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으라
누가복음 12:35~48
누가복음 12:35~48
35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
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38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41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주께서 가라사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4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45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47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1.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
허리에 띠를 띠라
본문 35절에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허리에 띠를 띠라는 말은 자유방종 방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방종과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은 허리에 띠를 풀어 놓고 있는 것입니다. 띠를 띤 것은 자기를 단속 하는 것으로 자기 마음을 단속해서 육신의 정욕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방종, 방탕 생활 하지 못하게 하고 음란, 술 취하지 아니하며 자기를 잘 쳐서 복종시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만 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항상 자기를 쳐서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는 것은 자기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버림이 될까 두려워하므로 언제나 자기 자신을 쳐서 방탕으로 나가지 않게 하고, 세상에 도취되지 않게 자기 자신을 잘 단속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단속하지 못하면 어디로 끌려갈지 모릅니다. 세상의 여러 가지 미혹과 마귀의 사이비한 간교한 수단이 많이 있는데 항상 자기를 단속하고 깨어서 있지 못하
면 믿는 일을 못합니다.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는 것은 언제나 영이 깨어 빛 가운데 거하라는 것입니다. 즉 영이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37절). 영이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심령의 눈이 항상 밝아서 모든 것을 바로 보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6:23에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우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의 눈이 물질이나 다른 것에게 가리워져서 눈이 어둡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욕심이 들어오면 눈이 어두워집니다. 즉 물욕으로 눈이 어두워집니다. 또 세상 것을 가까이 하면 신령한 눈이 어두워집니다. 언제든지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 한 분만 사모하고 예수님께만 구하고 전심전력을 다해서 예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려고 할 때 심령이 밝아집니다. 심령이 밝아질 때 모든 것을 바로 봅니다. 심령의 눈이 밝아지면 영의 지혜도 밝아지고, 지각도 생기고,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분별할 수 있고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항상 빛 가운데 거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어두운데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도 영이 깨어 있지 못합니다. 육신 중심으로 살면 영이 어둡습니다. 육신중심, 세상중심, 물질중심, 자기중심, 이기주의, 안일주의 등이 눈을 어두워지게 합니다. 빛은 영적 세계에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자다가 마땅히 깨어야 됩니다. 자는 성도는 빛 가운데 거하지 못합니다. 자다가 깨어야만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자다가 깨는 것은 육신 중심으로 살다가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자기 심령 속에 역사가 있는 믿음이 등불을 켠 것입니다. 역사가 없는 사람은 등불이 꺼진 것입니다. 항상 중생한 영이 성령과 언제나 합작을 해서 역사하고, 감동이 있고, 깨달음이 있어, 하나님의 인도를 항상 받는 그 자리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등불을 켜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깨어 있으란 말입니다.
어느 때에 주가 임할는지 알지 못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하여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잠자기 쉽습니다. 잠자고 조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잠자는 신앙, 조는 신앙이 많이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감옥에 있을 때에 일시적 신앙에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면서 오실 그리스도가 당신입니까?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어 보라고 했는데 이것이 잠자는 상태입니다. 전에 깨어 있을 때는 그리스도를 밝히 알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할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거 했습니다. 나는 그의 신들 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서 오랫동안 고난 받는 가운데 그 심령이 잠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가 아닌
가? 오실 그리스도가 당신입니까?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렇게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 보았습니다.
가? 오실 그리스도가 당신입니까?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렇게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잠들지 않는 신앙, 항상 깨어서 성령의 인도를 늘 받는 신앙, 하나님과 늘 교통 하는 신앙, 영적 감동이 늘 있는 신앙, 회개하고 영적 세계에서 사는 신앙이 등불을 켜고 가는 신앙입니다. 빛의 역사가 있나? 없나?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찬송가에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항상 지켜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주께서 지켜 주십니다. 빛 가운데 걸어가지 못하고 어두움에서 사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도 흑암에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잠자는 사람이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4에 우리는 낮에 속하고 빛에 속했으므로 잠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잠 자지 않습니까? 항상 깨어 있어서 영의 역사가 있는 사람, 심령의 눈이 밝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고 밝히 아는 그 자리에 언제나 있는 사람이어야 신앙의 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없는 사람은 허리에 띠를 띠지 아니하고 방종으로 기울어지고, 술취하는 대로 기울어집니다. 술 취한다는 것은 세상에 취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신 안 차리고 세상에 취해서 사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을 정신 안 차리고 이것저것 세상에 도취되어서 나갑니다. 그러면 그것은 잠자는 자리에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늘 자기 자신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신앙이 깨어있나? 영적 생명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에서 깨어 살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속에 늘 이루어지고 있나? 그렇지 않으면 육신 중심과 세상 중심으로 사는가? 이것을 잘 생각해 보고 회개해야 됩니다. 빛 가운데로 살지 못하는 사람은 회개하고 다시 빛 가운데로 들어가야 됩니다. 회개하는 기도, 하나님을 찾는 기도, 영의 역사가 있는 자리에 들어가려고 애쓰는 기도, 이것이 없으면 그만 신앙이 잠자는 것이며 빛을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항상 등불을 켜고 있는 사람은 산 믿음입니다.
역사하는 믿음, 능력 있는 신앙입니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이 빛이 없는 신앙은 육신 중심으로 속에 생명의 역사도 없고, 감동도 없고, 빛 가운데 거하지도 못하고, 운동력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저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등불을 켭시다. 깨어야 합니다. 빛의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영의 세계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성령의 인도 가운데 항상 생명의 역사가 있는 가운데 거하는 성도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주인이 혼인집에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본문 36절에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혼인집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신랑이고 성도들은 신부입니다. 혼인집은 기쁘고 즐거운 집입니다. 상가집은 슬픈 집이고 혼인집은 기쁘고 즐거운 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돌아올 때는 기쁘고 즐거움으로 재림하십니다. 즉 예수님이 신랑의 자격으로, 신부되는 우리를 영접하러 오십니다. 그러므로 신부되는 성도는 예수님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라는 말입니다. 혹 이경이나 삼경에 예수님이 와도 잘 영접하도록 기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38절에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하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의 이같이 등불을 켜고 허리에 띠를 띠고 주인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종들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경은 우리 시간으로 밤 9시에서 12시, 삼경은 밤 12시에서 3시입니다. 이경, 삼경에 온다고 할지라도 그때까지 자지 아니하고 허리에 띠를 띠고 깨어서 등불을 들고 있으란 말입니다. 그러면 그 종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초저녁에는 깨어 있기 쉽지만 12시가 넘어서 한시, 두시, 세시가 되면 깨어있기 힘듭니다. 그래도 그때까지 깨어있어서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두움은 환난을 상징하는 것으로 환난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환난이 깊어지고, 피곤하고, 여러 가지 괴로움이 많지만 그래도 신랑 되는 예수님이 언제 오실까? 날마다 허리에 띠를 띠고, 손에는 등불을 들고 기다리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이경이나 삼경에 와도 영접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환경이 좋을 때에만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가 아니라 환경이 나쁠 때에도, 어려울때에도, 캄캄한 흑암이 쌓일 때에도, 환난이 심할 때에도, 언제나 등불을 켜고 눈을 뜨고 허리에 띠를 띠고 준비해 신랑 되시는 예수님이 이제 오실까? 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리는 신앙을 갖지 못한 것을 우리가 회개해야겠습니다. 이경이나 삼경이나 등불을 켜들고 주인이 그 혼인집에 돌아와서 문을 두드리면 즉시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회개하여야 합니다. 오늘 재림하시지 않겠나? 이 시간에 재림 하시지 않겠나? 예수님의 재림을 매일 기다려야 됩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모릅니다. 또 내일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모릅니다. 이렇게 기다리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고 말로는
하나 실제로 기다리지 못하고 그저 앞으로 좀 있다 오겠거니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멀었거니 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먼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함
본문 39절에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갑자기 도적같이 옵니다. 어느 때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오늘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또 예수님의 재림을 매일 기다리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매일 기다립니까? 이제 주님 영접할 날이 멀지 않았는데 매일, 오늘 재림하시지 않을까? 하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또 그 신앙을 못가졌던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37절에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이 갑자기 올 때 매 시간 기다리는 사람은 주인이 문을 두드릴 때 곧 나와서 열어 주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인이 높여 줍니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혔다는 말은 종들을 높여 준다는 말입니다. 자리에 앉혔다는 말은 평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며, ‘수종 들리라’는 것은
만족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을 높여 줍니다. 그 사람에게 영적 평안을 한량없이 주십니다. 또 그 사람에게 만족하도록 모든 것을 충만케 채워주십니다. 이런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본문 43절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늘 오지 않고 더디 오리라는 것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종과 같은
것으로 오늘날 우리들인 줄 알아야 됩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자가 아니고, 주인이 오늘 이 시간에 오리라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며, 세상에 도취되어 살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재림 준비를 잘 해야 되겠습니다.
것으로 오늘날 우리들인 줄 알아야 됩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는 자가 아니고, 주인이 오늘 이 시간에 오리라 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먹고 마시며, 세상에 도취되어 살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그러므로 재림 준비를 잘 해야 되겠습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라
본문 42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하였습니다.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은 복이 있습니다. 복 있는 종은 준비 잘 하는 종으로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로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는 종인 줄 알고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겠습니다. 집 종들은 택한 백성으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을 맡아서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누어 주라는 말입니다.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때를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나누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누구나 다 집 종들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자기 집의 아이들인 손자들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멀리 가서 이방사람 구원하지 못하지만 내 집 근처 다니면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전도할 수 있습니다. 또 개척교회를 세워서 복음을 전할 수있습니다. 선교사를 보내어서 하나님의 복음을 이방나라에 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양식을 나누어 주는 사명이 중대합니다. 먼저 자기부터 양식을 먹고, 자기 집에 있는 식구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주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손 닿는데까지 친척이나 이웃사람이나 가까운데 있는 사람 등 자기가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멀리 가지 못하는 사람은 위해서 기도해 주고, 선교비를 대주는 것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양식을 나누어 줄 때 먼저 자기부터 먹어야 됩
니다. 자기는 먹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고 하면 안됩니다.
자기부터 먼저 양식을 먹고 나누어 주어야 그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에게 주인이 모든 소유를 맡긴다고 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종에게 모든 소유를 맡긴단 말입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 많이 찾으시고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달라고 하심
본문 47절에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습니다. 또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해서 행하지 못한 그 사람은 적게 맞습니다. 알지 못했어도 매 맞습니다. “난 알지 못해서 그랬습니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알라고
신구약 성경을 다 주었는데 왜 알지 못했습니까? 알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알아야 되고, 배워야 되고, 읽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는 것은 등불을 켜지 못해서 모릅니다. 등불을 켜면 밝히 보고 다 알 수 있습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고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많이 찾습니다. 많이 맡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많이 달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많이 받았는가? 많이 받은 것은 좋지만 하나님이 그만큼 많이 찾으십니다. 진리를 많이 받은 사람은 받지 않은 사람보다 좋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받지 않은 사람보다 좋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많이 내어 놓아라 하신다는 말입니다. 많이 받았으므로 많이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많이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많이 받고도 조금 내놓으면 용납 못됩니다. 조금받은 사람이 조금 내놓는 것은 되지만 많이 받은 사람이 조금 내놓으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이 두 달란트만큼만 행했으면 칭찬을 못 받고 책망을 받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내 놓아야 합니다. 얼마나 받았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이 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귀한 진리를 많이 주셨습니다. 또 한국 사람들에게 복을 많이 주셨습니다. 재능도 많이 주셨고 물질도 많이 주셨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은 하지 않고 육신 중심과 방탕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만 한다면 많이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IMF로 매를 맞는 중에 또 9월 말경에 태풍이 불어와서 매를 맞았습니다. 농작물이 풍년 들었다고 자랑하였는데 태풍이 들어와서 침수되고 벼가 다 넘어가므로 수확량이 25%가 감소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또 태풍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사라호와 같은 큰 태풍이 대만에서부터 한국을 향해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그 태풍이 한국을 싹쓸고 가면 한국 땅은 엎친데 덮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풍이 한국으로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했는데 여러분도 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으로 오던 태풍이 하룻밤 새 하나님이 일본으로 돌려 놓으셨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큰 매를 때리려고 들었다가 한번 용납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많이 주었으니 이젠 너희가 많이 해라, 많이 맡았으니 많이 내 놓아라 즉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일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일, 우리에게 맡긴 사명을 다 하는 일 등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다 남기는 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다 남기는 일,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다 남기는 일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러면 진노 중에서도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서 살리십니다. 한국이 태풍으로 즉살될 뻔했는데 그래도 하나님이 이번에 살려 주셨습니다. 살려준 것은 용서해 준 것입니다. 용서해 주었으니 너희가 이제는 사명을 다 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라고 살려 주셨습니까? 많이 준 것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많이 하라고 많이 주셨습니다. 왜 많이 맡겨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라고 많이 맡겨 주셨습니다. 왜 말씀을 많이 알게 해 주셨습니까? 그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일을 많이 하라고 많이 주신 것입니다. 저 혼자 먹으라고 많이 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사명을 다하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