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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역대상 21:1-30 다윗의 인구 조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다윗의 인구 조사
역대상 21:1-30

1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3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나 4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5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일백십만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이라 6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
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9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10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1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12혹 삼 년 기근일찌,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찌,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찌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 13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 14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 15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16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17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18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19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가니라 20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21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어다 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 22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23오르난이 다윗에게 고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의 좋게 여
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24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25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26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27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 28이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29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30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 

1. 다윗이 사단에게 격동되어 인구 조사를 함

다윗이 안일과 교만에 빠짐

본문 1절에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이용하여 다윗을 시험하셨습니다. 이것은 욥이 사단에게 시험을 받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과 같습니다(욥 1:12). 사무엘하 24장 1절에
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셨다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진노하신 이유는 다윗이 많은 대적을 물리치고 태평할 때 안일에 빠져서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라고 하였는데, 마귀는 언제나 성도를 격동시키고, 시험에 넘어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게 만들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할수 있습니다. ‘격동하여’라는 말은 ‘자극하다, 충동하다’의 뜻으로, 사단이 다윗을 충동하여 인구 조사하게 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것이 왜 잘못된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군사를 의지하려고 인구 조사를 한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자랑하지 않고 자기의 세력을 자랑하려고 하였기 때문이며,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렘 17:5-6). 넷째,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지 않고 자기가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간 것이고, 다윗이 교만 빠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귀는 언제나 모든 일이 잘되어 안일주의에 빠졌을 때, 또 교만할 때에 들어옵니다. 

본문 2절에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고,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습니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 온 땅의 백성을 계수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요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죄가 있게 하시나이까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백 배나 많게 해주실 것이며, 이 백성이 다왕의 종인데, 왜 백성을 계수하여 그것을 의지하고 자랑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려고 하시느냐고 간하였습니다. 요압이 다윗 왕에게 바른 말을 해주었습니다.

본문 4-5절에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떠나서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일백십만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다윗 왕에게 간하였지만, 왕이 듣지 않았습니다.
윗사람에게 간해 보고 윗사람이 듣지 않으면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리 문제는 죽어도 순종할 수 없으나 진리 문제가 아니면 윗사람이 잘못된 일을 시킬 때에 간해 보고, 그래도 계속하라고 강요하면 순종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질서가 바로 됩니다. 만일 윗사람에게 우겨대면 질서가 파괴됩니다. 윗사람이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할 때에도 아랫사람은 먼저 팥으로 메주를 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그래도 계속 쑤라고 하면 팥으로 메주를 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때에 윗사람이 팥으로는 메주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진리 문제는 윗사람이라도 절대 순종할 수 없지만,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순종하여야 합니다.

본문 6절에 “요압이 왕의 명령을 밉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요압이 볼 때 다윗이 전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였는데, 지금은 교만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고 살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다윗이 미워서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는 빼고 보고를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징계와 다윗의 회개

본문 7-8절에 “하나님이 이 일을 괘씸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인구 조사 한 것을 괘씸히 여기셔서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다윗을 괘씸히 여기셨을까요? 이전에 다윗이 환란이 많을 때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시면 살 수 없는 줄 알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갔는데, 이제 대 제국의 왕이 되자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며 나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곤궁할 때에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다가 조금 나아지면 그것을 의지하고 자랑하면서 살려고 하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징계가 옵니다. 그러므로 돈이나 기업체나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 9-12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선견자 갓에게 이르시되 가서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갓이 다윗에게 나아가 고하되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마음대로 택하라 혹 삼 년 기근일찌, 혹 네가 석 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찌, 혹 여호와의 칼 곧 온역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찌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 것을 결정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갓을 다윗에게 보내시어 징벌의 내용을 말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선지자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다윗에게 직접 할수 있지만, 선지자를 통해서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전하는 선지자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잘 받아야 합니다. 선지자 갓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재앙입니다. 첫째는 삼 년 기근, 둘째는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겨 다닐 일, 셋째는 사흘 동안 이스라엘 땅이 온역을 당하는 일입니다. 이 가운데서 선택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무엘하 24장 13절에는 칠 년 기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원본에서 사본으로 필사할 때에 ‘삼(三)’ 자가 계속 나오니까, 필사자(筆寫者)가 7년을 3년으로 잘못 기록한 것 같습니다.

본문 13절에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사흘 동안의 온역을 택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긍휼의 손에 빠지기를 원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긍휼이 크시기 때문에 긍휼 베풀어주실 것을 믿고, 이것을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며 하나님의 자비의 손에 맡기는 것이 낫습니다. 다윗이 잘 선택하였습니다. 아비가 자식을 징계함 같이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맞으려는 것입니다. 자비한 자는 징계를 하다가도 자비를 베풉니다. ‘온역(瘟疫)’은 전염병을 가리킵니다.

본문 14절에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삼 일 동안 온역으로 칠만 명이 죽었습니다. 다윗이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의지하는 것을 제거하셨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무엇을 의지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그 의지하는 것을 제해버리십니다(사 3:1).

본문 15-17절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멸하러 사자를 보내셨더니 사자가 멸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멸하는 사자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 곁에 선지라 다윗이 눈을 들어 보매 여호와의 사자가 천지 사이에 섰고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예루살렘 편을 가리켰는지라 다윗이 장로들로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아뢰되 명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내니이다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자기가 지고 회개하였습니다. 회개하는 자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하나님께 회개합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자기는 책임을 피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책임을 자기가 질 줄 알며, 잘못한 것을 찾아서 회개하여야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3. 다윗이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

본문 18-19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갓을 명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올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선지자 갓을 시켜 하나님께서 다윗으로 하여금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하신 것을 다윗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0-21절에 “때에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돌이켜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었더니 다윗이 오르난에게 나아가매 오르난이 내어다 보다가 다윗을 보고 타작 마당에서 나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오르난이 밀을 타작하다가 천사를 보고 네 아들과 함께 숨은 이유는 천사가 여호와의 칼로 예루살렘을 치려고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침 다윗과 그의 신복들이 오는 것을 보고, 그가 나가 맞으며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영접하였습니다.

본문 22-23절에 “다윗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이 타작하는 곳을 내게 붙이라 너는 상당한 값으로 붙이라 내가 여호와를 위하여 여기 한 단을 쌓으리니 그리하면 온역이 백성 중에서 그치리라 오르난이 다윗에게 고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의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재앙을 멈추게 하려고 하나님의 명대로 제사 드릴 장소인 오르난의 타작 마당을 구하였는데, 오르난이 제사 드리는데 필요한 땅과 모든 것을 거저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4-27절에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결단코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취하지 아니하겠고 값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고 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사자를 명하시매 저가 칼을 집에 꽂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르난이 타작 마당을 거저 드리겠다고 할 때에,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상당한 값을 주고 그 땅을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재앙이 그쳤습니다.
오르난이 자원하여 바치고자 할 때에 다윗이 값을 지불한 것은 첫째, 이방인의 소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이 정당치 못하기 때문이며, 둘째, 남의 터 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값을 주고 사들인 후 아내 사라를 장사한 것과 같습니다(창 23:1-20). 셋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본문 28-30절에 “이때에 다윗이 여호와께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응답하심을 보고 거기서 제사를 드렸으니 옛적에 모세가 광야에서 지은 여호와의 장막과 번제단이 그때에 기브온 산당에 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사자의 칼을 두려워하여 감히 그 앞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큰 제사는 기브온 산당에 가서 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번에 범죄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이 두려워서 기브온 산당에 가서 제사하지 못하고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선지자가 명한대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2017년 1월 31일 화요일

사무엘하 24:1-25 인구 조사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인구 조사
사무엘하 24:1-25

1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2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 3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 4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5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6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7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8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9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 만이었더라 10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11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12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 13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 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 14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15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인이라 16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 곁에 있는지라 17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 18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19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20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21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 22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 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23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24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25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1.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함

인구 조사 준비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왕이 이에 그 곁에 있는 군대 장관 요압에게 이르되 너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로 다니며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인구를 조사하여 그 도수를 내게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 한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켜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군대장관 요압과 다른 사람을 불러다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전부 다 조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단은 북쪽이고 브엘세바는 남쪽입니다. 

본문 3절에 “요압이 왕께 고하되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요압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본문 4-6절에 “왕의 명령이 요압과 군대 장관들을 재촉한지라 요압과 장관들이 이스라엘 인구를 조사하려고 왕의 앞에서 물러나서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명령을 재촉하기 때문에 요압과 군대장관들이 인구 조사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장막을 치고 인구 조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인구 조사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안 해야 될 인구 조사를 한 것입니다. 역대상 21장 1-2절에 “사단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두목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서 내게 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본문 1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다윗을 감동시켜 가서 인구 조사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맞습니까? 둘 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사탄을 이용해서 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마귀인데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범위 안에서 사람을 격동도 시키고 시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것은 사탄이 하지 못합니다. 

인구 조사를 실시한 다윗

그런데 다윗은 인구 조사를 해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했습니다. 그것 가지고 잘해보려고 하다가 하나님께 인구 조사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요압 군대장관은 이것을 알고 ‘왜 인구 조사를 하려고 합니까? 이 백성은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했습니다. 인구 조사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해주실 텐데 왜 인구 조사를 해서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왕이 그래도 말을 안 들었습니다.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하니까 요압과 군대 장관들이 인구 조사를 하려고 떠났습니다.

본문 5-9절에 “요단을 건너 갓 골짜기 가운데 성읍 아로엘 우편 곧 야셀 맞은편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길르앗에 이르고 닷딤홋시 땅에 이르고 또 다냐안에 이르러서는 시돈으로 돌아서 두로 견고한 성에 이르고 히위 사람과 가나안 사람의 모든 성읍에 이르고 유다 남편으로 나와서 브엘세바에 이르니라 저희 무리가 국중을 두루 돌아 아홉 달 스무 날 만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요압이 인구 도수를 왕께 고하니 곧 이스라엘에서 칼을 빼는 담대한 자가 팔십 만이요 유다 사람이 오십 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브엘세바까지 다 인구조사를 했습니다. 아홉 달 스무날 동안 했습니다. 9개월 20일 만에 인구 조사가 다 끝났습니다. 군대 나갈만한 사람이 이스라엘 가운데 팔십 만이고, 유다 사람 오십만을 합하면 일백 삼십 만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을 조사한 것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이라 하면 굉장한 것입니다. 

우리 한국군이 몇 명입니까? 육십 만입니다. 일백 삼십 만 대군이 우리 한국 군대보다 배나 더 많습니다. 일백만 대군도 상당히 큰 것인데 일백 삼십만 대군이 조사가 됐습니다. 이만하면 괜찮지 않습니까? 일백 삼십만 대군만 가지고 있으면 그 주변 나라도 다 쳐부술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바로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군사가 많아서 그것을 가지고 든든한 나라를 세우고 주변 나라들을 다 정복하고 큰 나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바로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이유

1) 다윗이 교만해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향하여 진노하사 인구를 조사하도록 하셨습니까? 인구 조사를 하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으로 인구 조사를 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진노하셨습니까? 

지금 다윗의 모든 것이 형통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유다가 이스라엘에 복종하고, 대적이 다 굴복을 하였습니다. 사울의 모든 집도 다 굴복시켜 모든 것이 안정이 되어 건실하고 창성하게 나아간 때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진노하셨겠습니까? 다윗이 교만해서 진노하신 것 같습니다. 잘된 것을 자기가 한 줄로 알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며 하나님의 은혜인지 알지 못하고 자랑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모든 일은 잘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충성스러운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몇 명씩 죽였다고 했습니까? 한 사람이 팔백 명도 죽이고 삼백 명도 죽였습니다. 소나무 채찍으로는 사백 명을 죽였습니다. 장대한 자를 창과 막대기 하나 가지고 싸워 이기고, 그 창을 빼앗아 죽였습니다. 대승리를 했습니다. 형통하게 되고 모든 것이 안정되고 잘 되었습니다. 그런데 안정되고 잘 될 때에 신앙이 잠들기 쉽고, 교만하기 쉽고, 제가 한 줄 알기 쉽습니다. 지금 다윗은 모든 일을 자기가 하려고 하는 생각에 빠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마귀를 시켜 다윗을 격동시켜 인구조사를 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다윗이 북쪽 단에서부터 브엘세바 남쪽까지 나라의 인구 조사를 해서 도수를 자신에게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2) 인구 조사의 목적이 잘못됨

 인구를 조사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모세 때에도 인구 조사를 하고, 출애굽 때에도 인구 조사를 했는데, 그때는 하나님께서 시켜서 했습니다. 인구 조사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세 때에 인구를 조사해 보니 애굽에서 나온 사람이 몇 명이라고 했습니까? 육십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사람 중에 전쟁에 나갈 만한 사람이 육십만 명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하지 않아야 할 인구 조사를 했습니다. 모세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한 것이고, 다윗은 안 할 것을 한 것입니다. 그 목적이 틀렸습니다. 다윗의 인구 조사 목적은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은 것을 자랑하며 그것으로 앞으로 한 몫 하려는 데에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의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또 그것으로 한 몫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또 잘된 것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과 더 잘 해보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목적이 틀렸습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잘되던지 잘못되던지, 성공하던지 실패하던지, 자기 몸에서 그리스도 하나만 존귀해지면 만족하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지금 많은 군사를 조사하여 더욱 강력한 나라, 군대가 강한 나라를 만들어 좀 더 사람 세력을 의지해 잘해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5-8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믿고 권력을 의지하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아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세력을 의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력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사람을 의
지하고 믿으면 안 되고, 돈을 믿으면 안 되고, 성공한 것을 믿으면 안 되고, 사업이 잘 되는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을 바가 아닙니다. 믿을 바는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잘되든 못되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면 망합니다. 사람, 권세, 숫자가 많은 것, 군사가 많은 것, 돈 많은 것 등을 의지하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겠습니까? 처음부터 잘못되었습니다. 교만하여 제가 한 줄로 알고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위하려고 하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 하나가 있으면 그것을 의지하기 쉽습니다. 실력이 있으면 그것을 의지합니다. 

평양에서 이기선 목사님이 성경 연구원을 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대소지 책에 다 나와 있습니다. 학생이 140~150명 정도였는데, 신학교라는 이름을 사용 할 수 없어서 성경 연구원이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저도 신학 연구원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이십대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이 커서 지금 이만큼 되었습니다. 그때 이기선 목사님께 배웠으니 제게 대소지 책을 낼 사명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상당히 좋은 것이 많습니다. 책 서론에 나오는데 여자가 거의 절반되었습니다. 남자보다는 숫자가 조금 적었지만 상당히 많았습니다. 어떠한 여자들이 왔는가 하면 다 잘 생겼습니다. 얼굴이 멀건하고, 아주 미끈하게 잘 생긴 여자들이 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렇게 잘 생긴 여자들이 왔느냐고 물어보니까 다 이혼당하고 왔다고 합니다. 자기 얼굴 잘 생겼다고 교만하고, 남편 순종 안 하고 제 잘난 맛에 나가다가 이혼하고 갈 데 없으니 성경 배우려고 나온 것입니다. 실력이 하나 있으면 실력을 배경으로 교만해집니다. 실력이 있으니까 ‘네 까짓 것과는 안 살아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하고 싸우고 다투다 쫓겨납니다. 아예 못생기고 실력이 없는 사람은 한번 시집가면 감개무량해서 무조건 복종하는 것입니다. 내쫓으려고 해도 내쫓을 수 없는 것입니다. 무조건 복종하는데 어떻게 내쫓겠습니까? 어떤 여자는 남편하고 싸우는데 이로 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쫓겨나 갈 데가 없어서 성경 학교 오는 것입니다. 우리 신학교는 그런 사람은 안 받아줍니다. 싸우고 남편 물어뜯고 갈 데 없어서 온 사람은 안 받아줍니다. 무엇 하나 잘되면 교만해집니다. 실력이 하나 있으면 교만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것 가지고 살려고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고, 혈육을 의지하고 권력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인구 조사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권력을 위해서 인구 조사하고, 의지하려고 하고, 믿으려고 하고, 그것을 자랑하고, 그것 가지고 살려고 하니까 인구 조사한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예레미야 17장 6절에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과 세력를 믿고 마음이 여호와께 떠난 사람은 이렇게 됩니다.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사람

1)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는 사람

예레미야 17장 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여호와만 의뢰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의뢰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접어놓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나가야 합니다. 사람이 잘되었어도 사람을 의지하며 자랑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것입니다. 일이 잘됐든 잘못됐든 그것은 관계없습니다. 잘되었어도 괜찮고 못되었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나가는 사람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뭐가 잘됐다고 자랑하지 말고, 그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 합니다. 있든지 없든지 그것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만 의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만 살려고 하며 다른 것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2)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

또 말씀만 붙들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만 의뢰하고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을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써서 말씀만 붙들고 나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뿌리가 강변에 뻗친 나무는 더위가 와도 걱정이 없고, 가물어도 걱정이 없습니다. 뿌리가 강변에 뻗쳐 열매를 잘 맺고 청청합니다. 

2. 다윗의 회개와 하나님의 징계

다윗의 회개

본문 10절에 “다윗이 인구 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인구 조사 후에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회개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죄를 지어도 회개를 잘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의 징계

본문 11-12절에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가서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갓에게 임했습니다. 갓이라는 선지자가 다윗에게 갔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네게 세 가지를 보이노니 너는 그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 내가 그것을 네게 행하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징계를 해야 하는데,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여 가로되 왕의 땅에 칠년 기근이 있을 것이니이까 혹시 왕이 왕의 대적에게 쫓겨 석 달을 그 앞에서 도망하실 것이니이까 혹시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이 있을 것이니이까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왕의 땅에 칠년 동안 흉년이 있을 것’입니다. 둘은 ‘왕이 석 달 동안 대적에게 쫓겨나 신앙생활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왕의 땅에 삼 일 동안 온역, 즉 전염병이 있어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지금 갓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나아와 이렇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 가지 가운데 첫째는 칠 년 흉년이 와서 그 기간 동안 죄 값으로 고난당하는일, 둘째는 석 달을 대적에게 쫓겨나 도망쳐 다니는 일, 셋째는 삼 일 동안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는 일입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징계를 안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되겠습니까? 안 받게 해달라고 기도해도 안 됩니다. 받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안 받겠습니까? 세 가지 가운데 하나는 받아야 합니다. 자기가 받게 만들어 놓았는데 어떻게 안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작정을 하셨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습니까? 

본문 14절에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내가 곤경에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이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했는데, 이 말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기 때문에 온역(전염병)으로 치는 것이 다른 경우보다 좀 나을 것 같다는 뜻입니다. 이에 다윗은 삼 일 온역(전염병)이 칠 년 기근이나 원수에게 석 달 동안 피해 다니는 것보다 좀 나을 것 같아서 그것을 택했습니다. 여호와의 손에 빠진다는 것은 삼 일 동안 온역(전염병) 받기를 원했다는 것입니다. 왜 온역을 원했습니까? 여호와는 긍휼이 크시니까 때리다가도 좀 봐주실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고 긍휼이 크시니 하나님께 매를 맞으면 그래도 얼마동안 때리다가 그 매를 거둬주실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크시니 끝까지 때리지 않고 어느 정도 때리시다가 건져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본문 15절에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온역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칠만 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라고 한 것은 사흘 동안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전염병으로 칠만 명이 죽었으니 많이 죽은 것입니다. 다윗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많이 죽은 것입니다. 

지도자의 범죄는 영향력이 큼

지도자가 범죄하면 그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다윗이 왕인데 왕이 범죄하니 이스라엘 백성 칠만 명이 죽은 것입니다. 지도가가 잘못하면 백성이 큰 손해를 봅니다. 지도자가 바로 해야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선거를 이번 목요일에 하는데 바로 뽑아야 합니다. 바로 뽑지 못하면 우리 한국 백성들이 앞으로 큰 환난을 당하고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바로 뽑으면 그러한 곤경에 안 빠질 것 같습니다. 어떠한 사람이 대통령으로 적합한지 잘 생각하여 바로 뽑아야 합니다. 신중하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거짓말로 선전하는 사람은 찍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택해야만 하겠습니까? 실제로 바로 알아서 바로 택해야 합니다. 이번에 바로 택하지 못하면 큰 일 나는 것입니다. 큰 일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지도자 하나가 잘못하면 많은 사람이 죽고 원수에게로 쫓겨 다니게 됩니다. 칠 년 기근이 있고 경제가 파탄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도자가 바로 나오도록 언제나 기도하고 자기 신앙양심을 써서 바로 투표해야겠습니다. 우리나라가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또 이북에도 복음이 들어가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왕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을 세우시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3. 징계 후에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심

본문 16절에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칠만 명이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죽었는데 천사가 아직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칼을 들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흘이 다 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흘째가 되어야 정한 때입니다.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천사가 계속 나가는 것을 보면 만 사흘이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사실은 기간 동안 종일 멸망을 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이 다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다윗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천사에게 손을 거두라고 하셨습니다. 이만 했으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17절에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자신은 범죄하였으며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애매한 백성만 많이 죽었습니다. 여기서 다윗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라는 하였는데, 이것은 백성들을 치지 말고 범죄한 자신을 치고 자기 아비 집을 쳐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께 진정한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셨습니다.

4. 다윗이 아리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제사를 드림

아리우나가 타작 마당과 소를 다윗에게 주려고 함

본문 18-21절에 “이 날에 갓이 다윗에게 이르러 고하되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소서 하매 다윗이 여호와의 명하신 바 갓의 말대로 올라가니라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왕과 그 신복들이 자기를 향하여 옴을 보고 나가서 왕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가로되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 다윗이 가로되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였습니다. 갓이라는 선지자가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으로 찾아갔습니다. 아라우나가 바라보다가 자기의 타작 마당으로 왕과 신복들이 오는 것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어찌하여 내 주 왕께서 종에게 임하시나이까”라고 하니까 다윗이 “네게서 타작마당을 사서 여호와께 단을 쌓아 백성에게 내리는 재앙을 그치게 하려 함이로라”고 하면서 타작 마당을 팔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22-23절에 “아라우나가 다윗에게 고하되 원컨대 내 주 왕은 좋게 여기시는 대로 취하여 드리소서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나이다 왕이여 아라우나가 이것을 다 왕께 드리나이다 하고 또 왕께 고하되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라우나가 전부 거저 드린다고 한 것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왕께 드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번제에 대하여는 소가 있고, 땔나무에 대하여는 마당질하는 제구와 소의 멍에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를 제물로 삶아 제사 드리라는 것입니다. 또 마당질하는 기구를 다 때려서 그것으로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다윗이 타작 마당과 소를 값 주고 삼

1) 물질문제에 믿음을 바로 써야 함 

본문 24절에 “왕이 아라우나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값을 주고 네게서 사리라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은 오십 세겔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자신이 값을 주고 직접 산다고 하였습니다. ‘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타작 마당과 소를 사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직접 사서 제사 드린 것을 배워야겠습니다. 이것은 물질문제인데, 물질 문제에 대해서 바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정당한 값을 주고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재산 분명히 대장부’라는 말이 있는데, 재정에 대해서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재정에 대해서 분명치 않으면 안 됩니다. 정당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라가 죽었을 때에 그곳의 사람들이 막벨라 굴을 거저 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아브라함이 ‘내가 돈 주고 사지 아니하면 여기서 장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3장 16절에 “아브라함이 에브론의 말을 좇아 에브론이 헷 족속의 듣는 데서 말한 대로 상고의 통용하는 은 사백 세겔을 달아 에브론에게 주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은 사백 세겔을 달아서 에브론에게 값을 주고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장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기에서 여러 사람이 장사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3장 8절에도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사랑의 빚 외에는 다른 빚을 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 합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지 빚까지 얻어다가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에 IMF가 왜 왔습니까? 무조건 무제한으로 빚을 얻어다가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흥청망청 쓴 것입니다. 계속 빚을 얻어다 쓰다가 지금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한국이 현재 천오백억 달러 정도의 빚이 있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것은 천오백억 달러이고 그 외에도 많이 있는 모양입니다. 전에 김영삼 대통령에게 어떤 목사가 빚이 얼마인지 물어보았더니 모른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니 살림살이하는 사람이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계속 얻어다 써 놓으면 어떡합니까? ‘국민 소득이 만 달러이다. 선진국이 된다. 해외여행 가라. 달러가 많다. 이제 십대 강국에 들어간다’라고 하면서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는데 참 한심합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정주영 씨는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백성이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왜 대통령으로 뽑았냐는 것입니다. 그때 정주영 씨가 대통령이 됐다면 나라가 경제적으로 큰 부흥이 될 뻔했다고 합니다. 먼저 번에 김영삼 대통령과 경쟁을 한 번 했습니다. 그 말도 옳을 것 같습니다. 정주영 씨 같은 사람이야 경제가 훤하지 않습니까? 울산에 현대 중공업, 현대자동차만 봐도 굉장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경제적으로 참 잘 될 뻔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지 않으시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막 쓰고 인건비 올려주어라. 해외여행 시켜라. 경부고속전철을 해라. 뭘 해라’고 하면서 자꾸 벌려 놓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돈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습니다. 하는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뭘 해라. 뭘 해라’하니까 돈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까 빚이 얼마인지도 모르고 계속 쓰기만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멍이 안 나겠습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것은 대통령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백성들도 왜 그런 사람 뽑았느냐는 말입니다. 정주영 씨 말이 맞습니다. 그러니까 IMF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물질 문제에 대해 바로 할 줄 알아야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빚진 죄인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잠언 22장 7절에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또 한국 속담에 ‘빚진 죄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대로 된 것입니다.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빚을 지지 말아야 합니다. 빚 안지고 사는 생활을 배워야 합니다. 빚을 지고 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빚을 안 지고 사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룻은 빚을 안 지려고 이삭을 주어다 먹었습니다. 떨어진 이삭을 주워다 먹으면서라도 빚을 안 져야 합니다.
빚을 안 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바로 된 것입니다. 또 빚을 안 져야 자유가 있습니다. 빚을 지면 자유가 없습니다. 죄인입니다. 어떻게든지 빚을 안 지고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돈을 주고 제사할 곳과 제물을 사서 제사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돈을 주고 사야 합니다. 그래서 재정에 대해 정당해야 합니다.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집도 외상으로 빚을 져가며 짓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실력이 될 만하면 집을 짓고 경제적으로 실력이 안 되면 짓지 말아야 합니다. 왜 집을 짓느냐는 말입니까? 안 지으면 되는 것입니다. 지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감당할 수 있을 때나 집을 짓든지 무엇을 사든지 하는 것입니다.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왜 삽니까? 정신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어떤 여자가 한 명 있는데 남의 빚이 일억 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물어주려고 최선을 다해서 애를 쓰는 것 같기는 한데 정신을 못 차리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봤더니 가정주부인데 무슨 대학교를 다니려고 한답니다. 아이가 몇이나 되는 가정주부가 대학교를 뭐 하러 다니려고 합니까? 대학교를 다니면 돈이 얼마입니까? 못 해도 백오십 만원 이상 이백 만원은 내야 되는데, 남의 빚까지 져가며 무엇 때문에 대학교를 다니려고 하느냐는 말입니다. 백 오십 만원이 있으면 빚을 물어주지, 대학교는 뭐 하러 다니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을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습니다. 재정에 대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물어줄 생각을 안 합니다. 덮어놓고 얻어다 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얻어다 쓰면 다인 것입니다. 물어줄 생각은 안 하고 제 것인 줄 아는 것입니다. 얻어만 놓으면 제 것입니다. 정신 상태가 비뚤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못 합니다. 어째서 남의 것을 얻어다 놓고 물어줄 생각은 안 합니까? ‘무조건 얻어다 쓰면 다인가 보다’하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사람은 정신이 빠져나간 사람 아닙니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빚진 죄인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하든지 빚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전에 백만 원 가지고 살았으면 오십 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오십 만원 가지고 살았으면 삼십 만원만 가지고 살면서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속이 편안하지 않습니까? 물어주어야 자기가 소생해 올라오는 것입니다. 여전히 백만 원 가지고 살려고 하면 못 물어줍니다. 백만 원 가지고 살던 사람이 오십 만원 가지고 살면서 오십 만원씩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또 삼십 만원씩 가지고 살면서도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삼십 만원 가지고도 살 수 있습니다. 왜 못 삽니까? 하여간 빚진 사람은 최소한의 생활을 하면서 오매불망 빚 물어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자나 깨나 잊지 않아야 합니다. 

2) 의식주로 생기는 물질문제에도 믿음을 바로 써야 함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한 줄로 아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면 족합니다. 많이 벌려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루에 최소한 얼마를 가지면 살 수 있습니까?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까
최소한도의 생활비만 있으면 됩니다. 하루에 쌀은 얼마 정도 먹습니까? 쌀 한 되 정도면 하루 동안 먹습니다. 한 되에 얼마입니까? 한 가마니부터 합시다. 한 가마니에 얼마입니까? 한 가마니에 십육 만원으로 합시다. 한 가마니면 80kg이고 열 말 정도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 말에 만육천 원이니까 한 되면 천육백 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루에 천육백 원으로
먹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반찬값은 얼마입니까? 반찬도 천육백 원이라고 하면 합이 삼천이백 원입니다. 천육백 원도 넉넉히 잡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녁에 용산 채소 파는 시장에 가면 팔다 남은 우거지 같은 것은 한 광주리에 몇 푼 안 주고도 사온다고 합니다. 사실은 천육백원도 너무 많이 잡은 것입니다. 마지막에 다 팔다 남은 찌꺼기는 아주 싸게 팝니다. 그것은 얼마 정도합니까? 오백 원이면 산답니다. 사봤습니까? 사봤다고 합니다. 그러면 쌀이 천육백 원에다 채소 값이 오백 원이니 모두 이천백 원입니다. 가락동에 가려면 차비가 천원 정도가 듭니다. 한꺼번에 가서 열흘 치를 해오는 것입니다. 소금은 얼마입니까? 하루에 소금 백 원 어치를 먹는다고 하면 총 이천 이백 원입니다. 백 원 어치는 안 판다고 해도, 한꺼번에 사다가 하루 먹는 정도는 백 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여간 이천 이백 원이 맞습니다. 가스가 있으면 가스로 해서 먹는 것입니다. 가스 없는 집은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해먹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은 안 듭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지금 드럼통으로 난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산에서 나무를 갖다가 때는데 돈은 하나도 안 듭니다. 돈은 안 들지만 얼마나 뜨거운지 모릅니다. 목사님들이 와서 IMF 난로라고 그럽니다. 그러면 의복은 어떻게 합니까? 아파트에 가면 거저 가져올 것이 많다고 합니다. 구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루 이천 이백 원이면 살 수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안 죽습니다. 이북에는 그것도 없
습니다. 이북에서는 하루 쌀 한 되도 없고 채소도 못 구하고 의복도 거저 가질 것이 없습니다. 이북에서 의복 입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한심합니다. 양말도 천으로 칭칭 감고 다닐 만큼 뭐가 없다는 것입니다. 온 식구의 의복이 한 벌인데 한 사람이 나갔다 들어오면 또 바꿔 입고 나가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비참한 상태입니다. 최소한 오천 원이면 하루를 생활한다고 했지요? 그것은 아마 중간 생활쯤 되는 모양입니다. 오천 원 가지고 살아도 하루 나가면 아무리 못 벌어도 만원은 법니다. 

또 집세가 많이 나와서 잘 곳이 없다고 하는데, 이것은 지하도에 가서 자면 된답니다. 그렇지만 지하도에 가서 자지는 말고, 천막 하나를 사서 산에다 치고 살면 됩니다. 낮에는 걷어치우고 저녁이 되면 갖다가 치는 것입니다. 낮에 걷어 놓았다가 밤에 가서 치고 사는데 누가 압니까? 만약 누가 와서 말하면 걷어놓았다가 다른 산에 갖다가 치는 것입니다. 천막치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북에서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이북보다는 낫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최소한으로 생활하는 데에는 돈이 얼마 안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면 경제적으로 빚을 안 지고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빚을 안 지고 살아야 합니다. 맹물을 조려 먹어도, 어떻게 하든지 빚을 안 지고 살아야 합니다. 반찬으로 소금을 해먹어도 빚을 안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빚을 지면 빚진 죄인이 됩니다. 또 만약 빚을 졌으면 어떻게 하든지 물어주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가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물어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사람이 빚을 졌는데, 본인은 번듯하게 새 양복을 해서 입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아마 십 년은 더 된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개는 내 빚을 지고서 안 물어 준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번듯하게 의복도 잘 입고 다니고, 할 것은 다 하면서 안 물어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양심을 비뚤게 쓰는 것입니다. 남의 빚을 졌으면 어떻게 하든지 의복도 해 입지 않고 쓸 데도 쓰지 않으면서, 빚을 물어주려고 해야 합니다. 어떻게 쓸 것을 다 쓰면서 빚을 집니까?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이런 사람은 빚진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돈을 빌려 준 사람은 이자를 받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이자를 놓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자놀이를 한 것은 성경 위반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빚진 사람은 최소한으로 생활하면서 어떻게 하든지 물어주어야 합니다.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밤낮으로 일하면서라도 빚을 빨리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언제든지 모든 것을 정당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값을 다 지불할 만한 실력이 없으면 아예 안 사면 되는 것입니다. 괜히 외상을 해서 남도 망하게 하고 자기도 망하게 만들면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가려지는 것입니까?

본문 25절에 “그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을 은 오십 세겔로 사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을 그치셨습니다. 그때에야 그쳤습니다. 정당하게 해야 그칩니다. 이것을 우리가 배워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