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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빌립보서 2:12-18 하나님의 자녀의 삶.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자녀의 삶
빌립보서 2:12-18

12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13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 15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6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18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같이 내가 함께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 두려움과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어라.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분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자원하여 행하게 하신다. 

2:14 너희는 모든 일을 불평과 분쟁이 없이하여라. 

2:15 이는 너희가 흠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부패한 세대 가운데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세상에서 하늘의 별들처럼 빛나게 하려는 것이다. 

2:16 너희가 생명의 말씀을 붙들어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하게 하여라. 이는 내가 헛되이 달음질하지 않았고 헛되이 수고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2:17 너희의 믿음의 희생제물과 봉사 위에 나를 부어 드리는 제물로 드린다 하더라도 내가 기뻐하고 너희 모두와 함께 기뻐할 것이다. 

2:18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여라. 


1. 항상 구원을 이루라
본문 12절에,“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이루라고 하였습니다. 중생한 영혼에는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있습니다. 육신의 부패성, 죄악성은 점점 벗어버리고, 중생한 영혼은 점점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점점 이루어 나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겁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법적으로 구원은 받은 중생한 영혼이 어리므로 자라나야 하며, 남아있는 부패성을 날마다 벗어버리고, 의의 옷을 점점 입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어 나가고, 능력을 좀 더 입어나가고, 또 지혜와 지식을 점점 입어나가고, 도덕적인 면, 즉, 거룩과 의와 진실, 사랑으로 더욱 입어나가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면 자라난 대로 하늘나라에 올라갑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습니다.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자라난 대로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라난 만큼 그대로 하늘나라에 갑니다. 이 세상에서 잠깐 지나는 동안에 영원한 것이 판결이 나는 것입니다. 나그네 생활 잠깐 하다 갈 텐데, 많이 자라난 사람은 영혼이 자라난 대로 가서 면류관을 받고,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불 가운데 벌거벗은 자와 같은 상태로 구원을 받는 부끄러운 사람처럼 자라
나지 못하였으니 가서 아무것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이 자라났다면 많이 큰 자가 되고, 조금 자라났으면 작은 자가 되고, 안 자랐으면 안 자란대로 가는 겁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이고, 행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라 그러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천국에는 큰 자가 있고 작은 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자라난 대로 가는겁니다. 일생 동안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켜서 하늘나라에 간 사도바울하고, 죄만 짓다가 죽을 때 예수 믿고 간 사람하고 같습니까? 그게 같다고 하면 불공평합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하늘에서 큰 자는 종살이 많이 한 사람이라고 그러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분명히 종살이 많이 한 사람이 큰 자라고 했는데 어떻게 같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구원을 잘 이루어 하나님 앞에 가야겠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하는데 어떻게 하든지 신앙양심에 복종하고, 그리고 성경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복종 안하면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금 자라난 사람, 많이 자라난 사람. 좀 더 자라난 사람 등, 저마다 자라나는데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기 생명을 내 놓아야 합니다. 생명을 안 내어 놓으면 생명이 우상이 되기 때문에 가다가 중단합니다. 가다가 생명 내 놓아야 갈 수 있는 때가 옵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기서 중단이 됩니다. 생명 내놓고 따라가야 합니다. 에바브로디도도 생명 내놓고 따라가지 않았습니까? 본문 30절 보십시오.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이라고 했는데, 에바브로디도처럼 아예 목숨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목숨이 우상이 되면 못 따라갑니다.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예 목숨 내 놓고, 십자가 안 지고는 못 따라 갑니다. 육신의 생명은 썩을 장막입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라 했는데,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죽어도 육신의 썩을 몸 벗어 놓고 그 생명이 그냥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썩을 장막 벗어 놓고 갈 각오를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됩니다. 예수의 마음을 품지 못하면 예수를 닮아갈 수 없습니다.

예수의 마음이 어떤 것이라고 했습니까? 네, 다섯가지 중 첫째는, 다 내놓는 것이지요. 자신을 다 내어놓아라. 영광과 권세와 명예를 다 내놓으라는 것, 곧 비우라는 것이고 둘째는, 지극히 낮아지라는 것. 피조물 되기까지 낮아지라는 것이며, 셋째는 종살이 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넷째는 맡긴 바 일에 희생, 충성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복종하다 죽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나갈 때 구원을 조금씩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시일이 많이 걸려야 할 것입니다. 여러가지 시험도 다 겪어야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겪는 동안에 구원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성경대로 통과하고 신앙 양심대로 통과하고, 말씀을 따라가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그것을 믿음으로 통과하면서 구원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갑니다. 믿음이 자라난 대로 갑니다. 자라난 자에게는 상급이 큽니다.
못 자라나면 못 자라난 대로 갑니다. 하늘나라에도 큰 자와 작은 자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보면 불붙는 집에서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 같은 구원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구원을 받은 사람은 아무것도 자라나지 못한 것입니다. 아는 것도 없고, 아무 실력도 없습니다. 그래도 하늘나라 가면 즐거워합니다. 한 살 난 아이도 즐거워서 손과 발을 버둥거리지 않아요? 하늘나라는 모두에게 좋은 나라입니다. 

기쁘고 즐거운 나라입니다. 어른도 즐겁고, 아이도 즐겁고, 다 즐거운 나라이지만, 그래도 열 살 정도 자라나야 그만큼 즐거운 수가 있고, 또 스무 살 쯤 자라나야 자라난 만큼 아는 게 많아 즐겁고, 삼십 세 정도 되면, 이것, 저것 더 많이 알고 경험한 것들로 또 처리하고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자라 난 사람은 알고 할 수 있지만, 자라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고,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참 좋은 나라이니, 놀고, 먹어도 하늘나라
가면 기쁘긴 하겠습니다. 하지만 자라나서 가야지, 자라나지 못한 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로 가면 뭐가 그리 좋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성큼 자라나서 이리 저리 모든 걸 하며 다니는데, 아무것도 몰라서 팔 다리 버둥거리는 한 살 난 아이와 같다면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범사에 양심을 쓰고, 범사에 하나님을 순종하고, 범사에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순종하며, 하나님 인도함에 순종하며, 윗사람이 시킬 때 순종하며, 범사에 교회에서 하는 일에 순종하며, 모든 면에 두렵고 떨림으로 항상 복종함으로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세월을 아끼라고 했는데 정말 세월이 살 같이 빠릅니다. 휙휙 지나갑니다. 날아갑니다. 휙휙 날아가는 세월인데 이제 세월을 아끼고 날마다 복종하여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2.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순종하라

본문 13절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의 인도를 그대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따라가라는 것. 성령께서 속에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라는 겁니다.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하여튼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 조금씩 이루어져 나갑니다. 우리 안에서 행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행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고 우리 안에서 감동 시키시고, 우리 안에서 인도하십니다. 

골로새 1장 29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는 말은 좇아간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2절을 읽어보세요.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심령에 매임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속에서 능력으로 행하시는 이의 인도를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말입니다. 올라가는데 환난과 결박이 기다려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이 계시는데, 그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려고 소원을 두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로 하여금 당신의 기쁘신 뜻을 우리를 통하여 다 이루시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큽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을 주고 인도해 나가시며, 말씀대로 인도해 나가십니다. 

이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이루어져 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욕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을 이루시려고 성령께서 우리를 붙들고 역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 뜻을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주어서 잘 되어 나가며, 그 일이 성공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는 각자에게 조금씩 다릅니다. 전체적으로 주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를 세워 나가고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세워 나가고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그 다음에 각자에게 ‘너는 무엇을 해라, 너는 어떤 것을 해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려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순종해야 됩니다.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기쁘신 뜻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자기도 자라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하나님이 기쁘신 뜻이 모두 실현됩니다. 

교역자 될 사람은 교역자 되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합니다. 안 되긴 뭘 안 됩니까? 하나님이 되라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너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다”인데 안 되겠다 하면 기쁘신 뜻을 반대하겠다는 것입니다. 기쁘신 뜻대로 안하면 그대로 둘까요? 하나님이 그대로 안 두십니다. 그 사람은 도망치겠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배타고 도망갔는데, 지금은 비행기 타고 도망가겠다는 것입니다. 배나 비행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자기를 통해 이루시려고 할 때에, “예” 하고 순종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에, 자격이 없어도 “예” 하고 순종하십시오. “자격 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데, 할 자신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니, 자격이 있는 겁니다. 자신이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안 쓰십니다.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써서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인가 각자에게 다 있는 것입니다. 모두들 잘 찾아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무엇일까, 또 우리가 무슨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해결할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해결할 때 어떻게 하면 좀 이로울까, 돈 많이 벌까, 평안할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어떻게 하면 이루어 드릴까? 이 문제를 하나님 기쁘신 뜻대로 해결을 해야 할 턴데 어떻게 할까? 하며 여하튼 하나님의 기쁘신 뜻만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주셔서 그 일이 성취되어 나가고, 그로 인해 자기는 자라 나가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일은 잘 되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은 우리 교회적으로도 이루어 나가야 됩니다. 요새는 구 공산권 국가에 선교하는 일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 같습니다. 교회적으로나, 교단적으로나 선교하는 일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아니겠는가 합니다. 실제로 해 보면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나타납니다. 열매가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기쁘신 뜻을 위해서 나서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 하며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결사 각오하고 기쁘신 뜻을 위해서 나서는 겁니다.
그러면 구원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 나갑니다. 우리가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어느 정도 이루어드리고 하나님께 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교회, 또 각자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 각자가 다 되어야 주 앞에 갈 때, 책망 받지 않고,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려고 믿으면 낙제입니다, 낙제. 자기 하나 천당 가려고 하는 것은 낙제라는 말입니다. 충현교회에서 김현봉 목사님이 성경학교를 할 때, 저도 강사로 있었는데, 한 학기 공부를 하고 학기말 시험을 치면, 김현봉 목사님은 구두로 시험을 봅니다. 필기로 안 합니다. 한 곳에 학생을 모아 놓고 하나씩 불러와서 물어 보는 겁니다.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이냐?” 하고 물어 봅니다. 대답이 “천당 가려고 예수 믿습니다” 하면 낙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해 주신 것이 감사함으로 믿습니다”라고 하면 합격입니다. ‘구속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 믿는 것’이 합격입니다. 이렇게 질문 몇 개씩을 한 사람씩 불러서 물어보면 많이들 낙제합니다. 자기 하나 잘 되려고 천당 가려고 하면 하나님은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 잘 되 나가고, 자기는 잘 못 되고, 자기가 쇠해져도 하나님의 뜻만 잘 이루어져 나가면, 그것이 성공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것이 자기가 자라나고, 그것이
자기가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세례요한과 같이, 그는 흥해야 되겠고 나는 쇠해야 되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언제나 “기쁘신 뜻을 조금이나마 이루어 드리고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내게 대한 기쁘신 뜻, 우리 교회에 대한 기쁘신 뜻, 우리 교단에 대한 기쁘신 뜻이 다 있습니다. 또한 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기쁘신 뜻등, 다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을 잘 찾아서 그대로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도와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자기도 자라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실현되어 나갑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실현되어 나가야 됩니다. 그 기쁘신 뜻이 실현되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운동입니다. 

3. 세상의 빛들로 나타나라

본문 14절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려고 해야 하고, 또 원망과 시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 문제 아닌 것은 원망과 시비하지 말며, 어떻게 하든지 원망과 시비가 없도록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본문 15절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가 무슨 세대라 했습니까?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전부 진리에서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입니다. 진리는 올라가는데 세상은 내려갑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려서 내려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 받으면 안 됩니다. 올라가야 하는 성도가 내려가는 것을 본 받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꾸로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로마 12장에는 세대를 본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대를 본 받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세상이 들어오
고, 세상주의로 빠져나가는 교회들이 많은데, 어그러지고 거스러지는 것을 본 받으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되고 우리는 거슬러서 올라가야 됩니다.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내라고 하셨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빛이 됩니다. 어두운 세상에 성경 말씀을 증거하면 빛이 됩니다. 또한 말씀대로 생활하면 빛이 됩니다. 입으로 말씀을 증거하여 빛을 나타내고, 행동으로 빛을 나타냅니다. ‘성경에 이렇게 말했다’라고만 하면 빛이 많이 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거기에 대해 행할 때에 빛으로 나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술 먹지 말라고 했는데, 어떤 예수 믿는 사람에게 “한 잔은 괜찮다, 뭐 석 잔 까지도 괜찬다, ‘구주 예수’란 말도 있으니 아홉 잔 까지 괜찮지 않느냐”하며 옆에서 자꾸 먹이려고 할 때가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 했으므로 안 됩니다. 난 안 먹습니다. 한 잔도 안 됩니다”하고 단번에 딱 잘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빛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상 섬기자, 제사드려라” 할 때, “난 제사 안 한다, 성경에 제사 하지 말라고 했다, 우상 섬기지 말라고 했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도 와라”고 해도 “난 안 간다”고 하면 벌써 빛으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까? 또 도적질을 하자고 꾈 때도 “성경에 도적질하지 말라고 했다, 난 안한다”, 음행하자 할 때 “성경에 음행하지 말라 했다, 난 안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어그러지고 거스려졌으니까 나는 빛들로 나타낸다는 말입니다. 주일에 “음식점 가서 사먹자”고 할 때, “난 안 간다. 성경에 주일을 하루 종일 온전히 지키라고 했으니까 음식점 가서 사먹는 거는 죄다, 난 안 간다”고 하는 겁니다. 어그러지고 거스러진 세대 가운데서 성경말씀대로만 말을 하고 성경말씀대로만 생활하면 반드시 빛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면 어디를 가든지 빛이기 때문에, 어두운 것들이 다 드러나는 것이요, 드러나기 때문에 어두운 것들은 슬슬 피해서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두운 것은 구석으로 들어가지 않습니까?
성경대로만 하면 빛이 나타나니까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가만히 있지 마십시오. 침묵하지 마십시오. 

이북을 고향으로 둔 어떤 믿는 사람이 자기가 빛으로 나타내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고 말하더군요. 이북의 고향을 가게 되었을 때 찬송도 부르고, 자기 어머님 무덤에 가서는 “어머니 천당 가신 줄 믿습니다”하며 좀 과감하게 이북 공산당 앞에서 천당 증거도 하고, “나는 지금까지 예수 믿고 왔습니다” 하고 빛들로 나타내고 왔어야 했는데, 가만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자기 어머님 무덤에서 그저 묵상기도만 하고 왔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믿는 사람이 볼 때, 묵상기도
를 했는지 명복을 빌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럴 바에야, 아예 공산당 앞에서 빛으로 나타내는 겁니다. “우리 예수 믿습니다”하고 대놓고 말입니다. 또, 상가(喪家)에서 절하라고 하면, “저는 예수 믿습니다. 기독교식이기 때문에 절 안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절 할 사람은 마음대로 하라는 식으로 다른 사람을 그냥 두어도 안 됩니다. 아예 빛으로 드러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시체에 절 안한다”고 하십시오. 그리고는 “당신도 예수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또한 누가 같이 사기쳐서 돈 좀 벌어보자고 유혹해도, “성경에 양심 쓰라고 했다”라고 말하고, “속이지 말라고 했는데 난 안 한다”고 하면, 이 또한 빛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이렇게 어그러지고 거스러지는 죄악이 관영한 이 세대 가운데서 너희가 빛들로 나타나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빛의 생활을 하라, 빛의 말씀을 증거하라, 빛의 교회를 세워라, 참 교회를 세워라, 바로 믿는 교회를 세우라는 말입니다. 거기서 빛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교회들이 다 어두워 가고, 빛을 잃어 가는데, 참 빛을 나타내는 교회, 참 빛을 나타내는 성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직장 상사가 교회 장로인데 주일날 직장에 나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못 나가겠다고 하니, 상사가 “난 장로다, 넌 뭐냐, 집사냐?”고 해서 “저는 집사도 아닙니다”라고 하니, 그 장로가 말하기를“ 집사도 아니면서 뭘 그러느냐, 난 장로라도 주일날 직장에 나온다, 넌 어디서 그런 것을 배웠느냐”고 하더랍니다. 그래도 “저는 못 나갑니다”라고 했더니 그 장로가 얼마나 멸시하는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래도 교인으로서 빛으로 드러낸 겁니다. 빛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장로까지 부끄럽게 만든 것입니다. 흑암이 들어와서 장로까지
점령했는데, 교인 하나 점령하려다가 그만 빛이 비춰나가니까 꼼짝 못한 것입니다. 심령 속까지 들어간 것입니다. 그 직장 상사 장로가 집에 들어가서 생각해 볼 겁니다. 그 사람이 진짜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 예전엔 안 그랬는데...,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며 회개할지도 모릅니다. 

빛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인들이 세상에서 참 빛을 나타내고, 참 빛을 나타내는 교회를 세워야 하고, 그런 선교사를 보내야 하고, 참 빛을 나타내도록 세우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또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 나간다고 하면 아주 잘 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거기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어둠의 세상이 점점 물러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이런 일을 많이 하다가 하늘나라 가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또 후대 사람도 그것을 본받아서 그렇게 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그러지고 거스린 흑암의 암흑 세상에 빛들로 나타나는 그런 성도가 돼서 구원을 잘 이루어나가야 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고,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동으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입으로 밝히라는 것입니다. 자기 영이 먼저 영적생명으로 살면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부터 살고, 영에서 나오는 말씀과 행실로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간다면 영이 자라납니다.
빛들도 멀리까지 비추어 나갑니다. 생명의 말씀을 받아서 자기 생명으로 삼고, 영의 역사로 증거하고, 영의 역사로 그 말씀대로 생활하면 생명의 말씀이 점점 밝혀져 나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라

본문 16절에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사람이 많이 나오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많이 나오면, 바울의 달음박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수고도 헛되지 아니하고 예수의 날, 재림의 날 자랑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아닙니까?
말씀을 생명으로 받아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깨달아, 그대로 실천하여 밝히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바울의 수고도 헛되지 아니하고,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예수의 재림의 날에 가서 자랑할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가르친 자가 잘 되면 얼마나 면류관 입니까? 자기가 가르친 자가 잘 되면 배운 사람에게 면류관이고, 또 가르쳐 준 사람이 잘 가르치면 그 사람이 면류관입니다. 서로가 자랑할 것입니다. 이렇게 잘 가르치고 잘 배워서 잘 되는 것은 피차에 면류관이 되고 상급이고 자랑이 됩니다.

본문 17절에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믿음의 제물과 산 제사로 드리는 믿음의 제물, 너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겠습니다. 예수의 마음을 본 받아서 봉사 많이 해야겠습니다. ‘관제’라는 것은 바울이 그 위에 피를 부어 순교 당할 것을 가리킵니다. 너희가 산 제물이 되어서 산 제사 드리고, 영적 생명이 날마다 살아 나가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다 이루어 나가고, 또 봉사를 잘 한다면 나는 거기에 피를 흘려서 다 붓는다 할지라도 기쁘겠다, 생명까지 다 희생해
도 아까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바울의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교인들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잘 받아서 생명이 살아나가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잘 이루어 나가고,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가고 몸으로 산 제사를 날마다 드려나가고, 믿음의 제물과 봉사를 날마다 잘 해 나가면, 바울이 수고하는 것이 헛되지 않다는 말입니다. 수고하는 것이 힘이 안 듭니다. 달음박질하는 것도 힘이 안 들고, 또 그 위에 피를 갔다 붓는다 할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겠다는 바울의 신앙입
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렇게 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것, 믿음의 제물과 봉사에 내가 피 흘려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믿음의 제물과 봉사 잘하면 우리가 피 흘려서 도와주는 것인데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죽으면 다 썩어질 것인데, 피 흘려서 도와주면 영원히 하나님 앞에 남아 있지 않겠습니까. 피 흘려서 도와주는 정신까지 가지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다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8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희생하는 것이 기쁘다는 말입니다. 희생 봉사하는 것이 기쁘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이 세상의 빛들로 말씀을 밝혀 생명에서 밝혀 나가면서, 빛으로 비춰 나가면서, 희생 봉사해 나가면서, 산 제사를 드리며 이렇게 나가는 것은 피를 흘려도, 아무리 수고를 많이 해 나가도 아까울 것도, 수고로울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아주 기쁘고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해나간다는 것입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기뻐하라 나와 같이 기뻐하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