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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1일 토요일

마태복음 27:1-26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판결함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판결함
마태복음 27:1-26

1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6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둠이 옳지 않다 하고 7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11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12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13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14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15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16그 때에 바라바라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17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18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9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20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21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22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23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24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25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26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본문 1-2절에,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고 했습니다. 27장은 십자가 장입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유대사람의 두목들인데 자기들은 사람을 죽일 권이 없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아야 죽일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결박을 해서 빌라도에게 넘겨줬습니다.

1. 가룟 유다의 뉘우침과 죽음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가룟 유다

본문 3-4절에,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가로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가로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얼마에 팔았습니까? 은 30입니다. 은 30은 종 한사람의 값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고 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잡히셔서 결박을 당하시고 빌라도에게 끌려가 정죄 받으시고 죽으시게 되는 것을 알고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가룟 유다가 뉘우치긴 뉘우쳤습니다. 가룟 유다가 뉘우치고 “내가 무죄한 피를 팔았다” 라고 생각을 했고, 가서 죄를 범하였다고 하면서 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이것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회개할 기회가 다 지나갔는데 이제 와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돈을 도로 갖다 주든지 성전에 갖다 던지든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기회가 이미 다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됩니다. 회개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지, 일단 예수님을 팔아 넘겨졌기 때문에 소용이 없습니다. 이젠 예수님께서 끌려가서 정죄를 받게 되는데 회개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회개하면 예수님을 다시 놔줘야 되겠는데 팔 때에는 자기가 예수님을 팔아먹을 수 있었지만 이제 놔줄 수 없었습니다.

또 회개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놔줄 리가 없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다 지나갔습니다. 모든 것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도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2:16-17에,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고 하시는데,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가 회개할 기회를 잃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단 말입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 했어야 되는데 다 팔아먹고 이제 기회가 다 지나갔기 때문에 회개할 수 없습니다. 에서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고 난 다음에 아버지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주었습니다. 이제 와서 회개한다고 해도 그 축복 걷을 수 없습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는 죽이라고 하셨는데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잡아 왔습니다. 결국 사무엘이 아각 왕을 죽였습니다. 아각 왕이 살았을 때까지는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말렉 왕 아각을 사무엘이 죽인 다음에는 사울 왕은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기회가 다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아무것이든 기회는 있습니다.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가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기회 지나가기 전에 회개할 바를 회개해야 되고 바로 세울 바를 바로 세워야 되고, 또 재정문제에 대해서도 기회 지나가기 전에 줄 것을 줘야 되고, 양심대로 기회 지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바로 해야 됩니다. 기회 지나가면 하려고 해도 못 합니다. 만사가 다 기회 지나기 전에 해야 됩니다.

가룟 유다의 죽음

본문 5절에,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고 했는데, 유다가 너무 괴로우니까 그 은을 성소에 갖다 던지고 물러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죄 값은 이렇게 고통이 옵니다.
예수를 판 죄로 인해 너무 고통이 오기 때문에 이렇게 은을 성소에 갖다 던져놓고 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죄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주야로 손으로 내리 누른다”라고 했습니다(시 32:4). 예수님께서 가책을 시키시고 고통을 주시고, 죽을 지경에 당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견딜 수 없어서 은을 성소에 갖다 던지고 목매어 달렸다가, 끈이 끊어져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와서 죽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6-7절에,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가로되 이것은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라고 했습니다. 유다가 성전에 은을 갖다 던지고 죽었는데 “이것을 성전에 넣어 두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자기네들이 의논하고 나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를 장사하는 장지를 삼았습니다. 

본문 8-10절에,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이 이루었나니 일렀으되 저희가 그 정가된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정가한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고 했고, 또 스가랴 11:12-13에,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준가를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고 되어있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레미야의 예언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스가랴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가랴가 예레미야가 한 말을 기록을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은 30을 달아줬다” 라는 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2.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 줌

빌라도의 심문

본문 11절에,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라고 했는데, 총독이 빌라도인데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유대 나라가 로마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로마에는 가이사 아구스도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에는 총독을 세웠으므로 빌라도 총독이 유대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왜정 때에 일본이 한국에 총독부를 세워서 통치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중앙청이 총독부였습니다. 그리고 총독이 중앙청에 있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으면 어떻게 될 뻔 했습니까?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다면 일본 총독이 중앙청에 아직도 앉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총독 내 쫓을 수 있습니까? 3.1 운동 때, 총독 내쫓으려고 하다가 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에 갇히고 한국 사람이 얼마나 희생 많이 당했습니까? 또 교회적으로 나와서 삼일 운동하다가 불타진 교회가 있습니다. 재암교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아직도 일본 통치하에 있었다면 지금쯤 한반도에는 일본 사람이 대부분 다 나와서 살고 한국 사람은 만주로 다 쫓겨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 때에 정책이 그것이었으니까 말입니다. 만주, 서간도, 연변, 그쪽으로 한국 사람들 지금도 몇 백만 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왜정 때 한국 사람들 다 북방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는데 몇 년만, 한 몇 십 년만 더 있었으면 다 들어갈 뻔 했습니다. 여기서 있으면 자꾸 못살게 만들고 거기 만주로 가면 잘해주고 하니까 자꾸 그쪽으로 갔던 것입니다. 안 갈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는 자꾸 박대를 하고 거기가면 또 잘해주고 하니깐 다 이사 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서간도에 다 가서 살 뻔 했습니다.

그러기에 한국이 독립된 것이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고, 둘째는 미국의 은혜입니다. 미국이 한국에 독립을 줬기 때문에 독립이 된 것입니다. 미국이 그때 대동아 전쟁을 이겨서 한국독립을 안 해주었다면 아직도 식민지 그대로 있을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요새 반미 운동하는 사람들은 뭘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다. 아니, 미국이 한국독립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반미운동 하냐는 것입니다. 
또 6․25 사변 때 안 도와주었더라면 전부다 공산통일 될 뻔 했는데, 미군이 와서 도와준 덕분에 분단은 되었어도 공산통일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반미운동 하느냐 말입니다. 감사하게 생각을 해야 당연한데 말입니다. 우리가 근본을 알아야 합니다. 조그만 문제 가지고 괜히 반대운동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해 주신 것이고, 그 다음엔 미국사람들이 이렇게 독립을 줘서 일본사람 총독의 지배를 받지 않고 독립이 된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감사합니까?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어봤습니다. 그 사람들의 고소하는 조건이 그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말이 옳도다” 즉,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면 반역자로 몰아서 죽이려는 것입니다. 로마식민지 통치하에서 식민지나라에서 지금 왕이 하나 났다고 하면 로마를 거역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식민지에서 이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유대인들이 ‘유대인의 왕’ 이라는 명칭을 붙여서 고소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총독이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라고 했습니까? “네 말이 옳다. 내가 왕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8:37-38에,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십니다. “내가 이를 위해서 났으며 이를 위해서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니까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왕이시고 진리를 증거하러 오셨다고 하시는데 “진리가 무엇이냐?” 라고 빌라도가 물었던 것입니다. 진리가 뭔지 빌라도가 몰랐습니다. 진리가 뭔지도 모르니까 예수님께서 왕이라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본문 12-14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라고 했는데, 무리가 여러 가지 증거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소를 당하고 또한 많은 증거로 고소 당하고 있었을 때, ‘고소하는 것을 듣지 못하느냐?’ 는 빌라도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왕이라’ 고 한마디 해 놓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여러 마디 맞는 말이라 해도, 말 같지 않는 것에는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언불청 도불행(言不聽 道不行)이라는 말이 있는데 말 같지 않는 것은 듣지 않고 길이 아닌 것은 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말 같지 않은 것은 대답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본문 15-18절에,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저희가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저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고 했습니다. 명절을 당하면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유월절을 당했는데 빌라도는 이 때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습니다. 대제사
장들과 장로들이 자기들의 시기로 잡아 온 줄 알고 또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줄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살인강도로 살인하다 잡힌 바나바라는 사람을 하나 앞에 두고 그 옆에 예수님을 세운 가운데 “둘 가운데 누구 놓아 달라느냐? 바나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면서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고 무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본문 19절에,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에 그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하더라” 고 했는데, 총독의 아내가 총독이 재판 자리에 앉았을 때 사람을 보내서 오늘 꿈에 예수님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으니 예수님께 아무 상관도 하지 말아 달라고 전했습니다. 꿈에 애를 많이 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그 아내가 자기 남편인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님은 옳은 사람이니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옳은 사람에 대해서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깨닫게 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

본문 22-24절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멸하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가로되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고 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죄 없으신 줄을 알았습니다.

요한복음 18:38에,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다”라는 빌라도의 말은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 죄가 없는 줄 알면서도 백성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달라고 자꾸 아우성을 치니까, 그리고 민란이 나려 하는 것을 보고서는 백성의 부르짖는 소리에 빌라도가 그만 지고 말았습니다. 자기가 지고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내어주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죄 없는 사람을 내 줄 수가 없기에 물을 떠다가 손을 씻으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했습니다. 손을 씻으면서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 그 죄를 누가 당해야 되느냐?” 라고 물은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씻으면서 “나는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 죄가 없다. 그러니깐 너희가 당하라”라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백성이 말한 대로 피 값을 당함

그 손 씻으면서 “자기는 죄 당하지 않는다”하면 안 당하겠습니까? 빌라도가 손을 씻으면서 나는 깨끗하다. 죄 안 당한다. 그러면 안 당합니까? 손 씻는 것이 그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손 씻는다고 해도 그 죄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건 괜히 헛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는 줄을 알면 무죄석방을 해야지 죽는 데에 내어주면서 손 씻는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냐는 말입니다. 빌라도가 “너희가 당하라” 하니까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돌릴지어다” 그랬는데, 이 사람들 말대로 예수님의 피를 그 유대백성과 유대백성의 자손이 다 당했습니다. 말한 대로 당한 것입니다. 또 그런 말 안 해도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인 그 죄 값을 그 사람들이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그 자손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백성이 예수님을 잡아 죽인 죄 값으로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다 불타지고 성전이 다 헐리고 유대사람이 다 쫓겼습니다. 유대인들이 주후 70년에 유대나라에서 쫓겨나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망명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러한 나라 없는 생활을 오늘까지 계속해 내려왔습니다. 주후 70년에서 1948년이니까 1900여년, 약 2000년 동안 나라를 잃어버리고 본토에서 쫓겨나서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서 생활을 했습니다. 망명생활을 한 것입니다. 얼마나 죄 값이 무서운 것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값으로 백성들이 다 본토에서 쫓겨나서 1900여 년 동안을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비참한 생활을 한 것입니다. 나라 없는 생활, 망명 피난생활, 이런 생활을 한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말세에 가서 유대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예언대로 지금은 돌아와서 이스라엘이 독립 했습니다. 1948년도에 독립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에는 지금 세계에 흩어졌었던 백성들이 점점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 유대백성이 몇 명이라고 합니까? 한 사백만정도 된다 합니다. 유대의 전국 국민이 한 사백만 밖에 안 됩니다. 사백만이면 서울의 절반도 안 됩니다. 다 해도 서울시민의 절반도 안 됩니다. 부산이 얼마입니까? 부산 480만 입니다. 유대 전국 백성 다해도 부산 시민만 하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얼마 안 됩니다. 군대를 다 합해도 한 12만 명인가 그렇게 된답니다. 군대도 몇 명 안 됩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유대사람들에게 권세를 줬기 때문에 작은 백성이지만 아주 강합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나려고 하니까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사람들이 점점 돌아온다고 합니다. 가서 전쟁하여야겠다고 하면서 돌아온다고 합니다. 나라가 어지러워지고 나라가 이라크에 침략 당하려고 하니까 ‘다 가서 우리나라를 지켜야 되겠다’ 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백성들이 살다가 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전쟁 날까봐 슬슬 도망치는데 얼마나 정신이 좋습니까? 다른 나라는 전쟁나면 도망쳐버립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쟁나면 돌아오는 것입니다. 유대사람들은 돌아와서 나라 지키려고 하는데, 그 참 아주 정신이 좋습니다. 좋은 정신입니다.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돌리라. 그 죄를 당하겠다” 라고 말한 그대로 죄를 당했습니다. 말한 대로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할 때에 그 말하는 것을 허투로 말 안해야 합니다. 말한 대로 되는 것이 많습니다. 아이들에게도 ‘망해라’, ‘자빠져라’, ‘어떻게 되어라’, 막 욕하면 안 됩니다. 말한 대로 되는 일이 많이 있으니 말씀입니다.

어떤 목사가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가서 교회 일을 보지 못하고 늘 왔다갔다만 하니까, 그 사모님이 돈을 벌어서 생활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너무 속이 상하니까 “한국 나가서 변하여 새사람이 되어서 돌아오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둘 가운데 하나 하라” 고 그랬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목사님이 한국에 왔습니다. 그 사모님이 한국에 가서 유능한 목사가 되고 나서 미국에 돌아와 교회를 보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든지 하나 하라고 했는데 그만 한국 나와서 죽었다고 합니다. 유능한 목사가 갑자기 될 수 있겠습니까? 유능한 목사 못 될 바에는 죽어야 한다고 말한 그 사모님은 아마 지금까지 상당히 후회할 것입니다. ‘왜 내가 그런 말 해가지고……’ 하면서 상당히 후회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한 대로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항상 말한 대로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말을 허투로 안 해야겠습니다. 

본문 26절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고 난리를 꾸미던 바나바는 놔주고 예수님은 채찍질 하고 십자가에 못 박게 넘겨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이렇게 정죄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넘겨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