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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5일 수요일

마가복음 16:15-20 능력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능력 전도
마가복음 16:15-20

15또 가라사대 나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을 전파하라 16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17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1. 전도는 생명을 살리는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도를 명하실 때에, 능력을 주시면서 전도를 명하셨습니다. 본문 15-60절에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전도는 하나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 입니다. “너는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라”,“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그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라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안 하면 주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16에는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명령을 어겼으니까 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입니다. 명령을 받은 우리가 사명감을 갖고, 나가서 전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전도하지 않아서 복음을 받지 못한 사람은 멸망합니다. 사람을 멸망하는 데에 그냥 둬두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을 구원해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느냐, 생사가 달린 것이 전도입니다. 가만히 둬두면 그 사람이 죄 값으로 멸망할 것이고, 복음을 전해서 그 사람을 구원하면 그가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영생이냐, 영원한 멸망이냐 하는 것이 전도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아주 상당히 중대한 일입니다.

2. 해산하는 수고로 전도할 때 능력이 나타남

권능이 나타남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되게 되어있습니다. 그저 쉽게 전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다”라고 한 말씀이 있고(고전 4:15), 갈라디아서 4:19에는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해산하는 수고, 복음으로 사람들을 낳는 일, 이런 일이 전도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있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피땀이 들어가야 되고, 거기에 생명 전체가 쏟아 부어져야 됩니다. 이 전도하는 일이 아주 힘 드는 일입니다. 자기의 있는 힘을 다 기울이고, 마음을 다 기울이고, 힘을 쏟아 부으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해야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 이런 말은 전도하는데 사용한 말씀입니다.

보통 전도한다고 하면 전도지나 한 장씩 주고, “예수 믿으세요” 하고 광고나 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가지고는 안 됩니다. 심혈을 쏟아 부어야 되고, 거기에 피땀이 들어가야 되고, 한 사람에게 많은 정력이 들어가야 됩니다. 그래야 전도가 됩니다. 아이 하나 낳는 것도 쉽게 식은 밥 먹듯이 그렇게 척 낳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 많은 노력과 피와 자기 생명을 다 기울여서 아이를 낳는 것처럼, 사람 하나 살려내는 전도하는 것도 아이 하나 낳는 것만큼의 노력과 수고와 피땀이 들어가야만 한 사람씩 구원해 낼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힘써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을 주어서 내보내셨고, 전도할 때에 표적이 나타나게 만들어 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마태복음 10:1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면서,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7-8에는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도하는 일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권능이 따라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말로 전도하는 동시에,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나타내면서, 나가서 전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전도를 해도 권능이 안 나타난다고 생각하는사람이 있습니다. 전도를 해도 권능이 왜 안 나타나느냐? 그 이유는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권능이 안 나타난 것입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했으면 반드시 권능이 나타났겠는데, 해산하는 수고는 안하고 말로만 슬슬 전도하고, 무슨 광고지 돌리듯이 이렇게 말로만 한마디씩 하고 돌아가니까, 그것은 해산하는 수고가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떠한 권능이 나타나는가 하면 귀신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이 나타납니다. 이 복음을 들고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서 기도할 때에, 마귀 들린 사람의 속에서 마귀가 나갑니다. 이것도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때때로 있는데, 그 때에 힘을 쓰지 않고, 거저 가서 쓰윽 지나가는 식으로 기도해서 마귀가 나가는 것이 아니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기도를 해야 마귀가 나갑니다. 좀 부족해도 해
산하는 수고를 하여야 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한 스무 살 될 때인데, 교인 가운데 마귀 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매일 청년들과 같이 가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매일 저녁을 한 달 이상, 매일 저녁 가서 기도하고 예배드려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가 나갔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은 한번 가서 기도해주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바쁘시니까 매일 저녁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청년들은 할 것이 없으니까, 그저 매일 저녁 먹고 나면 그 집에 가는 겁니다. 밥 먹고 나면 “가자” 하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 두 달 있다가 마귀가 나갔습니다.
왜 목사님이 가서 기도해줄 때에는 안 나갔는데, 왜 우리들, 아이인 청년들이 가서 기도해주니까 나았습니까? 청년들이 목사보다 나아서 병이 나은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은 시간이 바쁘시니까 매일 저녁 못가는 겁니다. 장로님도 매일 저녁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 저녁 간 것입니다. 말하자면 해산하는 수고를 한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마귀가 나간 것입니다.

병을 고칠 수 있음

아무리 건강하고 힘이 있어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 못 낳습니다. 아무리 몸체가 작고 힘이 없는 것 같아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는 사람은 아이 낳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마귀 내쫓으려고 달려가서, 들러붙어서 애를 쓰고, 기도하고, 일심정력으로 피땀을 흘리고 달라붙으면서 기도하면 마귀가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산하는 수고 없이 건들건들 하면서 겉으로만 쓱 한번 기도하는 것으로는 마귀 안 나갑니다. 이것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병 낫는 것도 그렇습니다. 모든 병든 자를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고 했는데, 병 낫는 것도 ‘어디 기도원 가서 기도하면 병 낫는다’, ‘누구한테 가서 기도 받으면 병 낫는다’,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병이 난 원인이 다 있습니다. 원인은 대개가 다 죄 값으로 납니다. 죄 값으로 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것도 있고(요한복음 9장), 또 욥과 같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병이 나는 것도 있고, 어떤 사람은 때가 되서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려고, 기한이 되서 데려가시려고 병이 나는 것도 있습니다. 천당으로 데려가시려고 나는 병은 아무리 기도해도 안 낫습니다. 그런 병은 사도바울이 기도해도 안 낫고, 아무리 신의 권능을 많이 받은 사람이 기도해도 하나님의 데려가실 때가 되면 가게 되어있습니다. 안 낫습니다.

그러나 대개가 다 죄 값으로 난 것이기 때문에,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들러붙어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벌떡 그 병에서 낫게 만들어 줍니다. 자기가 기도해야 됩니다. 해산할 때에 자기가 힘을 써야지, 옆 사람이 힘써줄 수 있습니까? 자기는 가만히 낮잠 자는데, 삯을 주고 남더러 나와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 달라고 하고선, 여러 사람이 나와서 아무리 꼬부라뜨리고 애쓰고 힘을 줘도, 남이 해산하는 수고를 감당 못해줍니다. 자기가 수고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병 낫는 것도 자기가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들러붙어서 애를 쓰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병에서 낫게 해주십니다.

다 낫는 것은 아닙니다. 낫기로 예정된 것만 낫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병이 났을 때에 낫는 사람이 몇 프로고 죽는 사람이 몇 프로인지 이것을 생각해 보았는데, 가령 병원에 천명이 입원을 했다고 하면, 천명의 입원 환자 중에 이, 삼십 명이 죽을 것 같습니다. 천 명 중 구백 칠, 팔십 명은 나을 것 같습니다. 병 난 사람 중에 97% 정도는 낫는다고 봐야 됩니다. 죽는 사람은 한 3% 정도일 거라 봅니다.

또 개인적으로 체험할 때에, 감기 그런 것, 저는 한 몇 백 번 앓았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 그렇지만 이전에는 감기 혼자 다 맡아 놓고 앓고는 했는데, 감기 돌아간다 하면 나부터 앓고 보는 겁니다. 그런데 요새는 하나님께서 감기 잘 안 걸리게 해주셨습니다. 제가 백 번에 한 번 죽었다고 하면, 지금 여기 못나와 있겠는데, 안 죽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누구나 병이 나면 99%는 낫는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한 번은 죽어야 됩니다. 그것은 안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죽기로 예정한 사람, 데려가기로 한 때가 된 사람은 아무리 해도 안 낫습니다. 그것은 가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병 다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데려갈 것을 어떻게 낫게 합니까? 자기가 기도하면 병 다 낫는다는 사람, 그 교회에도 상가 집이 있고, 그 교회에도 사람 죽습니다. 좀 있으면 자기도 죽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 낫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낫기로 예정된 사람은 다 낫는데, 병 들렸다 하면 99%는 낫는 걸로 봐야 합니다.
100 사람이 걸렸다 하면, 99 사람은 낫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일단 병이 나면, 우리는 나을 걸로 믿으십시오. 좀 더 연단시키려고 주시는 병은 좀 더 있다가 나을 수도 있습니다. 병이 난 사람은 하여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줄로 믿어도 됩니다. 어떤 집사 하나가 “요새 다리가 아프고, 팔이 아프고, 아픈 게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믿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실 것을 믿고 힘써서 기도하면 낫습니다. 단, 데려가려고 주시는 병은 안 낫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회개하면서, 그리고 해산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언제나 해산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회개하면서 해산하는 기도를 하면, 그 병을 하나님께서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병도 가서 해산하는 기도를 하면서,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회개를 시키면서, 해산하는 기도를 같이 해주면, 그 사람은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낫게 해주시겠다고 하셨으니까 나을 수 있습니다. 다 낫는 것은 아니지만 99%는 낫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새 방언으로 말하게 됨

본문 17절에 “새 방언을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방언을 말한다’라고 했는데, 방언은 성경에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도행전 2장에 있는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방언입니다. 이것은 배우지 않았어도 다른 나라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의 말을 배우지 않았어도 그 나라 말로 전도하는 일이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고린도전서 14장에 있는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은 통역이 없으면 교회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4:28). 성경 다섯 마디 깨달은 것으로 말하는 것이, 알아듣지 못하는 일만 마디의 방언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고전 14:19). 

셋째로 여기의 ‘새 방언’은 자기 나라의 말로 한 것인데, 그 내용이 새것입니다. 깨달은 진리가 새것이고, 자기 나라의 말로 한 것입니다. 여기의 ‘새 방언’은 새로운 진리의 깨달음으로 말하는 새 방언입니다.
‘새 노래’도 마찬가지로 늘 부르던 노래이지만, 심령이 새롭게 되어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해서 노래를 부르면 그것이 새 노래가 됩니다. 그와 같이, 새 방언도 새로운 진리를 깨달아서 자기 나라 말로 말하는데, 그것이 처음 듣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려고 생명 전체를 내걸어 놓고, 나가서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전도를 하면, 새로운 역사가 나타나서 새로운 말이 나옵니다. 자기가 생각지 않았던 말, 깨닫지 못했던 진리가 나오고, 알지 못하던 진리가 말하는 가운데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성경해석이 새롭게 나옵니다. 그것이 새 방언입니다.

전도하는 사람은 자기가 보통 말하는 것보다 더 잘 말합니다. 말할 줄 모르는 사람들, 전도하면 말 잘 나옵니다.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 방언을 말하게 하시기 때문에, 전도를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하게 되면, 말은 어디서 나오고, 답변은 어떻게 그렇게 잘했고, 자기도 놀랠만한 답변이 나오곤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 전할 때에 성령께서 새 방언을 말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말 ‘떠떠떠’ 하는, 말더털이(말더듬이)도 하나님 복음을 들고 말할 때에는 말이 술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 더털(더듬)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악한 자라도 가서 정복할 수 있음

본문 18절에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생각해서, 어떤 교파에서는 예배시간에 뱀을 가지고 와서 서로 왔다갔다 건네주며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주 잘못되었고,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예배가 되겠습니까?

‘뱀을 집는다’ 라는 것은, 마귀를 정복한다는 것입니다. 뱀은 마귀를 상징하는 것인데, 마귀를 정복한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악한 자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자’라는 것은 뱀과 독사의 자식과 같은 것입니다. 사람을 쏘고 물어뜯고,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을 예수님께서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이렇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성도가 ‘뱀을 집는다’ 라는 것은, 아무리 독사의 자식과 같이 악한 자라도 가서 정복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악한 자를 잡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뱀과 같이 악한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한 전도자에게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서워서 못 간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보기 싫다’, ‘소름 끼친다’ 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 가족을 보기만 해도 싫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부부끼리 언쟁을 하는 모양인데, 그 부인의 말이 ‘남편 보기만 해도 싫어진다’는 것입니다. 끝장을 보고 관두든지 해야겠다고 해서, 제가 “끝장이 없다. 그것을 이겨라. 이기면 하나님의 큰 축복이 그 가정에 임할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 못 이기면 다 망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독사 이길 수 있습니까? 뱀 이길 수 있습니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뱀 얼마든지 하나님의 만능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독사굴이라 할지라도, 이리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사자굴이라 할지라도, 가시와 찔레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넉넉히 잡아서 다 하나님께로 돌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만능이 나에게 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내게 있다.” 이것을 믿고 나가면 됩니다. 마태복음 10:1에 권능을 주셨다고 했는데, 믿으십시오. “믿습니다!” 하고, “사자 굴도 올 테면 오너라”, “뱀 굴도 올 테면 오너라”, “찔레 밭도 올 테면 오너라” 하며 “다 이것을 잡아서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권능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나아서도 아니고, 능력이 있어서도 아니라, 만능의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고, 예수님께서 권능을 주셨기 때문에 다 이것을 정복할 수 있고, 다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면 됩니다. 뱀 다 잡아서 하나님께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가 됩니다.

3. 힘을 쓸 때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

아직도 뱀 못 집은 사람은 왜 그렇습니까? 해산하는 수고를 안 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뱀을 잡으려고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노력을 하면서, 항상 힘을 쓰면 잡을 수 있겠는데, 그런 힘을 안 쓰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귀 종노릇 하는데 어떻게 뱀을 잡겠습니까? 뱀을 잡으려면, 자기가 마귀 종노릇 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의 장중에 딱 붙들려야 됩니다. 말씀에 붙들려야 됩니다. 원리원칙에 의해서 해야 합니다. 말씀에 붙들렸다는 것은 원리원칙에 섰다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도 안 되고, 덜 나가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만능을 믿고, 하나님의 권능을 갖다 대면 뱀이 꼼짝 못 합니다. 뱀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곳이 아무리 독사와 같이 독하고, 사자굴과 같이 험하고 잔인하고, 가시밭과 같이 사방 찌르는 사회라도, 우리는 넉넉히 나가서 잡아서 하나님 앞으로 돌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뱀 잡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기 때문에, 그것을 쓰면 됩니다. 쓰지 않아서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능력을 주셨어도, 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쓰지 않으면 능력이 안 나옵니다. 힘이 아무리 있어도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힘없는 사람과 같습니다. 집에 자동차가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 차를 부리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땅이 있고 아무리 좋은 자원이 있다고 할지라도, 개발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을 몽고족이라는 인디안들이 점령을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점령을 했어도 개발하지 않고 짐승이나 잡아먹고 돌아다녔으니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 예수님 섬기지 않고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셔서, 하나님 섬기는 영국 백인종을 그 쪽으로 보내셔서, 그 사람들이 그 땅을 개발하게 하셨습니다. 개발하니까 그 땅이 좋은 땅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가서 전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서 기도할 때에, 마귀 들린 사람의 속에서 마귀가 나갑니다. 개발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아도 쓸 데 없습니다. 캘리포니아주를 멕시코가 가지고 있었는데, 그 땅을 미국에서 돈 주고 샀다고 합니다. 사막지대라서 쓸 데 없다고 팔아먹은 모양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그 땅을 사서 개발을 했는데, 미국에서 캘리포니아주가 제일 부자고, 제일 좋은 주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천연자원, 석유가 많고, 금광석이 많아도, 개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많이 주셨습니다. 주셨어도 쓰지 않으면 능력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 능력 왜 안 썼습니까? 게을러서 안 썼고, 믿음이 없어서 안 썼고, 나태해서 안 썼고, 방종 하느라 안 썼고, 세상으로 기울어지느라 안 썼습니다. 여기에다가 눈을 돌리고, 발견하고, 여기에다가 마음을 두고, 여기에다가 힘을 써서 개발했더라면 큰 역사가 나타났을 텐데, 개발 안하니까 역사가 안 나타나는 것입니다. 늘 가난하고, 늘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노릇만 밤낮 하는 것입니다. 힘 써야 됩니다. 힘 안 쓰면 안 됩니다. 안 쓰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좀 있으면 다 빼앗깁니다.

먼저 이것을 예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발견해야 됩니다. 알고 여기서 힘을 빠짝 써가지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서, “이것을 써야겠다” 하고 냅다 쓰면, 이젠 그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큰 역사가 나타나서 뱀도 집을 수 있습니다.

또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라고 했는데, 여기 ‘독’이라는 것은 독한 말을 들어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아무리 독한 말을 해도, 하나님의 능력만 믿고 나가는 사람은 해 받지 않습니다. 또, 독한 자의 수하에 있어도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은 해 받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빠졌다고 해도, 해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은 아무리 독을 마실 지라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특별히 전도할 때에 나가서 쓰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위해서 일하고, 복음 운동을 위해서 사용할 때에는, 이 모든 능력이 다 나타납니다. 뱀도 잡을 수 있고, 병도 낫고, 귀신도 쫓아내고, 독을 마셔도 괜찮고, 병든 자도 낫게 만들어 주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또 여기에는 신령한 뜻이 있는데, 영이 죽은 자를 살려내고, 심령이 마귀의 종살이 하는 사람을 건져내고, 영적 병든 사람, 앉은뱅이, 소경, 귀머거리 다 고쳐내고, 살려내고 하는 그런 영적 생명운동, 영적으
로 모든 병을 낫게 하는 운동, 심령을 강건케 만들어 나가는 운동, 마귀를 정복해나가는 운동, 악한 사회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복해나가는 운동, 이런 역사가 복음을 가지고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나타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4. 전도하는 자에게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

본문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특별히 전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할 때에 은혜를 받습니다. 전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자꾸 능력을 주셔서 그 능력이 나가게 하시니까,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전도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시는 것입니다. 전쟁할 때에 군대에 보급품, 물자가 많이 갑니다. 아낌없이 국가에서 많이 보내줍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용해서 전쟁 해 나갑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일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더욱 더 이적을 나타나게 하시고, 능력도 주시고,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공급해주시는 주님이 계 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9-11에,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님은 본대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구름타고 오실 텐데, 그 때에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전도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다섯 달란트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 두 달란트 남긴 사람은 두 고을 권세, 예수님은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값아 주십니다. 

본문 마지막 절, 20절에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같이 해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전도하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역사 해주시고, 또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이 확실히 전파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명령을 받았으니, 이 말씀을 믿고 주님과 같이 나가서 이 복음을 전할 때에, 주께서 약속하신 모든 권능이 나타날 것을 믿고 나가서 힘써 해산하는
수고를 하면서, 이 복음을 전하며 믿는 일을 해 나가야겠습니다.

마가복음 15:25-16:1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비밀
마가복음 15:25-16:1

25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박으니라 26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27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28(없음) 29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가로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30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언할 수 없도다 32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3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두임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가로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융에 신 포도주를 머금게 하여 갈대에 꿰어 마시우고 가로되 가만두어라 엘리야가 와서 저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예수께서 큰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38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운명하심을 보고 가로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좇아 섬기던 자요 또 이외에도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가 많이 있었더라 42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에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45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46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161안식일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1. 십자가, 최대의 고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걸머지시고,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우리가 죽어야 될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우리의 죄 값으로 우리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 됩니다. 십자가는 사형 방법인데, 제일 죄가 큰 흉악한 죄인들을 벌하는 로마의 사형 방법이었습니다. 제일 흉악한 죄인들이 당하는 사형 방법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한국으로 말하면 옛날에 제일 흉악한 사형 방법은 사람을 다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것입니다. 양손, 양다리, 머리를 밧줄로 잡아서, 소에 묶어서 다 떨어지게 해서 죽이는 것이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로마의 가장 잔인한 사형 방법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최악의 사형 방법으로 이렇게 죽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우리 택한 모든 사람의 고난을 다 받으셨고, 창세 이후로 세상 끝날까지 택한 백성의 모든 죽을 고난을 다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수 억, 수 조, 수 경, 수 해, 그런 말할 수 없는 고난, 내가 받을 고난, 내가 죽을 고난을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개개인의 죄로 인한 사형 받을 고난을 예수님께서 다 받으셨습니다. 한 사람의 죽을 고난도 말할 수 없이 큰데, 열 사람의 죽을 고난을 한꺼번에 다 받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백 사람의 고난, 만 사람의 고난을 한꺼번에 다 받으면 얼마나 크겠습니까? 또, 일억, 십억, 몇 억, 몇 조, 오늘날 우리가 당할 고난, 개인 개인이 당할 고난 다 당하셨습니다. 내가 죽을 고난이 백 근 짜리이면, 두 명 고난은 이백 근, 백 사람이 죽을 고난은 만 근, 만 사람의 고난은 백만 근, 또 억 사람의 고난, 이렇게 모든 고난을 다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런 고난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것은 내가 받을 고난의 100% 다 당하셨다고 믿어야 됩니다. 내가 당할 고난, 내 죄 때문에 내가 고난 받고 내가 죽어야 될 고난을 100% 다 당하셨습니다. 조금 남겨놓으신 것이 아니고 다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만대만민(萬代萬民)의 모든 백성의 죄를 걸머지시고 그들이 고난당할 것을 다 당하셨다는 말입니다. 분량대로 다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큰 고난을 당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의 고난은 비밀이 있습니다.

최대의 고난, 모든 인류 역사의 최대의 고난을 십자가에서 당하시고 최대의 부끄러움을 다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형틀은 제일 잔인하고 악한 사람이 당하는 형틀인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최대의 부끄러움을 다 당하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부끄러움은 살인강도의 부끄러움, 음란 방탕하던 자의 부끄러움, 물고 찢고 하던 사람들의 부끄러움, 우상 섬기던 사람들의 부끄러움을 다 당하신 것입니다. 대신 모든 부끄러움을 당하신 예수님입니다.

십자가는 버림받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버림받은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하셨는데, 이 뜻은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버리셨지만 의로 하나님과 연결시키셨습니다. 버리시는 하나님은 죄로 인해서 끊어버리는 동시에, 예수님은 의를 가지고 연결시켜 놓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는 ‘버리면서까지 어떻게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버릴 수 없는 독생자를 버리면서까지 어떻게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그런 부르짖음 입니다. 하나님께서 버리셨습니다. 또, 십자가에 못 박는 빌라도와 바리새교인들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최후에는 제자에게까지 버림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이렇게 최대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이런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당하신 것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3일간 땅 속에 있다가 3일 후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에, 영혼은 낙원에 즉시로 갔고 육체는 무덤 속에서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장사지냄 받으셨습니다. 내가 장사 당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장사 당하셨다고 믿으면 됩니다. 우리가 우리 죄 값으로 장사 당해야 할 터인데, 예수님께서 대신 장사지냄 되셨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내가 사형 받아 죽어야 될 것을 대신 예수님께서 받으시고, 내가 장사 지냄 되어야
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장사 지내시고, 이렇게 무덤 속에 들어가셔서 3일간 계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육체가 죽어서 장사지냄 하기까지 되었습니다.

2. 부활 승리

예수님의 의가 근거가 되어서 부활하심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 아니라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다시 살아나셨는데 그 살아난 근거는 ‘예수님의 의’입니다. 예수님의 의가 부활의 근거가 됩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예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의를 완성시켜 놓으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까, 죽은 것이 ‘의’입니다. 그 의를 근거해서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의인은 하나님께서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의인은 죽는 법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를 완성시켜 놓으셨기 때문에, 죽음 가운데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근거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의가 근거가 되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합니다. 우리 부활도 예수님의 의가 근거가 되어서 앞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의가 근거가 되지 않으면 우리가 부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에 근거해서 우리가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3-4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십니다. ‘성결의 영’으로, 성령으로 부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령으로, 성결의 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1-52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하십니다. 부활은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도 비밀이고, 우리의 부활도 비밀입니다. 그것은 세상이 알지 못합니다. 보통 같으면 죽어서 땅 속에 들어가 다 썩어졌겠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으로, 의가 근거가 되어서,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습니다. 이다음에 우리의 부활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의 부활도 그리스도의 의가 근거가 되고,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에, 영혼은 즉시 천당에 가고, 육체는 장사 지냅니다. 장사지낼 때에 화장해서 다 가루가 되고 연기가 되든, 물에 빠져서 다 물에 풀어지든, 땅 속에 들어가서 다 썩어서 흙이 되든, 원소가 다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원소를 다 모아가지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다시 살려놓습니다. 또 하늘에 갔던 영혼이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돌아와서 다시 합하여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이 부활의 비밀,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입니다. 예수님 죽음 내 죽음, 예수님 장사 내 장사, 예수님 승천 내 승천, 예수님 천당 내 천당,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한번 해봅시다. “예수님 죽음 내 죽음, 예수님 장사 내 장사, 예수님 승천 내 승천, 예수님 천당 내 천당”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과 연합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하나입니다. 나무가 접붙인 것과 같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부활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 가셨기 때문에 우리도 하늘나라 갑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영생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사람들이지 죽을 사람들이 아닙니다.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무엇을 이기셨습니까? 첫째는 죄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이기시고, 그 다음은 사망을 이기시고, 그 다음은 세상을 다 이기셨습니다.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에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십니다. 부활로 인해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권세를 다 내게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완전승리’입니다. 사망 승리, 죄 승리, 마귀 승리입니다. 마귀를 다 이기고, 그 다음에는 세상을 다 이겼습니다. 완전승리입니다. 그 부활 때에 승리하신 예수님은 승리의 능력을 가지고 계속 정복해 나가십니다. 승리의 능력을 가지고, 계속 승리하고, 승리하고, 또 승리하고, 계속 승리해서 나오십니다. 그래서 천하만국에 기독교가 많이 전파되었는데, 이것이 예수님께서 승리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승리해 나가는 도중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최후에는 완전승리 합니다. 세상나라 전부 다 정복하고, 세상권세 다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마귀 권세 다 정복하고, 사망권세 다 정복하여, 앞으로 사망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완전 승리입니다. 사망을 정복했기 때문에 지금은 사망이 있지만 사망이 점점 없어집니다. 사망을 완전히 정복하여 사망이 없는 시대가 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승리가 이렇게 사망에 대하여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

지금은 예수님의 사람이 죽어도 육신만 죽는 것입니다. 영혼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삽니다. 세상 떠나는 즉시,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삽니다. 세상 떠난 사람도 살아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9:33에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거두고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고 했는데, 원어에는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라는 뜻으로 되어있습니다.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라는 것은 열조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고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새 우리가 성경공회를 통하여 성경을 새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 말씀에 대해서 원어에는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라고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개역성경에서는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더라’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보다 원어에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으로 하자는 주장이 많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번역하고 있는 새 번역 성경에는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라고 나올 예정입니다.

세상 떠난 그 백성들이 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그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어는 ‘모였다’라고 되어있다는데, 그것이 합류되었다는 말입니다. 세상 떠난 사람이 그 백성에게 가서 합류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는데, 여기서 세상 떠난 하나님의 백성이 저기 있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합류되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의 비밀입니다. 이제 때가 되면 그때에 다 부활합니다. 세상 떠나서 영혼이 그 백성과 합류가 되었다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공중에서 예수님을 맞으러 나갑니다.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예수님 부활 내 부활

부활의 완전 승리, 성도의 완전 승리, 예수님의 승리는 우리 승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내 죽음이고, 예수님 장사 내 장사, 예수님 부활 내 부활, 예수님 승천 내 승천, 예수님 하늘나라는 내 나라, 이렇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저 예수님의 십자가 이렇게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얼마나 고난을 당하셨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예수님께서 아프고 쓰리셨겠는가, 내가 받을 십자가를 다 받으셨는데 얼마나 받으셨겠는가, 또 다른 사람도 다 받으셨겠는데 얼마나 받으셨겠는가 생각해보십시오. 또 내가 받을 부끄러움을 다 받으셨는데 어떠하셨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한국의 최대 사형법이 능지처참(陵遲處斬)해서 죽는 것인데, 그렇게 사형 당했으면 부끄러울 것이 아닙니까? 최대의 부끄러움을 당하셨고, 또 버림당하셨습니다. 십자가는 버림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버림받고, 바리새교인과 제사장들에게도 버림받고, 빌라도에게 버림받고, 제자들에게 버림받고, 심지어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강도 중 하나도 예수님을 욕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장사지낸바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부활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예수님 부활 내 부활입니다. 예수님 부활이 내 부활인 줄 알고 언제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부활절에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 부활은 내 부활인데, 근거가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의’입니다. 의를 근거해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의를 근거하지 않으면 살아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부활할 때에, 예수님의 의를 근거해서 부활하는 것입니
다. “내게는 의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의이기 때문에 의인은 절대로 썩어지지 않습니다.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의 의가 있는 사람은 다시 살아납니다. 그 다음은 성령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을 살리신 것처럼, 의가 있는 우리 모든 믿는 사람을 다시 살려서 공중으로 올려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완전 승리하시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 죄와 사망을 다 이기셨습니다. 그 이기신 예수님은 점점 더 이겨 나가십니다. 최후에는 완전히 다 이겨서 사망이 없어집니다. 완전 승리하십니다. 
지금은 우리 영만 살았는데, 앞으로 우리 육신도 살리셔서 다시는 죽지 않는 영생의 생명을 우리가 가지고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살게 됩니다.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권세 다 받았습니다. 하늘과 땅과 세상에 있는 모든 만국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다 정복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아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려면 다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멸하려면 다 멸하실 수 있습니다. 다 밟으실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부활을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2017년 10월 24일 화요일

마가복음 13:1-29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마가복음 13:1-29

1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 2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이 큰 건물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하시니라 3예수께서 감란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아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4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5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6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7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8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9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를 인하여 너희가 관장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저희에게 증거되려 함이라 10또 복음이 먼저 만국에 전파되어야 할 것이니라 11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에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지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이시니라 12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 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13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멸망의 가중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15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
가지도 말며 16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17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18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 19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초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
에도 없으리라 20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 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21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2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23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나 24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25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
라 26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27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28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1. 시대를 분별하라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아름다움을 자랑함

본문의 말씀은 마태복음 24장에 있는 말씀과 같은데, 마태복음 24:2에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아름다운 미석으로 지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1:5에,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미석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하매 예수께서 가라사대”라고 하였는데, 미석으로 성전을 꾸민 것을 제자들이 자랑을 했습니다. 성전은 미석과 헌물로 꾸몄고, 46년 동안 지었다고 했습니다. 46년 동안 지은 거대한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미석으로 꾸며놓은 성전, 이것은 유대 사람들이 자랑할 만하며 자랑하던 성전입니다. 세계에 이런 성전이 없었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성전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제사드릴 때, 여러 제사장들이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향연이 하늘에 구름같이 올라가던 제사를 지내던 성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시고 성전에서 나오실 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성전이 이렇게 아름답다고 자랑을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면과 예수님께서 보시는 면이 다릅니다. 제자들은 외모의 아름다움, 그 건물의 웅대함, 그 안에서 드리는 성대한 제사, 이런 것들만 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물질문명, 물질문화, 물질적인 건설, 제도적인 발달, 이런 것들을 자랑하고 좋게 여기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하시는 말씀 가운데는, ‘그 이면적인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외모와 표면만 보지 말고, 그 이면을 볼 줄 알아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모와 표면만 보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중심과 이면을 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현재만 보지 않으시고 그 결과와 장래까지 보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면은 무엇입니까? 이면은 죄악입니다. 그 당시 유대사람의 죄악이 관영했고, 제사를 드리면서도 유대 종교가들이 여간 부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팔고 돈을 바꾸고 있었는데, 그것이 의식주의요, 탐심이요, 교권주의입니다. “내 집은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막 11:17) 하고 책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죄악을 성전 안에서 짓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보고 계십니다.

이면(裏面)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함

언제나 이 세상 표면만 우리가 보면 그것은 제대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물질문명, 외부적인 건설, 경제부흥, 이것만 보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 17:4-5에,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여자’는 ‘인본주의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여자, 즉, 인본주의 세상은 외모는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들고 그것으로 마신다고 했습니다. 세상 외모로 볼 때에는 아주 아름답고 아주 잘 꾸며 놓았습니다. 또,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꾸민 것을 보면 아주 부요한 세상입니다. 세상이 부요해졌고 모든 것이 건설이 잘되었고, 금, 은, 보석이 가득하고, 진주도 많고, 손에 금잔을 가지고 마십니다. 이렇게 풍부한 아름다운 세상이고, 많은 건설과 많은 경제적 부흥을 가져온, 문화가 많이 발전된 세상입니다.

그러나 이 속에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겉은 이렇게 아름답고 잘 꾸며놓고 부유한데, 그 속에는 음행의 더러운 것과 가증한 것과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게 잘 문명화되고 부요해졌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각종 더러운 것, 음행, 방탕, 술 취함, 쟁투, 시기, 분쟁, 서로 물고 찢는 일, 사기하고 도적질 하는 일,탐욕, 이런 죄악이 많습니다. 특히 하나님 섬기지 않고 우상 섬기는 것이 많은데, 하나님 섬긴다고 하면서도 속에는 우상을 몇 개씩 가지고 다닙니다. 하나님 섬긴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몇 개씩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나, 사람이나, 어떠한 방탕 하는 일이나,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어찌해서 외모만 보고, 속에 있는 더러운 것은 보지 못하느냐?” 이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외모, 이 세상의 문화세계, 아름답게 건설된 일과 같은 것들만 보면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편견이고 소경이며 우맹입니다. 우리는 이면을 바로 봐야겠습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알라

그 다음에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라고 하십니다. 여기에 있어서는, ‘시대적인 분별을 왜 하지 못하느냐’라는 뜻이 있습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2-3)라고 하십니다. 시대 분별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믿는 사람들이 이 시대를 분별할 줄을 모르면 안 됩니다. 시대를 분별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께서 “왜 시대 분별을 하지 못하느냐?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알지 못하느냐?”고 하시며 책망하십니다. 이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지, 이것을 알지 못하는 것은 소경입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됩니다.

이 세상일도 시대를 분별해야 되지 않습니까? 어떤 것을 할 때는 무엇을 해야 하고, 비료 칠 때는 비료 쳐야하고, 추수할 때는 추수해야 합니다. 시대를 분별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늘 같은 시대가 아닙니다. 아이들도 초등학교 보낼 때가 있고, 점점 자라나면 그 상급학교 보낼 때가 있고, 그 다음에는 결혼시켜야 할 때가 있고, 그 모든 시기가 다 있지 않습니까? 그 시기를 알지 못하면 모든 것이 다 실패가 됩니다.

그와 같이 “이 시대가 어느 때냐?” 이 시대는 말세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 징조를 봐도 세상의 마지막 때가 다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말세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본문 마가복음 13:28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고 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나라를 가리키는데, 유대나라가 주후 70년에 망해서, 1900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1948년에 독립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국권이 회복이 되고, 민족이 자기 나라로 돌아올 때에는 세상 말세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 독립국가가 되어있는데, 아랍세력이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키려 해도 성경대로 된 것이기 때문에 멸망 못 시킵니다. 이스라엘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이스라엘 나라 있게 돼있습니다. 또 복음이 세상에 다 전파가 되고 말세가 다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은 심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도 표면만 보지 말고 물질만 보지 말고, 이면에 있는 그 죄악상을 보고 그 시대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죄가 들어차면 오게 되는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는 바라볼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환란이 오는데, 그 환란과 심판을 바라볼 줄 아는 저희가 되어야 됩니다.

2. 말세 때에 성도의 준비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말세인 줄 알라 이런 말세에 성도가 어떠한 준비를 해야 마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본문 14-16절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준비할 일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만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거룩한 곳인 성전 위에 서면 그것이 말세가 다 된 것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에 성전에 로마 국기를 계양했습니다. 그 국기에 독수리가 있었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입니다. 로마 국기가 하나님의 성전에 와서 섰다는 것은 멸망의 가증한 국가의 세력이 종교 위에 올라가서 종교를 주장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말하자면 국가의 세력이나 이 세상 세력들이 교회 위에 올라가서 교회를 주장하게 되면, 그것이 말세인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 때때로, 국가의 세력이나 이 세상 세력들이 종교 위에 올라가서 교회를 주장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교회이므로 하나님과 예수님의 주장만 받아야지, 세상 국가나 어떠한 단체에 의해서 이 교회가 주장을 받으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교회를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고, 하나님 말씀뿐이므로 다른 것이 주장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말세에는 교회를 주장하는 세력들이 많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이고 심판 받을 만한 일입니다.

산으로 도망하라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말세가 다 된 것인 줄 알고 특별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특별준비는 무엇입니까?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지어다”는 말씀처럼 산으로 도망치라는 것입니다. ‘유대에 있는 자’는 예수님 믿는 사람, 오늘날 성도를 가리킵니다.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에 산으로 도망쳐서 환란을 면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신령한 진리인데, 이면적 유대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롬 2:28-29). 산으로 도망치라고 했는데, 산이라는 것은 ‘영적 시온산’을 가리킵니다. 말세에는 영적 시온산을 향해서 달음박질하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애착심을 가지지 말고, 세상에 빠지지 말고, 영적 시온산을 향해서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빠지거나 도취되지 말고, 하늘나라, 시온산을 날마다 바라보면서 달음박질하는 그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지붕 위에서 내려가지 말라

본문 15절에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라고 하십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라는 것은 옛날에는 지붕을 평평하게 지어서 그 위에서 기도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지붕 위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기생 라합의 집에 숨었던 정탐꾼도 지붕 위에 올라가서 숨었었습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라는 것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만큼이라도 복잡한 집안을 떠나서 지붕만큼이라도 올라가서 기도하던 사람은 다시 내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기도하는 생활을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기도하는 생활이 중요합니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고 미혹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본문 4-8절에 보면,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하십니다.
말세에는 미혹이 많이 있을 터인데 그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 적그리스도, 거짓 그리스도, 사이비한 모든 종교단체들의 미혹이 많습니다. 요즘은 기도원들도 미혹시키는 기도원이 많습니다. 또 미혹시키는 그릇된 사상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교 안에 사이비한 단체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학생들 가운데에서 “성경 공부하자” 고 하고, “모여서 전도하자”, 뭘 하자 하는 단체들 많이 생기는데, 그런 단체에 가담을 했다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끌려 나가서 결국은 신앙이 다 타락되고 맙니다. 처음에는 “성경 공부하자”, “기독교 학생들이 모여서 좋은 일 하자”, “전도하자” 하지만, 점점 끌고나간 다음에는 딴 데로 갑니다. 교회 안 나옵니다. 네비게이토, UBF 같은 것도 처음에는 좋은 말만 합니다. 처음에는
“성경 공부하자”, 전도하자” 하지만, 점점 끌고 나가서는 그 학생을 교회에 나오지 않게 만듭니다. 주일에 자기네끼리 모인다는 말씀입니다. 처음에는 교회 나가도 된다고 하다가 점점 자기네끼리 모여서 교회 안 나오게 만듭니다.

어떤 집사 아들이 네비게이토에 학생 때 다녔습니다. 전에는 교회잘 나오던 아이들이었는데, 거기 나가는 바람에 네비게이토 모임에 가느라고 그만 교회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들이 졸업하고 의사가 되어서 미국에 갔는데, 미국 가서도 네비게이토 한다고 합니다. 교회 안 나갑니다. 십일조도 그 네비게이토에 바친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대학교 가면 까딱 잘못 하다간 어떠한 기독교 단체에 미혹을 받아서 곁길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결국은 교회 못나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사이비한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데 빠지게 되면 결국 신앙에서 떠나게 됩니다. 학생들이 그런 단체에 가입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 곳에 안 가고 교회에 나와서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배운 것을 가지고 나가서 실천하는 것이 좋지, 여기저기 다니며 배우다가 어디에 걸려들어 갈지 모릅니다. 학생들이 분별 잘 합니까? 그럴듯하게 해놓았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난리와 난리 소문이 많이 나오고, 민족이 민족을 치는 이런 일, 또 기근과 지진이 많이 일어납니다. 오늘날 이 시대가 아주 어지러운 시대입니다. 난리와 난리라는 것은 어지러운 것이 아닙니까? 어지러움이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한국에 어지러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폭력배들이 많고 도적이 들끓고 어지러운 일들이 각처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 말세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또 민족이 민족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고 전쟁이 각처에서 일어나는 이것이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이때가 어느 때인 줄을 이 모든 것을 봐서 우리가 바로 알고 성도가 바로 준비해야 됩니다. 준비하는 데에는 기도생활이 첫째입니다.

밭에 나가 말씀의 씨를 뿌리라

본문 16절에,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하십니다. 밭에 나가서 일하는 생활, 이것이 말세에 가서는중요합니다. 밭에 나가서 하는 일은, 밭을 갈아서 뒤집어엎고 거기다 종자를 심고 김을 매고 곡식을 잘 길러나가는 일입니다. 자기 마음부터 갈아 뒤집어 엎어서 회개를 하고 잡초를 다 없애야 합니다. 거기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이 자기 속에서 잘 자라나도록, 생명이 자라나도록 하고, 그 다음은 나가서 이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밭에 나가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밭은 세상이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인데, 우리가 나가서 이 세상에 씨를 뿌려야 되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서 하나님 말씀의 씨가 싹이 자라나서 많은 열매를 맺도록 하는 이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자기 혼자만 예수 잘 믿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혼자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때에는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어라” 하고 주신 것입니다.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 아닙니다. 그런데 안 나누어 주면 화가 있습니다. 구청, 시청에서 밀가루나 물질을 줄 때에, 구청 구민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준 것인데, 구청 직원이 혼자 다 먹었으면 그 사람 감옥에 가야됩니다. 동회에서 동민들
하고 나누어 먹으라고 물질을 줄 때에 혼자 먹으면 감옥에 가야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는 여러 사람이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주신 것입니다. 이거 혼자 다 먹으면 감옥에 가야됩니다. 벌 받습니다. 처벌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실 때에는 여러 사람이 같이 나누어 먹으라고 주셨고, 이 세상에 가져다가 뿌리라고, 없는 곳에 가져다가 뿌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씨를 뿌려야 되겠습니다. 자기 가족에게, 친구에게, 가까운데부터 뿌려 나가서, 먼 데까지 나가 뿌려야 됩니다. 우리가 중국이나 소련에까지 씨를 뿌려야겠고 복음을 전파해야 되겠습니다. 이것에 목표를 걸고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특별히 소련은 70년간 씨를 뿌리지 못하여서 꽁꽁 얼어붙었던 것인데 지금 녹여 주셨습니다. 70년간 얼어붙었던 것 씨 뿌리라고 녹여 놓았는데, 안 뿌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것입니다. 중국에는 또 몇 년간 얼어붙어 있었습니까? 1948년도에 공산화 되었으니까, 한 43년간 중국 얼어붙어서 씨 못 뿌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다 녹여 놓으셨습니다. 씨 뿌리도록 해 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이 때 다 뿌려야 되겠습니다.

우리나라 한국에도 뿌릴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각처에 씨를 뿌려야 되겠습니다. 개척교회 해야 합니다. 지나간 주일에 구리시에 개척교회 했습니다. 입당예배를 위해 처음으로 가서 드렸는데, 일억을 들여서 개척교회 한 것입니다. 앞으로 개발하는 곳에 뿌려야 하겠습니다. 일산이나, 분당이나, 평촌, 또 발달되는 서해안의 서천이나, 군산, 광주, 남동, 이리에도 몇 만 세대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쪽으로 개척교회들을 앞으로 많이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 사람을 보내야 되겠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신학교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몸 바치고 나갈 사람들이 나와야 되겠습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할 사람이 나오고, 우리는 뒤에서 경제적으로 받들어 주고,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멀리 가서 이방사람 전하지 못하지만 가까운 데에서라도 전해야 되겠습니다.

밭에 나가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 목적은 하나님의 일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좀 더 하라는 것입니다. 목적이 거기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에서 야고보는 순교 당했고 데려가셨습니다. 순교의 제물로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야고보가 제일 먼저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가두었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그 쇠사슬 결박한 것을 다 풀어 놓게 하고 지키던 사람은 다 깊이 잠들게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모르게 만들어서 안에서 지키던 사람과 밖에서 지키던 사람, 첫째 파수, 둘째 파수를 다 무사통과하게 만드셨습니다. 또 쇠문에 이르렀는데, 쇠문이 저절로 후닥닥 열렸습니다. 천사가 인도했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베드로를 건져내신 것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좀 더 하라고 건져내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살려주신 목적이 나 혼자 평안히 세상에서 잘 살다가 그저 죽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잘 살면 또 무얼 합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 좀 하다가 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 그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어떤 사람이 돈 많이 벌면 좋겠다고 하는데, 돈 많이 벌면 뭘 합니까? 돈 많이 벌면 큰 집 사고, 좋은 자동차 사고, 뭐 다 잘하겠다는 것입니다. 큰 집 사고 좋은 차 사면 무얼 하겠습니까? ‘잘 산다’고 합니다. 잘 살면 무얼 합니까?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인데, 돼지같이 잘 먹다가 죽으면 무얼 하느냐는 말씀입니다.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가는 그것이 가치가 있습니다. 몸 바치고 발 벗고 나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또 봉사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이것이 제일 큰 복을 받고 하늘나라 갈 때에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습니다. 가만히 있는 것, 편안히 있는 것은 썩어진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아예 몸 바쳐 나가서 일심 정력을 다하고, 나가서 수고를 무릅쓰고 계속 피땀을 흘리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봉사하고 몸과 마음과 물질과 건강과 모든 것을 다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으면 예수님께서 마중 나오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중 나오셔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시면서 영접해 주실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뒤에서 잘 살다 온 사람들, 썩어진 생활 하다 온 사람들은 무용지물입니다. 예수를 믿긴 믿었는데 구원 받긴 받았는데, 저 혼자서 배를 위해서 살다가 자기를 위하여 방탕하고 방종하다가 세계 구경이나 잘 다니다가 썩어진 생활 하다가 가면 상급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런 자에게는 상급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본문1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겉옷은 없어도 될 것입니다. 겉옷은 입어도 되고 안 입어도 되는 것입니다. 없으면 안 될 것 하나 이외에는 다 내버리고, 다 포기하고, 이제는 밭에 나가서 일해야 되겠습니다. 믿는 일 하라는 것입니다. 없어서는 안 될 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이고, 예수님 한분 입니다. 예수님 한 분, 말씀 하나입니다. 예수님만 붙들고 말씀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정력을 빼앗기지 말라

본문 17절에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십니다. ‘아이 배었다’는 것은 욕심을 잉태한 것을 가리키고,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그리고 ‘젖먹이는 자’라는 것은 세상에다 영양 가치를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세상 일에 마음과 정력과 물질과 시간을 빼앗기는 자는 젖먹이는 자입니다. 주를 위해서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에 빼앗기는 자는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3. 마지막 날 예수님 재림하심

본문 24-27절에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십니다. ‘그 때’는 말세를 말하는데,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못 박히실 때에 해가 실제로 어두워진 적이 있고, 또 별들이 떨어진 때도 역사적으로 있습니다.

이제 말세에 가서는 실제로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 하고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영적교훈을 살펴 보면, ‘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진리가 어두워진다는 뜻입니다. 진리가 가려진다는 뜻인데, 악한 자들로 인해 진리가 이 세상 죄악에 가려진다는 말씀입니다. ‘달이 빛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가 빛을 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교역자들이 타락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교역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이 타락됩니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본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살전 4:16) 천지가 진동 하며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일시에 다 알게 하시면서 영광스럽게 하늘에서부터 재림을 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자던 성도의 무덤이 다 터지고 이미 죽은 성도가 부활해서 먼저 올라가고, 살아남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서 다 올라갈 것입니다. 그리고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공중에서 만날 때에 믿는 일 잘한 사람은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받고 면류관을 받습니다. 믿는 일 못한 사람은 예수님 믿었으니까 천당에 가긴 가는데 아무 상급이 없습니다. 불붙는 데에서 벌거벗고 나온 것과 같은 그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5에 보면,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불 가운데서 나온 것과 같은 그런 구원을 얻을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면류관 받는, 영원히 빛나는 그런 구원을 얻을 자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는 일을 잘 하다가,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라”(마 25:21)하는 그런 칭찬과 상급을 받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11:4-26 산을 옮기는 믿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산을 옮기는 믿음
마가복음 11:4-26

4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새끼가 문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나귀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 8많은 사람은 자기 같옷과 다른 이들은 밭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12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은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베투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16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19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20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대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21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과과나무가 말랐나이다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23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
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를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4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25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네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

1. 예수께서 나귀타고 입성하심 (4-11)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앞과 뒤로 가면서 호산나를 불렀고 나귀 위에는 옷을 벗어서 깔고 또 길에도 깔고 종려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하는 찬송을 부르면서 예수님을 옹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호산나 하는 뜻은 ‘구원 하소서’ 하는 뜻입니다. ‘이제 우리를 구원 하소서’ 하는 호산나를 부르면서 예수님을 옹위해서 들어갔습니다.

겸손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이때에 말을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탄 것은 겸손한 왕, 평화의 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예수님께서 말을 타고 나오셨는데 말 타고 나오실 때에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말탄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했습니다. 심판하실 예수님을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 타고 가지 않으시고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평화의 왕’을 상징하고 ‘겸손’을 나타냅니다. “겸손하여 나귀를 타니”라고 마태복음에서 말씀하였는데, 겸손의 왕을 상징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겸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은 ‘다 비었다’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 마음.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주께 맡기고 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일만 해나가는 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의 겸손을 언제나 배우고, 모든 것을 다 주께 맡기고 모든 염려도 주께 맡기고, 빈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예수님을 순종하는 마음만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그 사람 속에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하고 온유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예수님에게 만능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을 옮길만한 믿음, 또 무화과나무 저주한 일, 이 모든 것이 예수님에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 영접과 산을 옮길 만한 믿음

예루살렘에 들어가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먼저 예수님을 전적으로 영접해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됩니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전적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으려고 하는 마음으로 “호산나 주여, 구원 하소서” 하며,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시면 구원 받을 수 있고, 예수님께서 구원해 주지 않으면 영영히 멸망할 줄 알고, 언제나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대망하는 믿음을 항상 가질 때에, 이러한 능력의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2.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 (12-14)

열매를 찾으시는 예수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한번 돌아보시고는, 저녁에 베다니에 가서 주무셨습니다. 그 이튿날 아침에 성에 들어오실 때에 예수님께서 시장하셨습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그랬습니다. 예수님께서 시장하셔서 이른 아침 일찍 들어오시는데 멀리서 보니까 저기 무화과나무가 길가에 서있었습니다. 큰 무화과나무, 잎사귀가 왕성한 큰 무화과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시장하신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좀 얻어 잡수실까 하고 무화과나무를 찾아 갔습니다. 찾아가 보니 잎사귀만 왕성하고 열매가 없었습니다.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함이라.”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말은 무화과의 때가 되었으면 다른 사람이 따먹어서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무화과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아직도 다른 사람이 따 먹을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되겠는데 누가 따먹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화과의 때, 추수할 때가 되기 전에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면 무화과가 열매를 맺히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이렇게 무화과나무를 예수님께서 저주했습니다. 이것은 열매 없는 유대교가 저주받을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교나 유대교가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잎사귀만 무성했다는 것은 의식은 많이 성했지만 의식주의였기에, 실제로 들어가서 보면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하고 그만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날에도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오늘날 교회에 대해서도 잎사귀만 왕성한 것, 그것을 예수님께서 보지 않으십니다. 사람 많이 모이고 의식이 발달되고 또 사업을 많이 하고, 이런 것은 다 잎사귀만 왕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큰 행사를 하는 것은 다 잎사귀만 왕성한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잎사귀 왕성한 그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찾으시는 것입니다.

열매가 있는가?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받으셔야만 그 시장한 것이 면해집니다. 반드시 열매를 드셔야만 시장하신 것이 면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요구하시는데 열매 없는 것은 저주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을 가리켜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의 시장하심을 면하게 해드리고 만족시켜 드리고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이 의식만 왕성하고 외부적인 면만 이렇게 부흥되고 발전되면 이것은 예수님의 요구에 만족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생명의 열매 맺히길 원하시는 예수님

열매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원하는 것은 열매입니다. 열매는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생명의 열매입니다. 그 생명의 열매가 맺히는 것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고 우리는 포도나무 가지가 되었다고 했는데,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참감람나무의 열매가 맺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포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참포도가 맺혀야 됩니다. 포도나무만 많이 자라나고 잎사귀만 왕성한 그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포도 열매가 맺힌 것을 보십니다. 열매가 무엇입니까? 생명의 역사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역사가 믿는 사람 속에서 역사해야 되고 생명의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생명의 열매가 맺힌다는 것은 우리 영혼이 자라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생명과 우리 중생한 영혼이 연합이 되서 생명의 교통이 있어야 됩니다. 영적 생명의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자라납니다. 자라나는 것이 열매입니다. 자라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만족하고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의 생명체가 커지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그것을 제일 기뻐하시고 그것을 요구하십니다.

소금의 역할, 빛의 열매를 원하시는 예수님

또 열매가 무엇입니까? 에베소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빛의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랬는데, 그 빛의 역할이 나타나고 소금의 역할이 나타나야 합니다. 소금의 역할과 빛의 역할, 빛의 역사와 소금의 역사, 그것이 열매입니다. 소금이 맛을 잃으면 그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맛 잃은 소금은 하나님께서 내버리고 사람들은 발로 밟고 자기 속에는 신앙의 맛이 다 없어진다고 그랬습니다.

맛 잃은 소금은 열매 맺지 못하는 소금입니다. 소금이라는 것은 가서 그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심심한 것을 짜게 만들어야 하고 썩어지는 것을 방지해야 합니다. 소금 치면 썩어지는 것이 방지됩니다. 또한 맛을 내야 됩니다. 소금이 들어가야 맛이 납니다. 어디가나 맛을 내야 되고 부패를 방지해야 됩니다. 또한 소금에는 생명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래 유지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 소금의 역할을 하는 성도여야만 열매 맺는 성도입니다.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자신은 녹아져야 합니다. 녹아져서 없어져야 됩니다. 소금 한 알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소금의 역할을 못합니다. 어디가나 희생하고 자기는 낮아지고 녹아져서 어디가든지 맛을 내고 덕을 세우고 남에게 유익을 주고 자기는 희생하고 부패를 방지하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게 열매 맺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했는데 나가서 빛의 역할이 나타나야 합니다. 역사가 나타나야 됩니다. 빛의 역사가 나타나면 의로움과 착함과 진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의 열매를 원하시는 예수님

그 다음은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라고 하였습니다. 의, 진리, 거룩함을 입은 새사람을 입는 이것이 열매입니다.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가 하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믿음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해도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사랑하는 열매가 맺혀야 됩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매, 그 열매를 예수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폴리갑이라는 감독이 있었는데 한 2세기경에 서머나교회 감독입니다. 그때는 로마에서 기독교를 대박해하던 시대로 많은 사람을 잡아 죽이는 때였습니다. 그 폴리갑 감독을 로마관리들이 잡아 죽이려고 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 올려놓고 불을 놓아서 죽이려고 하는데 그 얼굴을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그 관리들이 당신이 이제라도 예수님을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집에 보낼 거니까 한 번만 모른다고 하라고 하였습니다. 한 번만 모른다고 하면 로마법에 안 걸리니, 한 번만 모른다고 하고 내려와서 석방 되서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폴리갑이 하는 말이 “예수님은 나를 86년 동안 사랑했지만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하리요?” 하고 거기서 순교 당했습니다. 장작불에 타서 순교 당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매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오랫동안 사랑했지만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한번이라도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하면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열매, 이런 열매를 예수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영혼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 생명이 자라는 것, 이것이 생명의 열매입니다. 이런 열매가 있는가, 예수님은 언제든 찾아오셔서 그 열매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습니다. 잎사귀만 있고, 나무만 크고 왕성하기만 했지 아무 열매가 없었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생명의 역사도 없고, 자라나는 것도 없고,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저주하신 것을 볼 때, 열매 없는 종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입니다.

3. 성전을 정결케 하심 (15-18)

성전에서 매매함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날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 안에 들어가 보니까 매매하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그 안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매매하거나, 아무나 기구(器具)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다 내쫓았습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자들은 이권주의, 탐심을 가지고 매매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좀 더 잘 섬기자 하는 표어를 내세워가지고, 하나님께 제사하는 소나 양은 아무거나 잡아 제사하면 안 되고 어렸을 때부터 잘 구별해서 기른 것을 잡아 제사해야 하나님께서 잘 받는다고 교인들 앞에 가르치고 그 양을 비싸게 받고 팔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는 시장에서 흠 없는 것 사다가 제사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성경대로 하지 않고 의식으로 너무 치우치기 때문에 의식주의로 나갔습니다. 또 돈을 아무 돈이나 가져다 연보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가이사 화상 그려진 그런 돈을 가지고 연보하면 안 되고, 별도로 성전에서 쓰는 세겔이라는 돈과 바꿔가지고 연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바꾸는데 또 돈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들이 나눠먹느라고 돈 버느라고, 그런 방법을 세워놨습니다. 그러니까 이권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탐욕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의식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왔습니다. 교권주의를 써서 교인들의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고 하는 이런 자리에 있었습니다.

성전인 우리 안에서 더러운 것을 다 내버리라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다 내 쫓았습니다. 성전을 정결케 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참된 믿음이 바로 설 수가 있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은 성전 정결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 마음이 성전이고, ‘너희가 성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안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16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성령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멸망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 합당치 않은 것, 욕심, 물욕, 또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모든 요소들, 성전을 더럽힌 모든 것들을 찾아서 다 내버려야 되겠습니다. 회개하고 내버려야합니다. 성전에는 예수님만 들어와 계셔야 됩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면 안 됩니다. ‘너희가 성전이다’라고 했으므로 우리 믿는 사람은 다 성전이고 믿는 사람들 속에 예수님께서 들어와 계셔야만 됩니다. 다른 것은 다 내버려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예수님으로 생명을 삼고 예수님으로 더불어 사는 그런 성전생활을 우리가 계속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기도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지 못하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능력 있는 신앙에 서지 못합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고 모든 염려는 다 주께 맡기고 오직 빈 마음을 가지고 언제나 하나님과 더불어 기도하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그런 영적 성전생활, 기도하는 생활을 늘 해야 되겠습니다.

4. 산을 옮기는 믿음 (19-26)

믿으라, 믿으면 산을 옮기리라

그리고 그날 또 저녁에 베다니에 나가서 주무셨습니다. 그러다 그 다음날 들어오는데 이는 셋째날 아침입니다. 19절에 이제 그 다음날 아침에 들어가다가 보니까 예수님께서 어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단 말입니다. 그때는 안 말랐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들어가다 보니 무화과나무가 말라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어제 저주한 것이 생각이 나서 말을 했습니다. “뿌리로부터 말랐는데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랍비여’는 ‘선생님이여’ 하는 말입니다)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하고 예수님께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이 산더러 들려서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라. 이 무화과나무 저주해서 마른 것 이것이 큰 것 아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믿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큰 산이라도 들려서 바다에 던지우라 하면 그대로 된다는 그것입니다. 산이 옮겨집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였습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너희가 믿음만 있으면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믿음이라는 것은 거저 믿사오니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거저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미신이고 맹신입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이지 거저 믿사오니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로마서 10:17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이 성경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거저 믿사오니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건 미신이요 맹신입니다. 말씀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계시 받는 것을 믿는다고 하는 것도 안 됩니다. 요새는 표준계시가 종결된 때입니다. 성경을 믿어야 되는 것이지 계시 받은 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계시 받은 것도, 꿈꾼 것도 성경에 맞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믿어야지 그것 믿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으면, 그건 다 제 꿈 아니면 개꿈인줄 알면 됩니다. 성경에 맞지 않는 계시를 봤다든지, 성경에 맞지 않는 환상을 봤다든지, 성경에 맞지 않는 꿈을 꿨다든지, 그건 다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그런 것 믿으면 안 됩니다. 또 꿈이 딱딱 맞는 수가 있습니다. 꿈이 딱딱 맞아도 그것을 믿으면 안 됩니다. 그것을 믿다가는 그만 신앙에서 탈선되고 마귀에게 끌리워갈 날이 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 온전한 믿음이다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이 믿는 겁니까? 성경을 믿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으면 믿는 것이고 다른 것 믿는 것은 다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미신이요 맹신입니다. 성경을 믿는데, 마음으로 성경을 받아들여서 순종하는 것 하고, 즉, 마음으로 믿는 것 그 다음에 몸으로 행하는 것, 그 둘이 합해야 온전히 믿음이 됩니다. 성경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그대로 믿는 것하고 그것을 몸으로 행하는 것 하고 둘을 합해야 온전한 믿음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것입니다.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것은 행하여야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성경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서 ‘믿습니다’ 하는 것은 믿음의 절반이고. 그대로 ‘행합니다’ 하고 행하면 온전한 믿음입니다. 특수한 것은 마음으로만 믿어도 되는 것이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은 보편적인 모든 진리는 마음으로 믿으면 믿음의 절반이고 몸으로 행해야만 온전한 믿음이 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마음으로 순종을 하는 것,그리고 몸으로 그 말씀을 가서 순종을 하는 것, 이것이 산을 옮길만한 믿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야 산이 옮겨진다

하나님 명령에 ‘산을 가서 옮겨가라고 해라’ 하는 말씀이 있어야합니다 첫째, 명령이 없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명령이 없으면 아무리 산을 옮겨달라고 와서 기도해도 안 되고, 철야기도해도 안 되고, 금식기도해도 안되고 죽어도 안 됩니다.

서울의 남산이 인천 앞바다에 빠지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해도 안 됩니다. 금식기도해도 안 되고, 철야기도 해도 안 됩니다. 그것이 왜 안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이 없는 것은 암만해도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남산에게 들려서 인천앞바다에 빠져라. 가서 해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했다고 하면 될까요, 안될까요? 됩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남산을 인천 앞바다에 빠지라고 했으니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가는 것입니다. 남산에 가는 겁니다. 회현동으로 해서 남대문으로 해서 남산에 가서 큰 소리로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산아, 인천 앞바다에 빠져라” 하면 훌쩍 들려서 인천 앞바다에 빠집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 명령 임하기 전에 아무리 가서 “빠져라, 빠져라” 소리해도 그건 안 빠집니다. 말씀이 없으면 안 빠진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명령 있을 때에는 가서 한마디만 하면 훌쩍 빠집니다.

왜 빠지는가? 하나님의 명령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만 하고 그냥 놔두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 한 마디 했으면 만능으로 그대로 이루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대로 가서 명령하면 이것이 인천 앞바다에 빠집니다. 하나님께서 빠쳐놓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산 믿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명령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 내가 순종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먼저 있고 그 다음에 그대로 순종하면 만능이 나타납니다. 산도 옮겨지고 홍해바다도 갈라지고 또 애굽 사람도 다 멸망시킬 수 있고, 다 할 수 있습니다. 반석에서 물도 나올 수 있고 메추라기도 내올 수 있고 만나도 내려오고 다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 이것이 중요한데 명령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그 일을 이루어 놓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인데, 그 믿음이 산을 옮기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알고 성경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순종하면 만능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 성경 명문에 없는 사건들이 많이 있잖습니까? 우리에게 사건들이 수백 가지, 수천 가지, 수만 가지로 닥치는데, 그것들이 다 성경 명문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내게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어떤 시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 명문에 있는 것은 성경 명문대로 순종하면 되는 것이고, 명문에 없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성경에서 찾아야 되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가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그리고 그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가시는 것을 척 보면, “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비추어서 하나님께서 섭리해 나가는 것을 볼 때에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깨닫게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신앙 양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는 성경, 하나님의 섭리, 성령의 감동, 신앙 양심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야합니다. 이것이 참 힘듭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성경을 통해서 알게 해 주십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만 하면 그대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순종만 하십시오. 순종만 하면 태산이 훌쩍훌쩍 날아나가고,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막혔던 문이 활짝 열리고, 당장 죽을 것 같아도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오고, 목말라서 쓰러질 것 같아도 생수가 나오고, 하나님께서 만능으로 다 해 나가십니다. 이런 하나님께서 계신데, 이런 능력을 믿으면 우리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4:13에는 “믿는 자에게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능력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할 때에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느니라’ 하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바로 찾아서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장사해서 무덤 속에 들어가서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나지만,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하셨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이 말씀입니다. ‘믿으면’ 하는 것은 순종을 말합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순종입니다. 말씀을 마음으로 순종하고, 몸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죽어서 장사해서 썩어져서 냄새가 나는데 무슨 영광을 보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네가 순종해라 그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 돌을 옮겨 놔라. 무덤을 돌로 막아 놨는데, 돌을 옮겨 놓으라고 그랬습니다. 마르다가 “돌을 옮겨놔야 아무 쓸데없습니다. 냄새 더 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래도 옮겨 놔라. 네 생각을 버리고 옮겨 놔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의 무덤을 막았던 돌을 옮겨 놓으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벌떡 일어서 나왔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사람이 썩어져 냄새가 났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나왔습니다. 살아나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즉,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만 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도 살아나고 홍해 바다도 갈라지고 산도 옮겨지고 만능의
역사가 나타나서 모든 것을 살아나게 만들어주고 건설하게 만들어주고 형통하게 만들어서 생명 길로 인도해 주시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이십니다.

마가복음 10:32-52 하늘나라에서 크고 으뜸이 되는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늘나라에서 크고 으뜸이 되는 자
마가복음 10:32-52

32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 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 33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겠고 34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35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36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37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38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39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40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41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46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소경이 겉옷을 내어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아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1.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일러주심 (32-34)

본문 32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서서 가시는데 저희가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하더라. 이에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자기의 당할 일을 일러 가라사대”라고 하였습니다. 이번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길은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입니다. 또 그 당시 공기가 상당히 험하여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세력들이 득세하여 이번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오면 잡아 죽이자고 의논을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죽은 나사로 살린 일로
인해서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예수님만 죽일 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자고 의논을 하던 때인데, 제자들은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이 죽을 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다 두려워서 놀라고 좇는 자들은 두려워했다고 그랬습니다. 이번에 올라가면 마지막길입니다. 올라가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겠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일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다 무서워하고 놀라면서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환난과 핍박하는 그곳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는 그곳으로 앞서서 가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환난을 받는 그곳에 갈 때에는 앞서서 가 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성도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려 하고, 환난이 많은 세대이지만, 예수님께서 가만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앞서서 환난을 마주 하면서 친히 감당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앞서서 가 주실 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오늘날도 앞장 서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가며, 환난 가운데도 나아가는 그 믿음을 우리가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들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3-34절에,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번에 올라가서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확실히 알고 올라가십니다. 우리 죄를 위해서 능욕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질을 당하고 죽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올라가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죄를 위해서 능욕과 침 뱉음을 당하고 채찍을 맞으며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우리는 깊이 바라보고, 언제나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당할 것을 말씀하신 후,
삼 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기로 예비된 자 (35-45)

본문 35절-38절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나아와 말한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형제이고 아버지는 세베대인데, 그들이 어머니를 내세워서 간구한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하고 어머니가 간구했다고 하였습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예수님께서 물어보니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하여 주옵소서”(본문 37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보좌에 앉으실 때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앉게 해 주시고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올라
가서 왕이 되시고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으로, 메시야 왕국이 건설되고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의 영광에 앉아서 온 세계를 통치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이것은 세상나라가 메시야 나라가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원한 영광의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건설하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영광 중에 앉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즉 하늘나라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요한의 형제가 앉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잔을 마시며 십자가를 지는 자

그러자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마시는 잔은 고난의 잔이고, 받는 세례는 십자가입니다. 누가복음 12:50-51에,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하였습니다. ‘나의 받을 세례’ 이것은 십자가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는 것이 예수님의 받는 세례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면 하늘나라에서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의 그 높은 자리에 앉을 자격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예수님의 잔을 마시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깊이 참여하고, 주를 위해서 십자가 지고 나가고, 주를 위해서 고난 많이 받는 사람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이 구원운동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많이 당한 이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했습니다. 본문 39-40절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마시는 잔이 무엇인지, 받을 세례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것을 해야 된다고 하니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요한의 형제, 야고보와 요한이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을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열 두 제자 가운데 야고보가 순교 당했습니다. 헤롯에게 목 베임을 당했습니다. 사도행전 12: 1-2에,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다는 말씀입니다. 헤롯왕이 죽였습니다. 그래서 “나의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겠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사도 요한이 주와 그의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아셨습니다. ‘나의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자

본문 40절에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 예비되었든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들이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은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 높은 자리, 하늘나라의 존귀한 자리, 그 자리를 예정해 놓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올라가 앉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많이 받게 됩니다. 또 순교 당하게 됩니다. 야고보처럼 순교하게 될 것입니다. 예비해 놓은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고난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게 하려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예비해 놓은 사람은 주와 그 복음을 위해서 십자가 지고 고난 많이 당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고난 안 당하는 사람은 그 자리가 예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보통 예수를 편안히 믿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예수를 편안히 믿고 하늘나라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쉽게 그저 힘 안들이고 연보도 많이 안하고 쉽게 믿겠다는 사람이 한국에 많습니다. 그래서 개척교회 하는 데는 교인들이 많이 안갑니다. 어디로 이사를 가도 개척 교회하는데 가면, 연보 많이 해야 하고 예배당 지으려면 힘들다는 말입니다. 교인이 적은데 거기 가서 교역자 받들라면 힘드니까, 대충 살펴보다가 큰 예배당 하나 찾아서 나가면, 연보도 안하고, 또 예배당 지으려고 힘도 안 들겠고, 사람이 많으니까 교역자 받드는데 힘도 안 들겠고, 거기 나가서 뒷전에 앉았다 오면 편안히 잘 믿겠다는 생각을 해서, 이사를 가면 개척교회로 나가기 싫어합니다. 큰 예배당에 갑니다. 남이 다 해 놓은데 뒤에 앉았다가 그저 오기만 하면 되는, 이런 곳에 나가기를 좋아하는 성도들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는 그런 사람입니다. 얼마나 참 안됐습니까? 하늘나라에서 상을 많이 받고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을 사람은, 아예 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을 받을까 생각합시다. 어디로 이사를 가도 개척 교회하는데 가는 것이 좋습니다. 아예 천막친 데로 갑니다. 개척 교회하는데 가서 거기 엎드려 들이대고 힘을 써서 받들어 나가려고 하고, 또 어디가면 교회 세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교회 없는데 가서 아예 교회를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갑니다. 그래서 교회 세우려고 노력을 해고 모든 걸 다 희생을 해서 교회 세우면서 힘을 많이 씁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쑥 자라납니다.

교역자들도 어떤 교역자는 좋은 큰 교회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큰 교회, 사례금도 많이 받는 교회, 대접 잘 받는 교회에 보내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어떤 교역자는 개척교회해서 교인이 7~80명쯤 되면, ‘이제는 난 또 다른 곳에 가서 개척교회를 해야겠다’면서 다른 데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니까, 다른 데 가서 개척교회를 또 하나 하고, 또 하나 하고 그렇게 해야지 여기선 너무 편안해서 안 되겠다고 합니다. 이전에 이헌학 목사가 시무하는 파장동교회 갔다가 왔는데, 교인이 7~80명 모였습니다. 자꾸 다른 데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교회가 잘 되니까 여기는 다른 사람 보내고 자기는 개척교회 하는데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산으로 보냈습니다. 여기서 가서 전세로 2층 하나 얻어주고 보낸 것입니다. 보냈는데 가서 고생 많이 하면서 지금 70명 교인이 모인다고 합니다. 동래에서 좀 내려와서 있는 동산이라는 곳인데, 가보니까 아주 좋은 교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한순철 목사가 기도원에 있다가 자꾸 또 개척교회 하겠다고 해서 군포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군포에 있다가 또 다른 데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군포에는 꽤 모이니까 또 다른데 가서 개척교회 하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보내려고 했는데, 조금 있다가 천당가고 말았습니다. 그때 안 갔다면 요새 또 다른데 가서 할지 모릅니다. 그런 교역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아예 개척교회할 데로 보내달라고, 고생할 데로 보내달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목사 한 분은 자기 있는 교회가 자립을 하니까, 또 다른데 가서 개척교회 하도록 보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교인들도 편안히 잘 그저 힘들지 않고, 연보도 많이 안하고, 예배당도 안 짓고, 남이 다 지어놓은 데 가서 믿기 좋아하는 교인이 있는데, 그것은 다 썩어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생각하지 아니하고 육신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하늘나라 가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이 진리를 세워나가느라고, 진리를 세우기 위해서, 교회를 세우고 힘을 쓰고 희생을 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 나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광의 보좌에 앉는다고 하였습니다. 고난 많이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 가서 큰 자가 되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습니다.

남을 섬기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자

본문 41절에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왜 분히 여겼겠습니까? 저희 형제끼리 다 해먹겠다고 그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자기 형제끼리 다 앉으면 우린 뭘 해먹냐는 것입니다. 똑같은 판이 되었습니다. 죽을 사람은 한 배에 탄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좀 있었더라면 “어디서 배웠기에 저렇게 어리석어서 되겠는가? 아니, 하늘나라 높은 자리가 어디 그렇게 해서 얻을 줄로 아느냐? 주와 그 복음을 위해서 많이 수고하고, 많이 희생하고, 많이 고난 받아야 되는 것을 모르고 이것이 뭐냐?” 이랬어야 되겠는데, 분히 여긴 것을 보면 전부 믿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42절에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라고 하시며 이 세상나라 권세 잡은 자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나라에서 권세 잡은 자들은 남을 임의로 주관하고 또 대인들이라는 사람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지를 못하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43절에 이어서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다릅니다. 세상 나라는 어떻게 하든지 권세를 잡고 권세를 휘두르고 남을 임의로 주관하고자 합니다. 또 잘난 사람들, 대인들, 세상에서 큰 사람이라는 사람들이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은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 하늘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어떤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까?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을 섬기는 자가 하늘나라에는 크고,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사람이 으뜸이 된다, 즉, 하늘나라는 그런 자의 자리라는 말씀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하여 이 진리를 세우는 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을 섬긴 사람, 또 주님과 이 진리를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에게 종 노릇 한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큰 자입니다.

본문 45절에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셨습니까?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섬기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또 무엇을 하려고 오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왔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큰 자가 되는 길의 표본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이 제일 큰 자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을 섬기고 많은 사람을 위해서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우리 위해서 예수님께서 구속을 이루어 놓으시지 않았습니까? 우리 죄 값을 다 지불해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가질 의를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섬기셨고, 또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희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려고 오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주려고 오셨고, 섬기려고 오셨으며, 희생하려고 오셨고, 도와주려고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섬김을 받고 갔으면 유익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33년 동안 잘 대접받고 편안히 있다가, 하나님 아들이니까 세상에 와서 대접받고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높임을 받으시고 갔다고 하면, 하늘나라 가면 남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지 않는 것이 오히려 낫습니다. 이 세상에 와서 33년 동안 아무리 대접받았어도, 세계 제일 큰 대접을 다 받았어도 하늘나라 가면 남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섬기고 가셨는데, 섬긴 것은 남는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섬겨놓은 것은 남습니다. 봉사한 것은 영원히 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지요? 발 씻겨주신 것, 그것은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하늘나라 가서도 남아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목욕시켜주신 것, 주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겨주신 것은 영원히 하늘나라 가서 남아있습니다. 씻김을 받은 우리도 영원히 하늘나라 가서 남아있습니다. 얼마나 큰 것입니까? 대접받았으면 다 없어질 뻔 했는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고, 다 주고, 씻어주고 이렇게 하셨기 때문에, 구속해 주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이 제일 큰 자이고 또 영원히 섬긴 것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씻김을 받은 사람도 영원히 예수님과 관계가 되어있고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하늘나라는 섬기는 자가 크고 종이 되어야 크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몸소 그대로 행하신 말씀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을 위해서 섬겼고, 또 많은 사람을 대접했고, 많은 사람에게 당신의 피를 나눠 주셨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 제일 큰 자리, 높은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주를 위하여 봉사 많이 하고, 진리 세우기 위하여 많은 사람에게 종살이 하고, 많은 사람을 수종들고, 고난 많이 받고, 희생 많이 하고 가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교회에서도 알아줍니다. 교회에서도 주를 위하여 고난 많이 당한 사람, 또 주를 위해서 희생 많이 한 사람, 이 진리를 세우느라고 십자가 많이 진 사람을 참 교인들은 다 알아줍니다.

즉 말하자면, 스데반 같은 사람을 우리가 알아주잖습니까? 또 사도 바울 같은 사람 알아주잖습니까? 바울이 가만히 있었으면 부족한 것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또 모세 같은 사람 가만 앉아있으면 애굽 공주의 아들의 지위인데, 많은 재산과 많은 영광이 다 자기 것인데, 그러나 그것을 다 누리고 갔으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그거 다 내버리고 주를 위해서 고난 많이 받고 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모세는 이 세상 지상교회에서도 존귀한 자고, 하늘나라 가서도 존귀한 자입니
다. 모세는 편안한 것을 내버리고 갔습니다. 히브리서 11: 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받는 능욕과 고난을 더 좋아했습니다. 고난 받는 길,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길을 모세가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면 모세가 큰 자고, 이 지상 교회에서도 큰 자이고, 상급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바울도 가만히 있었으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바리새인 가운데 열심 있는 자로서 괜찮았습니다. 모든 사람보다 뛰어난 자였기에 살기도 잘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위하여, 이 진리 세우는 것을 위하여, 바울이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또 한 교회 세워서 편안히 목회했으면 바울이 편안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교회 세운 것이 아니라, 한 교회 세우면 또 다른 교회 가서 세우고, 그 다음에 또 다른 데 가서 세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여러 교회를 세우
고, 또 성경을 여러 권 기록하였습니다. 바울이 기록한 성경이 모두 13권입니다. 바울이 성경 기록하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했겠습니까? 또 교회 세우느라고 얼마나 수고 많이 하고, 얼마나 핍박 많이 받았습니까? 바울이 얼마나 고난 많이 받았는지 고린도후서 11 :23절에 나와 있습니다. 바울이 평안히 있을 수 있었습니다. 또 교회를 해도 한 교회에서 평안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이렇게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옥에도 많이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고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내고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큰 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닙니다. 다 주를 위해서 했고 모든 성도에게 봉사하느라고 한 것입니다. 진리를 세우느라고 했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여 그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한 것입니다. 택한 백성을 위한 봉사였습니다. 얼마나 이것 참 많이 봉사했습니까? 하늘나라 가면 바울이 큰 자가 됩니다. 최권능 목사가 교회
를 75개를 세웠다는데, 75교회를 이 세상에서 세웠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상당히 클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 큰 자는 주와 그 진리를 세우는 일과 성도들을 위하여 많이 섬기고 많이 희생하고 종살이 많이 하고 발 씻어주고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늘나라에 큰 자가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친히 이 길을 걸어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섬기려고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 주님의 몸을 희생해서 우리를 대속해 주려고 오셨고, 우리를 구원하려고 오셨고, 우리에게 의를 입혀주려고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봉사하셨고 발을 씻어주셨고 많은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에 가면 예수님께서 제일 높은 자리에 앉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어도 평안하게 믿겠다는 것은 썩어질 정신입니다. 썩어질 정신, 그런 정신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은 그저 징계나 밤낮 받다가 해 받는 구원이나 받습니다. 그러므로 썩어질 정신은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주를 위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겠다는 결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 봉사 좀 해야 되겠다, 이 진리를 세우는 일에 봉사 해야겠다고 해야 합니다. 어떤 봉사든지 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늘나라에 남아 있습니다.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고 다른 사람 가르치려고 애를 쓰고…,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전도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또 기도할 때,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기도해야 됩니다. 기도하는 일과 같은 믿는 일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이런 사람입니다. 많이 섬기는 자입니다.

남을 많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많이 도와주는 사람이 됩시다. 물질로 도와주는 것도 되지만, 영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다른 사람의 구원에 유익이 되게 하고, 약한 사람을 붙들어주고,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또 복음을 전해 주고, 진리를 세워주고, 어두운 세상에서 진리가 뭔지 알지 못하는 때에 진리의 등불을 높이 들어서 이 세상에 바른 진리를 증거 해 주고, 여기에 봉사하고 희생하고 종살이하고, 이런 일 많이 하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것을 하려고 오셨고, 이것 하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이 일 하다가 이 세상일 끝마치는 자가 되면 큰 복이 있는 사람이 됩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습니다. 영광스러운 보좌에 앉는 것입니다.

하루라도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말고 한 달이라도 헛되이 시간 보내지 마십시오. 일 년 헛되이 보내면 안되겠습니다. 얼마나 많이 봉사했습니까? 주와 이 진리 세우는 것을 위해서 얼마나 내가 봉사 많이 했는가, 얼마나 십자가를 졌는가, 잔을 얼마나 마셨는가, 얼마나 세례를 받았는가, 이것을 반성해 보십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헛되이 보내지 말고, 주를 위해서, 이 진리를 세우는 것을 위해서, 모든 성도들의 구원 이뤄나가는 것을 위해서, 우리는 고난의 잔을 마시면서, 세례를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종살이하고 섬기고 예수님을 뒤를 본받아서 많은 사람에게 주고 도와주는 그런 자리에 서야 되겠습니다.

3. 소경 바디매오가 눈을 뜨게 됨 (46-52)

본문 46절에 소경 바디매오라는 사람이 길가에 앉았다가 여리고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말은 그리스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여’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 가운데서 난다고 했으니까 “그리스도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많이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더욱 소리 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서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소경을 부르니까 왔습니다. “안심하라. 너를 부르신다” 하고 그 사람을 데려왔습니다. 소경이 겉옷을 내버려두고 왔습니다. 언제 뭐 겉옷 입을 시간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라고 하시니까 너무 기뻐서 겉옷을 버려두고 일어나서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했습니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시니까 소경이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아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소경은 그리스도를 한 번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한 것이 분명하고, 또 자기의 눈 뜨기를 간절히 사모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만나면 반드시 내가 눈을 뜰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믿고 간절히 사모했는데, 하루는 그리로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열심히 부르짖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잠잠하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방해하는 것을 다 이겼습니다. 방해하는 세력을 이기고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절히 사모하니까, 예수님께서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 할 때에, “주여 보게 해 주십시오.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소경은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또 눈 뜨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뜨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눈 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인줄 믿고 간절히 사모하고 간구했습니다. 이만큼 예수님을 사모하고 이만큼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간구하면 예수님께서 버리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눈 뜨게 했느니라’ 하지 않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했다는 말씀입니다. 

소경이 이렇게 예수님을 간절히 보기를 사모하고 또 예수님을 눈 뜨게 해줄 능력이 있는 주님으로 믿고 간절히 간구했기 때문에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심령의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눈도 그 다음에 떴습니다. 

소경이 어떻게 이렇게 그리스도를 사모했을까요? 다른 사람보다 더 사모했습니다. 또 더 부르짖었습니다. 눈뜨게 해달라고 더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자기가 소경된 까닭에 이렇게 사모한 것입니다. 소경 안 된 사람은 사모할 것이 없습니다. 소경이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사모하고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였고, 소경됐기 때문에 눈 뜨게 해줄 능력이 있는 주님으로 믿고 불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의 눈을 떴습니다. 육신이 소경되었기 때문에 이 사람은 영의 눈을 뜨고 구원 받았고 육신의 눈도 떠졌습니다. 육신이 소경 안 된 사람은 속에 사모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영의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영적 소경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9:39-41에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라면 영혼의 눈을 뜨고 영적 구원을 받고 육신의 구원도 받을 뻔 했는데 너희가 본다고 하기 때문에 그만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했습니다. 죄 사함도 받지 못하고 영적 병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소경 되었던 사람은 소경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예수님을 영접했기 때문에 영적 구원도 받고 눈도 떴습니다. 다 되었습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집니다.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가 부족한 줄 알고, 간절히 사모하고 간절히 매달리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이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2017년 10월 23일 월요일

마가복음 10:17-31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가복음 10:17-31

17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꿀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
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0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1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24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25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6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27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28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29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30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지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31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1. 영생문답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께서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영생문제에 대한 문답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을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인간 칠십은 고희(古稀)라고 했는데, 성경에 우리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시 90:10). 또 인간 수명이라는 것
은 잠시 잠깐 다 지나갑니다. 볼 수 없이 갑니다. 화살과 같이 빠른 세상이고, 유수같이 빠른 세상이고, 잠깐 지나가고 마는 아침 안개와 같은 이런 세상이라고 하였습니다(약 4:14). 그래서 영생을 얻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현세에서 사는 것, 현실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이 영생할 수 없을까?’ 하는 영원히 사는 문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잘 됐다고 해도 잠깐 지나가고 맙니다. 진시왕은 불로초를 구해다 먹고 죽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래도 죽고 말았습니다. 불로초를 아무리 갖다 먹어도 죽고 마는 것입니다. 늙지 않는 풀이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이 세상에 왔다 가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계명을 지킴으로 영생을 얻지 못함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는 이것이 중요한 영생문제입니다. 어떤 젊은 사람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다가, 예수님에게 와서 한번은 ‘영생문제를 근본적으로 물어봐야 되겠다’라고 찾아와서, 꿇어앉아서 겸손히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 답변하시기를, “선한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는데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만 선합니다. 하나님이 절대 선이시고, 하나님과 맞는 것이 선이고, 하나님과 맞지 않는 것은 다 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선한 이가 없는데, 왜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고 하십니다.

본문 19절에 예수님께서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마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하시니까, 그 사람이 뭐라고 답변했습니까? 본문 20절에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이 나오게 하려고, 이제 그 계명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 계명을 잘 지켰습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고, 속여 빼앗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였습니다. 영생을 얻으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 많은 노력을 하고 힘을 많이 썼습니다.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영생문제 때문에 계명 지키려고 힘을 많이 쓰고 노력하는 것을 예수님께서 이미 아시고,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하는 말이 나오게 하려고 하셨는데, 마침 그 대답이 잘 나왔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그것 가지고는 안 된다”라고 하시면서 그 지킨 것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네가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켰지만 그것 가지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다”라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본문 21절에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사랑하셨습니다. 왜 사랑하셨습니까? 영생문제를 위해서 이렇게 힘쓰는 것이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앞에 와서 물어보는 것을 보니 귀하다는 말씀입니다. 영생 얻으려고 애쓰고 사모하고, 그 길을 바로 찾으려고 겸
손히 이렇게 와서 물어본 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바로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또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없이 그저 예배당에 와서 멀찍이 앉았다가 달아나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하든지 “내가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야 되겠다”,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 “기도를 좀 해야겠다”, “하나님의 진리를 좀 찾아야 되겠다”, “하나님을 찾아야 되겠다” 하고 사모하는 마음, 또 “바른 진리를 배워야겠다”, “진리가 무엇인가?”, “생명이 살아야 되겠다”, “영이 살아야겠다” 같이 이렇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사모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십니다. 사모하는 마음 없이 그저 예배당 왔다 갔다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시간 반시간 전부터 교회 나와야 합니다. 아예 일찍 나오라는 말씀입니다. 준비 기도를 좀 많이 하고, 사모하고, 아예 토요일부터 준비해야 됩니다. 주일 준비는 토요일부터 해야 됩니다. 토요일 날 아예 주일 지킬 준비를 다 하고, 토요일도 일찍 자고, 주일날에 새벽기도 참여하려 하고, 그리고 예배시간 전부터 나오고 하는 것이 사모하는 것입니다.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나오십시오. 성경 공부하는 시간에 왜 안 나옵니까? 주일날 무엇을 합니까? 성경 공부 10시 10분부터 하는데, 공부시간에 내내 나와서 참여한 사람은 성경 많이 배웠습니다. 사실 신구약 성경 다 배웠습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구약 말라기까지, 또 마태복음에서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까지 다 배우고, 두 번째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두 번째 공부하는 것인데, 주일날 10시 10분에 나와서 한 시간씩 성경 공부한 사람은, 한 20년 동안 신구약 성경 다 배웠습니다. 안 나온 사람은 어떻습니까? 안 나온 사람 하나도 모릅니다. 사모하지 못하면 받지 못하고, 사모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이렇게 길을 열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 배우려고 사모하십시오. 영이 살려고 하고 사모하려고 해야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우상을 버리고 나를 좇으라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니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 얻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물었는데,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것이 ‘영생 얻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에게 잘못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에게 잘못된 것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말한 것이 잘못된 것인데,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줄 알고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뭘 해야 되겠는지를 찾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무엇인가 행해서 영생 얻으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노력을 한 것이 잘못 되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온 목적도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면서, 뭘 해야 하는지 영생 얻을 길을 가르쳐달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행해서 영생을 얻으려고 한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사람이 영생 얻으려고 무엇을 행했습니까?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증거하지 않고, 속여 빼앗지 않고, 부모 공경하였습니다. 이것을 해서 영생 얻으려 했다는 말입니다.

그것을 해서 영생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다 해 봐야 그것이 영생길이 아닙니다. 영생 얻는 사람이 계명을 지키면 빛이 되는 것뿐입니다. 빛,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빛이 되는 것뿐이지, 아무리 행해도 그 자체가 ‘영생’ 은 아닙니다. ‘영생’ 은 영이 사는 것이고, 또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적 생명의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고 하늘나라를 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죽었던 영혼이 중생해야 되고,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해야 되고, 예수님과 교통해야 됩니다. 영생 얻는 길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영생이십니다. 즉, 예수님을 자기 심령 속에 모셔 들이고, 믿음으로 모셔 들이고, 예수님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예수님과 연합하고, 예수님과 교통하는 그것이 영생입니다.

요한복음 17:3에,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라고 했는데, 영생이라는 것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을 알고, 그가 보내신 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영생이십니다. 예수님이 영생이시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을 자기 생명으로 삼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과 교통하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 영생이고,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임을 받는 것이 영생이고,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영생입니다. 자기 영이 사는 것이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인데, 이 사람에게 첫 마디에 이것을 가르쳐 주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영생이다” 라고 가르쳐 주시는 대신 먼저 “계명을 네가 알지 않느냐?” 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주라” 고 하시고, 그 다음에는 “나를 좇으라” 고 하셨습니다. ‘나를 좇는 것’ 이 ‘영생 길’ 입니다. “나를 좇으라” 가 영생길입니다.

예수님을 좇는 것이 영생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나를 좇으라”고 바로 가르쳐 주시지 않고 그 말씀을 하시기 전에 왜 여러 말씀을 하셨을까요? 사실은 ‘예수님을 좇는 것’ 이 영생인데, 바로 ‘나를 좇으라’ 고 하시지 않고, “네가 계명을 어떻게 배웠느냐? 네가 어려서부터 그것 다 힘쓰지 않았느냐?”, 또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 는 말씀을 왜 하셨습니까?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시기 전에 말씀하신 두 가지, 즉, 계명 지킨 것과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것은
영생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계명에 대한 죄를 회개하고 돌이켜야만 예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고, 재물이 우상이 되어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나를 좇으라” 고 말씀하시기 전에 두 가지를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뿐만 아니라, 우상을 버려야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따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둬 두고는 죄가 가로막혀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또한 우상을 가지고 있으면서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또 몇 가지 선을 행한 일이 예수님 따르는데 방해가 됩니다. 그것도 내려놓아야 됩니다. 살인하지 않고, 간음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또 속여 빼앗지도 않고, 부모 공경했던 것이 다 좋은 일인데, 그것도 예수님을 따라가는 데에는 방해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선을 행한 일이 왜 예수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됩니까? 속에 있는 것을 다 내 놓아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있는 것을 내 놓아야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지, 속에 그대로 담겨 있으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습니다. 병에 기름을 넣으려고 하면, 병에 먼저 있던 것을 다 내 놓아야 됩니다. 병에 먼저 있던 것들 중에서 나쁜 것도 다 내 놓아야 되고, 병에 담긴 좋은 것도 다 내 놓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이 귀한 생명수를 그 속에 담으려고 하면, 자기 속에 먼저 담겨 있던 것이 아무리 좋아도 다 쏟아내야 이 생명수를 담을 수가 있습니다. 자기 속을 비워야 합니다. 빈병을 가지고 나와야 담을 수 있습니다. 참기름 병에 참기름도 다 쏟아놓고, 들기름 병에 들기름도 다 쏟아놓고, 식용유도 쏟아 내놓아야 합니다. 병에 있는 무엇이든지 다 쏟아내야 됩니다. 담아놓고 있으면 거기에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가 자랑하던 것을 다 쏟아 내 놓아야 들어가지, 자랑하던 것이 그대로 담겨 있으면 안 됩니다.

“나는 바리새교인이다”, “이래에 두 번씩 금식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 “학벌이 좋다”, 이런 것들을 쏟아 내놓지 않으면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나는 십일조를 잘 드렸다”, “나는 또 뭘 잘했다”, 이런 것을 다 쏟아 내놓아야 생수가 들어가지, 그냥 속에 그대로 담아가지고 다니면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십일조 드렸다”, 또 “음란하지 아니하고 토색하지 아니했다”, 또 “세리와 같지 않다” 이런 것들은 물론 다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것들 때문에 그 사람은 예수를 못 믿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려면 그런 것들을 내놓아야 됩니다. 나쁜 것을 내놓아야 하고, 좋은 것이라도 속에 담아놓고 자랑으로 삼으면 그 속에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속에 있는 것은 다 내놓으라는 말씀입니다. 다 내놓고 빈 마음이 되어야 됩니다. 빈병이 되어야 그 안에 생수가 들어갑니다. 빈병을 가지고 나오십시오. 마음을 비워서 나와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죄도 물론 내놓아야 되고,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 자랑할 만한 것들, 빛나는 것들, 또 좋은 것들, 전부 다 내놓아야 속에 생수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속에 뭔가 좋다는 것들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 잘 못 믿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예수 잘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6부터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 자 가운데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잘 믿는 문벌 좋은 자는 극소수입니다. 육체의 것을 내놓지 못하니까 못 믿습니
다. 그것을 내놓고 믿어야 되겠는데, 안 놓으니까 못 믿는 것입니다. 다 내놓고 믿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고린도전서 1:27-29에,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천한 것, 멸시받는 자들, 또 아무것도 없는 자들, 약한 자들, 미련한 자들, 이런 사람을 택해서 그 속
에 예수님의 생수를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만들어 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육체로는 자랑하지 못합니다.

그렇게 ‘있는 것’ 이 방해물입니다. 있는 것, 과거에 내가 자랑하던 것, 좋아하는 것, 이것이 전부 장애물입니다. 영생의 세계로 가려고 할 때에 그것들이 전부 방해물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 3:5-8에서,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이라고 하며,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라고 말합니다. 과거에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전부 해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하나 얻는 데에는 전부 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난지 팔일 만에 할례 받은 일과, 양반 지파인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인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도 양반행세 하려는 사람들은 예수 믿기 힘듭니다. 양반 자리 다 내놓아야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나는 양반이다” 하고 돌아다니면 예수 못 믿습니다. 껍데기만 믿지, 속에 예수가 안 들어갑니다. 양반이 빠져 나가야 예수가 들어갑니다. 양반이 좋은 것 같아도 예수님 믿는 데에는 큰 방해물입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으로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이 아주 드뭅니다. 초등학교, 고등학교까지는 교회 잘 나오지만, 대학교 들어가기 시작하면 이제 교회 잘 안 나옵니다. 대학교도 좋은 대학교 가면 그만큼 교회 잘 안 나옵니다. 극소수만 나오고 나머지는 교회 잘 안 나옵니다. 다 떨어집니다. 왜 떨어지는가 하면,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의 생수를 받아들이려고 하니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들어 올 때는 다 떼어 놓고 들어와야 됩니다. 또한 기독교에 들어 올 때, 믿음의 세계에 들어 올 때는 다 떼어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들어 올 때는 세상의 좋은 학벌, 양반, 무슨 기술자, 높은 지위, 군인들은 계급장, 칼자루 다 떼 놓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어서 들어와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들어오면 안 됩니다. 전부 큰 방해물들입니다. 본문의 이 사람이 몇 가지 계명 좀 지켰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까 하고 생각을 했는데, 예수님한테 오니까 그것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다 내놓아야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가지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주고, 그리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돈이 많았습니다. 재물이 많다고 했는데, 재물이 많으니까 그 재물이 걸려서 생수가 못 들어갑니다. 재물이 속에 가득 찼으니까 예수님의 생수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 재물을 다 내놓아야 예수님의 생수가 들어갑니다. 생명의 생수가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재물이 방해물입니다.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럼 둘 다 가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따르면 어떻겠습니까? “왜 재물 내놓고 예수를 따르라 그러시는가?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따르면 좋을텐데, 그럼 예수님 위해서 필요할 때 꺼내다 쓸 수 있는데, 그걸 왜 내놓고 오라고 하시는가?”라고 물어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주라는 것은 필요한데 쓰라는 말씀입니다. 네 재물을 필요한데 사용하고, 그러고 나서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두 가지 다 가지고는 안 됩니까? 재물도 가지고 예수님도 붙들고 하면 좋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십니까? 세상 것도 붙들고 예수님도 붙들고, 한 손에는 세상 것 다른 한 손은 예수님, 한 손은 재물 다른 한 손은 예수님, 한 손은 세상 학(學), 학벌을 붙들고 다른 한 손은 예수님, 그렇게 둘 다 붙들면 어떻게 됩니까? 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까? 할 수 없다고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한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라며 둘은 안 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만 섬겨야 됩니다. 예수님이냐? 재물이냐? 둘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둘은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재물, 둘 다
가지고 가려고 하면 그것은 낙제입니다. 예수님에게 낙제입니다. 하나만 가져야 이것이 진짜입니다. 둘 다 가지려는 사람은 언젠가 낙제될 날이 옵니다. 시간문제입니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어느 것이 원업(原業)이냐? 원업이 무엇이고, 부업이 무엇이냐? 무엇을 하는 데에 자신이 열중하려고 하는지, 
첫째가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둘 다 첫째일 수 없고, 반드시 첫째는 하나뿐입니다. 재물이 첫째이면 그것은 예수님을 벌써 내버린 것입니다. 세상 것, 다른 무슨 세상 명예 영광이나 권세나 학벌이나 이런 것이 첫째이면, 벌써 예수님을 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직장이 첫째면, 벌써 예수님 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첫째면 믿는 것이고, 첫째가 아니면 예수 못 믿습니다. 예수님 못 따라갑니다. 첫째가 세상의 것이면 바꾸어야 됩니다. 믿는 것이 첫째야 되어야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첫째입니다.

직업 가운데 무엇이 첫째입니까? 무슨 직업이 첫째입니까? 세상 직업이 첫째이면 안 됩니다. 농사하는 것, 돼지 먹이는 것, 소 치는 것, 무슨 공장하는 것, 무슨 기술, 무슨 사업, 이 세상 직장, 장사, 수출, 이런 것이 첫째가 되면, 그것은 벌써 예수님을 내버린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은 바지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바지 껍데기 교인’ 입니다. 집사는 바지 껍데기 집사입니다. 성은 ‘껍’ 이고 이름은 ‘데기’, 껍데기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첫째여야지, 이 세상 것이 첫째
고 둘 다 가지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거나 하나 택하십시오. 괜히 사정 딱하게 그러지 말고 어느 것이 첫째인지, 믿는 것이 첫째면 아예 믿고, 세상이 첫째면 아예 세상으로 나가십시오. 그만 두십시오. 되지도 않을 것을 해서 괜히 그런 껍데기 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가보십시오. 조금 있으면 저주 받아 망하게 됩니다. 저주 받아 망해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것을 첫째로 하고, 믿음에 열심을 내어 대어들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2. 영생을 얻고 백배나 받는 법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

본문 23-27절에 “예수께서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심히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이건 실제로 ‘바늘귀’ 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구원을 얻겠습니까?” 물으니까,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만능이다” 라고 하시며, 하나님 앞에 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른 것들 다 내놓고 오기만 하면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 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게 해주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이니까 할 수 없다’ 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할 수 없다’ 고 생각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려고 들러붙어서 힘을 쓰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할 수 있게 해주십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자에게 백배로 갚아주심

본문 28-30절에 “베드로가 여짜와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라’ 는 것입니다.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 그 복음을 위하여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예수 따라가느라고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예수를 위해서 버린 것입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갔는데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본문 30절에 금세에서, 이 세상에 있어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몇 배나 받았습니까? “백배나 받되”, 백배나 받습니다. 버리고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백배나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안 버리면 예수님 못 따라가고,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또 세상 것도 잃어버립니다. 둘 다 잃어버립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다가, 중간에 다른 것을 첫째로 여기면서 따라가느라고 예수님을 못 따라가면,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마지막에는 따라가던 세상 것도 잃어버립니다. 둘 다 잃어버립니다. 반드시 잃어버립니다. 그러나 다 내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예수님도 얻고, 예수님 따르느라 버린 것들도 백배나 더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을철 목사의 백배 더 받은 경험

어떻게 백배나 더 좋은 것을 주겠습니까? 제가 늘 심을철 목사의 경험담을 말했는데, 심을철 목사가 신사참배 안 하려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심목사의 어머니는 예수님을 안 믿었다는데, 하루는 감옥에 와서, “네가 신사참배 하고 나오면 나도 예수 믿겠다” 고 하시며, “네가 신사참배 하고 나오면 나도 예수 믿고 천당 같이 가자. 너 혼자 가려느냐?” 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심을철 목사가 자기 어머니가 와서 예수 믿겠다는 바람에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제가 다른 것은 다 순종해도 이건 할 수 없습니다” 라면서 “신사 참배할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어머니가 “나 지옥가도 좋으냐?” 고 하셨고, 심을철 목사는 “그래도 전 양보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나는 지옥 간다. 너 혼자 천당 가라. 나는 지옥 간다. 지옥 간다...”하고 울면서 집으로 가셨답니다. 그것을 보고 형사들이 구두 발로 머리를 자꾸 때리면서, “대가리가 공구리통 같은 새끼야, 넌 부모도 없고 돌짬(갈라진 돌과 돌의 틈)에서 나온 새끼냐?” 하면서 매를 많이 때리고, 심목사는 다시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년 있다가, 1945년 8.15 해방이 되어서 심목사는 감옥에서 나왔습니다. 일본이 망하고 나서 나왔습니다. 심목사가 나온 다음에 그의 어머니가 “야 네가 나오는 것을 보니까 진짜 하나님이 계시다. 나도 믿어야 되겠다” 하면서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나올 수 없는 아들이 나왔다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분명히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심목사가 모친에게 물어봤답니다. “이전에 감옥에 와서, 내가 신사참배하고 나오면 예수 믿겠다고 어머니가 그러셨는데, 그것 진짜 믿으려고 그러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니까, “믿긴 뭘 믿어. 너 나오라고 그랬지” 하며 그 때는 믿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감옥에서 고생을 하니까 너무 애처로워서, 아들 빼내오려고 수단을 꾸민 거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너 나오면 믿는다” 는 것은 수단으로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에 신사참배 하고 감옥에서 나왔다면, 예수님도 잃어버리고, 어머니도 더 마귀 섬기는 어머니가 되어서 더 안 될 뻔 했는데, 그때 진리를 양보하지 않고 예수님만 따라가려고, 아예 양보하지 않고 말씀만 따라갔는데, 그 이후에 8․15 해방이 돼서 일본이 망한 다음에 나오니까, 어머니가 참으로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깨달아 발견했다는 말씀입니다. ‘일본 망하는 것이 하나님 역사 아니면 어찌 망하겠는가?’ 하면서 진짜 믿었다는 말씀입니다.
그 후에 심목사의 어머니가 참 잘 믿은 모양입니다. 믿은 다음에 보니까, 자기 어머니가 믿기 전의 어머니보다 백배나 더 낫더랍니다. 믿기 전엔 우상이나 섬기고 다니셨는데, 이젠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의 딸이 됐으니까 백배나 낫더라는 것입니다. “백배나 준다” 는 말씀은 어머니 백 사람을 준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믿기 전의 어머니보다 예수 믿게 된 어머니가 백배나 낫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백배나 주신다’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다

예수 없이, 큰 고래 같은 기와집, 고래 같은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예수님 모시고 초막에서 사는 것, 그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예수 없이 죄짓는 친척하고 사는 것보다, 예수님을 모시고 혼자 살다가 나중에 친척이 예수님 믿게 되면 백배나 나은 친척이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습니다. 예수 없는 곳보다, 예수 모시고 사는 곳이 백배나 낫습니다. 그러니까 다 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첫째로 영생을 얻고, 자기 영혼이 살고, 다른 것은 백배나 나아지도록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예수 믿으면 믿기 전보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믿으면 하나님께서 영생도 주시고, 예수님 따라가면 다른 것들도 백배나 낫게 만들어주십 니다. ‘백배나 낫게 만들어준다’ 는 것을 체험해 본 사람은 다 알 것입니다. 체험해 보면 반드시 백배나 낫게 해주십니다. 예수님만 믿으십시오. 예수님만 믿으면 다른 것들 다 더해 주십니다. 둘 다 가지려 하면 둘 다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둘 다 가지려 하면 둘 다 잃어버리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둘 다 주십니다. 예수님도 모시고, 생명이 되고, 다른 것들도 백배나 낫게 되어서 온다는 말씀입니다. 세상 것도 필요한 건 다 주십니다. 예수님만 따라가면 다 주십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지 않으면 나중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있는 것을 팔아서 구제하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는데, 병에 있는 것을 다 내버려야 합니다. 나쁜 것도 내버리고, 좋은 것도 다 내버려야 거기에다가 생수를 담을 수 있습니다. 돌 감람나무에서 가지를 잘라야, 참 감람나무에 접붙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자르지 않으면 접붙일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에 접붙이려면, 과거에 있던 것을 잘라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예수님의 생명에 접 붙어서, 생명의 진액을 받아서, 생명이 살 수가 있습니다. 육에 것, 세상의 것을 내놓아야, 신령한 것, 영생의 것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백배나 더 낫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백배나 더 주십니다.

그리고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리라”고 하셨는데, 내놓지 못하면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다 내놓고 따라가면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십니다. 다 내놓고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나중 된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먼저 믿었지만 나중 되고 관두게 됩니다. “백배나 더 받고”라는 말씀은 다 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백배나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따라가는 것을 내놓고 세상을 따라가면, 점점 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마지막엔 진리도 다 잃어버리고, 심령이 죽고, 영의 역사가 죽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반드시 심판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떠나서 세상 것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생명이 없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없고, 또 다 썩어질 것이고, 다 내놓고 갈 것들 입니다. 세상 것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다 쇠퇴하고, 거기에는 생명도 없고, 평안도 없고, 그것 가지고는 즐거움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예수를 믿어야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무슨 소망이 있습니까? 나가서 돈 많이 벌었다, 높은 지위를 가졌다, 무슨 국회의원이 되었다, 장관이 되었다,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들이 무슨 소망이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이고, 노동자도 하루 밥 세끼 먹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돈 많은 사람도 하루 밥 세끼 먹다가 죽는 것입니다. 또 노동자도 하루 밥 세끼 먹다가 죽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 많이 한 사람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또 공부 못한 사람도 그저 일하고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는 잠깐 지나가고 마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 타고 다녀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밥 세끼 먹다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더 건강합니까? 걸어 다니는 사람이 더 건강합니다. 걸어 다녀야 건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할 수 없어서 타고 다니는 것이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지난 주간에는 기도하기 위해 고천 기도원에 나가 있었는데, 하루는 한번 걸어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걸어가야 건강하지 가만 앉아 있으니까 안되겠기에, 고천 정류소 쪽으로 나가서 고천 의왕 시청으로 돌아서 닭장 있는 데로 걸어서 올라왔습니다. 45분 걸렸습니다. 기도원에서 동쪽으로 가서 시청 앞쪽 큰길로 돌아서 오산리 쪽으로 오는데 45분이 걸렸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묻길래,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했더니, 좋은 운동했다는 겁니다. 하루 45분 걷는 게 좋다고 합니다. 김세빈 목사는 달라스에 가 있는데, 거기에 한목사라고 있습니다. 한목사님 금년에 74세인데, 하루에 큰 건물 2개가 있는 데에서 아침에 일곱 바퀴, 저녁에 일곱 바퀴 돈다고 합니다. 걸어서 도는 것입니다. 일곱 바퀴 도는데 40분 걸린답니다. 아침에도 40분, 저녁에도 40분 걷는다고 해서, 김세빈 목사도 나가서 한 목사와 함께 걸으라고 그랬습니다. 김세빈 목사가 얼마 전에 전화로 말하기를 자기도 나가 돌고 들어온답니다. 사실은 걷는 거 40분 정도 아침만 한번 돌아도 큰 것입니다. 걸으십시오. 좋은 차 타고 다니는 것보다 걷는 게 더 좋은 것입니다.

하루 밥 세끼 먹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노동자가 사실은 더 건강하고, 아무리 돈 많아도 밥 세끼 먹는 것입니다. 별것 없습니다. 고생만 더 많습니다. 일이 많으면 근심도 많고 걱정도 많습니다. 요새 사장님들, 큰 회사 회장님들에게, 노사분규가 일어나서 노동자들이 데모하고, 파업하고, 머리에 뻘건 수건 잘라매고 와 앉아가지고 “해보자”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것 보기 싫어서 사업 못하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걱정되겠습니까? 수출은 안 되지, 물가는 올라가지, 노
동자들이 자꾸 돈은 더 달라고 하고, 회사 운영은 어렵고, 그러니까 그 회장님들 사장님들 밤잠 못잘 것 같습니다.

3.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는 법을 배우라

성경대로 예수님을 따라가라

영생문제, 즉,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의 대답은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을 따라가야 된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됩니다. 기도하고, 가까이하고, 또 따라가는 법을 배워야 됩니다.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워야 됩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바로 따라가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믿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경 다 제쳐놓고 믿습니다. 예수 믿긴 믿는데 추도예배하고 우상 섬기고, 무덤에 가서 절하고, 주일날 안 지키고, 별의 별것을 다하며 믿습니다. 목사들은 술 먹는 목사, 맥주 먹는 목사, 콜라 먹는 목사, 이렇게 ABC가 있다는데, A급은 알콜, 술 먹는 사람이고, B급은 맥주, C급은 콜라, 이렇게 목사들도 ABC로 갈라놓는 답니다. 그래서 “A급입니까? B급입니까? C급입니까?” 하고 물어본답니다. C급이라 하면 콜라 주는 것이고, A급이라 하면 위스키 같은 좋은 술 주는 것이고, B급이라 하면 맥주 주는 것이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주일 하나 제대로 안 지키고, 술 먹고 하는 이것이 믿는 것입니까? 거짓말하고, 속이고, 사기횡령하는 이것이 믿는 것입니까?
이번에 국회의원들 40명 구속됐는데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사람이 왜 그렇게 뇌물 받아 먹다가 감옥에 들어갑니까? 그게 믿는 것입니까?

그럼 어떻게 하여야 예수님을 바로 믿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성경을 바로 배우고 성경대로 믿어야 됩니다. 성경대로 예수를 따라가야 진짜 따라가는 것이지, 성경 다 제쳐놓고 따라가는 것은 예수 따라간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말씀이고 예수님의 뜻인데, 그 뜻을 어기면서 따라 간다는 것은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이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어도 바로 믿고 말씀대로 따라가야지, 성경을 어기며 따라가는 것은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가라

또 따라가도 열심히 따라가야 됩니다. 한 시간도 빠지지 말고 열심히 나와서, 예수님을 좀 더 가까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가까이 하려고 할 때는 일찍 나옵니다. 맨 앞에 나와 앉아있습니다. 그러나 차차 식어지면 중, 가운데 앉았다가, 또 3분의 2 뒤로 갔다가, 그 다음엔 맨 뒤에 가서 앉아있습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점점 뒤로 가는 겁니다. 열심이 들 땐 앞에 나와 앉았다가, 차차 뒤로 갔다가, 그 다음엔 아주 뒤로 갔다가, ‘아차차’ 하고는 뒤로 나가 자빠지는 것입니다.
이것 참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열심을 내어 앞에 나와 앉으려고 하여야겠습니다. 예배시간 전에 나오고, 새벽기도 나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든지 예배시간 빠지지 말고 나오도록 애를 써야 하겠습니다.

장사하느라고 삼일(수요일)저녁 예배에 안 나오는 사람도 있는데,장사해서 돈 얼마나 법니까? 삼일예배도 안 오고 그렇게 장사해서 돈 얼마나 쌓아놨습니까? 또 쌓아놨으면 뭘 합니까? 그것을 가지고 뭘 합니까? 예배시간 안 지키고 돈 벌어서 쌓아놓으면 뭘 하겠습니까? 그 돈이 자기 생명이 되겠습니까? 돈 좀 적게 벌더라도 가게 문 닫고 어떻게 하든지 예배시간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고 예수님을 배우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또 공부하느라고 예배시간 안 나오고 삼일예배 안 나오는데, 공부 중지하고 삼일예배 다 나오십시오. 삼일예배 다 참석하고 나서 공부하는 것, 그것이 진짜 제 공부입니다. 예배시간 다 빠져먹고 한 것은 제 공부 아닙니다. 그렇게 공부만 한다고 해서 좋은 학교 붙는 것도 아닙니다. 삼일저녁 예배 꼭꼭 다 나오고도 좋은 학교 붙는 사람 많이 있습니다. 삼일저녁에 한 번도 안 빠지고 나왔는데, 이대 붙은 사람 또 서울대학 붙은 사람도 있습니다. 삼일 저녁 다 잘라먹고 공부한다고 해도 학교 못 붙은 사람도 있습니다.

믿는 일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세상 공부 한 다음, 그저 하나님께서 붙게 해주시면 붙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떨어지면 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아래 학교로 낮춰서 붙으면 됩니다. 다 좋은데 다녀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는 것이 좋은 학교 나온 것에 있는 게 아닙니다. 대학 나와야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습니까? 50억인가 55억인가 된다는데, 대학 나온 사람 얼마나 되겠습니까? 100분의 일도 안 될 것인데, 그러니까 대학이 우상이 되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예수 따라가서 영생 얻는 것이 중요한 줄 알고, 예수를 따라갈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도 살고, 예수님도 얻고,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백배나 좋게 해주십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잘 못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잡곡밥을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이고, 잡곡밥에다가 김치 쪼가리 해 먹어도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아무리 소를 잡아놓고 고량진미(膏粱珍味)를 먹는다고 해도 예수님이 없으면 거기는 지옥입니다. 한숨만 푹푹 쉬고 그렇게 사는 지옥생활입니다. 어디든지 초막이나 판잣집이나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잡곡밥을 해먹고, 그릇이 없어서 바가지에다 물 떠다 먹고, 베개가 없어서 팔꿈치를 베고 자도 거기가 하늘나라입니다. 예수님 모시고 사는 곳, 이러한 믿음으로 사는 곳이 하늘나라입니다.

2017년 10월 22일 일요일

마가복음 9:1-29 기도 외에는 이런 유를 나가게 할 수 없느니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기도 외에는 이런 유를 나가게 할 수 없느니라
마가복음 9:1-29

1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저희에게 나타나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거늘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저희가 심히 무서워하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계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저희가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이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의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가라사대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14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15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17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귀신이 어디서든지 저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내가 선생의 제자들에게 내어 쫓아 달라 하였느나 저희가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저가 땅에 엎드러져 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오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
니 이에 일어서니라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1. 기도의 능력

기도만이 이런 류를 나가게 할 수 있다

이런 류는 귀신을 이기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귀신의 종류는 사탄, 마귀, 사귀, 악귀 등이 있는데, 모든 시험, 환난, 죄는 마귀의 역사로 일어나며, 사람 속에 있는 부패성도 마귀 충동으로 일어납
니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우상 숭배, 또는 혈기와 분노”(골 3:5) 그리고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롬 13 :13) 같은 것도 다 마귀의 충동으로 일어납니다.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심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실 때, 한 사람이 귀신들린 아이를 데리고 와서 고쳐달라고 간구하면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고쳐달라고 하였으나 그 제자들은 능히 고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책망하시며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오래 있으며, 너희를 가르치고 참았는데, 그 귀신 하나 내어 쫓지 못하였느냐” 고 책망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아이를 데리고 오라” 하실 때에 귀신이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며, 땅에 엎드려져 굴며, 거품을 흘리게 하며,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고쳐 달라고 간절히 구하면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라고 간구 할 때에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게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갔습니다. 곧 그 아이는 죽은 것같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아이가 죽었다 하였으나,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섰습니다. 귀신 들렸다 나은 아이와 그 아버지,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돌아간 후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만이 귀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기도만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귀신은 사람보다 강하기 때문에 사람의 힘이나 사람의 수단 방법을 가지고는 절대로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이 아무리 강하여도 귀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귀신보다 강합니다. 그러므로 귀신을 내어 쫓으려면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마귀를 이기려면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의 힘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로서만 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이 머물게 되어 하나님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도할 때에 유의할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잠언 28:9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고 하였습니다.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리고 있으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사 59:2). 즉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면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고, 하나님의 만능이 함께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하여 정욕으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4:3에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2. 예수님의 기도 모본

마귀가 베드로에게 들어가서 예수님께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만 생각 하는도다” 라고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하는 것과, 십자가를 멀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의 역사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하게 하고, 믿음을 잘 지키지 못하게 하고, 실족하게 만들고, 시험에 넘어 가게 합니다.

마귀가 예수님께 세 가지 시험을 하였을 때, 예수님은 40일간 금식기도한 그 기도와, 성경말씀으로 세 가지 시험을 모두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40일간 기도하지 않으셨다면 마귀 시험을 이기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무엇으로 사탄의 역사를 이길 수 있겠습니까? 기도와 말씀으로만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역사는 항상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한 것 같이(벧전 5:8), 마귀는 매일 우리를 시험합니다. 매 시간, 매 사건마다 마귀는 우리를 시험해서 넘어뜨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지 못하게 하고, 구원 역사를 실패시키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파괴 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도들은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하셨는데(마 17:1), 그 높은 산은 백두산 보다 더 높은 헬몬산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을 더욱 사모하면서, 세상을 멀리 떠나면서, 하나님의 신령한 세계에서 기도하시려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기도하실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으실 것을 의논했다고 했습니다(눅 9:30-31). 모세는 모세 5경의 대표로, 엘리야는 선지서 대표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를 가지고 의논하면서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것을 의논하였습니다.

우리가 신령한 영적 시온산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일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십자가의 구속을 가지고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기도에 항상 힘을 써야 하며,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를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으로 마귀를 이기신 예수님을 배웠으니 이제는 우리들도 항상 깨어 기도하며 마귀를 이기고 자신도 이기며, 죄를 이깁시다. 특히 목회자들은 더욱 많은 기도를 해야만 자기를 이기고, 죄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며, 성도들을 이끌고 다스려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3. 기도와 생명의 역사

기도하지 않는 성도는 생명이 없습니다. 아무리 목사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기독교 어느 신문에서도 기도하지 않는 목사는 바로 된 목사가 아니라는 기사가 났었습니다. 기도하는 성도가 생명있는 성도이고, 마귀를 이기는 성도이고, 시험을 이기는 성도이고, 믿는 일을 바로 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기도하고 구하면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은 사람이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서 나아가면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벙어리되고 귀머거리된 귀신아 나가라” 할 때에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말씀에 같이 하셔서 하나님이 그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고 “귀신아 나가라”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귀신이 나가지 않습니다. 귀신이 그 사람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하며 비웃습니다. 

기도해 줄 때 믿음 없는 사람이 가면 귀신들린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기도 많이 한 믿음 좋은 사람이 기도해 주려고 하면 마귀가 벌벌 떨고 물러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귀신들린 집에 가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나타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바로서서 나가는 사람은 말씀으로 무장한 것이며,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장한 것이므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즉 “귀신아 나가라” 하면 하나님이 나가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가고 맙니다. 정신병과 마귀 들린 사람은 좀 비슷한 점이 있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 한 마디면 나갈 수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방심, 상심하게 하는 것, 예배시간에 졸게 해서 하나님 말씀 듣지 못하게 하는 것, 예배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다 마귀의 역사입니다. 또 마귀가 예배시간에 빠지도록 여러 가지 사건을 생기게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 드리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 잘 섬기는 성도를 섬기지 못하게 만듭니다. 또, 마음을 방종하게 만들고,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방심 부주의하게 만듭니다.

오직 기도로서만 이러한 마귀 역사를 다 이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10년, 20년, 30년 ... 예수님을 믿었어도, 믿음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것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므로 자기를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우리는 회개하여야 합니다.

기도해도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못하는 것은, 
첫째,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이 가로 막혔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을 받아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받아서 생명 내놓고 결사적으로 말씀을 순종하면 믿음이 생깁니다. 말씀을 생명보다 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해야겠다” 결심하고 순종해 나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9:23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많이 하고,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으로 하는 것이고, 기도하지 않고 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새벽에 기도 많이 하여야 합니다. 매일 신학생과 교역자들은 2시간 이상씩 기도하여야 합니다. 직장인은 하루 1시간은 기도하여야 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1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루 24시간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는데 시간의 십일조 즉, 2시간 24분은 기도하여야 하며 적어도 1시간은 하나님께 기도로 바쳐야 합니다. 그러려면 성경 말씀을 매일 10장 이상씩 읽어야 합니다. 10장 못 읽겠으면 몇 장씩이라도 읽어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친숙해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은 매일 두 시간 정도가 좋습니다. 그리고 특별기도 기간을 갖는 것이 참 좋습니다. 기도원 등에서 특별기간을 두고 기도하는 것이 특별 기도입니다. 새벽에 예배당에 나와서 새벽기도에 참여하는 것 등이 특별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전심으로 힘을 기울여서 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기도하는대로 하나님이 다 주시고, 모든 시험과 마귀까지도 다 이기게 해 주십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기도하면 하나님이 마귀도 다 이기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가 되지 말고, 믿음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해서 믿음으로 이기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