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사울
사무엘상 24:4-22
4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6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8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11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16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22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사무엘상 24:4-22
4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5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6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7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8그 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9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10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11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12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13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14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15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16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가로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17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18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내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붙이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19사람이 그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날 내게 행한 일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20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21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 22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1. 다윗이 굴에서 사울의 옷자락만 벰
사울이 왕권을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함
본문 4-6절에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오랫동안 따라다녔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이고 살인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 살인 죄가 들어간 것입니다. 죽이려고 한 것이 잘못입니다.
그러면 사울 왕이 다윗을 왜 죽이려고 했습니까? 사무엘상 20장30-31절에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입니다. 즉,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자기의 왕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을 가만히 두면 왕권을 빼앗기겠기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다윗을 잡아 죽여야 자기가 왕 노릇을 오래 해먹고 또 자기 아들도 왕권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에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바람에 죄만 지었지 결과적으로 죽이지는 못했습니다. 망신만 당한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어도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신 날까지는 사울이 왕 노릇을 할 수 있습니다. 사울이 40년 동안 왕 위에 있었습니다. 그가 40년 동안 왕 노릇 한 것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셨기 때문에 거뜬히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공연히 자기 왕권을 빼앗길까봐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공연히 죄를 짓습니다.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일종의 명예욕입니다. 공연히 욕심을 부리고 돌아가지만 결국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은 다 누릴 수 있습니다. 또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사울이 굴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죽이려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 벤 것을 애통해 함
다윗은 마음에 무엇이 찔렸습니까? 본문 5-6절에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의 옷자락을 벤 것이 마음에 찔렸습니다. 옷자락을 베지 않았어도 앞으로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은 분명합니다. 옷자락을 베도 왕이 되고, 안 베도 왕이 됩니다. 또 사울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까지 왕 노릇을 할 것입니다. 옷자락 베는 것과 상관없이 예정하신 때까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옷자락을 벤 것에 대해 마음이 찔린 다윗의 신앙이 참 좋은 신앙입니다. 자기가 안 벴어도 다 될 것인데, 공연히 벴다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2. 다윗이 사울 왕을 해하지 않고 자기의 무죄함을 변명함
다윗이 사울 왕을 해하지 않음
1) 사울 왕을 죽이면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함
잠자고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사울 한 명만 죽이면 편안할 것 아닙니까? 사울 왕이 몇 천 명씩을 거느리고 밤낮 다윗을 죽이겠다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니 사울 한 명만 죽이면 다 해결되겠는데 다윗이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윗이 그때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편안했겠습니까? 아마 그 굴에서 사울 왕을 죽였으면 다윗의 원수가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당시에 사울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윗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하면 왕의 군대가 전부 다윗과 원수가 되고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는데 막대한 지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은 되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을 통일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죽이지 않은 것이 잘 한 것입니다. 만일 죽였다고 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합니다. 사울의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람들로 원수가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이 큰 덕을 봤고, 하나님의 말씀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사울 왕을 해하지 않음
1) 사울 왕을 죽이면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함
잠자고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왜 죽이지 않았습니까? 사울 한 명만 죽이면 편안할 것 아닙니까? 사울 왕이 몇 천 명씩을 거느리고 밤낮 다윗을 죽이겠다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니 사울 한 명만 죽이면 다 해결되겠는데 다윗이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다윗이 그때 사울을 죽였다고 하면 편안했겠습니까? 아마 그 굴에서 사울 왕을 죽였으면 다윗의 원수가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당시에 사울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 다윗이 사울 왕을 죽였다고 하면 왕의 군대가 전부 다윗과 원수가 되고 다윗이 앞으로 왕이 되는데 막대한 지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은 되었을지 몰라도 이스라엘을 통일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죽이지 않은 것이 잘 한 것입니다. 만일 죽였다고 하면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하지 못합니다. 사울의 족속들과
이스라엘 사람들로 원수가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다윗이 큰 덕을 봤고, 하나님의 말씀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2) 사울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음
또 다윗은 사울 왕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왜 귀합니까? 하나님께서 쓰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자기 사람으로 기름을 부으셨는데 그 책임은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고, 책임은 하나님께서 지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종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을 알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기름을 부어놓은 종이니 하나님께서 지금도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잘못된 것도 있지만 그래도 사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십니다. 블레셋 나라 군대가 침략할 때 사울과 그 군대들이 가서
다 물리치고 오지 않았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여호와의 기름 부으신 자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닐 때에도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사무엘상 23장 27-29절에 “사자가 사울에게 와서 가로되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이에 사울이 다윗 쫓기를 그치고 돌아와서 블레셋 사람을 치러 갔으므로 그 곳을 셀라하마느곳이라 칭하니라 다윗이 거기서 올라가서 엔게디 요새에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사울과 그 군대가 블레셋 나라를 물리치려고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물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쓰신다는 것입니다. 또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이 악신도 들리고 다윗을 잡아 죽이려고 따라다녔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까지는 쓰십니다. 40년간 쓰게 되어 있습니다. 또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아도 40년만 지나면 다윗이 왕이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로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나라를 지키며 건설해나가도록 해놓으신 것입니다. 그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김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큰 복을 받았습니다. 사울 하나만 죽이면 당장 자기가 왕이 될 것 같지만 지금 사울의 군대가 몇 천 명입니다. 사울이 전쟁에 나가서 죽은 다음에 사울의 아들을 따로 불러 왕으로 세워 놓았는데, 만일 다윗이 사울을 죽였다면 영영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 기름 부은 왕을 귀히 여기고 아끼는 바람에 복은 다윗이 받았습니다. 사울이 받은 것이 아니라 다윗이 받았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긴 것입니다. 자기가 죽든지 살든지, 사울 왕이 잘 되든지 못 되든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긴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판단과 심판을 믿었습니다.
본문 7-12절에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사울이 일어나 굴에서 나가 자기 길을 가니라 그후에 다윗도 일어나 굴에서 나가 사울의 뒤에서 외쳐 가로되 내 주 왕이여 하매 사울이 돌아보는지라 다윗이 땅에 엎드려 절하고 사울에게 이르되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붙이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혹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치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였나이다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보복은 하나님께서 해주실 줄 믿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본문 13-15절에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판결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신 원하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실 것을 믿었습니다. 여호와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재판을 왜 잘못하시겠습니까?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심판하십니다.
요새 한국 재판소에서 재판을 잘못할까봐 설설 끓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주간이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이회창 씨 아들이 군대를 안간 사실에 대해 녹음테이프를 내놓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실이냐, 거짓이냐’에 대해 싸울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거짓으로 꾸며서 갖다 대도 얼마 지나면 사실이 밝혀지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은 공의로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왕과 나 사이를 판단하사, 내 사정을 밝혀 신원해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믿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사용하심
1) 기름 부음의 정의
그러면 기름 부음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스가랴 4장 11-14절에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
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기름 발
리운 자가 둘인데,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그것을 ‘관’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람나무에서 금관을 통해 감람기름이 흐르고, 그 기름이 촛대에 공급되면 촛대에 불이 붙습니다.
‘관’이라고 하는 것은 파이프입니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수도관 같은 것입니다. 이 관은 하나님의 종을 가리킵니다. 기름 부어서 세운 종,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촛대는 교회입니다. 금관을 통하여 감람 기름이 흘러서 촛대에 공급이 되면 그 기름으로 불이 붙는 것입니다.
2)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존중히 여겨야 함
오늘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종을 통해 일하십니다. 감람나무는 예수님이니, 예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기름이 공급됩니다. 즉,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은혜와 진리를 받는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통해 은혜와 진리를 주셔서 교회에 불이 붙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불,하나님의 역사의 불이 붙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관이 막히면 안 됩니다. 관이 막히면 자기에게 기름이 공급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와 막히면 안 됩니다. 교역자와 막히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결국에는 불이 다 꺼집니다.
교역자를 존중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41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 부은 종을 영접하는 것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종을 영접하는 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은 받은 자를 선지자로 우러러 보며 영접하면 그 사람이 선지자의 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고 대접하면 그 사람이 의인의 상을 받습니다. 그러나 무시하면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은혜도 받지 못하고 상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영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영접하여 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에 상급이 있고 자기도 은혜를 받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14-15절에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를 주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을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천사와 같이 영접했다고 하였는데, 그때 큰 복을 받았습니다. 바울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천사와 같이 영접했기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가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다가 갈라디아 교회에 바울을 무시하는 시험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바울을 그리스도와 같이 천사와 같이 영접하던 교인들의 신앙이 다 없어졌습니다. 전에는 눈이 좋지 않은 바울을 위해 ‘내 눈이라도 빼서 주었으면 좋겠다’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을 존중히 여기고, 귀중히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에 큰 복이 임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을 우러러 존경하고 천사와 같이 영접하면 큰 복이 임합니다.
고넬료의 가정에도 성령이 충만해지고 복이 임하였습니다. 베드로를 청할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청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베드로가 들어올 때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하나님이 당신에게 명하신 것을 받으려고 합니다’라고 하면서 베드로를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전
하는 말씀도 귀한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때 그 집에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 상반 절에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을 인
도하는 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고, 또 갈라디아 교회가 바울을 영접한 것처럼 영접하면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멸시하는 것은 죄임
그러나 하나님의 종을 멸시하고 ‘콱 죽으면 좋겠다’고 하면 자기만 죄를 짓는 것입니다. 또 “빨리 그만 두면 좋겠다, 은퇴해라”고 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은퇴하라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시면 그만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생각하지도 않고 자기만 죄를 짓고 나가는 것입니다. “언제 은퇴하실 것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님께서 은퇴하라고 하실 때 은퇴합니다”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퇴하라고 하실 날이 옵니다. 저도 가까운 것 같습니다. 못하게 하실 때는 그만 두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기 때문에 하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못하게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무리 ‘죽으면 좋겠다, 은퇴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실 때까지는 계속 할 것입니다. 공연히 은혜 받는데 파이프가 막혀서 은혜를 못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만 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정죄하고, 결점을 들어 비방하고,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그만 두었으면 좋겠다고 여기는 것은 죄만 짓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종이 죽습니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때까지 하는 것입니다. 언제 그만 두라고 하실지 사람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일 그만 두라고 하실지, 또 일 년 있다가 그만 두라고 하실지, 또 몇 년 더 있다가 그만 두라고 하실 지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베드로나 선지자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시는 날까지 오랫동안 일하였습니다. 모세는 80세부터 시작하여 40년 가까이 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감사히 받으며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목사를 위해서 기도할 때 ‘귀한 종들을 많이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현재 파이프가 어느 파이프인지, 즉, 과거 10년 전에 있던 파이프인지 50년 전에 있던 파이프인지, 다 얘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때는 그 파이프로 내려왔지만 현
재는 자기에게 공급하는 파이프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감사하고 거기에 대해서 잘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현재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기관에 대해 기도해야 자기가 그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에게 내려오는 파이프가 하나인데 왜 여러 사람을 갖다 대는가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양심을 똑바로 써서 거기에 맞는 기도를 하십시오.
다윗이 자기의 무죄함을 변명함
본문 14절에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이만큼 겸손했습니다. 교만하면 망하고 겸손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다윗이 자기를 벼룩과 같이 생각한 것입니다. 벼룩이 후두두둑 뛰어다니지 않습니까? 자기가 지금 벼룩 뛰는 것과 같이 여기 피했다, 저기 피했다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완전히 부인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벼룩이라고 하는데 벼룩하고 싸울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렇게 나가면 사람에게도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또 다윗은 앞으로 왕
이 되겠다는 생각도 없고 그저 현재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겸손해야 합니다. 모세는 천하에 제일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자신을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했고 아브라함은 티끌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러한 겸손을 배워야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다윗이 이렇게 겸손하지 않고 교만해서 사울과 대적했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다윗이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너만 기름 부음 받았느냐? 나도 기름 부음 받았다”라고 사울을 대적했다면 다윗은 망합니다. 다윗이 겸손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3. 사울이 잘못을 고백하고 다윗이 잘될 것을 말함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원수라도 감동함
다윗이 겸손하게 이야기할 그때 사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 시키셨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굴에서 나와 말할 때 “저것 죽여라”고 하면 죽일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을 감동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있습니다. 감동을 시키시며, 눈물도 나게 만드시고, 자기가 악한 것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이 선한 것도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원수라도 다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그도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원수와 화목할 날이 옵니다. 또 사울과 같이 굴복할 날이 옵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원수라도 감동함
다윗이 겸손하게 이야기할 그때 사울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 시키셨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면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굴에서 나와 말할 때 “저것 죽여라”고 하면 죽일 수 있습니다. 말 한마디면 죽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사울의 마음을 감동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울면서 잘못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아직 끊어지지 않은 것을 볼 수있습니다. 감동을 시키시며, 눈물도 나게 만드시고, 자기가 악한 것도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사울이 다윗이 선한 것도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원수라도 다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그도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는데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고, 그저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십시오. 그러면 원수와 화목할 날이 옵니다. 또 사울과 같이 굴복할 날이 옵니다. 자기가 잘못했다고 할 날이 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니 사울에게 바른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다윗이 사울의 두려운 마음을 맹세하며 풀어줌
본문 21절에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비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다윗이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해주었습니다. 그 사람의 의심을 없애주고, 평안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의심하고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 또 후대에도 멸하지 않는다는 맹세를 해 줘야 합니다. 그때에 사울의 의심이 다 없어지고 평안한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것은 다른 사람이 의심할 때 의심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쓸 데 없는 의심은 하지 말라고 하고, 그 의심을 풀어주십시오. 죽이지 않겠느냐고 의심할 때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에는 뭐라고 해야 합니
까? 죽이지 않는다고 해야 그 사람이 편안해집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느냐, 사람을 어떻게 알고 그러느냐, 오랫동안 나를 알고 지내 보았는데 그것도 모르느냐’, 이런 소리 백 마디를 해도 안 됩니다. 안 죽인다고 해야지 의심이 다 풀어지는 것입니다.
또 무엇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의심하지 말라고 하면 안 됩니다. 의심이 들어오게 하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안 하겠습니까? 그것은 연약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때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시오. 하여간 다른 사람이 의심할 때 의심하지 않도록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맹세를 해서라도 의심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혹시 가정에서도 의심할 수가 있습니다. ‘남편이 어떤 여자를 사귀고 오지 않았는가’라고 의심하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지 말라고 그러지 말고, 안 사귀었다고 하십시오. “아무개와 가깝지 않느냐”라고 하면 안 가깝다고 하십시오. 또 “앞으로 나를 내쫓지 않겠는가”하고 의심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쫓지 않는다고 하십시오. 하여간 의심하는 사람의 그 의심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약해서 의심하는 것이니 약한 것에 대해 의심을 풀어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심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그 의심을 맹세를 해서라도 풀어주어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제대로 생활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