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법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법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전서 2:1-3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는 법
베드로전서 2:1-3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라고 하였는데, 믿는 사람들은 영이 자라나야 됩니다. 처음에 중생할 때에는 어린 영혼이었으나, 그 영이 점점 장성해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하는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또 자신도 불행합니다. 어린아이가 점점 자라나야 부모가 기뻐하는 것처럼 우리의 영도 자라나야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자신도 기쁘며 모든 일을 바로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1. 죄를 버리라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난다는 것은, 죄에서 점점 나와서 그리스도의 의와 진리와 거룩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죄에서 점점 나와서, 예수님의 의와 진리와 거룩을 점점 입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중생한 영이 자라난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점점 죄에서 나와야 하는데, 술과 담배를 하는 사람은 그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또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악독과 남을 비방하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음란, 방탕하는 사람도 거기에서 나와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의와 진리와 거룩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나갑니다. 이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고, 영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또한 자라난 대로 천국에 가서 영원한 상급을 누립니다. 자라난 사람은 자라난 대로 천국에 가고, 못 자라난 사람은 못 자란 대로 갑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습니다(마 5:19).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간 성도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되고 상급을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가 구원을 잘 이루어 가지 못하면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긴 하지만, 불 가운데서 벌거벗은 몸으로 구원받은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3:15에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야 합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걱정거리입니다. 집안에 자라나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하면 얼마나 걱정입니까? 자라나서 제대로 해야 부모가 기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면 자라나려면 어떻게 하여야합니까? 첫째, 죄를 벗어버려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는데 외식, 악독, 궤휼, 시기, 비방 등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이것을 버리지 못하면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런 죄를 버리지 못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릇은 금그릇인데 구멍이 나 있고, 더러운 것이 묻어 있다면 그 그릇을 쓸 수가 없습니다. 구멍 뚫어진 것을 무엇에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 등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 악독
악독은 남을 해하려는 독한 마음입니다. 분내는 것, 혈기 내는 것도 악독입니다.

◉ 궤휼
궤휼은 간사한 속임수입니다.

◉ 외식
외식은 마음 속에는 그렇지 않으나 겉을 거짓으로 꾸미는 것입니다.

◉ 시기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 비방
비방은 남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어 거짓말로 악평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로 믿는 일이 성공이 되지 못하고, 자라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이 실패가 됩니다. 아무리 잘 하다가도 한번 혈기 부리면 다 뒤집어 놓고 마는 것입니다. 돼지가 밥통 뒤집어 엎는 것처럼 혈기 부리고, 분내면 다 뒤짚어 엎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섭섭한 마음 또 비방하는 말 등은 마귀의 역사인줄 알아야 됩니다. 죄는 마귀에게 속한 것으로, 죄를 떠나야만 영이 자라날 수 있습니다. 또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십계명을 범하는 것 등이 죄입니다. 이런 죄를 버려야 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에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자”하셨다고 합니다. 내 꼴은 그 꼴보다 더 한줄 알아야 됩니다. 또 돈 사랑 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면 은혜를 받았어도 그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고 맙니다. 껍데기만 “주여! 주여!”하는 것이지 속에는 알맹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의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더러운 것을 다 제거 시켜서 그릇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 이기주의
자기를 사랑하는 이기주의도 다 버려야 됩니다. 이기주의는 죄입니다. 또 예수 따라가지 않고 세상 따라가고, 집 따라가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 따라가야 살지, 집 따라 가면 못삽니다. 하여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나려면 첫째 죄를 버려야 합니다.


2.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그 다음에 둘째는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 18:3에, 아이들과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고, 순진하고, 배우기를 잘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고 자기를 낮추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리에 서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양식입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섞은 것이 없는 것입니다. 고후 4:2에,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무엇을 섞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고, 그대로 전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교회들이 말씀을 전할 때에 말씀만 전하는 게 아니라 각종 세상의 것을 다 갖다 섞습니다. 교인들이 무엇을 좋아할까? 하며, 귀에 즐거워하는 말로 인기를 끌려고 합니다. 또 아이들이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니까 아이들의 비유에 맞추려고 교회 안에 각종 타락된 악기들과 곡조들을 들여놓아 교회가 노라리 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교회만 오게 하면 된다는 식입니다. 웬만한 교회는 북이 다 있습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한참 노라리 해야만 신이 나니까 교회가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장소가 아니라 노래방처럼 됐습니다. 교회가 오락 기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젊은 사람이 많이 온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이 교회를 오락기관으로 만들라고 하였습니까? 교회는 순전해야 합니다. 성경 그대로 경건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신령한 젖은 성경말씀을 말합니다. 성경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여 영의 양식으로 먹여야 합니다. 교역자가 교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먹이려면 먼저 교역자가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신령한 양식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그 양식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먼저 기도 많이 하고 신령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며 또 교인들은 교역자가 주는 신령한 양식을 받아먹어야 영이 살아납니다. 영이 새 힘을 얻고, 새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신령한 젖을 얼마나 사모해야 됩니까? 시편 119:127에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고, 시편 119:131에는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면 입을 열고 헐떡였겠습니까? 어린아이들이 배가 고프면 젖을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입니다. 이와같이 산 신앙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으면 그것은 생명이 없는 신앙입니다. 또 시편 119:147-148에 “내가 새벽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받았사오며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사모하여야 합니다. 시편 119:103절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는 주의 말씀이 꿀보다 더 답니다. 또 정금보다 더 귀합니다. 금덩어리 하나 얻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 얻는 것을 더 귀하게 여깁니다. 성경 말씀을 보려고 하면 잠이 오고, 무슨 책이나 뉴스나 연속극 같은 것을 볼 때에는 좋아라하는 사람은 신앙에 생명이 없습니다. 성도는 말씀을 꿀보다 달게 여기고, 말씀이 자기의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사모하여 매일 읽고, 묵상하며 새김질하여야 합니다. 말씀이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말씀이 달아야 영의 사람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심령이 열려야 합니다. 심령이 딱딱해서는, 즉 육신의 고집대로 나가서는 말씀이 속에 안 들어옵니다. 회개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되어야 말씀이 속에 들어갑니다. 또 그러한 사람은 말씀을 얻어먹으려고 “어디에 가야 신령한 영의 말씀을 얻어먹을 수 있을까?” 하며, 신령한 말씀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의 양식이 될만한 신령한 말씀을 하나 얻으면 그것이 자신에게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또 금 덩어리보다 귀합니다. 그러므로 말씀하나 얻으려고 모든 것을 다 희생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44에 진주 비유가 있습니다. 진주 하나를 발견한 다음에는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다고 했습니다. 진주는 요긴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요긴한 말씀을 발견한 다음에는 자기의 것을 다 희생하여 사야 됩니다. 그래야 자기의 것이 됩니다. 구경만 하면 자기의 것이 안 됩니다. 즉 공력이 들어가야 됩니다.

본문 3절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하는 말은 과거에 주님의 사랑을 맛보았으면 죄를 버리고 말씀을 사모해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주의 사랑, 즉, 주의 은혜로우심을 맛보았으면 죄를 벗어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34:8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랑, 처음 은혜, 처음 진리의 맛을 보여주셨는데, 얼마 있다가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며,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신앙, 처음 사랑을 다시 찾고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신령하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