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진리를 확신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해주심
역대하 13:1-22
1여로보암 왕 제십팔 년에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되고 2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미가야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으로 더불어 싸울쌔 3아비야는 택한 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 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 4아비야가 에브라임 산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6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7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8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
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9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10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11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 13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14유다 사람이 돌이켜 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 15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의 소리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16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 손에 붙이신고로 17아비야와 그 백성이 크게 도륙하니 이스라엘의 택한 병정이 죽임을 입고 엎드러진 자가 오십만이었더라 18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19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와 여사나와 그 동네와 에브론과 그 동네라 20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21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취하여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더라 22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 행위와 그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에 기록되니라
역대하 13:1-22
1여로보암 왕 제십팔 년에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되고 2예루살렘에서 삼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미가야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으로 더불어 싸울쌔 3아비야는 택한 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 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 4아비야가 에브라임 산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 6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7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 8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
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 9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 10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 11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 1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 13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14유다 사람이 돌이켜 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 15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의 소리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16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 손에 붙이신고로 17아비야와 그 백성이 크게 도륙하니 이스라엘의 택한 병정이 죽임을 입고 엎드러진 자가 오십만이었더라 18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19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와 여사나와 그 동네와 에브론과 그 동네라 20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21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취하여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더라 22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 행위와 그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에 기록되니라
1. 유다 왕 아비야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대진함
본문 113절에 “여로보암 왕 제 십팔 년에 아비야가 유다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서 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미가야라 기브아 사람 우리엘의 딸이더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으로 더불어 싸울쌔 아비야는 택한 바 싸움에 용맹한 군사 사십만으로 싸움을 예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택한 바 큰 용사 팔십만으로 대진한지라”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에 관해서는 열왕기상 14장 21절에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유다 왕이 되었으니 르호보암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사십일세라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빼신 성 예루살렘에서 십칠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나아마라 암몬 사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로보암에 관해서는 열왕기상 15장 9-10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제 이십 년에 아사가 유다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사십 일 년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마아가라 아비살롬의 딸이더라”고 하였고, 또 열왕기상 14장 20절에 “여로보암이 왕이 된 지 이십이 년이라 저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나답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고 하였습니다. 르호보암은 17년 동안, 여로보암은 22년 동안 왕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은 그 아들 나답이 왕이 된지 2년 만에 온 집안이 망하여, 24년 만에 그 집안이 다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본문의 아비야는 솔로몬의 손자로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뒤를 이어 3년 동안 왕으로 있었습니다. 이 유다 나라의 아비야가 북쪽 여로보암의 나라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아비야의 군대는 40만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아비야의 군대가 자신들보다 두 배 더 많은 80만의 적과 전쟁하려고 진을 치고 대진하여 있습니다.
2. 아비야가 여로보암에게 싸움 그칠 것을 권하며 책망함
르호보암이 연약하여 여로보암을 막지 못함
본문 4-5절에 “아비야가 에브라임 산중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가로되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무리들아 다 들으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이 아니냐”고 하였습니다. 소금 언약은 변치 않는 언약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변치 않는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다윗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준 것을 너희가 알지 않느냐고 아비야가 여로보암에게 말한 것입니다.
본문 6-7절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신복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일어나 그 주를 배반하고 난봉과 비류가 모여 좇으므로 스스로 강하게 하여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대적하나 그때에 르호보암이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다윗 때부터 솔로몬을 통하여 계승된 남의 나라를 빼앗으려고 난봉과 비류를 데리고 공작을 하여 세력을 구성해서 행동한 것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일을 하려한 것이었으므로 올바른 사람들이 아닌 난봉꾼들과 비류, 즉 아예 거역하는 자들을 데리고 원래의 주를 배반하고 나라를 갈라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41세에 즉위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연약한 자였습니다. 성경에 ‘어리고 마음이 연약하여 능히 막지 못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르호보암이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젊은 사람들의 교도를 따라간 것을 봐도 어리긴 어리고 유약합니다. 여기서 르호보암의 나이가 어리다는 것은 육신의 나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는 행세나 신앙이 어리고 연약하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을 함부로 세운 여로보암을 책망함
본문 8절에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가 너희와 함께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북쪽 이스라엘 나라의 여로보암이 남 유다보다 두 배나 많은 병력, 즉 큰 무리의 세력과 또 금송아지를 믿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너희가 아론 자손된 여호와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을 쫓아내고 이방 백성의 풍속을 좇아 제사장을 삼지 아니하였느냐 무론 누구든지 수송아지 하나와 수양 일곱을 끌고 와서 장립을 받고자 하는 자마다 허무한 신의 제사장이 될 수 있도다”고 하였습니다. 아론 자손이나 레위 자손이 아니더라도, 재산이 되는 무엇을 가지고 오면 쉽게 제사장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 나라에서는 레위 지파 중에서도 아론 자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남쪽 나라에서 제사장이 되려면 아주 힘들고 보통은 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레위 지파 사람이 아니더라도 제사장이 되고 싶으면 송아지 한 마리만 사가지고 북쪽 나라로 가면 되니 아주 쉽습니다.
목사 안수의 조건 요새도 목사가 쉽게 되려면 될 길이 많이 있습니다. 원래는 목사 안수 받기가 힘이 들지만, 최근에는 아무나 돈만 조금 내면 목사 안수를 주는 곳이 있다고 합니다. 삼각산 기도원에 있던 사람이고, 늙어서 구제 좀 해달라고 이따금 오던 사람인데 여기 와있
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은 내게 와서 자신이 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훤히 다 알기에 놀라서, 아니 언제 목사가 되었냐고 하니 신학교 졸업장을 내놓고는 신설동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았고 거기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목사 안수장을 내놓습니다. 그러면 신학을 몇 년 공부하고 졸업장을 받았느냐고 하니 1년쯤 하고 졸업장 받고 졸업하자마자 안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데서는 누구든지 목사가 되고 싶으면 1년이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곳이 많습니다. 신학교 한 번도 안 가도 돈만 내면 졸업장을 받고 졸업하자마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런 목사도 더러 있는데, 그런 목사를 무슨 목사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날치기 목사나 날라리 목사입니까? 요새는 비행기 목사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목사가 아닌데 미국에 가면 목사가 되니, 비행기 타는 바람에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 가려고 비자를 다 받아놓은 다음에, 돈 좀 내고 목사 안수를 받아 가는, 그런 자를 비행기 목사라고 합니다. 요즈음에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것은 죄를 짓는 일입니다. 신학교에서 제대로 공부를 시키지 않은 다음에 목사 안수를 주거나, 강도사 고시를 그저 되는대로 형식적으로 치르고 목사 안수를 주거나 하면 안됩니다. 돈 받고 신학교 졸업장을 파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악한 죄악입니다. 혼란에 혼란, 타락에 타락의 길을 여전히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서 뭐하겠습니까?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목사 실력이 있는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아야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돈 내고 이름만 목사가 되면 뭐합니까? 목사 안수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슨 목사란 말입니까? 그런 사람은 목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 때려잡는 목사가 되어 할 짓이 없어서 사기 행각에, 별 짓을 다하고 돌아다닙니다. 즉, 요
새 이런 식으로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것은 제사장 안수를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 가지를 보고 목사 안수를 합니다. 첫째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목사의 신덕이 있어야 합니다. “저런 사람이 무슨 목사냐”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고 도리어 복음의 문이 막히므로 목사 안수를 안 줍니다. 덕 없이 돌아다니며 쓸 소리, 못 쓸 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격이 안 됩니다. 훼방과 비방에 악평을 하고, 싸우고 다투며 돌아다니는 사람은 목사 자격이 없습니다. 셋째로 실제로 목사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세워놓으면 아무 곳에 내어놓아도 틀림이 없습니다. 쥐 잡는 것이 고양이입니다. 어디 가서도 실력이 있어서 아이들을 건져내고 길러낼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제대로 하려면 힘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쉽게 그저 돈이나 받고 되는대로 목사 안수를 남발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 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국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 일을 우리는 안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단에서도 예외적으로 목사 안수를 주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선교하러 나가는 경우들입니다. 갑자기 선교사로 외국에 이민을 가서 개척교회를 해야 할 때에 특별히 고려하여 목사 안수를 줍니다. 군목(軍牧)으로 갑자기 나가게 될 때에도 좀 고려해줍니다. 또 학교 교목으로 갈 때 등의 경우가 고려 대상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주는 것은 좀 고려하지만 원리 원칙에 어긋나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비야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선포함
본문 10절에 “우리에게는 여호와께서 우리 하나님이 되시니 그를 우리가 배반치 아니하였고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있으니 아론의 자손이요 또 레위 사람이 수종을 들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고 옛날부터 지켜온 신앙으로 여전히 일심정력을 다해서 하나님을 찾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대로 제사장을 세우고 제사장 수종을 드는 사람들도 레위 지파에서 세운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조석으로 여호와 앞에 번제를 드리며 분향하며 또 깨끗한 상에 진설병을 놓고 또 금등대가 있어 그 등에 저녁마다 불을 켜나니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나 너희는 그를 배반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대로 번제를 드리고 분향한다는
것은 옛날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믿던 그 신앙 그대로 변함없이 말씀대로 믿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가 섬기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다의 군대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이스라엘 군을 이김
1) 성경대로 하는 사람, 교회, 교단, 국가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심
본문 12절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경고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치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아비야가 하나님께서 유다 나라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다윗 계통에서 왕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유다 나라는 성경대로 왕과 제사장을 세우고, 또 성경대로 제사를 지내고, 진설병을 드립니다. 성경대로 등대에 불을 켜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은 정해진 약속이 아닙니까? 성경대로 제사장을 세우지 않고 되는대로 세우며 성경대로 제사를 드리지 않고 성경대로 행하지 않으며 성경을 어기고 나가는 사람들과 성경대로 바른 교리대로 나가는 사람들 중 하나님께서 어느 쪽과 같이 하시겠습니까?
이스라엘 국가는 오늘날의 교회를 가리킵니다. 처음 다윗이나 솔로몬왕 때는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였습니다. 열두 지파가 다 하나인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똑같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북쪽 이스라엘을 세워 갈라져나가고, 남쪽에는 르호보암이 유다 나라를 세운 후부터 두 나라 사이에 차이가 있게 되었습니다.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입니다. 그리고 남쪽 유다뿐 아니라 북쪽 나라에도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엘리사 같은 유명한 선지자를 보내시고 늘 간섭하셨습니다. 그러나 두 나라가 서로 다르게 되었습니다. 남쪽 유다 나라는 전통 보수교회이고 북쪽 나라는 성경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타락된 교회인 것입니다. 북쪽 나라에서는 제사장도 되는 대로 세우고 모든 것을 성경말씀대로 철저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타락한 교회는 목사도 되는 대로 세우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목사 고시할 때에 고시위원들이 돈을 받고 합격을 시켜준 것이 탄로가 난 교파에서 난리가 났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런 교단, 교파와는 반대로 목사 안수를 성경대로 주는 교단, 교파에는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십니다. 바르게 제대로 가르치고 시험을 쳐서 실력과 신덕 있는 사람을 세우려는 교단, 교파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천주교계에서 자꾸 핍박을 했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하던 사람들이 낙심을 하고 피곤해지고 쓰러지고 뒤로 물러서게 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에 루터가 “하나님께서 어디와 같이 하셨는지 생각해보라. 하나님께서 교황청과 같이 하시겠는지, 진리를 주장하는 우리와 같이 하시겠는지 생각해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 법왕청에서는 속죄표를 팔며 하나님 앞에 바로 하지 않고 있는데, 그 사람들과 성경대로 바로 하는 우리들 중 하나님께서 어디와 같이 하시겠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즉, 왜 낙심하며 무서워하느냐는 것입니다. 촛대에 불을 켜서 하나님의 바른 진리를 밝혀 나가려고 하는 자와 반대로 바른 진리를 밝히지 않는 자 중 누구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겠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아비야 왕도 루터도 하나님께서 어디와 같이 하시겠는지 그것부터 알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모르면 일이 안 됩니다. 물론 남쪽 유다 나라에도 인간적인 면으로는 잘못한 것이 많고 솔로몬도 르호보암 왕도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실수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다 결점이 있기 마련이므로 사람의 잘못된 것만 보지 말고, 성경대로 하려는 면을 봐야 합니다. 결점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윗도 결점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르호보암도 실수가 있었지만 회개하고 자기 아버지 신앙을 계승하려고 3년 동안 애를 썼습니다. 그러다가 그가 탈선이 되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다가 하나님께로부터 애굽 막대기의 때림을 받아 다시 진리대로 바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자기 아들 아비야 왕을 세웠습니다.
2) 예배도 인본주의로 하지 말고, 성경대로 드려야 함
아비야왕은 자기 아버지 르호보암, 할아버지 솔로몬, 또 증조할아버지 다윗, 이렇게 바른 신앙의 계통을 이어서 성경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하고, 제사도 성경대로 바로 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려 한 것입니다.
아비야왕은 자기 아버지 르호보암, 할아버지 솔로몬, 또 증조할아버지 다윗, 이렇게 바른 신앙의 계통을 이어서 성경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 하고, 제사도 성경대로 바로 하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려 한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 한 절만 하고 다른 이야기하는 곳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유년부 아이들도 성경만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성경 한 소절하고 딴소리하고 동요를 합니다. 여름성경학교라고 여러 교회에서 연극장을 만들어놓고, 영화하고, 춤을 춥니다. 시청각 교육을 하는 놀이 마당을 차려놓습니다. 그런 데에서 배우긴 무엇을 배웁니까?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성경 가르치는 것은 그만두고 거짓말로 지어낸 동화나 하면 강단에서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서 영어로 말씀 전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영적 세계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큰 장벽이 됩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아이들을 성경대로만 내내 가르치는 교회와 인본주의 수단 방법을 써서 놀이 절반, 취미 절반으로 하는 교회 중 어느 곳에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겠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성경에서 떠난 이스라엘도 환난 때에 부르짖어 하나님을 만남
아비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기가 해보니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이 하시는 것을 확실히 안다는 것입니다. 역대하 15장 3-6절에 보면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였으나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매 저가 그들의 만난 바가 되셨나니 그때에 열국에 거한 모든 백성이 크게 요란하여 사람의 출입이 평안치 못하며 이 나라가 저 나라와 서로 치고 이 성읍이 저 성읍과 또한 그러하여 피차 상한 바 되었나니 이는 하나님이 모든 고난으로 요란케 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성경에서 많이 탈선하여 하나님께서도 그 나라에서 멀리 떠나셨지만 그래도 환난 때에 여호와께 돌아가서 찾으므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였습니다. 이것 보십시오. 타락된 교회라고 해도 하나님을 아예 못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교회라도 또 천주교에서도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잘못 가르치는 것이 많아도 그곳에서도 환란 때 하나님께 부르짖고 애를 쓰면 혹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 지옥 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약시대에도 성경대로 계명과 말씀을 지켜야 함
그럼 하나님께서 어느 교회와 같이 하시겠습니까? 이제는 교회들이 십계명 중 사 계명을 다 범하고 나갑니다. 안식일, 주일날 지키는 것을 헌신짝 내버리듯 다 내버리고 나가는 것이 현실이고, 우상의 제물 먹는 것은 보통으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15장 28-29절에는 성령과 더불어 요긴한 것들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피와 목매어 죽은 것을 먹지 말고,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입니다. 분명히 성령께서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고, 피를 먹지 말고, 목매어 죽은 것을 먹지 말고, 음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먹는 것입니까?
요새 부흥회 강사들 중 어떤 사람들은 개 한 마리를 잡아놓고 모임을 한다고 합니다. 목매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왜 목매 죽은 것을 잡아놓고 사경회를 합니까? ‘나는 성경대로 안 하지만 너는 성경대로 하라’고 가르치려는 것입니까? 그리고 요즘에는 짐승들을 목매지 않고 잡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또 문제가 다릅니다. 목 안 매는 것을 봤습니까? 개 먹는 강사들은 ‘목매어 죽인 것은 안 먹는다’는, 말씀 지키는 정신이 아니고 ‘목매어 죽었어도 괜찮다’고 하면서 먹는 것입니다. 또 우상의 제물을 먹어도 된다고 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먹게 합니다. 성경에 먹지 말라는데 왜 먹습니까? 성경에 피 먹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뱀은 괜찮은지 질문하셨는데, 뱀을 목매 죽입니까? 목 안 매어 죽은 뱀은 괜찮습니다. 뱀 잡아먹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면 사슴의 피는 어떻습니까? 사슴 피를 약으로도 먹는데, 사슴의 피도 선지로 봐서 약으로 먹는 것도 다 안 된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자기 양심에 맡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양심의 가책이 되면 안 먹는 것이 좋습니다. 사슴 녹용을 사서 먹는 것은 괜찮을 것이고, 피도 약으로 먹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양심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를 먹지 말라고 하셨으니 소 피를 받아서 음식으로 즐기고, 순댓국을 만들어 즐겨 먹는 것은 안 됩니다.
진리를 밝혀나가는 교회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아비야가 금등대의 등불을 켠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신약시대의 우리가 진리 밝혀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등대는 교회입니다. 그러면 등불을 밝히지 못하는 교회와 등불을 밝히는 교회 중 하나님께서는 어디와 같이 하시겠습니까? 또 빛을 희미하게 밝히는 교회와 좀 더 중간치로 밝히는 교회, 좀 더 환하게 밝히는 교회가 있을 텐데, 어디와 같이 하시겠습니까? 희미하게 우물쭈물 ‘중생한 영혼이 죄를 짓는다’, ‘부패성이 영혼 속에 있다’, ‘중생한 부분은 죄를 짓지 않지만, 부패성이 죄를 짓고 그 부패성이 영혼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도 죄를 짓는다’라고 하는 것은 다 물 타 놓은 것과 같습니다. 명백하지 못합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을 향해서만 찾아 간다’고 진리를 밝히면 얼마나 명백합니까?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중생한 영혼은 범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것은 중생한 영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요한일서 3장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분명히 나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 난 자, 중생한 영혼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왜 죄를 짓는다고 합니까? 중생한 영혼이 다시 죄를 지으면 죄 값은 사망이므로 죽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또 죄를 지으면 또 다시 중생해야 하고 자꾸 죄를 지을 때마다 또 다시 중생을 백 번, 몇 백번 중생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다행히 죄를 안 지었을 때, 회개했을 때 죽으면 천당에 갈 것이고, 중생한 영혼이 죄 지을 때 죽으면 그것은 사망이니까 지옥에 간다고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요행수로 천당을 간다는 말이 됩니다. 즉, 아침에 회개했을 때 죽으면 천당, 저녁에 죄 지었을 때 죽으면 지옥에 간다는 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아침에 죽은 것은 천당, 저녁에 죽은 것은 지옥, 이렇게 갖다 붙이는 것이 맞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로마서 8장 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영혼은 살아 있어 사망하면 살아 있는 산 영입니다. 죽은 영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혼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믿는 사람이 죄
를 짓는 것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이므로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는 육체의 욕심을 제어하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린다’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서7장 16-20절에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아니라’는 것은 중생한 영이 아니고 내 속에 거하는 죄, 부패성이 죄를 짓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속에서 옛 사람과 새 사람이 싸우는데, 새 사람은 중생한 영이고 옛사람은 육체의 부패성을 가리킵니다. 이 둘이 서로 싸워서 옛 사람 따로 살면 죄를 짓고, 새 사람 따로 살면 의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명확하지 않습니까? 새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까? 새 사람은 죄를 안 짓고 옛 사람이 짓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이 이러한데 하나님께서는 어디와 같이 하실 것 같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희미하게 해서, 어물어물하게 이것인지 저것인지 모르게 제대로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같이 하시겠는지 생각을 해보십시오.
아비야는 진리가 우리에게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등불을 성경대로 밝히고 제사장도 성경대로 세우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유다 국이 전부 다 똑바로 행하지는 못한다고 할찌라도, 율법을 바로 주장하고 바로 믿으
려 하고 바로 지키려고 애를 쓰므로, 그 부분에 대해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너희가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대적하지 말라’고 아예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결점을 보고 진리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아비야도 별것 없다. 자기 아버지 르호보암이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고 그 할아버지 솔로몬도 노년에 많이 실수하였는데 그까짓 것들 다 아무것도 아니다. 외적으로는 오히려 여로보암이 낫고 북쪽 나라가 더 깨끗하다’면서 무시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이 남한에는 창기들이 많지만 이북에는 창기가 없다며 이북이 이남보다 낫다고 하길래 제가 “남한에는 내놓고 집창촌이 있지만 이북에서는 공산당 간부들이 다 음란하고 다 몇씩 데리고 사는데 숨어있는 창기가 더 많은 것을 압니까?”라고 하였습니다. 또 이북은 한 번 공산당 간부가 되고 정권을 잡아놓으면 늙어 죽도록 하다가 아들에게 물려주는 완전독재 세습체제입니다. 진짜 공산 제국주의입니다. 거주의 자유도 없어서 이북에서 온 김만철 씨는 개성의 자기 매부가 죽어도 가보지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제가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잘 압니다.
제가 삼십 몇 km 내에 있는 누이네 집에 가려는데 동(洞)에서 증명을 안 해주면 그 부근을 떠나지 못하는 법 때문에 못 갔습니다. 그것이 낫습니까? 내가 분명히 경험한 것에 관하여서도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면서 뭐 그러하냐”고 합니다. 알지 못하면 아는 사람 말을 들으라는 말도 있습니다. 요새는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되어 버린 세상입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라
아비야는 ‘우리는 하나님의 종들이 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싸우러 나왔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군사 세력으로는 상대인 북 이스라엘은 80만이고 자기 네 유다는 40만입니다. 절반의 힘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라며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고 나왔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운 제사장이 우리와 같이 있다. 너희는 하나님과 싸우지 말라’는 확신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의 결점을 보고 진리를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신 신학자가 더 낫습니다. 슈바이처를 세계 성자라고 하나 슈바이처는 예수의 부활도 안 믿는 신신학자입니다. 행동은 물론 성자이지만 진리는 틀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 교단에나 속하여 그 교단이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는 자기대로 바로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입니다. 꿩이 머리를 틀어박고 ‘난 숨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은 임마누엘 기도원에 기도하러 갔다가 꿩을 잡아먹은 적이 있습니다. 꿩이 매가 따라오자 머리를 나무 안에 굼뜨려넣고, 몸뚱이는 밖으로 다 나오게 앉아 있는 것을 사람들이 다가가 잡았습니다. 그 꿩이 자기는 숨었다고 생각하고는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날 꿩 탕을 해
서 여러 사람이 잘 먹었습니다. 그와 같이 교단에서 아무 짓을 하든지 자기는 자기대로 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강단을 몇 년 지키겠습니까?
자기가 살아서 그 강단에 있을 때는 바로 하지만 늙어서 내놓던지, 병이 나서 내놓든지, 뭐 쫓겨나든지, 하여튼 내놓는 날이 오면 그 교단신학교에서 잘못 배운 후임자가 와서 잘못 가르칠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되면 자기가 아무리 10년 이상 그 교회를 바로 지켰더라도 하루아침에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목회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슨 목회입니까?
우리는 눈을 떠서 바로 봐야 합니다. 아비야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아비야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드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허허, 네 까짓 것이 뭘 떠드느냐. 넌 오늘 죽는다. 내가 복병을 너희 앞뒤에 두어 공격하겠는데 독 안에 든 쥐다’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렇게 미련하다니, 하나님, 하나님 하면 살려주나? 한 번 당해봐라. 너는 독 안에 든 쥐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3. 유다 군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북 이스라엘을 이김
유다 나라의 승리
본문 13-14절에 “여로보암이 유다의 뒤를 둘러 복병하였으므로 그 앞에는 이스라엘 사람이 있고 그 뒤에는 복병이 있는지라 유다 사람이 돌이켜 보고 자기 앞 뒤의 적병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은 나팔을 부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사람들이 보니까 뒤에도 북쪽 나라 군대가 복병해 있고, 앞에서도 공격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도망치지 않고 더욱 소리 질러 하나님께 “주여! 주여! 건져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제사장은 나팔을 불면서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같이 하셔서 유다 나라가 북 이스라엘의 군대를 다 패망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참 크십니다.
본문 15-17절에 “유다 사람이 소리 지르매 유다 사람의 소리 지를 때에 하나님이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을 아비야와 유다 앞에서 쳐서 패하게 하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유다 앞에서 도망하는지라 하나님이 그 손에 붙이신고로 아비야와 그 백성이 크게 도륙하니 이스라엘의 택한 병정이 죽임을 입고 엎드러진 자가 오십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북쪽 군대가 50만 명이 엎드러져 패잔병 30만 명이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아무 맥을 못 춥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입니다. 북 이스라엘 군이 30만 명이라고 해도 한 번 세력이 꺾이면 꼼짝 못하는 것입니다. 세력이 있을 때나 힘을 쓰지, 세력이 꺾여나가면 죽여도 가만히 있습니다.
벌통이 이와 똑같습니다. 벌통에 처음 왕벌이 공격해 들어올 때에, 큰 세력으로 여러 마리가 들어붙어 쳐나가도 그 왕벌이 벌들의 목을 잘라놓고 또 계속해서 왕벌이 와서 죽이며 벌통의 벌들 세력을 꺾어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일이 아주 쉽습니다. 벌통에 벌이 몇 천 마리가
있어도 다 가만히 있다가 결국 모두 잘려나간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이 80만 명의 세력으로 힘 좀 쓰고, 복병이다 뭐다 하며 악악하고 돌아갔지만, 일단 한 번 즉살이 되니, 죽여도 가만히 있고, 끌려가도 가만히 있고, 이제는 꿈쩍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크십니다. 아비야가 어떻게 이겼습니까? 첫째는 자기가 진리에 섰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자기가 진리에 선 것도 모르고 ‘다 같다. 타락된 교회와 우리는 같다. 다 하나님 섬긴다. 다 성경 본다. 다 제사한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의 진리가 옳은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비야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진리가 옳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시다. 우리를 대적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이다’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소리 질러 부르짖는 일, 이것이 또 중요합니다. 일시에 모든 백성들이 소리 질러 “우리 하나님! 우리 하나님! 살려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아주 크게 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하나님이신데 왜 가만히 있으시겠습니까? 당신의 백성이 죽어 가는데 왜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일시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누가 또 나팔을 불다 이겼습니까? 기드온 300명 군사가 나팔을 불다가 이기지 않았습니까? 항아리를 깨트려 자기 육체를 부인하고 횃불을 들어 중생한 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고, 나팔을 불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서 적군을 패망케 하였습니다. 아비야의 40만 명한테 여로보암의 50만 명이 죽어 꿈쩍도 못하고 입도 못 벌리고 손도 하나 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진리의 확신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게 해주심
본문 18-19절에 “그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아비야가 여로보암을 쫓아가서 그 성읍들을 빼앗았으니 곧 벧엘과 그 동네와 여사나와 그 동네와 에브론과 그 동네라”고 하였습니다. 남 유다가 북 이스라엘에게 항복을 받았습니다. 유다 나라가 하나님을 의지 하므로 부르짖고 아예 나팔을 불고 두려움 없이 전진할 때에 하나님께서 다 이기게 하셨습니다. 전쟁을 통하여 결과적으로 남 유다가 사람도 많아지고 영토도 넓어졌습니다. 그와 같이 진리에 관한 확신을 가지고 선한 싸움을 싸워나가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만들어주시고, 영토도 넓어지게 만들어주시고, 사람도 많이 보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가 이렇게 큽니다.
본문 20-22절에 “아비야 때에 여로보암이 다시 강성하지 못하고 여호와의 치심을 입어 죽었고 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 아내 열넷을 취하여 아들 스물둘과 딸 열여섯을 낳았더라 아비야의 남은 사적과 그 행위와 그 말은 선지자 잇도의 주석책에 기록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이 이제는 강성하지 못하고 22년 동안 왕 노릇 해놓고 하나님께 벌 받아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나답이 왕이 되었지만 2년 만에 바아사가 혁명을 일으켜서 쳐들어오는 바람에 다른 사람이 왕이 되어 여로보암의 씨족이 다 멸망했습니다. 여로보암은 왕이 되었다가 망하였고, 아비야는 점점 강성해져서 그 나라의 모든 면이 창성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리와 같이 하시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말씀대로 하는 곳에 같이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반드시 이기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고, 부르짖는 자에게 도와주시고, 또 나팔 불며 전진하는 자에게 승리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전진해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말씀을 증거하면서, 자꾸 전진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나가고 또 나가고, 일도 하고 또 하고, 자꾸 해야 합니다.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는 것은 정당한 요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무거운 멍에를 메라고 하시면 메는 것이 좋습니다. 가벼운 것이 왜 좋습니까? 예수님은 내 멍에를 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멍에를 이고 나가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가볍게 해달라는 것은 인간의 생각이고, 육신의 생각입니다.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라고 하시면 메야 합니다. 무거운 것을 메라고 하시면 메고, 가벼운 것을 메라고 하면 메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멍에를 가볍게 해서 쉽게 믿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우리는 나팔을 불면서, 복음을 증거하면서 나가야 합니다. 나팔 분다는 것은 전진, 공격의 뜻이 있습니다. 전진하고 공격하며 나가서 점점 점령해야 합니다. 우리는
점점 영토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창성해나가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