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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열왕기상 1:1-14 아도니야의 모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아도니야의 모의
열왕기상 1:1-14

1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 5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 6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
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11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13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고하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할 때에 나도 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리이다 

1. 수넴 여자 아비삭으로 다윗을 봉양케 함

사무엘상은 사울 왕의 역사이고 사무엘하는 다윗 왕의 역사이며 열왕기상은 솔로몬 왕의 역사입니다. 본문 1절에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십 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2장 11절에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십 년이라 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치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십 년 동안 왕을 했는데 헤브론에서 칠 년,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이가 상당히 많아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인이 되면 아무리 두터운 의복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습니다.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버선 신는 노인이 있는데 더운 줄을 모릅니다. 젊은 사람들은 맨발로 다녀도 땀이 나는데 나이 든 사람은 버선을 신습니다. 나이가 많으면 의복을 두텁게 입어도 따뜻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에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듯하시게 하리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나이가 많아 연로해지면 의복이 첫째입니다. 의식주 가운데 첫째가 의복입니다. 자식들은 부모님들을 따뜻하게 해드리는 것이 효도입니다. 그리고 잘 대접해야 하는데, 음식도 잘 해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 많아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못하였고 봉양하는 데에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본문 3-4절에 “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넵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 왔으니 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리따운 여자를 데려다가 봉양하게 하고 같이 자게 했어도 다윗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다윗 왕은 이성 문제를 초월한 왕입니다. 예전에 젊었을 때 범죄하고 여호와께 침상이 젖도록 회개한 후에 다시는 그런 죄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편 6편 6절에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밤마다 침상을 띄우고 요를 적실만큼 한번 지은 죄로 인해서 다윗 왕은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죄 지을 생각이 들어
오지 않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다시 그런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호리라도 남기지 아니하고 뿌리까지 뽑아버리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다윗은 마음까지 뽑아버리는 그런 회개를 한 것입니다. 철저한 회개를 하였기 때문에 다윗에게 여자를 붙여 시중을 들게 하여도 거기서 믿음을 잘 지키고 동침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복들은 ‘어떻게 하면 왕을 잘 봉양할까’를 생각해서 동녀를 구한 것입니다. 왕이 나이가 많아서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않고 밧세바도 나이가 많아 잘 해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음식은 요리사들이 잘 했겠지만 봉양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사십 년 동안이나 몸을 바쳐 충성한 다윗 왕을 어떻게 해야 잘 봉양할까’가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생각했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따뜻하게 봉양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젊은 여자를 이스라엘 경내에서 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수넴 여자 아비삭이라는 처녀로 왕을 봉양하게 하였습니다. 또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 왕을 잘 봉양했습니다. 다윗 왕은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아니하고 봉양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잘 지켜나갔습니다. 다윗은 훌륭한 왕이고 신하들도 훌륭한 신하들입니다.

2.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모의함

본문 5절에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 인을 예비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학깃의 아들이 아도니야입니다. 그런데 그가 스스로 높여서 ‘내가 왕이 되리라’고 하며 왕이 될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도니야는 다윗 왕의 아들 가운데 제일 연령이 많았습니다. 맏형이고 살아있는 사람 가운데에서 용모가 제일 준수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자신이 형제들 중에 제일 나이가 많고 체형으로도 준수하기 때문에 ‘내가 다윗의 후계자로 왕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나 봅니다. 백성들도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니 후대의 왕이 누가 될 것인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다윗의 맏아들이 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백성들이 보기에도 아도니야가 준수하고 위력이 있으니까 그가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믿는 때였습니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대 오십 인을 예비했습니다. 사무엘하 15장 1절에 “이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전배 오십 명을 세우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압살롬이 자기 앞으로 호위병 군사 오십 명을 예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도니야도 이렇게 전배(前陪) 오십 인을 준비했습니다.

본문 6절에 “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 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자주 책망을 했더라면 아도니야가 이렇게 오만불손하게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인 다윗이 그를 한 번도 책망을 하지 않아서 제멋대로 자라난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제일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칭찬만 받아왔고, 왕의 아들 가운데 얼굴도 잘생겨서 준수하고, 나이도 제일 많으니 이런 실력을 배경으로 왕이 될 생각을 갖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교만이라는 것은 실력을 배경으로 해서 옵니다. 실력이 좀 있으면 교만이 들어옵니다. 그림자와 같습니다. 판이 크면 그림자가 크고 판이 작으면 그림자가 작은 것처럼 실력이 좀 있으면 그만큼 교만해집니다. 실력이 없으면 교만도 작고, 실력이 있으면 교만도 큽니다. 압살롬도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도니야도 얼굴이 잘 생겨서 교만이 들어오고, 아버지가 한 번도 책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다 칭찬해주니까 ‘내가 왕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스스로 교만해서 이런 교만한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아도니야가 아버지 다윗을 왕으로 세워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은 참람된 생각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왕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하나님께 큰 잘못입니다. 

본문 7-10절에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을 왜 안 청했습니까? 청해도 협조를 안 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수하게 대접을 하려고 했으면 청했을 텐데, 왕이 되려고 하니까 이 사람들이 반대할 것 아닙니까? 나단 선지나 브나야나 솔로몬이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청하지 않았습니다. 

아도니야는 자기를 동조해줄 사람들만 불러서 에르노겔 근방 소할렛 돌 곁에서 잔치를 하며 왕이 될 작정이었습니다. 잔치에 청하면 군대장관과 제사장 등 많은 사람들이 모이니까 그들을 잘 대접 해주면서 속이고 왕위에 오를 작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도 다윗의 아들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왕이 되겠다는데 가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3. 나단 선지자가 밧세바에게 가르친 방침

하나님의 종 나단 선지자

본문 11절-14절에 “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당신은 다윗 왕 앞에 들어가서 고하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할 때에 나도 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단 선지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예전에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에 그에게 가서 책망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다윗이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고 거꾸러져 회개한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오른팔과 같이 쓰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니 하나님께서 지금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사람들끼리 왕을 세우면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가 되지 못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십니다.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빛을 가지고 갔습니다. 인간을 왕으로 삼으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빛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사무엘하 7장 12-13절에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역대상 22장 9-10절에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 저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할찌라 저는 내 아들이 되고 나는 저의 아비가 되어 그 나라 위를 이스라엘 위에 굳게 세워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솔로몬을 세워 네 일을 잇게 하고 그 일을 굳게 세우라. 내가 그로 영원까지 왕으로 있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을 왕으로 세워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영원까지 이르게 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전에 다윗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밧세바에게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겠다고 맹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나단 선지자가 다 압니다. 분명히 솔로몬이 왕이 된다는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분명히 솔로몬을 장차 왕으로 세우셔서 성전을 짓게 하고, 그 위를 견고하게 하여 영원히 그 왕위를 잇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 어긋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갔습니다. 하나님의 빛을 가지고
가면 그곳에 빛이 들어갑니다. 인간끼리 무엇을 해나가려고 하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간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 선지자를 통해서 들어왔기 때문에 그 빛이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됩니다. 이것
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끼리 무엇을 하려고 하고, 자기 힘으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다 흑암인 줄 알아야 합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빛이 들어가 역사해야 합니다. 그때에 밝아지고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고 앞길을 열어주시고 형통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중요한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럴 때 필요합니다.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이 복이 있음

사실 아도니야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책망을 받지 않았지만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책망을 안 받는다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아도니야가 지금까지 잘못한 것이 한 번도 없고 완전무결했겠습니까? 그가 완전무결해서 책망을 받지 않았을 리는 없습니다.
지금도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는 것을 보니, 과거에도 변변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마음대로 병거 오십 인을 세우고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자기가 왕이 되겠다고 하는 것은 책망 받을 만합니다. 이런 일을 해놓기까지 과거에 망한 결과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말 안 듣는데 과거에는 말을 잘 들었겠습니까? 과거에 말을 잘 들으면 지금에 이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책망을 안 하는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책망을 많이 들었다면 아도니야가 망하지 않았을 뻔 했는데, 책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궁지에 빠지고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잘못할 때에는 책망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책망을 안 하고 가만히 들어주면 아이들을 버려 놓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가지고 책망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나 성경말씀을 가지고 책망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4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면 주의 말씀이 그 속에 들어가 빛이 되어 역사하십니다. 주의 말씀을 미리 준비해서 말씀을 전해주고 책망해야 합니다. 책망을 잘해주는 부모가 좋은 부모이고, 책망을 잘해주는 목사가 좋은 목사입니다. 

또 책망을 할 때 책망을 잘 받아야 합니다. 책망을 잘 안 받는 사람은 복을 차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책망을 잘 받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책망을 해주면 그저 입이 쑥 나오고 듣기 싫어합니다. 책망을 해주면 좋은 것인데 싫어합니다. 잘한다고 하면 좋아하고 책망해주면 싫어하는데, 누가 책망을 해줍니까? 책망하면 자기가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나한테만 그런다’고 하면서 항변(抗辯)하며 달아납니다. 달아나서 싸우자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사람 취급을 못 받습니다. 책망할 때 달게 받으면 그것이 좋은 약입니다. 인삼과 같은 것입니다. 책망하는 것이 귀에는 거슬리지만 자기에게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책망을 안 하면 우선은 좋겠지만, 상대방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칭찬해주면 자기가 잘한 줄로만 압니다. 잘하는 줄만 알다가 한번 고꾸라지면 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책망하는 것은 잘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니, 책망을 받을 때 잘 받고 낮아져서 근신하고 고치면 자라날 수 있습니다. 고쳐야 진보가 됩니다. 

사람의 생각대로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빛을 보내심

하나님께서 인간들끼리 일하려고 할 때에 가만히 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빛이 들어오는 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끼리 컴컴한데서 무엇이 좋은지도 모르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빛을 비추시어 ‘이것은 아니다’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을 때 그 뜻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되어 가겠습니까?
우리도 내가 하려고 나설 그때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려고 하다가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시키시는 것인가? 아닌가?’를 물어보아야 합니다. 그때 선지자를 통해서 알려주시면 그 빛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목사님께 물어보았을 때 목사님이 ‘하지 마십시오’라고 하면, 하나님의 뜻인 줄로 알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자에게 묻지 않고 하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를 빼고 자기들끼리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명륜 교회에서 어떤 사람이 저에게 물어보려고 왔습니다. 자기가 집을 팔려고 내놨는데 주일날 집을 보러 간다는 것입니다. 주일날은 안 되는 줄로 알지만, 그래도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으려면 무엇하러 왔느냐고 하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책망을 받고 집에 가서 화를 냈다고 합니다. 그때 화내는 아버지를 보고 그 집 아이가 아버지가 잘 하신 것이냐고 되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주일날 안 되는 줄 알면 그만둬야지, 주일날 집을 보러 가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두렵지 않나요’라고 하면서 그 아이가 선지자처럼 책망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아버지의 입이 쑥 들어가고 마귀가 달아났습니다.
하나님의 빛은 어디나 들어갑니다. 인간끼리 하려고 하면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빛이 들어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게 되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해
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책망을 받고 인도를 받고 교훈을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의 뜻에 입각하여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으로 줄 때, 그것을 받는 것은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빛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함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단 선지자에게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왜 안 물어봤겠습니까? 물어봐야 뻔하니까 물어보지 않은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려고 하는데, 아도니야는 자기가 왕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 선지자한테 가서 물어봐야 안 될 것 같으니까 안 물어본 것입니다. 만일 나단 선지자에게 물어봤으면 그가 그만 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도니야가 그 말 그대로 순종했으면 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도니야가 물어보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겠다고 하다가 요압도 망하고 제사장들도 망하고 여러 사람을 망하게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망해서 죽었습니다. 아도니야는 안 죽고 다른 사람이 다 죽었습니다. 선지자에게 물어보고 틀렸다고 책망을 받으면, 안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 안 된다고 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몰래 하는 것은 하나님의 빛을 피해서 자기들끼리 만드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인간끼리 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인간끼리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빛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빛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마지막에 빛에 의해 어둠이 깨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하려는 것이 없나, 인간끼리 하는 것이 없나,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아니하고, 선지자의 인도를 안 받으려고 행동하는 것은 없나’를 생각해서 언제나 하나님의 빛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하는 일에 하나님의 빛이 항상 들어와서 그 빛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도 살고 남도 살고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나가 하늘나라가 이루어져 갑니다. 그리고 자기 구원도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후손들도 복을 받고 모두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모든 일에 하나님의 빛을 받아들여서 빛의 신앙으로 사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