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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2일 화요일

누가복음 7:18-35 세례요한에 대한 문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세례요한에 대한 문답
누가복음 7:18-35

18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20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21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22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23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24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 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25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림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26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27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닌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하시니 29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고 32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 그리스도가 당신이니이까?

본문 22절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 된다 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는 의아한 마음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에 자기 제자를 예수님께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십니까? 그리스도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20절에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가 가로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이가 당신이니이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리이까?”하고 전했습니다.

본문 21절에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마침 예수님께서 이런 일 하시는데 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22절에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가서 전파하라,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리스도입니까, 아닙니까?” 이것을 물어봤는데, 여기에 대한 답변으로 “너희가 보고 들은 것만 말하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면 그리스도라 하든지, 아니면 아니라 하든지 하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인가 아닌가를 물어 보았을 때, 이렇게 대답하심으로 이것이 그리스도임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이것이 그리스도가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증거

그리스도가 아니면 이런 영적 소경과 절름발이, 문둥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외부적인 육신의 병만 고치는 것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영적 병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영적 소경을 눈 뜨게 하는 일, 영적 앉은뱅이를 걷게 하는 일, 영적 문둥병 즉, 죄로 인해 썩어져가는 것을 깨끗하게 하는 일, 또한 영적 귀머거리 즉, 신령한 것을 모르는 귀머거리를 고치는 일, 영혼이 죽은 자를 살려내는 일, 영적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그리스도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영적인 일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소경이나 병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 병을 고쳐주고 그 표적으로 육신의 병을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경을 눈 뜨게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을 먼저 눈 뜨게하고, 영적 소경이 눈 뜬 표적으로 육신의 소경을 고쳐 주셨다는 것입니다. 앉은뱅이도 영적 앉은뱅이를 먼저 걷게 해 주시고, 표적으로 육신의 앉은뱅이를 걷게 하셨습니다. 귀머거리도 영적 귀를 먼저 열어주고, 그 다음에 그 표적으로 육신의 귀 먹은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도 영적으로 죽은 자를 먼저 살려주어서 영혼을 먼저 살리고, 육신의 죽은 자도 살리신 것입니다. 문둥병자도 죄로 썩어 들어가는 것을 먼저 살려 주고, 그 다음에 그 표적으로 고쳐주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하는 이적들은 다 외부적으로만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못합니다. 그리스도만 영적인 병을 고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이적을 행합니다. 불교에서도 이적을 행하고, 천리교에서도 병을 고칩니다. 그러나 병을 고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종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껍데기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병을 고치는 것, 이것은 그리스도만 고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된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속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다음으로 표적으로 겉을 예수님께서 고치셨다는 말씀입니다. ‘칠성사이다’라고 하면 속에 먼저 칠성사이다를 만들어 넣고, 그 다음에 칠성사이다 상표를 붙입니다. 속을 먼저 만들어 놓고 그 표시로써 갖다 붙여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 고치는 것이 그와 같습니다. 속을 먼저 고쳐놓고 그 다음에 표적으로 육신의 병도 고쳐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다른 사람이 고치는 것은 속은 고치지 못하고 껍데기만 고쳐 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칠성 사이다의 상표만 겉에 갔다 붙여 놓고, 속은 맹물이며 오만 잡탕을 넣어 놓고 파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사기꾼입니다. 속이 중요하지 표적으로 나타난 외부적인 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에서 하는 이적들은 병의 외부적인 것만 고치되 그것도 완전치 못하며, 심령 속의 병은 하나도 못 고칩니다. 도리어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아주 자기네가 진짜라면서 사람을 미혹시키는데 이러한 이적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속병을 고치고 그 다음에 육신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만 고치는 것입니다. 요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기도해서 고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자기가 고친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이 기도해서 영적 병을 고치고 또 육신의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고쳐주시는 것이지 그 사람이 고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영적 병을 고쳐주고 육신의 병도 고쳐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적 병은 못 고치고 육신의 병만 고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참 선지자가 아닙니다. 영적 병은 고치지 못 하고 육신의 병만 고친다고 하는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칠성사이다가 속에 없는데 상표만 칠성사이다라고 붙여 팔아먹는 것은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영적 병 고치는 것은 그리스도만 고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병 고쳤다고 해서 다 그리스도의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거짓선지자들도 외부적인 병은 고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21-22 말씀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다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거짓 선지자도 병 고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병 고친다고 그것을 다 참 선지자라하면 안됩니다. 또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낫게해 줄때에, 영광을 예수님께만 돌려야 하고 자기가 영광을 받으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만합니다. 이 영적 병을 고쳐주고 표적으로 육신의 병 고쳐주는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적 병 고쳐주는 것은 예수만 고쳐 주실 수 있습니다. 또 외부적인 병은 표적으로 고쳐줄 수도 있고 안 고쳐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병은 못 고치고 육신의 병만 고치는 자는 참 선지자라 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제자들이 가서 요한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에게 “네가 가서 보고 들은 대로 가서 말하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떠났습니다.

3.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다음에 본문 23절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실족했습니다.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는 것은 세례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세례 요한이 실족한 것이 확실합니다. 어떤 사람은 이 성경을 가지고 실족했을 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실 그이가 당신이니까, 다른 사람을 기
다려야 합니까?” 하는 것은 ‘가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냐고 물어보라. 물어보면 거기서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갈 것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보내서 이렇게 물어 보라고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된 것 같습니까? 실족치 않은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왜 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실족한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일시적으로 실족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신앙에 잠들면 실족할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일시적으로 신앙에 잠든 것입니다. 감옥에서 오랫동안 고난당하는 동안에 신앙에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다음에는 허튼 소리를 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이 잠들었을 때에 자기 아내를 누이라 하였고, 엘리야는 잠들었을 때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져서 죽여 달라고 하였으며, 요나가 신앙이 잠들었을 때 박넝쿨 나무에 벌레가 먹어 쓰러짐으로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또한 다윗도 신앙이 잠들 때 범죄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성자라도 신앙이 잠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시적 신앙이 잠들어서 신앙의 행동이 아닌 이런 불신앙의 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험 들어서 한 말은 다 마귀 말인 줄 알아야 됩니다. 그런 말은 마음에 두면 안 됩니다. 누구든지 신앙의 잠이 들고 시험에 들어서 한 말은 다 허튼 소리고 본인이 한 말이 아닙니다. 평소 본인의 말이 아닌 다른 말을 하게 됩니다. 다 마귀의 말인 줄 알고 그것은 없는 것으로 간주하여, 평소 신앙대로 인정하고 나가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나를 위해 실족치 않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일시라도 실족하지 않은 성도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에 잠이 드는 정도가 다릅니다. 성도는 잠깐 잠이 들다 깹니다. 세례 요한도 잠깐 잠들다 깼습니다. 다윗도 잠깐 잠들다 깬 것이고, 엘리야도 잠깐 잠들다 깬 겁니다. 그러나 신앙이 조금 어린 사람들은 잠든 것이 오래갑니다. 한번 잠들면 며칠씩 잡니다. 성자들은 잠들어도 일생의 한두번 잠들고, 잠깐 잠듭니다. 그러나 믿음이 늘 깨어 있지 못하는 사람은 자주 잠들고, 또 한 번 잠들면 아주 오랫동안 잠드는 이것이 사고라는 말씀입니다. 잠들지만 늘 깨어나는 신앙, 아주 잠 안 들려고 늘 힘쓰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잠들면 잠깐 잠들다 깨어나야 합니다.
즉시 일어나고 회개하고 바로 서 나가야 합니다. 날마다 회개하고, 날마다 바로 서야 합니다. 신앙이 잠들면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실족 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가서 이 말씀까지 다 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복이 있다고 하셨다는 그 말씀까지 전했을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왜 실족 했으냐?’라고 책망해주는 이것이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 책망해주신 것입니다. 즉,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있을 때 가서 책망해 주라고 말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떠난 다음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4. 세례 요한을 칭찬하심

본문 24-25절에 “요한의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제자들이 떠난 다음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여러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는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줄 때에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는 것입니다. ‘바람의 흔들리는 갈대냐’라는 것은 세례 요한이 바람의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사람이 아닌데, 그러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부드러운 옷 입고 사치하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 부요와 사치를 누리며 화려하게 살려는 정권에 아부하는 그런 자가 아니고, 바람의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이렇게 동요된 풍조에 동요되는 사람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이 그런사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바람에 부는 갈대는 동풍이 불면 서편으로 넘어가고, 서풍이 불면동편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종기속 종기풍(從其俗從其風), 풍속 좇아서, 여론에 의해서,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 움직이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움직이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께서 내신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의 의해서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요구에서 일어났다가 사람의 요구에 쓰러지는 사람이 아니고, 여론이나 풍조나 그런 풍속 습관이나 사람의 요구에 의해서 일어났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바로 아셨습니다. 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은 세상에서 부드러운 옷 입으려고 남의 비유나 맞추는 사람인데, 세례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의를 위해서는 생명을 내어놓고 나아가는 강직한 반석과 같은, 왕이라도 면책하는 그런 의를 위해서 생명 내어놓고 나가는 세례 요한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바로 안 사람은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바로 안 사람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바로 알았기 때문에 바로 증거 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바로 아셨기 때문에 칭찬해주셨습니다. ‘성인(聖人)이라 능지성인(能知聖人)’이라는 말이 있는데 성인이라야 성인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정도가 그만 해야 그만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정도가 미흡한 사람은 그것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바로 아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있을때는 책망을 해주고 가라고 하셨지만, 떠난 다음에는 칭찬해 주셨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 사람이 있을 때는 칭찬해주고 떠난 다음에는 욕을 합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는 ‘잘 한다 잘 한다’ 하면서 칭찬해 주다가, 떠난 다음에는 ‘흥, 제까짓 것이 무엇이냐’라고 비방을 합니다. 그것은 마귀 역사입니다. 책망하려면 본인이 있을 때 책망하고, 떠난 다음에는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 줘야 합니다.
또 세례 요한이 일시적으로 실족 했지만 예수님께서 일시적 실족한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닙니다. 일시적 잠이 들어 실족하였기 때문에, 실족하는 것을 책망했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의 신앙 인격을 아시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 사람이 어떤 신앙을 가지고 나아 왔는가, 어떻게 신앙을 지켰는가, 그것을 가지고 알아주는 것이지, 예수님께서는 일시적으로 신앙이 잠들어서 실수한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평가를 바로 하려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이나, 어떻게 하나님 일을 했는지, 또 일생동안 어떻게 했느냐를 알아야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실수한 것을 가지고 때려잡는 것은 사람 죽이는 것입니다. 한번 실족 한 것을 가지고 사람 죽이지 말고, 그사람이 일생동안 어떠한 신앙을 지켜 나왔는지, 어떻게 걸어 나왔는지, 이것을 알고 그 사람을 바로 알아 줘야 됩니다. 그리고 만났을 때는 칭찬하지 말고 책망해 주고, 떠난 다음에는 그 사람을 바로 알아주
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도오선자는 시오적이요, 도오악자는 시오사(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라고 하였습니다. 내게 잘 한 것만 잘한다, 잘한다고 말해주는 자는 내 도적이고 나의 나쁜 점을 말해주는 사람이 곧 나의 선생이라는 것입니다. 만났을 때는 책망해주고 떠났을 때는 그 사람의 인격을 바로 알고 칭찬해 줘야 합니다. 화려한 옷 입은 사람은 왕궁에있고, 사치하는 사람은 왕궁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사치하고 화려한 옷만 입으려 한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주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광야에 나가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에서 잠을 자면서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몸 바치고 하나님의 사명을 받아서 일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세례 요한에 대해서 본문 26절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이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하셨습니다. 선지자 가운데 제일 큰선지자입니다.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본문 27절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라고 성경에 예언되었다고 하셨습
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앞길을 예비하기 때문에 제일 큰 선지자입니다.

5. 이 세대를 책망하심

이 시대 사람이 장터에 앉아 노는 아이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본문31-32절에, “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같은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장터에 앉아있는 아이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을 지내보았기 때문에 다 닳아져서 감각이 무뎌진 아이들입니다. 피리를 불어도 즐거워하지 않고 애곡을 해도 슬퍼하지 않는, 그런 것을 너무 많이 겪어서 감각이 마비가 된 상태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본문 33-34절에,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까 그 시대 사람들이 와서 “왜 안 먹는가? 귀신이 들렸다”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금식을 많이 하고 광야에 나가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살았고,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으니까 그 시대 사람들이 그렇게 비방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셔서 떡도 먹고 포도주도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세상 사람들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며 비방을 했습니다. 예수님을 그와 같이 비방했는데, 예수님은 당시 포도주가 아니라 포도즙을 마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와서 회개운동을 할 때에는 사람들이 귀신들렸다라고 비방을 하고, 예수님께서 오셔서 복음운동을 할 때에는 그들은 그 복음을 받지 아니하고 먹기를 탐하고 죄인의 친구라고 비방을 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감각이 무디고 악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지혜’는 ‘진리’를 가리킵니다. 참된 진리라고 하면 좋은 열매가 맺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녀’가 ‘좋은 열매’ 입니다. 참된 진리는 좋은 열매가 맺히고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바리새교인들이 아무리 자기들이 지혜가 있다고 해도 열매 맺힌 것이 없습니다. 외식이나 하고 하나님 거역이나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참된 열매가 맺히고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어느 것이 진리인가? 그 열매를 봐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