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룻기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룻기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월 25일 수요일

룻기 4:1-22 보아스와 룻이 오벳을 낳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보아스와 룻이 오벳을 낳음
룻기 4:1-22

1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 2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3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 4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그가 가로되 내가 무르리라 5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는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니라 6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7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9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11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12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16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18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19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20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21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22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1. 보아스가 기업 무를 권리를 양도 받음

본문 1절에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서 거기 앉았더니 마침 보아스의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그가 와서 앉으매”라고 하였습니다. ‘성문에 올라가서 앉았다’고 하였는데, 그 당시에는 재판하는 일이나 중대한 사건을 처리할 때에 성문에 모여서 했다고 합니다. 곧 보아스가 기업 무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성문에 올라간 것입니다. 보아스는 그 지방의 유력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기업 무를 자가 와서 보아스와 함께 성문에 앉았습니다. 

본문 2-4절에 “보아스가 성읍 장로 십 인을 청하여 가로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자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
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장로 열 사람을 청해서 일을 해결하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여러 사람 앞에서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한 것이고, 모든 사람 앞에서 공명정대하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관할하므로’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팔았다’는 과거형 표현입니다. 나오미가 현재 관할한다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이미 팔았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날 때에 엘리멜렉이 팔고 떠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아스가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고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고 한 것입니다. 소유지는 형제간에 물러야 하며 형제가 없을 때는 가까운 친척이 물러 줘야 합니다. 무르다는 뜻은 어떤 사람이 분배 받은 자기의 기업인 소유지를 팔았을 때, 그 소유지를 판 사람의 형제나 친척이 대신 그 소유지를 다시 사서 돌려줘 기업을 잇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그 판 사람의 형제 가운데 사서 물러 줘야 합니다. 또 형제가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돈을 내어 도로 사서 그 사람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아스가 가로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날에는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장로 열 사람을 청한 것은 일의 처리를 여러 사람이 다 인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자기 혼자만 괜찮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보아스도 자기 혼자서 기업을 무를 수 있습니다. 혼자 기업을 물러서 룻을 아내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오해할까봐 장로 열 사람을 성문에 청해 놓고 일을 처리한
것입니다. 자신보다 먼저 기업을 무를 더 가까운 친척이 있으니 그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고 그 사람이 무르지 않는다고 하면 그때에 정당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누가 봐도 옳다고 인정이 되고 명분이 서는 것입니다. 우리도 무엇을 하든지 자기 혼자만 옳다
고 생각해고 처리하면 안됩니다. 모든 사람 보기에 ‘저 사람이 옳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모든 사람이 보기에 ‘저 사람이 옳다’라고 인정하도록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괜찮다, 잘했다’라고 여러 사람이 인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 사람이 잘 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도록 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어 나가기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본문 6절에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기업 무를 자가 처음에 무르겠다고 했지만 생각해보니 자기 재산에 손해가 날 것 같아 ‘나의 무
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7-8절에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고 하였습니다.

2.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게 됨

본문 9-10절에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 날 증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보아스가 장로들에게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사는데에 재산이 많이 없어졌을 것 같습니다. 엘리멜렉과 기룐, 말론이 모
압으로 갈 때 다 팔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이제 다시 사서 무르려면 상당한 돈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한 집에서 농사 지을 정도의 토지를 다 산다는 것은 많은 액수의 돈이 들어가는 일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아마 몇 천 만원이 들어갔을 것입니다. 또 보아스는 모압 여인 룻을 사서 자기 아내로 삼고 그 여자가 제일 처음으로 나은 아이는 죽은 사람들인 룻의 시아버지 엘리멜렉과 남편 말론의 이름으로 그 기업을 잇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자기 재산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친척의 집을 구원해 주고 후대를 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선한 일입니다. 자기 재산이 많이 없어져도 친척을 도와 주고, 그 대가 끊어지지 않도록 대를 이어주는 것은 참 선한 일입니다. 보아스와 같이 이러한 선한 일에 참여하는 자가 좋은 사람입니다. 자기 형제 간에도 물러주기가 힘들겠는데, 친척을 위해 많은 재산을 희생하여 계대를 이어주겠다는 정신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도와주는 정신이 좋은 것입니다. 

유대 사람들이 이 좋은 전통이 있어서 여태까지 내려온 것 같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서로 도와주는 정신이 강하다고 합니다. 미국에 유대 사람들이 많이 와 사는데, 그 사람들은 한 사람이 지내다가 실패하면 서로 힘을 합해 그 사람을 도와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을 일으켜
세워준다고 합니다. 유대 사람들이 보통 다른 민족에게는 인색합니다. 여간 깍쟁이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네 민족끼리는 서로 도와 주는 정신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대 사람이 성공하고 재벌가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렇게 유대 사람들이 단결심이 강하고 자기 민족을 도와주는 마음이 강하다고 합니다.
형제 하나가 자손이 없이 죽었습니다. 그러면 남은 형제가 계대를 이어줍니다. 그 동생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지 않고 자기 형이 데리고 살던 형수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처음 나은 아이를 자기 형의 아들로 삼아줍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기 아들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재산을 떼서 형이 팔아먹은 것을 삽니다. 또 형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그 일을 합니다. 재산이나 다른 문제에 대해 이렇게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제도가 내려왔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유대 사람들이 서로 잘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정신 같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제 세끼 잡아먹는다고 자기 민족끼리 잡아먹습니다. 한국 사람들한테 사기를 당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이 한국 사람을 싫어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자기 백성을 도와줘야
합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도와줘야 합니다. 서로 도와주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예수 믿는 사람 가운데에도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사람을 도와주고 동정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이 서로 받들어 주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하면 믿는다고 할 수 없고, 믿음을 다 내버리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보아스는 얼마나 많이 도와줬습니까? 자신이 한 살림한 것만큼 엘리멜렉의 집에서도 한 살림 하였을 것인데 그것을 도로 다 샀습니다. 사서 그 집 이름으로 계대를 이어 주었으니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 입니까? 아주 좋은 일입니다. 

또 보아스가 룻을 취할 때에도 원리원칙대로 한 것입니다. 우선권이 있는 사람에게 먼저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친척이 당신이 무르려면 무르라고 양보하였습니다. 이것은 서로 양보하는 정신을 가진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이 양보할 때에 보아스는 ‘네가 무르는 것이 맞는데 왜 내게 무르라고 하느냐’라고 하지 않고 네가 무르지 않으면 내가 무르겠다고 했습니다.
서로 양보하는 정신, 서로 무거운 짐을 지려고 하는 정신이 좋은 것입니다. 우리도 무거운 짐을 남에게 다 지우려고 하지 말고 저 사람이 안 지면 내가 지어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더 가깝고 멀고를 따질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이 안 지려고 하면 누가 져야 합니까? 내가 지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지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 사람이 안 질 때는 내가 지어야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맏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맏아들이 못 모시면 둘째라도 모시겠다고 해야 합니다. 또 첫째, 둘째가 모시는 것이 마땅하지만 못 모시면 셋째가 모시겠다고 해야 합니다. 또 셋째까지 모시지 못하면 넷째가 모시겠고 해야 하겠습니다. 다섯째도, 여섯째도, 일곱째도 “내가 모시겠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딸도 내가 모시겠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아들, 딸이 수두룩한데도 부모가 갈 때가 없다고 합니다. 서로 안 받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왜 부모를 안 모시려고 합니까? “첫째가 모셔야지 내가 왜 모시냐하고, 셋째가 모셔야지 내가 왜 모시냐”고 하며 서로 미루는 바람에 부모가 오갈 데가 없다고 합니다. 맏아들네집에 가면 작은 아들네 집에 가라고 쫓아내고, 작은 아들네 집에 가면 맏아들네 집에 가라고 쫓아낸다고 하니 부모가 갈 곳이 없는 것입니다. 요새 그런 부모가 많습니다. 부모를 안 모시겠다고 서로 미루는 자들은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공산당들보다 더 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왜 부모를 모시지 않겠다고 합니까? 또 아들이 모시려고 해도 며느리가 안 모시겠다고 합니다. 그런 며느리는 악질입니다. 또 요새 자녀들이 부모를 때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를 때리는 아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잡아서 죽여야 합니다. 아예 법을 만들어서 부모를 때리는 사람들은 사형을 시켜야 합니다. 

3. 장로들이 축복함

본문 11-12절에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1장 2절에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랏이 그 동네입니다. 장로들과 백성들이 바로 그 동네에서 보아스가 유명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또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의 집에 들어가는 여인이 야곱의 아내들인 라헬과 레아 같기를 원했습니다. 또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베레스는 6대 조상입니다. 마태복음에 유다가 다말에게서 베레스를 낳았고 기록했습니다. 이와 같이 장로들과 백성들이 보아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4. 룻이 아들을 낳음

본문 13절에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본문 14절에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또 본문 15절에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라고 여자들이 찬송을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6-17절에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의 이웃 여자들이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어 주었습니까? ‘오벳’이라고 지어줬습니다. 오벳은 섬기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제 노년에 나오미를 잘 섬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子婦)가 있습니다. 좋은 자부는 일곱 아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부, 믿음 잘 지키는 자부는 아들보다 낫습니다. 요새도 그런 집이 있습니다. 자부가 믿음을 잘 지키면 아들보다 그 자부가 나은 것입니다. 그것은 참 하나님의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부를 주신 것이 큰 복입니다.

5. 룻의 아들 오벳의 족보

본문 18-22절에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았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벳이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오벳이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라고 했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베레스의 세계는 이러하니라’고 하였는데, 왜 유다의 아들인 베레스부터 족보가 기록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베레스부터 6대손이 오벳이고, 오벳의 아들이 이새입니다. 그리고 이새의 아들이 누구입니까? 다윗 왕입니다. 이렇게 룻이 믿음을 잘 지켰기 때문에 다윗 왕의 먼 증조모(曾祖母)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룻의 아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이고,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룻기 3:1-18 룻의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룻의 신앙
룻기 3:1-18

1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 2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3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4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5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 6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 7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8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9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 10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11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 12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13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 14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 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 16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17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18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1.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하며 믿음을 지키는 그곳이 안식할 곳임

본문 1절에 “룻의 시모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며느리를 보고 “내 딸아”라고 하였는데 딸 같이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며느리 룻은 육신의 딸보다 더 사랑스러운 믿음의 딸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안식할 곳을 구하여 너로 복되게 하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였는데, 안식할 곳을 구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안식할 곳을 구해 주어서 룻을 복되게 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안식할 곳을 구하여 복되게 해 주겠습니까? 안식할 곳을 구해 준다는 것은 결혼을 시켜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결혼만이 안식할 곳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을 지키면 안식할 곳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을 하고 믿음을 지킬 때 그곳이 안식할 곳이 됩니다. 나오미는 이러한 뜻에서 룻에게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순종하는 길을 알려 주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결혼하는 것이 믿음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인도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결혼 안 하는 것이 믿음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할 때 바로 그 곳이 안식할 곳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식할 곳은 믿음을 지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행한 곳 모두가 다 안식할 곳입니다. 그곳이 복된 자리입니다. 육신적으로 어떤 형편에 있든지 믿음을 지켜며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리가 안식할 곳입니다. 사도 바울이 독신으로 생활한 것도 다 안식할 곳입니다. 또한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그것도 안식할 곳입니다. 스데반처럼 죽는 자리를 주셨을 때 그곳도 안식할 곳입니다. 믿음 지키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은 어디나 다 안식할 곳이고 믿음을 못 지키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치 못하면 어디나 환란과 고통의 자리입니다. 결혼을 해도 환란과 고통의 자리이고 결혼을 안 해도 환란과 고통의 자리입니다. 믿음을 못 지키면 어디서든지 환란과 고통의 자리가 되고 믿음을 지키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거기가 안식할 곳이요 복된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2. 나오미가 룻을 기업 무를 자에게 보냄

본문 2-5절에 “네가 함께 하던 시녀들을 둔 보아스는 우리의 친족이 아니냐 그가 오늘 밤에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불리라 그런즉 너는 목욕하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입고 타작 마당에 내려가서 그 사람이먹고 마시기를 다하기까지는 그에게 보이지 말고 그가 누울 때에 너는 그 눕는 곳을 알았다가 들어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 그가 너의 할 일을 네게 고하리라 룻이 시모에게 이르되 어머니의 말씀대로 내가 다 행하리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보리 타작할 때에 보아스가 타작 마당에서 보리를 까부리다가 거기 누워서 지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풍습은 타작할 때 많은 곡식들을 떨어 놓고 일하던 여러 사람들과 더불어 연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 풍습대로 보아스가 타작하고 일꾼들을 잘 대접하여 일꾼들이 먹고 마시기를 다하자 그들을 다 보내고 타작 마당을 지켰습니다. 밤에 누가 와서 곡식을 가져 가지 않도록 주인이 옆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나오미가 룻에게 타작 마당에서 보아스가 잘 때에 그의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우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가 보아스에게 시집을 보내기 위해 이러한 방침을 룻에게 일러 주었습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그들의 기업을 무를 자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기업 무를 자는 친척이 팔았던 토지나 논, 밭을 자기가 다시 사서 그 친척 식구에게 줄 의무가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만일 기업 무를 형제가 없을 때에는 제일 가까운 친척이 대신 사주는 것을 뜻합니다. 동시에 자기 친척이 죽었으면 그 친척 부인과 결혼하여 자기 아
내로 삼아 처음으로 난 아이를 죽은 친척의 아이로 만들어 주고 그 다음부터 자기 아들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기업을 무는 법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남편에게 형제가 없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친척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보아스였습니다. 보아스는 법적으로 나오미에게 가까운 친척이었고 기업을 무를 사람이었습니다. 레위기 25장25-28절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만일 그것을 무를 사람이 없고 자기가 부요하게 되어 무를 힘이 있거든 그 판 해를 계수하여 그 남은 값을 산 자에게 주고 그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하여 기업 무는 법이 나와 있습니다. 나오미가 홀로된 며느리를 데리고 돌아왔지만 자기 아들들은 다 죽었으므로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인지 기도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다른 데 출가시키는 것 보다 기업을 무르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 무를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한 끝에 남편의 형제가 없으므로 가까운 친척 두 사람 중 보아스에게 자기 며느리를 보내서 기업을 무르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그 작정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법이 어떤 것 같습니까? 

룻이 시어머니의 명대로 행함

본문 6절에 “그가 타작 마당으로 내려가서 시모의 명대로 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가 항상 성경대로 인도했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고 하나님의 뜻이 시어머니 명령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어머니의 말을 어
기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시어머니 명령을 다 순종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미가 시킨 방법은 리브가가 자기 아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시킨 방법과 같습니다. 리브가가 야곱에게 어떻게 했습니까? 염소 새끼를 잡아 그 가죽을 야곱의 손에 감아 주고 아버지에게 가서 형 에서로 속이도록 하였습니다. 야곱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아버지를 속여 축복을 받았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받겠다는 그 믿음은 참 좋은데, 그 방법은 좋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속이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까? 작은 아들인데 아버지에게 축복을 받으려면 장자로 속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인본주의적인 발상으로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알려 준 방법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나오미도 이러한 방법을 쓰지 말고 보아스에게 찾아가서 “당신이 우리 기업 무를 자가 아닙니까? 우리 기업을 좀 물러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정정당당하게 말하였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되게 해 주실 것인데 보아스가 먹고 마신 뒤 노적가리 옆에서 잘 때 룻으로 하여금 그의 발치에 눕게 한 것은 합당한 방법이 아닙니다. 룻은 시어머니 말씀을 잘 순종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에 그곳에 가기로 작정한 것이지만 육신적으로 볼 때 보아스에게 가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척이라고 했으니 나이가 상당히 많은 사람으로 아마도 시아버지 연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후에 보아스가 룻에게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쫓지 아니하였으니’라고 한 것을 보면 보아스는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또 룻을 “내 딸아”라고 한 것으로 보아 룻이 딸과 같은 연배인 것입니다. 룻은 어디로든 재혼할 수 있고 젊은 사람을 남편으로 얻을 수도 있었으나 기업을 무르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시어머니 뜻에 순종하여 보아스에게 가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또한 유다 지파는 자신의 계대에서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자랑하고 소망했던 지파였는데, 이것을 들었을 룻은 유다 지파에 속하여 그리스도에 참여할 소망을 가지고
육신적 조건보다 유다지파인 보아스를 통해 기업을 무르려는 신앙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장 5절에 보아스는 유다의 7대손으로 기생 라합이 낳은 아들입니다.

본문 7-9절에 “보아스가 먹고 마시고 마음이 즐거워서 가서 노적가리 곁에 눕는지라 룻이 가만히 가서 그 발치 이불을 들고 거기 누웠더라 밤중에 그 사람이 놀라 몸을 돌이켜 본즉 한 여인이 자기 발치에 누웠는지라 가로되 네가 누구뇨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 당신은 우리 기업을 무를 자가 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고 자다가 룻을 보고 놀라 깬 보아스에게 “당신의 시녀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으로 시녀를 덮으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본문 10절에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 자를 좇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돈이 많거나 연소한 자를 쫓지 않고 성경대로 기업을 무르려는 룻의 신앙을 알아보고
보아스가 말하였습니다. ‘너의 베푼 인애’는 믿음을 쓴 사랑을 말하는 것이고 룻의 믿음과 사랑이 처음보다 나중이 더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룻은 이렇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모든 것을 행하려고 하였습니다. 육신적 생각으로 결혼을 원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재산과 나이를 고려하였을 것이므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보아스에게 가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가라 하면 가고, 가지 말라 하면 가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어머니를 감동시켜 하나님의 뜻을 보여 주신다고 믿었기 때문에 시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자리에까지 나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믿음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에는 반드시 윗사람을 감동시켜서 윗사람과 더불어 모든 것이 합의된 사항이 하나님의 뜻인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고 목사님 얘기를 하겠습니다. 일전에 고 목사님이 개척을 한다고 하시는데 제가 그만 두라고 하면서 지금 있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 금년이 되어 제가 다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고목사님으로 하여금 개척하도록 일을 역사하셔서 과천과 개포동 등 여러 군데를 가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들과 가서 땅을 사려고 돌아다녔는데 과천에 아파트 몇 천 세대가 들어서고 정부 청사가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과천에 지방 교회를 세우는 것이 좋겠다는 교인들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과천의 상가 계약을 하면서 5월쯤 입주한다고 하였고 그때부터 고목사님이 개척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봉교회가 빚을 많이 져서 다른 교파로 넘어가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 목사님이 기도하실 때에 도봉 교회가 다른 곳으로 넘어가는 것과 그 교회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이 들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주만 지나면 과천으로 나가게 되었지만 그것을 팔아 도봉 교회를 돕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저와 의논하여 제가 허락을 하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허락을 안 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안다며 물어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봉 교
회 돕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그것이 믿음을 쓴 것입니다. 고 목사님이 처음 개척할 생각을 가졌을 때도 제가 허락을 안 하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게 물었을 때 제가 허락을 안 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줄 알고 3년이든 5년이든 몇 십 년 동안 여기 있으려고 작정하셨답니다. 

한편 저도 개척을 위해 기도하다가 고 목사님을 과천으로 보내는 것이 하나님 뜻인 줄 알고 추진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곳이 도봉 교회임을 알고 거기로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은 자기를 인도하는 사람을 감동시켜서 인도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룻도 하나님께서 시어머니를 통해 역사하시고 그 뜻을 보이심을 알았습니다. 시집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께서 시어머니 마음을 감동시켜서 가게 해 주실 것이고 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안 가도 좋다는 것입니다. 또 만일 시집을 가라고 한다면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으로 믿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는 곳으로, 윗사람들이 알아서 좋은 곳으로 인도하면 “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신랑감으로 좋은 사람이 있었는데 여자가 자꾸 따지니까 ‘결혼하기 전에도 따지는 데 어떻게 평생 살겠나’하고 그만 두었다고 합니다. 따져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대로 하고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하나님께서 윗사람을 감동시키실 때 그 인도함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자기의 생각이 들어간 것은 이기주의이고 불신앙입니다. 신앙으로 인도하는 윗사람이 반대하는
데도 자기가 하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불신앙으로 인도하는 부모 같으면 믿음으로 인도하지 않을 수 있지만 나오미와 같은 시어머니는 믿음으로 인도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인도하는 윗사람을 순종하는 것이 잘되는 비결이고 그것이 곧 믿음입니다.

3. 보아스가 성경대로 해결하기로 약속함

본문 11절에 “내 딸아 두려워 말라 내가 네 말대로 네게 다 행하리라 네가 현숙한 여자인 줄 나의 성읍 백성이 다 아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현숙한 여자’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룻이 믿음이 아주 좋은 여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덕망이 있는 여자
라는 것입니다. 현숙한 여자가 좋은 여자입니다. 앞 절에서도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 보다 나중이 더하도다”라고 보아스가 말한 것과 같이 룻은 믿음 있고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육신 중심의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본문 12-13절에 “참으로 나는 네 기업을 무를 자나 무를 자가 나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으니 이 밤에 여기서 머무르라 아침에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하려 하면 좋으니 그가 그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할 것이니라 만일 그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이행코자 아니하면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내가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네게 행하리라 아침까지 누울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자기가 기업을 무를 자이나 자기보다 더 가까운 친척에게 우선권이 있으므로 그가 기업을 무르면 좋고 그가 이행치 않겠다면 자기가 기업 무를 책임을 이행하겠다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였습니다. 보아스도 믿음 있는 사람입니다. 밤중에 발치 이불을 들고 여자가 들어왔지만 하나님께서 복 주시길 원하며 축복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고 그들이 믿음으로 대화했으며 조금이라도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습니다.

4. 보아스가 룻을 나오미에게 돌려보냄

본문 14-15절에 “룻이 새벽까지 그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피차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의 말에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보아스가 가로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펴서 잡으라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이워주고 성으로 들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기 위하여 아침이 밝기 전에 일어나 룻을 보냈는데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도록 보리를 한아름 싸서 나오미에게 보내었습니다. 

본문 16-18절에 “룻이 시모에게 이르니 그가 가로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룻이 그 사람의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고하고 가로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손으로 네 시모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이에 시모가 가로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시어머니에게 이르러 있었던 일을 고할 때 나오미는 “이 사건이 어떻게 되는 것을 알기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고 잠잠히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는 “그 사람이 오늘날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을 성취해 주실 것이고 신앙의 사람 보아스가 반드시 일을 이룰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나오미가 룻에게 믿음으로 권면하였습니다.

룻기 2:1-23 룻의 이삭 줍는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룻의 이삭 줍는 신앙
룻기 2:1-23

1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2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5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6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
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 10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모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들렸느니라 12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13룻이 가로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시녀의 하나와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시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14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 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
이다 18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 19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 20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 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21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22나오미가 자부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23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

2:1 나오미에게는 자기 남편의 친척이 있었는데, 엘리멜렉 가문에 속한 세력있는 부자로서 이름은 보아스였다. 

2:2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말하기를 "부디 내가 밭에 가서 내게 은혜 베푸는 자를 따르며 이삭을 줍게 해 주십시오." 하므로, 나오미가 그 여자에게 "내 딸아, 가거라." 하고 말하였다. 

2:3 룻이 나가 추수하는 자들을 따라다니며 밭에서 이삭을 주웠는데, 뜻밖에 그 여자가 간 곳이 엘리멜렉의 가문에 속한 보아스의 밭의 일부였다. 

2:4 그때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 와서 추수하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네들과 함께하시기를 바라네." 하니, 그들이 그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어르신께 복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2:5 보아스가 추수하는 자들을 감독하는 종에게 말하기를 "이 젊은 여자는 어느 집 사람이냐?" 하니, 

2:6 추수하는 자들을 감독하는 그 종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그 젊은 여자는 모압 지방에서 나오미와 함께 돌아온 모압 여자인데, 

2:7 그 여자가 '제가 추수하는 자들을 따라다니며 단 사이에서 이삭을 주워 모으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고는, 아침부터 와서 집에서 잠시 쉰 것 외에는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였다. 

2:8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였다. "내 딸아, 잘 들어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에 가지 말고, 여기서 떠나지도 말며, 내 여종들을 바싹 따라다녀라. 

2:9 그들이 추수하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라다녀라. 내가 종들에게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지시해 두었다. 목이 마르면, 그릇에 가서 종들이 길어 온 것을 마셔라." 

2:10 룻이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에게 말하기를 "저는 이방 여자인데도 어찌하여 어르신께서 제게 은혜를 베푸시며 저를 돌보십니까?" 하니, 

2:11 보아스가 그 여자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가 네 부모와 고국을 버리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백성에게로 온 것을 내가 자세히 들었다. 

2:12 여호와께서 네가 한 일을 보답하시기를 바라며,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분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온 네게 풍성하게 보상해 주시기를 바란다." 

2:13 그 여자가 말하기를 "내 주여, 제가 어르신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비록 제가 어르신의 하녀들 중 하나만도 못하지만, 참으로 어르신이 저를 위로하셨고, 참으로 어르신이 여종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2:1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말하기를 "이리 가까이 와서, 네 빵 조각을 초에 찍어 먹어라." 하였으므로 그 여자가 추수하는 자들 곁에 앉았고, 보아스가 그 여자에게 볶은 곡식을 건네주니, 그 여자가 배불리 먹고 남겼다. 

2:15 룻이 이삭을 주우러 일어날 때, 보아스가 자기의 종들에게 명령하기를 "그 여자가 곡식 단 사이에서도 주울 수 있게 하고 책망하지 마라. 

2:16 오히려 그 여자를 위하여 곡식 다발 중에서 일부러 뽑아 두어 그 여자가 줍게 하고 꾸짖지 마라." 하였다. 

2:17 룻이 그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었다. 

2:18 그 여자가 주운 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 자기 시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자기가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꺼내어 시어머니에게 드리니, 

2:19 시어머니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네가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하였느냐? 너를 돌본 자가 복 받기를 바란다." 하니, 룻이 시어머니에게 자기가 누구 곁에서 일하였는지 알려주며 말하기를 "오늘 저를 일할 수 있게 한 분의 이름은 보아스입니다." 라고 하였다. 

2:20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에게 말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이들과 죽은 이들에게 호의 베풀기를 그치지 않았으니 여호와께로부터 복 받기를 바란다." 하고, 또 나오미가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우리와 가까운 사이이며, 우리의 유업을 물러 줄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하였다. 

2:21 모압 여자 룻이 말하기를 "그분이 제게 '너는 내가 데리고 있는 종들이 추수를 마칠 때까지 따라다녀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므로, 

2:22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 룻에게 말하기를 "내 딸아, 네가 그의 여종들과 함께 다니고, 다른 밭에서 사람들이 너를 만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2:23 룻이 보리 추수와 밀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여종들과 바싹 따라 다니며 이삭을 주우며 자기 시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 룻이 이삭을 주음

이삭 줍는 룻에 대한 말씀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주웠다고 했습니다. 룻은 모압 여자인데 시어머니 나오미를 쫓아 유대 땅으로 왔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서 엘리멜렉의 가정이 모압으로 갔습니다. 엘리멜렉은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가서, 그곳에서 자부를 얻었습니다. 맏 자부는 오르바이고 둘째 자부가 룻이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십년 있는 동안에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도 죽었습니다. 여자 셋만 남게 된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황이 되었을 때, 나오미는 혼자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두 자부도 그들의 고향, 친척에게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두 자부가 나오미를 따라오려고 하였는데, 나오미가 ‘너희 고향 너희 친척에게로 돌아가라 거기 가서 네 남편을 각각 맞아서 거기서 편안히 살라’고 거듭
권면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맏 자부 오르바는 시모 나오미에게 입 맞추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라 왔습니다. 

룻기 1장 15-18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룻의 신앙인데, 이것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간 것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엘리사가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 갔습니다. 따라오지 말라고 해도 끝까지 따라가서 엘리야의 권능을 힘입어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룻도 이방 여자이지만 시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자기도 이스라엘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겠습니다,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따라온 것입니다. 룻은 이렇게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좋은 줄을 알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고 했습니다. 또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되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룻이 생명을 내놓고 따라가는 신앙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부모, 형제, 조국을 다 내어놓은 것입니다. 룻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백성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자기 나라인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 하나님을 끝까지 섬기다 죽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나오미를 따라갔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베들레헴에 돌아왔는데 너무 비참했습니다. 십년 전 고향을 떠날 때 다 청산했기 때문에 되돌아 왔지만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마땅히 일할 곳도 없고 반가이 영접해 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실패하고 돌아왔는데 누가 영접해 주겠습니까? 

본문 1-2절에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 중 유력한 자가 있으니 이름은 보아스더라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라고 하였습니
다. 룻이 시어머니와 가만히 앉아 있으면 누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겠습니까? 가만히 있으면 직장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룻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라고 하면서 시어머니인 나오미에게 이삭 주우러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삭이라도 주워서 생활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나오미 역시 며느리가 이삭 줍는 일을 허락했습니다. 이때는 이삭 줍는 것이 제일 낮은 직장이고 제일 쉬운 직장입니다. 이삭 줍는 것은 기술 없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보리 등의 곡식을 거둘 때에 거두는 사람 뒤를 따라다니면서 떨어지는 이삭을 그릇에 주워 담으면 됩니다. 그래서 룻이 이삭을 주우러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삭 줍는 신앙만 가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좋은 직장만 가지겠다고 하면 길 안 열어 주십니다. 좋은 사람만 만나고, 좋은 직장만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룻을 만나줄 사람도 없습니다. 이방 여자를 누가 만나 주겠습니까? 그러므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이삭 줍는 것입니다. 별로 시원치 않은 일이긴 합니다. 하루 이삭을 주워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곡식 떠는 사람 뒤에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워야 얼마 줍지 못합니다. 또 가만히 두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다니면서 이삭을 주우면 자기네가 줍겠다고 줍지 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보통은 주인이 다 주운 다음에 주워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라도 해서 생활하는 것이 지금 상책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이삭 줍는 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 천하게 여기는 일을 우리는 해야 합니다. 이삭은 버린
곡식 아닙니까? 떨어진 곡식 아닙니까? 그것들을 내버려두면 새가 와서 먹고 나머지는 다 썩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이삭을 주워다 먹고 살려는 것은 가장 낮아진 생활입니다. 수입이 지극히 적은 일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버린 것을 줍는, 천한 일을 하는 것이 이삭 줍는 신앙
입니다. 그래도 가서 주우면 주울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좋은 직장 가려고만 하지 말고,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해 주십니다. 이삭이라도 주워다 먹고 사는 것이 상책이지 가만히 앉아 있으면 굶어죽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한 일, 수입이 적은 일, 다른 사람들이 다 내어버린 일이라도 해야 합니다. 밭에 나가서 이삭 줍는 일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이삭을 주우면 자기와 시어미니 먹을 것을 마련하지 못하겠습니까? 하루 종일 나가서 이삭을 주워 시어머니와 룻이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룻의 목적은 믿음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 신앙을 가지고 룻은 이삭을 주우러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제나 이삭 줍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좋은 것, 쉽고 큰 것, 다른 사람이 다 흠모하는 그런 것보다 천한 것, 남이 꺼려하는 것을 할 정신을 가지면 할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사나 권찰, 장로가 아니어도 이삭 줍는 봉사를 하려고 하면 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이삭 줍는 봉사로는 무엇이 있겠습니까? 어떤 봉사가 이삭 줍는 봉사입니까? 화장실 청소가 이삭 줍는 봉사가 될 것입니다. 예전에는 지금은 천당 간 차희남 집사가 매 주일마다 일찍 와서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이것이 이삭 줍는 신앙으로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안하는 것, 하다가 못하거나 내 버린 것, 그런 일하는 것이 이삭 줍는 신앙입니다.
전도하는 것도 전도하기 좋은 곳만 가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들 어려워하는 곳에도 가야 합니다. 또 이삭 줍는 일로 병이 난 집에 심방 가는 것도 있습니다. 남들 안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힘들다고 안 하고 더럽다고 안 하는 곳에 가서 봉사해야 합니다. 또 세상사업도
남들 안 하는 것을 해야 합니다. 좋은 것만 하겠다고 하면 누가 좋은 것으로만 줍니까?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일만 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아무거나 해야 합니다. 아무리 천하고 돈을 조금 주고 고생을 많이 한다고 해도, 그 일을 해야 할 때에는 하는 것입니다. 그것
이 이삭 줍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룻이 이삭 주우러 나갔다가 어떻게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본문 3-4절에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가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척입니다. 하나님께서 룻을 시아버지 엘리멜렉의 친척 보아스의 밭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은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납니다. 또 우연히 은인을 만나게 됩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 찾아다니면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연히 만나야 합니다. 룻도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윗사람으로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도 우연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랫사람도 좋은 사람을 만나야 일이 잘 되는데 그것도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선생도 우연히 좋은 선생을 만나게 되고 제자도 우연히 좋은 제자를 만나게 됩니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찾아다니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베들레헴으로부터 와서 일꾼들과 어떻게 대화했습니까?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밭의 주인인 보아스가 일꾼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또 일꾼들은 뭐라고 했습니까? 일꾼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밭 주인은 일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고, 일꾼들은 주인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이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서로 축복해 주어야 잘 됩니다. 깎아 내리면 안 됩니다. 주인과 일꾼이 서로 깎아 내리고 비방하고 데모하면서 나가면 피차간에 망합니다. 서로 축복해 주어야 합니다. 일은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이것을 본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벌가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잘되기를 원하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은 서로 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려는 믿음을 가진 것도 이삭 줍는 신앙과 같은 것입니다. 보아스 밭의 일꾼들도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주인이 얼마를 주던지 거기에 만족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 밭에서 농사하는 주인도 농사가 잘 되던 못 되던 만족하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을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당시 베들레헴 지역, 유대나라 땅이 박토인데 농사가 잘되지 못하는 땅입니다. 그래도 서로 축복해 주는 것입니다.

본문 5-7절에 “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뉘 소녀냐 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 주심

본문 8-9절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
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말하는 내용을 보면 룻이 얼마나 좋은 사람을 만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른밭으로 가지 말고 여기서 이삭을 주워라, 목마르면 소년들이 길어온 물을 먹어라,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보아스가 룻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때도 젊은 여자 혼자서 돌아다니면 누군가 건드리는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아스가 밭의 일꾼들에게 룻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해 놓았으니 그들이 룻을 건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룻은 누군가 자신을 건드릴까봐 이삭 주으러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건드리지 못하게 하시면 건드리지 않을 것을 믿고 나가야 합니다. 아무리 세대가 악하고 젊은 여자 혼자 다니면 건드리는 사람이 많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건드리지 못하게 하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나와야 합니다. 가방을 날치기 당한 사람이 있는데 앞으로는 아예 없어져도 될 허름한 것을 가지고 다니십시오. 돈도 많이 가지고 다니면 안 됩니다. 두려워서 누가 건드릴까봐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다
시 말하지만 누가 건드릴까봐 겁나서 못하는 것은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본문 14절에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에게 점심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초에 찍어 먹는 것
이 좋은 모양입니다. 그 음식을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16절에 “또 그를 위하여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로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룻이 많은 이삭을 주워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써 주었습니다. 일꾼들이 곡식을 벨 때에 룻이 뒤에서 따라오면서 이삭을 주우니 줌에서 조금씩 빼서 아래로 떨어뜨리라고 한 것입니다.

3. 룻이 시모를 공경함

본문 17절에 “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한 에바는 22리터 정도가 됩니다. 한 말이 20리터라고 하는데, 룻이 1말 1되의 이삭을 주운 것입니다. 이삭을 주워서 다 떠니 1말 1되가 나온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었
습니까? 사업이 잘 되었습니다. 곡식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진 이삭만 주워서는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서 이삭을 따로 빼내어 주심으로 룻이 많이 거둘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목마를 때 물을 주시고 시장할 때 음식을 주십니다. 음식은 어떤 것입니까? 오늘날의 초밥 비슷한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보통보다 더 많이 줍도록 해 주셨습니다. 22리터를 하루 동안에 주셨습니다. 앞길이 환하게 열린 것입니다.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나갈 때 처음에는 막막합니다. ‘어디 가서 주워야 하나?, 누가 건드리지 않겠나?, 줍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룻은 ‘믿습니다’하고 나간 것입니다. 누가 건드리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이삭 주울 밭을 만나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만나게 해줄 것을 믿고 나간 것입니다. 점심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낮아져서 천한 일, 남들이 버린 일,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때에 돈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돈 생각하지 말고 이삭 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룻이 시어머니와 함께 한 끼만 먹어도 된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어 주셔서 여러 가지 일이 잘 되게 해주셨습니다.

미리 걱정하면 안 됩니다. 앞서서 염려하며 걱정하지 말고 이삭을 줍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이삭 주울 곳은 언제든지 있고, 어디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삭을 주우러 갈 때에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시고, 앞길을 열어 주시고,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십니다.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겸손하게 나아가면 좋은 길이 열립니다. 낮아져서 아무리 천한 일이라도 하려고 결심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십니다. 또 먹을 것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얻도록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제부터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겠습니다.

본문 18절에 “그것을 가지고 성읍에 들어가서 시모에게 그 주운 것을 보이고 그 배불리 먹고 남긴 것을 내어 시모에게 드리매”라고 하였습니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을 시모에게 드렸다고 했습니다. 나오미도 그것을 잘 먹고 참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룻이 음식 부스러
기를 갖다 주었을까요, 아니면 먹을 때 시어미가 생각나서 좀 떼어 놓고 먹었을까요? 아마도 조금씩 떼어놓고 먹었을 것 같습니다. 룻이 믿음으로 시어머니 먹을 것을 먼저 떼어 놓고 먹었을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시모가 그에게 이르되 오늘 어디서 주웠느냐 어디서 일을 하였느냐 너를 돌아본 자에게 복이 있기를 원하노라 룻이 누구에게서 일한 것을 시모에게 알게 하여 가로되 오늘 일하게 한 사람의 이름은 보아스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외부적으로 볼 때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돌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정신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본문 20-23절에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 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 나오미가 또 그에게 이르되 그 사람은우리의 근족이니 우리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이니라 모압 여인 룻이 가로되 그가 내게 또 이르기를 내 추수를 다 마치기까지 너는 내 소년들에게 가까이 있으라 하더이다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 이에 룻이 보아스의 소녀들에게 가까이 있어서
보리 추수와 밀 추수를 마치기까지 이삭을 주우며 그 시모와 함께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자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너는 그 소녀들과 함께 나가고 다른 밭에서 사람을 만나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 데서 일
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밭에 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밭에 가면 곡식들을 많이 줄 것 같아도 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보아스의 밭으로 보내 주시고 보아스도 만나게 해 주셨으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추수 마치기까지 거기서 이삭을 줍고 다른 밭에 가서 다른 사람과 일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시는 곳에서 일해야 합니다. 다른 밭에 가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곳에 있어야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곳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나님께서 모든 앞길을 형통하게 이끌어 주십니다.

룻기 1:6-22 나오미와 룻의 믿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나오미와 룻의 믿음
룻기 1:6-22

1:6 그 여자가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을 떠나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것을 그 여자가 모압 지방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1:7 나오미가 자기가 있던 곳에서 두 며느리와 함께 출발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1:8 두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각자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거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에게 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인애를 베푸시길 바라며, 

1:9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자 자기 남편의 집에서 안식을 얻게 하시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오미가 그들에게 입맞추자 그들이 목소리를 높여 울며, 

1:10 나오미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반드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하므로, 

1:11 나오미가 말하였다. "내 딸들아, 돌아가거라. 어찌하여 너희가 나와 함께 가려고 하느냐? 내 태중에 아직도 아들들이 더 있어 너희 남편이 될 수 있느냐? 

1:12 내 딸들아, 돌아가거라. 나는 남편을 두기에 너무 늙었다. 가령 내가 내게 소망이 있다고 말하거나 내가 오늘 밤에 남편을 맞아들여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너희가 어찌 남편을 두지 않고 혼자 살겠느냐? 아니다, 내 딸들아.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너희 때문에 내가 매우 괴롭구나." 

1:14 그 여자들이 목소리를 높여 다시 울었다. 오르바는 자기의 시어머니에게 입맞추었으나, 룻은 시어머니를 붙잡았다. 

1:15 나오미가 말하기를 "보아라, 네 동서는 자기 백성과 자기 신들에게로 돌아갔으니, 너도 네 동서를 따라 돌아가거라." 하니, 

1:16 룻이 말하였다. "저에게 어머니를 떠나고 어머니를 따르지 말며 돌아가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저도 가고, 어머니께서 주무시는 곳에서 저도 자겠습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며, 어머니의 하나님이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 묻힐 것입니다. 만일 죽음 외에 어떤 것이라도 저와 어머니 사이를 나눈다면, 여호와께서 제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합니다." 

1:18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려고 굳게 결심한 것을 보고 그 여자에게 더 말하지 않았다. 

1:19 그리고 두 사람이 길을 떠나 베들레헴에 이르렀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온 성이 그 여자들 때문에 떠들썩하였으며, 여자들은 "이 사람이 *나오미냐?" 하고 말했다. / *기쁨이나 환희 

1:20 나오미가 그 여자들에게 말하기를 "전능하신 분께서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으니, 나를 *마라라 부르고, 나오미라 부르지 마시오. / *괴로움 

1:21 내가 풍족하게 떠났으나 여호와께서 나를 텅 빈 채로 돌아오게 하셨는데, 어째서 나를 나오미라 부르는 것이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내게 재앙을 내리셨소." 라고 하였다. 

1:22 이렇게 나오미가 자기 며느리 모압 여자 룻과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왔으니, 그들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는 보리 추수를 시작할 즈음이었다.

6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8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9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21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
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 22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 자부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왔는데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1. 나오미가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함

나오미와 룻의 신앙이 참 좋은 신앙입니다. 사사시대의 유다 땅에 흉년이 들어서 베들레헴에 살던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흉년이 오면 어려움을 당할까봐 모압 지방으로 갔습니다. 흉년이 왔어도 당장 굶어 곤란한 것은 아니고 ‘이제 흉년이 왔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까 앞으로 곤란하지 않겠느냐’하며 앞날 걱정을 한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 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갈 때는 풍족했습니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풍족한데 ‘앞으로 어떻게 살까?’하는 앞날 걱정으로 ‘흉년이 들면 앞으로 곡식이 없겠는데 무엇을 먹고 살아야 되겠나?’하는 그런 앞날의 염려로 모압 지방에 갔습니다. ‘거기는 흉년이 안 들었는데 거기 가서 좀 살면 곤란을 안 당하겠다, 앞으로 곤란한 생활 안 하겠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간 것 같습니다. 그곳에 가서 10년이 지났는데 남편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부인의 이름이 나오미이고 아들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며 자부들의 이름은 오르바와 룻입니다. 그 후 10년 즈음에 두 아들도 다 죽었습니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에게는 자부 둘만 남았습니다. 나오미가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고 하였는데, 앞날 걱정을 해서 잘 살려고 왔지만 도리어 비참하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곳에서 살아야지 정해 주신 곳을 떠나면 비참해집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곳이 있습니다. 유다 지파는 베들레헴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유다 땅에서 살아야 하는데 앞날의 염려로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곳을 떠나 이렇게 완전히 실패를 했습니다. 

본문 6-7절에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땅에 흉년이 들었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권고하사 양식을 주셨다, 즉 흉년이 다 지나가고 이제 괜찮다는 것입니다. 양식이 넉넉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는 자부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떠났습니다.

2. 나오미가 자부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함

본문 8-9절에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친정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자부들의 앞날을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어머니께로 돌아가 앞으로 재혼해서 남편 얻어 평안히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또 나오미가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라고 하였는데, 자부들은 시어머니를 생각하여 선대하고 또 시어머니는 자부들을 생각하며 자부들의 앞길을 열어 주려고 합니다. 자기 사정만 생각하지 않고 상대방의 사정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자부들은 시어머니에 대한 사정을 알아주며 선대해주고 시어머니는 자부들에게 대한 사정을 알아주며 선대하는 좋은 가정이었습니다. 싸우는 것은 언제나 자기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생각해 준다고 하면 이해를 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해하지 않고 자기중심, 이기주의, 자기 생각만 하면서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하고 또 잘못한다고 하면 잘못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상대방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선대할 줄 아는 그런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 10-14절에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나는 늙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시어머니를 따라 가야 무슨 희망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남편이 있나? 돈이 있나? 집이 있나?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 막연한데 오르바도 처음에는 함께 가려고 따라 왔습니다. 본문 10절 후반절에 “우리
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오르마도 처음에는 어머니를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절 중반절에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르바가 처음에는 따라가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생각을 해보니 따라가야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르바가 자기 어머니에게로 자기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도 어느 정도는 하나님을 섬긴 사람입니다. 또 어느 정도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육에 속한 신자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믿음의 길을 걸어보려고 하다가 나중에는 육신의 길로 돌아섰습니다. 

이런 신자가 많이 있습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 같은데 어려운 일을 당하면 돌아서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돌짝 밭에 뿌린 씨앗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돌짝 밭에 뿌린 씨도 나서 자라지만 좀 있으면 다 말라 죽었습니다. 육에 속한 신자는 어려운 일 당
할 때에 뒤로 돌아갑니다. 시험에 넘어갑니다. 평안할 때에는 따라가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주여, 주여’하며 잘 따라갑니다. 시어머니한테 은혜도 받았고 시어머니를 따라가려고 작정도 했지만 어려운 일을 당하니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나? 육신적으로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이것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니 어머니를 따라가야 육신적으로 무슨 희망이 있느냐? 돌아가자 그래서 자기 백성에게로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또 ‘자기 신에게로 돌아갔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가면 또 자기 신에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돌아가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면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가야 합니다. 안 따라가고 돌아가면 하나님을 못 섬깁니다. 육에 속한 신자는 시험이 들어올 때에 넘어갑니다. 평안할 때에 ‘주여, 주여’하며 잘 따라가다가 어려운 시험이 들어오면 그만 육신으로 돌아섭니다.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 예 하겠느냐, 예 하지 않겠느냐? 가서 어떻게 살겠느냐?’ 여러 가지 염려, 걱정을 하다가 육신으로 돌아서서 그 다음에 가 버리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인가 참으로 끝까지 말씀을 따라가는 신자인가, 이것은 시험이 들어와 봐야 압니다. 시험이 안 들어올 때에는 다 괜찮습니다. 다 같이 따라왔다가 어려운 대목에 가서 불거지는 것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는 어려운 대목에 가서 불거집니다. 아예 생명을 내어 놓고 따라가야 하겠는데 이러한 신앙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 자기 신에게로 돌아가서 모압나라 신을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타락이 된 것입니다. 시험에 넘어가서 완전 타락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 세상을 아직도 끊어버리지 못한 신자는 어느 시점에 가서 시험이 들어오면 그만 넘어가고 맙니다. 그래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3. 룻이 시어머니를 따라가기로 결심함

본문 15-17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도 룻은 안 돌아갔습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에는 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이 희망이 없지만 신앙적으로 볼 때에는 큰 복입니다. 룻은 신앙적으로 나갔습니다. 오르바는 처음에는 믿음으로 가다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섰습니다. 룻은 육신 중심으로 돌아서지 않고 끝까지 신앙으로 나갔습니다. 끝까지 그 시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가겠다는 것은 시어머니에게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고 시어머니에게 있는 하나님의 영감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웠을 것입니다. 앞으로 유다 지파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시겠다는 것도 들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한데 들었든지 남편에게 들었든지 들었을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장차 그리스도께서 나실 백성이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의 하나님이시라고 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시어머니를 통해서 많이 받았고 생명이 살아났습니다. 약속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겠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자기 백성이 됩니다. 믿음을 지키면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만 따라갑니다. 영의 생명이 사는 것만 따라가게 됩니다. 앞으로 가다가 어떻게 될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다가 굶는다든지 집 한 칸이 없어서 가다가 밖에서 자든지 그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장 하나님 한 분만 그저 붙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 하나님께서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 주시고 또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다는 그 말씀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룻의 생명이 시어머니를 통해서 은혜 받음으로 살았습니다. 진리와 영감을 따라가며 생명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백성이 나는 제일 좋습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 제일 좋습니다, 그 외에 다른 신이 필요 없습니다, 어머니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고생 하시는 곳에 나도 가서 고생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가 죽고 어머니께서 장사 지내시는 곳에서 나도 장사 지내겠습니다, 어머니와 같이 끝까지 동행하겠습니다’라고 작정을 했습니다. 결심을 했단 말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로 굳게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사람이 죽는 곳에 자기도 죽어서 장사 지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열왕기상 13장 31-32절에 “그 사람을 장사한 후에 저가 그 아들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가 죽거든 하나님의 사람을 장사한 묘실에 나를 장사하되 내 뼈를 그의 뼈 곁에 두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에 있는 단을 향하고 또 사마리아 성읍들에 있는 모든 산당을 향하
여 외쳐 말한 것이 반드시 이룰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에서 온 젊은 선지자가 있었는데 거기서 죽었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자녀를 보고 내가 죽으면 이 젊은 선지자 옆에다 장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선지자가 자기는 타락했지만 젊은 선지자의 하나님 말씀이 다 진실한 줄 알고 그가 죽어서 장사 지낸 곳에 나도 장사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룻의 신앙도 자기 시어머니의 신앙이 참된 줄 알고 죽는 것 외에는 떠나지 않기로 작정한 신앙입니다. 그곳에서 죽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죽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죄 짓고 사는 것 보다 하나님을 떠나서 육신 중심으로 잘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다가 죽는 것이 좋다는 생각입니다. 

본문 18절에 “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고 하였습니다. 굳게 결심하면 말을 해야 쓸데없으니 다른 사람이 또 다시 말 안 합니다. 어물어물해야 다시 말하지 굳게 결심을 하면 그 다음에는 말하다가 그만 둡니다. 

4.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옴

본문 19절에 “이에 그 두 사람이 행하여 베들레헴까지 이르니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을 인하여 떠들며 이르기를 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에 갔습니다. 시어머니와 룻이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흉년이 들
어서 못 살고 모압 나라로 갔었는데 10년 후에 돌아와 보니 다 살고 있습니다. 괜히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여 떠났습니다. 미리 염려 걱정하는 것이 마귀 시험입니다. 아무리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도, 가보면 다 살고 있습니다. 괜히 떠났던 것입니다. 미리 사람이 추측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내일 염려는 하나님께 맡기고 당장에 오늘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돼서 못살게 되겠다, 모압 나라 가야 살겠다, 여기 있다가 다 굶게 되겠다, 모압 나라 가야만 잘 살겠다’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면 죽자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살 것인데, 풍족한 것을 가지고 나갔다가 다 없어지고 빈손 들고 돌아왔단 말입니다. 또 사람이 다 죽고 비참해졌습니다. 그런데 가니까 온 성읍이 나오미가 돌아왔다고 떠들썩했습니다. 

본문 20절에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무슨 뜻입니까? 각주에 보면 희락입니다. 또 마라는 무슨 뜻입니까? 괴로움입니다. ‘나를 희락이라 하지 말고 괴로움
이라 하라’는 것입니다. 즉, 이름이 나오미이기 때문에 희락이라 불렸지만 지금 희락이 다 없어지고 괴로움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미의 신앙이 나옵니다. 본문 13절 중반절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신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 본문 20절 후반절에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어 돌아오게 한 것은 왜 비어 돌아오게 하셨습니까? 여기서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다, 여호와께서 나를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여호와께서 나를 치셨다’라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안 된 것도 하나님께서 안 되게 해 주신 것으로 믿고, 괴로움 당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괴로움 주신 것으로 믿고, 징벌 받은 것도 하나님께서 징벌하신 것인 줄 믿는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다, 누구 때문에 그렇게 됐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면 안 됩니다. ‘남편 때문에 이렇게 됐다, 남편을 잘못 얻어서, 결혼을 잘못해서, 내가 모압 나라 가지 말자고 하였는데 남편이 고집부리다가 따라갔더니 이렇게 됐다’, 그것이 아닙니다. 또 ‘우연히 죽었다, 남편도 우연히 죽었고 아들 둘도 다 우연히 죽었다’,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됩니다. 풍족하게 나갔는데 여호와께서 비어 돌아오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됐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또 나오미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다 말한 것입니다. 보통은 좋은 일은 말하기 좋아하고 좋지 않은 일은 슬그머니 숨기는 수가 많습니다. 괴로우면서도 “괴롭긴 뭐가 괴로워,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솔직해야 합니다. ‘괴로움을 당했다,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다’, 얼마나 솔직합니까? 솔직하고 겸손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낮아지는 이것이 나오미의 신앙입니다. 우리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재산이 다 없어졌다, 뭐 때문에 재산이 없어졌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없이 하시면 하루 만에 다 없애 치우실 수 있습니다. 원망하지 않고 또 감추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고 솔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겸손과 순진,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보통은 다 없어졌는데 없어졌다는 말을 잘 안 합니다.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면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낮아졌단 말입니다. 숨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솔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징벌하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치셨다, 또 전능자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셨다’, 얼마나 솔직합니까? 낮아졌습니다. 신앙적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이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이 베들레헴 성 안에 다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들레헴 성 안에서 나오미의 신앙에 대해서 다 칭찬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믿나? 어떻게 하나님께서 치셨다는 것을 알고 겸손해졌는가? 어떻게 이렇게 진실하고 겸손할까? 그
자부와 같은 그런 신앙이다’, 이것이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것이 재산입니다. 베들레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나오미를 아는 것이 나오미의 재산입니다. 앞 길이 열립니다. 신앙 때문에 앞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감추며 슬슬 돌아가거나 남에게 폐나 끼치려고 하거나 가까운 친척인 보아스의 집에 가서 사정한 것 없습니다.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괴로움이다, 마라다’ 하고서 낮아져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다음 날 자부가 보리 추수할 때라 이삭 주우러 나갔는데 마침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보아스의 밭에 갔고 보아스가 룻의 신앙을 안 것입니다. 

또 시어머니인 나오미의 신앙도 안 것입니다. 다 들었으니까 그것 때문에 보아스가 밥을 주고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참된 신앙으로만 나가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 그렇게 되려니까 됐겠지’ 하며 나아가면 안 됩니다. 보통 무슨 일이 하나 생겨도 하나님께서 해 주신 줄 믿지 않고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됐다, 팔자가 사나워서 이렇게 됐다, 그렇게 되려고 해서 이렇게 됐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나오미는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했다, 전능자가 나를 징벌했다, 여호와께서 나
를 징벌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솔직합니까? 얼마나 좋습니까? 또 돌려서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고백한 것입니다. 참된 신앙을 가지면 하나님께서 앞 길을 열어 주십니다. 또 참된 신앙을 가지고 왔기 때문에 베들레헴 사람들도 다 동정을 했습니다. ‘그분들은 신앙이 좋은 분들이다, 룻이라는 자부도 참 좋은 믿음이다, 믿음이 좋다, 그들의 신앙은 참된 신앙이다’라고 인정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 길이 열려서 형통하게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회개하고 솔직하고 겸손하고 낮아질 때에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룻기 1:1-18 나오미의 회개와 룻의 신앙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나오미의 회개와 룻의 신앙
룻기 1:1-18

1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2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4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6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7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8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9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10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11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12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느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13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14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 15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8나오미가 룻의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 

1. 엘리멜렉의 가족들이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으로 감

본문 1-5절에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왕이 있기 전에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치리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유다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어떻게 살까’하며 생활 문제로 인해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유다 땅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는 나오미라고 하는 아내와 말론과 기룐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엘리멜렉의 가족은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기 때문에 그 곳을 떠나 모압으로
갔습니다. 아마도 모압에는 흉년이 들지 않아 먹을 것이 넉넉했던 모양입니다.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에서 몇 년 사는 동안 호주(戶主)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 나오미와 아들 말론과 기룐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큰 아들의 아내는 오르바이고 작은 아들의 아내는 룻이었습니다. 그곳에 거한지 십 년 즈음에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가정에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오르바와 룻, 이렇게 과부 셋만 남았습니다. 

2. 나오미가 회개하고 유다 땅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함

본문 6절에 “그가 모압 지방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들었으므로 이에 두 자부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과부 셋만 남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유다 땅을 권고하셔서 양식을
주셨다 하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흉년이 좀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베들레헴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했는데 이방나라인 모압 나라로 가서 이렇게 참패를 당했습니다. 남편이 죽고 아들 둘도 죽어서 며느리 둘과 함께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나오미는 이렇게 된 것이 베들레헴을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 것인 줄 알고 회개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본문 13절에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1장 21절에는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셨기 때문에 괴로움을 당한다고 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징계를 하실 때에 그 징계가 하나님의 징계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여 바로 세우게 하시려고 징계하시는 것입니다. 히브
리서 12장에 ‘하나님의 아들은 다 징계를 받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 아니면 징계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잘못하기 때문에 징계를 주시는 것입니다. 징계가 없으면 참 아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징계가 있을 때 하나님의 징계인 줄 알고 언제나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를 늘 찾아야 합니다. 나오미 가정의 잘못은 베들레헴을 떠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곤란을 당하면서도 어떻게든지 참고 견디며 나갔는데 나오미의 가정은 그것을 못 참고 베들레헴을 떠났습니다. 그러다가 이런 큰 징계를 만났습니다. 

유다 땅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땅입니다. 신명기 11장 10-12절에 “네가 들어가 얻으려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땅은 하나님께서 권고하시는 땅입니다. 또한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 눈이 항상 살펴보시며 필요할 때 모든 것을 주시는 땅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이 땅을 떠나지 않아야 하겠는데 흉년이 좀 들었다고 모압 땅에 가서 결국 완전히 참패를 당했습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들어와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위치를 떠나면 안 됩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그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 당시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으면 큰 고난이 왔습니다. 이때는 예수님을 잡아 죽인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시기로 예수님을 죽인 빌라도나 제사장 그리고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때였습니다. 그래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거기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데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그래도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하셨으면 떠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거기서 충성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까이 하고 거기서 믿음으로 살면서 이겨야만 합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유다 땅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큰 징계가 왔습니다. 유다 땅을 떠났다는 것은 믿음을 떠나고,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앙이 온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흉년보다 더 큰 경제적인 어려움이 왔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신 것입니다. 누가 잘못했다, 누구의 잘못이다, 이렇게 말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징계로 이런 경제적인 재앙의 고난이 온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는 깨달아야 합니다. 나오미가 지금의 비참한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인 줄을 깨달았습니다. 전능자가 괴롭게 한 줄을 깨달았습니다. 그 다음으로 일어나서 돌아가야 합니다. 나오미는 일어나서 베들레헴을 돌아가야만 살 길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우리도 현 시점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떠났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재앙이 온 것임을 깨달아서 회개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자리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옛날의 축복을 해 주실 것으로 믿고 결심해야 합니다. 징계 받을 때에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징계가 왔을 때 하나님께서 믿음의 자리로, 말씀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징계를 내리신 줄 알고 어디서 믿음이 떨어졌는지, 어디서부터 탈선이 되었는지 찾아서 회개하고 돌아서야 합니다. 그 옛날 고향으로, 본바탕으로, 원래의 신앙으로 돌아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어머니의 하나님을 따라가는 룻의 신앙

본문 7-13절에 “있던 곳을 떠나고 두 자부도 그와 함께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행하다가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
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느니 남편을 두지 못할찌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는데 문제는 두 자부였습니다. 그들은 모압 여인들로서 둘 다 과부가 되었기 때문에 나오미는 두 자부에게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하면서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새 남편을 얻어 평안히 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쫓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나오미의 제안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고 하였습니다. 큰 자부 오르바는 돌아갔
지만 작은 자부 룻은 나오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본문 15-17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룻의 신앙이 나타납니다. 나오미가 네 동서처럼 돌아가라고 하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적으로 볼 때 과부 시어머니를 따라가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베들레헴은 나오미의 가정이 십여 년 전에 떠난 곳이어서 가더라도 토지 하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집이 있습니까? 과부 시어머니 따라가서 뭐가 좋겠습니까? 그런데도 룻이 따라갔던 이유는 하나님이 너
무 좋아서였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통해서 믿음을 받았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어머니께서 섬기는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나도 어머니를 따라가 하나님 섬기고 살겠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즐겁고 감사해서 그 사랑의 감격에 넘쳐서 이제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없고 재산이 없어도 하나님 한 분으로 살려고 따라갑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무 귀중해서 모시고 살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룻은 나오미를 따라간 것입니다. 

룻이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라간다는 것은 시어머니가 전해준 믿음이 너무 훌륭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시어머니 믿음을 본받고자 시어머니의 곁을 떠나지 않고 따라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를 떠나 모압에서도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지만 훌륭한 시어머니의 믿음과 살아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속에 참여하려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엘리사가 자기 선생 엘리야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엘리야가 말년에 엘리사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나는 끝까지 따라가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길갈, 여리고, 요단들로 갈 때 계속 오지 말라고 하는데도 끝까지 따라갔습니다. 

룻은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이 위대하시고 그 하나님 한 분만 모시고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고 귀한 것임을 알아 어머니의 신앙을 본받아 끝까지 그 신앙의 길을 따라가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유숙 하시는 곳에 나도 유숙하고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에서
이 어머니의 백성은 유다 백성으로, 즉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16편 2-3절에 하나님의 백성이 아주 귀중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성도가 모일 때에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십니다.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으로 오자 모든 사람들이 영접했습니다. 나오미는 그 사람들에게 “나를 나오미라 하지 마십시오, 나를 마라로 칭하십시오,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어찌하여 나를 나오미라 합니까”라고 말했습니다(룻 1:20). 나오미는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은 희락이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징벌하셨기 때문에 괴로운 중에 돌아왔소”라고 하며 신앙 고백을 했습니다. 

4. 이삭을 줍는 룻

룻은 고국을 떠나 산 설고 물 설은 유다 땅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서 먹을 것을 장만하기 위해 이삭 줍기에 나갔습니다. 아마도 그 시기가 추수할 때였나 봅니다. 보리나 밀과 같은 것을 추수한 후 떨어진 이삭을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룻은 이삭을 줍기 위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룻의 신앙이 그 베들레헴에 소문이 났습니다.
룻기 2장 12절에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룻은 하나님을 자기의 모든 것, 전체로 여겨 그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베들레헴에 왔습
니다. 또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가장 존귀하게 여겨 그 사랑 안에서 언제나 감격해서 살고자 고국의 산천, 부모와 형제를 다 떠나서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 베들레헴으로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룻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우러 간 룻을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의 밭으로 가게 하셨습니다. 

룻기 2장 3절에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가장 가까운 친척입니다. 일부러 찾아가려 해도 못 찾아 가겠는데 제일 좋은 사람의 밭으로 하나님께서 인도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삼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보호 받으며 그 백성 가운데 살려고 자기 고국, 친척, 부모를 다 버리고 회개하고 믿음으로 돌아온 룻을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사람의 밭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전도서 9장 11절에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해 주셔야합니다. 제가 좋은 사람을 찾아다녀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고 믿음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제일 못된 사람만 만나서 속고 사기나 착취를 당하게 됩니다. 

사람의 걸음은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서 그 분을 첫째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따라가면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할 때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의 밭으로 우연히 인도해 주십니다. 하
나님께서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며 복을 주십니다. 룻이 이삭을 줍고 있는데 밭 주인 보아스가 왔습니다. 보아스는 룻의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일꾼에게 룻이 어떤 여자인지 물었습니다. 일꾼은 룻이 나오미가 돌아올 때 따라 온 며느리인데 아침부터 밭에서 이삭
을 줍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보아스와 나오미는 가까운 친적 관계입니다. 그래서 보아스는 룻에게 이삭 줍기를 다른 데에서 하지 말고 보아스의 밭에서 일하는 소년들과 함께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소년들에게는 건드리지 말고 먹을 것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룻기 2장 14절에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함께 점심을 들자고 권하였습니다. 우리도 룻의 이삭 줍는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추수할 때 땅에 떨어지는 이삭은 주워가지 않으면 그냥 내 버리는 것입니다. 이삭이 떨어져 봤자 얼마나 떨어지겠습니까? 누구도 귀히 여기지 않고 탐하지 않는 이삭 줍기를 룻은 했습니다. 모압 여인 룻이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했다면 누
가 좋은 직장을 마련해 줬겠습니까? 또한 돈을 한꺼번에 많이 벌려고 했다면 누가 벌게 해 주었겠습니까? 

룻은 좋은 직장도, 많은 돈도 가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보잘 것 없는 일이라 해도 이삭 줍기에 힘을 썼습니다. 우리도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만 하나님의 권고가 임합니다. 좋은 직장을 다니려거나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도 이삭 줍는 그런 자리
에 내려 가면 하나님께서 이삭을 줍게 해 주십니다. 수입도 형편없이 보이는 제일 낮은 자리에서도 어떻게 하든지 믿음이 첫째인 줄 알아서 하나님께서 주시면 먹을 것이고 안 주시면 굶자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앞길을 열어 주십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제일주의로 삼고 이삭 줍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사업을 한다고 할 때에도 이삭 줍는 사업을 해야 우연히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시며 인도해 주십니다. 

룻처럼 나가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도 예비하십니다. 룻은 점심도 안 싸가지고 왔습니다. 점심거리가 있어야 준비해 가지 않겠습니까? 이삭줍기를 하러 아침에 나가면서 점심 먹을 준비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걱정 할 것 없게 되었습니다. 보아스의 집에서 곡식 베는 사람과 같이 앉아서 볶은 곡식을 먹고 남을 만큼 많이 주어서 싸 올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보아스가 다른 데 가지 말고 여기서 이삭을 주우라고 하며 곡식 베는 소년들에게는 룻을 잘 보호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주우면 얼마나 주워 가겠느냐 싶어 소년들에게 추수하다가 몇 개씩 떼 내어 버리라고 시켜서 룻이 많이 줍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날 이삭을 하루 종일 줍는데 한 에바를 주웠다고 했습니다. 한 에바는 22리터로 대두 한 말 한 되, 소두 두 말 두 되의 양입니다. 대두 한 말이면 얼마나 많습니까? 밀가루 한 포대 정도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이삭 줍는 자리에 내려가니 하나님께서 우연히 좋
은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그 사람 마음을 감동시키심으로 룻을 보호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대성공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돌아온 나오미와 하나님이 제일인 줄 믿고 고국, 산천, 부모를 다 내어버리고 따라온 룻에게 하나님께서는 복된 길을 허락하셨습니다. 좋은 밭에 가게 하시고 우연히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시고 먹을 것도 주시며 보호해 주셨습니
다. 또한 하나님께서 보아스를 통해서 여인 혼자 들판에서 일을 할 때 젊은이들이 건드릴까 하여 보호하게 하시고 이삭 줍는 양이 얼마 안 되니까 줌에서 좀 떼 내어 많이 줍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볶은 곡식도 먹고 싸가지고 갈 수 있었고 이삭은 하루 동안 한 에바나 줍게 되었습니다. 

5. 하나님께서 축복하심

하나님께서 룻의 앞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모든 일에 형통하게 되고 마지막에는 보아스와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마도 보아스가 결혼을 안 했던 모양입니다. 보아스와 결혼해서 오벳이라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이고 다윗 왕의 할아버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룻이 들어갔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룻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베들레헴을 떠나서 하나님의 징계로 비참하게 됐지만 나오미처럼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룻이 고국과 부모 형제를 떠나더라도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다 하며 끝까지 따라온 일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해서 살고
자 할 때 하나님께서 우연히 좋은 밭에 인도해 주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이삭 줍는 자리로 내려가니 하나님께서 보호하셔서 먹을 것도 주시고 사업도 잘 되게 해 주셨습니다. 이삭 줍기를 많이 하게 해 주셨습니다.
룻이 이삭을 한 말이나 주웠다고 했는데 흉년 때 한 말이면 얼마나 많은 양인지 아십니까? 오늘날 쌀 대두 한 말이면 별 것 아닌데 이북에서는 대두 한 말에 천 원 합니다. 이북 돈으로 인건비가 한 달에 백 원인데 천원이 얼마나 큰 돈입니까? 이북에서 쌀 대두 한 말만 얻어 놓으면 이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룻이 흉년 때 기근을 피해서 모압 나라에서 와서 얼마나 궁핍한 처지였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을 것도 넉넉하게 해 주시고 결혼도 잘 하게 해 주셔서 오벳을 낳게 하시며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과 하나님 한 분으로 살려고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버리고 하나님만 따라가는 것, 그 다음에 이삭 줍는 신앙을 가지고 이삭 줍는 자리에까지 내려가는 것이 중요한 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하여 하
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길을 잘 따라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