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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 수요일

스가랴 3:1-10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스가랴 3:1-10

1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2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3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4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5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6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7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 8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 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10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

1. 사단의 대적과 여호수아의 정화

본문 1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바벨론에서 돌아와 스룹바
벨 총독과 함께 성전을 건축하던 대제사장이었습니다(학 1:1). ‘여호와의 사자’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마귀가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대적했는데, 우편에 서서 대적하였습니다. 우편은 법정에서 유죄를 주장하는 자리입니다. 사단은 ‘네가 무엇을 하겠느냐? 네 죄가 많다. 너는 아무 자격이 없다’고 하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정죄하며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사단의 대적을 막지 못하면 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참소를 이기기 위하여 언제나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할 때에 마귀가 수첩에 루터의 죄목을 써 가지고 와서 ‘네게 이런 죄가 있는데, 무슨 종교 개혁을 하려고 하느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에 루터가 수첩에 빨간 잉크로 십자가를 그렸는데, 그 죄목이 지워지고 마귀는 달아났다고 합니다. 마귀는 언제나 성도를 참소하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성령님께서 변호해주십니다. 마귀가 우리를 참소할 때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갖다 대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이다. 나는 심부름만 하는 것이다’라고 하며 사단의 참소를 이기고, 용기를 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순종하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만 두라고 하시면 그만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만 두라고 하시기 전에는 그만 두지 않는다. 사단아, 물러가라’하며 물리쳐야 합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여호수아를 참소하므로 하나님께서 사단을 책망하셨습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는 여호수아와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불에서 꺼냈다는 것은 
첫째로 환난 중에서 건져냈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로 방치하셨더라면 불에 타서 멸망하였을 것이나, 하나님께서 긍휼로 건져내셨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내지 않으셨으면 성도는 세상의 모든 환난 중에서 멸망당했을 것입니다. 
둘째는 번제단에서 그슬려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에 제단 숯불을 대어서 정결케 해주셨습니다(사6:6-7). 우리는 죄 중에 멸망할 자인데, 예수님의 희생의 제사로 말미암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같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셋째는 불 같은 시험으로 연단시키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가지 시련 속에서 우리를 연단시켜나가십니다(벧전 1:7).

본문 3-5절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하였습니다. ‘더러운 옷’은 죄로 인해 더러워진 옷을 말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와서 참소할 때에 여호와께서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운 옷을 벗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다 제하여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으로 죄를 전부 제하여주셨습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또 모든 성도를 예표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의의 옷을 입으시고 정한 관을 머리에 쓰셨습니다. 히브리서 8장 1-4절에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대제사장마다 예물과 제사 드림을 위하여 세운 자니 이러므로 저도 무슨 드릴 것이 있어야 할찌니라 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좇아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단번에 제사를 드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12장 2절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하였습니다. 바라보면 도움이 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더러운 것을 다 벗겨주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시
며, 아름다운 관을 씌워주십니다.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의를 성도에게 입혀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택한 백성들이 행해야 할 의를 대신 행해주셨습니다. 또 택한 백성들이 죄 값으로 당해야 할 형벌을 대신 다 받으심으로 성도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고, 의를 입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사죄와 칭의(稱義)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성도 곁에서 성도를 변호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
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

본문 6-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호수아에게 증거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만일 내 도를 준행하며 내 율례를 지키면 네가 내 집을 다스릴 것이요 내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또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내 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내 율례’는 월삭과 안식일과 유월절 등 각종 절기와 제사 제도를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를 행하고 율례를 지키면, 내 집을 다스리게 되고, 뜰을 지키게 되며,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내 뜰을 지킬 것이며’란 성전 마당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집의 뜰을 지키는 것이 큰 복입니다.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의 뜰 지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란 자유와 형통함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도와 율례를 잘 지키면 어디를 가나 떳떳하고, 인정을 받습니다. 형통케 되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율례를 지키는 것에는 주일을 잘 지키라는 뜻도 있고, 십일조를 잘 드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하지말라는 것은 끊어버리고, 하라는 것은 하는 것이 율례를 지키는 것입니다. 곧,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첫째,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고, 
둘째, 하나님의 뜰을 지키게 되고, 
셋째, 왕래하며,
넷째,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씌워주시고, 
다섯째, 아름다운 옷을 입혀주십니다. 이 다섯 가지만 있으면 감사하고 만족합니다.

3. 그리스도께서 죄를 제거해주심

본문 8절에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내 말을 들을 것이니라 이들은 예표의 사람이라 내가 내 종 순을 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동료’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동료, 즉 다른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 대제사장이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다른 제사장이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해야 모든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게 됩니다. ‘순’은 앞으로 그리스도께서 나실 것을 가리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실제로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4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라고 하였습니다.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돌이라고 한 것은 강하다는 뜻입니다. 돌이 강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강력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돌과 같이 극강하셔서 어디에 비할 데가 없습니다. 그렇게 강한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번 손만 드시면 다 결단이 납니다. 스가랴 2장 9절에 “내가 손을 그들 위에 움직인즉 그들이 자기를 섬기던 자에게 노략거리가 되리라 하셨나니 너희가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손이 한 번 움직이기만 하면 다 뒤집어집니다. 예수님께서 한 번 손만 움직이시면 원수는 발 아래로 내려가고 성도는 올라갑니다. 강력한 그리스도이십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강하고, 어떤 나라가 강하고, 어떤 왕이 강하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손 한 번만 움직이시면 뒤집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돌이라고 한 이유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또 일곱 눈이 돌에 있다고 하였는데, 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께서 완전한 지혜로 모든 것을 감찰하신다는 것입니다. 돌에 눈이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 완전한 지혜, 전지전능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새길 것을 새겼다는 것은 구속의 진리를 새겼다는 것입니다. 즉, ‘새길 것을 새기며’란 산 돌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여 구원의 새 길을 보여주셨다는 뜻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진리를 완전히 보여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믿는 성도의 죄악을 하루에 제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태산과 같이 크고 피와 같이 붉은 죄라도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으면 즉시로 그러한 죄에 대한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은혜를 상징합니다. 이것은 성도가 구속 받은 영적 세계에서 진리와 은혜의 그늘 아래 복락을 누리며 살 것을 가리킵니다. 또는 천년 왕국 시대에 될 일을 가리킵니다.
미가서 4장 4절에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 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천년 왕국에는 마귀가 없고 죄도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셔서 통치하십니다. 백성들은 자기가 농사한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 아래에서 그 열매들을 먹고 삽니다. 거기는 전쟁이 없고 평화가 충만한 나라입니다. 마귀를 잡아가두므로 전쟁이 없는 화평한 시대입니다. 천년왕국까지 구원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