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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1일 일요일

예레미야애가 1:1-9 예레미야의 애곡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예레미야의 애곡
예레미야애가 1:1-9

1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 2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 3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 4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 5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 6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 7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 8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 9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

1. 예루살렘 멸망의 비참한 상태를 슬퍼함

본문 1절에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 이제는 어찌 그리 적막히 앉았는고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이 바벨론에 점령당하여 다 불사름이 되고, 많은 백성이 죽고 포로로 잡혀 가는, 형편없이 비참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 비참한 상태를 슬퍼하며 애가를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6·25 사변 때에 폐허가 되었던 서울시가와 같습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이렇게 비참하게 됩니다. ‘슬프다 이 성이여 본래는 거민이 많더니’라고 하였는데, 본래는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큰 도시였고, 거민도 많았었습
니다. 특별히 솔로몬 왕 때에는 세계에서 제일 부요하고 칭송 받는 도시였습니다. 그때에는 금과 은을 돌과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습니다(대하 1:15, 9:27). 솔로몬 궁전은 세계에 자랑하던 아름다운 궁전이었으며, 솔로몬이 지은 성전도 세계에서 유일하고 존귀한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예루살렘 거리가 적막해졌고 형편없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는 열국 중에 크던 자가 이제는 과부 같고’란 과거에 열국 중에 크던 예루살렘이 이제는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과부와 같이 고독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아무도 알아주거나 위로해주는 사람 없이 홀로 적막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는 열방 중에 공주되었던 자가 이제는 조공 드리는 자가 되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솔로몬 때에는 이스라엘이 열국의 조공을 받았습니다(대하 9:13). 공주와 같이 존귀히 여김을 받은 아름다운 나라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열방에 조공을 바치게 되었고, 바벨론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면 원수가 와서 다 짓밟고 불사르며, 또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는 자가 됩니다.

본문 2절에 “밤새도록 애곡하니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 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 친구도 다 배반하여 원수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밤새도록 애곡하니’란 너무나 슬퍼서 밤새도록 자지 않고 애곡하였다는 것입니다. ‘눈물이 뺨에 흐름이여 사랑하던 자중에 위로하는 자가 없고’란 과거에는 다른 나라들과 서로 사랑하며 통상하면서 상부상조하였는데, 이제는 과거에 친했던 나라들이 배반하고 원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할 때에는 친구도 많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많이 있으나, 하나님께 범죄하여 망한 다음에는 비참하게 됩니다. 친구는 떠나버리고, 위로해 주는 자나 도와주는 자가 아무도 없게 되며, 다 원수같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바로 서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기가 믿음을 잘 지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다른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망한 다음에 누가 도와줍니까? 친구가 어디 있습니까? 위로해주는 자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자기가 믿음에 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그것이 바로 되는 것이지, 죄만 짓고 나가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못 받으면 결국 사람 중에서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본문 3절에 “유다는 환난과 많은 수고로 인하여 사로잡혀 갔도다 저가 열방에 거하여 평강을 얻지 못함이여 그 모든 핍박하는 자가 저를 쫓아 협착한 곳에 미쳤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의 손에 붙이시면 이리로 갈 길도 없고, 저리로 갈 길도 없습니다. 앞으로 나갈 길이 없이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꼼짝 못하고 잡혀서 포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4절에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 절기에 나아가는 사람이 없음이로다 모든 성문이 황적하며 제사장들이 탄식하며 처녀들이 근심하며 저도 곤고를 받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종교 생활이 비참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시온의 도로가 처량함이여’라고 하였는데,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전에는 시온의 도로가 절기를 지키러 가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가 패망하여 절기를 지키러 올라가는 사람도 없고 내려가는 사람도 없이 시
온의 도로가 처량해졌습니다. 예전에 하나님께 제사 드리느라 많은 사람들이 시온의 길에 왕래하며 아낌없이 하나님께 바치던 때가 가장 복 있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하고 교만하고 우상을 섬기고 의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와 이제는 그 길이 다 황폐하여졌습니다. 요새도 교회에 나가는 일, 사경회에 참석하는 일, 기도하러 가는 일, 교회 봉사하는 일 때문에 여러 사람이 서로 가려고 하는 때가 복 있는 때
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해서 망하게 되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다 끊어집니다. 예배를 드리러 가지도 못하고,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할 시간이 없고, 가서 기도할 곳도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수 있을 때에 기도하고, 봉사할 수 있을 때에 봉사하며, 믿는 일을 할 수 있을 때에 힘써 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 제일 큰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새벽 기도 가는 것이 제일의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다음에 새벽 기도를 가려고 해도 못 갈 때가 옵니다. 또 기도원에 사경회 가는 것이 복 있는 때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다음에 사경회 못할 때가 옵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는 때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위해서 좀 더 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자기도 복을 받고, 자손도 복을 받고, 내세에 가서도 복 받는 법입니다. ‘제사장들이 탄식하며’란 성전이 불에 타고 제사하는 사람이 없어졌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탄식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처녀들이 근심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많은 청년들이 죽고 마침내 그들도 곤고를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하는 근심입니다.

본문 5절에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은 저의 죄가 많으므로 여호와께서 곤고케 하셨음이라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대적이 머리가 되고 저의 원수가 형통함’이란 유다가 패망하매 대적되는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사람의 머리가 되었고 그 원수가 형통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바벨론 사람들이 유다에 와서 두목이 되어 자기들에게 유리하도록 정치를 하므로 그들이 형통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전에 일제 시대 때에 일본 사람들이 한국 사람의 머리가 되었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에 초등학교 교장은 거의 일본 사람이었습니다. 또 선생도 일본 사람이 많았습니다. 모든 기관의 기관장들이 다 일본 사람입니다. 우리 한국사람과 인격적으로 비교해보면 반 근짜리도 못되는 사람들을 세워놓고 한국 사람을 좌지우지하였습니다. 도지사, 군수 다 일본 사람입니다. 또 시장도 일본 사람입니다. 머리가 전부 일본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원수가 와서 머리가 되었으니 얼마나 원통합니까? 그 다음에는 그들이 한국 사람의 것을 다 빼앗았습니다. 한국 사람은 소작농만 하였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이 이와 같은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와서 다 머리가 되었습니다. ‘어린 자녀들이 대적에게 사로잡혔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 백성이 죄 값으로 망할 때에 그들의 자녀들까지 끌려가 비참하게 종 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한 죄값으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본문 6절에 “처녀 시온의 모든 영광이 떠나감이여 저의 목백은 꼴을 찾지 못한 사슴이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림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처녀 시온’은 사랑 받고 귀히 여김 받으며 평안하게 지내던 예루살렘 성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하며 평안하던 예루살렘의 영광이 이제는 다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저의 목백’은 유다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꼴을 먹지 못하여 힘이 없는 사슴이 그 쫓는 자 앞에서 힘없이 달리는 것처럼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꼴을 먹지 못해서 배가고픈 사슴이 달아나기는 달아나는데 힘없이 비틀비틀하면서 달아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예루살렘이 환난과 군박을 당하는 날에 옛날의 모든 즐거움을 생각함이여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원수에게 점령당하여 환난과 궁핍을 당하여 곤고한 때에 과거에 어떻게 신앙 생활하였으며 어떻게 복되게 살았는가를 생각해봅니다. 전에 하나님을 섬기면서 은혜와 복을 누리던 것을 추억해보면 지금 상태가 너무도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유다 백성들이 공주와 같은
존귀한 생활을 하였는데, 지금은 비참하게 되어 종 살이를 하고 죽을 지경에 빠져 있습니다. 옛날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너무 비참합니다.
옛날에는 하늘에서 살았다면 지금은 땅 속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죄 값은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 옵니다. 사람들이 대개 좋은 때가 지나고 환난과 곤고한 날이 와야만 전날의 좋은 때를 추억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셨을 때에 감사하며 충성하고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그 좋은 환경을 연장시켜 주십니다. 요새 월남 사람들이 비참한 상태에 빠졌는데, 옛날에 망하기 전을 생각해보면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좋을 때에는 좋은 줄을 모릅니다. 좋은 때가 지나가고 환난과 곤고한 날이 와야만 전에 좋았다는 생각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좋게 해주셨을 때에 감사하고, 거기에
서 충성하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향락주의로 나가고, 하나님께 대해서 불 충성으로 나가고, 이기주의로 나가다가 망한 다음에 후회해야 아무 쓸데없습니다.
저는 새벽에 봉원동 기도실에 갈 때에 참 감사합니다. 자유스럽게 하나님 앞에 기도하러 기도실로 걸어가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북 같으면 기도하러 걸어갈 수 있겠습니까? 이북 같으면 기도하러 가지 못합니다. 또 갈 시간도 없습니다. 늘 강제 노동을 해야 하는데 언제 가겠습니까? 기도하러 자유스럽게 걸어가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또 건강을 주셔서 걸어가게 해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 감사한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언제나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망한 다음에 그 전이 좋았다고 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백성이 대적의 손에 빠지나 돕는 자가 없고 대적은 보고 그 황적함을 비웃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 백성들이 죄 값으로 대적의 손에 빠졌으나 그것을 보고도 도와주는 자가 없고, 그 대적들은 백성을 보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전에 친구되었던 자는 배반하고 물러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지 않으시면 아무도 도와줄 자가 없습니다.

본문 8절에 “예루살렘이 크게 범죄하므로 불결한 자같이 되니 전에 높이던 모든 자가 그 적신을 보고 업신여김이여 저가 탄식하며 물러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전에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높이 받들었으나, 범죄하여 하나님께서 벌하실 때에 벌거벗은 적신이 되었고, 그것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멸시하였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니’란 음행 죄 범한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이 육신의 음행 죄도 지었고(겔 33:26), 우상을 섬기고 세상과 벗되는 영적 음행도 많이 지었습니다(약 4:4).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란 음행할 때에 망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죄의 결과가 비참하게 될 줄 모르고 음행의 즐거움에 미혹되어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과 짝하는 것이 다 음행하는 죄입니다. 그런 성도는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결과를 생각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죄를 범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놀랍게 낮아져도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여 원수가 스스로 큰 체하오니 나의 환난을 감찰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음행하면 낮아지고, 비참하게 되며, 쫄딱 망하고, 원수가 조롱하며, 비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와 같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같이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려서 시온의 도로로 가는 것이 제일 큰 복인 줄 알고 믿음에 바로 서서 나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