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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5일 토요일

시편 38:1-22 성도의 쇠약과 회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도의 쇠약과 회복
시편 38:1-22

1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2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4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5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6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7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8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9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13나는 귀먹
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15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16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 존대할까 하였나이다 17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20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21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1. 죄악으로 오는 고통

본문 1-3절에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38편은 다윗이 심한 고통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라고 한 것을 보면 다윗이 욥과 같이 몸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큰 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윗은 자신이 당하는 고통이 죄 값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징계인 줄 알고 하나님께 회개하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또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육체만 고난당하는 것이 아니라 심적으로도 고통 중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뼈 속 깊이 고통당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본문 4절에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누르는 죄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습니다.

본문 5절에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상처라는 말은 타격이라는 뜻으로, 지금 타격이 너무 커서 상처가 나 악취가 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나의 우매한 연고니이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다윗이 일의 책임이 자
기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육체적, 정신적인 고난에 성한 곳이 없을 만큼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심적으로도 뼛속 깊이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녔습니다.

본문 7절에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허리는 힘을 쓰는 부분인데, 그 허리에 열기가 가득해서 힘을 못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라는 말씀은 본문 3절과 7절에 두 번 나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육체는 피곤하고 심히 상해 있습니다. 그리고 마음은 불안하고 슬픈 중에 있으며, 탄식하는 중에 있습니다.

2. 소원을 주께 두고 부르짖음

본문 9절에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죄로 인해 고난을 당하면서라도 소원을 하나님께 두고 주께 부르짖는 것이 참 믿음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에 낙심하지 말고, 그 고난이 그저 우연히 된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방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이시고 구원이시다. 나의 모든 소망이 하나님께만 있다’라고 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절망에 빠지지 않고 낙심하지 않으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부르짖는 성도는 희망이 있는 성도입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로 예정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난을 당하여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부르짖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3.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멀리 함

죄악으로 오는 고통을 인하여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자가 복됨

본문 10절에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죄로 인한 고난으로 육체적으로 고통이 심하여 심장이 뛰어 안정이 없고 기력은 쇠해졌습니다. 눈의 빛도 다 없어질 만큼 가련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다윗은 심한 고통 중에 있습니다. 본문 2절에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라고 한 것은 심적 고통을 가리킵니다. 마음에 찌르는 것과 같은 고통, 주의 손이 심히 누르는 것과 같은 고난을 죄로 인해 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32편 3-4절에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있는 자는 이렇게 자기의 죄와 싸우고, 그 죄 때문에 안타까워합니다. 또 죄를 범한 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큰 고통을 당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간 사람이고 영으로 사는 사람이며 신앙양심을 쓰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죄 때문에 고난당하는 사람,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위하여 애통하는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날마다 자기의 죄를 붙들며 회개하고, 그 죄 때문에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리 누르시는 것을 깨닫고, 슬픈 중에 다니며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려고 힘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믿음에 서 있는 증거입니다. 또 다른 사람의 죄를 보지 말고 언제나 자기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애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항상 성경말씀과 자기를 결부시켜서 ‘나는 탕자와 같이, 맏아들과 같이 감사할 줄 모르는 자이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많은 것을 받아 지내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자가 바로 나이다’라고 하면서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자기가 그런 자임을 고백하고 늘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시편 기자 다윗은 자주 심하게 맞은 것 같습니다. 원수로부터의 외부적 환난도 받았고 징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의 죄로 인한 고통이 큰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 힘든 고난입니다. 다윗은 죄를 짓고 주의 손이 주야로 내리누르는 상태, 죄로 인해 심히 슬퍼하고 열기가 더하며 심장이 뛰고 몸이 피곤해지는 심령 상태, 뼈가 쇠하고 진액이 마르는 데까지 고통을 당하는 심령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은 벌써 그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고 있는 증거입니다. 그런 자가 복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모든 책임을 전부 자기가 졌습니다. 본문 5절에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은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범죄를 저질러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자기의 어리석은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망할 것인데, 그것도 모르고 죄를 지었으니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또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되는 것이 없는데, 그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나갔으니 그것이 바로 어리석은 증거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을 들어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는 죄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요한일서에 ‘죄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예레미야애가에도 ‘하나님 앞에 잘못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 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원통히 여기며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도 심령이 마비된 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임

1)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함

그러나 양심이 마비된 사람은 죄를 짓고도 그 죄 때문에 통회할 줄을 모릅니다. 주께서 손으로 누르시는 징계를 받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인 줄 모르고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만 생각합니다. 또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다 죽게 되었을 때에도 깨닫지 못하고, 그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죽습니다.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은 유다 사람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자기가 탕자와 같은 사람인 줄 알지 못하고 ‘나와는 상관이 없다. 탕자
는 타락이 되어서 하나님을 아주 떠나 교회를 안 나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 떠난 것입니다. 성경과 자신과는 아예 상관도 없는 사람처럼 전부 다른 사람에게만 성경말씀을 적용시키고 자기에게는 적용을 안 하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그것은 자기가 먹어야 할 양식을 남에게만 주려고 하고, 자기는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가 먹어야 합니다. ‘나의 대한 말씀이다. 나에게 책망하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다’라고 하며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도 다 맏아들과 같은 사람인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지만 감사를 얼마나 하였습니까? 감사를 하긴 하였어도, 사실 백분의 일도 못한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1%밖에 안되고 감사를 못한 것이 99%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감사하는 믿음, 감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탕자가 자기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탕자와 같이 하나님의 품속을 떠나 세상에 빠져서 방탕하여 자행자지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나가는 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돌아오는 생활을 해야 하고, 돌아와서 하나님을 영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으로 더불어 즐거워하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2) 악인은 형통하나 성도는 종일 재앙을 당함

‘그러면 안 믿는 사람이 왜 잘되는가’에 대해서 여기서 하나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잘 믿으려는 사람은 조금만 죄를 지어도 징계를 받는데, 안 믿는 사람은 왜 징계를 받지 않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시편 73편에 있습니다. 시편 73편 2-17절에 “나는 거의 실족할 뻔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였음이로다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타인과 같은 고난이 없고 타인과 같은 재앙도 없나니 그러므로 교만이 저희 목걸이요 강포가 저희의 입는 옷이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저희 소득은 마음의 소원보다 지나며 저희는 능욕하며 악하게 압제하여 말하며 거만히 말하며 저희 입은 하늘에 두고 저희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그러므로 그 백성이 이리로 돌아와서 잔에 가득한 물을 다 마시며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였더면 주의 아들들의 시대를 대하여 궤휼을 행하였으리이다 내가 어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내게 심히 곤란하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저희 결국을 내가 깨달았나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시편 73편 14절에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악한 사람보다 바로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그 성도가 왜 종일 고난을 당하고 아침마다 징책을 보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마가편(走馬加編)이라고,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채찍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채찍질해서라도 바로 세우시고 잘 기르셔서 하나님의 일 가운데 많은 것을 맡기시며 귀히 쓰시려고 채찍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채찍질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 다음에 지옥에 갈 자들인데, 채찍질해서 뭐하겠습니까? 가만 내버려뒀다가 지옥에 보내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을 훈련을 시켜서 쓰시는 것입니다. 또 아예 안 쓸 사람은 가만 두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축도 쓸 만한 것들로 훈련을 시킵니다. 말이나 소와 같이 일 잘하는 가축으로 멍에를 메도록 만들고 수레를 잘 끌도록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하는 데 쓰지 못할 것들은 뚱뚱해지고 빵빵해지도록 먹이기만 합니다. 도살(屠殺)할 것이므로 잘 먹이는 것입니다. 채찍으로 때리지도 않습니다. 책망도 하나 안 합니다. 그러나 말이나 소는 매일 회초리질을 하며 가만 놔두지를 않습니다. 늘 끌고 나갑니다. 그러나 돼지는 잡아먹을 것이므로 한 번도 채찍으로 때릴 것이 없습니다. 이처럼 악한 사람은 결국 지옥에 보내질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손대지 않으시고 가만 내버려두신다는 것입니다.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채찍

하나님의 채찍의 종류와 관련하여, 조금만 잘못해도 즉시 징계 받는 사람이 있고 가끔 징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늙어 죽을 때 한 번 징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시편 73편에 나오는 성도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에게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가만 놔두면 안 되겠기에, 어떻게 하든지 좀 더 훈련을 시키시고 연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쉴 새 없이 연단을 시켜서 귀한 일을 맡기시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을 위하여 많은 상급을 쌓아놓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받을만한 자격을 만드시려고 쉴 새 없이 훈련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다가 이따금, 한 번씩 징계를 받는 사람은 그 사람만 못합니다. 또 죽을 때 한 번 징계 받는 사람도 그냥 끝나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학교에서 공부를 시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공부하는 것을 가지고 재촉하고 책망하면서 가르치는 학생은 잘됩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은 며칠 만에 한 번씩 돌아보고 심지어 어떤 아이는 숙제를 안 해왔는데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가만 내버려둡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에게는 숙제해왔느냐고 매일 재촉을 하고 안 해왔으면 매일같이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보기에 책망을 해봐야 쓸데 없는 아이는 가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아마 초등학교에 가면 매일 책망과 재촉 속에서 지내는 학생과 가끔 한 번씩 점검 받는 학생, 아예 가만히 내버려두는 학생이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반에서 끝에서 부터 몇 등 안에 들어가는 아이들은 가만 내버려둘 것입니다. 희망이 있어야 뭘 재촉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는 사람은 재촉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책망해봤자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앞으로 희망이 없으니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이와 마찬가지이십니다. 장차 쓸 만한 성도, 희망이 있는 성도,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예정한 성도는 매일 책망을 하십니다. ‘너 왜 이렇게 했느냐? 왜 기도를 안 했느냐? 왜 연보를 안 하느냐? 왜 힘을 안 쓰느냐?’라고 늘 징계와 책망을 하십니다. 그리고 보통짜리 성도는 잘못을 해
도 이따금 한 번씩 모아놓았다가 징계를 하십니다. 그리고 제3선에 놓은 사람은 그저 가만 놔두었다가 죽을 때 가서 한 번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은 악한 사람들인데, 그들은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잡아먹을 돼지와 같아서 아주 내버려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좋겠습니까? 마지막 네 번째는 안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죽을 때 한 번 맞는 것은 3번, 가끔 한 번 맞는 것은 2번, 조금만 잘못해도 자주 징책을 받는 것은 1번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1번으로 해주시면, 좋기는 좋은데 인간적으로 겪어내기가 좀 힘듭니다. 눈, 코 뜰 새 없이 매일 당하는 것입니다. 종일 재앙을 당하면서 아침마다 지치게 되니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러나 힘은 좀 들어도 그렇게 고난을 당하는 사람은 희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것을 준비해놓으시고 그 사람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 외에 보통 사람은 받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그런 고난을 주지도 않으십니다. 교인 가운데에는 2번이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3번은 죽을 때 한 번 받으니 해 받는 구원밖에는 안되기 때문에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가끔 한 번씩 징책을 받는 것이 제일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1번에 들어간 사람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육신은 힘이 들어도 영적으로 진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육신적으로 보면 3번이 제일 좋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환난 없이 잘 살고 죽을 때 한 번만 당하면 되니, 한 번만 고난 받고 회개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영적으로 보면 제일 소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일 복을 못 받은, 복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가끔 한 번씩은 맞아야 복이 있는 사람이지, 맞지 않으면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멀리 함

본문 12절에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라고 하였습니다. 생명을 찾는 자, 즉 죽이려는 자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은밀하게 거짓을 꾸며서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징계를 받고 환난을 당할 때에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은 다 멀어지며 원수들은 많아지고 죽이려는 사람들도 일어나서 괴악한 일을 도모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해서 성도를 죽이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때에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13-15절에 “나는 귀먹은 자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그러한 상황을 앞에 두고 답변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듣고도 못 들은 척하고 할 말이 많아도 입을 봉하고 변박하지 않으며 하나님께만 다 맡기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만 맡기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자가 참된 성도입니다. 자기가 나가서 싸우며 답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간구하면서 주님께서 구원해주실 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만약 일이 안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여간 욕을 먹고도 가만히 있고, 안 한 것을 했다고 해도 가만히 듣고 있고, 괴악한 말을 하여도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귀머거리같이 벙어리같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
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누가 도와주시겠습니까? 자기가 나가서 싸우며 맞장을 뜨고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만 부르짖고 순종해나가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만 순종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주님이 가신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24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전부 맡기신 것입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자기 갈 길만 가신 것입니다. 자기의 갈 길, 의무,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면 결국 하나님께서 다 건져주시고 바로 세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드러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4. 많은 원수들이 해하려고 함

환난의 때는 사랑하는 자가 멀어지고 친구도 다 멀리 떠납니다. 잘될 때에는 사랑하는 자도 가까이 오고 친구도 가까이 합니다. 술을 잘 먹고 방탕할 때에는 친구가 천 사람이라도 있는데, 급하고 어려울 때에는 한 사람도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욥을 봐도 그가 고난을 당할 때에 아내가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어떤 분이 병이 나서 시골 아들네 집에 가서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시골까지 심방을 갔었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아들 내외가 병든 어머니를 잘 돌봐드리지
않더랍니다. 며느리는 “아, 서울서 왔구만요”하더니 시어머니에게 한 마디도 전하지 않고 자기 방으로 쑥 들어가서 자기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하더니 훌떡 나가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할머니 방 쓰레기통에 피가 많이 쏟아져 있어서 물어보니까 며칠 전에 피를 많이 쏟았다고 합니다. 코피도 많이 나오고 입에서도 피가 많이 나왔는데, 같이 있던 손자는 그것을 보고도 가만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날 피를 쏟다가 죽을 뻔 했는데 할머니를 쳐다보고 아무 소리도 안 하고 가만히 있더랍니다. 심방을 갔다 온 사람들 말이 산 사람을 고려장하는 것처럼, 방에 밥 한 술 갖다놓고 가족들이 하나도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손자는 보고도 못 본 척 하고, 며느리는 연락도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돼지우리에 넣어놓은 것처럼 일절 돌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얼마 못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하는데, 그것이 문제입니다. 아들도 여럿 있는데 모시겠다는 아들이 없고, 딸도 있는데 안 봐드린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병이 나면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맞습니다.

또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친구도 점점 멀어집니다. 내가 잘될 때에는 ‘반갑다. 좋다’라고 하지만 내가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면 친구가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그럴 때에 멀어지는 것은 성경대로 된 것이니까 섭섭해 할 것 없습니다. 친구가 다 떠나고 멀어져도 잘된 것이고 당연한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 존대할까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가 넘어질 때 원수들이 망자 존대(妄自尊大)할까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넘어질 때 악한 원수들이 자기들이 잘한 것처럼 득세할까 두렵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9절에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라고 하였습니다.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원수가 강하고 활발하며 무리하게 공격하며 나를 잡아 삼키고 넘어뜨려서 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신세를 진 사람들, 자기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들까지도 배은망덕하게 악으로 선을 갚으면서 나를 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 구원을 부르짖음

본문 21-22절에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고 이렇게 부르짖는 성도를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환난을 당하는 성도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어떠한 환난을 당해도 그 가운데서 반드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가 뭘 하려 하지 말고, 원수도 자기가 갚으려고 하지 말고, 자지가 나가서 싸우려고도 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로 서고 회개하면서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구원해주시고 건져주시며 보호해주십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를 건져주신다는 것을 나타내시려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앞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것을 믿고 계속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그런 성도가 참 귀한 성도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