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혜사 성령이 임함
사도행전 2:1-21
사도행전 2:1-21
2:1 마침내 오순절 날이 이르렀을 때에 그들이 모두 함께 한 곳에 모여 있었다.
2:2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우고,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이 나타나서 그들 각 사람 위에 임하니,
2:4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에서 와 머물고 있었는데,
2:6 이런 소리가 나자 큰 군중이 모여들어 소동하였으니,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각각 자신들의 본국 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2:7 그들이 놀라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아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2:8 그런데 우리 자신이 각각 태어난 곳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2:9 우리는 바대 사람들과 메데 사람들과 엘람 사람들이고,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2:10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그리고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며, 로마에서 온 방문자들,
2:11 곧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크레타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우리 자신들의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2:12 그들 모두가 놀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였고,
2:13 다른 이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라고 조롱하며 말하였다.
2:14 그러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이들아, 너희에게 이것을 알게 하고자 하니,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2:15 이 사람들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니, 지금은 오전 아홉 시이기 때문이다.
2:16 오히려 이 일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줄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2:18 그 날들에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줄 것이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놀라운 일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움으로 변하고, 달이 피로 변할 것이다.
2:21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2:2 하늘로부터 갑자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던 집안 전체를 가득 채우고,
2: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진 것들이 나타나서 그들 각 사람 위에 임하니,
2:4 그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성령께서 그들에게 말하게 하시는 대로 다른 방언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에서 와 머물고 있었는데,
2:6 이런 소리가 나자 큰 군중이 모여들어 소동하였으니,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각각 자신들의 본국 말로 들었기 때문이다.
2:7 그들이 놀라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보아라,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2:8 그런데 우리 자신이 각각 태어난 곳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된 일인가?
2:9 우리는 바대 사람들과 메데 사람들과 엘람 사람들이고, 메소포타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2:10 브루기아, 밤빌리아, 이집트, 그리고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며, 로마에서 온 방문자들,
2:11 곧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자들과 크레타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 일들을 우리 자신들의 말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다."
2:12 그들 모두가 놀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였고,
2:13 다른 이들은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라고 조롱하며 말하였다.
2:14 그러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말하였다. "유대 사람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이들아, 너희에게 이것을 알게 하고자 하니,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2:15 이 사람들은 너희가 생각하는 것처럼 술에 취한 것이 아니니, 지금은 오전 아홉 시이기 때문이다.
2:16 오히려 이 일은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지막 날들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줄 것이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하고,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2:18 그 날들에 내가 내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줄 것이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2:19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놀라운 일들과 아래로 땅에서는 표적들을 나타낼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자욱한 연기이다.
2:20 주님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움으로 변하고, 달이 피로 변할 것이다.
2:21 그러나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1. 보혜사 성령의 본질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보혜사 성령이 오심
예수님 승천 이후,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예루살렘을 열흘간 떠나지 않고 기도를 했습니다. 열흘 후 오순절 날이 임했는데 오순절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셨다고 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이 임하심은 예수님 탄생과 같은 아주 큰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성령은 구약과 신약에 늘 임하셨지만 여기 나온 성령은 예수님이 가신 뒤에 오시는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 16:7에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승천하셔야만 보혜사가 임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는 보혜사 성령이 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과 그 전 구약시대에나 십자가 이전에 계셨던 성령은 다 같은 성령이십니다. 그런데, ‘보혜사’라는 뜻은 대언자라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성령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은 구속의 완성이신데, 그 십자가의 구속 완성을 대언하시는 성령이십니다. 구속 완성의 전에는 완성된 진리를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이 오실 수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 구속을 완성시키셨기에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완성된 진리를 대언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완성된 진리를 가지고 임하셔서 역사하십니다. 이것이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오셔서 영원히 거하심
오순절 성령은 오셨다가 다시 가시지 않습니다. 한 번 오신 오순절 보혜사 성령은 신약시대 내내 역사하시는 성령이십니다. 영원히 거하실 성령이십니다. 요한복음 14:16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영원토록 거하실 성령이시고, 신약시대 내내 우리와 함께 거하셔서 역사하실 성령입니다. 오늘날도 보혜사 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보혜사 성령은 언제 받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을 때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성령을 받는 사람입니다. 무슨 성령인가 하면 오순절 성령, 보혜사 성령입니다.
성령은 반복적으로 받는 것이 아님
그 보혜사 성령을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는데, 단회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받는 것입니다. 이 오순절 성령은 단번에 받는 것인데, 옛날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반복적으로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단번에 받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닐 때 성령을 받았는데, 그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 아니었습니다. 보혜사가 오시기 전에 받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 성령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제자들은 보혜사가 오신 다음에는 이 보혜사 성령을 다시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처음 받은 성령이 보혜사 성령이시기 때문에 다시 성령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 승천 이후의 역사하시는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받음이 지금은 반복적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을 또 받고 또 받고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령은 삼위 일체 하나님이시고,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안 계신 곳이 없고 오순절 이후 신약시대 내내 역사하시기 때문에, 왔다 갔다 하셔서 사람들이 받고 또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조금 받고 많이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당장에 멸망케 됨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보혜사 성령을 단번에 받은 것입니다. 한 번 오신 성령은 다시 떠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하시고 감동을 시키십니다. 성령이 아주 떠나시면 우리는 죽습니다. 마귀가 그 즉시 우리는 멸망시키기 때문에 성령이 떠나시면 아주 죽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성령께서 안 떠나십니다. 만일 일 분 일초라도 성령이 떠나시면 그 시간에 마귀가 다 들어와서 멸망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결코 떠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 속에 성령이 있으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 성령이 안 계시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마귀의 사람인 것입니다. 성령이 안계시면 즉시로 마귀가 멸망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은 잠시라도 우리를 떠나시지 않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러한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성령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요한복은 16:13에 보면,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언제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를 감동시켜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서 진리를 깨닫게 해주시고, 진리가운데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이십니다.
2. 성령을 받는다는 의미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그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임
성령을 받는다는 말, 성령을 충만히 받는다는 말, 능력을 받는다는 말은 성령이 갔다가 다시 오는 게 아닙니다. 성령이 오셔서 우리 속에 내주해 계십니다.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감동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또, 그의 인도와 주장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능력의 역사를 우리가 받는다는 말입니다.
성령은 오른쪽으로 인도하시는데 우리는 왼쪽으로 가려고 하면, 성령의 감동을 못 받습니다. 인도를 못 받기에 성령이 없는 것과 같이 됩니다. 성령께서 아무리 오른쪽으로 인도하려 해도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성령의 인도가 소용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반대로 가려하면 성령이 없는 것과 같이 됩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심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에게 역사하심
그래도 성령은 떠나시지 않습니다. 늘 같이 계십니다. 문제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늘 같이 계시지만 그 성령의 인도를 받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5:32에,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성령이라는 말도 있습니다(행 3:19).
그와 같이 순종하고 회개하는 자가 성령에 감동을 받고 능력의 역사가 입히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성령 받는다는 말은 인도를 받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감동 받는다, 주장함을 받는다, 능력의 역사가 입히어진다는 말이 다 그것입니다.
성령이 어디 갔다가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늘 같이 계시는데,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에 불순종을 하면 성령을 못 받는 것과 같고, 그 인도에 순종을 하면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감동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을 받는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대로 안하면 성령이 떠난 것과 같음
성령이 떠났다는 것은 성령의 인도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반대대로 하면 성령의 감동을 못 받고 역사가 떠나게 됩니다. 성령이 떠난 것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성령이 아주 떠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원리를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됩니다. 영원히 우리와 거하신다고 했기 때문에, 성령은 결코 떠나시지 않습니다.
자신이 성령의 인도와 반대대로 나가고, 자신이 세상으로 나가기 때문에 성령이 같이 계셔서 인도하시지만 안 계신 것과 같이 인도를 못 받고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순종할 때에 성령께서는 저희를 인도하시고 능력으로 역사하시게 됩니다. 그렇게 하셔서 능력이 우리에게 점점 입히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것이 문제임
성령은 인격자이시기 때문에 조금 왔다가 덜 왔다가 더 왔다가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성령을 조금 받을 때에는 발목까지만 찼다가, 조금 더 받으면 허리까지 왔다가, 거기서 더 받으면 목까지 왔다가, 많이 받으면 철철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무슨 물질입니까? 사이다는 물질이기 때문에 조금 있다가 더 올라왔다가 하지만, 하나님은 인격자이신데 무얼 조금 왔다가 많이 왔다가 하시겠습니까? 아버지가 조금 왔다가 많이 왔다가 그러십니까? 아버지께 집에 좀 오시라고 해서 이미 오셨는데, 아버지더러 더 오시옵소서 더 오시옵소서 합니까? 하나님께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오셨으면 그 아버지를 쳐다보면 됩니다. 그와 같이 성령이 오셨으면 단번에 오신 것이고 오신 성령을 쳐다보면 됩니다.
오신 다음에는 그의 인도를 받는지가 문제입니다. 순종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성령은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데 그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충만히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성령의 인도를 충만히 다 받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100% 다 받는 것이 충만인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100% 다 받기란 쉽지 않아 거의 없습니다. 성령은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데, 그 진리에 100% 다 순종하기란 어렵습니다. 일시적 충만은 가능하지만 늘 충만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6에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고 했는데,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립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7)”라고 했고, 갈라디아서 5:22-23에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위의 9가지의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가 없는 이유는 육체의 욕심으로 기울어진 때문
어떤 사람이 삼각산에 올라가서 기도하기를, “성령이여 오시옵소서! 성령이여 오시옵소서!”하고 계속했는데, 그래도 성령이 안 오신다며 하나님 깍쟁이라고 하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하나님 깍쟁이라고 하는 말이 될 말입니까? 성령이 이미 오셨는데 자꾸 와달라고 하는 것이 될 말입니까? 몰라서 괜히 죄만 짓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마귀 받아가지고 내려오기도 합니다. 성령 받는다며 오히려 마귀 받은 사람 많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 성령이 오순절에 오신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왜 성령을 못 받고 있는가 생각할 때에, 자신이 성령의 인도를 못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 행하느라 육으로 기울어져서 성령의 인도를 못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가기만 하면 자신에게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인도가 임하고, 감동이 임하고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역사가 늘 임하는 사람들이 다 되어야겠습니다.
3.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 나타난 표상
표상을 통한 성령의 성격
오순절 성령이 임할 때에 세 가지 표상이 나타났는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와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람 자체가 성령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가 어떠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그러한 표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불도 마찬가지고 혀 같이 갈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표상입니다.
바람같이 강하고 주권적임
바람같이 강하고 주권적임
바람은 강하고 급하다고 했는데, 바람은 주권을 말합니다. 바람이 임의로 분다고 했는데, 성령의 역사는 주권적이고 강합니다. 성령은 강력한 역사를 하셔서 모든 일에 진리로 인도를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아주 강합니다. 극강 담대합니다. 이러한 성령의 인도에 순종하는 사람은 능력이 입히어집니다.
오순절 날 120명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기도했는데, 능력이 위로부터 입히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순종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점점 입히어집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권이 있습니다. 강력한 역사가 있습니다. 강하고 바람같은 성령이 그러한 역사를 하십니다.
불같이 뜨겁게 하심
불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뜨겁게 하시는 성령이십니다. 누가복음 24:32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라고 했는데, 성령은 마음을 뜨겁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마음이 뜨겁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워지고,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주를 위해서 바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죄를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항상 마음이 뜨겁습니다. 뜨뜻미지근하지 않습니다. 냉랭하지도 않습니다. 마음이 냉랭한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는 증거입니다. 맨송맨송하고 냉랭한 것은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고, 그 인도를 떠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받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뜨겁습니다. 뜨거워서 성경을 볼 때에도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리고, 주님을 위해 충성하려고 하고 몸 바치려 합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치려하고 주님을 위하려는 마음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
혀 같이 맛을 알고 말을 함
혀는 맛을 알고 말을 하는 지체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인해 하나님 말씀의 맛을 알게 됩니다.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 말씀을 보면, 그 말씀이 꿀 송이 보다 답니다. 시편 19:10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너무나 재미있고 귀해서, 이 말씀에서 떠날 생각이 없고 계속 말씀을 사모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눈물을 흘리면서 성경을 읽습니다.
만일 자신이 성경말씀이 달지 않게 느껴진다면, 자신이 지금 성령에게 불순종하고 있다고 알면 됩니다. 본인이 성령을 불순종하니까 단맛이 다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볼 때에 달지 않고, 억지로 보게 되고, 그러다가 안 보게 되곤 합니다. 그러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성경을 볼 때에 단 맛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완고하고 육체로 기울어진 마음을 회개하고 온유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온유한 마음이 되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 말씀이 꿀보다 달게 느껴집니다. 혀로 나타남은 그렇게 말씀의 맛을 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맛을 압니다. 은혜 받는 맛을 압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맛, 신령한 세계의 맛을 다 알게 됩니다.
예배드릴 때에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예배합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예배시간이 길어져도 예배가 길어지는지를 모릅니다. 오히려 더 좀 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대로 예배하지 않는 사람은 반시간만 지나도 자세가 들썩들썩 합니다. 시계만 쳐다보며 아직 끝나지 않느냐며 들썩거립니다. 그것이 성령의 감동을 못 받기 때문입니다. 그걸 회개해야 합니다.
혀는 말하는 지체인데, 성령으로 말을 전할 때에는 아주 힘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하는 말에는 감당을 못합니다.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말할 때 학자, 철학자, 유대교 지도자들 다 있었지만 다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성령으로 말을 하면 평소에 말 잘 못하던 사람도 잘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제대로 된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말씀으로 전도를 할 때에 힘이 있습니다.
갈라졌음은 구별을 의미
혀가 갈라졌다고 했는데, 갈라졌음은 죄와 의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진리와 비진리가 성령의 역사가 임할 때에 환하게 나타납니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가 환하게 다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마귀역사가 환하게 드러납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면 갈라놓습니다. 진리와 비진리, 하나님의 역
사와 마귀역사,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하늘의 운동과 땅의 운동 모든 것을 성령의 역사로 구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표상으로 임했는데, 이 성령이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았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계시는 성령을 받았는데, 성령께 불순종 하고 육체의 소욕대로 나간 것을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핍박을 각오하고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사모할 때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며 깨어서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보혜사 성령의 역사, 그 능력을 입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가 표상으로 임했는데, 이 성령이 오늘날 우리에게 임하셨습니다. 오순절 날 임하신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았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 세상 끝날 까지 함께 계시는 성령을 받았는데, 성령께 불순종 하고 육체의 소욕대로 나간 것을 돌이켜 회개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핍박을 각오하고 순종하고 성령의 인도를 사모할 때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며 깨어서 성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성령께 순종하는 사람,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으로 보혜사 성령의 역사, 그 능력을 입는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