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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1일 화요일

시편 8:1-9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영광을 찬양함
시편 8:1-9

1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2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 3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5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9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1.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땅과 하늘에 나타내심

본문 1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지 만물을 볼 때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크신가를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롬 1:20).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창조하신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과 아름다움과 진실하심과 참 되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즉, 땅과 하늘이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라고 하는 것은 하늘의 일월성신, 즉 해와 달과 별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캄캄한 하늘의 무수한 별빛을 볼 때에 그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고, 달빛을 볼 때에도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 어린아이로 하나님의 권능을 세우심

본문 2절에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들어서 능력을 나타내시므로 원수들이 잠잠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 다윗은 어린아이와 같은 소년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어린 다윗을 들으셔서 골리앗을 물리치므로 그를 잠잠케 한 사실을 회상하며 하는 말입니다. 신령한 의미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들으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5-26절에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진하여 하나님만 의뢰하는 자에게 복음을 주셔서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 27-29절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세상의 미련한 자들과 약한 자들을 택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까? 그것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신령한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약한 자, 겸손한 자, 자기를 부인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자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십니다. 또 그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3.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권고하시는 것에 감격함

본문 3절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온 세계는 주님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는데(요 1:1-3), 여기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손이나 발이 있으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형체가 없으십니다.

그리고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데, 8분이 걸린다고 합니다. 태양과 지구 사이가 얼마나 먼 지 알 수 있습니다. 또 어떤 별들은 태양보다 더 멀리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창세 이후로 계속 그 빛이 내려오는데, 아직도 지구에 그 빛이 내려와 닿지 않은 별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구와 별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가히 알 수 있습니다. 몇 천 년 동안 그 빛이 계속 광선의 속도로 내려오는데 아직도 지구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지 알 수 있습니다. 또 그것들이 몇 백 년이고 몇 천 년이고 계속 변함이 없도록 만들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달과 별은 아담 때에도 아브라함 때에도 보았던 달과 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드신 해와 달과 별은 아담 때부터 오늘날 까지 그대로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 인생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약 4:14), 풀과 같습니다(사 40:6).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백 년 후에 이 자리에 다시 있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이 좀 든 사람은 오십 년만 있어도 다 천국에 갑니다. 그런데 별과 달과 해는 말할 수 없는 오랜 시간 동안을 계속해서 존재해 왔습니다. 거기에 비해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그저 잠깐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위대하시고 능력이 많으신지, 우리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본문 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별과 달에 비하여 백 년도 못사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달에 가서 지구를 보면 크기는 축구공만하고, 빛깔은 푸른 빛이라고 합니다. 인공위성을 타면 달까지 보름이면 간다고 합니다. 또 인공위성을 타고 금성에 가는 것은 여섯 달이 걸리고, 태양에 가려면 몇 년을 가야 한다고 합니다. 달은 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달에서 본 축구공만한 지구에 사람이 얼마나 삽니까? 몇 십억이 태어나서 와글와글 거리며 살다가 백년 내로 죽고, 또 태어났다가 백년 내로 죽으며 살고 있습니다. 욥기 25장의 말씀과 같이, 구더기와 같은 인간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인생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저를 권고하시는지, 즉 구더기와 같고 버러지와 같은 인생을 무엇이관대 주께서 돌보아주시고 구원해주시는지 다윗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개무량해하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장차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사람을 구원해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란 주께서 사랑해주신다는 것이며, 기억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또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란 주께서 보호해주시고 돌보아주시며, 구원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과 권고와 구원하심을 생각할 때에 참 감개무량합니다.

4. 그리스도와 성도에게 주신 존귀

본문 5절에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에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해주신다는 뜻이 있습니다. ‘천사’는 히브리 원어로 ‘신(神)’이라는 뜻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가리키기도 하고 천사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여기에서는 각주에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의 보좌와 권세를 다 내놓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신 것은 하나님보다 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 승천하심으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게 되신 것입니다. 또 다른 뜻은 사람이 천사보다 못하지만 예수님의 구속으로 영광스럽고 존귀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은 성도의 영광이며, 존귀이며, 구원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 받으신 것은 성도를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으로 성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에서 영원토록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그것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운 것입니다. 이 은혜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이 벌레와 같고 안개와 같은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시고, 권고해주시고, 구원해주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워주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우리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늘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나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나가게 하시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려고 성도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본문 6-8절에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만물을 주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시키셨습니다(창 1:28). 그런데 하나님께서 만물 위에 사람을 내셨기 때문에, 우리가 만물을 우상으로 섬기면 안 됩니다. 즉, 사람이 물질에 종살이를 하면 안 됩니다.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가 사람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을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후에는 만물을 다스리지 못하고 복종시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이 범죄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후에는 만물이 사람을 거역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간 것만큼 만물을 복종시킬 수 있고,
만물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 15-18절에 보면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고 했고, ‘너희에게 복종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다 성도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성도에게는 그것이 전부 유익이 됩니다. 큰 물고기가 요나에게 이용당하였고, 메추라기도 이스라엘 민족에게 이용당하였고, 곰이 다윗에게 이용당하였고, 사자도 다니엘에게 이용당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믿음 지키는 성도에게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라고 하였습니다. 온 땅에 있는 천지 만물에 주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라는 곡이 있는데, 그 찬송가의 가사와 같이 온 땅에 주님의 아름다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권고해주시며, 사랑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