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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5일 토요일

에스겔 48:1-35 12지파에게 땅이 분배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12지파에게 땅이 분배됨
에스겔 48:1-35

1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같을찌니라 극북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단의 분깃이요 2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3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4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5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6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7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 8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 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 9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이라 10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 11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2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찌니라 13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으로 할찌니 이 구역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각기 일만 척이라 14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 15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광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할찌니 16그 척수는 북편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편도 사천오백 척이요 동편도 사천오백 척이요 서편도 사천오백 척이며 17그 성의 들은 북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남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동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으로 이백오십 척이며 18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장이 동으로 일만 척이요 서으로 일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찌라 19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그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는 그 땅을 기경할찌니라 20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도합은 장도 이만 오천 척이요 광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 21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찌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 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 22그런즉 왕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 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 사이에 있을찌니라 23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24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25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26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27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 28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29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분깃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30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오백 척이라 31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32동편의 광이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33남편의 광이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34서편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 35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1. 북부 일곱 지파의 분깃

회개하고 제일 처음으로 분깃을 받은 단 지파

본문 1절에 “모든 지파의 이름대로 이같을찌니라 극북에서부터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하맛 어귀를 지나서 다메섹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 곧 북으로 하맛 지계에 미치는 땅 동편에서 서편
까지는 단의 분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12지파에게 그 분깃을 나누어주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처음으로 분깃을 받은 지파는 단 지파입니다. 예전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나누어 줄 때에는 단 지파가 마지막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단 지파가 맨 처음에 받았습니다. 단 지파는 창세기 49장에 보면 뱀이라고 하였고 독사와 같이 남을 물어 매질하고 뱀과 같이 남에게 손해를 주는 지파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단 지파가 제일 처음으로 땅을 분배 받은 것을 보면 그들이 회개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 지파가 제일 처음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분깃’은 신약 교회 시대에 믿음으로 구원 받은 여러 종류를 가리킵니다. 아무리 단과 같이 독사처럼 물고 찢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를 믿음으로 변화되면 이렇게 하나님의 분깃을 받을 때에 먼저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래 좋은 사람이 먼저 분깃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잘 지키고 자기를 잘 만든 그 사람이 먼저 받게 됩니다. 아무리 과거에 좋지 못한 사람이었어도 회개하고 믿음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분깃에 먼저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유다 지파의 분깃이 성소에서 가장 가까이 있음

본문 2-7절에 “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아셀의 분깃이요 아셀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납달리의 분깃이요 납달리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므낫세의 분깃이요 므낫세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에브라임의 분깃이요 에브라임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르우벤의 분깃이요 르우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유다의 분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유다 지파까지 연속해서 7지파가 나오는데, 둘째는 아셀 지파의 분깃, 셋째는 납달리 지파의 분깃, 넷째는 4절에 므낫세 지파의 분깃, 다섯째는 5절에 에브라임 지파의 분깃, 여섯째는 르우벤의 분깃, 일곱째는 7절에 유다 지파의 분깃입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형제인데, 요셉의 아들들입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이 축복해준 대로 요셉은 두 몫을 차지하였습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한 몫씩 모두 두 몫을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구원 운동에 충성하면 두 몫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니, 몇 몫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앞장서서 애굽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였고 그들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두 몫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앞장서서 희생적으로 충성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잊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여러 배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이었지만 여섯 번째로 받았습니다. 그러나 르우벤 지파는 성소로부터 두 번째 위치에 있습니다. 성소가 가운데 있고 유다 지파 다음에 르우벤입니다. 르우벤이 범죄해서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지만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섰으므로 이렇게 성소로부터 두 번째 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범죄한 사람도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면 하나님의 성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범죄했어도 회개하면 성소에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일곱째는 7절에 유다 지파가 나오는데, 유다 지파가 성소 맨 가까이에 있습니다. 유다 지파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것이므로 성소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유다 지파가 땅을 분배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은 성소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2. 성지와 제사장의 분깃

예물로 드릴 땅 중앙에 성소가 있음

본문 8절에 “유다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너희가 예물로 드릴 땅이라 광이 이만 오천 척이요 장은 다른 분깃의 동편에서 서편까지와 같고 성소는 그 중앙에 있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물로 드릴 땅은 중앙에 있는 땅인데, 그 땅은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의 중앙에 성소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9-10절에 “곧 너희가 여호와께 드려 예물로 삼을 땅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이라 이 드리는 거룩한 땅은 제사장에게 돌릴찌니 북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서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동편으로 광이 일만 척이요 남편으로 장이 이만 오천 척이라 그 중앙에 여호와의 성소가 있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예물로 드린 땅은 레위 자손들이 관할하게 되었습니다. 레위 자손들이 그 땅을 관할하며 그 땅에 거하게 된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 수종드는 지파인데, 성소에서 수종드는 사람이 성소 옆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물로 바치는 땅을 소유하고 그 땅에서 살게 됩니다.

사독 자손의 특별한 분깃

본문 11-12절에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 온 땅 중에서 예물로 드리는 땅 곧 레위 지계와 연접한 땅을 그들이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여길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으로 사독의 자손 중 거룩히 구별한 제사장에게 돌릴찌어다’라고 하였는데, 특별히 사독의 자손에게 하나님께서 분깃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에게 특별한 분깃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독의 자손에게 다른 제사장보다 특별한 분깃을 주시고, 성소 가장 가까운 곳에 와서 수종들게 하신 것입니까? 그에 대한 설명이 그 아래에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직분을 지키고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의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사독의 자손은 그들의 직분을 잘 지킨 사람들입니다. 사독은 제사장 직분을 잘 지킨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할 때에 레위 사람이 그릇한 것처럼 그릇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독의 자손을 특별히 돌봐주시고 특별한 분깃을 주시며 특권을 베푸신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직분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사독의 자손은 특별한 제사장 직분을 잘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들에게 제사장 직분을 맡기신 것으로 믿고, 그 직분을 충성되이 잘 지킨 자손들입니다.
또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할 때에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들이 잘못할 때에도 거기에 휩쓸려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사독은 제사장의 직분을 잘 지키고 자신의 직무에 충성하였습니다. 그것이 아주 귀한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다윗에 대해서 불평하고 대적하는 것에도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에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가담하였지만 사독은 거기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사독의 계통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알아주시고 분깃도 특별한 분깃을 주시며 성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종들게 하셨습니다.

그 전에도 한 번 사독의 자손이 나왔었습니다. 에스겔 44장 15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충성하면 그만큼 하나님께서 다 알아주십니다. 그만큼 복을 주십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에 자기도 같이 잘못하면 안됩니다. 마귀가 시험할 때에 많은 사람이 거기에 넘어갑니다. 그러나 사독은 같이 넘어가지 않고 자기 위치를 굳게 지키며 하나님께 받은 제사장 직분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또 사람들이 다윗을 반대할 때에도 가담하지 않고 충성되이 그 일을 잘해나갔습니다. 다른 사람이 그릇할 때에 그릇하지 않고 바로 서서 충성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평안할 때는 다 잘하는 것 같지만 마귀가 한 번 들이치면 다 흔들리다가 시험에 넘어갑니다. 그런데 그때에 안 넘어가고 바로서서 하나님의 일을 바로 받들어나가는 것이 귀합니다. 그것이 사독의 자손입니다. ‘국난(國難)에 지충신(知忠臣)이요 가빈(家貧)에 지현부(知賢婦)’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충신을 알고 집이 가난할 때에 현부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잘해줄 때에는 전부 다 현부이고, 전부 다 충신입니다. 그러나 어지러울 때 충신이 귀한 것입니다. 다 배반하고 반역할 때 그때 가담하지 않고 충신 노릇을 하는 사람이 진짜 충신입니다. 여기는 누가 그런 사람입니까? 사독이라는 제사장이 한 번도 다른 사람이 그릇한 데에 가담하지 않고 자기 직무에 충성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아주시고 귀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해서 피와 기름을 드리는 직분을 주시고,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 땅 가운데 성소에서 가장 가까운 부분을 사독의 자손에게 주신 것입니다.

3. 레위인과 왕의 분깃, 성읍

직분을 위해서 주신 은사와 복을 팔거나 바꾸지 말고,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라

본문 13절에 “제사장의 지계를 따라 레위 사람의 분깃을 주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일만 척으로 할찌니 이 구역의 장이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이 각기 일만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레위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성소에 가까운 제일 좋은 곳은 사독의 자손 제사장에게 주고, 그 다음에 레위 사람에게 분깃을 나누어 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그들이 그 땅을 팔지도 못하며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의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하리니 이는 나 여호와에게 거룩히 구별한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 땅을 기업으로 받은 사람은 그 땅을 팔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하며, 그 땅에서 처음 익은 열매를 남에게 주지도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하나님께 거룩히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물로 드린 거룩한 땅은 제사장이나 레위 사람이 그 직분을 위해서 받은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예물로 드린 거룩한 땅은 그 직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복을 가리킵니다. 그 직분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가 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팔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합니다. 또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은 결과를 하나님께 바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은사람은 그 직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꾸지 못하고 팔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듯 언제나 처음 것으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루의 첫 시간, 새벽기도하는 시간은 시간의 첫 열매입니다. 농사할 때에 첫 열매, 사업할 때에 처음으로 번 돈은 재물의 첫 열매입니다. 무엇이나 그 처음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또 그 직분을 위해서 받은 모든 것은 바꾸지 못하고 팔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만 충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안 하면 안 됩니다. 안 하면 죄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만 충성해야 되겠습니다.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가 거할 속된 땅

본문 15절에 “이 이만 오천 척 다음으로 광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하여 성읍을 세우며 거하는 곳과 들을 삼되 성이 그 중앙에 있게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다음으로 오천 척은 속된 땅으로 해서 성읍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거기에 거민이 있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8절에 “그 척수는 북편도 사천 오백 척이요 남편도 사천 오백 척이요 동편도 사천 오백 척이요 서편도 사천 오백 척이며 그 성의 들은 북으로 이백 오십 척이요 남으로 이백 오십 척이요 동으로 이백오십 척이요 서으로 이백 오십 척이며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여 남아 있는 땅의 장이 동으로 일만 척이요 서으로 일만 척이라 곧 예물을 삼아 거룩히 구별할 땅과 연접하였으며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을 삼을찌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의 소산은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의 양식을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성읍에서 역사하는 사람은 거룩한 땅 다음에 있는 땅에서 농사를 해서 그 식물로 먹고 그 성읍을 잘 받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성읍에서 역사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거룩한 땅 다음에 땅을 이렇게 조금 남겨 놓아서 그사람들의 식물을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읍에서 역사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돌봐주십니다. 먹을 것과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또 신령한 은사도 주십니다.

본문 19절에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그 성읍에서 역사하는 자는 그 땅을 기경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을 기경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0절에 “그런즉 예물로 드리는 땅의 도합은 장도 이만 오천 척이요 광도 이만 오천 척이라 너희가 거룩히 구별하여 드릴 땅은 성읍의 기지와 합하여 네모 반듯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네모 반듯하고, 이만 오천 척씩이라고 하였습니다.

거룩히 구별한 땅과 가까운 곳에 있는 왕의 분깃

본문 21절에 “거룩히 구별할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은 땅은 왕에게 돌릴찌니 곧 거룩히 구별할 땅의 동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 척과 서향한 그 지계 앞 이만 오천척이라 다른 분깃들과 연접한 땅이니 이것을 왕에게 돌릴 것이며 거룩히 구별할 땅과 전의 성소가 그 중간에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의 분깃에 관한 것으로, 거룩히 구별한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아 있는 땅을 왕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거룩히 구별한 땅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에 남아 있는 땅을 왕에게 돌려서 왕이 거룩히 구별한 땅 밖에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할 것을 가리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왕에게도 분깃을 주셔서 성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직무를 잘 감당하면서 그 땅을 소유하도록 만드셨습니다. 왕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도 거룩한 땅에서 가까운 곳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주장을 잘 받아서 이스라엘 나라를 잘 통치하는 그런 왕이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22절에 “그런즉 왕에게 돌려 그에게 속할 땅은 레위 사람의기업 좌우편과 성읍의 기지 좌우편이며 유다 지경과 베냐민 지경사이에 있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와 베냐민 사이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4. 남부 다섯 지파의 분깃

이스라엘 지파가 전부 13몫으로 땅을 분배 받음

본문 23-27절에 “그 나머지 모든 지파는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베냐민의 분깃이요 베냐민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시므온의 분깃이요 시므온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잇사갈의 분깃이요 잇사갈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스불론의 분깃이요 스불론 지계 다음으로 동편에서 서편까지는 갓의 분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남쪽 다섯 지파의 분깃에 대해서입니다.
베냐민 지파가 제일 먼저 받았는데, 이것의 뜻은 세상에서는 맨 나중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데는 앞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가 앞에 나와서 먼저 받았습니다. 그 다음 둘째는 시므온 지파, 셋째는 잇사갈 지파, 넷째는 스불론 지파, 다섯째는 갓지파입니다. 북쪽에 예물로 바친 중앙 땅의 일곱 지파와 남쪽에 다섯 지파, 도합 전부 열두 지파입니다. 레위 지파는 그 중앙에 받았으므로 레위 지파까지 하면 13몫입니다. 요셉 지파가 두 몫을 받았기 때문에 13몫으로 나눈 것입니다.

본문 28-29절에 “갓 지계 다음으로 남편 지계는 다말에서부터 므리바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것은 너희가 제비 뽑아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누어 주어 기업이 되게 할 땅이요 또 이것들은 그들의 분깃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신령한 교훈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 여러 성도들이 믿음을 지킨 대로 분깃을 받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5. 성읍의 문과 그 이름들

열두 문과 성읍의 이름인 여호와삼마

본문 30-34절에 “그 성읍의 출입구는 이러하니라 북편의 광이 사천 오백 척이라 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북으로 문이 셋이라 하나는 르우벤 문이요 하나는 유다 문이요 하나는 레위 문이며 동편의 광이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요셉 문이요 하나는 베냐민 문이요 하나는 단 문이며 남편의 광이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시므온 문이요 하나는 잇사갈 문이요 하나는 스불론 문이며 서편도 사천오백 척이니 또한 문이 셋이라 하나는 갓 문이요 하나는 아셀 문이요 하나는 납달리 문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이 동서남북 한 쪽에 세 문씩 전부 열두 문입니다. 여기에 요셉 문이 들어갑니다. 레위 문이 들어갔고, 문에는 요셉이 두 몫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레위가 들어가 있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빠지고 요셉이 들어갔습니다. 하여간 동서남북 사방으로 한 쪽에 문이 셋씩이고, 거기에 전부 12파의 이름이 있습니다. 르우벤 문, 유다 문, 레위 문, 요셉 문, 베냐민 문, 단 문, 시므온 문, 잇사갈
문, 스불론 문, 갓 문, 아셀 문, 납달리 문, 이렇게 문마다 12지파의 이름을 기록하였습니다.

본문 35절에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 척이라 그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고 하였는데, ‘여호와삼마’는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이 신령한 도성에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이것은 오늘날의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여호와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영적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는 그곳에 여호와께서 계신다는 것을 믿고, 이 구원 운동을 잘 받들어나가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47:11-23 땅의 경계와 분배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땅의 경계와 분배
에스겔 47:11-23

11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1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14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15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16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17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과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 18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 19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가 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 20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 21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22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찌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생명수가 이르는 곳에 모든 것이 소성함

생명의 역사가 사방으로 흘러내려가 소생함이 있게 됨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는 곳마다 깊어졌고 또 소생해 올라왔습니다. 생명강은 그 근원이 어디입니까? 어디에서부터 흘렀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제단 밑, 성전 제단 밑에서부터 흘러서 동향
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꺾어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강이 흘러내려 가는데 일천 척을 척량하니까 물이 발목에 올라왔고, 또 거기서부터 일천 척을 척량하니까 그 다음에는 무릎에 오르고, 거기서 또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허리에 오르고, 거기서 또 일천 척을 척량해서 사천 척을 내려가니까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계속 흘러내려갔습니다. ‘강물’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성전 생활, 제단 생활하는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역사가 흘러서 사방으로 흘러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 강물이 흘러내려 가는데 아라바로 내려가면 아라바 황무지가 소생합니다. 또 사해 바다로 들어가니까 사해 바다가 소생해서 그곳에 고기가 심히 많이 살게 되었
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강가에는 나무가 많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생명나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펄과 개펄 신앙

1) 진펄 - 중간치기, 전적으로 믿지 못함

본문 11절에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라고 하였는데, 소성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가는 데마다 많은 열매를 맺히고 소생해 올라옵니다. 그러나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펄과 개펄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펄’은 마른 땅도 아니고 강도 아닌, 중간치기를 말합니다. 질척질척한 것, 땅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물웅덩이 같은 것, 그것이 진펄입니다. 그리고 ‘개펄’이라는 것은 바다 물이 들어올 때에는 잠겼다가 바다 물이 나가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천에 가면 개펄이 많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잠기고 바닷물이 나갈 때는 육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잠겨서 강이 되었다가 땅이 되었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소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치기가 안 됩니다. 믿는 사람한테 오면 믿는 사람 같고 안 믿는 사람한테 가면 안 믿는 사람 같은 자, 다시 말해 중간치기, 양목치기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도 아니하고 안 믿지도 아니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펄입니다. 전적으로 믿고 말씀을 온전히 따라가며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사람은 생명강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 않고 안 믿는가보다 하고 보면 또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옵니다. 연보도 하고 교회는 잘 다닙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믿는가 하면 전적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주일 날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도 안 드리고 양심을 안 쓰고 믿음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진펄입니다.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가 하면 또 믿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소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영적 소생이 없습니다. 밤낮 진펄 그대로 믿는 것이지, 아무 소생이 없습니다.

2) 개펄 - 변덕 부리는 신앙, 옛날로 돌아감

그 다음에는 개펄과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개펄과 같은 신자는 물이 들어오면 강이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확실한 신자같이 되어서 죽을지 살지 모르고 따라가다가, 얼마 안 가서는 눈이 멀뚱멀뚱해가지고 언제 은혜 받았는가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믿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나가다가, 얼마 안 있다가는 그 신앙이 다 없어져서 옛날 그 사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개펄 신앙, 이것은 무엇이나 일정하지 못합니다. 변덕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저 믿으려고 할 때에 은혜 받았고 하나님한테 바로 하려고 할 때에는 그 이상 더 따라갈 사람이 없이 열심히 하고 충성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나가다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새벽 기도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 새벽 기도 잘한다’하고 있는데, 얼마 있으면 그 사람이 없어져서 안 보입니다. 물이 들어올 때는 새벽 기도에 나왔다가 물이 나갈 때는 또 땅이 드러나서 새벽 기도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물이 들어올 때는 나왔다가 물이 나갈 때는 안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여기에도 개펄이 많습니다. 주일날에 물 한 번 들어왔다가 월요일에 물이 다 나가서 땅이 되었다가, 또 삼 일 저녁에 또 한 번 물이 들어왔다가 그 다음 목요일에 다 나갔다가 하는 사람의 신앙이 개펄 신앙입니다. 삼 일 저녁에 안 나오는 사람은 또 너무 딱딱한 개펄입니다. 삼 일 저녁에도 안 나오고 주일날만 나오는 사람은 개펄이라도 더 딱딱한 개펄로 봐야 합니다.

진펄과 개펄 신앙이 소생하지 못하는 까닭

진펄과 개펄은 소생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믿어서는 믿는 일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따라갈 생각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가다가 연약하여 쓰러질지언정 또 회개하고 바로 서서 바로 믿으려고 힘을 쓰고 전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왜 안 따라갑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고 전적으로 따라가지 못합니까? 이것은 중간에 갖다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가지도 않고 뒤로 가지도 않고,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10년이 가도 그것입니다. 밤낮 그것입니다. ‘개꼬리 3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고 밤낮 믿어도 그것입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중간에 갖다놓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진펄 신앙입니다. 중간치기는 진펄입니다. 여기 중간치기 많습니다. 오래 믿었는데 밤낮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중간에 갖다가놓고 더는 나오지 아니하니까 성경을 아무리 가르쳐도 ‘할 것만 하지 난 안합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나귀 밥통처럼 딱 버티고 앉아가지고 더
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펄이 되어서 소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믿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개펄 신앙은 진펄과 좀 다릅니다. 개펄 신앙은 전적으로 믿습니다. 믿고 따라오려고 합니다. 전적으로 믿고 믿는 일을 하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결심을 해서 몇 발자국 나오다가 그 다음에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긴 무엇을 합니까?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하며 물러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가서 옛날 못된 버릇을 그냥 하고 있고, 또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회개했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개가 먹었다가 토하고 토했다가 먹는 것과 같은 것이 개펄 신앙입니다. 물이 들어오면 바다가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땅이 되는 것입니다. 소생하지 못합니다. 회개할 때 보면 그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얼마 있다가 보면 새 사람은 무슨 새 사람, 또 헌 사람, 옛사람인 것입니다. 그대로 돌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개펄로 역시 소생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이 사람은 인본주의, 욕심, 옛사람,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는 자에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남

그 다음에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일 번, 그 다음에 개펄이 이 번, 진펄이 삼 번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 몇 번 신자가 제일 많을 것 같습니까? 진펄 신자 삼 번이 제일 많겠습니까? 아니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이 번이 더 많겠습니까? 아니면 일 번이 더 많겠습니까? 몇 번이 더 많을 것 같습니까? 나는 몇 번 같습니까? 이 번은 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하듯이 결심했다가 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가다가 또 안 따라가는 것입니다. 삼 번 진펄은 아예 처음부터 중간치기입니다. 들어오는 것도 없이 밤낮 그러한 대로 믿는 것입니다.

요새 삼 번도 많습니다. 자신이 따라올 것만큼만 따라오고 더 이상은 안 따라옵니다. 당나귀 밥통을 딱 바쳐놓고 주일날을 아무리 지키라고 해도 ‘지키기는 뭘 지켜. 난 살 것 산다’하며 결혼식에 갑니다.” 또 십일조를 드리라고 해도 “무슨 십일조입니까? 조금 드렸으면 됐지”라고 합니다. 또 새벽 기도를 하라고 하면 “무슨 새벽 기도를 합니까? 나는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벽 기도 하라고 할 때에 ‘새벽 기도 해야 되겠다’하고 결심을 하고 한, 두 번 나오는 사람은 개펄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못한다고 아예 내버티는 것은 진펄입니다.

하여간 아예 전적으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몸을 바치고 말씀을 따라가며 생명의 시냇가에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신앙을 가지고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생함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은 생명 강수가 흘러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는 데마다 소생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사해 바다가 살아나고 많은 고기가 살며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사입니다. 전적으로 따라가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놀라운 일이 있게 됩니다.

본문 12절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생명나무의 잎사귀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가 강 좌우에 많이 있습니다. 생명나무라는 것은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입니다. 생명강수에 살면 생명의 열매가 맺히고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잎사귀’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의 모든 행위, 생명의 역사가 있는 모든 언행심사를 가리킵니다. 그것을 잎사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이나 행위 등이 다른 사람에게 약 재료가 됩니다. 신자의 믿음의 행위를 하나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믿음의 말 한 마디, 믿음의 행동 하나, 믿음의 역사 하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주는 말 한 마디가, 우리는 늘 듣던 말을 해주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의 약 재료가 됩니다. 또 우리 믿음의 열매가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열매가 됩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여간 전적으로 따라가는 성도, 말씀대로 힘 있게 따라가는 성도는 가다가 연약하여 쓰러질지언정 칠전팔기의 정신을 가지고 일어서서 또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성도에게는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또 그 잎사귀(신앙의 언행심사)는 다른 사람에게 약 재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눠줄 땅의 경계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본문 13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두 분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나누어주어서 기업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이제는 다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영히 여기서 종살이를 하지 않겠느냐는 낙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반드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땅을 나누어 가진다’라는 것입니다. 12지파가 다 돌아가서 땅을 분배해 가진다는 소망을 미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 지파에게는 창세기 48장 5절의 말
씀대로 두 몫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7절, 창세기 13장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고 하였는데, 피차없이 나누라는 것은 평등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땅을 평균적으로 나누어서 받지 못하는 사람 없이 다 받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땅으로 너희 기업을 삼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영적인 가나안의 축복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예언도 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 신령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신령한 복지를 주십니다. 신령한 복지가 어디 있습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고, 그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거기가 가나안 땅입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고 하였는데, 딴 근심이 하나도 없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탄식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곳은 그곳이 아무리 궁궐이라고 하여도 지옥입니다. 호화주택에 아무리 별 것을 다 가져다놓고 산다고 해도 거기에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단칸 셋집에 산다고 해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리는 항상 기쁘고 평안하며 찬송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항상 즐겁고 주님과 같이 사는 자리가 복지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두 몫을 주었다는 것은 요셉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고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한 몫을 더 받습니다. 더 많이 줍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과 죄 짓다가 죽을 때에 믿고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이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열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고, 또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으며, 두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두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 준다고 하였습니다. 피차없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동서남북 지계를 넘지 말고 거기에 거하라

본문 15-16절에 “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고 하였습니다. ‘북방은 대해에서’라고 하였는데, ‘대해’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지중해에서 다메섹으로, 다메섹이 북방의 경계입니다. 다메섹은 수리아(아람)의 수도인데, 그곳이 북방 경계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과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다메섹이 있는 곳이 북방 경계선입니다.

본문 18절에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동방 경계선은 요단강입니다.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이니’라고 한 것을 보아 요단강이 동방 경계입니다.

본문 19절에 “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남방 경계는 애굽입니다.

본문 20절에 “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서방은 대해라’고 하였는데, 여기 대해도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서방 경계는 지중해입니다. 지중해가 서방 경계입니다. 지도에 보면 지중해가 있는데, 그것이 서방 경계이고, 남방 경계는 애굽까지이며, 동쪽은 요단강으로 해서 동해(사해 바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나라 지도를 보면 동쪽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동쪽에는 요단강을 건너서 길르앗이고, 길르앗 다음에는 요르단이고, 요르단 다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내내 육지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동해라고 한 것은 사해 바다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조금 내려가면 사해 바다가 있는데, 그것을 동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동해 바다라고 나오면 그것은 언제나 사해 바다인 줄로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계를 그어주셨습니다. 경계 안에서 다 분배를 하는 것입니다. 경계 밖에는 분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가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선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경계선 안에서 살면 하나님께서 늘 같이 해주시고 권고해주십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떠나지 아니하고 늘 보호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1장 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계선 안에서 살 때에 권고하시고, 여호와의 눈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항상 그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선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경계선을 그어주셨습니다. 북방은 다메섹, 남방은 애굽 시내, 서방은 대해(지중
해), 동방은 요단강과 동해(사해 바다), 거기까지가 경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계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를 넘으면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권고가 늘 떠나지 않습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늘 여호와께서 살펴주십니다. 경계선 밖에 나가면 안 됩니다. 진리 안에서 살고 신앙 양심을 지켜야지, 진리를 벗어나면 그만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말씀 안에서 사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제 땅을 다 나눠주었는데 나누어줄 때에도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각 지파에 따라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각 지파에 따라서 분깃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믿는 사람들에게도 분깃을 나누어주십니다. 12수는 하나님의 만수인데, 자기가 받은 그 진리대로,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한 대로, 자기를 만든 대로 하나님께서 축복의 땅을 나누어주십니다. 받은 대로, 만든 대로, 믿는 대로, 그대로 하나님께서 신령한 기업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받아서 바른 진리를 많이 가지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를 적게 받아서 그만큼 믿는 일을 한 사람에게는 축복이 그만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축복이 영원히 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경계선을 넘어가면 하나님의 축복이 떠납니다. 우리의 경계선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외인도 자녀를 낳은 자에게는 기업을 주라 

본문 21-23절에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찌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외국 사람이라도 너희 가운데 들어와서 오래 살며 자녀를 낳은 사람에게는 기업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도 앞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같은 기업을 주신다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방 사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여하고 이스라엘 운동에 협조하며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수고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같이 기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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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7:1-12 생명강과 진펄, 개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생명강과 진펄, 개펄
에스겔 47:1-12 

1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2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3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4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5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6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7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9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10또 이 강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11그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1. 생명수 강

성도에게 역사하시는 생명수 강

본문 1-5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말미암아 꺾여 동향한 바깥문에 이르시기로 본 즉 물이 그 우편에서 스미어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이상 중에 하나님의 성전 문에 이르렀는데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와 성전의 방향인 동으로 흐르다 남편으로 흐르고, 또 성전 문들을 지나 동향으로 나가는데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계속 흘러내려와 처음에 건너보니 발목에 올라오고, 줄로 일천 척을 재어 내려가서 건너보니 물이 무릎에 올라오고, 거기서 또 일천 척을 내려가서 건너보니 허리에 올라오고, 거기서 일천 척을 또 내려가서 건너보니 큰 강이 되어 사람이 헤엄치지 못할 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큰 강은 생명강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생명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신약시대에 많은 성도들에게 임하는 생명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역사하는 생명수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른다는 것인데, 이것은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5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물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고,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은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13절에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진리 가운데 역사하십니다. 본문의 강물은 성령과 진리이고, 물과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강이라고 표현하고, 그 생명강이 흘러내려간다고 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에도 생명강이 흐릅니다. 영적인 면으로 보면 신약시대에도 생명강이 흘러내려가고, 구약시대에도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강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는 믿는 사람이 받는 성령을 가리켜 요한복음 7장에 생명강이라고 표현했고, 말씀의 역사를 가리켜 생명강이 흘러내려간다고 하였습니다. 즉, 생명강은 성령과 말씀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 모
든 성도에게 이루어지는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모든 믿는 사람들 속에 말씀과 성령의 역사로 생명강이 흘러갈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생명강은 계속 흘러내려가는데 처음에는 얕아서 발목에 올라오다가 거기서 일천 척을 재어서 내려가면 무릎에 올라오고, 또 내려가 보면 허리에 올라오고, 또 내려가면 큰 강이 됩니다. 일천 척씩 재며 내려갔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는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점점 깊어지고, 순종하지 않으면 깊어지지 않습니다.

생명강이 흐르는 성도

예수를 믿는 사람의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발목에 올라와 철퍼덕거리는 사람이 있고, 생명의 역사가 무릎만큼 올라와 있는 사람도 있고, 허리에 올라와 있는 사람도 있고, 큰 강을 이루어 생명 강수 속에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다른 종류의 사람은 본문 11절에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진펄과 개펄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개펄은 바닷물이 들어오면 잠겼다가 바닷물이 나가면 땅이 되고, 진펄은 강도 아니고 땅도 아닌 중간을 가리키는데 물이 좀 섞여서 질퍽질퍽한 상태를 말합니다. 예레미야 17장 6절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하였는데, 진펄과 개펄과 같은 신앙은 소생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건건한 땅, 맛 잃은 소금을 나타내는 성도입니다.

이렇게 생수가 흘러 발목에 올라오는 생수, 무릎에 올라오는 생수, 허리에 올라오는 생수, 창일하게 넘치는 생수가 있는데 우리는 깊은 물가에 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얕은 물가는 물이 잘팍하여 고기가 다 보여서 잡아먹히기가 쉽습니다. 깊은 물가에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천 척을 내려가야 합니다. 일천 척 내려가면 발목, 일천 척 더 내려가면 무릎, 일천 척 더 내려가면 허리, 일천 척 더 내려가야 깊어지는 것입니다. 또 점점 내려가 깊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인
도와 주장을 받아 계속 순종해 내려가고 또 내려가고 거기서 또 내려가야 생명의 역사가 계속 이어지고 깊어지는 것입니다. 내려가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나이 들어서 늙고 죽더라도 계속 그 상태입니다.

소생되지 못하는 진펄과 개펄

진펄과 개펄은 소금 땅이라서 소생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달이 뜨고 질 때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하루에 2번씩 바다가 되었다 땅이 되었다 하는 이러한 생활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이 들어왔을 때에는 물에 잠겨서 생명 강수가 넘치고 기쁨이 충만한데, 물이 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빛이 변하여 세상으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물이 들어올 때에 강이 되고, 물이 나가면 옛사람이 드러나 믿음의 사람이 아닌 육의 사람으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이 들어왔을
때에는 생명의 역사가 충만한 사람이 되어 기쁨이 충만하고 모든 일을 믿음과 찬송으로 통과하는데, 얼마 있다가 보면 눈이 멀뚱멀뚱하면서 찬송도 없고 물 없는 땅만 드러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땅입니다.

땅은 육에 속한 사람을 가리키는데, 물이 지나가면 이러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물이 들어왔을 때에는 성령의 충만한 역사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물이 나가면 옛사람이 다 드러나서 혈기를 부리고 방탕하며 음행하고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 15가지에 속한 것들이 드러나면 진펄과 개펄인 줄로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믿음이 좋은 것 같고 성령의 사람이된 것 같은데, 얼마 있다가 보면 옛날 믿기 전의 못된 버릇이 나와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육신의 향락주의로 되어 믿지 않는 사람과 같이 되는 것, 이것이 진펄과 개펄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소생하지 못합니다. 소금 땅이 되어서 사람이 거하지 못하는 땅, 사람 살 곳이 되지 못하는 땅과 같이 소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에서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즉, 순종을 잘하면서 내려가라는 말이고, 내려가다가 땅이 드러나서 육의 사람, 옛사람이 드러나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 뒤집어 엎어놓고, 때려 부수고, 눈이 멀뚱멀뚱하게 되어서 혈기를 부리며 원수를 맺고, 동료를 때리고, 싸우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만 생각하여 세상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가면 세상사람이 되었다가 주일에는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사람이 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아예 강 속에 살든지 땅 위에 있으면 괜찮은데, 물에 잠겨서 맛을 봤다가 또 내버렸다가, 또 맛을 봤다가 하니까 죽을 지경인 것입니다. 물에 잠기지 못하고 겨우 질퍽하게 있다가 물에
담갔다 하는 과정을 반복하니 죽을 것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힘든 사람들이 다 이런 경우입니다. 그러나 생명 강수 속에 있는 사람은 힘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에서 충만하기 때문에 항상 기쁘고 즐겁고 평안하며 모든 것을 기쁨으로 통과하고 감사함으로 통과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2. 생명수가 이르는 곳에 모든 것이 소성함

소성하는 생명수

생명 강수는 역사하는 힘이 매우 강해서 흘러내려가는 곳마다 전부 소생함을 얻습니다. 본문 6-8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간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고 하였습니다. 아라바 지역은 황무지이고, 바다는 사해입니다. 생명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소생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원래 사해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였는데 강물이 사해 바다로 흘러가니 많은 고기가 살아나 소생함을 얻고 고기가 심히 많아져서 어부가 고기를 잡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아라바 역시 황무지인데, 강물이 흘러가니 소생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강물이 흘러내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강물이 어디서부터 흘러내려갑니까? 성소에서부터, 제단 밑에서부터, 성전 문지방으로 흘러나오는데, 여기에서부터 흘러내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생명물이 성소, 제단, 성전 문지방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시편 84편 10-11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사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성전에는 제사장, 레위 사람, 문지기가 있는데 제일 아래에서 일하는 문지기로 있어도 좋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생명 강수가 흘러내려가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속에서 늘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성도가 되려면 성전 생활, 제단 생활, 성전 문지기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전 문지기 생활은 성전 밑바닥에서부터 일하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 천 날을 지내는 것보다 성전 문지기로 하루를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는데, 성전에서는 생명 강수가 흐르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전 문지기라고 해도 생명의 역사가 있는 생명강에서 생명수를 마시는 문기지로 살면 감사함으로 지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며, 의식적으로만 예배에 참여하는 성도는 생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생수가 없습니다. 참으로 생수가 있는 성도, 생명의 역사가 있는 성도,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면 소생함을 얻습니다. 사막으로 내려가도 사막에서 소생함을 얻고, 황무지로 내려가도 황무지가 소생함을 얻고, 사해 바다로 내려가도 사해 바다가 소생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생수가 내려가지 않으면 소생함을 얻지 못합니다. 생수가 내려가야 비로소 소생함을 얻는 것입니다.

달마다 새 실과를 맺는 생명수

본문 12절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는데, 생명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심히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라고 한 것은 시험을 통과할 때마다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한 달은 그믐달에서 보름달로 되는 시기이고, 흑암과 광명이 교차되는 시기입니다. 시험이 들어오면 흑암을 만난 것인데, 이것을 이기면 광명이 오고 이때 열매가 맺힙니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험이 들어오면 잠간 근심하게 되는데, 이때가 흑암을 만난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기면 광명이 오게 되며, 이기기만 하면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이 들어왔을 때 승리적으로 통과하면 생명나무의 열매가 맺히고 자라납니다. 하지만 반대로 시험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주기도문에도 시험을 없게 해달라고 하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 이것도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없으면 안 됩니다. 시험이 있어야 승리적으로 통과하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이길 것도 없고 자라날 것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연단을 시키시는데, 여기에서 기도하고 믿음으로 통과하면 좋은 열매가 맺히고 자라난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시험을 이겨야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인 줄을 알고 넘어지거나 자빠지면 안 되겠습니다. 배가 나가려면 물이 필요하고 물만 있으면 빨리 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배 안쪽으로 물이 들어오면 침몰되어 가라앉게 됩니다. 이와 같이 시험을 말씀대로 통과하면 이기게 되며 자라나고 열매가 맺힙니다. 날마다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약 재료가 되는 잎사귀

본문 12절 하반절에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믿음을 지킨 소문이 약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믿음을 지켰다는 것을 들으니 귀하게 생각되어 모든 사람의 병을 고친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절에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믿음 지킨 역사가 만국을 소성케 하고 많은 사람의 병을 고치는 약 재료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의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 이기선 목사님의 믿음 지킨 것을 들으면 그것이 우리에게 약 재료가 됩니다. 이처럼 옛 성도가 믿음을 지킨 것을 들으면 모두 약 재료가 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 지킨 것, 야곱이 믿음 지킨 것, 모세가 믿음 지킨 것, 모든 성도들의 믿음 지킨 이야기는 약 재료인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할 때에 그것이 약 재료가 되었듯이 믿음 지킨 것을 들으면 약 재료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조금 있다가 “십가가를 멀리하라”고 할 때 진펄과 개펄이 나왔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할 때는 생명 강수 속에 있었는데, 조금 있다가 옛사람이 나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할 때에는 진펄과 개펄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을 생각지 않고 사람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다시 회개하여 생명 강수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생명 강수 속에서 살려면 성전 생활을 해야 하고, 제단 생활을 하며, 성전 문지기 생활을 해야 합니다. 가장 밑바닥에서 하나님을 섬기면서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일입니다. 생수가 있는 성도, 생수가 있는 교회, 생명수가 흐르는 교단이 되어 생명수가 늘 흘러서 사막으로 가면 사막이 소생함을 얻고 황무지로 흘러가면 황무지가 소생함을 얻고 사해 바다로도 내려가면 사해 바다가 소생함을 얻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앞으로 계속 이루어져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에스겔 46:1-24 제사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제사법
에스겔 46:1-24

1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 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2왕은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 3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4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5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 6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7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8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찌니라 9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찌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찌며 10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찌니라 11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12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찌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찌니라 13아침마다 일 년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14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육분지 일과 기름 힌 삼분지 일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 15이와 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갖추어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을찌니라 16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왕이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17왕이 만일 그 기업으로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후에는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왕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니라 18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찌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19그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 곁 통 행구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북향한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편에 한 처소가 있더라 20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 21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로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22뜰 네 구석에 있는 그 뜰에 담이 둘렸으니 뜰의 장이 사십 척이요 광이 삼십 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한 척수며 23그 작은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24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전에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

1. 왕과 백성의 출입법과 제사법

출입법

본문 1-2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안뜰 동향한 문을 일하는 육 일 동안에는 닫되 안식일에는 열며 월삭에도 열고 왕은 바깥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와서 문 벽 곁에 서고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요 왕은 문통에서 경배한 후에 밖으로 나가고 그 문은 저녁까지 닫지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엿새 동안은 성전 안뜰의 동향문을 닫아놓았다가 안식일과 월삭 때만 열라는 것입니다. 성전의 동향문은 하나님께서 들어오시는 문입니다. 에스겔 44장 1-2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법이 얼마나 엄격한가를 여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문인 동향한 문은 여호와의 날인 안식일과 매월 초하루인 월삭에만 열고, 또 열려있을 때에도 제사장과 레위인 외에는 왕이라도 바깥 현관으로 돌아서 그 문 벽 곁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도 제사장이 제사를 드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왕도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이 땅 백성도 안식일과 월삭에 이 문통에서 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도 안식일과 월삭에 왕처럼 동향한 문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문 입구에서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제사법

본문 4-5절에 “안식일에 왕이 여호와께 드릴 번제는 흠 없는 어린 양 여섯과 흠 없는 수양 하나라 그 소제는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안식일에 드리는 제사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번제로써 양과 염소를 드리고 소제로써 밀가루와 기름을 드렸는데, 어린 양은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하고, 가루는 예수님이 죽기까지 순종하신 것을 상징하며, 기름은 성령을
상징합니다. 소제라는 것은 희생 없는 제사인데, 짐승을 잡지 않고 곡식 가루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영적 제사, 희생 봉사의 제사,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나갈 때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며 나가야 합니다. 가루는 자기 자신의 몸을 바치고 희생하는 것을 말하며, 기름은 영적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을 힘입어서 제사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또 현관으로 들어와 제사를 드린 후에는 다시 현관으로 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6-8절에 “월삭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를 드리되 모두 흠 없는 것으로 할 것이며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에도 밀가루 한 에바며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왕이 올 때에는 이 문 현관을 통하여 들어오고 나갈 때에도 그리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월삭에 드리는 제사도 희생과 밀가루와 기름으로 하였는데,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어린 양 여섯, 수양 하나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희생의 제물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실 것을 가리키기 때문에 이렇게 많이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도 왕이 여호와의 문인 성전 동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현관문을 통해 들어왔다가 현관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성을 침범하지 않아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9절에 “그러나 모든 정한 절기에 이 땅 거민이 나 여호와 앞에 나아올 때에는 북문으로 들어와서 경배하는 자는 남문으로 나가고 남문으로 들어오는 자는 북문으로 나갈찌라 들어온 문으로 도로 나가지 말고 그 몸이 앞으로 향한 대로 나갈찌며”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 북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제사를 드린 후 들어온 문으로 다시 나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언제나 앞을 향해서 전진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뒤로 물러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온 길로 다시 가지 말고 들어온 길로 다시 가지 말며, 일단 들어온 다음에는 계속 앞을 향해 전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뒤로 돌아가는 것은 신앙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든지 앞을 향해서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과거의 길을 되풀이하지 말고 언제나 하나님을 향해 말씀대로 전진하는 믿음에 서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왕은 무리 가운데 있어서 그들의 들어올 때에 들어오고 그들의 나갈 때에 나갈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가 들어올 때 들어오시고 나갈 때 나가십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고, 마태복음 28장 20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왕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와 함께 출입하듯,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우리와 같이 해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본문 11절에 “절기와 성회 때에 그 소제는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요 모든 어린 양에는 그 힘대로 할 것이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소제는 짐승을 잡지 않고 밀가루나 기름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그것을 짐승으로 드리는 제사와 함께 겸해서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는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의지하고, 자기 희생의 밀가루를 하나님께 바치며, 성령인 기름을 힘입어서 드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공로, 성도의 희생, 성령의 감동을 합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당한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만일 왕이 자원하여 번제를 갖추거나 혹 자원하여 감사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릴 때에는 그를 위하여 동향한 문을 열고 그가 번제와 감사제를 안식일에 드림같이 드리고 밖으로 나갈찌며 나간 후에 문을 닫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제사를 드릴 때에 동향한 문을 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왕이 자원하여 제사를 드릴 때에는 동향한 문을 열고 안식일에 드렸던 것처럼 제사를 드리고 다 드린 후에 문을 닫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의 제물이 되어 주시므로 하나님의 문이 열려서 그 제사를 받으시고 우리를 구속해주실 것을 상징합니다.

2. 아침마다 드리는 제사

본문 13-14절에 “아침마다 일 년되고 흠 없는 어린 양 하나로 번제를 갖추어 나 여호와께 드리고 또 아침마다 그것과 함께 드릴 소제를 갖추되 곧 밀가루 에바 육 분지 일과 기름 힌 삼 분지 일을 섞을 것이니 이는 영원한 규례를 삼아 항상 나 여호와께 드릴 소제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새벽마다 새벽 기도를 하는 것도 아침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말씀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일 년된 흠 없는 어린 양 하나를 여호와께 드리고 그것과 함께 소제를 준비하는데, 에바 육 분지 일, 기름 힌 삼 분지 일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절기 때에는 하루에 어린 양 하나와 한 에바씩을 드리고, 안식일에는 어린 양 여섯과 수양 하나, 가루는 한 에바씩을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안식일이나 절기에는 여러 에바씩 드렸는데, 에바는 곡식 같은 고체를 재는 단위로 한 에바는 11되, 22리터에 해당합니다. 스가랴서에 보면 ‘에바에 여자가 들어가서 앉았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기름은 한 힌씩 섞으라고 하였는데, 힌은 기름과 같이 액체를 재는 단위로 한 힌은 약 2되, 3. 6리터 정도 됩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 성도의 희생(가루), 성령의 감동(기름)으로 피땀을 흘리며 희생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매일 아침마다 제사를 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우리도 매일 아침 새벽 기도를 드리는 제사를 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옳습니다. 새벽 예배에 나오다 안 나오는 것은 조금 힘을 쓰다가 맥을 놓아버린 것입니다. 콩만 먹은 송아지가 5리도 못 가서 주저앉는다고 하였는데, 일어서려다가 퍽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이와 같이 아침마다 그 어린 양과 밀가루와 기름을 갖추어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아침 항상 드리는 번제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매일 아침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 십자가의 구속, 성도의 희생과 봉사, 몸 바치는 일과 성령으로 제사 드리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3. 왕의 기업 처리법

본문 16-17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왕이 만일 한 아들에게 선물을 준즉 그의 기업이 되어 그 자손에게 속하나니 이는 그 기업을 이어 받음이어니와 왕이 만일 그 기업으로 한 종에게 선물로 준즉 그 종에게 속하여 희년까지 이르고 그후에는 왕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왕의 기업은 그 아들이 이어 받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그 자손에게 물려줄 기업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왕의 기업은 그 아들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다만 간혹 종에게도 줄
수는 있으나 아예 주는 것이 아니고 희년에 다시 돌려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왕의 기업은 자기의 것만 기업으로 물려줘야지, 다른 사람의 것은 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받은 것만 아들에게 기업으로 물려줄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것을 사다가 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왕이 재산이 많으니까 다른 사람의 것을 살 수도 있고 권세로 빼앗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든 재산은 아들에게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아합 왕도 남의 집의 포도원을 빼앗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것만 자기의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고, 종에게 준다고 하더라도 그 종은 왕의 것을 영영히 물려받는 것이 아닙니다. 희년까지 있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50년에 한 번씩 희년이 오는데, 그때 가서는 다시 돌려준다는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왕은 백성의 기업을 취하여 그 산업에서 쫓아내지 못할찌니 왕이 자기 아들에게 기업으로 줄 것은 자기 산업으로만 할 것임이니라 백성으로 각각 그 산업을 떠나 흩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백성의 기업을 취하거나 산업을 빼앗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것만 물려줄 수 있고 백성의 것을 빼앗거나 취한 기업은 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왕이라고 해도 월권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제사장과 백성이 제물을 준비하는 법

본문 19-20절에 “그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 곁 통행구로 말미암아 제사장의 북향한 거룩한 방에 들어가시니 그 방 뒤 서편에 한 처소가 있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구울 처소니 그들이 이 성물을 가지고 바깥뜰에 나가면 백성을 거룩하게 할까 함이니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북향한 제사장의 방안 서편 쪽으로 한 처소가 있는데, 그곳은 제사장이 속건제와 속죄제 희생을 삶으며 소제 제물을 굽는 곳
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다음 그 제물을 먹기 위해 삶는 장소입니다. 바깥에 가지고 나가면 그 거룩함을 보존할 수 없기 때문에 바깥에 나가지 말고 그 방 서편 한 장소에서 그것을 굽고 삶아 제사장들로 먹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물을 살라 먹는 것은 제사가 하나님께 온전히 상달되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받으셨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레위기 10장 17절에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1-24절에 “나를 데리고 바깥뜰로 나가서 나로 뜰 네 구석을 지나가게 하시는데 본즉 그 뜰 매 구석에 또 뜰이 있는데 뜰 네 구석에 있는 그 뜰에 담이 둘렸으니 뜰의 장이 사십 척이요 광이 삼십 척이라 구석의 네 뜰이 한 척수며 그 작은 네 뜰 사면으로 돌아가며 부엌이 있고 그 사면 부엌에 삶는 기구가 설비되었는데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는 삶는 부엌이니 전에 수종드는 자가 백성의 제물을 여기서 삶을 것이니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천사의 인도를 받아 바깥뜰로 나갔는데, 그 뜰 매 구석에 길이가 40척, 넓이가 30척 되는 뜰이 또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작은 네 뜰로 돌아가면서 사면에 부엌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수종드는 자가 백성들의 제물을 삶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부엌은 안뜰 서쪽 건물 부근에 있고, 백성들의 부엌은 바깥뜰 사면에 있습니다. 이렇게 백성들의 부엌이 제사장의 부엌과 따로 있는 이유는 제사장이 먹을 제물과 백성들이 먹을 제물이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한계를 침범하면 하나님의 거룩을 범하는 죄를 짓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위치를 잘 지키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45:18-25 절기에 대한 규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절기에 대한 규례
에스겔 45:18-25

18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정월 초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19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 20그 달 칠 일에도 모든 그릇 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를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전을 속죄할찌니라 21정월 십사 일에는 유월절 곧 칠 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 22그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 23또 절기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갖추되 곧 칠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수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 24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 25칠 월 십오 일 절기 칠 일 동안에도 이대로 행하여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찌니라

1. 정월의 속죄제

본문 18-20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정월 초하룻날에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되 제사장이 그 속죄제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 안뜰 문설주에 바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정월 초하룻날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흠 없는 수송아지 한 마리를 취하여 성소를 정결케 하는데, 제사장이 그 희생의 피를 취하여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와 안뜰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에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또 월삭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에스겔 45장 17절에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찌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매월 초하룻날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 년에 한 번 드리는 제사인데, 흠 없는 수송아지를 잡아서 속죄제로 드리고 그 희생의 피를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 그리고 안뜰 문설주에 바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매년 새 출발을 해야 하고, 매달 초하룻날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또 15일, 7일에 하나님께 지키는 것이 있는데, 그날에도 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20절에 “그 달 칠 일에도 모든 그릇 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를 위하여 역시 그렇게 하여 전을 속죄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그릇 범죄한 자와 부지중 범죄한 자를 위하여 매달 7일에 송아지를 잡아 그 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새롭게 되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고의가 아니라 실수로 범죄한 것, 또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은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정월 7일에 수송아지를 잡아 속죄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초하룻날은 수송아지를 잡아 전 문설주와 제단 아래층 네 모퉁이에 바르고 안 문설주에 바르면서 새 출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월 초하룻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새 출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새 출발을 결심하고도 하루밖에 가지 않았다면 또 새 출발을 결심하고 시작하면 됩니다. 이렇게 초하룻날 새 결심을 하고 새 출발을 하며 예수님의 구속을 힘입고 나가는 것입니다. 1년을 못했으면 그 다음에 또 하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또 하는 것입니다. 몇 십 년 해보는데 뭘 또 하느냐는 생각이 들어도 하라고 하였으니 또 해야 합니다.

2. 유월절과 장막절

본문 21절에 “정월 십사 일에는 유월절 곧 칠 일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정월 십사 일’은 유월절인데, 7일간 절기를 지키며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죄를 가리키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가 없는 생활, 죄를 제거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죄 씻음을 받았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죄를 제거하는 생활,
누룩 없는 떡을 바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22절에 “그날에 왕은 자기와 이 땅 모든 백성을 위하여 송아지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정월 십사 일은 유월절로 하나님 앞에 유월절 양을 잡아 자기 죄와 백성의 죄를 위해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속죄제 드리는 생활을 항상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23절에 “또 절기 칠 일 동안에는 그가 나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갖추되 곧 칠 일 동안에 매일 흠 없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이며 또 매일 수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제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언제입니까? 정월 십사일입니다. 그날부터 절기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전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유월절 다음날인 15일에 부활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달을 표준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음력으로 보면 15일 새벽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활절은 15일이 주일이 아닌 경우 그 다음 주일날 지키고, 음력 15일이 주일이면 그날을 부활절로 지키는 것이 맞습니다. 유월절 전날 못 박혀 죽으셨다가 15일 부활하셨기 때문에, 15일로 부활절을 지키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 다음 주에 지켜도 우리는 음력 15일을 기준으로 지킵니다. 그날 새벽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24절에 “또 소제를 갖추되 수송아지 하나에는 밀가루 한 에바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며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씩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수송아지 하나에 밀가루 한 에바, 수양 하나에도 한 에바,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을 섞어서 드리라는 것입니다. 한 에바는 22리터인데, 수양 하나에는 밀가루 한 되를 섞어서 갖다 바치고, 밀가루 한 에바에는 기름 한 힌을 섞어서 바칩니다.

본문 25절에 “칠 월 십오 일 절기 칠 일 동안에도 이대로 행하여 속죄제와 번제며 그 밀가루와 기름을 드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칠 월 십오 일 절기’는 초막절인데, 이 절기는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할 때에 받은 은혜를 기억하면서 칠 일간 장막 생활을 하는 절기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이 세상은 장막과 같이 임시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도 ‘아브라함이 세상에 있는 동안 장막 생활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본향을 늘 사모하면서 나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고 하였는데, 우리도 이 세상은 임시로 지나가는 장막과 같은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장막 생활이 끝나면 하나님 앞으로 가는데, 영원한 그곳이 우리의 본향, 하늘나라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본향은 다 떠났기 때문에 본향이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를 찾아서 날마다 나아갑시다. 

동시에 이 절기는 모든 곡식을 수확하고 지키는 절기이기 때문에 수장절이라고도 합니다· ‘칠 월 십 오 일 절기 칠 일 동안에도 이대로 행하여’라고 하였는데, 이대로 행하라는 것은 수송아지 일곱, 수양 일곱, 또 매일 수염소 하나를 칠 월 십 오 일 절기로 지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일 년을 농사하여 맺힌 열매로 하나님께 바치는 절기인데, 우리도 신앙 생활 중에 열매를 맺혀서 하나님께 늘 바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이렇게 제사를 드리는 생활, 예수님의 구속의 피를 힘입어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또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속죄제와 번제, 밀가루와 기름을 바치는 소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월 초하룻날 새 출발, 또 월삭, 매달 초하룻날 새 출발, 정월 칠 일에 제사 드리는 새 출발, 칠 월 십 오 일 하나님께 장막절인 동시에 수장절로 열매 맺히는 첫 출발로 우리 자신의 신앙에 열매를 맺히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에스겔 45:1-17 거룩한 땅과 나머지 땅의 분배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거룩한 땅과 나머지 땅의 분배
에스겔 45:1-17

1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찌니 그 장은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은 일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 2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장이 오백 척이요 광이 오백 척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외에 사면 오십 척으로 뜰이 되게 하되 3이 척량한 중에서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둘찌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4그 땅의 거룩한 구역이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서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에게 돌려 그 집을 위하여 있는 곳이 되게 하며 성소를 위하여 있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 5또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여 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산업을 삼아 촌 이십을 세우게 하고 6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광 오천 척과 장
이만 오천 척을 척량하여 성읍의 기지를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7드린 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바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하여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하여 동편 국경까지니 그 장이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찌니라 8이 땅으로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중에 기업을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 줄찌니라 9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찌니 11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히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호멜 십분지 일을 담게 하고 에바도 호멜 십분지 일을 담게 할 것이며 12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오 세겔과 십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 13너희의 마땅히 드릴 예물이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육분지 일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육분지 일을 드리며 14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십분지 일을 드릴찌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십 밧은 한 호멜이라) 15또 이스라엘 윤택한 초장의 떼 이 백 마리에서는 한 어린 양을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삼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이 땅 모든 백성은 이 예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17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찌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찌니라

1. 거룩한 구역과 레위인, 백성, 왕의 구역

거룩한 구역

본문 1절에 “너희는 제비 뽑아 땅을 나누어 기업을 삼을 때에 한 구역을 거룩한 땅으로 삼아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찌니 그 장은 이만 오천 척이요 광은 일만 척이라 그 구역 안 전부가 거룩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땅을 분배할 때에 자기 것부터 챙겨 가지지 말고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땅을 먼저 정해놓으라는 것입니다. 또 그 땅에는 성소가 있다고 하였는데,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소유부터 떼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부터 먼저 해놓아야 합니다. 성소 지을 땅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먼저 해야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제비를 뽑아 땅을 나누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드릴 것부터 하라고 하였는데, 얼마나 바치라고 하였습니까? 장이 이만 오천 척, 광이 일만 척입니다. 이만 오천 척은 약 80마일로 128km이고, 한국의 리로 계산하면 320리나 됩니다. 그만한 길이의 땅입니다. 또 광은 폭인데, 그것이 일만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일만 척은 약 48km이고, 리로 하면 120리입니다. 이만한 땅을 하나님께 먼저 바치라는 것입니다. 전체 땅이 어떻게 되는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하나님께 드릴 것부터 먼저 잘라놓으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땅입니까? 서울에서 320리이면 대전보다 조금 더 내려간 거리입니다. 그 길이면 고속도로로 달려도 2시간은 더 가야 합니다. 또 폭이 120리라고 하였는데, 그 길이면 서울에서 인천보다 더 많이 간 거리입니다. 그런데 그 땅을 전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나눠가질 땅을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이만한 땅을 하나님께 거룩한 예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은 거룩한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새 이만한 땅에 성소를 지은 곳이 있습니까? 이것은 이상적인 하나님의 성소입니다. 자기가 가지기 전에 미리 뚝 잘라서 하나님께 먼저 바쳐놓으라는 것입니다. 길이가 320리, 폭은 120리 만한 땅을 하나님께 바치면 아주 복된 일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 바칠 것부터 뚝 잘라 바치라는 것입니다. 성소 짓는 것부터 뚝 잘라서 만들고, 제사장과 레위 사람은 그곳에 거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데 중점을 두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자기 살림살이를 뒤에 세워놓고
하나님께 바칠 것부터 뚝 잘라놓는 것입니다. 잘라도 조금 자르는 것이 아니고 길이가 320리, 폭은 120리만큼 잘라놓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그 중에서 성소에 속할 땅은 장이 오백 척이요 광이 오백 척이니 네모 반듯하며 그외에 사면 오십 척으로 뜰이 되게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지을 곳의 땅 길이는 장이 오백 척이고광이 오백 척이라는 것입니다. 오백 척이면 60리 정도가 되는데 이 땅을 성전 지을 땅으로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분당 정도가 60리 정도일 것 같은데, 하나님께 바치는 땅 가운데에서 이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십 척은 뜰로 하라고 하였는데, 그 땅은 거룩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이 거할 구역

본문 3-4절에 “이 척량한 중에서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고 그 가운데 성소를 둘찌니 지극히 거룩한 곳이요 그 땅의 거룩한 구역이라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서 성소에서 수종드는 제사장에게 돌려 그 집을 위하여 있는 곳이 되게 하며 성소를 위하여 있는 거룩한 곳이 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소를 지으려고 하는 60리 이외의 땅들은 성소에서 수종을 드는 제사장들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 땅 가운데에는 성소가 있고 그 밖에는 제사장들의 집을 지어 그곳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성소를 지키는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거룩한 땅에 집을 짓고 살면서 성소를 수종들게 되는 것입니다.

레위인의 구역

본문 5절에 “또 장 이만 오천 척과 광 일만 척을 척량하여 전에서 수종드는 레위 사람에게 돌려 그들의 산업을 삼아 촌 이십을 세우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만 오천 척, 일만 척의 넓은 땅을 또 하나 만들어서 레위 사람들로 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성소 밖에 있고, 레위인은 그만한 땅을 또 척량하여 들어가서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위해서 땅을 떼어 그들로 정착하게 하고, 성소 가까운 곳에서 수종들며 살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성소 가까이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만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놓은 것입니다.

백성들의 구역

본문 6-7절에 “구별한 거룩한 구역 옆에 광 오천 척과 장 이만 오천 척을 척량하여 성읍의 기지를 삼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돌리고 드린 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바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하여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하여 동편 국경까지니 그 장이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광 오천 척과 장 이만 오천 척의 땅을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분배해주었는데, 이것은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중심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사람은 거룩한 곳에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왕의 구역

본문 7절에 “드린 바 거룩한 구역과 성읍의 기지된 땅의 좌우편 곧 드린 바 거룩한 구역의 옆과 성읍의 기지 옆의 땅을 왕에게 돌리되 서편으로 향하여 서편 국경까지와 동편으로 향하여 동편 국경까지니 그 장이 구역 하나와 서로 같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지막은 왕을 위해서 땅을 나누었습니다. 척수는 나오지 않고, 길이가 이만 오천 척이니까 동, 서의 길이 이만 오천 척 만큼을 왕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왕의 소유가 상당히 많습니다. 동쪽에서 서쪽까지 120리짜리가 두 개, 60리짜리가 하나면 한 300리 정도 되는 땅을 성소와 레위 사람, 성읍의 기지로 떼어놓고, 그 다음 끝까지는 전부 왕의 것입니다. 땅이 한국만큼 넓다고 하면 왕이 한 100리쯤 가질 것 같습니다.

본문 8절에 “이 땅으로 왕에게 돌려 이스라엘 중에 기업을 삼게 하면 나의 왕들이 다시는 내 백성을 압제하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 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에게 이 땅을 넉넉히 주면 그가 백성을 압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 땅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그 지파대로 나눠 줄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바치고, 그 다음은 레위 사람이 살도록 만들어주고, 그리고 성읍 백성들로 기지를 삼게 하고, 남은 땅은 양쪽으로 왕에게 주었는데 그 길이가 320리라는 것입니다. 왕이 이렇게 넉넉하게 가지고 있으면 백성을 압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공무원들에게 월급을 넉넉히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통순경 중 일부는 자꾸 돈을 받으려고 하는데, 애초에 월급을 넉넉히 주면 다른 짓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찰들은 봉급을 상당히 많이 받기 때문에 다들 경찰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하고, 한 번 경찰이 되면 그 자리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땅은 열두 지파가 제비를 뽑아 나눠 가지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하나님께 바치고, 그 다음으로 레위 사람의 것을 제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수종드는 이스라엘 족속의 성읍도 제해놓고, 남은 것은 왕에게 주며, 아래, 위로 남은 것을 가지고 이스라엘 족속이 제비를 뽑아 나누라는 말입니다. 제비를 뽑아서 수가 많으면 많이 가질 것이고 적게 돌아가면 적게 가질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됩니다. 땅이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잘되게 됩니다.

2. 치리자들이 행할 공정한 법규

본문 9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왕에게 돌리는 소유가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에게도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왕에게 돌린 땅이 왕의 개인 소유가 아닌 모양입니다. 그 땅을 왕 혼자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치리자들에게도 나눠주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주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스라엘의 치리자들아 너희에게 족하니라’고 한 것을 보면 많이 준 것 같습니다. 또 ‘너희는 강포와 겁탈을 제하여 버리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여 내 백성에게 토색함을 그칠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는데, 치리자들은 언제나 강포와 겁탈을 하지 말고 공평과 공의를 행하며 백성에게 토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강제로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12절에 “너희는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밧을 쓸찌니 에바와 밧은 그 용량을 동일히 하되 호멜의 용량을 따라 밧은 호멜 십 분지 일을 담게 하고 에바도 호멜 십 분지 일을 담게 할 것이며 세겔은 이십 게라니 이십 세겔과 이십 오 세겔과 십 오 세겔로 너희 마네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용량 재는 것을 공평히 하라는 것입니다. 에바와 밧이 같은 것이고, 호멜과 고르가 같습니다. 이것들은 그릇들인데, 우리말로는 되, 말과 같은 것입니다. 한 호멜이 밧으로 말하면 십 밧이고, 밧은 에바와 같은데, 한 에바는 십 밧입니다. 하여간 이 도량형 말이나 저울을 바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거래를 바로 하고 공정히 하며 공평히 하라는 것입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하고 말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3. 백성과 왕이 드릴 예물

백성이 드릴 예물

본문 13-14절에 “너희의 마땅히 드릴 예물이 이러하니 밀 한 호멜에서는 에바 육분지 일을 드리고 보리 한 호멜에서도 에바 육 분지 일을 드리며 기름은 정한 규례대로 한 고르에서 밧 십 분지 일을 드릴찌니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십 밧은 한 호멜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땅히 드릴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밀 0.6%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보리 한 호멜을 에바 육분지의 일로 보고, 기름은 한 고르에 밧 십분지 일로 봐서 이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기름의 밧으로 말하면 한 고르는 십 밧 곧 한 호멜이며(십 밧은 한 호멜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정당하게 바치라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또 이스라엘 윤택한 초장의 떼 이백 마리에서는 한 어린 양을 드릴 것이라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것들로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삼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밀, 보리, 기름, 한 어린 양으로 드리되, 양은 아무 것이나 바치지 못하고 윤택한 초장에서 자란 양 떼 이백 마리에서 한 마리씩을 바치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드릴 예물

본문 16-17절에 “이 땅 모든 백성은 이 예물로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본분대로 번제와 소제와 전제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정한 절기에 드릴찌니 이스라엘 족속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 제물을 갖출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루와 기름, 밀과 기름을 다 소제로 드리고 양은 속죄제로 드리며 감사제, 번제로 하나님께 제사 드릴 모든 예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 예물은 전부 이스라엘 왕에게 드리고 왕은 그것을 가지고 백성을 위해 제사를 하는 것입니다. 이백 마리에 한 마리라고 해도 모이면 얼마나 많겠습니까? 이천 마리면 열이고, 이만 마리이면 백, 이십 만 마리이면 천, 이백 만 마리이면 만 마리입니다. 이렇게 많은 것을 왕에게 가져가면 왕은 그것을 가지고 레위 사람이나 제사장들에게 주어서 백성을 위해 번제와 소제와 전제,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같은 절기에 드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기 위하여 이 속죄제와 소제와 번제와 감사제를 갖출찌니라고 하였는데,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제, 번제를 드리라는 말입니다. 정한 절기, 월삭이라는 것은 매달 초 하루를 말하는데, 매달 초하루에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서 이스라엘 백성을 속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예물로 드리는 것은 십일조 이외의 일입니다. 십일조는 레위 사람이 받아서 그것으로 생활을 하고, 왕에게 바치는 것은 십일조 이외에 것, 즉 양 이백 마리에 한 마리, 밀은 0.6%, 기름은 1/100을 바치는 것입니다. 또 왕은 그것을 가지고 자기가 먹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전체 백성을 대표하여 속죄제와 번제, 안식일, 절기나 월삭에 하나님께 드려서 백성이 하나님께 사죄를 받도록 하고 복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으로 알고 본받아서 하나님께 드릴 것부터 먼저 잘라놓아야 하겠습니다. 땅이 있으면 하나님께 바칠 것으로 한 절반을 먼저 뚝 잘라놓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바칠 것부터 먼저 넉넉히 잘라놓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아낌없이 뚝 잘라서 하나님께 먼저 바쳐야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높이고 거룩한 성읍을 구별해서 드려야 복을 받는 것입니다. 거룩한 성읍을 침입하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벌벌 떨어야 합니다. 도량형에 대해서도 공평한 추, 공평한 말, 공평한 에바, 공평한 양을 써서 평등히 하고, 예물도 보리에 대해, 밀에 대해, 기름에 대해, 양에 대해 하나님께 바로 바쳐서 왕이 백성을 위해서 제사
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백성이 복을 받도록, 백성들에게 죄업이 없도록 속죄를 받아서 하나님 앞에 복 받는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에스겔 44:15-31 제사장에 대한 규례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제사장에 대한 규례
에스겔 44:15-31

15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6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 17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 18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 19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찌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케 할까 함이니라 20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 21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 22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 23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24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 25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26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 27성소에 수종 들려 하여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28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이 됨이니라 29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찌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30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 31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

1. 레위인과 사독의 후예

본문 15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들은 내 성소의 직분을 지켰은즉 그들은 내게 가까이 나아와 수종을 들되 내 앞에 서서 기름과 피를 내
게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44장 10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 나갈 때에 제사장들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제사를 드리지 못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잘못된 길로 나갈 때, 제사장들도 잘못된 길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제사장 중에서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은 성소의 직분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에도 끝까지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직무를 잘 감당하였는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에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에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사람은 귀히 쓰임을 받습니다.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자기의 할 일을 잘하였기 때문에 귀히 쓰이는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와서 수종을 들게 되었고, 또 속죄제 제사의 기름과 피를 드리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다른 사람이 잘못 나갈 때에 함께 그 길을 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잘못 나갈 때에 자기의 직분을 잘 지키고,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며, 충성을 다해 받들어나가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귀히 쓰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명을 내놓고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백성들은 다 우상을 섬기며 곁길로 나가는데,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이 바르게 직분을 지킨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은 사독을 보며 보조를 같이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많은 핍박과 어려움을 주고 비방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독 자손의 제사장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기의 직분을 잘 지키고, 직무를 감당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독의 자손들을 귀하게 쓰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올 수 있도록 해주셨고, 가까이에서 수종을 들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릴 때에 기름과 피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해주셨습니다.

본문 16절에 “그들이 내 성소에 들어오며 또 내 상에 가까이 나아와 내게 수종들어 나의 맡긴 직분을 지키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독의 자손들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와 자기들의 직분을 지키는 일이 이어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시험이 와도 변하지 않고 자기의 자리를 지켜서 직분을 잘 감당하여 윗사람을 잘 받들어나가는 사람과 그 자손을 귀하게 쓰십니다.

2. 제사장에 대한 규례

양털 옷을 입지 말고 베옷을 입을 것

본문 17-18절에 “그들이 안뜰 문에 들어올 때에나 안뜰 문과 전 안에서 수종들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을 입을 것이니 가는 베 관을 머리에 쓰며 가는 베 바지를 입고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양털 옷을 입지 말고 가는 베옷과 베 바지를 입으며, 머리에는 가는 베 관을 쓰라는 것입니다. 또 허리는 땀나는 것으로 동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베옷을 입는다는 것은 회개하고 겸비하여 낮아지는 태도, 깨끗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8절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세마포는 의로운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는 언제나 회개하는 태도, 겸비한 태도, 의로운 행실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양털 옷을 입지 말라는 것은 다른 것을 가져다가 자기를 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자기 중심, 자기를 따뜻하게 하는 것에 표준을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십자가를 지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며 나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땀나게 하는 것으로 허리를 동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땀이 나면 냄새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냄새를 피우지 말라는 뜻입니다. 육체의 모든 배설물로 하여금 냄새가 나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땀도 배설물 가운데 하나이므로, 언제나 자기를 잘 제재하고 쳐서 복종시킴으로 육체의 모든 배설물이 나오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기를 제어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백성에게 나아갈 때에 수종드는 옷을 거룩한 방에 둘 것

본문 19절에 “그들이 바깥뜰 백성에게로 나갈 때에는 수종드는 옷을 벗어 거룩한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을찌니 이는 그 옷으로 백성을 거룩케 할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에서 수종을 들다가 바깥에 나갈 때에는 그 수종들 때 입었던 옷을 벗어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 옷을 벗어두는 방이 있는데, 수종을 들 때에는 다시 옷을 입고 나갈 때는 벗어두고 자기 옷을 입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수종을 들 때에는 특별히 회개하고, 겸손하고 정결하며, 근신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세상 일을 구별해야지, 합해놓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는 구별하여 하나님을 거룩하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털을 적당히 할 것

본문 20절에 “그들은 또 머리털을 밀지도 말며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도 말고 그 머리털을 깎기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머리털을 밀지도 말고, 길게 자라게도 말고, 깎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머리를 밀어도 머리카락이 너무 길어도 잘 간수하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를 잘 단속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머리털을 주실 때에는 머리털을 없는 것처럼 하라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너무 길게 하고 다니라는 것도 아닙니다. 적당히 깎아서 머리를 잘 단속하라는 것입니
다. 머리를 풀어헤치며 다니지도 말고, 너무 빡빡 밀지도 말고, 적당히 깎아서 머리를 잘 단속하고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머리를 잘 단속한다는 것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먼저는 머리가 되는 윗사람에 대해 바로 하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11장 3-6절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윗사람에 대해 잘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지나치게도 하지 말고 방심하지도 말고, 자기 할 바를 잘하라는 것입니다. 머리털을 너무 길도록 자라게 하는 것은 방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빡빡 미는 것은 지나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심하지도 말고, 또 너무 지나치게 단속하지도 말고, 윗사람에게 적당하게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빡빡 밀지도 말고 풀어헤치지도 말고, 할 바를 바로 하면서 자기 위치를 지키고 적당하게 해서 다녀야 합니다.

안뜰에 들어갈 때에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

본문 21절에 “아무 제사장이든지 안뜰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은 취하지 말고 제 정신을 차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 취하면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제 정신을 가지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취해서 얼떨떨해서 절반은 제 정신을 잃고 돌아다니면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당한 결혼을 할 것

본문 22절에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족속의 처녀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처녀에게 장가를 들거나 혹시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 수 있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과부나 이혼 당한 사람에게는 장가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결혼을 해도 정결한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과부에게 장가들라는 것은 구별되고 정결한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되는 대로 결혼하지 말고, 정결하며 구별된 결혼을 하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여 분별하도록 가르칠 것

본문 23절에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백성에게 정한 것과 부정한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떤 것이 거룩한 것인가, 어떤 것이 속된 것인가? 어떤 것이 정한 것인가, 어떤 것이 부정한 것인가?’를 잘 판단하여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정한 것, 부정한 것, 거룩한 것, 속된 것을 잘 가르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합당한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더러운 것이고,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속된 것입니다. 또 신앙양심을 어기는 것은 속된 것이고, 양심에 거리끼는 일을 하는 것은 부정한 것입니다. 성경을 어기는 것은 전부 부정한 것입니다. 하여간 정한 것, 부정한 것, 거룩한 것, 속된 것을 다른 사람에게 구별하여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것을 구별하여 잘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 24절에 “송사하는 일을 재판하되 내 규례대로 재판할 것이며 내 모든 정한 절기에는 내 법도와 율례를 지킬 것이며 또 내 안식일을 거룩케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송사하는 일을 바로 하라는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하는 것을 배우라는 뜻입니다. 
여덟째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 
일곱째는 유월절, 감사절과 같은 절기를 규례대로 지키는 것입니다. 
여섯째는 송사를 바로 하라는 것, 
다섯째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 
넷째는 과부나 이혼 당한 자에게 장가들지 말 것, 
셋째는 포도주를 먹지 말 것, 둘
째는 머리를 길게 자라게 하거나 밀지 말 것, 
첫째는 베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 것

본문 25-26절에 “시체를 가까이 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못할 것이로되 부모나 자녀나 형제나 시집가지 아니한 자매를 위하여는 더럽힐 수 있으며 이런 자는 스스로 정결케 한 후에 칠 일을 더 지낼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여 더럽히지 말라는 것이 아홉째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신앙이 죽어서 진리를 부인하고, 진리에서 떠난 것을 말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는데, 성경대로 행할 생각을 하지 않고 여전히 성경을 어기며 나가는 사람들을 예수 믿는 사람들이 가까이 하게 되면, 도리어 신앙에 손해를 보게 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영혼이 죽어서 죽은 행동, 죽은 말, 진리에 반대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이렇게 옳은 신앙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시체와 같은데, 그러한 시체를 가까이 하게 되면 손해가 납니다. 냄새만 나고, 자기가 더러워집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사람과는 마음을 터놓고 신앙을 상담하지 말고,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가족이라면 할 수 없지만, 가족이 아닌 이상 가까이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동창생이라고 해도 신앙이 같지 않으면 손해만 보게 됩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사람들을 자주 만날 줄 알았는데, 만나는 사람은 가끔 보지만 어떤 사람은 한 번도 못 만났습니다. 53년도에 졸업해서 지금까지 33년이 되었는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동창생이 여러 명 있습니다. 동창회를 한다고 해도 유익이 없기 때문에 가지 않은 것입니다. 신앙이 맞지 않는 사람과 신앙 상담을 하고, 교회 이야기를 해봤자 손해만 됩니다. 또 놀러나 가자고 하니까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은 성경을 반대하고, 옳은 신앙을 반대하는 태도로 나가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나 자녀나 형제, 시집가지 않은 자매는 가까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가까이 하되, 기도하면서 더욱 조심히 나가야 합니다.

성소에 들어갈 때에 속죄제를 드릴 것

본문 27절에 “성소에 수종들려 하여 안뜰과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제를 드릴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속죄제를 드리라는 것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들어가라는 뜻입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때에는 진정으로 회개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의지하고, 성소에 가까이 나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을 것

본문 28절에 “그들은 기업이 있으리니 내가 곧 그 기업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그들에게 산업을 주지 말라 나는 그 산업이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자기의 기업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업을 삼는 사람은 하나님이 재산이며 전부가 되어서 하나님으로 삽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하였는데, 말씀으로만 만족 하는 것입니다.

각종 첫 소산을 제사장에게 돌릴 것

본문 29-30절에 “그들은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먹을찌니 이스라엘 중에서 구별하여 드리는 물건을 다 그들에게 돌리며 또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너희 모든 예물 중에 각종 거제 제물을 다 제사장에게 돌리고 너희가 또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주어 그들로 네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세상에서 기업을 가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오늘날의 교역자인데, 세상 사업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자기 기업으로 삼으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제물의 각종 제물, 첫 밀가루를 제사장에게 돌리라고 하였는데, 모든 제물과 십일조, 처음 익은 열매는 제사장에게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집에 복이 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을 잘 공경해서 집에 복이 임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먹지 말 것

본문 31절에 “무릇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이나 찢긴 것은 다 제사장이 먹지 못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새나 육축의 스스로 죽은 것, 또 찢긴 것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죽은 것은 더러운 것인데, 그것은 제사장에게 합당치 않습니다. 그리고 찢긴 것은 깨끗한 바가 되지 못합니다. 이것은 언제나 깨끗한 것을 먹고, 정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8절에“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이익을 취하면 안 됩니다. 정당한 것만 먹고, 정당하지 않은 것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사업도 정당한 사업을 해야 하고, 정당하지 않은 사업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을 속이고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더러운 것이므로, 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44:1-14 동향한 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동향한 문
에스겔 44:1-14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2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둘찌니라 3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 4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5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 6너는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7대저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능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케 하는 것이 되었으며 8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 9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10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 11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전 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 12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13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
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 14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

1. 성전 동문은 여호와의 문임

본문 1-2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 동향한 바깥문에 돌아오시니 그 문이 닫히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문은 닫고 다시 열지 못할찌니 아무 사람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할 것은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그리로 들어왔음이라 그러므로 닫아 둘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성소 동향한 문은 여호와께서 들어오신 문이기 때문에 닫아 두고 아무도 그리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동향’은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2절에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해 돋는 곳에서부터 나와 인치는 사업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치는 역사가 하나님의 방향에서 시작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동방을 한국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한국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향이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향에서 인치는 사업이 나왔기 때문에 동방은 하나님의 방향이고 하나님의 문으로 알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한 번 성소에 임하신 다음에는 나가지 아니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닫아 두시고 다시 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날은 교회가 성소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영적 세계는 영적 성소인데, 이곳에 여호와께서 임하시고 다시는 나가지 않으십니다. 임마누엘 성자께서 찾아오셔서 우리와 항상 같이 하시고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늘 떠나지 아니하시고 같이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그 문을 다시 열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닫아 두시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왕은 왕인 까닭에 안 길로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서 거기 앉아서 나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고 그 길로 나갈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은 이 문 현관으로 들어오라는 것입니다. 정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이 문 현관으로 들어와 여호와 앞에서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식을 먹고 하나님의 뜻대로 백성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이 왕이 되어야 합니다.

2. 성전 더럽힌 죄를 꾸짖으심

본문 4-5절에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을 통하여 전 앞에 이르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한지라 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 내가 네게 말하는 바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주의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영적 성전에 충만하게 임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 생활을 할 때에 에스겔이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충만한 영광 앞에 굴복하고 얼굴을 땅에 대며 영광의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겠습니다. 영적 성전에 들어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리는 참 신앙으로 성소에 들어가면 이렇게 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전심으로 주목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규례와 모든 율례를 귀로 듣고, 또 전의 입구와 성소의 출구를 전심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6-8절에 “너는 패역한 자 곧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의 모든 가증한 일이 족하니라 대저 너희가 마음과 몸에 할례 받지 아니한 이방인을 데려오고 내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그들로 내 성소 안에 있게 하여 내 전을 더럽히므로 너희의 모든 가능한 일 외에 그들이 내 언약을 위반케 하는 것이 되었으며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과 몸의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 사람을 데려와 하나님의 전을 더럽혔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이방 사람을 데리고 성소에 들어갔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
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떡과 기름과 피를 드릴 때에 믿지 않는 이방 사람들을 성소 안에 있게 하였습니다. 이방인은 불신자인데, 이방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불신앙으로 형식적인 제사를 드렸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제사하지 아니하고 형식적으로 제사하는 것은 성소에 이방 사람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님의 언약을 위반하였는데, 이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본문 8절에 “너희가 내 성물의 직분을 지키지 아니하고 내 성소에 사람을 두어 너희 직분을 대신 지키게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성소에서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으로 대신 그 자리를 지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여 그자리를 지키게 하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심방도 자기가 할 것은 자기가 해야 하고, 자기가 가르칠 것은 자기가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자기가 가야 할 곳은 자기가 가야 하고, 자기가 바쳐야 할 것은 자기가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자기의 직무를 다른 사람에게 대신 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돌볼 것은 자기가 돌봐야 하고, 자기가 지을 성전은 자기가 지어야 합니다. 자기가 할 일을 자기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시킨다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가증한 일인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세 가지를 잘못하여 하나님께 책망을 들었습니다.
첫째는 성소 안에 이방 사람을 데리고 들어간 것,
둘째는 언약을 위반한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위반한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해야 할 직분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증한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 9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있는 이방인 중에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인은 내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마음과 몸이 할례를 받는 것은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정욕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으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과 몸에 할례를 받지 못하고, 여전히 회개하지도 않고, 욕심대로 나가며, 죄를 벗어버리지도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합당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3. 레위인의 후예

본문 10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릇하여 나를 떠날 때에 레위 사람도 그릇하여 그 우상을 좇아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으로 기울 때에 그래도 레위 사람은 바로 가야 했는데, 레위 사람마저도 이스라엘 족속을 따라 우상을 섬기는 데에 가담하였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까? 레위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고, 전적으로 성경말씀에 서서 백성들이 우상을 섬길 때에 잘못되었다고 가르쳐주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백성들과 함께 가담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멀리 떠났으니 그 죄악을 담당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레위 사람이 범한 죄는 레위 사람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그러나 그들이 내 성소에서 수종들어 전 문을 맡을 것이며 전에서 수종들어 백성의 번제의 희생과 및 다른 희생을 잡아 백성 앞에 서서 수종들게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분향도 하지 못하고, 멀리 수종을 드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범죄를 하면 자기가 지은 죄를 자기가 담당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고 모든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나가서 지성소 안에 들어가고, 하나님 앞에서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또 이렇게 나가야만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러한 자리에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본문 12-13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전에 백성을 위하여 그 우상 앞에서 수종들어서 이스라엘 족속으로 죄악에 거치게 하였으므로 내가 내 손을 들어 쳐서 그들로 그 죄악을 담당하여 내게 가까이 나아와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며 또 내 성물 곧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이 자기의 수욕과 그 행한 바 가증한 일을 담당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제사장들은 전에 백성과 함께 우상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 징벌하시어 제사장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물에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그러나 내가 그들을 세워 전을 수직하게 하고 전에 모든 수종드는 일과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일을 맡기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게 해주시고, 그들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바칠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게 해주신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범죄하면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용서해주시고, 다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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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43:1-27 제단 봉헌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제단 봉헌식
에스겔 43:1-27

1그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3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 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로 엎드렸더니 4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5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 6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7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8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렵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 9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 10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인자야 11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 12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13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고가 일 척이요 그 사면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 그 가으로 둘린 턱의 광이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14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래층의 고가 이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 이 아래층 면에서 이층의 고가 사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 15그 번제단 위층의 고가 사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16그 번제하는 바닥의 장이 십이 척이요 광이 십이 척이니 네모반듯하고 17그 아래층의 장이 십사 척이요 광이 십사 척이니 네모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광이 반 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을 향하게 할찌니라 18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19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 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제물을 삼되 20네가 그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 21그 속죄 제물의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찌며 22다음날에는 흠 없는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물을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케 하기를 수송아지로 정결케 함과 같이 하고 23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수양 하나를 드리되 24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25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 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수양 하나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 26이와 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려 정결케 하며 봉헌할 것이요 27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더라

1.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으로 들어감

본문 1-2절에 “그후에 그가 나를 데리고 문에 이르니 곧 동향한 문이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라
고 하였습니다. ‘동편’은 하나님의 방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 동편에서부터 왔습니다. 그때에 그 영광으로 인하여 땅이 빛나고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큰 음성이 났습니다.

본문 3절에 “그 모양이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 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도 같기로 내가 곧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더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예전에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성읍을 멸하러 오실 때의 이상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사가 하나님을 대행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 4-5절에 “여호와의 영광이 동문으로 말미암아 전으로 들어가고 성신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 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이 성전 안 뜰에 들어설 때에 그곳에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 찬 것을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에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밖에서 마당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돌봐주지 않으십니다. 성전 안마당 생활을 하는 사람만 돌봐주십니다.
그러므로 성전 밖 마당 생활을 하는 것처럼 멀찍이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안마당에 들어가 지성소에 들어가고 하나님을 만나며 영접하는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성전 밖 마당 생활을 하는 신자는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멀찍이 따라가는 것입니다. 성전 문 지척이라고 해도 밖과 안은 이렇게 차이가 큽니다. 안마당에 들어가 봐야만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늘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시기로 약속하심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

본문 6-7절에 “들은즉 누구인지 전에서 내게 말하더니 사람이 내 곁에 서서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는 내 보좌의 처소 내 발을 두는 처소 내가 이스라엘 족속 가운데 영원히 거할 곳이라 이스라엘 족속 곧 그들과 그 왕들이 음란히 행하며 그 죽은 왕들의 시체로 다시는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인자’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영광스러운 메시야, 그리스도라는 의미로 칭한 것과 다른 것입니다. 보통 사람, 사람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우리가 성소에 들어가면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며 영원히 거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왕들의 음란과 왕들의 시체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여기 음란의 두 가지 의미를 보면 육신적으로 실제 음란한 것도 있고, 영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세상과 짝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세상으로 기울어져 하나님을 떠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영적 간음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만 의뢰하고 사랑하며 하나님과만 교통하며 교제하여야 합니다.

본문 8절에 “그들이 그 문지방을 내 문지방 곁에 두며 그 문설주를 내 문설주 곁에 두어서 그들과 나 사이에 겨우 한 담이 막히게 하였고 또 그 행하는 가증한 일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혔으므로 내가 노하여 멸하였거니와”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이 성전의 문지방과 문설주를 바로 곁에 두고도 하나님과 통하지 않게 담을 막아 놓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도 회개하지 않고 불순종과 죄악으로 담을 막아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과 하나님과의 사이가 다 막혔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 문지방과 문설주를 담으로 막아놓고 살면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왕들의 죄악

그리고 왕들이 죽은 시체로 다닌다고 하였는데, 백성의 죽은 시체라고 하지 않고 왜 왕들의 죽은 시체라고 하였겠습니까? 요한계시록 18장 7-8절에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당시에 왕이 이렇게 많았을 리가 없는데, 왕들의 시체라 함은 왕 노릇을 하며 음란하다가 망한 자들의 시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젊
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한 교만한 사람이 바로 ‘왕들’의 실체로서, 그들은 자기가 왕이 되어 하나님은 그저 조금만 대접하며 섬기고 진짜 왕은 자기 자신인 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이러한 왕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복종하지 않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지 않으며, 자기가 왕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왕 노릇을 하는 자들이 망하여 그 시체가 성전을 더럽힌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성전을 더럽히는 왕들의 시체가 많은데, 큰 교단의 총회장 선거를 봐도 투표로 정하는 것이 성경적인데 제비를 뽑는 교단이 많이 생겼습니다. 신약에 일곱 집사를 택할 때에도 그 가운데서 택하라고 하였기 때문에 요즘도 투표를 하는 것입니다. 맛디아는 예외적으로 제비로 뽑았지만 이 외에는 제비로 뽑았다는 말이 성경에 없습니다. 투표로 뽑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지금까지 100년 동안 투표로 장로를 뽑았습니다.

또 장로들이 왕 노릇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목사는 꼼짝 못하고 장로 왕이 하자는 대로 합니다. 장로가 허락을 하면 하는 것이고 허락을 하지 않으면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다 종이어야 하는데, 서로 자기가 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니 왕을 잡아야 하는데, 우리 교회에는 왕이 없습니까? 왕을 가만히 두면 하나님의 나라가 다 없어지기 때문에 왕이 있으면 보고해서 그 왕을 잡아야 합니다. 왕을 잡기 전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고 인간 왕의 교회가 되기 때문에 일이 다 틀어집니다. 오늘날 이러한 왕들이 너무 많아서 서로 싸우고 다투다가 결국에는 제비 뽑기 등의 방법까지 나온 것입니다. 총회도 왕들이 많고 목사들 중에서도 왕들이 많습니다.

하여간 왕 노릇을 하다 망하여 그 시체로 성전을 더럽혔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음란으로 더럽힙니다. 육신의 음란, 마음의 음란으로 더럽히고 두 번째는 왕 노릇을 하다가 망한 왕의 시체로 더럽힙니다.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함께 해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

본문 9절에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인자야 너는 이 전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보여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 그 형상을 측량하게 하라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 하고 그 목전에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의 성전의 법도를 지켜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부끄러워하는 일, 회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죄를 회개 해야만 하나님의 성전을 발견할 수 있고, 또 하나님의 제단, 하나님의 법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죄를 부끄러워 한다는 말이 두 번이나 나왔는데, 과거에 진 죄를 부끄러워해야 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적 성전을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주시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본문 12절에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 산꼭대기 지점의 주위는 지극히 거룩하리라 전의 법은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시온 산 꼭대기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올라가면 점점 거룩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 법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전 생활을 하려면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합니다.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지극히 거룩한 지경에까지 나아가야만 하나님의 성전이 발견되고, 거기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회개하고 시온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제단의 법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러나 아예 올라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가르쳐줄 것이 없고, 가르쳐줘봐야 쓸 데가 없습니다. 올라가서 바로 섬기려고 해야 하나님의 제단에 대한 법을 가르쳐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시온산 정복을 위하여 올라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거룩한 지경에까지 이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제단에 대한 법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알게 해주십니다.

3. 번제단의 척수

본문 13-14절에 “제단의 척수는 이러하니라(한 자는 팔꿈치에서부터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것이라) 제단 밑받침의 고가 일 척이요 그 사면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 그 가으로 둘린 턱의 광이 한 뼘이니 이는 제단 밑받침이요 이 땅에 닿은 밑받침 면에서 아래층의 고가 이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 이 아래층면에서 이층의 고가 사 척이요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의 법이 복잡합니다. 제단은 2층으로 아래층과 2층의 고 및 제단 밑까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척수대로 건축되었습니다.

본문 15절에 “그 번제 단 위층의 고가 사 척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넷이며 그 번제하는 바닥의 장이 십이 척이요 광이 십이 척이니 네모반듯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번제하는 바닥에서 솟은 뿔이 네 개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권세를 가리킵니다. 또 번제 바닥도 장과 광의 규격이 정해진, 네모반듯한 모양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아래층의 장이 십사 척이요 광이 십사 척이니 네모반듯하고 그 밑받침에 둘린 턱의 광이 반 척이며 그 가장자리의 광이 일 척이니라 그 층계는 동을 향하게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번제단을 넓게 하여 그곳에 올라가 제사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얼마나 세밀합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이렇게 세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향인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4. 제단 봉헌식의 규례

본문 18-20절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제단을 만드는 날에 그 위에 번제를 드리며 피를 뿌리는 규례가 이러하니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를 가까이하여 내게 수종드는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너는 어린 수송아지 하나를 주어 속죄 제물을 삼되 네가 그 피를 취하여 제단의 네 뿔과 아래층 네 모퉁이와 사면 가장자리에 발라 속죄하여 제단을 정결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제단을 다 만들었기 때문에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제단에 생축, 즉 소나 양을 잡아 피를 뿌리는 규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로 인해 제단이 정결케 될 것을 가리킵니다. 특별히 ‘사독의 자손’은 제사장직을 맡은 레위 지파 중에서도 변심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족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정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비아달은 변심함으로 파멸을 당했는데, 사독은 다윗 왕 때에 끝까지 충성을 다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독의 자손을 제사장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속죄 제물의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를찌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속죄 제물의 수송아지로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리고 성소 밖에서 불사르라고 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그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성소 밖에서 번제물을 불사르라고 하신 것입니다.

본문 22절에 “다음날에는 흠 없는 수염소 하나로 속죄 제물을 삼아 드려서 그 제단을 정결케 하기를 수송하지로 정결케 함과 같이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에는 흠 없는 수염소를 속죄 제물로 삼아 피를 뿌리고 정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정결케 하기를 마친 후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흠 없는 수양 하나를 드리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흠 없는 수송아지와 흠 없는 수양 하나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예수님의 구속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본문 24-25절에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칠 일 동안은 매일 염소 하나를 갖추어 속죄 제물을 삼고 또 어린 수송아지 하나와 떼 가운데서 수양 하나를 흠 없는 것으로 갖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매일 염소 하나와 수송아지, 수양 하나를 하나님께 흠 없는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이와 같이 칠 일 동안 제단을 위하여 속제를 드려 정결케 하며 봉헌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칠 일 동안 매일 수송아지와 수염소와 양을 잡아서 제단을 정결케 하라는 것은 우리도 하나님께 매일 제사 드리는 생활을 하라는 뜻입니다. 수송아지, 수염소, 수양은 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 구속해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이 구속의 은혜에 매일 매일 감격해야 합니다. 그러면 제단이 정결케 됩니다.

본문 27절에 “이 모든 날이 찬 후 제팔일에와 그 다음에는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너희 번제와 감사제를 드릴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즐겁게 받으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제 팔 일 째에는 제단 위에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즐겁게 받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나서 제물을 잘 드리면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해봅시다. 첫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담을 쌓아놓고 산 것, 둘째는 음란, 셋째는 왕 노릇한 것, 이 세 가지 죄로 인하여 성전이 더러워졌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을 시켜 죄를 부끄러워하고 행한 모든 일을 회개시키고 성전 제단에서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서지 않으면 가르쳐봐야 쓸 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제단을 다 쌓은 다음에는 봉헌식을 하는데, 사독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에게 어린 양 하나, 수송아지 하나를 번제물로 삼아 제단 위에 피를 뿌리고 모퉁이 사면에 뿌려서 속죄하고 정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송아지를 취하여 전의 정한 처소, 곧 성소 밖에서 불사르고 다음날에는 흠 없는 수염소 하나로 속죄 제물을 삼아 제단을 정결케 하며, 또 그 다음날에는 흠 없는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하나를 드려 제사장을 위하여 소금을 쳐서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칠 일 동안 수염소 하나, 수송아지 하나, 수양 하나를 매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팔 일째가 되는 날에 제사장이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즐겁게 받으시고 너희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방향인 동쪽 문에서 하나님께서 오시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방향에 가서 하나님을 영접해야 하고 죄를 회개하며 안 뜰에 들어가야 합니다. 바깥 뜰에 있지 말고 성전 안 뜰에 들어 가야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온 산 꼭대기에 올라가야만 거룩해집니다. 그러므로 시온 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또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에스겔 42:1-20 네 방과 성전의 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네 방과 성전의 담
에스겔 42:1-20

1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2그 방들의 자리의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오십 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3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이십 척 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 4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일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 5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 6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7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이 오십 척이니 8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오십 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일백 척이며 9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 10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11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12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 13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 14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 15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16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7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8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19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오백 척이라 20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1. 제사장들이 지성물(至聖物)을 먹으며 옷을 갈아입는 네 방

본문 1-3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 북편 뜰로 가서 두 방에 이르니 그 두 방의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였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는데 그 방들의 자리의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오십 척이며 그 문은 북을 향하였고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는데 한 방의 툇마루는 이십 척되는 안뜰과 마주 대하였고 한 방의 툇마루는 바깥뜰 박석 깔린 곳과 마주 대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방 네 개가 있는데, 북편 뜰에 두 방이 있고 남편 뜰에 두 방이 있습니다. 이 방들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으며, 또 옷을 갈아 입는 방이라고 하였습니다. 북편 뜰의 두 방 중 하나는 골방 앞뜰을 향하고 하나는 북편 건물을 향하였다고 했습니다. 문이 북을 향하고 그 방 삼층에 툇마루들이 있어 그곳에서 안도 바라보고 밖도 바라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성도가 성전을 바라보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4절에 “그 두 방 사이에 통한 길이 있어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일백 척이며 그 문들은 북을 향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방과 방 사이에 서로 통하는 문이 있다는 것은 성도들이 서로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서로 통해야 하는데, 서로 통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과 담을 막고 있으면 그것은 바로 된 신앙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서로 교통하는 생활, 또 다른 사람을 이해해주는 생활, 용납하고 도와주는 생활, 사랑하며 서로 통하는 생활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남의 잘못한 것만 보고 사이를 막아놓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은 용납해주고, 또 도와주며 사랑하는 생활로 서로 통해야 합니다. 자기만 잘하고, 다른 사람은 잘못 되었고 틀렸다고 하면서 용납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감옥에 갇히는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도 막히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 상층의 방은 제일 좁으니 이는 툇마루들을 인하여 하층과 중층보다 상층이 더 줄어짐이라”고 하였습니다. 올라갈수록 방이 좁아져서 상층의 방이 제일 좁다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41장 7절에서는 올라갈수록 방이 넓어졌습니다. 에스겔 41장 7절에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웠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넓어졌다는 것은 마음이 넓어진다는 것이고, 좁아진다는 것은 좁은 길을 의미합니다.
높이 올라갈수록 길이 좁다는 것입니다. 높은 세계, 신령한 세계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걸어가려면 점점 좁은 길을 걷게 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고 몇 사람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높은 길을 걸으려 하면 점점 좁아지는 것입니다. 산과 같습니다. 산이 높아질수록 점점 좁아지지 않습니까?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집니다. 신앙의 길은 높아질수록 점점 그 길이 좁아져서 좁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같이 하던 사람이 떨어져 나가고 배반합니다. 말씀만 지켜나가면 점점 좁아집니다. 타협하지 아니하고, 신앙양심을 쓰고 말씀대로만 바로 나가면, 사람들이 배척하게 되어서 그 길이 좁아집니다.

본문 6-7절에 “그 방이 삼층이라도 뜰의 기둥 같은 기둥이 없으므로 그 상층이 하층과 중층보다 더욱 좁아짐이더라 그 한 방의 바깥 담 곧 뜰의 담과 마주 대한 담의 장이 오십 척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주 대한 담이 또 있다는 것입니다 한 방에 바깥담이 있고, 또 뜰에 가면 서로 마주 대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장이 오십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9절에 “바깥뜰로 향한 방의 장이 오십 척임이며 성전 앞을 향한 방은 일백 척이며 이 방들 아래에 동편에서 들어가는 통행구가 있으니 곧 바깥뜰에서 들어가는 통행구더라”고 하였습니다. 동편에서부터 들어가는 통행구입니다. 성전이 동향입니다. 동향은 하나님의 방향입니다. 그래서 좋은 방향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향을 향한 문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0-12절에 “남편 골방 뜰 맞은편과 남편 건물 맞은편에도 방 둘이 있는데 그 두 방 사이에 길이 있고 그 방들의 모양은 북편 방 같고 그 장광도 같으며 그 출입구와 문도 그와 같으며 이 남편 방에 출입하는 문이 있는데 담 동편 길머리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북편 뜰에 방이 두 개가 있었고, 맞은편 남편 건물에 또 두 개가 있습니다. 전부 네 개입니다. 그 방 사이에 길이 두 개 있는데, 북쪽에 있는 두 방과 남쪽에 있는 두 방이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남쪽에 있든지 북쪽에 있든지, 서로 교통하고 용납하며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좌우 골방 뜰 앞 곧 북편 남편에 있는 방들은 거룩한 방이라 여호와를 가까이 하는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거기서 먹을 것이며 지성물 곧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제물을 거기 둘 것이며 이는 거룩한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방은 제사장들이 지성물을 먹는 곳이고, 제물을 두는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지성물’은 거룩한 물건인데, 제물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제사 지내는 제물들은 거룩한 물건들입니다. 제사장은 그 방에서 소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을 먹기도 하고, 그 제물을 거기다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가면 속되게 되므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제물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 그것을 속되게 하면
그리스도께 죄를 범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거룩한 방에 두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거룩한 방에서 먹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본문 14절에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하므로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 갔다가 나올 때에 바로 바깥뜰로 가지 못하고 수종드는 그 의복을 그 방에 두고 다른 옷을 입고 백성의 뜰로 나갈 것이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장의 의복은 거룩한 옷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옷을 더럽히면 안 되기 때문에 그 방에 두었다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 입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갈 때는 거기다가 벗어놓고 다른 옷을 입고 나갔습니다. 구별한 옷인 것입니다. 이 제사장의 옷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를 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고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입지 않고서는 못 들어갑니다. 또 나갈 때 벗어놓고 나가야 된다는 것은 나가서 더럽히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언제나 구별된 생활, 그리스도의 구속을 거룩히 여기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언제나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성전의 담을 척량함

본문 15-19절에 “그가 안에 있는 전 척량하기를 마친 후에 나를 데리고 동향한 문 길로 나가서 사면 담을 척량하는데 그가 척량하는 장대 곧 그 장대로 동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북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그 장대로 남편을 척량하니 오백 척이요 서편으로 돌이켜 그 장대로 척량하니 오백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안에 있는 전 측량하기를 마치고 나가서 담을 측량하였습니다. 척량하는 장대로 측량하니, 동서남북이 각각 다 오백 척이었습니다. 담의 척수가 다 맞았습니다.

본문 20절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구별되어야 합니다.
세상이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또 안에 있는 것이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별하지 못하고 섞이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교회도 세상으로 나가면 안됩니다. 교회에서 세상 운동,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나가서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예수님의 이름으로 정치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입니다.
일제시대 때 교회에서 연보로 비행기를 헌납하고 전쟁 물자를 바치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평화 연보를 하면 어떻겠는가를 기도해봤습니다. 그리고 예배당이 아닌 마당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도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비행기를 헌납한 것도 전쟁에서 이기자고 한 것이고, 교회 종(鐘)이며 밥그릇을 가져다 바친 것도 이기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도 정치의 일부분입니다.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연보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것은 찬성이고, 나도 앞으로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 이름으로 예배당에서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광고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고 천당 가는 것만 해야 합니다. 적극적으로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좋습니다. 대통령이나 정부를 위해 기도해주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정치 운동이나 세상 운동을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을 막아놓은 것입니다. 담을 막아놓고, 담 안은 거룩하고 담 바깥은 속된 것입니다. 담 안에서 담 바깥의 일을 하면 안 됩니다. 담 안은 교회이고, 담 밖은 세상입니다. 담 안에서는 거룩한 일과 영적인 일을 하고, 담 밖에서는 세상 일과 속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구별해서 분명히 해놓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지 못합니다.

에스겔 41:1-26 성소 척량(尺量)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소 척량(尺量)
에스겔 41:1-26

1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육척이요 저편 두께도 육 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 2그 문통의 광이 십 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오 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오 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사십 척이요 그 광이 이십 척이며 3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이 척이요 문통이 육 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이 각기 칠 척이며 4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 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 5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6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 7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와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 8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 척인데 9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오 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 10전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 11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오 척이더라 12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이요 장이 구십 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오 척이더라 13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일백 척이요 14전 전면의 광이 일백 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15그가 뒤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일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 16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 (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17문통 위와 내관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 18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 19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20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 21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22곧 나무 제단의 고가 삼 척이요 장이 이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 23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24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25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 26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

1. 성소 척량

본문 1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성소에 이르러 그 문 벽을 척량하니 이편 두께도 육 척이요 저편 두께도 육 척이라 두께가 이와 같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데리고 성소에 가서
문 벽의 두께를 척량하였습니다. 그 두께는 육 척이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그마치 약 3m나 되는 것입니다(1척은 53cm로 6척은 3.18m). 그렇게 두껍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성전 건축도 이렇게 견고하게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문 벽의 두께가 육척이면 얼마나 두껍습니까? 바깥에서 쳐들어오려고 해도 못 들어오고, 안에서 나가려고 해도 못 나가는 견고한 성전입니다.

본문 2절에 “그 문통의 광이 십 척이요 문통 이편 벽의 광이 오척이요 저편 벽의 광이 오 척이며 그가 성소를 척량하니 그 장이 사십 척이요 그 광이 이십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통은 문의 폭인데, 문이 말하자면 십 척, 즉 5m가 넘는다는 것입니다. 성소의 문을 넓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으로 들어오게 하였습니다.
우리의 영적 성전 문도 이렇게 넓어야 합니다. 마음 문을 넓혀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바로 세우고 살려나가는 일을 할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아량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본문 3절에 “그가 안으로 들어가서 내전 문통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이 척이요 문통이 육 척이요 문통의 벽의 광이 각기 칠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내전은 지성소를 가리키는데, 그곳에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에스겔은 들어가지 못하고 천사만 들어가서 척량하였습니다. 내전의 문통은 육 척으로 외전의 문통 십척보다 좁습니다. 그리고 벽의 두께도 이 척으로 외전의 벽 두께 육척보다 얇습니다. 또 벽의 폭도 칠 척으로 외전 벽의 십 척보다 좁아졌습니다. 여기서 문통이 좁아진 것은 영적 지성소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벽은 얇아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거리가 가까운데, 이것은 성소에 들어간 사람에게 지성소가 가까워진 것을 뜻합니다.

본문 4절에 “그가 내전을 척량하니 장이 이십 척이요 광이 이십척이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지성소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성소는 폭이 이십 척, 길이가 사십 척으로 큰 직사각 모양입니다. 지성소는 그보다 작고, 장과 광, 즉 가로 세로가 같은 정방형으로, 법궤가 있는 가장 은밀한 곳입니다.

2. 전(殿)의 삼면에 있는 골방들

골방의 층 수

본문 5-6절에 “전의 벽을 척량하니 두께가 육 척이며 전 삼면에 골방이 있는데 광이 각기 사 척이며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 그 삼면 골방이 전 벽 밖으로 그 벽에 의지하였고 전 벽 속은 범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성소의 벽은 두께가 육 척으로 두꺼워서 원수가 침입하지 못하며, 또 안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성소 생활이 은밀한 생활임을 가리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골방은 삼층인데 골방 위에 골방이 있어 모두 삼십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전과 접한 골방이 많은 것은 언제나 영적으로 골방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은밀하게 골방 생활을 하는 성도가 참 성도입니다. 골방을 잃어버리고 골방 생활을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또 골방에 층수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1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2층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고, 3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1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이 많고, 2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은 그보다 적으며, 3층 골방 생활하는 사람은 더욱 적습니다. 우리는 골방이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접해 있는 것처럼, 성소생활을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힘쓰며 영적 골방 생활을 하여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골방 생활을 하려면 예배당 근처에 사는 것이 좋습니다. 성전에 붙어사는 생활이 하나님께 복 받는 생활입니다. 여기서 삼은 하나님의 수요, 삼십은 만수입니다. 성도는 점점 높은 골방으로 올라가는 생활, 은밀한 골방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골방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시고, 갚아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은밀한 골방에서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들어주시고, 보아주시며, 갚아 주십니다. 일층 골방에서 이층 골방으로, 이층 골방에서 삼층 골방으로 한 계단씩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내려가기도 합니다. 올라가야겠는데, 가재처럼 뒷걸음을 쳐서 내려가다가 아예 골방을 잃어버리고 세상으로 나가고 마는 것입니다. 불쌍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골방으로 들어가야 하고, 또 골방에 들어가면 차츰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성전을 떠나지 않아야합니다.

골방의 규모

본문 7절에 “이 두루 있는 골방이 그 층이 높아갈수록 넓으므로 전에 둘린 이 골방이 높아갈수록 전에 가까와졌으나 전의 넓이는 아래 위가 같으며 골방은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가게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골방이 층이 높아갈수록 넓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아래층보다 위층이 더 넓다는 것입니다. 세상 집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좁습니다. 그런데 골방은 아래층보다 이층이 더 넓고, 이층보다 삼층이 더 넓습니다. 이것은 영적 세계가 올라갈수록 넓어짐을 뜻합니다. 올라갈수록 신앙의 세계가 넓어지고, 올라갈수록 믿음을 쓰는 것이 넓어집니다. 올라갈수록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모든 사람을 포섭할 수 있는 너그러운 성품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님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또 골방에 높이 올라갈수록 전이 더 가깝습니다. 아래층보다는 이층이 더 가깝고, 이층보다는 삼층이 하나님의 성전에 가깝습니다. 내려갈수록 전이 멀어집니다. 신령한 세계에 올라간 사람은 늘 성전에서 마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려가는 사람은그 마음이 성전에서 멀어집니다. ‘아래층에서 중층으로 위층에 올라 가게 되었더라’고 하였는데, 영적 세계는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례로 단계를 밟지 않고 뛰어넘어갈 수 없습니다.
신앙은 1단계에서 2단계로 올라가는 연단을 받고, 2단계에서 또 많은 연단을 받아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또 3단계에서 많은 시련을 받으면 그 이상의 단계로 올라갑니다. 많은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믿음을 지켜야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계단을 밟지 않고 위층으로 올라갈 수 없는 것처럼, 신앙은 단계가 있습니다. 믿음은 갑자기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연단을 받고 많은 시련을 겪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한 계단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심을철 조사와 이기선 목사님은 감옥에서 여러 해 동안 연단을 많이 받았습니다. 홍 조사는 그 당시 감옥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심을철 조사를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을철 조사와 같이 자기도 감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몇 십 년 고난을 받은 사람과 고난을 받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많습니다. 갑자기 40일 금식 기도를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금식 기도 며칠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는데, 어림도 없습니다. 갑자기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씩 조금씩, 여러 가지 연단을 받으면서 올라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힘쓰는 것이 있어야 합니
다. 환난을 많이 겪고, 시험을 많이 통과해야 합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보니 전 삼면의 지대 곧 모든 골방 밑 지대의 고가 한 장대 곧 큰 자로 육 척인데 전을 의지한 그 골방 바깥벽 두께는 오 척이요 그 외에 빈터가 남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전 지대와 골방 지대의 높이가 같고, 골방 벽 두께는 오 척으로 두껍께 하였습니다. 이렇게 벽을 두껍게 한 것은 성전 안을 은밀하게 하고 외부의 침략을 막으며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전도 은밀하게 하고 견고하게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빈터가 남았으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성전 생활하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함을 뜻합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꽉 차있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전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골방 삼면에 광이 이십 척되는 뜰이 둘려 있었는데, 이렇게 넓은 뜰을 둔 것은 성전 생활하는 자가 여유 있게 안식할 수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1절에 “그 골방 문은 다 빈터로 향하였는데 한 문은 북으로 향하였고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으며 그 둘려 있는 빈터의 광은 오척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골방 문이 다 어디로 났습니까? 빈터로 향하였습니다. 한적한 곳으로 향하였습니다. 한 문은 북으로, 한 문은 남으로 향하였습니다. 골방 문이 다 빈터로 향한 것은 골방 생활하는 자가 (모든 것에서 눈을 떼고 마음을 비워) 한적한 곳을 바라보기 위함입니다.

3. 뜰 뒤에 있는 별관과 기타의 척수

본문 12절에 “서편 뜰 뒤에 건물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이요 장이 구십 척이며 그 사면 벽의 두께가 오 척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서편 뜰 뒤에 별관이 있는데, 광이 칠십 척, 장이 구십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성전보다 넓습니다. 성소는 장이 사십 척, 광이 이십 척이었으며, 내전의 장과 광은 각각 이십 척이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 성전에는 없는 것으로, 장차 이방인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전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또 서편 뜰과 그 건물과 그 벽을 합하여 장이 일백 척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뜰을 척량하는 것입니다.

본문 14-15절에 “전 전면의 광이 일백 척이요 그 앞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 그가 뒤뜰 뒤에 있는 건물을 척량하니 그 좌우편 다락까지 일백 척이더라 내전과 외전과 그 뜰의 현관과”라고 하였습니다. 전 전면의 폭도 일백 척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동향한 뜰의 광도 그러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일백 척입니다. 그리고 뒤뜰에 있는 건물과 좌우편 다락까지 다 일백 척입니다. 성전은 이렇게 척수에 맞게 건축되었습니다.

본문 16-17절에 “문통 벽과 닫힌 창과 삼면에 둘려 있는 다락은 문통 안편에서부터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웠고(창은 이미 닫히었더라) 문통 위와 내관과 외전의 사면 벽도 다 그러하니 곧 척량한 대소대로며”라고 하였습니다. ‘널판으로 가리웠고’라고 하였는데, 외전과 내전 사면 벽과 현관과 다락, 문통 안팎을 땅에서 창까지 널판으로 가리었다는 것입니다.

4. 성전의 내부 장식과 제단

본문 18절에 “널판에는 그룹들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두 그룹 사이에 종려나무 하나가 있으며 매 그룹에 두 얼굴이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널판에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번갈아 가며 새겼습니다.
이것은 성전을 아름답고 값지게 꾸미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성전도 이와 같이 값지고 아름답게 건축해나가야 합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세상에서 성도가 승리적으로 신앙 생활을 해나가야 함을 가리킵니다. 그래야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될 수 있습니다. ‘그룹’은 천사를 가리키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영적 성전을 보호하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9-20절에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라 이편 종려나무를 향하였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 저편 종려나무를 향하였으며 온 전 사면이 다 그러하여 땅에서부터 문통 위에까지 그룹들과 종려나무들을 새겼으니 성전 벽이 다 그러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룹들에게 두 얼굴이 있는데, 하나는 사람의 얼굴이고 하나는 어린 사자의 얼굴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지혜, ‘사자’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성도를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며, 성도로 하여금 모든 마귀를 이기게 하실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하여 영적 성전을 잘 건축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1-22절에 “외전 문설주는 네모졌고 내전 전면에 있는 식양은 이러하니 곧 나무 제단의 고가 삼 척이요 장이 이 척이며 그 모퉁이와 옆과 면을 다 나무로 만들었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앞의 상이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나무 제단’은 진설병 상(床)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겔 44:16). 이것은 장래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나무에 달려 속죄 제사를 드려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23-25절에 “내전과 외전에 각기 문이 있는데 문마다 각기 두 문짝 곧 접치는 두 문짝이 있어 이 문에 두 짝이요 저 문에 두 짝이며 이 성전 문에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는데 벽에 있는 것과 같고 현관 앞에는 나무 디딤판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외전과 내전의 출입문들은 문을 두 짝씩 달았는데, 그 문짝에는 그룹과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나무 디딤판’은 자신이 희생 제물이 되어 가면서 하나님의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희생하여 디딤판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거기에 올라서서 영적 성전을 건축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현관 좌우편에는 닫힌 창도 있고 종려나무도 새겼고 전의 골방과 디딤판도 그러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에 디딤판과 종려나무, 즉 희생과 승리로써 들어갈 것을 가리킵니다.

2017년 7월 14일 금요일

에스겔 40:1-49 성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에스겔 40:1-49

1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 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2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3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 4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 5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
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 6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 7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 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 8그가 또 안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9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 척이요 그 문벽은 이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 10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11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십삼 척이며 12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 13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이십오 척인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 14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15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이며 16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 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 17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18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19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 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 20그가 바깥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21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22그 창과 현관의 장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23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 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4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 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25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26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27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28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29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0그 사면 현관의 장은 이십오 척이요 광은 오 척이며 31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2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33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4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5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36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37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38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39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 40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41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 42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 척 반이요 광이 일 척 반이요 고가 일 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 43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넒이 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 44안 문안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45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 들의 쓸 것이요 46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 47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광
이 일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 48그가 나를 데리고 전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오척이요 저편도 오 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삼 척이요 문 저편도 삼척이며 49그 현관의 광은 이십 척이요 장은 십일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

1. 이상 중에 성읍 형상 같은 것을 보여주심

본문 1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오 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사 년 정월 십 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십 오 년’은 에스겔이 바벨론에 제2차 포로로 잡혀간 때로부터 25년 뒤를 말합니다. 에스겔이 사로잡힌 지 11년 만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고, 그 후 14년이 지나서 정월 십 일에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라고 하였는데,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가서 바벨론에 있는 중에 이스라엘 땅으로 간 것은 영으로 간 것입니다. 마음으로 간 것이고, 몸은 바벨론에 있습니다.

본문 2절에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극히 높은 산’은 신령한 시온 산을 가리킵니다(욜 2:32; 히 12:22). 우리가 날마다 영적 시온산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는 것은 시온성과 같은 교회라고 하였는데, 성도의 영적 생활, 교회 생활을 가리킵니다. 또 성전의 규모가 성읍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은 앞으로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게 될 것과 신약시대에 교회와 신령한 이스라엘이 건설될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3절에 “나를 데리시고 거기 이르시니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 하나가 손에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문에 서서 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양이 놋같이 빛난 사람’은 천사를 가리킵니다. 놋은 견고함과 공의와 심판을 상징합니다. 손에는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삼 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목수들이 건축할 때 쓰는 먹줄과 자와 같은 것들입니다. 삼 줄은 넓은 공간을 재기 위한 것이고, 장대는 짧은 공간을 재기 위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 사람이 내게 이르되 인자야 내가 네게 보이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며 네 마음으로 생각할찌어다 내가 이것을 네게 보이려고 이리로 데리고 왔나니 너는 본 것을 다 이스라엘 족속에게 고할찌어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그 확실한 진리를 모든 백성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령한 세계를 확실히 알고 전해야 합니다.

2. 성전 바깥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

본문 5절에 “내가 본즉 집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더라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그 장이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그 담을 척량하니 두께가 한 장대요 고도 한 장대며”라고 하였습니다. 바깥 사면으로 담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입니다. 즉, 세상의 속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속된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혼합해나가면 신령한 성전이 건축되어 나갈 수 없습니다. 에스겔 42장 20절에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 척씩이더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영적 생활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담을 쌓고 속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담을 다 무너뜨려서 속된 것이 성도 안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담으로 막아놓고, 깨끗하고 신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장대가 얼마라고 하였습니까?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라고 하였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까지입니다(45cm). 그런데 여기는 손바닥 넓이를 더한 자입니다. 장대의 길이는 육 척(6규빗)입니다. 담의 두께와 고는 한 장대이므로, 6규빗이 됩니다. 또 고도 한 장대입니다. 즉, 담 두께가 여섯 자입니
다. 담을 이렇게 두껍게 쌓은 것은 다른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성도가 은밀한 생활을 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견고한 담을 쌓아서 더러운 것과 죄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은밀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신령한 성전이고 이상적인 성전입니다. 또 이러한 생활을 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동향한 문에 이르러 층계에 올라 그 문통을 척량하니 장이 한 장대요 그 문 안통의 장도 한 장대며”라고 하였습니다. ‘동향한 문’은 동문으로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문통’은 문지방으로 문 전체를 가리킵니다. 문통과 문 안통이 한 장대로 같습니다.

본문 7절에 “그 문간에 문지기 방들이 있는데 각기 장이 한 장대요 광이 한 장대요 매방 사이 벽이 오 척이며 안 문통의 장이 한 장대요 그 앞에 현관이 있고 그 앞에 안문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복도 좌우편에 세 개씩 문지기 방이 있습니다. 문지기 방들은 성전을 경비하는 레위인들이 거처하는 방들입니다. 문지기 방들의 척수는 장광이 한 장대씩이고, 매 방 사이 벽은 오 척씩입니다. 오척은 2.65m입니다. 방과 방 사이의 벽을 오 척으로 두껍게 한 것은 그 방을 은밀하게 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벽이 얇으면 서로 말이 통할 것 아닙니까?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는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을 살피고, 성전 안팎을 청소하며, 악한 자나 도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직책입니
다. 하나님의 문지기로서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그가 또 안문의 현관을 척량하니 한 장대며 안문의 현관을 또 척량하니 팔 척이요 그 문벽은 이 척이라 그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안문의 현관의 치수가 8절과 9절이 서로 다른데, 8절은 현관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잰 길이이고, 9절에서 팔 척이라는 것은 바깥뜰로 들어가는 중간에 있는 안문 벽의 길이 2규빗을 합한 치수입니다. 그 문벽은 이 척이고, 문의 현관이 안으로 향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그 동문간의 문지기 방은 좌편에 셋이 있고 우편에 셋이 있으니 그 셋이 각각 한 척수요 그 좌우편 벽도 다 한 척수며 또 그 문통을 척량하니 광이 십 척이요 장이 십삼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동문간’은 문통과 안 문통 사이를 가리킵니다. 그 사이 좌우편에 문지기 방이 셋씩 있고, 문지기는 6명입니다. ‘문통’은 문간의 통로로, 광(폭)이 10척으로 5.3m이고, 장(길이)가 13척으로 6.9m입니다. 이 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요 10:1-18). 성도가 예수님을 통하여 신령한 영적 성전에 들어갈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12절에 “방 앞에 퇴가 있는데 이편 퇴도 일 척이요 저편 퇴도 일 척이며 그 방은 이편도 육 척이요 저편도 육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퇴’는 난간으로, 문지기가 감시하는 곳입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그 문간을 척량하니 이 방 지붕 가에서 저 방 지붕 가까지 광이 이십오 척인데 방문은 서로 반대되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문간을 척량하니 광이 25척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문간의 넓이가 25척인 것은 성도 간에 거리를 너무 가까이 해도 안 되고 너무 멀리 해도 안 되며, 척수에 맞추어 거리를 바로 두고 살아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또 방문은 서로 반대가 되게 했습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이야기하기가 좋습니다. 그러므로 이야기하지 말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주 보고 있으면 이야기하느라 기도가 되겠습니까? 성도가 사랑은 해야 되겠지만, 서로 마주 보고 이야기하면 기도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의지하지 말고 반대되게 앉아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향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4-16절에 “그가 또 현관을 척량하니 광이 이십 척이요 현관 사면에 뜰이 있으며 바깥 문통에서부터 안문 현관 앞까지 오십 척이며 문지기 방에는 각각 닫힌 창이 있고 문 안 좌우편에 있는 벽사이에도 창이 있고 그 현관도 그러하고 그 창은 안 좌우편으로 벌여 있으며 각 문벽 위에는 종려나무를 새겼더라”고 하였습니다. 문지기의 방들이 있는데, 거기에 창이 있습니다. 창은 빛을 받아들이는 곳인데, 교회는 성경으로 밝혀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와 영감으로 밝혀나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 빛인 성경말씀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혀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간문벽’은 안문 벽을 가리키는데, 그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습니다. ‘종려나무’는 승리를 상징하는데, 신령한 성전은 승리함으로 써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벽 위에는 무엇을 새겼다고 했습니까?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승리의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본문 17-19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뜰에 들어가니 뜰 삼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그 박석 깔린 땅 위에 여러 방이 있는데 모두 삼십이며 그 박석 깔린 땅의 위치는 각 문간의 좌우편인데 그 광이 문간 길이와 같으니 이는 아래 박석 땅이며 그가 아래 문간 앞에서부터 안뜰 바깥 문간 앞까지 척량하니 그 광이 일백 척이며 동편과 북편이 일반이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천사가 에스겔에게 보여 준 이상적인 성전인 동시에 영적 성전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천사가 에스겔을 바깥뜰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박석 깔린 땅’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요새로 말하면 타일을 깔아놓은 것과 같습니다. 타일을 깔아놓으면 깨끗하고, 흙이 묻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 성전 생활은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깨끗한 발걸음으로 해야 합니다. 즉, 성도가 죄를 회개하고 깨끗한 발로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더러운 것을 묻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마땅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박석 깔린 땅을 밟고 다니는 것처럼 더러운 것이 묻지 않는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전 바깥들에만 왔다 갔다 하는 성도가 있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성도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성전 밖 마당만 밟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멀찌감치 쳐다보며 돌아다니는 성도입니다. 이런 성도는 이방 사람들에게 내어주었
다고 하였습니다(계 11:1-2).

본문 20-22절에 “그가 바깥뜰 북향한 문간의 장광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문지기 방이 이편에도 셋이요 저편에도 셋이요 그 벽과 그 현관도 먼저 척량한 문간과 같으며 그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문간을 척량하니 장이 오십 척, 광은 이십 오 척입니다. 그 다음에 ‘창과 현관의 장, 광과 종려나무가 다 동향한 문간과 같으며’라고 하였는데, 척수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이쪽으로 가나 저쪽으로 가나 문간이 같습니다. 동문간이나 북문간이나 척수가 다 같고, 문지기 방, 벽, 현관, 창의 척수가 같습니다. 척수가 모두 같다는 것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은 다 같다는 뜻입니다. 신령한 성전에서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다 같습니다. 척수가 어떤 것은 길고, 어떤 것은 짧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길, 또 영적 성전 생활을 하는 길은 모두 척수가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같이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같은 신앙을 지켜야 하며,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종려나무를 새겼다고 하였는데, 종려나무는 승리 생활을 가리킵니다. 성도는 항상 어디에 가나 죄와 싸워 이기는 승리의 생활, 마귀와 싸워 이기는 승리의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층계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일곱 층계’는 점점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일곱 층계는 신령한 영적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1계단에서 2계단으로, 2계단에서 3계단으로, 점점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신앙의 계단이 점점 올라가야지, 늘 아래 계단에만 있으면 안 됩니다. 1계단에서 2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2계단에서 3계단으로 올라가야 하고, 4계단에서 5계단으로, 5계단에서 6계단으로, 7계단에서 8계단으로 계속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지 못하고, 항상 그 아래만 있으면 안됩니다.

본문 23-24절에 “안뜰에도 북편 문간과 동편 문간과 마주 대한 문간들이 있는데 그가 이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그가 또 나를 이끌고 남으로 간즉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 벽과 현관을 척량하니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라고 하였습니다.
동편 문간, 남편 문간, 북편 문간 다 척수가 같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동서남북 어디서 섬기든지 같고,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든지 하나님의 성전으로 들어가는 방향은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그 문간과 현관 좌우에 있는 창도 먼저 말한 창과 같더라 그 문간의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창도 같습니다. 성전에 창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와 영감의 빛을 항상 비추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진리와 영감의 빛을 언제나 비추는 생활을 해야지, 캄캄한 흑암 속에서 살면 안됩니다. 창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처럼, 진리와 영감의 빛이 우리의 심령 속에 항상 있어서 그 빛을 내보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또 그리로 올라가는 일곱 층계가 있고 그 안에 현관이 있으며 또 이편, 저편 문벽 위에 종려나무를 새겼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일곱 층계가 있다는 것은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는 성도가 승리의 생활을 해야 할 것을 뜻합니다.

3. 성전 안뜰과 문 입구의 모든 것

본문 27-31절에 “안뜰에도 남향한 문간이 있는데 그가 남향한 그 문간에서 맞은편 문간까지 척량하니 일백 척이더라 그가 나를 데리고 그 남문으로 말미암아 안뜰에 들어가서 그 남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도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사면 현관의 장은 이십 오 척이요 광은 오 척이며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안뜰로 들어가는 세 개의 문은 바깥문과 구조, 크기, 장식까지도 모두 같습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 사방에 있는 모든 인류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이 같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문으로 가려면 여덟 계단을 올라가야 합니다. 또 문 벽에 종려나무를 새겼습니다. 어디에 가나 종려나무입니다. 이것은 성도가 북쪽에서도 승리, 남쪽에서도 승리, 항상 승리 생활을 해야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깥뜰에서 안뜰로 들어가는 문으로 가려면 여덟 계단을 올라서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일곱 계단보다 더 올라가는, 즉 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총 계단의 수는 바깥뜰 7개와 안뜰 8개를 합하여 모두 15개입니다.

본문 32-37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안뜰 동편으로 가서 그 문간을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오 척이며 그 문지기방과 벽과 현관이 먼저 척량한 것과 같고 그 문간과 그 현관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에 이르러 척량하니 척수는 장이 오십 척이요 광이 이십 오 척이며 그 문지기 방과 벽과 현관이 다 그러하여 그 좌우에도 창이 있으며 그 현관이 바깥뜰로 향하였고 그 이편, 저편 문벽 위에도 종려나무를 새겼으며 그 문간으로 올라가는 여덟 층계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동편 문간 척수와 북편 문간의 척수가 같고, 문지기의 방과 벽과 현관과 창의 척수도 같습니다. 또 언제나 창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신령한 성전에는 어디로 들어가든지 다 같은 방법과 진리로 들어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항상 진리와 영감의 빛이 우리 속에 있어서 언제나 밝혀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또 이편, 저편 벽에도 종려나무를 그렸습니다. 언제나 승리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전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하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을 찾아갈 때에 성전 밖 마당만 밟는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지성소에까지 들어가는 신앙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승리의 생활을 하라는 것과 진리와 영감의 빛이 있어야 할 것을 늘 생각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본문 38-39절에 “그 문벽 곁에 문이 있는 방이 있는데 그것은 번제물을 씻는 방이며 그 문의 현관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그 위에서 번제와 속죄제와 속건제의 희생을 잡게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성문 이편에 상 둘이 있고, 성문 저편에 상 둘이 있는데, 그 위는 번제, 속죄제, 속건제의 제물을 잡는 곳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항상 속죄제와 번제와 속건제를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을 가리킵니다. 제물로 드린 소나 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제물이 되실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늘 감사하여야겠습니다.

본문 40-41절에 “그 북문 바깥 곧 입구로 올라가는 곳 이편에 상 둘이 있고 문의 현관 저편에 상 둘이 있으니 문 곁 이편에 상이 넷이 있고 저편에 상이 넷이 있어 합이 여덟 상이라 그 위에서 희생을 잡는 소용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문 곁 한 편에 상 넷씩, 양편에 여덟 개의 상은 희생을 잡는 곳으로, 성막과 솔로몬 성전에는 없는 곳입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성도들이 많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리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신 희생이 고귀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남쪽에 상이 넷씩, 여덟 개가 있습니다.

본문 42절에 “또 다듬은 돌로 만들어서 번제에 쓰는 상 넷이 있는데 각 장이 일 척 반이요 광이 일 척 반이요 고가 일 척이라 번제의 희생을 잡을 때에 쓰는 기구가 그 위에 놓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번제에 쓰는 상의 길이가 일 척 반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척은 팔꿈치에서 손끝까지에 손바닥 하나를 더한 길이로, 약 2자입니다.
그러므로 일 척 반은 약 3자 정도 됩니다. 번제에 쓰는 상이 넷이 있는데, 각 사방의 길이가 3자이고, 높이는 2자입니다. 또 다듬은 돌이 네 개 있는데, 그 위에는 제사하는 기구를 놓았습니다. 제사하는 기구도 거룩한 상에 놓았다가 사용하였습니다.

본문 43절에 “현관 안에는 길이가 손바닥 넓이만한 갈고리가 사면에 박혔으며 상들에는 희생의 고기가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갈고리는 희생제를 드리기 위하여 동물을 죽이거나 관련한 준비를 할 때에 그것을 매달아놓기 위한 것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되실 것을 가리킵니다.

본문 44-46절에 “안 문안 안 뜰에는 방 둘이 있는데 북문 곁에 있는 방은 남으로 향하였고 남문 곁에 있는 방은 북으로 향하였더라 그가 내게 이르되 남향한 이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요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의 쓸 것이라 이들은 레위의 후손 중 사독의 자손으로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가 수종드는 자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안뜰에 방이 둘 있습니다. 남향한 방은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들이 쓰고 북향한 방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이 쓰는데, 특별히 사독의 자손이 사용했습니다. 제사를 드릴 때 수종드는 일은 원래 아론의 후손들에게 맡겨진 것이었으나,
다윗 왕 때에 와서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 계열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 계열로 제사장의 직무가 양분되었습니다. 그 후에 솔로몬 왕은 아도니야를 도와 반역에 공모한 아비아달 제사장을 폐하고, 사독과 그 자손만이 제사장 직무를 담당케 하였습니다(왕상 1:7-8,2:26-27). 사독의 자손은 변절함이 없이 끝까지 충성한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로 제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제단을 지키는 제사장들이 북향한 방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제단이 북쪽에 있기 때문입니다. 북쪽에 하나님의 제단이 있기 때문에 제단을 사용하는 방은 북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제단을 볼 수있습니다. 우리가 성전과 제단을 잘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하고, 언제나 제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별히 사독의 자손처럼 하나님께 끝까지 변함이 없이 충성하여야 합니다. 성전을 수직하는 제사장의 위치와 제단을 수직하는 제사장의 위치가 서로 따로 있습니다. 여기서 사독의 자손을 특별히 기록한 것은 하늘나라에 가도 반열이 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계 7:4-8). 신앙 생활을 잘하고 믿음을 지킨 반열대로입니다. 믿음 지킨 반열대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 진리의 말씀을 지킨 그대로 하늘나라에 가면 각각 자기 반열이 있습니다.

본문 47절에 “그가 또 그 뜰을 척량하니 장이 일백 척이요 광이 일백 척이라 네모 반듯하며 제단은 전 앞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성전 밖에 뜰이 있는데, 뜰의 장광은 일백 척으로 네모 반듯합니다. 제단은 마당에 있습니다. 여기서 희생의 제물을 태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희생의 제물이 되셨고, 또 우리도 희생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롬 12:1).

4. 성전 현관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

본문 48절에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 현관에 이르러 그 문의 좌우 벽을 척량하니 광이 이편도 오 척이요 저편도 오 척이며 두께가 문 이편도 삼 척이요 문 저편도 삼 척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현관벽을 척량하였는데, 광이 이편도 오 척 저편도 오 척이고, 두께는 이편도 삼 척 저편도 삼 척입니다. 상당히 두껍게 해놓았습니다. 삼척이면 1m 80cm 정도입니다. 보통 규빗은 팔꿈치부터 손끝까지인데 이를 50cm로 보고, 척은 규빗보다 손바닥 하나를 더한 것으로 한10cm를 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자는 60cm 정도 되는 것입니다.
벽을 두껍게 한 이유는 바깥과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얇으면 소리가 들려올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 소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 소리가 속에 들어오면, 하나님 앞에 바른 제물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시장이 왔다 갔다 하고, 집이 왔다 갔다 하고, 기도원도 왔다 갔다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벽을 두껍게 하지 못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심령 속에 은밀한 골방을 만들어서 세상 것이 우리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49절에 “그 현관의 광은 이십 척이요 장은 십 일 척이며 문간으로 올라가는 층계가 있고 문벽 곁에는 기둥이 있는데 하나는 이편에 있고 하나는 저편에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현관의 장은 십 일 척이라고 하였는데, 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요 10: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야만 신령한 성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에 올라가는 층계는 성도가 신앙 생활을 할 때에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또 문벽 곁에는 기둥 둘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열왕기상 7장 21-22절에 “이 두 기둥을 전의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의 기둥을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역이 마치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 앞에도 큰 기둥 둘을 세웠습니다. 큰 기둥 우편의 이름은 야긴, 좌편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성전의 두 개의 기둥은 신약시대 하나님의 교회에도 기둥이 될 만한 사람들이 있을 것을 가리킵니다. 
갈라디아서 2장 9절에 보면 초대교회 때에는 야보고, 게바, 요한이 기둥입니다. 기둥은 신앙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으며, 하나님의 일을 잘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 기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건들건들하면서 성전을 넘어뜨리면 기둥 자격이 없습니다. 아무리 풍파가 오고 환난이 와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견고하게 서서 성전 기둥의 역할을 잘해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