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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4:2-18 기도와 전도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기도와 전도생활
골로새서 4:2-18

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3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4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서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5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7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8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9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0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1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
의 위로가 되었느니라 12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14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15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17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18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4:2 기도에 항상 힘쓰고, 기도 가운데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라. 

4:3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서도 기도하여라. 나는 이것 때문에 매여 있다. 

4:4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로 그리스도의 비밀을 나타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4:5 외부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행하고 세월을 아껴라. 

4:6 너희는 언제나 소금으로 맛을 내는 것같이 은혜롭게 말을 하여라. 그러면 너희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알게 될 것이다. 

4:7 나에 관한 모든 사정은 두기고가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다. 그는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이며, 신실한 일꾼이고 함께 종이 된 자이다. 

4:8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낸 것은 바로 이 일을 위해서이니, 곧 너희가 우리의 형편을 알고, 또 그가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는 것이다. 

4:9 신실하고 사랑받는 형제 오네시모도 함께 보내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자이다. 그들이 이곳 사정을 모두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다. 

4:10 나와 함께 옥에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사촌 마가가 너희에게 문안한다. (마가에 대해서는 그가 너희에게 가거든, 그를 영접하라는 지시를 너희가 이미 받았다.) 

4:11 또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문안한다. 할례당 가운데 오직 이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일하는 동역자들이며, 나에게 위로가 되어 준 자들이다. 

4:12 너희에게서 온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한다. 그는 항상 너희를 위하여 힘써 기도하니, 이는 너희가 하나님의 모든 뜻 안에서 온전하게 서고 완전한 확신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4:13 나는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폴리스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증언한다. 

4:14 사랑하는 의사 누가와 데마도 너희에게 문안한다.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서 모이는 교회에 문안하여라. 

4:16 이 편지를 너희 가운데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도 읽게 하여라. 또한 너희도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를 읽어라. 

4:17 그리고 아킵보에게 "주님 안에서 네가 받은 직무를 유의하여 완수하여라." 하고 말하여라. 

4:18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한다. 너희는 내가 갇힌 것을 기억하여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기도생활
기도에 항상 힘쓸 것

본문 2절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기도를 항상 힘써야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마가복음 9:29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런 유”란 마귀를 가리킵니다. 기도 외에는 마귀를 나가게 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교역자나 신학생들은 하루 2시간 이상씩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하루 10장 이상씩 읽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은 하루에 8시간 기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여간 기도에 항상 힘쓰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기도해야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감사하는 기도할 것

그 다음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하였는데,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즉 감사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였는데(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면 기도할 때에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무엇을 달라고 구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안주면 “왜 안 줍니까”하며 불평합니다. 그러나 안 들어주시는 것도 하나님이 들어 주신 것입니다. 즉 안 들어주어야 잘 되겠기 때문에 안들어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들어 주신다고 잘 되는 게
아닙니다. 아이들이 칼을 달라고 하면 부모가 아이들에게 칼을 줍니까? 칼을 주면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주지 않습니다. 칼을 안주는게 아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대신 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좋은 것으로 줍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 구속해 주신 것을 감사하라

우리의 구속에 대해서 늘 감사하여야 합니다. 지옥에 갈 우리를, 예수님이 십자가의 구속으로 건져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영원한 불구덩이인 지옥에서 고통 받아야 할 자들이었는데, 건져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항상 감사해야 됩니다. 또 무엇을 감사해야 되겠습니까? 

◉ 유익된 것만 주신 것을 감사하라

우리에게 유익될 것만 주시는 줄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즉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유익될 것만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로마서8:28에,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될 것은 안주십니다. 유익될 것, 가장 필요한 것만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면 전부 감사합니다. 또 현실 세계에서도 범사에 유익되게 해주시므로 감사하고, 제일 좋은 것으로만 골라 주시므로 감사합니다.

세상에 올 때에 빈손으로 와서, 세상을 떠날 때에 빈손으로 가는데, 지금 하나만 있어도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작은 것 하나만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 아무것도 내게 없다고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없어야 회개하고, 바로 서겠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도 감사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해주신 것 감사하고, 병 있는 사람은 그보다 더 심하지 않게 해주신 것 감사하고, 더 심한 사람은 죽지 않게 해주신 것 감사하고, 죽으면 천당 가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지 못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감사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기도에 힘쓰고 깨어 있을 것

그 다음에 “깨어 있으라”고 했는데, 항상 기도에 힘쓰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영적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육신중심 생활은 잠자는 생활이고, 영적 생활은 깨어 있는 생활입니다.

2. 전도생활

본문 3절에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에서도 복음을 잘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교인은 교역자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게 원칙입니다. 기도해 주어야 교역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하고, 또 잘 전해야 교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서 자신의 영이 살고, 나가서 전
도도 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일은 매우 귀한 일입니다.

세월을 아낄 것

본문 4-5절에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하였습니다.
“외인”은 안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성도가 외인인 불신자와 교제하거나 헛된 일에 시간을 허비하면 믿는 일이 안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시간을 아껴서, 시간을 사서, 시간을 붙잡아서”라는 뜻입니다. 

이번 추석 사흘 동안 사람들은 고향에 갔다, 왔다 하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는데,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대학교 시험 칠 준비하느라고 도서관에 가서 매일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것이 시간을 사는 것이고, 세월을 아끼는 것입니다. 시간을 아끼는 사람은 기도하고, 성경보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려면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세월을 아껴야 믿는 일을 할 수 있지, 세월을 아끼지 못하면 믿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교회직원이 추석날 중국을 갔다 오겠다
는 것입니다. 그래서 왜 갔다오겠느냐? 했더니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오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입니다. 하여간 시간을 아껴서 믿는 일에 사용하여야 합니다. 시간은 지나가는데, 그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면 자기에게 유익하고, 붙잡지 못하면 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시간을 붙잡아서 믿는 일에 사용하면 하나님의 일에 큰 열매가 맺히고, 자기 구원에도 유익이 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할 것

본문 6절에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는 것은 채소에 소금을 쳐서 잘 융합이 되게 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말도 소금 치는 것처럼 융합이 잘 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화목이 되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채소에 소금을 치면 소금이 녹아지면서 부드럽게 잘 합해지지 않습니까? 그와 같이 소금이 녹아져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처럼, 우리도 희생하고, 녹아져서 조화를 잘 이루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희생하지 않고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아무런 효과가 안 납니다. 소금이 녹아져야 유익을 주는 것과 같이 자기가 희생하여야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희생하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가정에서도 자기가 희생하면 화목합니다. 그러나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고, 남의 잘못한 것만 보면 화목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부터 자기가 녹아지고, 희생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부터 화목하여, 이웃에까지도 화목하여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화목이 됩니까? 녹아져야 화목이 됩니다. 우리가 범사에 믿음을 써서 은혜 가운데서 모든 것을 하면 전부 은혜가 되고, 다른 사람에게 덕이 되고, 화평이 되고, 유익이 되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3. 신실한 종 두기고와 오네시모를 보냄

본문 7절에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골로새 교회에 두기고를 보냅니다. 두기고는 사랑을 받는 형제, 신실한 일꾼, 주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고 하였는데 신실한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신실한 일꾼이 중요합니다.
거짓이 없고 외식이 없는 언제나 신실한 일꾼, 또 사랑을 받는 일꾼이 주안에서 함께 된 종 두기고였습니다.

본문 8절에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낸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특별히 두기고를 골로새로 보낸 것은 우리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기 위해 보낸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도 신실이 첫째입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교회에서 바울에게로 온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의 일과 여러 교회의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4. 소개와 문안과 당부

잘못된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온 자들을 영접할 것

본문 10절에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이 편지를 썼는데 사도바울과 함께 갇혀 있는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영접하라고 했습니다. 마가를 잘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딤후 4:11에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말씀합니다. 전에는 마가가 손해를 줬습니다. 제 일차 전도여행때 바나바의 생질 마가를 조사로 데리고 갔을 때, 어려움을 당하자 마가는 밤빌리아에서 두 사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손해가 막심했습니다. 전도할 때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마가 때문에 손해를 많이 봤었고, 마가를 이차 전도에 데리고 가자는 바나바와, 일차 전도 때에 배반한 사람을 데리고 갈 수가 없다는 바울이 심히 다투어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갈라진 원인이 바로 마가였습니다. 사고를 쳤던 마가였지만 오랜 후에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오라. 나의 일하는데 유익하니라.”라고 디모데후서에 말했고 본문에서는 골로새교회가 마가에 대하여 그 명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종을 잘 영접하는 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합니다. 전에 실수해서 잘못한 것이 있다 해도 마가와 같이 회개하고 바로서면 잘 영접하는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희는 할례당이라 이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할례당 가운데서 바울에게 돌아온 사람은 유스도였습니다. 할례당은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할례 받아야 구원 받는다고 주장하는 이단입니다.
이 잘못된 길에 있던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왔으니까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됐다는 것입니다. 유스도가 가면 너희가 잘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에바브라와 같이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애써 기도할 것

본문 12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니 저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에바브라라는 사람이 골로새교회에서 바울에게로 왔던 모양입니다. 에바브라라고 하는 사람이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에바브라는 항상 교회를 위해서 애써 기도하는 사람이며 특별히 골로새교회를 위해서 애써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 그렇습니까? 에바브라입니다. 에바브라는 기도 많이 하는 사람 같습니다. 항상 너희를 위해 애써 기도하고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3절에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애써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아주 중요합니다. 골로새서 4장 3절에는,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역자가 하나님 말씀을 잘 가르치게 해달라고 애써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교인들이 나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고 우리 교단 교인들이 나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주고 있는 것을 교인들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목사 가운데 날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나를 위해서 제일 먼저 기도한다고 합니다. 기도할 때는 내 기도를 제일 먼저 한다고 합니다. 하여간 내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고 가르칠 수 있는 것도 모든 교인들이 기도해줘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 애써 기도하는 사람은 또한 중요합니다. 머리를 싸매고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고 교회에 은혜를 또 더해 주십니다. 

이전에 명륜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윤씨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분은 머리 싸매고 예배당에 와서 매일 기도했습니다. 하여간 매일 기도 했습니다. 또한 할머니 따라서 기도하는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김성애 집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매일 기도했습니다. 김성애 집사와 같이 다니던 변창섭 교인도 김성애 집사 따라 다니면서 매일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힘써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온 교회가 은혜가 됩니다. 또 교인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잘 자라납니다.
교회를 위해서 많이 기도해야합니다. 교역자를 위해서 첫 번째로 기도하고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잘 되는 것입니다. 12-13절에 “항상 애써 기도한다. 또 많이 수고한다.”고 하였는데, “또 너희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시에나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거하노라.”라는 말씀처럼 교회를 위해서 많이 항상 애써 기도하고 수고하는 것을 사도바울이 증거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 것, 우리 교단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 것, 기도원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 것, 또한 신학교를 위해서 많이 수고하는 것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기도하고 수고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그 일이 잘 되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언제나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와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소개함

본문 14절에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의사로써 사도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보조해준 귀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을 따라다니면서 배워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누가입니다. 또한 데마가 이때 믿음이 좋았던 모양입니다. 딤후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는 누가만 같이 있다고 그랬습니다. 본문에서는 데마가 사도바울을 받들어 나갔는데 어떻게 됐다고 그랬습니까? 사도 바울에게 잘 협력하다가 얼마 후에는 세상을 사랑해서 사도 바울을 버리고 데살로니아가로 갔습니다. 

본문 15절에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라고 했습니다. 눔바가 여자인 모양입니다. 눔바라는 여자 집에서 교회를 했습니다. 초대교회는 집에서 교회를 시작했는데 여러 군데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전도해서 성도 몇 사람을 얻으면 어떤 교인의 집에다 교회를 정하고 예배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 곳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앞으로 교회 예배당도 장만하고 다했을 것입니다. 처음에 전도할 때에는 한사람, 두사람, 신자를 전도해서 얻으면 집에 모아놓고 예배를 인도했었습니다. 본문에서도 눔바라는 여자의 집에서 교회를 했었는데 그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어야 함
 
본문 16절에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라는 말입니다. 또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모든 편지를 너희가 읽으라고 했습니다. 라오디게아에서 오는 편지는 무슨 편지인지 모릅니다. 라오디게아서가 없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 부근에 있는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를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어 읽게 하고 라오디게아에 있는 편지를 골로새에 보내고 골로새에 있는 편지를 라오디게아에 보내 서로 돌아가면서 읽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에 필요한 진리의 말씀임으로 한 교회만 위해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돌려가면서 읽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윤독이라고 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윤독을 했습니다. 또 자기만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 교회에서 읽은 것을 받아서 이 교회에서도 읽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골로새서 읽지 않습니까?
또 라오디게아 교회에 지금 에베소서가 있다고 하면 에베소서를 갖다가 골로새에서 읽으라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도 에베소서를 읽습니다. 한 교회만 해당하는 편지가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니까 돌아가면서 이 편지를 읽으라는 겁니다. 돌아가면서 읽으라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중요한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강해서도 돌아가면서 읽습니다. 만약 설교할 것 없을 때, 목사가 없어 집사나 다른 교인들이 나와서 설교할 경우에 강해서라도
읽어주면 됩니다. 강해서를 읽어주면 설교도 되고 성경해석도 됩니다.
오는 편지를 너희가 읽고 라오디게아로 보내며 또 라오디게아서부터 에베소서와 같은 편지가 오면 지금 그것을 우리가 다 읽어야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직분을 충성되게 감당할 것
 
본문 17절에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라고 했습니다. 아킵보라는 사람은 주안에서 직분을 받은 사람입니다. “삼가 이루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직분을 받았으면 그 직분을 잘 지켜서 그 직무를 잘 감당하라는 겁니다. 직분만 받아놓고 그 직무를 충성하지 못하면 안 됩니다. 일단 직분 받은 다음에는 그 직분에 대해 충성을 해야 됩니다. 오늘날 집사의 직분 받은 사람은 집사의 직분에 대해서 충성하여야 합니다. 또한 권찰직분 받은 사람이면 권찰직분에서 충성을 하고, 전도부인 직분 받은 사람이면 전도부인의 일을 충실히 하고 전도사나 목사나 장로의 직분을 받은 사람이면 그 직분에 대한 직무를 충성되게 다 해야 됩니다. 

사도바울의 문안과 축복

본문 18절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편지를 대서했습니다. 눈이 좋지 않아 편지를 자기가 쓰지 않고 불러줘서 다른 사람이 대신 썼기 때문에 편지 맨 마지막에 자기가 싸인 하는 것과 같이 친필로 마지막엔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잘 안보이니까 큰 글자로, 친필로 문안한다는 것인데 싸인 한다는 뜻입니다. “문안하노니 나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교역자가 고난당하는 생각하라
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지금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은혜가 항상 골로새교회에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골로새서 3:18-4:1 사람 사이의 도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사람 사이의 도리
골로새서 3:18-4:1

18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22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23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1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이것이 주님 안에서 합당한 일이다.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마라.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여라.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3:21 아비들아, 너희 자녀들을 화나게 하지 마라. 이는 그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하여라.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라. 

3:24 이는 너희가 주께 유업의 상을 받을 줄을 알기 때문이다.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3:25 불의를 행하는 자는 자기의 행위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신다.


1. 부부간의 도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것

본문 18절에,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아내들에게 주는 말씀인데, 아내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어긋나는 것은 복종할 수 없고 성경에 어긋나지 않는 한은 무조건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복종하지 않고 서로 다투는 것은 마귀의 역사입니다.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주 안에서 항상 복종하는 것이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본문 19절에,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편들은 아내를 괴롭게 하는 성격이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미군들 가운데 한국전쟁때 나왔다가 한국 여자와 결혼하여 데려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미군 부대가 있는 마을에는 한국여자들이 많이 살고 있고, 그곳의 한국교회에도 한국 여자들이 많이 교회에 나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 가운데 처음에는 한국 여자들을 잘 데리고 살다가 나중에는 한국 아내를 때리고 못살게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 여자들이 많이 쫓겨났다고 합니다. 미국에 있는 한국 교회에 그런 일이 있는 여자들이 종종 있습니다. 아내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했는데, 괴롭게 하지 않는 게 남편에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괴롭게 하지 말고 편안하게 해주라는 말입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게 첫째 명령이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게 남편에 대한 명령입니다. 

2. 부자간의 도
자녀는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할 것

본문 20절에,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를 주 안에서 잘 순종하고 잘 공경해야 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고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잘 공경해야 됩니다. 또 부모를 잘 순종해야 됩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럼 장수한다고 하였습니다. 장수한다는 건 가다가 실패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모는 오랫동안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녀가 나가다가 잘 되겠는지, 잘 못되겠는지 그걸 압니다. 그래서 잘못된 길은 가지 말라고 하고, 잘되는 길만 가라는 게 부모의 교훈입니다. 그런데 그걸 순종 안하면 가다가 잘못된 길이 많이 생깁니다.
함정에도 빠지고 마귀에게도 끌려가는 일도 생기는데, 부모를 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녀에게 바른 신앙을 넣어줄 것

그래서 부모는 자녀들에게 신앙을 넣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바른 신앙을 넣어줘야겠는데, 그러려면 아이들을 교회로 잘 인도해야 됩니다.
부모가 가르치는 것보다는 교회에서 반사들이 가르치는 것을 아이들이 더 잘 듣습니다. 데려다 놓으면 반사들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잘 키우고 싶으면 무조건 교회로 인도하십시오. 

유치부가 몇 살부터 입니까? 세 살부터 아예 교회로 데려다 놓으십시오. 그리고 초등학생들도 교회로 잘 인도해야 됩니다. 또한 중고등 학생들도 잘 인도하고, 어렸을 때에는 부모가 아이를 인도할 수 있으니까 어렸을 때 교회로 잘 인도하고 교회에서는 아이들을 잘 길러서 아름다운 아이가 되고 좋은 신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 요절 한 절 외운 그것이 일생 남아있습니다. 제가 유년부 다닐 때 곡조를 넣어서 요절을 외웠는데, 그때, 로마서 5장 8절 요절 외운 것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그렇게 주일학교 때 배워주는 게 얼마나 큰 줄 압니까? 그러니까 주일학교에 아이들 잘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어떤 집사가 있었는데, 아이들을 우리 교회 주일학교로 데려오지 않고 다른 교회로 보냈습니다. 부모, 할머니 다 우리교회 나오면서 아이들은 다른 교회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로 데리고 나오라고 권면했더니, “어렸을 때는 거기 다니다가 좀 크면 데리고 온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그 애들이 컸는데 나오긴 뭘 나옵니까? 다 자기 갈 길로 다 갔습니다. 또 어떤 집은 할머니, 부모, 다 우리교회 잘 나오는데 손자는 여의도에 있는 침례교회를 나갔습니다. 그 집에서도 아이들이 좀 크면 데리고 오겠다고 하였습니다. 다 커서 이젠 30, 40대가 되었는데 데리고 오긴 뭘 데리고 옵니까? 게다가 이젠 교회도 안 나간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에 성경을 바로 배워야 됩니다. 한 마디라도 바로 배워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 가르쳐주는 교회로 찾아가야 됩니다. 요새 교회에서 유년부 하는 것을 보면 성경 잘 안 가르쳐줍니다. 보통 교회는 성경을 잘 안 가르쳐주고, 동화책 읽어주고 놀이하고 그런 것만 하다가 성경은 그저 한마디만 해줍니다. 아이들이 성경을 안 가르쳐주니까 성경 모릅니다. 성경을 모르니까 어른이 되어도 세상이 이끄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성경 말씀대로 이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을 넣어 주어야 합니다.

본문 21절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격노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들을 격노케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이라고 무시해서 그 아이들이 격노하게 되면 부모의 인도를 안 받고 믿음으로 안나갑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격노케 하지 말고, 아이들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잘 인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모가 아이가 힘이 없다고 해서 완력으로 하면 아이들이 나중에 크면 순종 안 합니다. 아이들을 격노케 하지 말고, 성경 말씀 잘 가르쳐주고, 기도해 주고, 낙심하지 않도록 잘 인도하여야 합니다. 그게 중요합니다. 

또 아내는 남편에게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건 다 순종을 하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하고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잘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낙심하지 않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3. 아랫사람의 도

눈가림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할 것

본문 22절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종들’이라는 말은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입니다. 직장에 나가서도 남의 수하에서 일하면 종에 속하는 것입니다. 

어디 가서 남의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모든 일에서 육신의 상전에게 순종하라는 말입니다. 누구나 다 상전이 있습니다. 윗사람이 있습니다. 윗사람에게 잘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라는 것은, 주인이 볼 때는 하는 체하고, 안 볼 때는 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보든 안보든 성심껏 해야지 주인이 안본다고 해서 안하고, 또 하는 척만 하는 것은 양심을 안 쓰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보든지 안 보든지 자기 성심껏 다 하는 그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또한, 상전이 시켜서 하는 일이지만 자기에게 하나님이 맡기신 일인 줄 알아야 됩니다. 

본문 23절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을 해도 마음을 다해 주께 하듯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맡긴 줄로 알고, 사람이야 보든지 안 보든지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해서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유업의 상이 있음

본문 24절에,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했습니다.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무슨 일 하든지 일한 만큼 주님 앞에서 유업의 상을 받습니다. 잘 했으면 하늘나라의 상을 받고 잘 못했으면 책망을 받습니다.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고 했는데,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인 줄 알고 잘 하면 주께 유업의 상을 받습니다. 윗사람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하나님께서 맡기신 줄 알고 자기 성심껏 그 일을 하면, 유업의 상을 하나님 앞에서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25절에,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의 상을 받고, 성경대로 안하면 불의인데,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부모를 순종 안하면 무슨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까? 장수하지 못합니다. 가다가 패망한다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고 평안하고 잘 되고, 이대로 안하면 불의를 행하는 자인데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가다가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여간 성경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하늘나라 유업의 상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또한 장수합니다. 불의를 행하고 성경대로 안하면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이대로 하면 상을 받고 이대로 안하면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반드시 받습니다. 그런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부모를 잘 공경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낙심치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유업의 상을 받습니다. 또 남편을 잘 순종하고, 아내를 잘 사랑하고 성경대로 다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유업의 상을 줍니다. 믿음을 주고 신령한 것을 채워줍니다. 이대로 안하면 불의를 행하는 자인데,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대로 안하면 불의의 보응을 받습니다. 이대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유업의 상을 받습니다.

4. 윗 사람의 도
아랫 사람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라

본문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상전은 종을 부리는 윗사람이고, 종은 아랫사람입니다.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라고 하였는데, 언제나 윗사람은 아랫사람에게 의와 공평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라고 하였는데, 하늘에 너희 상전이 계심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상전은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윗사람은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고, 언제나 아랫사람에게 불의를 행하지 말고, 의와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또, 골로새서 3:22절에,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아랫사람은 하나님이 맡겨주신 줄 알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여야 하고, 윗사람은 의와 공평을 아랫사람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윗사람도 자기 상전이 하늘에 계신 줄 알고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것을 알고 아랫사람에게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골로새서 3:12-17 새 사람의 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새 사람의 생활
골로새서 3:12-17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니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곧 거룩하고 사랑하심을 받는 자들답게 인애와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라. 

3: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3:14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여라.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이다.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여라. 이 평화를 위해 너희가 한 몸 안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너희는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풍성히 살게 하여라.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여라. 

3:17 또 너희는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려라. 


1.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

본문 12-15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외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옷을 무엇으로 입으라구요? 면으로 된 것입니까 나일론으로 된 것입니까? 예, 긍휼의 옷을 입고, 자비의 옷을 입고, 충성의 옷을 입고, 온유의 옷을 입고,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겸손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옷이라는 것은 인격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의 인격을 좀 더 입으라는 것입니다. 보통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옷을 좀 더 입어 나가야 합니다. 좀 더 온유하고, 겸손하고 긍휼이 있고 자비한 그 옷 좀 입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교역자가 이런 옷을
더 입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므로 교역자가 좀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같은 이런 옷을 입으면 좋겠습니다. 교인들도 이런 옷을 더 입어야 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의 옷을 예수님께서 입으셨는데 우리도 온유하고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특별히 부인들이 온유하고 겸손한 옷을 더 많이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했는데, 대답을 해도 유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 결혼주례하실 때에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하느니라는 말을 하시고는, 결혼 선서를 하게 할 때 보통 신랑이 예! 하고 힘차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고 부드럽고 조용히 네~에에에, 하며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신랑 안에 있던 분노가 다 사라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걱정이 없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했는데, 대중 앞에서의 대답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값을 수가 있습니다. 대답 한마디로 분노도 쉬게 하고 대답 한마디 유순하게 함으로 사랑도 받고 유순하게 하면 다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산다, 못 산다 이래 가지고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귀 일만 해주고 마는 것입니다. 여자의 단장을 고요하고 안정한 심성, 온유하고 안정한 심정을 갖는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유순합니다. 제가 잘했어도 큰 소리 치지 않고, 잘 했어도 유순하라는 것입니다. 유순하면 다 이깁니다. 유순한 것이 이깁니다. 뻣뻣한 것이 집니다. 강하게 나가면 부러집니다. 유순하면 이깁니다. 뿔 부러진 소 가운데 어진 소가 없습니다. 성질이 뻣뻣하니까 뿔이 부러진 소가 많습니다. 유순하면 부러질게 있겠습니까? 또 딱딱하고 강한 이가 빠진 사람은 많아도 부드러운 혀가 빠진 사람은 없습니다. 

여자들이 남편을 이기는 법을 알려면 유순함을 배우면 됩니다. 유순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여자가 무조건 유순함으로 나가면 남편이 아무리 강하게 나와도, 결국 유순한 것에 집니다. 둘 다 강하면 하나가 부러집니다. 부러진 부부들을 보면, 강한 부부들이 부러집니다. 온유, 겸손한 자가 참 하나님의 긍휼도 베풀어 주고, 겸손한 자가 이기고, 온유한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2. 피차 용서하고 사랑을 더하라
 
또한 누가 누구에게 혐의가 있으면 주께서 나를 용납하신 것처럼 피차 용납하고,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 위에 무엇을 더하라고 했습니까?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진리를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만큼은 양보 못하지만, 온유하게 나가는 사람은 그 모든 것 외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는데, 사랑을 더하면 그것이 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때 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띠를 띠어야만 옷이 제대로 갖추어지는데 그와 같이 하나님의 띠를 띠고 사랑으로 다 포섭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띠를 띠고 나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본문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속에 와서 넘쳐흘러야 합니다. 풍성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영적 평강이요, 하늘에서 오는 평강인데 세상이 알지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평강입니다. 또 세상적으로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초월한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믿는 사람 속에 온전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시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 그 영의 주장을 받고 인도를 받으면 온전히 평안한 마음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아무리 환난과 궁핍과 어려운 고통 가운데 처해 있어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 있으면 항상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언제나 우리 속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의 주장을 받아서 모든 것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불쾌한 마음, 원망하는 생각, 불만, 불평, 남과 원수지는 것, 보기 싫은 것, 이러한 것들은 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반대면 무엇입니까? 평강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불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반대는 또 무엇입니까? 마귀입니다. 즉, 마귀의 불안, 불만, 마귀의 고통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마귀의 고통 가운데 빠지는데,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 일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일 잘하려고 해도 마귀를 못 이깁니다. 즉,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일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모든 손해를 다 당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모든 걸 다 빼앗긴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평강만은 빼앗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로 다 갖다 주십니다. 또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벌써 더 좋은 것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자기를 주장하시니 예수님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 보다 예수님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므로 천하만국 보다 더 큰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평안하고 기쁘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세상으로 볼 때에는 근심이 가득 찬 것 같고, 근심할 조건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항상 기뻐합니다. 또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서 주장하면 세상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환난, 고통이 많아도 언제나 평안한 것입니다. 그저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하며 평안한 마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말할 수 없는 근심과 고통과 걱정거리가 많을지라도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고 영적 세계에서 그의 주장을 받을 때에는 평안한 마음이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항상 깨어 기도하고 영적인 세계를 찾아서 그리스도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언제나 넘쳐흐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늘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사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고통과 환난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늘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세상을 다 이겨나가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건져주신 목적,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은 평강을 위한 것입니다. 속죄의 은혜와 구원의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 받은 결과는 평강입니다. 영적 생명으로 살 때에는 우리에게 평강이 옵니다. 즉, ‘너희에게 영적 구원을 주기 위해서 너희를 건져서 한 몸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불러 주셨다’하는 뜻입니다. 

4. 감사하는 자가 되라

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온전히 누리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모든 염려를 어떻게 합니까?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주님이 다 맡아서 권고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맡아서 하는 것보다 주님이 그 염려에 대하여 더 잘 처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억울한 것들과 원수 갚을 만한 일들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주께
맡기면 주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십니다. 원수를 주님이 갚아 줘야지, 자기가 갚을 수 없습니다. 자기도 망하고 상대방도 망하게 만들고, 둘 다 망합니다. 또 혈육으로 대결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많고 손해 보는 일이 많고 싸워야 할 일이 많고 참을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주님이 잘 해주실 것으로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부탁하면 잘 해주실 것 아닙니까? 내가 하는 것보다 주님이 얼마나 더 잘 해주시겠습니까? 주께 맡겨놓고 우리는 그저 믿는 일만 하는 겁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그의 뜻대로만 나가고 예수님만 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다 주님께서 해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얼른 맡겨야 합니다.
또 기도 할 때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놀고 싶지만, 아버지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을 가져야 한다고 할 때에는 ‘다른 것 주셔도 좋습니다’라고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아이들이 면도칼을 달라고 하면 어른들이 안 줍니다. 그것을 꼭 가지고 싶다고 해도 안 줍니다. 그 대신에 무엇을 줍니까? 다른 것을 사다 줍니다. 면도칼 달라고 울어대도 면도칼 줄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 사탕을 사다 주든지, 장난감을 사다 주
든지, 뭐 다른 것을 사다 준다는 말입니다. 면도칼은 안 줍니다. 우리도 우리 생각에 꼭 자기 생각대로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 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다른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모든 원수 갚는 것도 주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감사하고 합당하게 여기면 되겠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이는 생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돈 얼마 때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는 오른 뺨을 돌려 대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는 십리(十里)까지 동행해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아니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어떻게할까요? 겉옷을 취하려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취하게 하면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어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고 그것이 성공입니까? 성공 아닙니다. 속옷 다 빼앗아 갔어도 그리스도의 평강만 빼앗기지 않으면,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속옷, 겉옷을 내놓으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려는 것입니다. 또 왜 오른 뺨을 쳤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려고 친 것입니다.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면 마귀가 평안하겠다는 말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으려고 뺨도 치고 속옷도 빼앗아 가고 억지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혈육으로 대전(對戰)해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게 되면 겉옷, 속옷은 안 빼앗겼지만 겉옷, 속옷, 뺨맞는 것,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몇 만 배 더 몇 천만 배 더 손해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기면 됩니다. 외부적인 면, 내부적인 면, 물질적인 면, 내 권리는 빼앗겼어도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겼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겼으면 나머지 것이 다 도로 옵니다. 다 도로 오는 것입니다. 도로 올 날이 오고 그러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도 주시는 것입니다. 가져가려야 가져갈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빼앗아 갔어도 그게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지구덩이 위에 있겠지, 지구덩이 밖에 다 나가겠습니까? 내 것 아무리 빼앗아 갔어도 이 지구덩이 위에 있습니다. 이 세상 집, 이 세상은 다 누구 손아귀에 있어요? 하나님의 장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는데 여기서 빼앗아 봐야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빼앗아 가도 세상 밖에 둘 수는 없어요. 하나님의 손 밖에는 절대로 둘 곳이 없
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몇 만 배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소한 것 가지고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기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고 믿는 일을 해야 믿는 일이 되지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긴 다음에는 믿는 일이 안 됩니다. 아무 일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떠났는데 하나님의 감동이 떠났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믿는 일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을 언제나 빼앗기지 않고 믿는 일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하게 하라

본문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무엇이 또 너희 마음에 풍성하게 하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즉,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언제나 배우고 그 말씀을 언제나 새김질하고 그 말씀이 언제나 자기에게서 넘쳐흐르고 그 말씀에 붙잡혀 끌리어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에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께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8장 5절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서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5장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의지해서 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깊은 데서 밤새도록 잡아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아침에 오셔서 “깊은데 그물을 던져라”하니까 밤새도록 잡아봤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린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 생각은 다 내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 생각 같아서는 그물 던져야 쓸데가 없습니다. 밤새 잡아본 곳입니다. 또 아침에 고기가 깊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얕은 데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 될 것 같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해서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또 말씀을 맘속에 풍성히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말씀의 역사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말씀의 역사가 풍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말씀의 역사가 속에 풍성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

또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만 그 말씀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가르칩니까? ‘모든 지혜로’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혜로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따라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권면해야 합니다. 자기만 말씀을 먹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나눠 주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나눠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동회장이 구청에서 밀가루를 오십 포대 타 올 때에는 구청에서 동회장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그 오십 포대를 동민에게 다 나눠 주라고 준 것이란 말입니다. 동민들은 동회장이 밀가루 타 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동회장 혼자 다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네? 죄 짓는 것입니다.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나눠 먹으라고 준 것인데, 그것을 혼자 다 먹어놓으면 죄 짓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주실 때에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만들어 먹고 남에게 나눠 주어라,하신 것입니다. 나눠 주라고 주신 것인데 안 나눠 주면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입니다. 빚을 안 물어 줬으니 빚진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배운 다음에는 나눠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는 말입니다. 전하라는 말입니다.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좀 연구하고 지혜를 써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모든 지혜로 가르치라고 했으니, 은혜를 받아서 성령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과 능력으로 또 그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기 위해 지혜를 써서 가르치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가르칠 때에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전했다고 했습니까? 성령과 능력으로 전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너희 믿음이 사람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 잘하면 교인들이 그 말[言] 잘하는 것을 따라 옵니다. 그러니 사람의 지혜 있는 말에 기초하여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그 신앙이 잘 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서고 성령과 능력에 서야만 그 신앙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웅변이 필요가 없습니다. 웅변으로 하면 교인들이 따라오기는 잘 따라옵니다. 그렇지만 신앙이 그 사람의 말에 세워집니다. 진리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단 웅변하는 습관이 다 없어져야만 그 속에 진리가 들어갑니다. 교인들이 사람의 지혜 있는 말 들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 하나도 들을 것이 없으면, ‘에이 들을거 없으니까 성경이나 듣자’하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들을 것이 있으면 그것만 듣고 앉았지 성경 안 듣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가 먼저 받고 그 말씀을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전할 때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전해야 합니다. 능력을 받아서 전하라는 말입니다. 

한번 전한 다음에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내버려두지 말고 늘 가서 돌보아야 합니다. 논에 벼를 심어놓았으면 매일 나가서 한 바퀴씩 돌보아야 합니다. 물이 마르지 않았나, 벌레가 먹지 않았나 살펴보면서 매일 나가서 한 바퀴씩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좀 잘 못 된것 같으면 농약을 친다든지 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실패가 되지 않도록 거기에 마음을 쓰고 늘 돌보고 힘을 쓰고 비료를 쳐야 합니다. 벌레가 오지 못하도록 만들고 시험에 안 들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하여 한 사람을 건져내는 데에도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아이하나 기르려면 사람의 손이 몇 번 가야 합니까? 오만 번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한답니다. 함경도 말로는 아바이, 어마이, 평안도 말로는 아바지, 오마니라고 합니다. 아이 하나 기르는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느냐는 말입니다. 하루에도 똥을 몇 번을 싸고 오줌을 몇 번을 쌉니까? 그 오마니의 정신을 가지고 전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고 돌보지 않으면 그 아이는 죽습니다. 죽지 않겠습니까? 젖을 먹이기를 하나, 똥, 오줌 싸도 치워주길 하나, 먹여주길 하나, 의복을 입혀주길 하나, 아무 것도 안 하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죽습니다. 아무리 아이 많이 아도 다 죽으면 뭐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은 것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하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도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또 아이들도 모아놓고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아이들도 성경 가르쳐주고 또 친구들도 만나면 성경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누구 만나면 괜히 세상 이야기하지 말고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세상 이야기 하지 말고 성경 배운 이야기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지난 주일에 이 말씀 배웠다고 이야기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7.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

본문 16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는 구약 시편을 기리키기도 하고 성도들이 은혜 받아 진리대로 부르는 시도 포함됩니다. 찬미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찬송가이고, 신령한 노래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은혜를 받아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8.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본문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즉, 성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에서 주님의 진실과 선과 사랑과 의로움이 보여지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 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그의 주시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벧전 4:11참조).

골로새서 3:1-11 위엣 것을 찾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위엣 것을 찾으라
골로새서 3:1-11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11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에 있는 것들을 찾아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다. 

3:2 위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 마라. 

3:3 너희는 이미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3:4 너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분과 함께 영광가운데 나타나게 될 것이다. 

3:5 그러므로 너희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라.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정욕과 악한 욕망과 탐욕이니 탐욕은 우상숭배이다. 

3:6 이것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 위에] 임하니, 

3:7 너희도 전에 이것들 가운데 살 때에는 이것들 안에서 행하였다. 

3:8 그러나 이제 너희는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을 내버려라. 

3:9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라. 너희는 옛 사람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3:10 새 사람을 입어라. 이 새 사람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는 자이다. 

3:11 거기에는 헬라인도 유대인도, 할례자도 무할례자도, 야만인도 스구디아인도, 종도 자유자도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이요, 모든 것 안에 계신다. 
 
1. 위엣 것을 찾으라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이란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중생한 것을 가리킵니다. 성도의 믿기 전의 영은 허물과 죄로 죽었던 것인데(엡 2:1), 진리와 영감으로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난 것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산 영혼이며, 믿지 않는 사람의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산 영을 가졌으므로 산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즉 “산 세계에서 살아라,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죽었던 자를 살려놓았으니까 이제는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고,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위엣 것을 추구하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 위엣 것을 찾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새 생명의 세계는 신령한 세계이므로 위엣 것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위엣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2. 위엣 것은 무엇인가?

신령한 세계임

그러면 위엣 것은 무엇입니까? 위엣 것은 신령한 세계입니다. 땅엣 것은 속화된 세계입니다. 언제나 예수 믿는 사람은 신령한 세계의 것을 찾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임

또 위엣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입니다. 부활과 승천으로 대승리를 이루신 예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즉 사망과 죄악의 권세를 다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승리하신 예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무엇을 하십니까? 로마서 8:34에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도와주십니다. 사울이 교회를 핍박할 때에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셨고(행 9:4),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고 하였습니다(행 7:56).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
시고,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를 만능의 능력으로 도와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늘 찾아야 됩니다. 예수님을 간절히 찾으면 예수님을 가까이 할 수 있습니다.

역대하 15:2-4에 “저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저를 찾으면 저가 너희의 만난 바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저를 버리면 저도 너희를 버리시리라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
희가 여호와를 찾으면 만나고, 여호와를 버리면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신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을 찾으면 만나고, 예수님을 버리면 예수님이 우리를 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임

그 다음에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위엣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언제나 사모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언제나 소망을 가지고, 그 나라를 바라보며, 그 나라가 우리 속에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됩니다. 그것이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됩니다. 주기도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하였고, “나라이 임하옵시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다 하나
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살려놓긴 살려 놓았는데, 즉 예수 믿고 중생은 했는데, 땅엣 것만 찾는 사람은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 것입니다. 그러나 위엣 것을 찾으면 산 믿음입니다.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위엣 것을 늘 사모하며 추구하여 위엣 것을 찾아 소유하려고 그 가운데로 들어가려고 하고, 그 세계에서 살려고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점점 더 많이 받으려고 힘쓰는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는 것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의 것을 생각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한1서 2: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는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땅엣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임

마태복음 7:7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구하라”는 말은 신령한 것을 찾으라는 말로, 그것도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입니다. “구하라, 찾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두드리라”는 것은 그대로 행하기를 계속 힘을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라고 했는데(16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하게 하는 것도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도와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이 위엣 것인데, 위엣 것을 찾아 예수님을 모시면 다른 것은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엣 것을 찾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만을 찾는 신자들은 생명의 역사가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자는 산 믿음, 산 생명, 산 역사가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위엣 것을 찾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2.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

본문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라고 하였는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인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정죄는 우리의 정죄이고,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죽음이며, 예수님 장사는 우리 장사이며, 예수님 부활은 우리 부활이며, 예수님의 승천도 우리의 승천이며, 예수님의 나라는 우리의 나라입니다. 즉 예수님의 정죄는 내 정죄, 예수님의 죽음은 내 죽음,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예수님의 승천은 내 승천, 예수님의 나라는 내 나라입니다. 참 좋습니다.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했는데, 그리스도가 하나님 안에 계심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생명도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 2:6에는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습니다. 

3. 새 사람의 싸움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그런데 “죽이라”는 말씀이 5절에 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했다고 했는데, 즉 살았다고 했는데, 무엇을 죽이라는 말입니까?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5절)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영혼이 살았고,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고, 하나님 보좌에 앉아있다고 했는데, “죽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살았다는 것은 법적으로 죄사함을 받고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호적이 하나님 안에 옮겨졌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산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중생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과 같이 신령한 세계에 앉아있고, 또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정욕이라는 옛 사람이 있습니다. 영은 살아서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는데 육체의 정욕이라는 옛 사람이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그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고, 23절에는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고 하였는데, 영은 살았지만 몸은 죄로 인하여 사망 하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산 영은 양자의 영을 받아서 “아바 아버지”라고 하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만 속으로는 탄식하면서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도가 이미 죄 사함 받았고, 살아났으므로 “이제는 회개할 것이 없다,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죄가 있으면 지옥에 간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며 밤낮 회개만 시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부흥사들이 구원받은 것은 말하지 않고, 회개 안하면 지옥에 가고, 연보 안하면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법적으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적으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고, 하나님 보좌에 앉아 있고(엡 2:6), 하나님 안에 감춰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는 아직도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그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점점 죽여 나가야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죽이는 일을 안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구원파”는 구원받은 것만 강조하고, 옛사람인 죄의 부패성을 죽이라는 것은 안하기 때문에 탈선된 것입니다. 또 요새 부흥사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공갈협박을 해서 굴복시키고, 연보를 하게 만듭니다. 인기가 많은 부흥사는, 장로들을 복종시키고, 연보 많이 나게 하는 부흥사입니다. 어떤 부흥사는 아예, 첫 시간에 내가 온 것은 장로를 때려잡으러 왔고, 연보 많이 하게 하려고 왔다고 합니다. 목사들이 장로를 복종케 하고 연보 많이 나오게 하는, 이 둘이 제일 큰 문제라고 하는데, 부흥사를 청하면 장로 때려잡고, 연보 많이 나게 하니까 두 문제가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평소에 장로들을 잘 가르쳐서 순종 잘하게 만들고, 평소에 잘 가르쳐서 연보 잘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혼은 죄가 없으나 아직도 육체는 죄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것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을 죽인 것만큼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고, 성전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는 것만큼 성전이 되어 나가고, 땅엣 것을 죽인 것만큼 성전이 되어 나갑니다.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위엣 것을 얼마나 많이 찾느냐가 문제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을 하느냐? 얼마나 신령한 세계에서 사느냐? 얼마나 하늘나라를 많이 소유하고 사느냐가 문제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땅엣 것을 얼마나 많이 죽였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시험을 당해 보아야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덕에서 한 번 굴려 보아야 죽었는지, 안 죽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언덕에서 한 번 굴려 보았을 때에 “왜 굴렸느냐?”고 하는 것은 아직도 죽지 않은 것 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연말에 집사들을 임명할 때에 한 번 굴려 보라는 것입니다. 굴려보아서 아무 소리가 없으면 집사의 자격이 되고, 왜 굴렸느냐고 불평하면 집사를 임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사들을 한 번 굴려 보아야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산 것은 못씁니다. 제물을 죽여서 갖다 놓아야지 산 송아지나 산 양을 갖다 놓으면 어떻게 제물이 되겠습니까? 죽은 것이어야 제물이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죽이라는 것입니까? 땅엣 것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구름타시고 재림하실 때에는 성도들도 주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장차 올 대 환난을 이길만한 자격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땅에 있는 지체는 무엇인가?

본문 5-7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라고 하였습니다. 땅에 있는 지체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1) 음란 성적인 죄입니다.
2) 부정 성적 죄를 포함한 더러운 행위들을 가리킵니다.
3) 사욕 음란 외에 자기중심에서 나오는 분노와 질투 같은 억제하기 어려운 욕망들입니다.
4) 악한 정욕 음란을 포함한 일반적인 욕심을 가리킵니다.
5) 탐심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사는 것이 그 재산의 넉넉한 데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며,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고 했습니다. 또 사무엘상 15:23에는 고집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고집이 우상이고, 돈이 우상입니다. 고집이 없는 사람 있습니까? 고집이 다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주장, 자기 고집은 악한 것입니다. 자기를 다 죽여야 되겠는데, 아직도 못 다 죽였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는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는데, 쾌락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고집이 우상입니다. 언제나 우상 때문에 일이 안 됩니다. 이 우상 때문에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되는 게 없습니다. 몇 십 년 동안 예수를 믿었어도 속에 우상이 들어 있으면 뭐가 되겠습니까? 욕심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음란한 마음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또 사욕, 자기를 위하는 것 등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이것들을 다 죽여야 됩니다. 

또한 탐심이 우상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했는데,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또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 믿을 때에 “죄 사함 받았다, 의롭다 하심을 입었다, 새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어 있다”하여 좋은데,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이 어떻게 한다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도가 죄만 짓고, 고집 부리며 나가고, 탐심을 우상 삼고 나가면 하나님이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또 사람이 우상입니다. 즉 사람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입니다. 직장도 하나님보다 더 따라가면 우상입니다. 이것을 죽이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죄를 범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즉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면 항상 낙원에서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육체의 정욕대로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하고 살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산 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살려 주시고, 신령한 많은 것을 주셨는데, 죽일 것을 죽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항상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하며 바로 서야겠습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라

본문 8-10절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분한 마음, 악의, 악한 뜻, 악한 생각, 훼방 등을 버려야 합니다. 훼방하지 말라는 것은 다른 사람을 헐어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나 거짓말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란 중생한 자를 말합니다. 성도의 중생한 영은 새사람입니다.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했는데, 중생한 성도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의와 진리와 거룩입니다. 에베소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진리의 지식이 점점 자라나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할 줄 알려면 진리를 많이 배워서 진리의 지식이 많아야 됩니다. 진리의 지식이 없으면 마귀에게 밤낮 속아 넘어가고, 마귀의 종살이만 합니다. 자라난 사람은 의로워지고, 진실해지고, 거룩해지고, 진리의 지식이 많아져서 하나님의 뜻과 마귀의 뜻을 잘 분별해서 하나님의 뜻만 따라갑니다. 호세아 4장에 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지식이 없으면 밤낮 마귀에 속고, 마귀에게 끌려 다닙니다. 

4.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음

본문 11절에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안에 계시니라” 고 했습니다.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 차별이 없습니다.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만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자에게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종교적이고 택한 백성인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인과 달리 헬라인은 이방 사람인데 이방 사람이나 아브라함의 사람이나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 할례 받은 사람이나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고, 야만이나 스구디아아인이 차별이 없습니다. 스구디아인이라는 것은 북방에 있는 문명하지 못한 야만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과도 차별이 없고, 또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는 민족도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또 계급도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또 과거적, 종교적, 역사적 차별이 있을 수 없고, 자유인이나 종의 차별도 있을 수 없고, 이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데는 모두 같다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므로 주인, 종, 지식이 많은 사람, 무식한 사람, 또 문맹인이나 야만이나 같다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그 새 생명으로 창조함 받은 자이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니까 차별이 있을 수 없고 다 똑같이 이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새 사람이냐, 새 사람이 아니냐하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는지, 안 입었었는지가 문제이지, 차별이 무슨 필요가 있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느 대학을 나왔나 그 사람이 어느 학교를 나왔나 상관이 없습니다. 누가 초등학교 밖에 안 나왔다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어떻게 그리스도안에 대학생 딸이 있고 초등학교 딸의 구별이 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 옛 사람들이 하는 노릇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대학 나왔네,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네 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안에 딱 들어서면 의복 다 벗어놓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장교나 사회인이나 의복 다 벗어 놓고 들어오는 것은 같습니다. 누가 잘 될는지 아십니까?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이 문제지, 과거에 믿었나, 세상 지식을 좀 터득했나, 그런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양반이냐 양반 아니냐, 그런 것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양반이면 어떻고, 양반 아니면 어떻고, 또 종살이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므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종살이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면 된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 했는데, 만유라는 것은 만물 전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만물 전체이다, 만유 안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
스도는 전체를 다 주장하고 계시고 창조하셨고 다 붙잡고 있고 이용하십니다. 유대인이나 혤라인이나 다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그리스도께 있는 것입니다. 만유 안에서, 모든 일과 모든 것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붙들고 있고, 또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므로 마찬가지입니다. 어딜가나 차별이 있을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골로새서 2:9-23 구약의 의문을 떠나 실체이신 예수를 붙들고 나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약의 의문을 떠나 실체이신 예수를 붙들고 나가라
골로새서 2:9-23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20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2:9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 

2:10 그리고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 

2:11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않은 할례를 받아 육신의 몸을 벗은 것이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2:12 너희는 세례를 통해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분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2:13 또 너희가 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너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2:1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또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 버리셨다. 

2:15 그분께서 십자가로 통치들과 권세들을 무력화시켜 밝히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승리하셨다. 

2:16 그러므로 너희는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하루 제사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여라. 

2:17 이런 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있다. 

2:18 아무도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강요하여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그런 자는 자기가 본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교만해져서 

2:19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 온몸은 그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난다. 

2:20 너희는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어찌하여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의식법에 복종하느냐? 

2:21 곧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손대지도 마라." 하는 것이니, 

2:22 이것들은 모두 사용되다가 없어질 것으로서, 사람들의 계명과 교훈에 따른 것이다. 

2:23 이런 규정들은 자의적 경건과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의 모양을 가지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익하다.


1.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함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나타남

본문 9절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신성의 충만이라는 것은 사랑 충만, 거룩 충만, 의 충만, 진실 충만입니다. 그것이 신성의 충만입니다. 신성이란 사랑, 의, 거룩, 진실인데, 그 신성이 육체로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다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나타났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성의 충만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다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육체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에 사랑이 나타났다는 것, 예수님의 육체에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났다는 것, 예수님 육체에 공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의 육체에 충만하게 다 나타내 보여 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예수님의 육체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줬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못 박혀 대신 죽음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의는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습니다. 거룩은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거룩은 피조물과 연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셨고, 진실은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예수님이 진리대로 다 행하심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다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의 머리이심

본문 10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서 충만하여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충만해졌습니까? 육체로 보여 주신 신성의 충만, 하나님의 사랑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우리에게도 충만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사랑 영접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권위 영접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능력 영접입니다. 충만을 영접하니까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충만을 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는 천사들인데, 천사들 또는 마귀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고, 이 세상의 정권잡은 사람들도 다 포함됩니다. 머리는 주장자입니다. 정사와 권세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세상 정권을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입니다. 머리가 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다 됩니다.

그리스도로 영적 할례 받은 우리

본문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할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할례의 뜻은 
첫째, 정욕을 제거한다는 하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표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 된 표입니다. 할례 받았다 해도 정욕을 그냥 가지고 나가는 것은 육적 할례만 받았지 내적 할례는 못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육적 정욕을 벗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제거, 안목의 정욕 제거, 이생의 자랑 제거, 그것이 영적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 받은 유대 사람들은 육신의 할례 받은 것을 가지고 할례 받았다고 하지만, 할례의 참 뜻은 영적 할례가 참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의식적 할례는 안 받았지만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충만, 예수님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사랑 충만, 의 충만, 진실 충만, 거룩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는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동시에 예수의 충만을 우리가 받아들임으로 우리도 육적 몸을 벗는 신령한 할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사람

본문 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했는데,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연합한 사람이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이 죽었고, 또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었고 예수님과 같이 살아났습니다. 

본문 13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우리 영이 완전히 죽었던 자 입니다. 
또한 ‘육체의 무 할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완전히 죽었던 자들인데 너희를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2. 의문의 쓴 증서를 못 박으신 예수님

본문 14-15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의문에 쓴 증서라는 것은 구약 의문인데, 이 증서라는 것은 차용증서(借用證書)와 같습니다. 

우리를 거스르는 구약의 의문들

‘의문에 쓴 증서’란,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와 구약의 모든 먹고 마시는 문제와,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유월절 등을 말합니다. 할례 문제나, 구약의 모든 의식이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서’는 차용증서와 같이 우리에게 그대로 하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의식들은 “할례 받아라”, “유월절 지켜라”, “월삭(매월 초하루)지켜라”, “안식일(구약, 토요일)지켜라”, “무엇을 먹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비늘 없는 고기, 쪽발 갈라지지 않은 고기, 새김질하지 않는 고기(구약의 모든 의문들이다), 또 새 중에는 매, 부엉이 같이 남을 잡아 먹는 새들, 곤충은 발로 뛰는 것은 먹으나, 배로 기어 다니는 것, 날개가 있으나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등입니다(레위기 11장).

그것들이 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입니다. 왜 우리를 거스르는 것인가 하면,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고 “왜 이대로 안했느냐?”고 하며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왜 할례 안 받았느냐?”고 거스르고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의문과 제도와 의식은 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했으며, 증서(차용증서)와 같이 이행하기를 강요했으나, 예수께서 그것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것들은 다 그림자이기 때문에 같이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구약의 의문을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예수님

구약의 모든 의문은 차용증서와 같아서 빚진 사람에게 요구함 같이 우리에게 반드시 요구합니다. ‘이대로 해라, 내라, 순종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번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King James 성경에는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버리시고 그것을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정사와 권세를 벗겨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번역되어 있고, 또한 개역개정판 번역은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의문에 쓴 증서를 ‘법조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했습니다.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는, 구약에 있는 모든 의문, 증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 예수님이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있는 모든 의문에 쓴 증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할례 받는 것, 유월절과 같은 절기, 월삭,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는 것, 쪽 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것 등, 그런 것이 다 의문에 쓴 증서입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영적 면과 반대인데 의문으로 가르친 법입니다. ‘할례 받아라, 또 유월절 지켜라, 구약 안식일 즉, 토요일 지켜라, 월삭 지켜라, 월삭을 지키라는 것은 매월 초하루 날을 지키라는 것이고, 또,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아라,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것 등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같은 것은 새김질하지 않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토끼는 새김질 하되 쪽 발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먹지 말라는 짐승이 많습니다. 그게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문서라는 것입니다. 

차용증서라고 했는데 손으로 쓴 법령. 또 법조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한 것보다, 의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의문으로 쓴 증서, 의문이라는 것은 그 의식을 가르쳐주는 문서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절기,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유월절은 뭘 가르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오순절은 뭘 가르치는 것입니까? 예수님 부활, 처음 익은 열매,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 바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입니다. 또 수장절을 무엇입니까? 추수감사절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재림하셔서 곡식을 거둬드리는 걸 의식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구약 때에는 의식적으로 가르쳤지만 신약시대에는 실체로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가 실체니까. 구약의 모든 의식은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았고 도말했습니다. 지워 버렸고 제하여 버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신령한 뜻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의문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 의문인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신령한 뜻은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이고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구약 의문의 신령한 뜻은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새김질 하는 짐승을 먹으라’는 것은 ‘말씀을 먹고 새김질 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 비늘 있는 고기 먹어라’는 의문의 신령한 뜻은, ‘전신갑주를 입고 살아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또 유월절 양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성도가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구약시대에 의문으로 가르쳐서 ‘그리스도가 와서 속죄제물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의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의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구약의 할례의 참 뜻은 ‘정욕을 제어하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속한 표, 즉 하나님의 백성 된 표로서 또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표로서 할례라는 의식을 가르쳤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개 다 의식으로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은 이제 신약시대에 신령한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이고,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 안식을 너희에게 줄 것인데 안식을 주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날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의문으로는 토요일 날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에 쓴 증서를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그것을 다 못 박으시고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실체가 나타났는데 예수님이 실체고, 그 구약의 모든 것들은 의문입니다.

3. 여러 가지 미혹에 들지 말 것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임

본문 16-17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다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이고 참형상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림자가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참 실체가 왔다는 것인데, 사람의 그림자는 사람이 먼저 가고 해 그림자가 옆에 따라 오지만, 이제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림자가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실체가 왔습니다. 예를 들면 사진이 먼저 왔고 실체가 온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중매 때 먼저 사진을 보고 나서 실체는 나중에 만나는 것처럼 사진이 먼저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의식은 그림자로서, 예로 들어 설명한 사진과 같은 것인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림자가 먼저 와서 보여 주었고 그 다음에 실체가 왔습니다. 구약의 모든 의문은 그림자(사진)와 같고 실체인 예수님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진(그림자)도 다 같이 못 박아 죽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 양을 죽인 것과 같고, 유월절 양만 죽인 것이 아니라 유월절도 죽이신 것입니다. 그림자 전체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았습니다.

월삭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것도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매월 초하루 날 하나님 앞에 초하루 제사를 드려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와서 새 생명을 주실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도 ‘의문에 쓴 증서’입니다. 이것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또, 구약에는 7월이 상달이다 하여 속죄일, 장막절 등 여러 가지 절기가 7월에 다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절기들도 다 못 박으셨습니다.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는 것이나, 먹지 못하는 짐승에 대한 것도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힐 때 그것을 다 못 박았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차용증서와 같이 우리를 강요하는)를 다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구약에 의식의 권세를 이기심
 
구약시대에는 의식에 대하여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대로 해라. 안하면 내좇는다”고 하는 정사와 그런 권세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라하던 정사들을 전부 다 벗어 버리고, 밝히 드러내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는데, 이젠 예수님께서 이러한 의문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의 권세가 없어졌습니다. 의문의 권세가 다 없어졌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밝히 드러내셔서 승리하셨습니다.

구약의 먹지 말라 한 것들, 비늘 없는 고기나, 쪽 발 갈라지지 않은 것이나 먹고 마시는 그것 가지고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또, 절기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등 그것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탄생,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 장막절은 재림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시고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안식을 주장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토요일의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의문입니다. 그것도 한 증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실제로 안식을 주셨고, 죽으셨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인데,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성경대로 바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얻고,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을 지키면서 안식을 받는 그것이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였는데, ‘구약대로 해야 된다, 뭘 먹으면 안 된다, 뭘 마시면 안 된다, 절기나 월삭이나 그런 것 지켜야 된다’는 폄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모두 도말하셨으니까 그런 것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는데, 먹고 마시는 것, 또 절기, 월삭, 안식일 등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인데 몸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실체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는 그런 것이 다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의문에 쓴 증서는 다 도말했습니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런 것은 안 지켜도 됩니다. 구약 시대에 의문에 쓴 증서는 안 지켜도 되고,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을 누리고, 생명이 살고, 이제는 새 생명의 길,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본문 18절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라고 했는데 일부러 겸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좋지만 일부러 겸손해서 천사에게 경배하고, 또 일부러 겸손해서 본 것을 의지하고,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뭘 본 것, ‘계시를 봤다, 꿈에 봤다’ 그런 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눈으로 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 것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를 보았다”,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님을 보았다”, “천사를 보았다” 등 그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요. 보이는 것이 다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으로 다 바로 볼 수 없고, 또 영물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혹 마귀가 보여 주기도 하는데, 본 것 의지하는 사람에게 마귀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각의 착각이 있습니다. 눈으로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고 할 때, 그것을 바로 본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았다”, “할아버지를 보았다”,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8:3-25에, 사무엘이 죽은 후에, 사울 왕이 수넴에 진 친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 죽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하자, 신접한 여자가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그 영이 사무엘인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고 물어보니까, 사무엘이라고 하는 영이 블레셋에 이스라엘이 패하고 사울과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고 답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은 사무엘이 아닙니다.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나와서 보여준 것입니다. 사무엘의 영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과 똑같이 의복을 차리고 사무엘과 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왔으니까 사무엘이 온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죽었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려고 했기 때문에 그 영혼이 온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인 줄 알고 물어봤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말 해줬습니까? 마귀가 뭐 좋은 말 해주겠습니까? 하여간 마귀는 좋은 말 못합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좋은 말 안 합니다. 악한 말, 그저 사람 죽이는 말, 낙심시키는 말, 거짓말, 사람의 믿음을 빼앗는 말, 이런 말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도하니까 수염이 하얀 영감님이 나타나서, “하나님” 하고 부르면, “왜그러느냐?”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귀가 나타난 것입니다. 

간혹 “할아버지가 왔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한 번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천당 간 사람은 천당에서 다시 오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왔다 갔다 하면 무엇 의논도 좀 하고, 한 번 만나도 보고 좋겠으나,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보았다거나 누구 보았다 하는 것은 전부 다 허깨비 본 것입니다. 그 사람은 꿈꾼 거나 다름없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사도시대까지의 꿈은 표준계시로 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꿈으로 표준계시를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면 제 꿈 아니면, 개꿈으로 알면 됩니다. 자신이 꿈 꾼 다음에는 ‘개 꿈 하나 꾸었다’고 생각하십시오. 괜히 꿈꿔가지고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설혹 꿈이 맞는다 해도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 것, 음성 들은 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박재봉 목사가 기도하는데 “박재봉아, 박재봉아”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가만히 들어 보니, 옆에 돼지가 “꽥, 꽥”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박재봉아’라고 들렸다고 합니다. 듣는 것에도 착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청각의 착각이나, 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꿈 꾼 다음에는 제 꿈 아니면 개꿈으로 알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보았다고 해도, 그것도 바로 본 것이 아니니 다 뒤에 돌려놓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여 옴

마귀도 광명한 천사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에,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장이라는 것은 꾸며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광명한 천사인 체 하고 꾸며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얼굴도 환하게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 시꺼먼데 겉을 환하게 천사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외모만 광명한 천사와 같이 꾸며가지고 나오는 데에 미혹을 받으면 안 됩니다. 마귀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 나오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또 마귀가 나타나서 보이진 않아도 마음속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입니다. 형상은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가라, 그만둬라’ 하는데 이것은 마귀가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느껴지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죽여라’,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서 ’아무개 죽여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마귀인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가라, 들어가라, 앉아라, 내리뛰어라, 올라 뛰어라, 먹어라, 먹지 말아라’고 성경에 있지도 않은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마귀가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해야 됩니다.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물리쳐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또 뭘 본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 꿈 꿨다는 것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꿈꾼 것은 무엇입니까? 보통은 다 제 꿈 아니면 개꿈인줄 알면 됩니다. 그렇게 꿈에 무엇을 보았다고 하며, 꿈에 본 것을 따라가면 마귀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니면, 개꿈을 꾼 것이니까 개 따라가는 것입니다. 꿈 꾼 거 있으면 제 꿈 아니면 개꿈 하나 꿨다고 하고 집어치워야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꿈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정사와 권세와 의문에 쓴 증서가 우리를 대적하고 거스르지 않습니까? ‘이거 하라’고 구약에 나오는데 안 하거나, 또 구약에, ‘그것 먹지마라’고 했는데 먹으면 의문이 우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정사와 권세와 의문에 쓴 증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도말하시고, 지워버리시고, 무력화시키셨고, 승리하셨으므로 구약에 먹지 말라는 것 이제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오늘날에는 구약의 월삭, 절기, 안식일을 구약의 의문대로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의문은 그림자이고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구약의 의문은 다 폐기된 것입니다. 다만, 그 신령한 뜻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구약의 안식일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부활 승천하셨으며, 우리에게 영적 안식을 주시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면 됩니다. 우리는 구약의 그림자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본 것을 의지하는 데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천사 숭배하던 에센 파

그 시절에 천사 숭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교에 크게 세 파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 파는 바리새(The Pharisees)파이고, 다른 파는 사두개(The Sadducees)파, 나머지 파는 에센(The Essenes)파였습니다. 에센파는 특별히 모세를 아주 높여 공경하고,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천사를 숭배하고, 금욕주의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가 제일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첫째가 모세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줄 때에 천사의 손을 빌어서 모세에게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잘 공경하려면 천사를 공경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공경하고 천사를 숭배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에셀 파는 하나님 다음에는 모세가 제일이라며, 모세를 공경했습니다. 모세를 공경할 때에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천사를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금욕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사 숭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지나치게 겸손한 것으로 옳지 않습니다. 천사 숭배하는 것이 겸손한 것 같지만 그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도리어 잘못된 것입니다. 천사 숭배, 동물들 숭배 이런 것은 다 옳지 않습니다. 구렁이 숭배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칡 구렁이, 복 구렁이 등 구렁이를 숭배하고 또, 사람들이 숭배하는 것이 많습니다. 뱀 숭배하는 데도 있습니다.
일부러 겸손한 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머리를 숙여야합니다. 천사는 피조물이고 천사는 성도를 위한 심부름꾼입니다. 히브리서 1장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우리를 위한 심부름꾼입니다. 우리가 천사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를 숭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 것

본문 19절에,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고, 본 것 의지하고 이상한 것만 숭상합니다.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한지라’, 신비주의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입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고, 몸 된 우리는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머리를 잘 붙들고 나가면 거기로부터 힘줄과 마디로 공급함을 얻어서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머리만 붙들어야지 다른 것을 붙들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 붙들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야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어 자라나게 됩니다.

4. 외적 경건과 내적 경건
신비주의자들의 외적 경건

‘초등학문’이란 초보적 학문을 가리킵니다. 즉 이방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숭상하는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초보적인 것입니다. 의식주의는 다 초보적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것이나, 유대인들의 의식주의나 전부 초보적 학문인 ‘초등학문’입니다. 의식주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의식주의가 죽은 것이며, 숭상하던 사람들도 다 같이 죽은 것입니다. “초등학문 같은 유치한 학문에 왜 순종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어떤 것은 붙잡지도 말라고 합니다. “붙잡아도 죄다”, “맛보지도 말라. 그것도 죄다”, “만지도 말라. 만지는 것도 죄다”라고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 신비주의자들은 고기를 먹지 말라 하였습니다. “채식만 해라. 고기 먹는 것은 죄다. 맛보지도 말라”, “만지도 말라, 붙잡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비주의자들에게는 그런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고기 문제도 있었지만 다른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이 ‘먹지 말고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한 것은 다 부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상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르침으로 하는 것인데,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좇아가지 말고 성경 말씀만 좇아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좇아가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하나님께서 표준계시를 주시는 때가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는 성경에 다 기록을 해 주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만을 따라 가야합니다. 

자의적 숭배는 내적 경건의 유익이 없음

자의적 숭배란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놓은 숭배입니다. 보기엔 아주 겸손한 것 같습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일, 거기에는 지혜 있는 모양이 있어 보입니다. 자의적 숭배를 잘하면 보기엔 특별히 겸손한 것 같습니다. 금욕주의와,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은 있지만 그것은 외적 경건입니다. 

외모로 겸손하고 외모로 경건한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은 있지만 내적 경건으로 나가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습니다. ‘만지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먹지도 말아라’하는 것이 외적으로는 경건한 것 같지만 그러나 내적인 경건은 아닙니다. 그것이 외적 경건으로 자랑할 만한 모양은 있지만, 내적 경건으로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외적 경건은 다 썩어져 없어질 것이고, 내적 경건만 영원할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 좇는 것을 금하는 것이 내적 경건입니다.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 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만 경건한 모양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적 경건을 이루어 나갈 것

내적 경건, 내적 생명, 내적 승리, 내적 승세(세상을 이김), 내적 거룩, 내적 의, 내적 진실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하는 것, 쟁투, 시기하는 것 등을 제거하는 것이 내적 경건인데, 외적 경건으로 모양만 꾸며 나가는 자에게는 방탕함 같은 것들이 속에 다 있습니다. 

내적 경건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떠나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체하고 모양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속에는 각종 죄악이 가득한 가운데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나가던 그곳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

골로새서 2:1-8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앙 확립을 위한 노력
골로새서 2:1-8

1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4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 6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2:1 나는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힘쓰고 있는지 너희가 알기를 원한다. 

2:2 이는 그들이 사랑 가운데 연합하여 마음에 위로를 얻고 깨달음에서 오는 넘치는 확신에 이르며,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 

2:3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 

2:4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2:5 내가 비록 육신은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질서 있게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의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한다. 

2:6 그러므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것처럼, 그 안에서 계속 살아가라. 

2:7 너희는 그분 안에 뿌리를 내리고 세움을 입으며, 가르침을 받은대로 믿음 안에 굳게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여라. 

2:8 아무도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주의하여라. 이런 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초보적 원리들을 따른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른 것이 아니다. 


1. 성도들의 신앙을 위해 힘을 쓴 바울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한 노력

본문 1절에,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라오디게아 교회와 골로새에 있는 교인들은 얼굴도 보지 못했으나, 그들을 위해 힘을 많이 썼습니다.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라고 하였는데, 사도바울은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한 여러 곳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어떻게 힘쓰는 것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신앙이 잘되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그들의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힘을 썼습니다. 

기도해주면서 힘을 씁니다. 우리가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국내에 있는 못 본 성도가 많지만, 특히 외국에 있는 성도들, 선교사들 가서 선교하는 지방에 있는 보지 못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지만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그들의 신앙을 위해서 힘쓰는 일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중국에 있는 성도들, 또 구소련에 있는 성도들, 일본에 있는 성도들, 미국에 있는 성도들, 또 호주에 있는 성도들, 우리가 선교사를 보내서, 보지 못한 성도들의 신앙을 길러나가는 중에 있는데, 얼굴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을 위해서 힘을 많이 써야 되겠습니다.

마음의 위안과 사랑의 연합을 위한 노력

본문 2절에,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는’이라고 하면서 이유를 말합니다. 보지 못한 성도를 위해서 힘쓰는 이유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하려 함입니다. 그리스도를 잘 깨닫게 하기 위해서, 보지 못하는 성도들을 위해, 또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위해서 힘쓴다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을 위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피땀을 흘리고 거기에 진액을 짜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적으로 해야 교회가 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피 위에서 세워지고, 교역자의 피땀과 진액 위에 서 나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보이지 않는 성도들을 위해서도 피땀을 흘렸습니다. 교인들이 위안을 받게 하는 것이 첫째라는 말입니다. 여러 가지 환란 가운데 있더라도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있다는 말입니다. 바로 깨달으면 위안이 오고, 은혜를 받으면 마음의 위로가 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은혜를 나눠주려고 바울이 갈 때에는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장 11-12절에,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을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고 했는데, 바울이 가서 너희에게 나눠주면 너희와 내가 함께 안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차 은혜의 보따리를 싸가지고 가야 되겠습니다. 성도가 서로 연결돼야만 큰 성전이 지어져나간다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20-21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라고 했습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구절이 있는데, 성도가 서로 연락되고 신앙의 교제를 하고 서로 연결됨으로 하나님의 큰 성전이 지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커지는 것만큼 멀리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연합해야 멀리까지 진리가 전파돼 나간다는 말입니다. 연합이 되지 못하면 힘이 없습니다. 멀리까지 나가지 못합니다. 

진리 면에서 원만한 이해와 부요에 이르는 노력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신앙생활이라는 건 이면도 깨닫고, 다른 면도 깨닫고, 원만하게 모든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깨닫지 못한 게 있다고 하면 성격이 바로 되지 못합니다. 

사도행전 18장 25-26절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그가 회당에서 담대히 말하기를 시작하거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듣고 데려다가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이르더라”고 했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에 능한 자요 학문이 많은 사람으로서, 구약성경을 가지고 와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에 관해서 자세히 말하며 가르쳤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들어보니까 열심히 가르치긴 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아볼로가 모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대학자인 아볼로를 모셔서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알려드렸다는 말입니다. 실력은 아볼로에게 못 미치지만 예수님에 대해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아볼로도 모르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뒤에 아볼로는 원만한 이해가 됐습니다. 불치하문(不恥下問)이란 말이 있습니다. 아랫사람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브리스길라가 아볼로의 아랫사람이지만, 아볼로는 자기가 아직도 알지 못하던 내용을 브리스길라에게서 배워서 이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주 잘 전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후에 아볼로를 동역자라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여 예수를 믿는 진리 면에 있어서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도록 아직도 배우지 못한 면을 배워야 합니다. 깨닫지 못한 면을 깨달아야 하고,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던 면을 이해해야 하고, 아직도 개척하지 못한 진리를 개척해야 하고,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골로새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에 바울이 가지는 않았지만, 바울이 갖고 있는 진리를 가서 말해주어야겠다는 말입니다. 골로새교회가 에바브라에게 배웠는데, 물론 에바브라가 가진 진리가 바울이 가진 진리와 어느 정도 같습니다. 그래도 에바브라에게 없는 것이 바울에게 또한 있습니다. 좀 더 깊은 진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 진리를 보충시켜줘야 원만한 진리에 대한 이해가 되기 때문에, 어떻게든지 이 진리를 하나라도 더 전해주려고 애를 쓰고, 은혜를 전해주려고 바울이 항상 힘쓰고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라도 그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면이 아직도 있습니다. 우리가 깨달은 것을 가서 나눠주고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이 원만한 지혜의 모든 이해에 이르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기독교 회의하는 곳을 참석해보면, 거기서도 물론 진리에 대하여 논의하지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에 대한 이해를 못한 면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려줘서 보충을 시켜주면 그 사람들에게 큰 유익이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기독교 국제회의 같은데 혹시 참여하게 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진리를 그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니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것을 가르쳐준다고 대접이 달라집니다. 물론 그 즉시로 알아듣고 바로 서는 경우도 있지만 100% 효과 보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 가서 진리에 대한 바른 것을 말해주면, 그들이 모르던 것을 좀 더 넓게 알게 됩니다. 

2. 그리스도 안에 감추인 지혜, 지식, 보화
영생의 지혜, 지식임

본문 3절에,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다고 했는데, ‘그 안’은 그리스도 안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무엇이 감추어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모든 지혜도 있고, 지식도 있고,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제가 소년 시절에 이 성경을 읽고, 예수 안에 지혜와 지식이 다 있으니깐 예수만 잘 믿으면 다른 건 다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어공부 하다가 힘이 드니깐 공부하는 건 힘을 좀 안 썼습니다. “다 이거이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 있으면 다 들어가니깐 영어 공부 할 필요 없다”고 이렇게 생각하고 얼마동안 공부 안하다가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 지혜와 지식은 영적 지혜와 지식인데, 영적인 것을 모르고 육신의 지혜와 지식인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부할 필요 없다’이렇게 생각하고 잘못 깨닫고 공부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까 그리스도 안에는 육신의 지혜와 지식이 있는 게 아니고, 영적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적 지혜와 지식이 있다는 것은, 하늘나라를 아는 지혜, 하나님을 아는 지혜와 지식, 또한 우리 사람의 영혼을 아는 지혜와 지식, 구원받는 지혜와 지식, 자라나는 지혜와 지식, 신령한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다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알고, 천당을 알고, 지옥을 알고, 성령의 역사도 알고, 마귀 역사도 알고, 모든 지혜와 지식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바로 영접하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도 알게 되고, 성경도 알게 되고, 내세도 알게 되고, 천당과 지옥도 알게 되고, 그리스도 안에 그 지혜와 지식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내세도 모르고, 심판도 모르고, 천당과 지옥도 모르고, 자기 영도 모르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다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를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을 점 점 더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고, 성령을 알게 되고, 하늘나라, 지옥, 심판, 또 복 받는 길, 화 받는 길, 망하는 길, 영생 길, 다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영생 길이, 영생하는 지혜가 있고, 지식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만큼 소유하게 됨

보화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 보화와 지혜와 지식이 감추어 있는데 그걸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 안에 보화가 많이 있다는 말이고, 지식도 가득 있고, 또 지혜도 가득 있습니다. 광산에 금강석이 가득 나오는 것과 같이 캐면 나오고, 캐면 또 있고, 또 있고, 계속 캐 들어가면 또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가 계속 있습니다. 

얼마를 캐내면 끝이 나는 게 아니라 더 있습니다. 그 보화를 좀 더 캐내면 계속 더 있습니다.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캐내면 더 있고, 무궁무진하게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 있습니다. 무궁(無窮)이라는 뜻은 한정 없이 있다는 말입니다. 무진(無盡), 즉, 끊어짐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한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무궁무진한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 보화를 발견하고, 그 다음에 즐거워하고, 그 보화로 자기가 부자 되고, 그 보화로 생명을 얻고, 그 보화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는 얼마나 있다고 했습니까? 얼마나 감추어 있습니까? 무궁무진하게 감추어 있다는 말입니다. 보화를 한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그만큼 보화가 있고, 두 가마니 발견한 사람은 또 보화가 그만큼 있고, 세 가마니 발견한 사람, 다섯 가마니 발견한 사람, 일곱 가마니 캐낸 사람, 열 가마니 캐낸 사람, 스무 가마니 캐낸
사람, 이렇게 계속 캐내도 계속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캐내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보화를 얼마나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 얼마입니까? 가지고 있는 것, 가지고 있는 건 자기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교회 목사가 발견하고 캐낸 것만큼 교회의 교인도 가질 수 있습니다. 목사가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낸 목사는 교인들에게 다 나눠주니까, 그만큼 부자가 되고, 보화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도하는 목사에게 인도받는 교인들은 보화가 없습니다. 조금 발견한 사람은 보화가 조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무궁무진한 보화를 많이 발견하고, 많이 캐내서 많이 자기 것으로 삼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지혜와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 지혜, 신령한 지혜, 신령한 지식도 그리스도 안에 무궁무진하게 있는데, 그것도 자기가 발견해서 자기 소유로 삼는 것만큼 자기 것이 됩니다.

3. 믿음으로 규모를 잘 지킬 것

본문 4절에,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 했습니다. 공교한 말로, 꾸민 말로, 공교하게 묘하게 꾸며가지고 사람을 속이는 사람들이 어느 시대나 많이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교역자들도 많습니다. 그런 자들이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5절에,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육신으로는 떠나 있다고 했는데, 지금 육신으로 어디 있습니까? 바울이 육신으로는 감옥에 있습니다. 육신으로는 골로새 교인하고 떠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라고 했는데, 심령으로는 언제나 교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혔지만 심령으로는 저희와 함께 있어, 저희의 규모와 그리스도를 믿는 그들의 믿음의 굳은 것을 기쁘게 본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너희 규모’라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대로 믿음 지키는 것이 규모입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규모를 잘 지키고, 믿음이 굳세다는 말입니다. 규모 잘 지킨다는 것은, 성경대로 모든 것을 다 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배시간 늦지 않는 것도 규모 지키는 것입니다. 늦어지는 건 규모 못 지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주일학교 늦어지고, 이따금 주일학교 빠지고,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키는 것은 믿음을 잘 지켜서 모든 면에 결함이 없이 원만하게 모든 것을 잘해나가는 것입니다. 원리 원칙대로, 법칙대고, 성경대로, 모든 면을 규모에 어긋남이 없이 잘 하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교회 생활도 규모대로 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규모대로 잘하고, 모든 것을 규모대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규모를 안 지키는 것은 신앙을 안 지키는 것입니다. 규모를 지켜야 됩니다. 예배시간 늦어지는 것은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빠지는 것도 규모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믿음의 굳은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이 믿음이 굳기 때문에 모든 걸 다 이겨나간 모양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기쁘게 보았습니다. 

4. 말씀에 굳게 서라
예수 안에 뿌리를 박을 것

본문 6-7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예수님을 주로 받은 성도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라고 하였습니다. 

그 안에서 행하고, 7절에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라고 했는데, 예수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말입니다. 뿌리를 박아서 흔들리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박고 그 안에서 살고, 그 다음에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 말씀을 배운대로, 믿음에, 즉,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또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곡식이 뿌리를 박아야 살지 않습니까? 그 안에 뿌리를 박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신앙의 뿌리를 깊이 박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를 힘입어 살라는 것입니다. 

‘세움을 입어’라고 했습니다. 세움을 입으라는 말은,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이제는 견고히 서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 대로 말씀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감사하는 생활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감사하는 생활 밖에는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들어가서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은 사람은 항상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철학과 속임수에 속지 말 것

본문 8절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철학으로 속이는데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때 당시의 철학자들 중에 노스틱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물질은 다 악하고 영은 선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노스틱주의자들은 물질 개혁자들입니다. ‘물질은 악하다. 그러므로 육신도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만 선하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육신은 악하다고 주장하기에 육신의 부활을 부인합니다. 성경에 물질을 하나님이 창조해놓고 선하다고 하였습니까? 악하다고 하였습니까?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육신을 악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육신이 악한 게 아닙니다. 육신의 부패성과 죄가 악한 것이지 육신이 악한 것이 아닙니다. 

요새도 여러 가지 철학들이 많이 있는데, 그 철학은 사람들의 교훈입니다.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닙니다. 철학이란 사람이 연구하고 만들어서 나온 것입니다. 모든 철학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철학은 사람들이 다 연구해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보여준 것, 하나님이 알게 해주신 것이고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로들의 유전, 율법주의자들, 할례주의자들의 주장은 사람의 유전이라는 것을 알고, 철학과 헛된 속임으로 우리를 노략할까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 초등 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 좇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초등학문이라는 건 유치원 때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학년 들어가기 전에 초보적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초등학문은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세상 율법이나, 유전이나, 철학이나, 이런 것을 좋아서 좇아가는 건 다 초등학문을 좇는 것입니다. 아직도 신앙의 근본인, 영적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신신학자들도 성경에 철학을 이용하였습니다. 이런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아직도 원 학문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초등학문을 좇으며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했는데, 철학을 좇는 신신학자들은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닙니다. 초등학문인 철학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기독교사회주의, 공산주의, 기독교 안에 있는 신신학자들은 전부 다 초등학문을 좇아가는 것이며, 참 신앙에, 영적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입니다.

골로새서 1:24-29 구원운동을 위한 수고.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원운동을 위한 수고
골로새서 4:24-29

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 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24 이제 나는 너희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 

1:25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너희를 위하여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1:26 모든 시대와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왔던 비밀이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났다. 

1: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그분의 성도들에게 알리고자 하셨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1:28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모든 지혜로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들로 세우려는 것이다. 

1:29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라 힘써 수고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움

본문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일군이 된 바울은 너희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단 마음으로 받으면서, 복음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바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실 때에 고난을 조금 남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100%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실 때에 1%라도 남겨 놓았다고 하면 그것은 이단이 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100%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남은 게 없습니다. 그러면 남은 고난이란 복음을 전하는 고난, 교회를 세우는 고난,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고난 등을 말합니다. 즉 남은 고난이란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남은 고난을 우리에게도 남겨 놓으셨습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명을 우리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남은 고난입니다. 남은 고난을 안 받으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을 때에 괴로움이 많으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쁘게 받은 이유

◉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짐

그러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것을 왜 감사하며, 기쁘게 여겼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으면서 수고할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 성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짐
또 성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있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은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등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인데, 그것을 받은 것만큼 상급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많이 받았으면 상급이 많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안 받았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을 쓰고, 또 성도를 돌보기 위해서 힘을 쓰고, 교회를 위한 희생 봉사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을 환영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을 믿음의 길로 잘 인도하여야겠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이 남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남은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모든 성도들의 구원이 잘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는데, 내가 고난당하므로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아가게 하여야겠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된 것임

본문 25절에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이란,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말합니다. 사도나 장로나 집사는 다 교회의 일꾼입니다. 또 전도사나 목사나 교사 등이 다 교회의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즉,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 일꾼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있어서 또 말씀을 이루시려고 일꾼으로 세워 놓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달게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남

본문 26-27절에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나타내셨습니다. 만세와 만대는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의 모든 세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는 일입니다. 즉 구원역사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며, 영광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4. 가르침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

본문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온전치 못한 것을 고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서 고쳐야 됩니다. 부정한 것을 고치고, 되지 못한 것을 고쳐야 됩니다. 고치려면 순종해야 고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각 사람을 온전한 자로 세우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을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침 받을 때에 잘 받아서 순종하면 점점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갑니다. 자신의 결점을 하나씩 고쳐 나가므로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 때에 고칠 것을 고쳐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됩니다. 고칠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나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기도원에서 사경회할 때 모든 사람 앞에 덕을 세우고, 사랑을 베풀라고 늘 말했는데, 싸우고 다투면 무엇을 배운 것입니까? 이것은 고치지 않은 증거입니다.
고칠 생각은 안하고 그저 말씀을 들으면, 말씀은 말씀대로 듣고, 자기는 자기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년 배워도, 백년 배워도 희망이 없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다투고 싸우는 성질을 고쳐야 됩니다.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 결점을 고쳐야 되겠다, 온전한 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나씩 결점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덕이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게 덕인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볼 생각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덕스럽지 못한 것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각 사람을 가르치는 목적은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자로 세워져 나가야 됩니다. 배우는 목적도 온전치 못한 것을 고쳐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고치지 않으면서 배우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을 배워서 배운 말씀을 실행하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야, 말씀대로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5.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수고함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함

본문 29절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가 있어야 그것이 산 믿음입니다.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3:3-5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속에서 역사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는 강한 능력으로 감동시키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는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 순종하느라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디모데후서 1:14-15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였습니다. 사도행전20:22에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올라가는 것이 역사하시는 이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여도,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0:9-10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환난과 핍박이 너무 심하기 때
문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예레미야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어서 다시 나가서 여호와를 선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고, 버리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가 있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왜 없는가? 고린도후서 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였듯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역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약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속에서 역사합니다. 자기가 약해야 속에서 역사하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자기가 온전히 없어져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믿음을 갖고,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쉬지 않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본문 29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끌고 가지 않습니까? 외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속에서부터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은 쉬지 않고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됩니다. 하루 몇 번씩이나 하시겠습니까? 매 시간, 매 초, 매 사건에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힘을 다해서 수고하면서 그 능력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한 가지 문제는, 능력으로 역사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얼른 배워서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속에서 나를 붙드시고 이끌고 가시는 능력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지식적으로만 알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붙들고 역사하심에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속에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나가는데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감동을 왜 못 받습니까? 감각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교만해지고 굳어져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 완고해졌다는 것, 방탕해졌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9절에는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역사하지만 그 역사에 반응이 없습니다. 불순종하고 거역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동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나는 서로 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에 감동을 받고, 깨달아야 협력할 것인데, 완악하고, 고집 세고,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죄로 인해서 어두워진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상한 심령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죄송스럽게 생각을 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복종하려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감동이 끊어진 사람은 생명이 끊어진 것입니다. 감동에는 외부적 감동과 내부적 감동이 있습니다. 육신의 감정에 감동이 있고 영적 감동이 있습니다. 외부적인 감동은 빠르고 강하지만, 내부에 들어가서는 까딱도 안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다 외부적으로는 강하지만, 심령 속 깊은 곳은 움직이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은 깊은 심령 속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성경에 안 맞는 건 무조건 다 마귀 역사입니다. 성경에 아홉 가지가 맞아도 한 가지가 안 맞으면 마귀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과 꼭 맞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감동의 역사가 성경하고 맞아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말이라도 성경에 안 맞는 건 마귀 역사입니다. 천사가 말해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감동을 받는 자, 하나님의 인도를 매일 받는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감동의 역사가 끊어지면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는 줄 알고, 언제나 감동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동 따라가다 신비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먼저 붙들고 거기에 감동이 올 때에 그 감동을 따라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2절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어떠한 감동이 있을 때에 성경에 맞나 안 맞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안 맞으면 회개하고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안 하도록 힘을 쓰라는 말입니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여기서 배우고 감동은 저기서 받는 게 옳습니까? 말씀 떠나서 받는 감동은 참된 것 아닙니다. 또 감동 없는 말씀은 안 됩니다. 말씀 속에 감동이 있어야 되고, 늘 감동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한 번도 감동의 역사가 막히지 않는 사람,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늘 깨어 있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되고,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늘 상한심령을 가져야 되고, 늘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잃어버립
니다. 언제든지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멍에를 메고 나간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말씀의 멍에입니다. 감동을 받아서 말씀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를 먼저 발견하고, 그를 위해서 힘써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말씀만 따라갈 때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따라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어떻게 감동하시는가, 나를 인도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바를 바로 감동받아서 따라갈 때에, 있는 힘을 다 써서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력을 다하고 물질을 다 기울이고 이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협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 속에서부터 성공되어 나갑니다. 그 길이 우리가 달음박질해 나가야 할 길입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먼저 발견해야 됩니다. 늘 발견하고 그에게 붙들리고, 이젠 거기에 나도 힘을 다해서 수고하면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 구원도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