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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19일 목요일

신명기 27:1-26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축복과 저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그리심 산과 에발 산의 축복과 저주
신명기 27:1-26

1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찌니라 2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이미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니 4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돌들을 에발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찌니라 6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백히 기록할찌니라 9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찌니라 11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12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산에 서고 13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산에 서고 14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 16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17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18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19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0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1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2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3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4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5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26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 

1. 가나안 땅에 기념석을 세울 것

본문 1-4절에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찌니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이미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니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큰 돌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율법의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비석을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하얗게 회칠하여 그 돌을 쳐다볼 때 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대로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가
나안 땅에 들어가서 그 복지를 오랫동안 유지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 비석을 마음에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잊어버리고 다니는 사람은 돌 비석을 세운 사람입니까? 지난 주일에 말씀이 무엇이었는지, 이번에 기도원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모르는 사람은 돌비석을 안 세운 사람이고 하나님 앞에 바로 되지 못한 것이고, 죄 지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그 말씀이 자기 눈앞에, 자기 마음비에 새겨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복을 받고 가나안 복지를 늘 유지할 수 있지만 다 잊어버리고 다니면 얼마 안 가 가나안복지를 다 빼앗깁니다. 돌 비석 세웠습니까? 항상 그 비석이 보입니까? 회칠하였습
니까? 말씀대로 잘 못하기 때문에 돌 비석 세우라는 것이므로, 돌 비석 안 세운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우라고 했는데 왜 안 세우고 하나님 말씀을 흘려 떠내려 보냅니까? 히브리서 2장에 하나님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흘려 떠내려 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흘려 떠내려 보내는 사람은 안 들은 사람보다 못합니다. 돌 비석에 새겨놓고 늘 그 말씀을 쳐다보며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3장 3절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하였습니다. 말씀을 자기 마음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겨놓고 그 말씀이 확실히 깨달아지도록, 회칠한 것처럼 그 말씀이 자기 눈앞에 띄어서 새김질해야 됩니다. 그것을 다 잊어버린 사람은 비석을 깨뜨리고 회칠 안한 것입니다. 말씀이 명백히 보여야 하는데, 이렇게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말씀에 붙들려 살고, 말씀 때문에 본토와 친척을 다 끊어버리고 가야 하겠는데 말씀이 희미하기 때문에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끊어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희미하기 때문에 시온산 정복을 위해 올라가지도 달음박질 하지도 못하고, 말씀이 희미하기 때문에 죄짓고 욕심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회칠을 해서 명백히 바라보이면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습니까? 이것을 회개하고 이제는 말씀에 붙들려 사는 사람이 되어, 밤새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었어도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던 베드로처럼, 본토와 친척을 다 끊어 버린 아브라함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요단강도 건너고 여리고 성도 정복해 들어가도록, 말씀에 의지하여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이 명백해야 합니다. 말씀을 확실히 붙들어야 합니다. 확실히 붙들지 못하고 얼마쯤 가다가 희미해져서 ‘이건가? 저건가?’하면 안 됩니다. 회칠을 안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가나안 좋은 자리를 주셨으니 그곳에 돌비석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
나님의 말씀을 새긴 후 회칠을 하여 늘 그 말씀이 명백히 자기 마음 속에 떠올라 그 말씀의 인도를 받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것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2. 돌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것

본문 5-8절에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철기를 대지 말찌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명백히 기록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석을 세운 뒤 돌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되 제사는 두 가지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돌단은 정으로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고 하셨는데 모양내려고 다듬지 말고 생긴 대로 쌓으라는 것입니다. 굴러다니던 모양 그대로, 조금 큰 것도, 작은 것도 가지고 와서 쌓으라는 것입니다. 보기 좋겠습니까? 모양은 없습니다. 정으로 때려서 각을 내면 깨끗하고 보기 좋겠
는데 주먹 같고, 메주 같이 생긴 돌과 큰 돌들로 쌓으니 튀어 나오고 들어가기도 하고 모양이 없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쌓는 것을 원하시지 모양내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석대로 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으로 다듬지 않은 돌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생겨진 대로, 진실하고 순진하게 자기 속에 있는 그대로 다 나타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십니다. 좀 더 잘 보이게 하려고 다듬고 깎아버리고 하여 인간적인 꾸밈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 생각대로 꾸며서
하는 것이 보기는 좋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강단에서도 순진하게 그대로 성경을 말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순진하게 그대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인본주의가 들어오면 다듬는 것입니다. 당파 나누는 것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작은 돌이 큰 돌 되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순진하고 진실하게, 명예 영광 얻으려는 마음 없이, 가져다 놓은 대로, 생긴 대로 있어야 합니다. 잘 보이려할 것도 없고, 누가 안 봐준다고 서운해 할 것도 없습니다.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꾸미는 것이고 다듬는 것입니다. 돈 있는사람이 돈으로 장로 시켜달라고 하고, 교회에서 한자리 하려고 하는 것은 다듬은 돌입니다. 다듬은 돌로 제단 쌓으면 그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인본주의 제단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돈 많다고, 공부 많이 했다고, 지식 있다고 한 몫 보려 하지 말고,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고 자랑할 것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다듬은 돌로 집을 지어 놓으면 첫째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고 그곳을 떠나십니다. 인본주의 교회는 하나님이 떠나십니다. 교단도, 한 자리 해보려고 당파 나누고, 자기 알아달라고 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들어가 불평하는 것은 전부 순수한 자연 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수한 그대로 있어야 하겠습니다. 좋아 보이게하고 나 알아달라는 생각, 한 자리 해보려는 생각이 전부 꾸미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듬은 돌입니다. 서로 다듬으려고 하니까 싸우고 다투는 소리가 나고, 다듬어 각이 졌기 때문에 서로 부딪혀서 깨집니다. 

둥그런 돌을 가져다 놓으면 깨질 것이 없습니다. 각진 곳이 없기 때문에 깨지지 않습니다. 보기가 조금 안 좋을 뿐입니다. 그래서 메주덩이 같은 사람들만 교회에 모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교회를 세워나가고, 교단을 세워나가고, 다듬지 않은 돌
로 진리운동을 해 나가야 합니다. 각자가 다 다듬지 않은 돌이 되어 순진하고 진실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난만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높아지겠다는 마음, 꾸미겠다는 마음, 알아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는 마음 없이 진실해야 합니다. 작년에 봐도, 금년에 봐도, 몇 년이 지나고 봐도 그대로여야 합니다. 그런 진실한 돌 되는 장로들과 목사들이 모여서 교단이 되고, 이런 진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저 하나님을 향해서 진실해야 합니다. 자기가 어디로 옮겨 가겠다는 생각이 없이 가져다 놓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이 하나님의 합당한 제단, 기뻐하시는 제단, 교회, 교단, 신학교인 것입니다.

이 제단에서 이제 두 가지 제사를 드려야합니다. 번제와 화목제가 그것인데, 번제는 하나님 앞에 불로 태워서 죄 사함을 받는 제사로서 하나님께 희생, 봉사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죄 사함을 받는 제사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는 제사입니다. 그 다음 화목제는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끼리 화목하는 제사입니다. 잘못하는 사람들 보기 싫어서 어떻게 화목할까요? 이기선 목사님은 다른 사람이 잘못할 때 속이 상하면 ‘하나님이 내 꼴을 보고도 참았으니 나도 참자’ 하고 참았다고 합니다. 참는 것이 복이 있습니다. 첫째도 참는 것이고 둘째도 참는 것이고 셋째도 참는 것입니다. 참다보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일곱 번 까지 용서 합니까?’하고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어 봤을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 용서해주고 화목 하라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희생할 제물을 가지고 가서 화목제를 드리는데 희생의 제물이 예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희생을 가지고 나가서 그 십자가 아래서 화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며 나도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얼마짜리 탕감 받았습니까? 일만 달란트짜리 탕감을 받았는데 형제는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졌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저 사람이 잘못한 것보다 60만 배 큰 죄를 탕감 받았는데, 내가 60만 배 작은 죄를 탕감 안 해 줄 수 있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다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사죄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사해준 것 다 내라고 하셔서 그것 다 갚으려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니까 형제가 일백 데나리온 잘못한 것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제입니다. 

요단강을 건너가서 돌비석을 세우고 거기에 계명을 기록하여 그 말씀대로 살고 늘 회칠하여 말씀이 명백히 드러나게 하고 그 다음에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두 가지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번제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화목제로 사람과 화목 하라는 것입니다. 원수된 것 다 풀라고 했습니다. 화목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서 살 수 없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복된 자리에 왔어도 얼마 안 있으면 다 빼앗깁니다.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끼리 화목하고 화목제를 드리면서 서로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3. 그리심산과 에발산의 축복과 저주

본문 9-10절에 “모세가 레위 제사장들로 더불어 온 이스라엘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아 잠잠히 들으라 오늘날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찌니라”고 하였습니
다. 이제 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명령을 복종하고 하나님이 세우신 규례를 다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14절에 “모세가 당일에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이라고 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간 뒤에 열두 지파 중 절반은 그리심 산에, 절반은 에발 산에 세우고 레위 사람은 그 중간에 서서 큰 소리로 계명을 외치고 모든 백성은 ‘아멘’하라 하였습니다.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선 지파들은 대게 야곱의 본 처가 나은 아들들로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 베냐민 여섯 지파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행하려는 사람들 같습니다. 에발산에선 지파들은 르우벤을 제외하고는 대게 종의 아들들로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지파이고, 르우벤 지파는 맏아들이라고 해도 음행 죄를 지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긴 지파입니다. 죄를 지을 가능성이 많은 지파들입니다.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은 ‘이대로 행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면 ‘아멘’하고 에발 산에 선 사람들은 ‘이대로 행하지 못하
면 저주 받는다’할 때 ‘아멘’ 하라는 데 어디에 선 사람이 좋겠습니까?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로 ‘복 받겠다’할 때 아멘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격이 있어야 거기 서지 자기가 서고 싶다고 거기에서는 것이 아니며, 에발 산에 선 사람도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대로 선 것입니다. 외치는 말씀의 내용은 비슷합니다. 안 하면 저주 받으니
하라는 말씀이고 또 하면 복 받으니 하라는 내용으로 같은 말입니다.
저주 받는다고 하면 당장 기분 나빠 하지만 복 못 받는다 하면 그리 나쁘게는 여기지 않으나 내용은 같다 말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선언한 것이 전부 열 두 가지입니다. 본문 15절에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고 ‘아멘’해야 합니다.
첫째가 우상을 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고 우상을 안 섬기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으로 둘 다 아멘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 저주, 안 섬기면 복, 둘 다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제일 큰 것이 우상 섬기는 죄입니다. 우상은 하나님 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따라가
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세상나라가 우상이 되고 또 말을 하면 그 참람된 말을 다 따라갑니다. 요새 무엇이 하나님 보다 더 큽니까? 돈이고 세상입니다. 또 자기가 우상이 되어 하나님 보다 더 크게 여기고 더 위에 놓고 자기 목숨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 못 따라
가고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종노릇 합니다. 이런 우상 없이 하나님만 따라가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또 말씀 어기고 사람 따라가면 그 사람이 우상이요, 말씀 어기고 직장 따라 가면 그 직장이, 말씀 어기고 남편이나 아내를 따라가면 남편이나 아내가 우상입니다. 하나님 보다 더 지배 받는 것은 다 우상 인데, 우상을 다 버려야합니다.
야곱도 우상을 다 버리고 의복을 바꾸어 입고, 몸을 정결케 하고, 귀고리는 다 땅에 묻고 일어나서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우상 안 버리면 못갑니다. 말씀보다 더 크게 여기는 것, 말씀 어기고 따라가고 말씀 어기고 취하는 것은 다 우상이며 저주 받습니다. 

둘째는 본문 16절에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에발 산에 선 사람들은 ‘아멘’하고, 부모를 경홀히 여기고 순종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고 할 때 ‘아멘’해야 합니다. 그리심 산에 선 사
람들은 부모 공경하면 복 받는다고 할 때 ‘아멘’해야 합니다. 부모님 공경 잘 하셨습니까? 잘 했으면 복을 받고, 잘 못했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부모 공경 하는 것의 첫째는 부모님이 예수 믿고 천국가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옥가게 하는 것은 효자가 아닙니다. 둘째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원하는 대로 해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다 잘 해 드려도 마음 편하게 못 해드리면 괴로워하시고 그러면 효자가 아닙니다. 셋째는 용돈을 드려야합니다. 용돈 드리는 것이 효자고 용돈 안 드리면 아무리 잘해드려도 효자 아닙니다. 넷째는 의복과 이부자리를 따스하고 가볍게 해드려야 합니다. 다섯째는 음식을 잘 대접해드려야 합니다. 넷째까지 다 안하고 음식만 계속 사드리면 그것은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가 잘 못해줬으면 어떻게 합니까? 부모님이 남의 부모님처럼 잘해주고 공부도 많이 시켜주고, 재산도 물려주고, 시집․장가갈 때 잘 해주어야만 부모님 공경합니까? 잘 해 주어야만 부모님입니까? 성경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에 잘 해준 부모만 공경하라고 했습니까? 부모는 무조건 자기를 낳아준 것으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부모라서 공경하는 것이지, 잘 못해준다고 공경안하면 불효자로 하나님께 저주 받습니다. 그러니까 잘 해준 부모님이나 잘 못해준 부모님이나 다 공경하여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부모님 잘 공경하는 사람은 복 받습니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고 그 사람에게 복을 줍니다. 또 부모님이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 안 있으면 떠납니다. 떠난 다음에 슬퍼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나무가 잔잔하고 싶어도 바람이 그렇게 안 해주고, 부모님께 잘해 드리고 싶어도 부모가 계시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가 잔잔하고 싶으나 바람이 그쳐야 잔잔해 지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처럼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도 부모님이 살아 계셔야 할 수 있으므로 살아 계실 때 효도해야합니다. 떠나기 전에 부모님 따스하게 잘 대접하고 마음 편하게 해드리고 용돈도 드리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복 받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을 것입니다. 

셋째는 본문 17절에 “그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에발 산에 선 사람들은 ‘아멘’해야 합니다.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지 않는 자는 복 받을 것이라고 할 때에는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해야 합니다. 지계표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새는 밭이면 밭 산이면 산 다 경계가 있는데, 그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계를 옮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7장 26절에 각 민족의 경계를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셨다고 하셨는데 경계를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의 말씀을 주시고 ‘이 진리의 말씀을 가진 사람들은 이 안에서 진리 운동을 하라’는 경계를 정해 주셨습니다. 가령 유다 지파는 유다 지파에게 준 경계 안에서 살고 다른 지파로 넘어가면 안 됩니다. 요셉 지파는 요셉 지파에게 준 경계 안에서 살고 경계를 옮기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주신 다음에는 진리에 대한 경계 안에서 살아야지 경계를 벗어나면 안 됩니다. 교단을 주시고 그 교단의 경계 안에서 진리를 세워나가도록 해놓으셨습니다. 아무 교단에 가서 ‘나는 나대로 한다’는 사람은 며칠 못가고 효력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장로교 교리를 가진 사람이 감리교에 가서 ‘나는 나대로 한다, 장로교에서 배운 그대로 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예정을 믿는다’고 한다면, 그렇게 할 수는 있지만 얼마 못갑니다.
그리고 힘이 없습니다.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데 자기 혼자만 올라간다고 하면 올라가지겠습니까? 다 동쪽으로 흐르는데 자기는 북쪽으로 흐르려고 하면 흘러가 집니까? 북쪽으로 흐르려면 북쪽으로 흐르는 강에 가야지 북쪽으로 흐를 사람이 동쪽으로 흐르는 강에 가는 것은
지계표를 옮긴 것입니다. 마음만 자기 배운 대로 하려는 것이지, 실제로는 안 됩니다. 전체가 다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자기 혼자 몇몇 사람들 모아서 대세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정해준 경계 안에서 신앙생활 하고, 그 경계를 벗어나서는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 몇 마디 주장하다가 다 떠내려가므로 하나님이 세워놓은 경계 안에서 그 진리를 세워 나가야 그 진리 운동이 제대로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경계 옮기지 말라는 것이 이것입니다. 

본문 18절에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넷째 아멘입니다. 소경으로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면 에발산에 있는 사람들 ‘아멘’ 해야 하고, 소경으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자는 복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산에 있는 사람들이 ‘아멘’을 하라는 것입니다. 소경을 바로 인도하지 않고 길을 잃게 만들면 저주를 받습니다. 마태복음은 15장 14절에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 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고 하였습니다. 소경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못해 헤맬 때 길을 잘 인도하여 바른길 가게 하면 소경도 좋고 자기도 좋고 하나님도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소경을 바른길로 가게 하지 못하고 길을 잃게 만들면 소경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소경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면 자기 눈부터 떠야 ‘이게 바른 길이다’ 하고 소경을 바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기껏 인도 한다는 것이 잘못 인도하여서 구렁텅이에 빠뜨리면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또 소경 어머니도 아들 빠뜨려 죽였다고 진노할 것입니다.
먼저 자기 눈도 뜨지 못하고서 서툴게 다른 소경을 인도하다 빠뜨려 죽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가 바로 모르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바로 인도 할 수 있겠습니까? 소경을 바로 인도하는 자는 복 받습니다. 심령의 눈이 어두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
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밝히 가르쳐 주어서, 그 소경들이 다 눈을 뜨고 생명길을 걷게 만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자기도 좋고 소경도 기뻐합니다. 복 받습니다. 그러나 길을 잃게 한 자는 저주 받습니다. 오늘날 자기도 소경인데 다른 사람들까
지 소경 만들고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신비주의가 분명히 잘못되었는데, 자기도 그리로 가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로 끌고 갑니다. 신신학, 해방 신학, 민중 신학이 분명히 잘못되었는데 자기도 가고 많은 사람들을 그리로 끌고 갑니다. 그것은 소경을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겠습니까? 소경 길 잃게 하는 자는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합니다. 소경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사람은 마땅히 복을 받아야 합니다. 복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 19절에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에발 산에 있는 사람들은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또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바로 해 주는 사람은 복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 산
에 선 사람은 ‘아멘’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대로 나그네, 고아, 과부를 잘 위해 주어야겠습니다. 나그네는 자기 고향을 떠나서 돌아다니는 사람들, 예수 믿는 신앙 때문에 쫓겨난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을 잘 도와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무시하는 사람은 저주를 받습니다. 

본문 20절에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드러내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계모와 구합하는 자는, 아비가 죽었다고 해도 저주를 받습니다. 제 7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무릇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짐승과 교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에발 산에 선 사람들 ‘아멘’해야 합니다. 교합 안하는 자는 복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 해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그 자매 곧 그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아비의 딸이나 어미의 딸과 구합하지 않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이 ‘아멘’해야 합니다.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면 에발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에 “장모와 구합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에발 산에 선 사람들은 ‘아멘’ 해야 합니다. 장모와 구합하지 않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해야 합니다.
제 7계명에 대한 죄가 여러 가지 나왔는데, 우리가 음행 죄에 빠지지 않도록 철저히 힘써야 되겠습니다. 음행 죄에 빠지면 저주를 받습니다. 고린도교회에 계모와 구합하는 자가 나왔는데 사탄에게 내어주어서 육신은 망하고, 영혼만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4절에 “그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암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뒤에서 죽이려고 수군수군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하셨는데 뒤에서 몰래 미워하는 것이 암살입니다. 그러면 저주 받고 반면에 사랑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남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미워해도 자기는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같이 미워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같이 미워하라고 하셨습니까? 너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해주고,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말라하면 물을 마시게 하면 숯불을 머리 위에 올려 놓은 것 같아서 다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으로 삼켜서 다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것을 사랑으로 이기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같이 미워하면 마귀가 좋아하고 둘 다 마귀의 종이 됩니다. 미워하는 데서 돌이켜 사랑해야 마귀의 종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본문 25절에 “무죄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에발 산에 선 사람들은 ‘아멘’하고, 뇌물 안 받는 자는 복 받을 것이라고 하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에발 산에 선 사람은 ‘아멘’하고, 이대로 행하면 복 받을 것이라 하면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이 ‘아멘’해야 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는데, 모두 함께 세우지 않고 에발 산에, 그리심 산에 절반씩 나눠서 세우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복 받으면 저주 안 받을 것이고, 저주 받으면 복 못 받을 것이므로 내용은 비슷합니다. 

에발 산에 서서 ‘이것 안하면 저주 받는다’고 할 때 아멘한 사람들은 죄 가운데 빠졌다 나온 사람들이고 또 빠질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 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렇게 하지 말아라 이렇게 하면 저주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욕 잘하는 사람보고 욕 하지 말라고 해야지, 칭찬 해주겠습니까? 물에 빠질만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개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심 산에 선 사람들은 이대로 하라고 하면 할 만 한 사람들로서 그대로 할 만 하기 때문에 ‘이대로 하라’고 적극적으로 내몰아야 합니다.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빠지지 말라고 교훈을 해주고 잘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자기가 빠질 가능성이 있으면 늘 깨우침을 받고 빠지지 말라는 말을 늘 들어야 하고, 십일조 안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 늘 드리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한 번 들을 때, 두
번 들을 때, 열 번 들을 때가 다릅니다. 늘 깨우침을 받아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기 신앙심을 겨우 유지 시킵니다. 사람마다 약한 면이 있는데 약한 면 있는 사람은 자꾸 약한 면을 경계하고, 책망을 받으며 약한 면에 빠지지 않도록 힘을 많이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약하여 가룟 유다와 같이 돈만 준다면 선생도 팔아넘기는 사람이 있고, 기생 들릴라에게 빠져 죽은 삼손처럼 이성 문제에 약한 사람이 있습니다. 또 명예 영광심에 약한 사람, 교만에 잘 빠지는 사람도 늘 그 경계를 받아야 하고, 자기도 늘 힘을 써야 합니다. 내가 이런 면이 약하여, 이런 구렁텅이에 빠지기 쉬우니 항상 ‘빠지면 죽는다, 빠지면 저주 받는다’하며 경계 하고 정신 바싹 차려야 합니다. 또 부모 공경 안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할 때 정신을 바싹 차리고 ‘제가 잘못했습니다’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열 두 지파를 세워서 이런 것을 안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한 것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여섯 지파에게는 하라고 했습니다. 하면 복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란 말처럼 달리는 말에 채찍질 하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까지 하느라 힘을 썼는데,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행하면 복을 받으니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껏 부모 공경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하고 지금껏 우상 섬기지 않았듯이 앞으로도 계속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계속 거룩하고 계속 사랑하고 계속 소경의 길을 잘 인도해 주라는 것입니다. 계속 하는 사람은 계속 하도록 하고 달음박질 잘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전진하여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갑니다. 
 
어느 쪽에 있는 사람이 많을까요? 빠지기 잘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달음박질 잘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왼쪽에 있는 유혹에 빠지기 잘하는 사람은 안 빠지려고 계속 힘써야 합니다. ‘빠지면 죽는다, 빠지면 망한다, 빠지면 저주 받는다’하면서 계속 자기를 경계해 나가고, 책망
들을 때에 ‘옳습니다,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하여야 합니다. 이런 뜻으로 양 쪽에 세워 놓고 축복과 저주를 할 때 둘 다 ‘아멘’하라는 것입니다. ‘아멘’하면서 한 편은 죄에 안 빠지려고 힘써야 하고, 한 편은 올라가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잘 건 설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서는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격을 보셔서 세우시는데 오늘은 왼편이라도 계속해서 죄에 안 빠지려 힘써서 얼마 후에는 오른편에 세워져야 합니다. 다음번 사경회 올 때는 오른편에 서서 오셔야 합니다. ‘이대로 해라’ 하실 때 ‘아멘’하고 달라붙어서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
다.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어야 일어서는 것입니다. 기드온 삼백 명 용사가 힘을 썼습니다. 왼편에 선 이만 이천 명은 힘을 못 썼습니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이제는 다 나와야 합니다. 저주 받는데 있지 말고 다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축복 받는 자리로 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