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
시편 119:105-144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8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09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13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찌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116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117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
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119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120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121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122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125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126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127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29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1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33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134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135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137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138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139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140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43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시편 119:105-144
105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06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07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108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09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 110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1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2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13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찌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 116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117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
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 119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 120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 121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 122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125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 126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 127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129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131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133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 134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135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137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138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 139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 140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143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
1. 주의 말씀은 길이요, 빛이 됨
본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부리 앞에 등불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아무리 흑암(黑暗)한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말씀대로 걸어가면 말씀이 빛이 되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때때로 흑암을 만납니다. 영적 흑암이나 환난을 만나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말씀이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기 때문에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씀이 언제나 발에 등불이고 길에 빛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실족하지 아니하고 형통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발부리 앞에 등불이요, 우리 길에 빛이 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항상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아무리 흑암(黑暗)한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말씀대로 걸어가면 말씀이 빛이 되기 때문에 실족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때때로 흑암을 만납니다. 영적 흑암이나 환난을 만나서 갈 바를 알지 못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말씀이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기 때문에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할 때에 말씀대로만 걸어가면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씀이 언제나 발에 등불이고 길에 빛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실족하지 아니하고 형통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본문 106절에 “주의 의로운 규례를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이 언제나 빛이기 때문에 빛되신 의로우신 말씀대로 걸어가기를 맹세하고 굳게 정했다는 뜻입니다.
본문 107절에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고난 중에서 말씀으로 소생케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고난 중에 있지만 말씀으로 소생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이 이만큼 우리에게 빛이 됩니다. 말씀이 생명입니다. 아무리 큰 고난을 당해도 말씀에 힘이 있습니다. 소망이 없는 것같아도 말씀은 우리를 소생케 합니다. 살려나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큰 고난이 와도 말씀이 있으므로 말씀대로만 나가면 그 고난 중에서 소생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본문 108절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의 낙헌제를 받으시고 주의 규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빛이기 때문에 언제나 낙헌제(樂獻祭)를 드리는 것입니다. 낙헌제는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라는 뜻입니다. 즉, 즐거운 찬송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109절에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 주의 법은 잊지 아니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경에 있사오나’라고 하였는데, 생명이 위태한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주의 법을 잊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의 법이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은 발부리 앞에 등불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위경(危境)에 있다 할지라도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고 그 말씀 대로만 나가면, 언제나 하나님께서 바른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지금 그것을 믿고 그 법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본문 110절에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다’고 하였는데, 그 올무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주의 법도에서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인이 우리 앞에 올무를 많이 놓고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해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나가면 악인의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탈선하지 아니하고 말씀대로만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아무리 올무가 많이 와도 그 올무에 걸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악인이 자신이 친 올무에 걸립니다.
대적들이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올무를 놓았습니다. 그들이 30일 간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그 사람을 사자 굴에 넣기로 법을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법을 정한 것은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다니엘이 기도하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법이 정해진 것을 알고도 성경말씀대로 기도하였습니다. 그래서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보호하셔서 사자 굴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을 참소하여 사자 굴 속에 잡아넣은 사람들, 다시 말해 올무를 놓은 사람들은 왕의 명령에 따라 사자 굴에 넣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사자에게 다 잡혀 먹히고 그만 두게 되었습니다. 대적들이 다니엘을 잡아 죽이려고 올무를 놓았는데, 다니엘이 말씀대로 나가므로 결국 그들이 그 올무에 걸린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나가면 올무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조금이라도 떠나면 마귀의 올무에 걸려서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언제나 진실하여 양심대로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면 올무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서 조금만 떠나도 실패합니다. 사람의 방법대로 하면 올무에 걸려서 결국 망하고 맙니다.
본문 111절에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증거로 내가 영원히 기업을 삼았사오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증거, 즉 말씀이 기업이라는 뜻입니다. 말씀 지킨 것이 자기의 기업이 됩니다. 그리고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의 즐거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2절에 “내가 주의 율례를 길이 끝까지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발에 등이요, 우리 길에 빛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행하려고 마음을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작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2. 주는 피난처시요, 방패이심
본문 113절에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우상을 섬기는 마음, 또 믿음으로 나가는 마음과 세상을 품는 마음,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우상도 사랑하고, 말씀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 앞에 복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3절에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 마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마음과 우상을 섬기는 마음, 또 믿음으로 나가는 마음과 세상을 품는 마음,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 마음 품는
자를 미워하십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한 분만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한 분만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도 사랑하고 우상도 사랑하고, 말씀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는 것은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 앞에 복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품는 자를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14절에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 하나님은 나(우리)의 은신처’라고 하였습니다. 은신처(隱身處)는 몸을 숨기는 곳으로, 피난처와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의 말씀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언제나 주께 피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주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고, 주님을 의뢰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이시며 방패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주의 말씀을 바란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언제나 주께 피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의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주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고, 주님을 의뢰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115절에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찌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행악자(行惡者)들을 내게서 떠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행악자가 떠나게 됩니다. 아무리 행악자가 와서 우리에게 악한 일을 해도 주의 계명만 지키면 그 행악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쳐주십니다. 원수를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본문 116절에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은 우리를 붙들어 살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대로 소망을 갖고 나가면,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않습니
다. 말씀대로 가지는 소망은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소망을 이루어주십니다. 그 소망대로 성공하게끔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받아 살므로 소망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다. 말씀대로 가지는 소망은 그 소망이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소망을 이루어주십니다. 그 소망대로 성공하게끔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을 받아 살므로 소망이 달성되는 것입니다.
본문 117절에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이시고 피난처이시기 때문에,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주의하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숨겨주시 며 승리하게 해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주의 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본문 118절에 “주의 율례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례에서 떠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멸시하십니다. 즉, 성경에서 조금이라도 떠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그런 사람은 멸시하는 자리로 내려 가게 됩니다. 성경에서 떠나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시하시는 것입니다.
또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성경에서 떠난 사람들이 수단 쓰는 것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수단을 써나가는 것, 그리고 거짓말하고 속이며 사람의 방법대로 나가는 것은 다 허무합니다.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기 때문에 결국 가다가 다 실패하게 됩니다.
또 ‘저희 궤사는 허무함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성경에서 떠난 사람들이 수단 쓰는 것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서 수단을 써나가는 것, 그리고 거짓말하고 속이며 사람의 방법대로 나가는 것은 다 허무합니다. 다 바람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기 때문에 결국 가다가 다 실패하게 됩니다.
본문 119절에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같이 버리시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주의 율법 버린 자를 멸시하신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궤사는 다 허무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120절에 “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판단을 두려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판단은 심판을 가리킵니다.
3.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하는 자의 유익
본문 121절에 “내가 공과 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압박자에게 붙이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정금보다 더 귀히 여기고 사모하면 공과 의를 행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면 그 말씀대로 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압박자에게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2절에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가 나를 압박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교만한 자가 압박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123절에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주의 구원과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데, 눈이 피곤할 정도로 바라보며 사모하는 것입니다.
본문 124-125절에 “주의 인자하신 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주의 율례로 내게 가르치소서 나는 주의 종이오니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를 알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자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면,
첫째로 공과 의를 행하게 되고(본문 121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증하셔서 복을 얻게하시며(본문 122절),
셋째로 주님께서 인자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본문 124절).
주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면,
첫째로 공과 의를 행하게 되고(본문 121절),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증하셔서 복을 얻게하시며(본문 122절),
셋째로 주님께서 인자를 베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본문 124절).
본문 126절에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폐하고 무시할 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대적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폐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아니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셔서 일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도를 구원하시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사람들이 주의 법을 폐할 때에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큰 환난이 들어와서 성도를 핍박하고 율법을 다 없애서 지키기 못하게 하며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까지 참으시다가 한 번 일어나셔서 일하십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대적들이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폐하며 나아갑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아니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나타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셔서 일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성도를 구원하시고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 그때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사람들이 주의 법을 폐할 때에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큰 환난이 들어와서 성도를 핍박하고 율법을 다 없애서 지키기 못하게 하며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때, 바로 그때가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입니다. 때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까지 참으시다가 한 번 일어나셔서 일하십니다.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성도를 구원하십니다.
본문 127절에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금보다 더 사랑하고 정금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 금보다 더 귀히 여기고 정금보다 더 귀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
께 복 받을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증해주십니다. 또 인자를 베풀어주시고 그 사람을 위해서 여호와께서 일해주십니다. 다시 말하는데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그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십니다. 또 인자를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28절에 “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주의 법도를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4. 말씀을 지키는 자의 유익
본문 129절에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증거가 기이하므로’라는 것은 주의 증거가 사람으로는 가히 알 수 없는 신령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신령한 말씀이기 때문에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
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이하고 또 그러므로 이 말씀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하나님의 비밀, 절대 진리이기 때문에 기이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그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130절에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열므로’라는 말은 각주에 보면 ‘해석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즉, “주의 말씀을 열므로(해석하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해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해석된 말씀을 잘 받아서 그 말씀을 깨달으면 우둔한 자가 지혜롭게 됩니다. 아무리 우둔한 자라도 잘 해석된 주의 것을 듣고 깨달으면 지혜 있는 사람보다 나아집니다. 미련한 자를 통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택하셔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미련한 자를 택하셔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계명을 얼마나 사모하는지, 그것을 마치 어린아이가 젖을 먹으려고 헐떡헐떡하는 것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어린아이가 얼마동안 젖을 안 먹으면 너무 배가 고파서 헐떡헐떡하며 젖을 먹으려고 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심령이 굶주려서 간절히 사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입을 열어서 헐떡 헐떡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참 귀합니다.
그 사람은 참 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입을 열어서 헐떡일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행해보니 말씀이 자기의 신령한 양식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모자라서 더 받으려는 것처럼 애를 써서 소화를 합니다. 소화를 잘 시켜야만 그 다음에
먹으려고 또 헐떡거리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소화를 잘 못시키는 사람은 먹은 것을 가지고 체증이 났으므로 입을 열고 헐떡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새김질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더욱 더 더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헐떡하는 자리로 나갑니다.
먹으려고 또 헐떡거리지 않을 것이 아닙니까? 소화를 잘 못시키는 사람은 먹은 것을 가지고 체증이 났으므로 입을 열고 헐떡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잘 새김질하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더욱 더 더 먹으려고 입을 열고 헐떡헐떡하는 자리로 나갑니다.
본문 132절에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3절에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행보를 굳게 세우신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에 굳게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그 걸음이 말씀에 굳게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죄악이 그 사람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죄악이 그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서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데에서 나아가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죄악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죄를 안지려고 하면 죄한테 못 견딥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면 죄가 물러갑니다. 물론 죄를 안 지려고 해야겠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할 때에 죄가 물러가고, 말씀에 굳게 서게 됩니다. 그의 행보가 굳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안 지으려고 하는 데에서 나아가 말씀대로 행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면 죄악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죄를 안지려고 하면 죄한테 못 견딥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면 죄가 물러갑니다. 물론 죄를 안 지려고 해야겠지만, 그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할 때에 죄가 물러가고, 말씀에 굳게 서게 됩니다. 그의 행보가 굳게 서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4절에 “사람의 압박에서 나를 구속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5절에 “주의 얼굴로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자에게 주의 얼굴을 비춰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의 법을 지키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36절에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망할 것을 생각하고 슬퍼합니다. 눈물이 시냇물과 같이 흐른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 사람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그 사람의 일은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귀의 일만 되어나가는 것을 볼 때에 불쌍해서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는 것입니다.
5. 환난과 우환 중에서 말씀을 즐거워함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과 소생함이 있음
본문 137-138절에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과 우환 중에서도 말씀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주의 명하신 증거가 다 의롭고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환난이 와도 의로운 주님께서 계시므로 의로운 판단이 나타날 것을 믿고, 또 의로우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환난이 와도 즐거움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의로우신 말씀, 의로우신 판단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과 소생함이 있음
본문 137-138절에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 주의 명하신 증거는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도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환난과 우환 중에서도 말씀을 즐거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주의 명하신 증거가 다 의롭고 성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환난이 와도 의로운 주님께서 계시므로 의로운 판단이 나타날 것을 믿고, 또 의로우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환난이 와도 즐거움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의로우신 말씀, 의로우신 판단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믿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본문 139절에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라고 하였고 또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열성’은 주의 말씀을 위한 열성입니다. 주님과 주의 말씀을 위한 열성이 나를 소멸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열심히 있기 때문에 말씀대로 나갔는데 말씀대로 나가니 대적이 와서 소멸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말씀대로 하고자 하는 열성 때문에 끝까지 말씀대로 나갔는데, 대적은 그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와서 핍박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핍박으로 말미암아 성도는 소멸하는 데에까지 나가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2장 17절에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히 나를 삼키리라’는 말씀은 역대상 29장 3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69편 9절에는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훼방하는 훼방이 내게 미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들은 본문 139절의 “내 대적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성이 나를 소멸하였나이다”와 같은 말씀입니다.
본문 140절에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말씀이 심히 정미(精米)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말씀이 우리의 생명이 되도록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 말씀은 하나에서 백까지 전부 다 우리에게 양약(良藥)이며,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말씀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41-143절에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라고 하였고, 또 ‘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환난과 우환, 근심이나 걱정이 닥쳤다고 할지라도 주의 말씀은 즐거움이 됩니다. 미천한 자리, 멸시를 당하는 자리로 내려갔어도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고 사랑하며 나아갈 때에 오히려 생명의 역사가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면 생명 길을 걸을 수 있고 영혼의 소생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큰 환난을 당하고 큰 근심에 빠지며 멸시를 받고 아무리 미천한 가운데로 내려가더라도, 주의 말씀만 잊지 않고 그 말씀만 믿고 나가면 거기에 소망이 있고 소생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들어주셔서 살 길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그 말씀만 붙들고 나아갈 때에 살 길이 열림
살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큰 환난을 당하고 미천하게 되었을 때에 말씀대로 굳게 서는 것입니다. 말씀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비천함에 빠졌을 때에 우상에게 가서 빌고 우상에게 절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비천하게 되었어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말씀대로 바로 하려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바로 서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어 주시고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또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천한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환난 당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심되는 일이 닥쳐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간구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는 말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진정한 피난처로 도망가야 합
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길의 빛이라고 했으므로,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건져주심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앞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소생케 해주시고, 항상 즐거움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 길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큰 환난을 당하고 미천하게 되었을 때에 말씀대로 굳게 서는 것입니다. 말씀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건져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이 비천함에 빠졌을 때에 우상에게 가서 빌고 우상에게 절하면 하나님께서 아주 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비천하게 되었어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말씀대로 바로 하려 힘을 써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바로 서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구원이 되어 주시고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또 방패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 길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비천한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환난 당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근심되는 일이 닥쳐도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만 간구할 때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살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도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고,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는 말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진정한 피난처로 도망가야 합
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길의 빛이라고 했으므로, 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건져주심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앞 길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을 소생케 해주시고, 항상 즐거움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는 큰 기업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 둘째, 말씀이 우리 발부리 앞에 등불이 되며 우리 길에 빛이 됩니다. 말씀이 우리에게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이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해줘서 모든 것을 바로 깨달아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경말씀을 보고 읽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사모하고 귀히 여기며, 그 말씀대로 행하고 말씀을 지키는 자가 지혜로워지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아무리 미천한 가운데로 내려갔어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소망을 성취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큰 기업, 하나님께서 나의 방패와 피난처가 되시고, 말씀이 우리 앞에 등불이요, 우리 길에 빛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우리가 이 험악한 세상을 담대히 승리적으로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 144절에 “주의 증거는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며 그 말씀에 거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