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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27일 금요일

사무엘상 3:1-21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
사무엘상 3:1-21

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2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3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4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5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6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7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8여호와께서 세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
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9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10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13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16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17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18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19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21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1.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짐

본문 1절에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는 계시가 종결되어서 더 이상 표준계시를 주시지 않지만 구약시대에는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시는 때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말씀이 드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거의 중단된 상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새로 깨닫는 면이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자라나는 것이 없고 새로운 생명의 역사와 진리의 역사가 없는 그런 상태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에 새로운 진리 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생명 운동이 일어나고 새로운 말씀 운동, 구원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중단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긴 섬기지만 하나님의 새로운 신령한 양식을 받아 먹을 수가 없는 흑암시대를 만났습니다. 종교는 형식화되고 인간의 지식적으로만 가르치고 새로운 생명의 양식이나 생명의 역사가 중단된 상태라는 말입니다.

본문 2절에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간다는 것은 나이가 많아 기력이 쇠하여 진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잘 안 들려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85세가 되었지만 옛날 40세 될 때에 가나안 정탐 갈 때나 지금이나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고 젊었을 때와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겉사람이 늙어갈 때에 속사람도 늙는 사람이 있고, 겉사람이 늙어가도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가지 종류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사람, 늘 힘써 기도하는 사람은 속사람이 새로워집니다. 늘 머리 싸매고 강대상 앞에 나와서 밤새 기도하셨던 윤 할머니 같은 분은 세상 떠날 때까지 속사람이 새로워져서 가신 것입니다. 장 장로님도 91세에 세상 떠나는 날까지 새벽기도 갔다 오고 성경 가르쳐 주고 전도하고 손주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주신 것이 속사람이 새로웠던 것 같습니다. 또 병석에 오랫동안 누워 있어도 속사람이 새로운 자가 있습니다. 늘 은혜가 있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늘 영이 깨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는 겉사람이 후패함에 따라 속사람도 노쇠해진 사람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지 않고 양심 안 쓰고 힘써 믿는 일 하지 않았습니다. 죄와 더불어 싸우지 아니하고 희미해졌다는 말입니다. 양심을 안 써서 그렇습니다. 언제나 양심을 쓰고 죄와 더불어 계속 싸워 나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고 애를 쓰고 의를 세워나가려고 애를 쓰고 깨어 기도하는 사람이 속사람이 새로워집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이가 먹으면서 점점 쇠해집니다. 믿음도 약해집니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양심을 써야 합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엘리는 눈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엘리가 자기 처소에 누웠습니다. 

본문 3절에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녁에 등불을 켰다가 아침에 끄곤 하는데, 여호와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아침이 오기 전이라는 말입니다. 아마 새벽 같습니다. 새벽 미명, 새벽기도 하는 시간, 이런 때에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늘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자며,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몸 바쳐 수종드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2.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심

본문 4-8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
라 사무엘이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서 엘리에게로 가서 가로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번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사무엘은 지금 제사장을 수종드는 가운데 있으니 “사무엘아, 사무엘아” 할 때에, 아마 우리 선생님이 부르시는가 보다 하고 엘리 제사장에게로 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엘리가 “내가 부르지 않았으니 가서 누우라”고 했습니다. 얼마
있다가 또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니까 엘리에게 가서 “내가 여기 왔다”고 했습니다. 엘리가 다시 “내가 너 부르지 않았다, 가서 누워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사무엘아, 사무엘아” 또 부르셔서 엘리에게 가니 그때에 엘리가 깨달았습니다. ‘아, 세 번씩 이 아이를 부른 것을 보니 분명히 누가 부르긴 부르는데, 하나님께서 부르시나보다’ 하고 깨달았습니다. 

본문 9-10절에 “이에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가로
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번째 사무엘을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사무엘이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엘리에게 배워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르신 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세 번을 부르셨으나 사무엘이 깨닫지 못하고 자기 선생에게 갔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네 번째 부르셔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시고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하고자 하시는 뜻을 다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쓰시는 사람은 기어코 부르셔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가도 또 부르시고, 깨닫지 못하고 다른 길로 가도 또 부르시고또 부르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고야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안 하려고 한다고 안 하게 두시는 것이 아니고, 잘못 나갈 때에 계속 나가게 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무엘도 깨닫지 못하고 엘리에게로 잘못 갔습니다. 잘못 갔지만 하나님께서 또 부르신다는 말입니다. 또 잘못 가니까 또 부르시고, 또 잘못 가니까 또 부르셨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시는 것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꾼으로 택함 받은 사람이 깨닫지 못하고 비뚜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시지 않습니다. 다시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십니다. 두 번, 세 번, 네 번 다시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고 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정 비뚜로 나가면 막대기를 들어 때려서라도 하나님의 일에 복종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예레미야도 “어린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안 합니다” 하고 거부해도 하나님께서 끝까지 일을 시키셨습니다. 모세도 “말할 줄 모릅니다, 입이 둔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 주옵소서”하고 몇 번을 거절했지만 그래도 “입을 지으신 이가 누구냐 내가 아니냐, 벙어리로 말 하게 하시는 이가 누구냐 내가 아니냐,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안 간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마지막에는 마지못해서 가겠다고 작정하고 나섰습니다. 나설 때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은혜를 많이 주셔서 그 일을 감당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 번 시작했다가 실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해 놓으신 일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사람이 잘못 알고 비뚜로 나가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또 부르시고 부르셔서 어떤 사람을 통해서라도 성취하십니다. 신앙이 다 노쇠하여 하나님께 벌 받게 된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그런 사람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은 사무엘을 깨닫게 만드셔서 불러 쓰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불순종하고 곁길로 가다가는 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목사 시키시면 목사를 하고, 장로 시키시는 사람은 장로를 하고,집사를 시키시면 집사 하고, 권찰 시키시면 권찰 하면 됩니다.주일학교 반장 시키시는 사람은 반장 일 보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라는 말입니다.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권찰 안 합니다, 집사 안 합니다, 심방 안 합니다”, 이러면 안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원하는 데 보내주면 하고, 원하는 데 안 보내주면 안 합니다. 아니, 성경에 순종하라고 했지, 자기 원하는 대로 하라는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셔서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일을 안 하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출애굽기 4장 10-14절에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누가 벙어리나 귀머거리나 눈 밝은 자나
소경이 되게 하였느뇨 나 여호와가 아니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시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진노를 쏟아서라도 반드시 그대로 성취시켜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됩니다.
가만 내버려 두시는 사람은 복을 못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께서 안 내버려 두시고 계속 간섭하시고 진노하셔서 막대기로 때리시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하시는 일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순종 하고자 이제는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3. 엘리의 집에 심판을 예고하심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집에 대한 예언은 노인이 하나도 없이 젊어서 다 죽고 환난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은 복을 받을 때에 그 집은 환난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가족들 가운데서 네 마음을 슬프게 하고 또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한날에 죽고 그 다음에 네 집의 남은 사람이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얻어먹으려고 제사장에게 와서 간청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31-34절, 36절에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
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풍성히 주셨을 때 감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죄악을 지었기 때문에 다 빼앗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는가, 그 이유는 본문 13절에 있습니다. 

본문 13절에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들은 저주를 자청하고 아버지는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집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제사 드릴 때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가서 솥에서 삶는 고기를 먼저 건져 먹었습니다. 자기 분깃을 먹은 것이 아닙니다. 제사 드리기 전에도 날 것을 내놓으라고 해서 가져다 먹었습니다. 좀 더 맛있는 것을 먹으려고 하나님의 제사를 무시하고 멸시 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제사 드리고 나면 제사장에게 오는 분깃이 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좀 더 맛있는 것 먹겠다고, 잘 먹겠다고 제사 드리기 전에 날 것을 가져다가 구워 먹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 17절에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사 드리기 전에 자기 먹을 것부터 먼저 가져갔으니까 얼마나 제사를 멸시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가 아주 큰 죄인 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첫째로 삼고 벌벌 떨면서 하면 복을 받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제사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백성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제사를 존중히 여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멸망하기로 작정된 것입니다. 

사무엘상 2장 25절에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제사를
존중하지 않고 멸시하며 자기 먹는 것을 첫째로 하였습니다. 아버지가 권면해도 안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하신 증거입니다. 멸망하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안 듣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이 이렇게 했습니다. 제사를 멸시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제사장의 분깃으로 고기가 돌아오는데 더 맛있게 잘 먹겠다고 날 것을 가져다 먹었습니다. 

조금 잘 먹겠다고 죄 짓고, 잘 살겠다고 죄 짓고, 예배 시간 중히 여기지 않고, 돈 좀 더 벌겠다고 믿음 안 지키고…. 직장에서 돈 좀 더 받으면 뭘 합니까? 주일 잘 못 지킬 것 같으면 그 직장 내놓고 나와야 합니다. 다른 직장 가면 월급을 그 절반 밖에 못 받는다고 해도 믿음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진짜 사는 길입니다.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일생 동안 예수 잘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잘 순종하면서 양심이 편안하고 마음이 편안하게 살면 그것이 얼마나 복입니까? 그것이 진짜 복입니다. 주일 범하고 월급 많이 받으면 양심이 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려고 해도 기도가 잘 안 됩니다. 또 주일날 은혜도 못 받습니다. 주일 안 지키고 돈 버는 것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조금 더 잘 먹겠다고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죄를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좀 더 잘 살겠다고, 좋은 직장 가겠다고 하나님을 잘 못 섬기면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언제나 그런 줄 아십시오. 복 받을 사람은 하나님의 제사를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귀히 여기
고 준비를 많이 하고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제사 드리는 데에 온 정성이 다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 섬기는 데에 온 마음과 뜻과 정성이 들어가서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섬기는 것이 첫째인 사람은 복 받기로 예정된 사
람입니다.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높이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존중히 여김 받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경멸히 여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사람 앞에서도 아주 멸시 받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것을 말해준 것입니다. 

또 엘리는 아버지로서 자기 아들들이 죄 짓는 것을 금하지 않은 책임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말이 너무 미온적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장23-24절에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예 불러다 놓고 당당히, 왜 이렇게 했느냐, 죽는다, 망한다고 단단히 해놓고 자기 아들들이 맡은 제사장 직분도 파면시켜야 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을 멸시하는데 그것을 제사장이라고 그냥 둡니까? 그런데도 ‘내 아들아 그러지 말라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이래 가지고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아들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는 것을 보면 단단히 금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죄와 타협하고 용납하면 자기도 망하고 죄 짓는 사람들도 망하게 할 죄입니다. 잘못 나가는 것은 잘못됐다고 규명하고 책망을 하고 거기 가담하지 말고 죄에서 떠나야 하겠습니다.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죄는 제물이나 예물로 영영히 속함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죄라는 말입니다.

본문 15-17절에 “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가로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말하기를 두려워하니까 엘리 제사장이 그를 불러서 하나도 숨기지 말고 다 말하라고 하였습니다. 다 말하지 아니하면 네가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하니까 사무엘이 전부 말했습니다. 

본문 18절에 “사무엘이 세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자기와 자기 아들이 다 망한다는데 엘리 제사장이 회개는 하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엘리가 신앙 생활
을 잘못한 증거입니다. 신앙이 다 타락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대로 될 것을 믿긴 믿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 앞에 거꾸러져서 회개하고 가슴을 치면서 통곡을 해야 하겠는데 그만한 믿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 이루어진다, 이것만 알고,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고 애통하는 그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께 늘 회개하는 사람이 복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잘못했어도 다시 하나님께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합 왕도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다고 했는데 회개했습니다. 걸음도 천천히 행하고 하나님께 근신하고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니느웨도 40일 후에 다 망한다고 했는데 니느웨 왕과 백성들이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고 애통해 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십니다. 그런데 엘리에게 이 애통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만 알았지, 간절히 사모하고 하나님 말씀 무서운 줄 알고 애통하며 애쓰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 그대로 다 망하게 되는 것입
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고 애통하며, 잘못된 것을 찾아서 고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 망합니다. 일시적으로 실수해서 죄를 지었어도 애통해 해야 합니다. 눈물로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멸망한다 선언하셨다가도 돌이켜 주시는 수가 많이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애통하지 않고 나가는 것은 엘리의 집안처럼 망하는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사무엘과 함께 하심

본문 19-21절에 “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 말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점점 은혜를 베푸셔서 온 이스라엘이 다 그가 선지자인 줄 알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 다시 나타 나셔서 사무엘에게 말씀해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무엘을 하나님께서 기르셔서 하나님의 선지자로 쓰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늘 몸 바치고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귀히 여기셔서 은혜도 더 많이 주십니다. 말씀으로 잘 기르셔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자리에 나가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몸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몸 바치고 늘 깨어 기도하며 주를 위해 충성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주십니다. 말씀도 주십니다. 몸 바치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나가면 엘리의 집안처럼 다 망합니다. 우리는 몸 바쳐서 죽도록 충성하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