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을 측량 할 자 없음
로마서 11:31-36
로마서 11:31-36
31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또는 부요와 지혜와 지식이여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 이스라엘이 돌아옴
본문 31절에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않으므로 복음이 이방으로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이 복음을 믿고 순종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방인이 믿고 순종하는 것을 보고 유대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말입니다.
본문 32절에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란 이스라엘과 이방을 가리킵니다. 이방 사람도 처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다가 그 다음에 순종했습니다. 유대 사람도 처음에는 순종하지 아니하다가 나중에 가서 순종을 합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두셨다가 그 다음 모든 사람이 순종하는 가운데로 돌아오게 만드신다는 말입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내버려 두십니다. 내버려 두시는 바람에 하나님을 다 빼앗기고, 생명을 다 빼앗기고, 곰국만 먹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돌아오니까 또 먼저 순종하던 자들이 순종을 안 합니다.
또 내버려 두십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또 곰국을 먹고, 즉사를 당하므로 돌아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순종하지 않는 가운데 두셨다가, 징계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고 순종하는 가운데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본문 33절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도무지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이리로 가자고 하시는데 왜 가자고 하시는지 모릅니다. 또 빼앗아 가실 때에 왜 빼앗아 가시는지 모릅니다. 그저 빼앗아 가지고 가실 때에 섭섭하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빼앗아 가시는 것은 시기하게 만드시고, 곤고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찾게 만들려고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다시 하나님을 찾게 되면 빼앗었던 것을 다시 주십니다. 그러므로 빼앗아 가시는 것도 사실은 앞으로 더 주시기 위해서 빼앗아 가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게 하시려고 떠나시는 것입니다. 유대 사람도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떠나시지 않으셨습니까? “너 말 안 들으면 난 간다, 다른 집으로 간다”하시며 가셨다는 말입니다. 그 집에서 아버지가 더 잘 되게 만들어 주니까 시기가 나서 배가 아프다는 말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저 집에 가서, 저 집만 잘 되게 만들어주므로 이제 말 안 듣던 것이 후회가 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생각이 다시 납니다. 왜 말 안 들었나? 아버지가 다시 돌아오시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모합니다. 그 때에 아버지가 다시 오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저 집을 잘 살게 만들어 주시고 또 이 집에 와서 이 집을 잘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떠나신 것은 사실은 섭섭하지만 더 잘 되게 만들려고 떠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오셔서 더 잘 되게 만드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가 떠나시는 것이 자기를 잘 되게 만들려고 떠나시는 줄 모릅니다. 떠나셨으므로 그저 버린 것인가? 만을 생각 했지,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러시는 줄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벌써 계산이 있어서 떠난 것입니다. 이놈은 좀 떠나야 사람 구실을 하지 내가 밤 낮 돌봐 주니까 감사할 줄도 모르고 순종도 안하고 도리어 못된 일만 하고 돌아가니 안 되겠다, 내버려 두고 다른 집으로 가야겠다고 하시며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집에 가서 저 집이 잘되게 만들어 줍니다. 이 집은 아버지가 떠났으므로 곤고한 가운데 빠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께서는 “아! 이제 됐다, 내가 돌아가야 될 때가 왔다”하며 아버지가 돌아오시므로 이 집도 잘 되고, 저 집도 잘 되고, 다 잘 됐다는 말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가 하시는 방법을 알겠습니까? 도무지 모릅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구원 계획의 역사는 도무지 사람이 알 수 없습니다. 너무 깊고, 너무 그 지혜와 지식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측량할 수가 없습니다.
2.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측량할 수 없음
본문 34절에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앞 절에 말한, 그렇게 하시는 주의 마음을 누가 알았느냐?는 말입니다. 누가 모사가 되어서 하나님께 이 집을 떠났다가, 저 집에 가셔서, 잘 되게 하신 다음에 “이 집에 다시 오시오”라고 누가 그랬느냐?는 말입니다. 모사가 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오묘한 구원섭리에 대하여 그의 모사가 되어 같이 의논
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단독적으로 원하시는 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즉 주님께서 다 하시는데 주님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자가 어디 있느냐?는 말입니다. 사람이 주께 먼저 드려서 받는 것이 아니고, 그저 주님의 것을 받는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란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연보 바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바치는 것이지, 먼저 하나님께 연보하고, 그 다음에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치면 하나님께서 더 주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엿을 사 달라고 해서 사다 주었습니다. 아들이 엿을 한참 먹다 생각해보니 자기 아버지에게 좀 줄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코를 묻히며 한참 먹다 남은 엿을 아버지 잡수시라고 아버지 입에 갖다 댔습니다. 그 때에 아버지가 좋아서 히죽히죽 하면서 코 묻은 것을 받아서 먹었습니다. 먹고 생각해보니 이 녀석이 자기 아버지 생각할 줄을 안단 말입니다. 그래서 기특하여 “뭘 좀 사다 먹어라”하며 더 준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주신 엿으로 아버지를 대접하니 아버지께서 더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누가 먼저입니까? 아버지가 먼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주셨으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또 하나님께서 더 주십니다.
3. 만물이 주에게서 나와서 주에게로 돌아감
본문 36절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계획이 주에게서 나왔다는 말입니다. 유대 나라에 복음이 열렸다가, 이방 나라로 복음이 가는 것, 적 기독 국가들을 심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는 것 등 모든 것이 다 주께로부터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계획대로만 모든 결과를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