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된 성도
로마서 6:3-11
로마서 6:3-11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10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11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6:3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 알지 못하느냐?
6:4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
6: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분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분과 연합하는 자가 될 것이다.
6:6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
6:7 죽은 자는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다.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줄로 믿는다.
6: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았으니 다시 죽지 않으시고 사망이 다시 그분을 지배하지 못할 줄로 안다.
6:10 그분이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이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라.
6:4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분과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은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도록 하려는 것이다.
6: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으로 그분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분명히 그분의 부활하심과 같은 부활로 그분과 연합하는 자가 될 것이다.
6:6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니
6:7 죽은 자는 이미 죄에서 해방되었다.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분과 함께 살줄로 믿는다.
6:9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을 받았으니 다시 죽지 않으시고 사망이 다시 그분을 지배하지 못할 줄로 안다.
6:10 그분이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분이 사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이다.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라.
1.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
성도’는 예수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연합된 생활을 해 나가야만 합니다. 여기 로마서 6장 3절로 11절에 있는 말씀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된 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연합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그 연합된 진리를 밝히 깨달아야 되고, 연합된 생활을 해야만 됩니다. 본문 3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불세례와 물세례
세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불세례와 물세례가 있는데, 불세례는 성령 세례라고 합니다. 성령 세례와 물세례 이 두 가지가 있는데, 성령 세례는 언제 받는가 하면 예수님을 믿을 때에 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을 때에 성령 세례를 단번에 받는 것입니다. 한 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단회적인 성령 세례로서 또 받고 또 받고 하는 것이 아니고, 한 번 성령 세례를 받음으로 죄 씻음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되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리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언제 받는가 하면, 물세례는 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확실할 때에 물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아 세례 받은 사람은 장성한 연령에 들어간 다음에 입교 문답을 하게 됩니다. 입교를 하는 자체가 물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물세례는 언제 받는가 하면, 물세례는 교회에서 세례 문답을 하고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확실할 때에 물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아 세례 받은 사람은 장성한 연령에 들어간 다음에 입교 문답을 하게 됩니다. 입교를 하는 자체가 물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세례라는 뜻은 ‘씻는다’는 뜻입니다, 씻는다. 헬라 원문 성경에 ‘밥티조’로 되어 있습니다. 씻는다 하는 뜻이 있고, 혹은 담근다는 뜻도 있고, 적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마리아가 적신 것과, 또한 떡 한 점을 초에 찍어서 가룟 유다에게 예수님께서 주셨다고 했을 때에 단어도 다 ‘밥티조’의 변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말은 ‘씻는다’는 뜻이 원 뜻입니다.
그럼 무얼 씻는가 하면, 죄를 씻는다는 말입니다. 우리 죄를 씻는다는 것인데, 예수님을 믿을 때에 죄 씻음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죄 씻음을 받는데, 성령으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 세례는 죄 씻음을 받는 세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원의 표시인 물세례
물세례는 죄 씻음을 받은 표입니다. 표를 치는 것인데, 가령 사이다를 예로 들자면, 병 안에 칠성사이다를 넣고 병 밖에다가 ‘칠성사이다’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표를 친다는 말입니다. 표를 찍는 것인데, 속에 실물이 들어가 있고 겉에다가 표를 칩니다. 물세례라는 것은, 속에서부터 예수의 피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은 사람에게 ‘넌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를 갖다가 쳐 주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구원받는 것과 관계가 없습니다. 성령 세례로 예수님을 믿으면 그로 인해서 죄 씻음을 받게 되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못 받아서 예수님을 믿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세례는 받으나 안 받으나 구원에는 관계가 없습니다.
칠성사이다가 병 안에 들어가 있으면 칠성사이다입니다. 병 겉에 표가 안 붙어있어도 먹어보면 알 것 아닙니까? 먹어보면 콕 쏘는 게, ‘아! 이거 진짜 칠성사이다 로구나’하고 안다는 말입니다. 표는 안 붙여도 괜찮습니다. 진짜 칠성사이다만 있으면 사실 그런 표는 있으나마나입니다.
그러나 표를 치라고 하나님께서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를 받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물세례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라고 받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안 받는 사람은 구원에는 관계없지만 말씀에는 순종 안하는 사람입니다. 물세례를 받아야 성경대로 바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내 대신 죽으심
십자가와 연합했다는 말이 본문에 있습니다. 3절 하반절과 4절 상반절에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된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내 죄 값으로 내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내가 장사 지낸 바 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우리 죄를 대신 다 짊어지시고 내 죄 값으로 내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내가 장사 지낸 바 될 것을 예수님께서 대신 장사 지낸 바 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었는데, 나뭇가지가 원 나무에 접붙인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내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신 죄는 내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지낸 바 된 것은 내 장사 지낸 바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대신 장사 지낸 바 되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연합되었으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은 내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되신 것은 내가 장사 지낸 바 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고난 내 고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장사 내 장사, 예수 죽으신 죄는 내 죄”가 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자신은 벌써 죄로 인해서 죽어서 장사 지낸 바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주님을 언제나 바라봐야 됩니다.
믿음으로 연합되었으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죽으신 것은 내가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 되신 것은 내가 장사 지낸 바 된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 고난 내 고난,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장사 내 장사, 예수 죽으신 죄는 내 죄”가 됩니다.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자신은 벌써 죄로 인해서 죽어서 장사 지낸 바 된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주님을 언제나 바라봐야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내가 죽을 대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사형을 받으셔서 죽으셨습니다. 죽기까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요 15:13)’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려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고난을 다 받아주신 예수님이십니다.
3.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성도
예수의 살과 피를 마시는 생활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합된 성도, 그 고난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면서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고난의 주님을 우리는 영접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고난받아주신데 대해 감사한 생각, 감격에 넘치는 믿음을 가지고, 언제나 십자가를 바라보고 감사하는 생활, 감격에 넘치는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대할 때에 감격에 넘치지 않는 성도는 아직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지 못한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생활, 고난의 주님을 영접하는 생활을 해야만 하고, 그래야 참된 성도가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야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주셨는데,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생활을 해야만 참된 성도가 됩니다. 날 위해서 고난 받아주시고 내 죄 때문에 죽어주신 예수님, 나를 위해서 내 죄 때문에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어야만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느라고 고난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순종하시느라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고난 받고 또 다가오는 환난과 핍박을 달게 받으며 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는데,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면 핍박이 옵니다. 그 고난을 잘 참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잘 참여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내 피를 마시고 내 살을 먹어야만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지 아니하고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주셨는데,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생활을 해야만 참된 성도가 됩니다. 날 위해서 고난 받아주시고 내 죄 때문에 죽어주신 예수님, 나를 위해서 내 죄 때문에 피 흘려주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어야만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느라고 고난당하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순종하시느라고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서 고난 받고 또 다가오는 환난과 핍박을 달게 받으며 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딤후 3:12)’고 하였는데, 우리가 경건하게 살고자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면 핍박이 옵니다. 그 고난을 잘 참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잘 참여하는 생활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애쓴 바울
바울도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려고 늘 힘을 썼습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라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려고 애를 써야 됩니다. 바울이 애를 썼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할 수 있을까?’, ‘예수님의 고난을 내가 좀 알 수 있을까?’, ‘예수님의 받으신 고난에 나도 좀 참여해야 되겠다’고 바울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그랬는데, 남은 고난 채우는 것은 바울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고 바울이 애를 썼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참된 성도입니다.
4. 부활과 연합된 성도
두 번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연합되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된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이 되어있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벌써 와 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연합이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연합이 되었으니까 예수님의 부활 생명이 우리 생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생명과 연합된 성도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내 부활, 예수님 죽으신 죄는 내 죄, 예수님 죽으심은 내 죽음, 예수님 장사는 내 장사, 예수 부활은 내 부활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셨으니까 나도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셔서 40일간 나타나셨다가 하늘로 올라가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올라가 계십니다.
예수 믿기 전은 전부 죽은 영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살아나셨고, 또 그 부활 생명으로 우리 영혼을 살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려놓으셨습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모두 죽은 영혼이었습니다. 한 사람도 산 영혼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우리는 영혼이 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이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려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피 공로로 죄를 다 사해주시고, 부활하신 생명으로 우리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이제 산 영혼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부활하신 생명, 예수님의 부활 생명으로 우리 생명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생명은 산 생명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의 영혼은 다 살아났습니다.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와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우리는 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여러 종교 다른 종교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교나 마호메트교나 유교나 여러 종교가 많이 있지만, 그 모든 종교는 다 죽은 사람의 교를 믿고 있습니다. 그들의 교주는 다 죽었습니다. 공자도 죽었고 석가모니도 죽었고 마호메트도 다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의 교훈을 따르고 있는 것이 세상 종교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은 사람의 교를 믿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신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신 예수, 사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한 우리 속에 내주하고 계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 가운데 같이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같이 계셔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신 예수님이 어디 계신가 하면, 여기 우리 교회에 계시고, 우리 집에 계시고, 두 세사람 모여서 기도하는 곳에 계시고, 우리 직장에 계십니다. 사신 예수님은 또한 우리 마음에 계시는 생명이십니다.
이렇게 사신 예수는 또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31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신 예수는 또한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이 된다고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31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신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능력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십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예수님은 ‘우리의 의’입니다. 지혜입니다. 거룩함입니다. 예수님은 구속함입니다. 또한 생명입니다. 이런 예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랑하는 자는 뭘 자랑하라고 하였습니까? ‘주 안에서 자랑하라’, 예수만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예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자랑해야 다 쓸 데 없는 것입니다. 썩어질 것이고, 다 없어질 것인데 자랑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예수 아닌 다른 것은 생명이 아닙니다. 다른 것 아무리 자랑해 보십시오. 그건 다 시일이 흐름에 따라서 낡아지고 쇠잔해지고 없어지고 말 것들입니다. 세상 모든 것, 세상 재물, 부귀 영화, 학벌, 성공한 것은 세월이 흘러가고 나면 점점 다 쇠잔해지게 됩니다. 또한 자기 자신도 쇠잔해집니다. 세상 것을 이 세상 떠날 때 가지고 갑니까? 다 없어지고 맙니다.
결국 자랑할 것은 그저 예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요, 나를 하늘나라 데려가실 예수님이시고, 우리 신랑되신 예수님이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또한 예수는 우리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우리의 의 입니다. 예수님 한 분만 모시고 예수 이름만 가지고 가면 의가 된다는 말입니다.
사시고 우리와 같이 계시는 예수님
우리는 살아나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 속에 생명이 되어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선한 목자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사신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공자를 믿는 사람은 죽은 공자를 믿는 것입니다. ‘죽은 공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서 그가 말한 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마호메트 믿는 것도 죽은 마호메트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셔서 우리 가운데, 두 세 사람이든 몇 사람이든 모인 가운데 같이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교회에 같이 계시는 예수님, 우리 속에 생명이 되신 예수님, 또한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님, 언제나 우리와 같이 계셔서 어디든지 아무데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믿습니다.
얼마나 참 영광스러운 것입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죽은 사람의 교훈을 믿으면 그것은 아무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셔서 우리 생명을 살려놓으시고, 우리 속에 같이 계시고, 우리 옆에 계시고, 우리 두 세 사람 모인 가운데 계시고 인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아무데나 언제든지 예수님은 같이 계셔 주시고, 하늘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세례문답을 할 때에 “예수님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으니까, “우리 속에 계셔요”라고 그럽니다. 그래서 “또 어디 계십니까?”하고 물으니까 모릅니다. 그 사람은 하나만 알고 왔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고 또 어디 계시냐고 물으니까 모른다는 것입니다.
속에 계신다는 대답도 맞습니다. 우리 속에 계십니다. 우리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 밖에서 언제나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또 하늘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얼마나 좋으신 예수님이십니까? 그리고 장차 구름타고 재림하실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를 데리러 오십니다. 우리의 신랑이십니다.
마귀, 죄,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
또한 부활하실 때에 우리 원수를 다 이겨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세 가지 원수를 다 이겨주셨습니다. 마귀가 우리 원수인데, 그 마귀를 이겨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로 인해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완전히 마귀는 다 고꾸라지고, 예수님은 정복을 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죄를 이겨주셨습니다. 예수님 십자가 부활로 인해서 죄를 완전히 다 사해주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뭘 이겨주셨습니까? 사망입니다. 인류의 최대의 원수가 사망인데, 사망을 완전히 다 이겨주셨습니다. 이제는 사망을 이기신 그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내 부활, 예수님의 생명이 내 생명, 사망 이기신 예수의 생명이 내 생명입니다. 그래서 우리 영혼은 사망을 이겼습니다. 죽음이 없습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사망을 이겼으니까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안 죽고, 그대로 하늘나라에 직통으로 가는 것입니다. 세상 떠나면 하늘나라에 직통으로 갑니다. 연옥으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하늘나라 직통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으로 돌아간다고 그럽니다. 그건 깨닫지 못한 말이고, 그건 이단설입니다. 우리는 세상 떠나면 직통으로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렇게 우리에게 큰 선물을 주었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고, 직통으로 하늘나라 가는 길을 열어주었고, 죄와 사망을 다 이겨주셨습니다.
마귀가 있지만 그건 다 패잔병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다 정복을 해놓으셨고, 마귀가 다 항복을 했습니다. 패잔병 마귀새끼들, 파리새끼 같은 것들이 몇 마리쯤 날아서 다니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도 앞에서 파리새끼와 같습니다. 그 까짓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패잔병이니까 발로 꼭 누르면 다 눌러집니다. 그 까짓 마귀는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고 하면 다 물러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다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새 “모든 병이 다 마귀 때문에 난다, 귀신 때문에 난다, 귀신만 내쫓으면 병이 다 낫는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로 이단입니다. 그런 사람이 이단입니다.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나는 병도 있고, 생리적으로 고장이 생겨서 나는 병도 있습니다. 신체에 고장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적 이상이 생겨서 나는 병도 있고, 간혹 귀신 들려서 나는 병도 있습니다.
귀신 들려서 난 병은 예수의 이름만 갖다 대면 그건 즉시로 나가는 것입니다. 다 나가는데 그건 사람이 무슨 힘이 있어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귀신들은 예수의 이름 권세로 다 물러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는 병, 생리적으로 고장 생겨서 나는 병은 치료해야 낫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생리적으로 고장 나서 생기는 병, 균으로 나는 병, 암과 같은 병이 있는데, 그것도 기도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어떤 병이든 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이 뜻이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병 낫게 해달라고 기도할 때에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데려가셔도 좋습니다’하고 아예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하나님의 만능의 역사로 즉시 다 낫게 해주실 것이고, 데려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기도를 하든지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하고 기도를 해야 됩니다.
꼭 자기 원대로 되게 해달라는 것은 욕심이고,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이고, 그건 하나님의 뜻을 자기에게 다 맞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에다가 복종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복종을 해야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종하실 리가 있습니까? 기도를 다 하고 나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그 한 마디씩 해야 됩니다. 아버지 원대로 되어야지 내 원대로 되면 뭘 하겠습니까? 아버지 원대로 되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뜻이 어디 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 뜻인지, 저렇게 하는 것이 아버지 뜻인지 잘 모르는 때가 많습니다. 무슨 일 처리 할 때도 ‘어떻게 해야 이가 나겠느냐?’는 이권에다 표준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편리하겠느냐? 유익이 되겠느냐?’는 거기에 표준을 두지 말고, 아무리 손해가 나도 “아버지의 원대로만 되면 좋습니다”, “십자가가 와도 아버지의 원대로만 되면 십자가를 지기를 원합니다”하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는 데에다 언제나 맡기고,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맡겨야 됩니다. 그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마귀와 사망을 이겨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는 승리, 의, 생명입니다. ‘예수’ 한 마디만 하면 마귀는 뒤로 나가자빠집니다. 마귀가 올 때에 ‘예수’ 한 마디만 하면 마귀가 다 달아납니다. “주여!”하면 마귀가 달아나는데, 예수 소리가 안 나와서 걱정입니다.
이응익 목사하고 몇 십 년 전에 삼각산에 기도하러 갔는데, 거기엔 굴이 두 개가 있습니다. 이응익 목사는 저쪽에서 기도하고 저는 이쪽에서 기도했습니다. 한 굴에 하나씩 들어갔었는데, 이응익 목사 말이 그날 밤에 마귀가 왔더랍니다. 마귀가 제겐 안 왔는데 이응익 목사한테 왔더랍니다. 와서 목을 누르고 타고, 죽이려고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주여!” 해야 되겠는데, 주여 소리가 안 나오더랍니다. 답답하고 죽을 지경이었는데, 한참 애를 쓰다가 ‘주여’ 한 마디 하니까 마귀가 다 달아났답니다. 다음날 아침에 제게, “목사님한테는 마귀가 안 왔습니까?”라고 물어 봅니다. “난 안 왔다”고 하니까, “어제 저녁에 마귀가 와서 죽을 뻔했는데 주여 한마디 했기 때문에 다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주여 좀 미리 하지 왜 늦게 했느냐?”하니까,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오기 전부터 “주여!” 했더라면, 아예 오지도 못할 것인데 평
소에 ‘주여’ 안 했기 때문에 왔다고 봅니다. 언제든지 예수님을 생각하고 ‘주여’하고, 아예 잘 때도 ‘주여’하고 자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마귀가 못 옵니다. 마귀가 오려하면 또 ‘주여!’ 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그러면 마귀가 꼼짝 못 합니다.
5. 부활의 권능을 입혀주시고자 함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는 권능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된 성도인데, 이 부활의 권능을 예수님은 우리에게 입혀주시려고 하십니다. 부활의 생명은 이미 주셨고 이제는 권능을 입혀주시려고 하는데, 권능을 입혀 주시는 것이 목적입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에,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라고 했는데,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애를 썼다는 뜻입니다.
부활의 권능에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부활의 권능은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는 권세입니다. 이것은 정사와 권세와 세상 주관하는 자와, 사망과 죄와 마귀와 모든 걸 다 이기는 권세인데,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을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소원입니다.
그걸 알고 바울은 부활의 예수님을 영접할 뿐만 아니라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부활의 권능이 내게 와야 되겠다’, ‘그 권능이 내 권능이 되어야 되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이 자기의 권능이 되면 아주 능력 있는 자가 됩니다.
세상을 다 이기는 능력, 모든 것을 다 이기는 능력자가 됩니다.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법
부활의 권능을 얻으려면,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고 그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애를 쓰는 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활 신앙의 생활 그것이 성도의 생활입니다.
그럼 부활의 권능에 어떻게 하면 참여하는가? 예수님만큼 말씀을 순종하고, 예수님만큼 고난을 참고, 예수님만큼 참고 희생하면 권능이 입히어집니다. 예수님만큼 많은 순종을 하면 예수님이 받으신 만큼의 고난이 옵니다. 예수님만큼 순종을 하면 예수님 당한 것 만한 고난이 오는데, 그 고난을 예수님만큼 참으면 그 다음에는 예수님 부활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와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을 예수님만큼 순종 못합니다. 조금밖엔 순종 못하니까 고난도 조금 옵니다. 참는 것도 조금 참습니다. 그러니까 능력도 조금밖에 못 얻습니다. 이제 예수님만큼 순종을 하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오는데, 그걸 다 참으면 예수님 부활의 권능이 우리에게 다 옵니다.
그럼 부활의 권능에 어떻게 하면 참여하는가? 예수님만큼 말씀을 순종하고, 예수님만큼 고난을 참고, 예수님만큼 참고 희생하면 권능이 입히어집니다. 예수님만큼 많은 순종을 하면 예수님이 받으신 만큼의 고난이 옵니다. 예수님만큼 순종을 하면 예수님 당한 것 만한 고난이 오는데, 그 고난을 예수님만큼 참으면 그 다음에는 예수님 부활의 권능이 그 사람에게 와서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바울이 말한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순종하는 것을 예수님만큼 순종 못합니다. 조금밖엔 순종 못하니까 고난도 조금 옵니다. 참는 것도 조금 참습니다. 그러니까 능력도 조금밖에 못 얻습니다. 이제 예수님만큼 순종을 하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오는데, 그걸 다 참으면 예수님 부활의 권능이 우리에게 다 옵니다.
예수님은 신구약성경 100% 다 순종을 하셨고, 하나님의 뜻을 100%순종을 하셨고, 죽기까지 순종을 하셨습니다. 신구약성경 다 순종, 또 하나님의 뜻을 100% 순종, 어디까지, 죽기까지 순종, 그러니까 고난도 최고의 고난이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참았으니까 이제는 부활의 권능도 최고의 권능이 왔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했으니까 부활의 생명이 우리에게 와 있지 않습니까? 부활의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니까, 이 부활의 권능에도 참여하는 성도가 되어야 이게 참 바로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강에 고기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시다. 큰 고기, 강물만한 고기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면 그 물이 전부 다 반대가 되어 마찰이 됩니다. 그러나 조그만 새끼손가락만한 고기가 올라간다고 하면 그만큼 밖엔 물의 마찰이 안 됩니다. 그것보다 조금 큰 고기인 멸치 새끼만한 것이 올라간다고 하면 그만큼 밖엔 물의 마찰이 안 됩니다. 메기, 가물치가 올라간다고 하면 그만한 것밖엔 마찰이 안 됩니다. 큰 고기가 올라가려 하면 그만큼 더 많이 마찰이 됩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강물만한 물고기가 올라가려 하면 그 강물이 전체가 다 그 큰 고기에게 반항이 생겨서 다 내리밀게 됩니다. 그런데 계속 이걸 참아나가면 그만한 권능이 입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나 큰 순종을 했습니까? 예수님은 그 강 전체를 다 거슬러 올라가신 것입니다. 강물 전체는 이 세상인데, 거스르는 세상 전체를 다 거슬러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큰 고기 같습니까? 새끼 손가락만한 고기겠는지, 가물치만한 고기겠는지, 돌고래만한 고기겠습니까? 지금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우리는 얼마나 큰 것 같습니까? 얼마나 큽니까? 순종하는데 얼마나 큰 순종을 하냐는 것입니다. 다 순종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100% 순종하셨는데, 우리는 몇 % 순종하였습니까? 순종이 50%인지, 70%인지, 80%인지, 하나님의 뜻을 다 순종하는지, 다 순종 못하는지, 무엇입니까? 물론 다 순종 못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다 순종 못합니다. 하나님 뜻을 몇 % 순종합니까? 신구약성경 다 순종했습니까?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알면서 다 순종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몰라서 순종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순종함에 부족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모두 죄입니다. 순종을 했지만 부족한 것도 안 됩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셨고,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려 놓으셨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 같이 계십니다. 사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그 예수님이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입혀주시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능력에 참여하는 것이 부활 신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주와 연합됨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형상이 이루어짐
고린도후서 4장 10~12절에,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입니다.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님을 위하여 죽음에 넘기어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다가 죽는데 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의 생명이 우리에게 나타나고, 예수의 능력도 우리에게 입혀주십니다.
고린도후서 3장 18절에,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연합된 자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한다고 그랬습니다.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부활신앙을 가지고, 그 부활의 주님과 연합되어 나가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되고, 그런 영광스러운 형체가 되어 나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