 이렇게 됐는가', ‘못살겠다' 하지 말고, 남 모를 고생을 많이 하지만 동시에 이런 복을 생각하십시오. 또 교역자 부인들이 교인들보다 더 고생하는 것도 많습니다. 밤낮 목사는 심방하고 말씀연구하고 산기도 간다고 하고 생과부 노릇해야 합니다. 아마 생과부 노릇 절반은 할 것 같습니다. 남편 없는 여자 비슷합니다. 밤낮 집에 붙어 있지 않습니다. 며칠 있다가 집에 오는 것입니다. 쌀 떨어졌다고 해야 알아주나, 반찬 사는 것 알아주나, 돈 달라고 하면, 교역자들 돈 모릅니다. 돈 달라고 하면 조금 갖다 주며 한달 쓰라는 것입니다 고생이 막심할 것 같습니다. 손님 오면 자꾸 뭐 해오라는 것입니다. 손님은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자꾸 옵니다. 교역자 부인은 너무 없는데 자꾸 손님이 와서 대접하려다 보니까 힘이 듭니다. 고생하고 먹을 것은 없고 돈은 안 주면서 자꾸 해오라고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면은 있지만 또 좋은 면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믿고 말씀대로 행하고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면 고생 당하는 반면에 세 가지가 또 있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인격이 커집니다. 인격이 변화가 되고, 존귀해지고, 커지고, 영혼이 자라나고, 높아집니다. 쑥 자라나는 것입니다.
이름이 변화가 됩니다.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기 전보다 이용당할 때 변화되어 큰 사람이 됩니다. 이제 작은 사람도 큰 사람이 되고, 낮은 사람도 높은 사람이 되고, 더러운 사람도 거룩한 사람이 되고, 방탕했던 사람도 근신하는 사람이 되어, 큰 사람이 됩니다.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는데 이것은 금보다도 낫고 은보다도 낫습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존귀해지는 것이고, 세상에서도 존귀해집니다. 이렇게 구원 운동에 바로 이용만 당하면 세상에서도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고생은 많지만 얼마나 존귀해지고, 영광스럽고, 커지게 되었느냐는 말입니다. 벌써 이름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모든 사람이 우러러 보는 것입니다. 시집가면 무엇이 됩니까? 시집가는 날 사모님이 됐습니다. 벌써 달라졌습니다. 사모님 아니었는데, 사모님 됐으니 달라진 것입니다. 사모님이라는 외부적인 것만 달라지면 안 됩니다. 이제 실제로 인격이 달라져야 됩니다. 이름에 적합한 사람, 인격이 변화가 돼서 그 이름에 합당한 사람만 된다고 하면 온 교인이 우러러 보고 다른 교인도 우러러 봅니다. 그 사모님이 교회 잘 받들고 교역자 잘 받든다고 하면 얼마나 우러러 보겠나 말입니다. 교역자 부인이 먼저 말씀대로 행해야 됩니다. 참고, 십자가를 참고, 말씀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상 많이 받습니다.그리고 성경 말씀대로 행해야 되겠는데 주일날 잘 지키지 못하면 안 됩니다. 그 자리가 얼마나 존귀한 자리이고 구원 운동에 이용하려고 그 자리에 갖다 올려놨는데 구원 운동이 큰 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자기에게 있는 줄 알지 못하고 주일날 안 지키면 안 됩니다. 주일 안 지키면 그건 하나님 앞에 악한 일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받들 생각을 하고 이기주의로나 욕심만 채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육신적으로는 남편이지만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회적으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자기가 맡았으니 밥을 잘 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떠한 역경이 오고 난관이 있어도 밥을 제때 해주십시오. 안 해주는 건 하나님께 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손해 주는 죄가 됩니다.
또 남자 교역자는 밥 안 해준다고 해서 거기에 얽매이면 안 됩니다. 해주건 안 해주건 초월해서 끄떡없이 하나님 일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아내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잘못 나가도 한편이 굳건히 서서 턱턱 걸어 나가면 그 사람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가서 마귀 종노릇 할 때에, 이제 남편이 그만 거기에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에 지장을 준다면 둘 다 망합니다. 교회도 망합니다. 그런 줄 알아야 됩니다. 한 편이 마귀 종이 되어서, 하나님의 일에 협조를 잘 안 하고, 또 하나님 일에 손해를 준다고 해도, 남편은 거기에 영향 받지 말고 터벅터벅 걸어 나가라는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귀의 종노릇 하던 다른 사람들도 건져서 바로 세울 날이 옵니다. 그러면 다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밥 안 해주고, 마귀 종노릇 하지만, 원리원칙에 서서 걸어 나가게 되면 좀 있으면 다 건져낼 날이 온단 말입니다. 차주성 목사는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저녁 먹는 시간 몇 시, 아침에 몇 시 시간 딱 정해 놨는데 그 시간에 가서 밥 안 해놓으면 밥 안 먹는답니다. 조금만 있다가 가져와도 안먹는답니다. 그러면 사모님이 벌벌 떤답니다. 밥 안 먹고 굶어서 나간 답니다. 그러면 사모님은 밥 두 그릇 먹겠습니까? 자기 남편 것까지 두 그릇 먹을 것 같지만 같이 굶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밥 먹는 시간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모른답니다. 꼭 그 시간에 해 놓는다고 합니다. 목사 사모님이 집사 일을 보든지, 권사 일을 보는 것은 안 해야 됩니다. 제직에 참여 안 해야 됩니다. 교회 일 하면 못 씁니다. 교회 일은 절대 간섭 안 해야 됩니다. 교역자 부인이 교회에 간섭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목사가 절대 간섭 못하도록 해야 됩니다. 아무리 간섭하려고 해도 간섭 못하게 하고, 목사가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해나가면 사모님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 그만 넘어가서 삐뚤어지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마귀가 사모를 통해서 들어오는 때가 많습니다. 그때에 양보하지 말고 굳건히 서서 이겨 나가면, 그 사모는 얼마 안 그러다 그만 두는 것입니다. 아예 굳건하니까 흔들어봐야 쓸데없습니다. 그러면 마귀 종 노릇하던 부인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는 나무를 흔들어 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큰 기둥과 같은 나무를 흔들어대지 못합니다. 흔든다고 흔들립니까? 아예 흔들릴 생각을 안 합니다.
성경에도 누가 악처였습니까? 욥의 처가 악처이고, 또 이세벨이 악처이고, 헤로디아가 악처입니다. 이렇게 삼대 악처가 있습니다. 하와는 악처가 아닙니다. 아무리 악처라도 남편만 굳건히 서 가지고 믿음으로 말씀대로 원리원칙대로 잘하면 그 악처도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바로 설 날이 옵니다. 포기하지도 말고 같이 싸우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굳건히 서서 원리원칙대로 턱턱 걸어 나가면 하나님 일이 잘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아내도 건져내고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원리원칙에 서서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누군가가 마귀 노릇해도 원리원칙에만 딱 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에 조금도 지장 주지 말고 할 일을 터벅터벅 해 나가십시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일만 잘되어 나가면 다 바로 세울 날이 옵니다. 하나님 일이 잘못 되면 일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부인 비위 맞추려고 하나님 일에 지장을 주면 일이 다 틀어집니다. 자기도 망하고 아내도 망하고 교회도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절대 하나님 일에 지장을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가 마귀 노릇해도 사랑해야 됩니다. 마귀 노릇해도 사랑하고 좀 위해주면서도 또 옳은 것을 양보하지 않으면서 원리원칙에 서 나가면 다음에는 바로 설날이 옵니다. 그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지금 바로 못 서면 다음에 바로 설 수 있고, 다음에 못 섰으면 그 다음에 설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로 세워서 나갈 생각을 해야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기지, 마귀가 이기겠습니까? 그건 마귀 역사인데 하나님이 이깁니다. 믿음으로 잘하면 그 아내를 좋은 아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좋은 아내 만드는 법은 원리 원칙대로 서서 양보하지 말고 그냥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랑하면서 위해주면서 원리 원칙대로 딱 서 나간단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마귀 역사, 마귀 노릇해도 교회 영향이 미치지 않게 하면서 자기가 하나님 일 하는데 지장을 안 받으면서 다 건져내서 좋은 사모님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사모님 입장에서는 남편이 자기에게 잘못 하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은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려니까 얼마나 피곤하고 얼마나 시간이 없겠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또 기도를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겠는가 생각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언제나 중점을 두시길 바랍니다. 자기 남편이다 하고 가정 문제만 중점으로 생각하지 말고 가정보다는 하나님의 일, 교회를 먼저 생각하고, 자기 위해주는 것보다 교회를 위하는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 위해주면 뭘하겠습니까? 교회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잘 되면 그게 다 자기에게로 돌아옵니다. 교회 잘 되면 사모님 잘 존경하고 앞으로 대접도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로 하여금 교회만 잘하게 만들어 놓으면 대접은 자연히 돌아옵니다. 교회가 잘 되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교회가 커지면 목사님 대접하게 되어 있지 왜 안 하겠습니까? 교회 잘 되는 것이 자기 잘되는 것입니다. 교회 잘 되게 만들어줘야 됩니다. 남편이 교회 잘 섬기도록 도와주고 ‘나는 쇠하고 대접 못 받아도, 나는 멸시를 받고 천대를 받아도 낮아져도 좋습니다. 교회만 잘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면서 교회 잘 되게 해 놓으면 대접은 자기에게로 다 옵니다. 교회 잘 되는 것에 표준하지 않고, 자꾸 자기만 잘해 달라고 하면 뭘 가지고 잘해주겠나 생각을 해보십시오. 교회가 잘 돼야 자기가 잘 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 부인들은 교회 잘되는 것에 목표를 두어야겠습니다. 남편이 왜 안 알아줍니까? 사랑하고 다 알아 주고 위해 주는데 방법이 다릅니다. 시간이 없는 것입니다. 가정도 다 위하려고 하지만 가정보다는 교회가 크니까 교회를 먼저 하는 것이 원리원칙입니다. 교회 먼저 하는 것이 원리원칙 아닙니까? 선교할 때도, 교회를 우선하지 않았습니까? 제단부터 먼저 쌓았습니다. 미국 청교도들이 하나님 앞에 교회부터 먼저 짓고 자기 집을 지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일부터 먼저 하고 자기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다음은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주십니다. 교회 잘 되는 것은 둘째이고, 자기부터 잘해 달라고 하면 교회도 안 되고 자기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먼저 교회가 잘되는데 목표를 두고 힘써야겠습니다.
5. 이삭 출생의 언약
아브라함과 사라가 웃음
본문 17-18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구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믿지 않고 웃은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고 웃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을 것인데 책망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믿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라가 웃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웃은 것하고 사라가 웃은 것하고 다른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었다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창세기 15:4-6절에 하나님께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며 밖으로 이끌고 나가 하늘의 뭇별처럼 아브람의 자손이 많아진다고 하실 때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셨습니다. 17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다시 확실하게 세우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웃은 것은 믿지 않는 가운데서 나오는 웃음이 아니고, 이 모든 것을 믿는 데에서 나온 웃음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이 웃음을 아브라함이 믿지 않는 데서 나오는 웃음이라고 하면 아브라함이 믿지 않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었다고 했고, 그의 믿음이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본문 17절에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라고 하였는데 이 말은 아브라함이 “자식을 낳긴 낳겠는데 어떻게 낳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이런 복이 임할 수 있겠습니까?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그렇게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까? 90세 된 사라가 어찌 생산하겠습니까?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겠습니까?”라고 하면서 웃은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웃은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실 것을 처음부터 믿었습니다. 이미 창세기15:6절에 “네 아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 할 때부터 분명히 믿었다고 했습니다. 믿음이 약해진 것이 아닙니다. 사라가 아이를 낳겠다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지겠습니까? 웃는다는 것을 의심해서 웃었다고 하면 아브라함이 믿음이 약해진 것 아닙니까? 그러나 처음부터 아브라함은 믿음이 약해진 적이 없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시종일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심해서 믿음이 약해져서 웃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시니, 웃은 것입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심
본문 19절에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만약 아브라함의 웃음이 불신앙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삭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리가 없습니다. 이삭의 이름을 웃음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아브라함의 웃음은 ‘좋은 웃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웃음이 믿음에서 나온 좋은 웃음이이기 때문에 ‘이삭’이란 이름을 지은 것 입니다.
‘웃음’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웃었기 때문에 ‘웃음이라고 지으라’고 한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만 웃은 것이 아닙니다. 이삭을 난 다음에 사라도 웃었습니다. 또 듣는 사람도 함께 웃었습니다. 창세기 21:6절에 “사라가 가로되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삭을 낳은 다음에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라고 한 것은 낳은 다음에 웃게 했단 그 말입니다. 할머니가 아이 낳았으니 웃지 않겠습니까? 낳고 보니까 우스운 일이란 말입니다. 또 그 소식을 듣는 자들도 다 “아 그 할머니 어떻게 아이를 낳나, 그것 참!” 이라며 웃었을 것입니다. 90세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났다고 하니 모두 웃은 것입니다. 그런 웃음입니다. 할머니가 경수는 다 끊어지고 죽은 것같이 되었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생산 불가능한데, 아들을 낳았으니 우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웃은 것은, 이삭을 낳은 다음에 그 소식을 들은 사람이 다 웃는 그 웃음과 같은 웃음으로 보면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신앙으로 상통이 됩니다.
이삭을 낳은 다음에 왜 웃었겠습니까? 감사하면 감사하지 왜 웃었습니까. 사라가 이삭을 낳은 다음에 왜 웃었을까요? 아들을 낳고 좋아서 웃었습니까? 이것은 웃을 만하니까 웃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긴 낳았는데 웃을만한 일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웃기는 일입니다. 듣는 사람도 다 웃었습니다.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웃은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태인데 100세에 아들을 낳는다고 하니까 웃을 만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영으로 낳은 아들과 언약을 세우신다고 하시는 하나님
본문 18절에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고하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100세에 아들을 낳겠다고 하시니까 나이가 많아서 아들을 낳아도 감당할수 없으니 “이스마엘이나 살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100% 다 이루어질 것을 믿지만 “이스마엘이나 살기를원하나이다”고 한 것은 불신앙으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낳게 해 줄 것을 믿지만 그 방법으로 하지 말고 이스마엘을 살리는 것으로 대신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물어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19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을 세워서 후사 세우는 것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분명히 “네 아내 사라가 난 아들을 세워서 그로 말미암아 내가 언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은 육신의 자식이고 육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육신으로 인본주의로 세운 것이기 때문에 후사로 세울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으로 영으로 낳은 자라야만 네 후사가 되고, 그를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세우신다고 하셨습니다. 힘들지만 이삭을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약속된 자녀를 낳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안 되는 일이니까 육신의 아들, 육에 속한 일, 인본주의 즉 육신의 일이나 잘 되게 해달라는 말입니다. 영의 일까지 어떻게 다 잘될 수 있겠습니까? 육의 일이나 잘 되길 바란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니다”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9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내 아내 사래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래가 아들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영의 아들은 말씀으로 되고 능력으로 됩니다. 말씀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됩니다. “네가 말씀으로 받고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영적 아들이 네게 이루어질 것이니까 이제 그 아들이 후사가 되고 영원한 언약을 그 이삭과 더불어 세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주십니다. 영적인 아들과 믿음의 아들은 육신의 아들과 육신에 속한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의 방법, 영적인 신앙으로, 또한 영적인 것으로 믿음의 후계가 이루어져 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또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성취되게 만드십니다.
이스마엘에게 주신 약속
본문 20-22절에 “이스마엘에게 이르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이 중다하여 그로 크게 번성케 할지라 그가 열두 방백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고 하였습니다.
이스마엘도 잘 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도 복을 주고 번성하고 열두 방백을 낳고 큰 나라가 되게 만들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는 복은 이삭과 세운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21절에 “내 언약은 내가 명년 이 기한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영의 아들, 약속의 아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영의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된 구원 운동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이스마엘도 크게 번성하게 해주시지만 실제 구원운동은 이 영적인 약속의 아들, 말씀대로 믿는 신앙의 사람, 영에 속한 신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참된 구원운동을 이루어 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6. 할례를 받음
본문 23-25절에 “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생장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양피를 베었으니 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이었고 그 아들 이스마엘이 그 양피를 벤 때는 십삼 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를 아브라함의 집 모두에게 다 행했다는 말입니다. 99세 때 아브라함이 할례를 행하고 이스마엘은 13세 때 할례를 행했는데 그 이유는 그때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집의 모든 남자가 다 할례를 받았습니다. 구약의 성례는 할례와 유월절입니다.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고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또 내적인 정욕을 제거하는 표시로 받는 것이니까 할례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백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도 성례인데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구약의 할례와 유월절이 신약의 성례인 세례와 성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