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의 경계와 분배
에스겔 47:11-23
에스겔 47:11-23
11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12강 좌우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1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 두 분깃이니라 14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15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16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 17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과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 18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 19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가 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 20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 21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22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찌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23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1. 생명수가 이르는 곳에 모든 것이 소성함
생명의 역사가 사방으로 흘러내려가 소생함이 있게 됨
생명강이 흘러내려가는 곳마다 깊어졌고 또 소생해 올라왔습니다. 생명강은 그 근원이 어디입니까? 어디에서부터 흘렀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제단 밑, 성전 제단 밑에서부터 흘러서 동향
으로 흐르다가 남쪽으로 꺾어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이 강이 흘러내려 가는데 일천 척을 척량하니까 물이 발목에 올라왔고, 또 거기서부터 일천 척을 척량하니까 그 다음에는 무릎에 오르고, 거기서 또 일천 척을 척량하니 허리에 오르고, 거기서 또 일천 척을 척량해서 사천 척을 내려가니까 건너지 못할 큰 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강물이 계속 흘러내려갔습니다. ‘강물’은 생명의 역사를 가리킵니다. 성전 생활, 제단 생활하는 사람으로부터 생명의 역사가 흘러서 사방으로 흘러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 강물이 흘러내려 가는데 아라바로 내려가면 아라바 황무지가 소생합니다. 또 사해 바다로 들어가니까 사해 바다가 소생해서 그곳에 고기가 심히 많이 살게 되었
다고 하였습니다. 또 그 강가에는 나무가 많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생명나무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진펄과 개펄 신앙
1) 진펄 - 중간치기, 전적으로 믿지 못함
본문 11절에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하고’라고 하였는데, 소성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가는 데마다 많은 열매를 맺히고 소생해 올라옵니다. 그러나 진펄과 개펄은 소성되지 못
한다고 하였습니다. 진펄과 개펄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펄’은 마른 땅도 아니고 강도 아닌, 중간치기를 말합니다. 질척질척한 것, 땅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물웅덩이 같은 것, 그것이 진펄입니다. 그리고 ‘개펄’이라는 것은 바다 물이 들어올 때에는 잠겼다가 바다 물이 나가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인천에 가면 개펄이 많습니다.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잠기고 바닷물이 나갈 때는 육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잠겨서 강이 되었다가 땅이 되었다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소생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간치기가 안 됩니다. 믿는 사람한테 오면 믿는 사람 같고 안 믿는 사람한테 가면 안 믿는 사람 같은 자, 다시 말해 중간치기, 양목치기인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도 아니하고 안 믿지도 아니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진펄입니다. 전적으로 믿고 말씀을 온전히 따라가며 하나님 앞에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사람은 생명강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 않고 안 믿는가보다 하고 보면 또 안 믿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옵니다. 연보도 하고 교회는 잘 다닙니다. 그래서 전적으로 믿는가 하면 전적으로 믿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주일 날을 지키지 않고 십일조도 안 드리고 양심을 안 쓰고 믿음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진펄입니다. 안 믿는 것도 아니고 믿는 것도 아니고,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가 하면 또 믿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소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오래 믿었어도 영적 소생이 없습니다. 밤낮 진펄 그대로 믿는 것이지, 아무 소생이 없습니다.
2) 개펄 - 변덕 부리는 신앙, 옛날로 돌아감
그 다음에는 개펄과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개펄과 같은 신자는 물이 들어오면 강이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확실한 신자같이 되어서 죽을지 살지 모르고 따라가다가, 얼마 안 가서는 눈이 멀뚱멀뚱해가지고 언제 은혜 받았는가 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은혜를 받아서 믿는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나가다가, 얼마 안 있다가는 그 신앙이 다 없어져서 옛날 그 사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개펄 신앙, 이것은 무엇이나 일정하지 못합니다. 변덕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저 믿으려고 할 때에 은혜 받았고 하나님한테 바로 하려고 할 때에는 그 이상 더 따라갈 사람이 없이 열심히 하고 충성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나가다는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새벽 기도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 사람 새벽 기도 잘한다’하고 있는데, 얼마 있으면 그 사람이 없어져서 안 보입니다. 물이 들어올 때는 새벽 기도에 나왔다가 물이 나갈 때는 또 땅이 드러나서 새벽 기도에 안 나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물이 들어올 때는 나왔다가 물이 나갈 때는 안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개펄입니다. 여기에도 개펄이 많습니다. 주일날에 물 한 번 들어왔다가 월요일에 물이 다 나가서 땅이 되었다가, 또 삼 일 저녁에 또 한 번 물이 들어왔다가 그 다음 목요일에 다 나갔다가 하는 사람의 신앙이 개펄 신앙입니다. 삼 일 저녁에 안 나오는 사람은 또 너무 딱딱한 개펄입니다. 삼 일 저녁에도 안 나오고 주일날만 나오는 사람은 개펄이라도 더 딱딱한 개펄로 봐야 합니다.
진펄과 개펄 신앙이 소생하지 못하는 까닭
진펄과 개펄은 소생하지 못한다고 하였는데, 그렇게 믿어서는 믿는 일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전적으로 믿고 전적으로 따라갈 생각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가다가 연약하여 쓰러질지언정 또 회개하고 바로 서서 바로 믿으려고 힘을 쓰고 전적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전적으로 왜 안 따라갑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받고 전적으로 따라가지 못합니까? 이것은 중간에 갖다놨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가지도 않고 뒤로 가지도 않고, 그러하다는 것입니다. 10년이 가도 그것입니다. 밤낮 그것입니다. ‘개꼬리 3년 묵어도 황모 못 된다’고 밤낮 믿어도 그것입니다. 변화가 없습니다. 중간에 갖다놓고 믿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것은 진펄 신앙입니다. 중간치기는 진펄입니다. 여기 중간치기 많습니다. 오래 믿었는데 밤낮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중간에 갖다가놓고 더는 나오지 아니하니까 성경을 아무리 가르쳐도 ‘할 것만 하지 난 안합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나귀 밥통처럼 딱 버티고 앉아가지고 더
는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진펄이 되어서 소생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믿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생명의 역사가 없습니다.
개펄 신앙은 진펄과 좀 다릅니다. 개펄 신앙은 전적으로 믿습니다. 믿고 따라오려고 합니다. 전적으로 믿고 믿는 일을 하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런데 결심을 해서 몇 발자국 나오다가 그 다음에 뒤로 물러가는 것입니다. 옛날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긴 무엇을 합니까? 아무리 해도 안 됩니다’하며 물러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로 물러가서 옛날 못된 버릇을 그냥 하고 있고, 또 옛사람으로 돌아갑니다. 회개했다가 다시 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개가 먹었다가 토하고 토했다가 먹는 것과 같은 것이 개펄 신앙입니다. 물이 들어오면 바다가 되었다가 물이 나가면 땅이 되는 것입니다. 소생하지 못합니다. 회개할 때 보면 그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될 것 같은데, 얼마 있다가 보면 새 사람은 무슨 새 사람, 또 헌 사람, 옛사람인 것입니다. 그대로 돌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개펄로 역시 소생하지 못합니다. 여전히 이 사람은 인본주의, 욕심, 옛사람,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믿는 자에게 생명의 역사가 나타남
그 다음에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적으로 믿는 사람이 일 번, 그 다음에 개펄이 이 번, 진펄이 삼 번이라고 하면 교회 안에 몇 번 신자가 제일 많을 것 같습니까? 진펄 신자 삼 번이 제일 많겠습니까? 아니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이 번이 더 많겠습니까? 아니면 일 번이 더 많겠습니까? 몇 번이 더 많을 것 같습니까? 나는 몇 번 같습니까? 이 번은 물이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하듯이 결심했다가 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가다가 또 안 따라가는 것입니다. 삼 번 진펄은 아예 처음부터 중간치기입니다. 들어오는 것도 없이 밤낮 그러한 대로 믿는 것입니다.
요새 삼 번도 많습니다. 자신이 따라올 것만큼만 따라오고 더 이상은 안 따라옵니다. 당나귀 밥통을 딱 바쳐놓고 주일날을 아무리 지키라고 해도 ‘지키기는 뭘 지켜. 난 살 것 산다’하며 결혼식에 갑니다.” 또 십일조를 드리라고 해도 “무슨 십일조입니까? 조금 드렸으면 됐지”라고 합니다. 또 새벽 기도를 하라고 하면 “무슨 새벽 기도를 합니까? 나는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들은 아예 대놓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새벽 기도 하라고 할 때에 ‘새벽 기도 해야 되겠다’하고 결심을 하고 한, 두 번 나오는 사람은 개펄입니다. 그런데 한 번도 못한다고 아예 내버티는 것은 진펄입니다.
하여간 아예 전적으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몸을 바치고 말씀을 따라가며 생명의 시냇가에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신앙을 가지고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생함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따라가는 사람은 생명 강수가 흘러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가는 데마다 소생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사해 바다가 살아나고 많은 고기가 살며 그곳이 아름다운 곳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사입니다. 전적으로 따라가서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에게는 이런 놀라운 일이 있게 됩니다.
본문 12절에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약 재료가 되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생명나무의 잎사귀입니다. 생명나무의 열매가 강 좌우에 많이 있습니다. 생명나무라는 것은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나무입니다. 생명강수에 살면 생명의 열매가 맺히고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여기서 ‘잎사귀’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의 모든 행위, 생명의 역사가 있는 모든 언행심사를 가리킵니다. 그것을 잎사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이나 행위 등이 다른 사람에게 약 재료가 됩니다. 신자의 믿음의 행위를 하나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믿음의 말 한 마디, 믿음의 행동 하나, 믿음의 역사 하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주는 말 한 마디가, 우리는 늘 듣던 말을 해주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의 약 재료가 됩니다. 또 우리 믿음의 열매가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열매가 됩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서 ‘잎사귀’는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의 모든 행위, 생명의 역사가 있는 모든 언행심사를 가리킵니다. 그것을 잎사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이나 행위 등이 다른 사람에게 약 재료가 됩니다. 신자의 믿음의 행위를 하나 볼 때에 모든 사람들의 생명이 살아납니다. 심령의 병이 고침을 받습니다. 믿음의 말 한 마디, 믿음의 행동 하나, 믿음의 역사 하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주는 말 한 마디가, 우리는 늘 듣던 말을 해주는 것 같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생명의 약 재료가 됩니다. 또 우리 믿음의 열매가 다른 사람을 살려내는 생명의 열매가 됩니다. 그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여간 전적으로 따라가는 성도, 말씀대로 힘 있게 따라가는 성도는 가다가 연약하여 쓰러질지언정 칠전팔기의 정신을 가지고 일어서서 또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성도에게는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힙니다. 또 그 잎사귀(신앙의 언행심사)는 다른 사람에게 약 재료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2.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눠줄 땅의 경계
2. 이스라엘 지파에게 나눠줄 땅의 경계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
본문 13절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이 지계대로 이스라엘 십이 지파에게 이 땅을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되 요셉에게는두 분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나누어주어서 기업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사람들에게 큰 희망이 되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가서 이제는 다시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영히 여기서 종살이를 하지 않겠느냐는 낙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너희는 반드시 돌아간다. 돌아가서 땅을 나누어 가진다’라는 것입니다. 12지파가 다 돌아가서 땅을 분배해 가진다는 소망을 미리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 지파에게는 창세기 48장 5절의 말
씀대로 두 몫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7절, 창세기 13장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고 하였는데, 피차없이 나누라는 것은 평등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땅을 평균적으로 나누어서 받지 못하는 사람 없이 다 받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땅으로 너희 기업을 삼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영적인 가나안의 축복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예언도 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 신령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신령한 복지를 주십니다. 신령한 복지가 어디 있습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고, 그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거기가 가나안 땅입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고 하였는데, 딴 근심이 하나도 없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탄식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곳은 그곳이 아무리 궁궐이라고 하여도 지옥입니다. 호화주택에 아무리 별 것을 다 가져다놓고 산다고 해도 거기에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습니다.
씀대로 두 몫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내가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 이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맹세하여 이 땅으로 너희 열조에게 주마 하였었나니’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 7절, 창세기 13장14-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이루실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피차없이 나누어 기업을 삼으라’고 하였는데, 피차없이 나누라는 것은 평등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땅을 평균적으로 나누어서 받지 못하는 사람 없이 다 받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땅으로 너희 기업을 삼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신약시대에 영적인 가나안의 축복을 우리 믿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예언도 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 신령한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신령한 복지를 주십니다. 신령한 복지가 어디 있습니까?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하였습니다.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고, 그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신령한 복지입니다. 거기가 가나안 땅입니다.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라고 하였는데, 딴 근심이 하나도 없고 전날의 한숨이 변하여 노래가 되고 탄식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은 그 어디나 하늘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없는 곳은 그곳이 아무리 궁궐이라고 하여도 지옥입니다. 호화주택에 아무리 별 것을 다 가져다놓고 산다고 해도 거기에 기쁨이 없고 즐거움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의 단칸 셋집에 산다고 해도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자리는 항상 기쁘고 평안하며 찬송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항상 즐겁고 주님과 같이 사는 자리가 복지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1절에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런데 요셉에게 두 몫을 주었다는 것은 요셉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고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한 몫을 더 받습니다. 더 많이 줍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과 죄 짓다가 죽을 때에 믿고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이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열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고, 또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으며, 두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두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 준다고 하였습니다. 피차없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동서남북 지계를 넘지 말고 거기에 거하라
그런데 요셉에게 두 몫을 주었다는 것은 요셉이 이스라엘을 위해서 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 수고를 많이 하고 공을 많이 세운 사람은 한 몫을 더 받습니다. 더 많이 줍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사도 바울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과 죄 짓다가 죽을 때에 믿고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받는 상급이 같지 않습니다. 다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 열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고, 또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으며, 두 므나 남긴 사람에게는 두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상급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 준다고 하였습니다. 피차없이 모든 믿는 사람에게 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동서남북 지계를 넘지 말고 거기에 거하라
본문 15-16절에 “이 땅 지계는 이러하니라 북방은 대해에서 헤들론 길로 말미암아 스닷 어귀까지니 곧 하맛과 브로다며 다메섹 지계와 하맛 지계 사이에 있는 시브라임과 하우란 지계 곁에 있는 하셀핫디곤이라”고 하였습니다. ‘북방은 대해에서’라고 하였는데, ‘대해’는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지중해에서 다메섹으로, 다메섹이 북방의 경계입니다. 다메섹은 수리아(아람)의 수도인데, 그곳이 북방 경계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지계가 바닷가에서부터 다메섹과 지계에 있는 하살에논까지요 그 지계가 또 극북방에 있는 하맛 지계에 미쳤나니 이는 그 북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다메섹이 있는 곳이 북방 경계선입니다.
본문 18절에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강이니 북편 지계에서부터 동해까지 척량하라 이는 그 동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동방 경계선은 요단강입니다. ‘동방은 하우란과 다메섹과 및 길르앗과 이스라엘 땅 사이에 있는 요단 강이니’라고 한 것을 보아 요단강이 동방 경계입니다.
본문 19절에 “남방은 다말에서부터 므리봇가데스 물에 이르고 애굽 시내를 따라 대해에 이르나니 이는 그 남방이요”라고 하였습니다. 남방 경계는 애굽입니다.
본문 20절에 “서방은 대해라 남편 지계에서부터 맞은편 하맛 어귀까지 이르나니 이는 그 서방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서방은 대해라’고 하였는데, 여기 대해도 지중해를 가리킵니다. 서방 경계는 지중해입니다. 지중해가 서방 경계입니다. 지도에 보면 지중해가 있는데, 그것이 서방 경계이고, 남방 경계는 애굽까지이며, 동쪽은 요단강으로 해서 동해(사해 바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나라 지도를 보면 동쪽에는 바다가 없습니다. 동쪽에는 요단강을 건너서 길르앗이고, 길르앗 다음에는 요르단이고, 요르단 다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내내 육지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동해라고 한 것은 사해 바다를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조금 내려가면 사해 바다가 있는데, 그것을 동해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동해 바다라고 나오면 그것은 언제나 사해 바다인 줄로 알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계를 그어주셨습니다. 경계 안에서 다 분배를 하는 것입니다. 경계 밖에는 분배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경계가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선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가 경계선을 넘으면 안 됩니다. 경계선 안에서 살면 하나님께서 늘 같이 해주시고 권고해주십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여호와의 눈이 떠나지 아니하고 늘 보호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11장 1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경계선 안에서 살 때에 권고하시고, 여호와의 눈이 세초부터 세말까지 항상 그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계선을 벗어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경계선을 그어주셨습니다. 북방은 다메섹, 남방은 애굽 시내, 서방은 대해(지중
해), 동방은 요단강과 동해(사해 바다), 거기까지가 경계선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계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한계를 넘으면 경계를 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하나님의 축복이 같이 하고 하나님의 권고가 늘 떠나지 않습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늘 여호와께서 살펴주십니다. 경계선 밖에 나가면 안 됩니다. 진리 안에서 살고 신앙 양심을 지켜야지, 진리를 벗어나면 그만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말씀 안에서 사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제 땅을 다 나눠주었는데 나누어줄 때에도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각 지파에 따라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각 지파에 따라서 분깃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믿는 사람들에게도 분깃을 나누어주십니다. 12수는 하나님의 만수인데, 자기가 받은 그 진리대로, 자기가 신앙 생활을 한 대로, 자기를 만든 대로 하나님께서 축복의 땅을 나누어주십니다. 받은 대로, 만든 대로, 믿는 대로, 그대로 하나님께서 신령한 기업을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진리를 많이 받아서 바른 진리를 많이 가지고 믿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진리를 적게 받아서 그만큼 믿는 일을 한 사람에게는 축복이 그만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그 축복이 영원히 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경계선을 넘어가면 하나님의 축복이 떠납니다. 우리의 경계선이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외인도 자녀를 낳은 자에게는 기업을 주라
본문 21-23절에 “그런즉 너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대로 이 땅을 나누어 차지하라 너희는 이 땅을 나누되 제비 뽑아 너희와 너희 가운데 우거하는 외인 곧 너희 가운데서 자녀를 낳은 자의 기업이 되게 할찌니 너희는 그 외인을 본토에서 난 이스라엘 족속같이 여기고 그들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너희와 함께 기업을 얻게 하되 외인이 우거하는 그 지파에서 그 기업을 줄찌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외국 사람이라도 너희 가운데 들어와서 오래 살며 자녀를 낳은 사람에게는 기업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방 사람도 앞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같은 기업을 주신다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방 사람도 이스라엘 백성에게 참여하고 이스라엘 운동에 협조하며 이스라엘 사람과 같이 수고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같이 기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www.changkwang.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