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살리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
요나 4:1-11
요나 4:1-11
1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2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3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4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더라 5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6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7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8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9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10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11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1. 요나의 노와 불평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날 때에 같이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함
본문 1-2절에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심히 싫어하고 노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싫어하고 노했습니까? 요나서 3장 10절에 “하나님이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멸망시키려고 하시다가 용서해주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와 구원의 역사가 니느웨에 나타났는데, 하나님의 그 구원 역사가 나타난 것에 대해서 요나가 싫어하고 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구원 역사가 나타날 때에 같이 기뻐하고 같이 즐거워해야 하겠는데, 그러지 못하였습니다. 요나가 이렇게 노한 것은 마귀의 시험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나타났
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니느웨가 멸망할 것인데, 그 성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으며 바로 설 때에 하나님께서 멸망시키지 않고 구원해주셨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같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싫어하고 노하였습니다.
요나는 40일 후에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었습니다. 40일 후에는 이 성이 무너지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굵은 베를 입고 금식을 하며 재에 내려앉아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백성으로 시작해서 왕과 온 짐승들까지 금식을 하고 베를 입고 재에 앉아 부르짖었습니다. 또 악한 길에서 떠났습니다. 요나서 3장 8절을 보면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할 때에 악한 길에서 떠나면서 회개해야 하고,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나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악한 길을 걸어가면서, 악한 말과 악한 행동을 하면서 회개하는 것은 참된 회개가 아닙니다. 또 자기를 낮추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을 했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생활을 가리킵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하며, 또 자기를 낮추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재에 앉아 부르짖었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고 부인하면서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하나님께 겸비하는 기도를 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 온 도시가 합심이 될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죄를 깨달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에 니느웨 도시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와 반대로 자기가 나타나면 하나가 안 됩니다. 자기가 옳다고 할 때에 하나가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부족하다고 할 때에 하나가 됩니다. 부족하다, 죄인이다, 잘못했다, 서로가 다 잘못했다고 할 때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나는 잘했는데,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여간 우리는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자기를 부인하며 낮아져야 합니다. 이럴 때에 전체가 다 하나가 되어서 그 뜻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위에까지 상달하는, 그런 합심하는 신앙 생활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40일 후에 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했을 때에 니느웨 사람들은 자신들의 성이 반드시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성경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그대로 믿고, 또 하나님의 종이 그 말씀을 가르쳐줄 때에 그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대로 믿어야지, 그대로 믿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망한다 하면 망할 줄 알아야 하고, 40일 이후에 무너지리라 하면 무너질 줄 알아야 합니다. 이제 무너진다는 것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깨달았을 때 망하지 않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도망치는 것입니다. 니느웨가 망하겠으니, 무너질 것이니 도망쳐 나가면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망치면 살 수 있다고 하였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재앙은 도망쳐도 따라옵니다. 그 도시 때문에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들의 죄 때문에 멸망시키려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도망치면 따라옵니다. 예레미야 당시에 유다 사람들이 애굽으로 도망쳐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망쳤지만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애굽까지 따라와서 다 멸망시킨다고 하였습니다. 도망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우리가 살 길은 회개하고, 자기가 죄인인 줄 알아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힘써 부르짖는 생활이 사는 길입니다. 죄를 회개하면서 힘써 부르짖어야 합니다.
요나가 시험에 들어 자기 중심이 됨
그런데 이와 같이 큰 구원이 이루어졌는데, 거기에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큰 구원이 이루어질 때 언제든지 마귀가 들어옵니다. 다 같이 즐거워하며 다 같이 기뻐 뛰어야 하겠는데, 마귀가 들어왔습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따지며 자기 생명을 취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여호와여 원컨대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의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왜 죽여 달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을 구원해주셔서 다들 기뻐하는데, 자기만 죽긴 왜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까? 요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니느웨 사람들을 살리신 것 때문에 죽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 죽었어야 하는데, 니느웨 사람들이 산 것 때문에 자신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니느웨는 원수의 나라이기 때문에 망해야 하겠는데, 망하지 않고 살았으니 자신이 죽겠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이 40일 후에 니느웨가 망한다고 얘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안 됐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무슨 낯짝으로 돌아다니겠습니까? 자기가 말한 대로 안 되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 볼 면목도 없고 무슨 말을 해도 주위에서 믿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나에게 ‘확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나의 중심은 무엇입니까? 자기 중심, 명예 영광중심입니다. 자기가 해야겠다는 생각, 자기를 세워나가려는 마음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어온 것입니다. 언제나 목표가 잘못되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는 자기 일을 세워나가는 데에 목표를 두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 목표를 두고, 하나님의 일에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잘되면 그것으로 되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거기에 목표를 두어야지, 자기가 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목표를 두어,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면 참 감사하다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는 것에 목표를 두면 자기가 낮아집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세례요한은 뭐라고 하였습니까? 요한복음 3장 30절에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큰 구원 운동이 나타날 때에 다 기뻐해야 하겠습니다. 거기서 마귀 시험에 들면 안 되겠습니다. 요나가 시험에 든 것처럼, 그런 시험에 들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날 때에 다 같이 기뻐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만 잘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이 높아지는 것만 배우지 말고, 낮아지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생명을 취하옵소서’라고 하는 기도는 하면 안 됩니다. 죽여 달라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이렇게 안 해주시려면 죽여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기도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을 시켜먹으려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인의 위치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나아가지 말고 예수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사람입니다. 자기가 주인의 위치에 올라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여 달라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나 자기 중심으로 나아가지 말고 예수 중심으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2. 니느웨 성을 바라보는 요나
본문 5절에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요나가 니느웨 성이 어떻게 되려는지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면으로 보면 니느웨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또 다르게는 그것을 알면서도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자기가 말한 대로 니느웨 성이 망해서 자기 위신이 서기를 바라며, 니느웨와 짝한 사람들, 즉 원수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망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어도, 아직 자기가 너무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강해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주 악한 마음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며 자기 위신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의 뜻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믿음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의 면으로 보면 니느웨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 또 다르게는 그것을 알면서도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자기가 말한 대로 니느웨 성이 망해서 자기 위신이 서기를 바라며, 니느웨와 짝한 사람들, 즉 원수가 망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성읍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바라봤던 것 같습니다. 망하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어도, 아직 자기가 너무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너무 강해서 망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이 망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주 악한 마음입니다. 또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며 자기 위신만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의 뜻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만 생각해야 믿음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요나를 박넝쿨로 교훈하심
요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려고 고난을 주심
본문 6절에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케 하려 하심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박넝쿨을 자라나게 하셔서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이 지게 하셨습니다. 서늘하게 해주셨습니다. 중동 지방이 매우 더운 곳인데, 그 사막 땡볕에서 성을 바라보려니 얼마나 더웠겠습니까? 그런데 박넝쿨이 머리 위에 나서 그 잎사귀로 해를 가리어주니 서늘해서 좋습니다. 요나가 심히 기뻐하였습니다. 요나가 박넝쿨로 인하여 기쁨을 누리면서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은총을 풍성히 베풀어 뜨거움을 면하게 해주시고 시원하게 해주시며 평안하게 해주시고 위로해주실 때에 기뻐하는 데에만 그치면 안 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요나는 시원하다고 해서 기뻐하는 마음만 가졌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기뻐하는 마음에서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발전하여야 합니다. 내가 심은 것도 아니고 내가 자라나게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주셨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설사 자기가 심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잘 자라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잘해주실 때에 기뻐만 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알고, 또 불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무성한 박넝쿨 잎사귀 사이 사이로 햇빛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그 빛이 들어오는 것 때문에 불만을 가지면 안 됩니다. 큰 것을 받았는데, 작은 고난이 온다고 하여 원망하고 불만을 품으면 안 됩니다. 큰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큰 것을 생각하고, 작은 것은 잘 참고 나가야 합니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말고, 작은 괴로움이 와도 큰 것 주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며 찬송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를 주셨는데, 그 아이가 조금 괴롭게 한다고 매일 같이 불평, 불만을 해서는 안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소를 주신 것이 큰 것인데, 소가 그 자리를 더럽히고 냄새를 피우고, 또 파리가 끓는다고 하며 불평하면 안 됩니다. 잠언 14장 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힘이 들어도 소 먹이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실 때에 작은 고난이 따라옵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처럼, 사람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그림자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림자 없는 것은 없습니다. 요새 유럽에서는 결혼을 안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결혼 생활하는 것도 하기 전보다 고생이 많습니다. 여자는 남자 짐 하나 맡아놓은 것이고, 남자는 여자 짐 하나 맡아놓은 것입니다. 짐을 안 지고 혼자 가는 것이 홀가분한데, 하나 맡아놓으면 서로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자연 은총에 대한 축복은 반드시 그림자가 따라오는 것처럼 그만한 고난이 따라옵니다. 그때에 그것을 불만으로 여기지 말고, 큰 것에 작은 것은 덤으로 오는 줄로 알면 됩니다. 따라오는 그림자를 죽이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떼어 내버리려고 해도 못 떼 내버립니다.
그림자와 싸우다가는 자기가 속상해서 죽습니다. 그리고 그래도 그림자는 안 떨어져나갑니다. 소를 사면 소가 오줌과 똥을 싸고 먹이를 달라고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됩니다. 그것 때문에 소를 때리면 소가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고 박넝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니느웨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살려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여기서 죽을 고에 빠졌었는데 하나님께서 박넝쿨로 인해 나를 살려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니, 니느웨 사람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은총을 베풀어서 그들을 살려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죽을 고에 빠진, 사지에 빠진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시원하게 해주시기를 바라고 건져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기뻐해야 합니다. 내게도 이렇게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시며 자연 만물을 주관하시는 그 하나님을 깨닫고, 뜨거워 죽을 지경을 당한 사람들에게 시원한 은혜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해서 기뻐해야 합니다. 자기 혼자 평안하다, 좋다 하지 말고, 다른 사람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면 좋겠다는 마음, 또 그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베풀어주시면 좋겠다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깨닫고, 다른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위로와 구원을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박넝쿨을 주신 것입니다.
고난이 올 때에 원망하지 말고 감사하며, 고난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함
본문 7절에 “하나님이 벌레를 준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본문 8절에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쬐매 요나가 혼곤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벌레가 박넝쿨을 씹어서 넝쿨이 잘라졌는데, 거기에 동풍까지 불어서 바짝 마르게 되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이렇게 고난이 올 때에 한꺼번에 겹쳐서 옵니다. 시험이 올 때도 겹쳐서 오고, 고난이 올 때도 겹쳐서 옵니다. 한 가지만 오면 어느 정도 헤어나갈 수 있겠는데, 더 큰 것이 덮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두 개, 세 개가 올까 하지 말고, 한 가지가 오면 두 가지가 올 줄 알았다 하십시오. 두 가지가 올 때는 세 가지가 올 줄 알았다고 여기면 됩니다. 여러가지가 겹쳐서 올 때에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고, 보통 그렇게 오는 줄로 알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해가 쨍쨍 쬐므로 급기야 요나가 힘들어 죽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고난이 들어와서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요나이고, 또 죽여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요나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들어올 때에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한 말 역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잘못했을 때에 부모님들이 책망도 하고 매도 때리는데, 그때 아이들이 죽으면 좋겠다, 죽여 달라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 아이들이 얼마나 불효자입니까? 사랑으로 때리는 것이고 바로 세우려고 때리는 것이고 좋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때리는 것이지, 죽이려고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고난이 올 때에 아무리 죽을 지경을 당했어도 거기서 죽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은 접어 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의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의 고난을 통해서 더 좋은 것을 주려 하시는 것이므로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이 없으면 깨닫지 못합니다. 그 고난은 깨닫게 하시고 바로 세우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이 들어올 때에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언제나 책임과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또 원망하면 안 됩니다. 원망하다 보면 하나님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요나도 고난이 들어올 때에 그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았어야 합니다. 처음에 본문 3절에서 죽여 달라고 기도한 것은 니느웨가 망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8절에서 죽여 달라고 한 것은 자기에게 고난이 오자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받는 고난의 원인은 자기에게 있습니다. 니느웨가 망하기를 원한 것이 잘못된 것이고, 성 동편으로 나간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으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여간 고난당하는 것은 자기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인 줄 알면 됩니다. 요나가 일 처리와 행동을 잘못하였습니다. 또 초막도 잘못 지었습니다. 사막 지대에 초막을 지으려면 초막의 옆을 다 없애고 위만 지어서 바람이 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련하게 천막을 쳤습니다. 사막에 천막을 쳐놓으면 한증막이 됩니다. 이렇게 많은 경우에 일 처리를 잘못해서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는 죽으면 좋겠다는 말이나 생각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곤고하고 혼비할 때, 죽게 되었을 때에 깨달아야 합니다. 깨닫고 회개하여 바로 서서 잘못된 것들을 고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난이 들어올 때 행동을 고치고 마음을 고쳐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과 모든 태도를 고쳐서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고난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거두어주십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십니다.
살리는 것이 중요함
본문 9-11절에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배양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망한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깨닫게 하시려는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이기주의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자기 신용 잃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고 크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말한 대로 안 되어 자기의 위신이 떨어졌다고 성이 나서 죽으려 하였습니다. 또 자기를 위하여 박넝쿨을 아낀 순전한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을 아끼십니다.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만여 명은 아이들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자범죄를 짓기 전이라고 봐야 합니다.
아이들도 물론 다 죄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좌우를 분변치 못하기 때문에, 아직 철이 없어서 나쁜 짓한 것이 별로 없는데, 어른들의 죄 때문에 같이 다 망하게 생겼습니다. 이렇게 니느웨 성에 악한 일한 것이 별로 없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십이만여 명이 있고 육축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끼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을 요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마음을 넓혀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 살리는 일을 기뻐해야 합니다. 자기를 버리고, ‘나는 쇠하고 그는 흥하여야겠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생명을 살려나가는 주님의 구원 운동을 흥왕케 하여야 겠다는 생각으로, 넓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며, 사람을 살리는 생명 운동, 구원 운동에 참여하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