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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신명기 29:1-9 불망(不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불망(不忘)
신명기 29:1-9

1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2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3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 4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5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6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7너희가 이 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8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9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1. 하나님의 이적 기사로 애굽에서 나온 것을 잊지 말 것

본문 1절에 “호렙에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우신 언약 외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사 모압 땅에서 또 그들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이 이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렙산에서 세운 언약은 십계명과 모세 5경에 속한 언약의 말씀입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은 호렙산에서 세운 언약입니다. 호렙산과 시내산은 같은 산입니다. 시내산은 호렙산의 한 구역인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모압 땅에서 또 언약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 외에 다른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고,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을 다시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재차 하는 갱신된 언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언약을 백성들이 다 어겨 이제는 희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40년 전에 주셨던 언약을 모압땅에서 재차 주신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호렙산에서의 언약은 애굽
에서 나온 후 약 두 달 만에 주셨습니다. 모압 땅에서 다시 주시는 것은 광야 40년을 통과한 다음에 약 40년 후에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옛날에 시내산에서 주신 언약과 별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이전에 받았지만 또 다시 새롭게 이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한 번 받고 그 다음에 또 다시 그 말씀을 새롭게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전에 받았지만 또 다시 받아야 합니다. 다시 받으면 그것이 새로운 말씀이 되고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새 힘이 되고 능력이 됩니다. 또 얼마 있다가 그 말씀을 새롭게 줄 수 있고새롭게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번 배웠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는 창광교회에서 얼마 전에 다 공부한 것입니다. 신명기를 공부한지 2년이 못 되었습니다. 87년에 공부 했으니까 한 2년 정도 됐는데, 이번에 또 다시 새로운 말씀을 받는 것처럼 받아야 합니다. 나도 공부했지만,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을 주셔서 이 말씀을 말하는 것이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전에 이 말씀을 받은 사람도 새로운 말씀으로 받아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또 전에 받았던 신명기와 같아도 은혜가 다르고 진리가 나타나는 면이 다릅니다. 그러므로 이미 받은 말씀이라도 또 배우고 또 배우고 다시 또 배울 때에 새롭게 받아 새 생명을 얻고, 새 힘을 얻어 새 출발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전에 호렙산에서 주셨지만 모압에서 다시 받는 것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교역자들도 성경 가르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설교집을 만든 다음, 설교집에 있는 어떤 제목의 설교 한 번을 하고나면 그 다음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몇 년이 지나면 설교집에 있는 설교 준비한 것이 다 떨어져서 더 할 내용이 없게 됩니다. 그러면 목사가 가르칠게 없어서 다른 교회로 옮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목 설교 준비한 것이 많이 있어도 다 떨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가르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을 전부 가르치면 굉장한 것 아니겠습니까? 다 가르치게 되면 그 다음에 또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또 가르쳐도 이 말씀을 새롭게 받고 새 힘을 얻고, 새 생명을 얻어갑니다.
신명기 29장 10-11절에 “오늘날 너희 곧 너희 두령과 너희 지파와 너희 장로들과 너희 유사와 이스라엘 모든 남자와 너희 유아들과 너희 아내와 및 네 진중에 있는 객과 무릇 너를 위하여 나무를 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선 것은”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온 이스라엘을 다 소집해 놓았습니다. 큰 시험, 이적, 기사, 홍해바다 가는 길, 광야에서의 여러 가지 시험,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 나왔던 일 등 여러 가지 이적과 기사를 너희가 다 보았다는 것 입니다. 또 새로 난 사람들은 부모에게 들어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사, 장로, 두목, 두령, 남자, 유아, 여자, 나무패는 자로부터 물 긷는 자까지 이스라엘 총회를 열고 전부 참여시켰습니다. 장정만 육십만 명이라고 하였는데 모두 백만 명이 넘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모압 땅에서 다시 하나님의 언약을 준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너희 목전에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을 너희가 보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애굽에서 나올 때 20세 이하였던 사람은 다 보았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20세 이상은 광야에서 다 쓰러졌습니다. 

본문 4절에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안주셨습니까? 믿지 않으니까 안 주셨습니다. 믿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십니다. 사모하는 사람, 목마른 사람, 원하는 자에게만 이 말씀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7절을 보면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고 하였는데, 말씀을 듣기를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고, 원하는 자에게 말씀을 듣는 귀와 보는 눈, 깨닫는 마음을 주십니다. 시편 107편 9절에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모하는 영혼, 목마른 심령, 원하는 마음,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애쓰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귀를 열어주시고 눈을 밝혀주시고 마음에 깨닫게 해주십니다. 사모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사모하게 되니까 그 말씀을 받을 귀를 열어 주십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께서 그 마음을 열어주셔서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사모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을 주시지 않습니다. 보고도 모르고 들어도 모르고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2. 40년간 광야 생활한 것을 잊지 말 것

40년 광야생활 동안 지켜주신 것을 잊지 말 것

본문 5-6절에 “주께서 사십 년 동안 너희를 인도하여 광야를 통행케 하셨거니와 너희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였고 너희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으며 너희로 떡도 먹지 못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셨음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 하심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십 년 동안 광야를 통과케 하셨는데 몸의 옷이 낡지 아니하고 발의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며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못하게 하신 까닭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광야를 통과했는데 의복이 낡지 아니하였고 또 신이 해어지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떡도 먹지 못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못하고 40년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애굽에서 입고 나온 의복이 40년간 내내 갔습니까? 애굽에서 입고 나온 의복이나 신이 40년간 입고 신어도 닳아지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입니다. 둘 다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신이 안닳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그대로 신었다는 것도 하나님의 큰 이적입니다. 또 가지고 나온 것은 없었지만 내내 해어진 옷을 입지 않고 해어진 신발도 신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 것도 이적인 것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 어떻게 40년 간을 살 수 있겠습니까? 농사도 하지 아니하고, 메마른 땅에서 의복을 어떻게 얻어 입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것을 다 공급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맞는 것같습니까? 첫째는 애굽에서 신고 나온 신이 40년 동안 해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계속 다른 것을 주셔서 해어진 신을 신지 않도록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신고 나온 신이 40년간 닳아지지 않았다는 것과, 해어진 신을 신지 않도록 하나님이 공급해주셨다는 것 중 어느 것이 맞습니까? 둘째가 맞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굽에서 5살 때 신고 떠난 아이가 지금은 45살이 되었는데 신이 커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의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복을 한 벌 입고 나왔는데 몸이 커가는 것에 따라 40년 내내 다른 의복을 입게 해 주신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40년간 해어진 옷을 입지 않도록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신이나 의복이 커졌다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역사를 통해 지켜주신 것을 잊지 말 것

6.25 사변 피난 나올 때, 의복 하나 입고 신도 한 켤레 신고 나왔습니다. 나부터도 옷 한 벌 입고 신발도 한 켤레 신고 나왔습니다. 그때 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해어진 옷도 안 입게 해주시고, 신도 해어지지 않은 것으로 신겨 주셨
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고 사람은 할 수 없습니다.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에는 미국 사람들의 구제품인 양복과 양말을 입었습니다. 다 보내주신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은 그 구제품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때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다 쓰러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입고, 먹었습니다. 구제금으로 한국 피난민들을 다 살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어먹고도 요새 반미운동을 합니다. 먹여주고 입혀주고 살려줬는데 그 사람들의 자손들이 오늘날 반미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때 다 돌아가셨다면 어떻게 자기가 나왔겠습니까? 자기들을 살려주었는데 반미운동을 하면 되겠습니까? 

여러분들도 피난갈 때, 옷 한 벌 입고 신 한 켤레 신고 갔죠? 여러 켤레를 짊어지고 갈 수 있었겠습니까? 40년이 지난 오늘날 보니까 해어진 옷도 입지 않고 해어진 신도 신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적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적이 아니면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
습니까? 한국에서 석유 한 방울이 나옵니까? 목화가 많이 나옵니까? 고무가 나옵니까? 고무 한 토막도 나오지 않는 땅에서 고무신 신고, 목화도 별로 나오지 않는 땅에서 의복을 입혀주시고,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땅에서 자동차를 타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또 가스레인지
가져다가 밥 해먹고, 석유를 연료로 사용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40년간 이런 이적으로 우리를 살려 주신 것입니다. 6.25사변 때 잿더미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를 40년 동안이나 이적적으로 먹을 것, 입을 것, 신을 주셔서 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하나님의 큰 이적인 줄을 모르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신 것입니다.

8.15 해방되기 이틀 전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 기독교 목사들을 다 죽이려고 계획 했습니다. 모여서 강습하려고 한다고 하고 비행기가 오고 반공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지하실로 다 들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굴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전기 스위치 하나만 누르면 다 죽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틀 전에 일본이 항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국의 원자탄을 가져다가 히로시마에 떨어 뜨려 가지고 일본을 항복시켜서 한국 교회를 건져주시고 한국 백성들을 건져주셨습니다. 다 망할 수밖에 없었는데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을 해방시켜 주시려고 미국 사람들을 시켜서 일본을 징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목사 가운데 미국이 원자탄을 쏜 것은 죽을 죄를 진 것이라고 하는 목사가 있습니다. 원자탄을 다시는 쓰면 안 되고, 핵무기도 다 철수해야 한다고 합니다. 평화만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무기도 만들지 말고, 핵무기도 다 철수하고, 가만히 있다가 이북에서 내리치면 손들고 나가야 된다는 목사가 있습니다. 이북에서 쳐들어오든지 일본에서 쳐들어오든지 손들고 항복하는 것이 그것이 성경적입니까? 

하나님께서 40년 간 죽을 고비에 빠진 것을 건져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6.25사변 때에도 하나님께서 맥아더 장군을 인천에 상륙 시켜 한국 백성을 공산군에게서 건져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인데 사람이 하겠습니까? 트루만 대통령이 한국에 ‘미군을 파견할까 말까’ 상당히 망설였답니다. 그때 미국의 방위선은 일본까지고, 한국은 방위선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대만에서부터 일본으로 그어놓았고 한국은 미국 방위선 밖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그것을 알고 내리친 것입니다. 소련에서 내리치라니까 내리친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에 파병을 시켜야 되느냐? 안 시켜야 되느냐?’를 상당히 고민하고 논란이 많았었다고 합니다. 트루만 대통령이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면 파병을 하는 것이고, 왼쪽으로 돌리면 파병을 안 하는 것입니다. 오른쪽으로 돌릴까, 왼쪽으로 돌릴까 하다가 하나님께서 “오른쪽으로 돌려라”하니까 파병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맥아더 장군을 내보내고 미군을 상륙시킨 것입니다. 또 미국 의회에서도 파병하자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중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으면 파병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보다 군사를 보내자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에 보낸 것입니다. 그 사람들의 마음을 누가 주장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주장하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들이 와서 상당히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죽음 가운데 빠졌던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6.25 사변에서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입니다. 우리 국군의 힘으로는 6.25 사변을 절대 이길 수 없었습니다. 100% 다 망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군대가 얼마 없었고 비행기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북에는 포가 많고 비행기가 많아 준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공산군
들이 낙동강까지 내려가서 곧장 밀었으면 다 망할 뻔했습니다. 그때 이북에서도 자기네들끼리 의논이 있었나 봅니다. ‘곧장 내려갈 것인가? 낙동강에서 중지하고 일부 군대가 목포로 내려가 목포를 점령하고, 마산까지 가서 부산을 마지막으로 점령할 것인가?’하는 계획을 세
우게 됩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김일성 머리에 낙동강에서 곧장 내려가라고 했으면 다 망하는 것입니다. 목포로 도는 바람에 한 달 이상 걸린 것입니다. 그 바람에 미국에서 군대를 보내 주셨습니다. 진주로 해서 돌아 가다가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 바람
에 UN총회도 모이고, 미국의회도 모여서 UN군이 상륙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머리를 돌린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돌리신 것입니다. 생각에 따라 어떻게 하면 죽고 어떻게 하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피난 나올 때 해주로 가라는 것입니다. 군대가 후퇴하는 길이기 때문에 전부다 해주로 가라는 것입니다. 기차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해주로 가라고해서 많은 사람들이 해주로 내려갔습니다. 우리 일행도 해주로 가자는 것입니다. 나는 갈까말까 하다가 다리가 아파서 못 가겠다고 하니까 군인들은 자꾸 가라는 것입니다. 다리가 아프니까 걸어서 가는 것이 한심했습니다. 내가 안가서 다른 사람들도 못 갔습니다. 내버리고는 못 가겠던 모양입니다. 그때 당시 수백 명, 수천 명이 해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 후 몇 사람만 포탄 싫은 짐차를 탔습니다. 해주에서 약 두 시간 있다가 개성으로 해서 왔습니다. 9월 달에 인민군이 해주를 점령하여 피난민을 전부 다 잡아 이북으로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그것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죽고 사는 것을 모릅니다. 승리하게 해주시고,  망하지 않게 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참 감사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살려만 주면, 주님 앞에 죽도록 충성한다고 기도 했습니다. 

청천강을 건너 갈 때에 다리가 끊어져서 물을 건너는데 물이 허리 이상 올라왔습니다. 다른 데는 깊고, 가장 얕은 곳으로 길게 서서 계속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쌕쌕이 비행기가 날아 와서 연방 포를 쏘면서 지나갔습니다. 피난민들은 강에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나와 최목사는 강 가운데 있는 모래 바닥에 머리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 최 목사가 죽었나 보니까 ‘주여, 주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다닥 쏘고 엎드려서 죽었나 하고 보면 안 죽어 있었습니다. 다 죽게 된 곳에서 살았습니다. 

잠언 16장 33절에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여호와께서 다 돌려놓으신 것입니다. 비행사가 총부리만 조금 비틀었어도 우리가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다 지나간 다음에 보니까 죽은 사람이 널려 있었습니다. 남녀 할 것 없이 죽어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우리가 살아 나왔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이지 사람이 건질 수 있습니까? 거기서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또 그 기도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충성하지 못해서 하나님께 죄송합니다. 하나님이 건져주신
것을 우리가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깨달을 것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렇게 40년 동안 이적으로 살려주셨습니다.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못하고, 채소도 먹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40년 간 건강을 지켜주셨습니다. 그것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라는 말은 “언약대로 구원해 주시는 신”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너희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떡도 먹지 못하고, 채소도 먹지 못하고, 쥬스도 먹지 못하고, 과일도 먹지 못하고, 만나만 먹었는데 죽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주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신 줄 알라’는 것입니다.
 
민수기 11장 4-6절에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
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도다 하니”라고 하였는데, 애굽에서는 고기를 마음대로 먹고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었는데 이제는 하나도 먹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력이 쇠하여졌는데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기력이 다 쇠하여져서 죽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그 생각이 맞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채소를 먹어야 됩니다. 떡가루만 먹으면 안 되고, 단백질도 먹어야 되고, 파도 먹어야 되고, 과일도 먹어야 되고, 여러 가지를 먹어야 되는데, 만나만 먹은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기력이 쇠할 수밖에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쇠하여지지 않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하나님인줄을 너희로 알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광야에서 다 죽게 되었는데 죽지 않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살리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너희 구원의 하나님이신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다 죽게 되었었는데 안 죽었습니다. 광야 사막지대에 빠져 꼼
짝도 할 수 없이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만나를 내려서 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여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가망이 없고 살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로 너희를 살려주신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은 너희 구원의 하나님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옷 한 벌만 입고 나왔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낡은 옷도 입지 않고 해어진 신도 신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 은혜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짐승만도 못합니다. 이렇게 해주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은,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40년간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는데 왜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을 깨닫지 못합니까? 왜 깨닫는 마음이 없고, 보는 눈이 없고, 듣는 귀가 없습니까? 이것을 말해줘도 안 듣습니다. 듣는 귀가 없어서 안 듣습니다. 또 보면서도 모릅니다. 깨닫지도 못합니다. 또 깨닫는 사람은 바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40년간 건져주셨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이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산 것이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6.25 사변 때에 과일, 채소, 고기를 다 먹었습니까? 다 먹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쇠잔하지 않고 망하지 않게 만들어 주시며 오늘날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신 것이지 사람으로서는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본문 7-9절에 “너희가 이곳에 올 때에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우리와 싸우러 나왔으므로 우리가 그들을 치고 그 땅을 취하여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나니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전쟁을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을 너희가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이기게 해주시지 않았다면 이기지 못합니다. 전쟁을 몇 번 하였습니까? 헤스본 왕 시혼과 싸워서 이겼고, 바산 왕 옥을 이겨서 그 땅을 빼앗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입니다. 과거 전쟁에서 다 망할 뻔했는데 이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요단강 동쪽 땅을 얻어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을 늘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지 사람으로서는 능히 할 수 없는 일
입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할 때의 이적과 기사를 통해서 광야에서 살 수 없는데 나오게 해주신 것, 의복과 신이 해어지지 않게 해 주신 것, 원수를 이기게 해주신 것 등 전부 다 하나님께서 해주셨는데 ‘그 은혜를 너희가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망하
는 짐승과 같습니다. 무슨 불만, 불평이 있습니까? 이북에서 피난 다닐 때에는 잡으러 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밤낮으로 잡으러 다녀서 언제 잡힐지 모르니까 마음 놓고 하룻밤만 자고 있으면 천하가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천막 속에서 기도
할 때에도 그 생각이 떠오릅니다. 누가 잡으러 오지 않고 평안하게 앉아서 기도하니까 참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또 기도원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여기서 기도하면 누가 잡으러 옵니까? 얼마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해주셨는데 이제 우리들이 잘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