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의문을 떠나 실체이신 예수를 붙들고 나가라
골로새서 2:9-23
골로새서 2:9-23
9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 20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21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가리라) 사람의 명과 가르침을 좇느냐 23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느니라
2:9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
2:10 그리고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
2:11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않은 할례를 받아 육신의 몸을 벗은 것이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2:12 너희는 세례를 통해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분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2:13 또 너희가 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너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2:1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또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 버리셨다.
2:15 그분께서 십자가로 통치들과 권세들을 무력화시켜 밝히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승리하셨다.
2:16 그러므로 너희는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하루 제사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여라.
2:17 이런 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있다.
2:18 아무도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강요하여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그런 자는 자기가 본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교만해져서
2:19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 온몸은 그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난다.
2:20 너희는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어찌하여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의식법에 복종하느냐?
2:21 곧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손대지도 마라." 하는 것이니,
2:22 이것들은 모두 사용되다가 없어질 것으로서, 사람들의 계명과 교훈에 따른 것이다.
2:23 이런 규정들은 자의적 경건과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의 모양을 가지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익하다.
2:10 그리고 너희도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다. 그분은 모든 통치와 권세의 머리이시다.
2:11 너희가 그리스도 안에서 손으로 하지않은 할례를 받아 육신의 몸을 벗은 것이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이다.
2:12 너희는 세례를 통해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분을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믿음으로 그분 안에서 그분과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다.
2:13 또 너희가 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으나, 너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다.
2:1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거슬러 대적하는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또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 버리셨다.
2:15 그분께서 십자가로 통치들과 권세들을 무력화시켜 밝히 드러내어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승리하셨다.
2:16 그러므로 너희는 먹고 마시는 일이나, 절기나 초하루 제사나 안식일 문제로 아무도 너희를 판단하지 못하게 하여라.
2:17 이런 것들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있다.
2:18 아무도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강요하여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그런 자는 자기가 본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교만해져서
2:19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 온몸은 그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난다.
2:20 너희는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는데, 어찌하여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처럼 의식법에 복종하느냐?
2:21 곧 "붙잡지도 마라, 맛보지도 마라, 손대지도 마라." 하는 것이니,
2:22 이것들은 모두 사용되다가 없어질 것으로서, 사람들의 계명과 교훈에 따른 것이다.
2:23 이런 규정들은 자의적 경건과 거짓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에는 지혜의 모양을 가지나, 육체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에는 무익하다.
1.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함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나타남
본문 9절에,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는 말입니다. 신성의 충만이라는 것은 사랑 충만, 거룩 충만, 의 충만, 진실 충만입니다. 그것이 신성의 충만입니다. 신성이란 사랑, 의, 거룩, 진실인데, 그 신성이 육체로 거하셨다는 것입니다.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다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나타났다고 했는데, 하나님의 신성의 충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신성의 충만이 그리스도의 육체에 다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그 육체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육체에 사랑이 나타났다는 것, 예수님의 육체에 하나님의 거룩이 나타났다는 것, 예수님 육체에 공의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성은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의 육체에 충만하게 다 나타내 보여 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보여 주셨습니까? 예수님의 육체로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줬다는 말입니다. 십자가 못 박혀 대신 죽음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의는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예수님이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났습니다. 거룩은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거룩은 피조물과 연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셨고, 진실은 어떻게 보여줬습니까? 예수님이 진리대로 다 행하심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충만은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다 보여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볼 수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십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권세의 머리이심
본문 10절에,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너희도 예수를 믿고 예수 안에서 충만하여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충만해졌습니까? 육체로 보여 주신 신성의 충만, 하나님의 사랑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한 우리에게도 충만해졌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사랑 영접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권위 영접입니다. 그리스도 영접은 하나님의 능력 영접입니다. 충만을 영접하니까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충만을 다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는 천사들인데, 천사들 또는 마귀들도 여기에 포함돼 있고, 이 세상의 정권잡은 사람들도 다 포함됩니다. 머리는 주장자입니다. 정사와 권세의 머리는 예수님이시고, 세상 정권을 주장한다고 했습니다. 정사와 권세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입니다. 머리가 하는 대로 다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다 됩니다.
그리스도로 영적 할례 받은 우리
본문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할례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할례의 뜻은
첫째, 정욕을 제거한다는 하는 뜻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표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백성 된 표입니다. 할례 받았다 해도 정욕을 그냥 가지고 나가는 것은 육적 할례만 받았지 내적 할례는 못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육적 정욕을 벗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제거, 안목의 정욕 제거, 이생의 자랑 제거, 그것이 영적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 받은 유대 사람들은 육신의 할례 받은 것을 가지고 할례 받았다고 하지만, 할례의 참 뜻은 영적 할례가 참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의식적 할례는 안 받았지만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충만, 예수님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고 했습니다. 육적 정욕을 벗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제거, 안목의 정욕 제거, 이생의 자랑 제거, 그것이 영적 할례입니다.
육신의 할례 받은 유대 사람들은 육신의 할례 받은 것을 가지고 할례 받았다고 하지만, 할례의 참 뜻은 영적 할례가 참 뜻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의식적 할례는 안 받았지만 영적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정욕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충만, 예수님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정욕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충만은 사랑 충만, 의 충만, 진실 충만, 거룩 충만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을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는데,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동시에 예수의 충만을 우리가 받아들임으로 우리도 육적 몸을 벗는 신령한 할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충만을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부활한 사람
본문 12절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고 했는데,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연합한 사람이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연합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이 죽었고, 또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이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부활 내 부활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었고 예수님과 같이 살아났습니다.
본문 13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우리 영이 완전히 죽었던 자 입니다.
또한 ‘육체의 무 할례’, 우리의 죄로 인해서 완전히 죽었던 자들인데 너희를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2. 의문의 쓴 증서를 못 박으신 예수님
본문 14-15절에,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의문에 쓴 증서라는 것은 구약 의문인데, 이 증서라는 것은 차용증서(借用證書)와 같습니다.
우리를 거스르는 구약의 의문들
‘의문에 쓴 증서’란, 구약의 모든 의식과 제도와 구약의 모든 먹고 마시는 문제와, 월삭이나 안식일이나 유월절 등을 말합니다. 할례 문제나, 구약의 모든 의식이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증서’는 차용증서와 같이 우리에게 그대로 하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의식들은 “할례 받아라”, “유월절 지켜라”, “월삭(매월 초하루)지켜라”, “안식일(구약, 토요일)지켜라”, “무엇을 먹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비늘 없는 고기, 쪽발 갈라지지 않은 고기, 새김질하지 않는 고기(구약의 모든 의문들이다), 또 새 중에는 매, 부엉이 같이 남을 잡아 먹는 새들, 곤충은 발로 뛰는 것은 먹으나, 배로 기어 다니는 것, 날개가 있으나 네 발로 기어다니는 것 등입니다(레위기 11장).
그것들이 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것들입니다. 왜 우리를 거스르는 것인가 하면, 우리가 지키지 못했다고 “왜 이대로 안했느냐?”고 하며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왜 할례 안 받았느냐?”고 거스르고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의문과 제도와 의식은 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했으며, 증서(차용증서)와 같이 이행하기를 강요했으나, 예수께서 그것을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것들은 다 그림자이기 때문에 같이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구약의 의문을 십자가에서 도말하신 예수님
구약의 모든 의문은 차용증서와 같아서 빚진 사람에게 요구함 같이 우리에게 반드시 요구합니다. ‘이대로 해라, 내라, 순종해 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모든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이 구절에 대한 번역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King James 성경에는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버리시고 그것을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정사와 권세를 벗겨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고 번역되어 있고, 또한 개역개정판 번역은 ‘우리를 거스리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 즉, 의문에 쓴 증서를 ‘법조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했습니다.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는, 구약에 있는 모든 의문, 증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 예수님이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 있는 모든 의문에 쓴 증서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할례 받는 것, 유월절과 같은 절기, 월삭,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는 것, 쪽 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것 등, 그런 것이 다 의문에 쓴 증서입니다.
의문이라는 것은 영적 면과 반대인데 의문으로 가르친 법입니다. ‘할례 받아라, 또 유월절 지켜라, 구약 안식일 즉, 토요일 지켜라, 월삭 지켜라, 월삭을 지키라는 것은 매월 초하루 날을 지키라는 것이고, 또,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아라,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것 등입니다. 예를 들어, 돼지고기 같은 것은 새김질하지 않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토끼는 새김질 하되 쪽 발 갈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에 먹지 말라는 짐승이 많습니다. 그게 의문이라는 것입니다. 의식적인 문서라는 것입니다.
차용증서라고 했는데 손으로 쓴 법령. 또 법조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한 것보다, 의문으로 쓴 증서라고 번역한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의문으로 쓴 증서, 의문이라는 것은 그 의식을 가르쳐주는 문서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절기, 유월절, 초막절, 오순절. 유월절은 뭘 가르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 오순절은 뭘 가르치는 것입니까? 예수님 부활, 처음 익은 열매, 오순절은 처음 익은 열매 바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 부활은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입니다. 또 수장절을 무엇입니까? 추수감사절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재림하셔서 곡식을 거둬드리는 걸 의식적으로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구약 때에는 의식적으로 가르쳤지만 신약시대에는 실체로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가 실체니까. 구약의 모든 의식은 그리스도와 같이 십자가에 못 박았고 도말했습니다. 지워 버렸고 제하여 버렸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신령한 뜻을 직접 가르쳐주지 않으시고 의문으로 가르쳐주셨습니다. 구약 의문인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는 신령한 뜻은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것이고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 먹지 말라’는 구약 의문의 신령한 뜻은 ‘구별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 ‘새김질 하는 짐승을 먹으라’는 것은 ‘말씀을 먹고 새김질 하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 비늘 있는 고기 먹어라’는 의문의 신령한 뜻은, ‘전신갑주를 입고 살아라’는 것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또 유월절 양은 누구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구약의 성도가 그리스도를 모르니까 구약시대에 의문으로 가르쳐서 ‘그리스도가 와서 속죄제물이 되어주신다’는 것을 의문으로 가르쳤습니다. 의식으로 가르쳤습니다.
또한 구약의 할례의 참 뜻은 ‘정욕을 제어하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속한 표, 즉 하나님의 백성 된 표로서 또한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표로서 할례라는 의식을 가르쳤습니다. 구약시대에는 대개 다 의식으로 많이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토요일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은 이제 신약시대에 신령한 안식일을 지키라는 뜻이고,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 안식을 너희에게 줄 것인데 안식을 주신 그리스도 부활하신 날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의문으로는 토요일 날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에 쓴 증서를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그것을 다 못 박으시고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실체가 나타났는데 예수님이 실체고, 그 구약의 모든 것들은 의문입니다.
3. 여러 가지 미혹에 들지 말 것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임
구약의 율법은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임
본문 16-17절에,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모든 율법은 다 그림자요,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에,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이고 참형상은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그림자가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참 실체가 왔다는 것인데, 사람의 그림자는 사람이 먼저 가고 해 그림자가 옆에 따라 오지만, 이제 구약의 모든 것은 그림자가 먼저 왔고 그 다음에 실체가 왔습니다. 예를 들면 사진이 먼저 왔고 실체가 온 것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결혼 중매 때 먼저 사진을 보고 나서 실체는 나중에 만나는 것처럼 사진이 먼저 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의식은 그림자로서, 예로 들어 설명한 사진과 같은 것인데,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림자가 먼저 와서 보여 주었고 그 다음에 실체가 왔습니다. 구약의 모든 의문은 그림자(사진)와 같고 실체인 예수님이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사진(그림자)도 다 같이 못 박아 죽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예수님이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는 구약의 유월절 양을 죽인 것과 같고, 유월절 양만 죽인 것이 아니라 유월절도 죽이신 것입니다. 그림자 전체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함께 못 박았습니다.
월삭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것도 실체는 그리스도입니다. “매월 초하루 날 하나님 앞에 초하루 제사를 드려라”고 했는데, 이는 예수님이 와서 새 생명을 주실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것도 ‘의문에 쓴 증서’입니다. 이것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또, 구약에는 7월이 상달이다 하여 속죄일, 장막절 등 여러 가지 절기가 7월에 다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절기들도 다 못 박으셨습니다. 비늘 없는 고기 먹지 말라는 것이나, 먹지 못하는 짐승에 대한 것도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못 박힐 때 그것을 다 못 박았습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차용증서와 같이 우리를 강요하는)를 다 십자가에 못 박아서 제하여 버리셨습니다.
구약에 의식의 권세를 이기심
구약시대에는 의식에 대하여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대로 해라. 안하면 내좇는다”고 하는 정사와 그런 권세가 있었는데, 그렇게 하라하던 정사들을 전부 다 벗어 버리고, 밝히 드러내서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고 했는데, 이젠 예수님께서 이러한 의문의 권세를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에 이제는 율법의 권세가 없어졌습니다. 의문의 권세가 다 없어졌고, 예수님의 십자가로 밝히 드러내셔서 승리하셨습니다.
구약의 먹지 말라 한 것들, 비늘 없는 고기나, 쪽 발 갈라지지 않은 것이나 먹고 마시는 그것 가지고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하셨습니다. 또, 절기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 등 그것 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유월절은 그리스도의 탄생, 오순절은 그리스도의 부활, 장막절은 재림입니다. 이것을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어 놓으시고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예수님이 주인이 되십니다. 안식을 주장하시는 예수님이시며 안식을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토요일의 안식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참된 안식을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의문입니다. 그것도 한 증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실제로 안식을 주셨고, 죽으셨습니다. 신약시대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일인데,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성경대로 바로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안식을 얻고, 주님이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을 지키면서 안식을 받는 그것이 참된 안식일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라고 하였는데, ‘구약대로 해야 된다, 뭘 먹으면 안 된다, 뭘 마시면 안 된다, 절기나 월삭이나 그런 것 지켜야 된다’는 폄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모두 도말하셨으니까 그런 것 가지고 폄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고 했는데, 먹고 마시는 것, 또 절기, 월삭, 안식일 등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인데 몸은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실체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제는 그런 것이 다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의문에 쓴 증서는 다 도말했습니다. 지워버렸습니다. 그런 것은 안 지켜도 됩니다. 구약 시대에 의문에 쓴 증서는 안 지켜도 되고, 실체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을 누리고, 생명이 살고, 이제는 새 생명의 길, 새로운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눈으로 본 것을 의지하지 말라
본문 18절에, “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라고 했는데 일부러 겸손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하면 좋지만 일부러 겸손해서 천사에게 경배하고, 또 일부러 겸손해서 본 것을 의지하고,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뭘 본 것, ‘계시를 봤다, 꿈에 봤다’ 그런 것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눈으로 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본 것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계시를 보았다”, “하나님을 보았다”, “예수님을 보았다”, “천사를 보았다” 등 그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요. 보이는 것이 다 바로 본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으로 다 바로 볼 수 없고, 또 영물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것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혹 마귀가 보여 주기도 하는데, 본 것 의지하는 사람에게 마귀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각의 착각이 있습니다. 눈으로 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았다고 할 때, 그것을 바로 본 것이라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보았다”, “할아버지를 보았다”, “하나님을 보았다”고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무엘상 28:3-25에, 사무엘이 죽은 후에, 사울 왕이 수넴에 진 친 블레셋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여 엔돌에 신접한 여인을 찾아 죽은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하자, 신접한 여자가 사무엘의 영이 땅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그 영이 사무엘인줄 알고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고 물어보니까, 사무엘이라고 하는 영이 블레셋에 이스라엘이 패하고 사울과 아들들이 죽을 것이라고 답변 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은 사무엘이 아닙니다. 마귀가 사무엘의 탈을 쓰고 나와서 보여준 것입니다. 사무엘의 영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과 똑같이 의복을 차리고 사무엘과 같이 똑같은 모양으로 왔으니까 사무엘이 온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은 죽었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오려고 했기 때문에 그 영혼이 온 줄 알았습니다. 사무엘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사무엘인 줄 알고 물어봤습니다. 이 전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좋은 말 해줬습니까? 마귀가 뭐 좋은 말 해주겠습니까? 하여간 마귀는 좋은 말 못합니다. 하나서부터 열까지 다 좋은 말 안 합니다. 악한 말, 그저 사람 죽이는 말, 낙심시키는 말, 거짓말, 사람의 믿음을 빼앗는 말, 이런 말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하나님이 아닙니다. 기도하니까 수염이 하얀 영감님이 나타나서, “하나님” 하고 부르면, “왜그러느냐?”고 대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마귀입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보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마귀가 나타난 것입니다.
간혹 “할아버지가 왔습니다”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람이 한 번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천당 간 사람은 천당에서 다시 오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다시 왔다 갔다 하면 무엇 의논도 좀 하고, 한 번 만나도 보고 좋겠으나, 하나님은 그렇게 만들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보았다거나 누구 보았다 하는 것은 전부 다 허깨비 본 것입니다. 그 사람은 꿈꾼 거나 다름없습니다.
구약시대부터 사도시대까지의 꿈은 표준계시로 준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님이 꿈으로 표준계시를 가르쳐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면 제 꿈 아니면, 개꿈으로 알면 됩니다. 자신이 꿈 꾼 다음에는 ‘개 꿈 하나 꾸었다’고 생각하십시오. 괜히 꿈꿔가지고 그것이 맞는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설혹 꿈이 맞는다 해도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본 것, 음성 들은 것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박재봉 목사가 기도하는데 “박재봉아, 박재봉아”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가만히 들어 보니, 옆에 돼지가 “꽥, 꽥” 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박재봉아’라고 들렸다고 합니다. 듣는 것에도 착각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청각의 착각이나, 본 것을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꿈 꾼 다음에는 제 꿈 아니면 개꿈으로 알고, 따라가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보았다고 해도, 그것도 바로 본 것이 아니니 다 뒤에 돌려놓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따라가야 합니다.
사단도 광명의 천사를 가장하여 옴
마귀도 광명한 천사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14-15절에,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가장이라는 것은 꾸며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광명한 천사인 체 하고 꾸며가지고 나오는 것입니다. 얼굴도 환하게 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 시꺼먼데 겉을 환하게 천사처럼 가장하는 것입니다. 외모만 광명한 천사와 같이 꾸며가지고 나오는 데에 미혹을 받으면 안 됩니다. 마귀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해 나오는데, 하나님은 그렇게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또 마귀가 나타나서 보이진 않아도 마음속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입니다. 형상은 보이지 않아도 마음속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가라, 그만둬라’ 하는데 이것은 마귀가 속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귀가 느껴지도록 역사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을 죽여라’, 마귀가 사람의 마음을 이용해서 ’아무개 죽여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에 느껴지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마귀인 줄 알아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가라, 들어가라, 앉아라, 내리뛰어라, 올라 뛰어라, 먹어라, 먹지 말아라’고 성경에 있지도 않은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마귀가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에 미혹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해야 됩니다. 와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물리쳐야 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또 뭘 본 것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 꿈 꿨다는 것도 하나님이 아닙니다.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꿈꾼 것은 무엇입니까? 보통은 다 제 꿈 아니면 개꿈인줄 알면 됩니다. 그렇게 꿈에 무엇을 보았다고 하며, 꿈에 본 것을 따라가면 마귀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니면, 개꿈을 꾼 것이니까 개 따라가는 것입니다. 꿈 꾼 거 있으면 제 꿈 아니면 개꿈 하나 꿨다고 하고 집어치워야 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꿈에 미혹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정사와 권세와 의문에 쓴 증서가 우리를 대적하고 거스르지 않습니까? ‘이거 하라’고 구약에 나오는데 안 하거나, 또 구약에, ‘그것 먹지마라’고 했는데 먹으면 의문이 우리를 거스르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정사와 권세와 의문에 쓴 증서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다 못 박아 도말하시고, 지워버리시고, 무력화시키셨고, 승리하셨으므로 구약에 먹지 말라는 것 이제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오늘날에는 구약의 월삭, 절기, 안식일을 구약의 의문대로 지켜야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의문은 그림자이고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구약의 의문은 다 폐기된 것입니다. 다만, 그 신령한 뜻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도, 구약의 안식일의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오셨고, 부활 승천하셨으며, 우리에게 영적 안식을 주시므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면 됩니다. 우리는 구약의 그림자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실체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본 것을 의지하는 데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천사 숭배하던 에센 파
그 시절에 천사 숭배가 있었다고 합니다. 유대교에 크게 세 파가 있었다고 하는데, 한 파는 바리새(The Pharisees)파이고, 다른 파는 사두개(The Sadducees)파, 나머지 파는 에센(The Essenes)파였습니다. 에센파는 특별히 모세를 아주 높여 공경하고,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천사를 숭배하고, 금욕주의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모세가 제일입니다. 하나님 다음으로 첫째가 모세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공경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줄 때에 천사의 손을 빌어서 모세에게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잘 공경하려면 천사를 공경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를 공경하고 천사를 숭배하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에셀 파는 하나님 다음에는 모세가 제일이라며, 모세를 공경했습니다. 모세를 공경할 때에 모세가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천사를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금욕주의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천사 숭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부러 지나치게 겸손한 것으로 옳지 않습니다. 천사 숭배하는 것이 겸손한 것 같지만 그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도리어 잘못된 것입니다. 천사 숭배, 동물들 숭배 이런 것은 다 옳지 않습니다. 구렁이 숭배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칡 구렁이, 복 구렁이 등 구렁이를 숭배하고 또, 사람들이 숭배하는 것이 많습니다. 뱀 숭배하는 데도 있습니다.
일부러 겸손한 것은 죄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머리를 숙여야합니다. 천사는 피조물이고 천사는 성도를 위한 심부름꾼입니다. 히브리서 1장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라고 했습니다. 천사는 우리를 위한 심부름꾼입니다. 우리가 천사보다 높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를 숭배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머리되신 예수님을 붙들 것
본문 19절에,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고 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고, 본 것 의지하고 이상한 것만 숭상합니다. 그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머리를 붙들지 아니한지라’, 신비주의자들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합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요, 우리는 몸입니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붙들고, 몸 된 우리는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머리를 잘 붙들고 나가면 거기로부터 힘줄과 마디로 공급함을 얻어서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머리만 붙들어야지 다른 것을 붙들면 안 됩니다. 예수님만 붙들어야 됩니다. 예수님을 붙들어야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어 자라나게 됩니다.
4. 외적 경건과 내적 경건
신비주의자들의 외적 경건
‘초등학문’이란 초보적 학문을 가리킵니다. 즉 이방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숭상하는 것은 다 초등학문입니다. 초보적인 것입니다. 의식주의는 다 초보적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우상 숭배하는 것이나, 유대인들의 의식주의나 전부 초보적 학문인 ‘초등학문’입니다. 의식주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의식주의가 죽은 것이며, 숭상하던 사람들도 다 같이 죽은 것입니다. “초등학문 같은 유치한 학문에 왜 순종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어떤 것은 붙잡지도 말라고 합니다. “붙잡아도 죄다”, “맛보지도 말라. 그것도 죄다”, “만지도 말라. 만지는 것도 죄다”라고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특별히 그 당시 신비주의자들은 고기를 먹지 말라 하였습니다. “채식만 해라. 고기 먹는 것은 죄다. 맛보지도 말라”, “만지도 말라, 붙잡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비주의자들에게는 그런 많은 것들이 있었는데, 고기 문제도 있었지만 다른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이 ‘먹지 말고 만지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라’ 한 것은 다 부패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상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르침으로 하는 것인데, 사람이 가르치는 것을 좇아가지 말고 성경 말씀만 좇아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계시를 받았다고 해도 좇아가서는 안 됩니다. 요즘은 하나님께서 표준계시를 주시는 때가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는 성경에 다 기록을 해 주셨기 때문에 성경 말씀만을 따라 가야합니다.
자의적 숭배는 내적 경건의 유익이 없음
자의적 숭배란 자기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놓은 숭배입니다. 보기엔 아주 겸손한 것 같습니다. 몸을 괴롭게 하는 일, 거기에는 지혜 있는 모양이 있어 보입니다. 자의적 숭배를 잘하면 보기엔 특별히 겸손한 것 같습니다. 금욕주의와,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은 있지만 그것은 외적 경건입니다.
외모로 겸손하고 외모로 경건한 것은 지혜 있는 모양은 있지만 내적 경건으로 나가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습니다. ‘만지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먹지도 말아라’하는 것이 외적으로는 경건한 것 같지만 그러나 내적인 경건은 아닙니다. 그것이 외적 경건으로 자랑할 만한 모양은 있지만, 내적 경건으로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외적 경건은 다 썩어져 없어질 것이고, 내적 경건만 영원할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좇는 것을 금하는 데는 유익이 조금도 없습니다.
육체의 정욕 좇는 것을 금하는 것이 내적 경건입니다. 육체의 욕심, 육체의 소욕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 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그대로 두고 겉으로만 경건한 모양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육체 좇는 것을 금하는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내적 경건을 이루어 나갈 것
내적 경건, 내적 생명, 내적 승리, 내적 승세(세상을 이김), 내적 거룩, 내적 의, 내적 진실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하는 것, 쟁투, 시기하는 것 등을 제거하는 것이 내적 경건인데, 외적 경건으로 모양만 꾸며 나가는 자에게는 방탕함 같은 것들이 속에 다 있습니다.
내적 경건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떠나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체하고 모양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속에는 각종 죄악이 가득한 가운데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나가던 그곳에서 돌아서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