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롯의 신앙노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롯의 신앙노선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월 2일 월요일

창세기 13:1-18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롯의 신앙노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아브라함의 신앙노선과 롯의 신앙노선
창세기 13:1-18

1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2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3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4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5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6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7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 8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9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10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11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12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루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13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 에서 동서 남북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와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18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13:1 아브람이 그의 아내와 함께 그의 모든 소유를 가지고 이집트에서 네게브로 올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다. 

13:2 아브람은 가축과 은과 금으로 부유하였다. 

13:3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베델까지 여행하여 베델과 아이 사이 그의 장막이 처음 있던 곳까지 갔는데 

13:4 그곳은 아브람이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장소로, 거기서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13:5 아브람과 함께 다니던 롯에게도 양 떼와 소 떼와 장막들이 있었다. 

13:6 그 땅은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너무 좁아서 살 곳이 되지 못하였으니, 그들의 재산이 많아서 함께 살 수 없었다. 

13:7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들과 롯의 가축의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그때 가나안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도 그 땅에 살고 있었다. 

13:8 그러자 아브람이 롯에게 말했다. "우리는 친족이니 나와 너 사이에, 그리고 내 목자들과 네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도록 하자. 

13:9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느냐? 나를 떠나라. 만일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고,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겠다." 

13:10 롯이 눈을 들어 요단 온 들을 바라보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기 전이었으므로 소알까지 그 전체가 물이 넉넉하여 마치 여호와의 동산 같고 이집트 땅과도 같았다. 

13:11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쪽으로 떠나갔으므로 그들은 서로 갈라서게 되었다. 

13:12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살았고, 롯은 들의 성읍들에 살았는데 소돔까지 이르러 장막을 쳤다. 

13:13 소돔 사람들은 악하였고, 여호와께 큰 죄인들이었다. 

13:14 롯이 아브람에게서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그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13:15 네가 보는 모든 땅을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히 줄 것이다. 

13:16 내가 네 후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할 것이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셀 수 있다면 네 후손도 셀 수 있을 것이다. 

13: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가로와 세로로 걸어가라. 내가 그것을 네게 줄 것이다." 

13:18 아브람은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근처에 와서 살았는데 거기에서도 그는 여호와께 제단을 쌓았다.


1. 아브람이 풍부해짐

본문 1-4절에 “아브람이 애굽에서 나올새 그와 그 아내와 모든 소유며 롯도 함께하여 남방으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그가 남방에서부터 발행하여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전에 장막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이 애굽으로 올라가 유단 남방으로 올라가서 벧엘과 아이 사이에 이르렀습니다. 이곳은 아브람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처음 제단을 쌓은 곳입니다(창 12:8). 아브람이 그곳에 다시 찾아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은 애굽에 내려가서 신앙적으로 실패하고 처음 신앙을 잃어 버렸으므로 처음 신앙을 다시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 분쟁

본문 5-6절에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서로 같이다녔는데 여기서는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이고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서 아브라함을 따라 다니며 모든 일을 하여 일이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도 양과 소도 많고 롯도 양과 소가 많아 큰 부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양과 소도 많고, 조카 롯의 소유도 많아져서 그 땅이 좁아 함께 살기에 불편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게 되었습니다.

본문 7절에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게 된 것입니다. 그 땅은 그렇게 넓은 땅이 아닌데 피차 양과 소가 많아 싸우
게 되었습니다. 또 그 땅에는 가나안 사람도 있었고, 브리스 사람도 있어서 땅이 너무 좁은 것이었습니다. 서로 용납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싸우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지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툴 때에는 롯이 아브람을 좇아와서 많은 재산을 얻은 것이므로 롯이 떠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런데 롯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 분리

땅 선택권을 롯에게 양보함

본문 8절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족, 한 골육인 삼촌 조카사이인데 싸우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본문 9절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는데 이제는 나누어질 때가 됐다, 네가 가고 싶은 대로 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좌하리라고 아브라함이
롯에게 양보 했습니다.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양보하고 우선권을 준 것입니다. 네가 오른쪽으로 가면 나는 왼쪽으로 가고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겠다고 한 것은 큰 양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인도대로 따라갈 때 롯은 조카로서 아브라함을 따라 다녔기에 여기서 아브라함이 양보를 안하면 롯이 떠나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 다니는 사람이 떠나야지 아브라함이 떠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롯은 소돔 고모라 땅을 선택함

본문 10-12절에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
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루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고 하였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보니 소돔 고모라 부근에 있는 소알 땅이 좋아 보였습니다. 그 땅은 상당히 비옥한 땅입니다. 땅도 넓고 초장이 좋고 물이 넉넉하고 소돔 고모라까지 길이 열려 있어 목축하기에 제일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이 소돔 고모라 부근의 좋은 땅 요단, 그 땅으로 자기가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그곳으로 가라, 나는 가나안 땅, 이 부근 어디 다른 곳으로 가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 아닙니다. 산과 골짜기가 있고, 곡식도 잘 안되고 목축하기에도 좋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우선권이 있는데 어째서 조카에게 먼저 택하라고 했습니까? 또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다니는 형편이고 아브라함 때문에 그만큼 되었는데 왜 먼저 선택을 했습니까?

롯은 양심을 쓰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롯이 양심을 썼다면 아브라함이 가라는 곳으로 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삼촌을 따라 다니며 이만큼 됐는데 삼촌께서 가라는 곳으로 가야겠다, 어디로 갈까요?’ 이렇게 말해야 롯이 바른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어느 곳으로 가라 할 때 움직이면 되는데 따라다니는 형편에, 자기가 어떻게 우선권을 가질 수 있느냐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인도를 받아서 그만큼 잘 되었는데 갈라지는 마당에서도 인도를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결국, 롯은 소돔 고모라 들판, 애굽땅과 같고 에덴동산과 같은 그런 좋은 땅을 택하여 그곳에서 목축을 잘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땅에는 죄악이 많았습니다.

본문 13절에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목축도 잘 되고, 돈도 잘 벌고, 사업이 잘 되어 살기는 좋은데 문제는, 소돔 사람이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던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에 살면서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을 선택함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왜 그렇게 말했습니까? 아브라함은 ‘아무곳으로 가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산골로 가든 돌짝밭으로 가든 어떤 곳으로 가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방패요 상급이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상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5:1절에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상급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좋은 곳으로 인도
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자기 상급이고, 자기의 방패임을 믿었기 때문에 아무데를 가도 하나님께서 잘 되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곳에 가도 먹을 것을 주시고, 또 초장도 주시고, 목장도 주시며 잘 되게 해 줄 것을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이 제일 좋은 곳을 골라서 내게 다 주신다’ 이것을 믿은 것입니다. 롯이 가지 않은 곳으로 가더라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지켜 주시고, 방패가 되시고, 상급이 되셔서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실 것을 확신한 아브라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 곳에 가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되시므로 아브라함이 상급을 모시고 다닌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기 때문에 상급을 따라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아무 곳에 가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보낸 다음에 옮겨 갔습니다.

본문 18절에는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고 하였습니다. 거기에서는 둘 다 떠났습니다. 한 사람은 있어도 될 텐데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니까 둘 다 떠나야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한다는 것이 둘 다 떠난다는 뜻이 있지 않습니까? 네가 왼쪽으로 가면 나는 오른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내가 있겠다는 것이 아니고, 네가 우하면 나는 왼쪽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간다는 것
입니다. 오히려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이 거기 있다고 한다면 미련이 남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네가 먼저 좋은 곳으로 선택하면 나는 다른 곳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4. 롯의 신앙

한 손에는 하나님을 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나가는 신앙

롯은 소돔 고모라 들을 바라보니까 흡족했습니다. 애굽땅과 같고 에덴 동산과 같아서 여간 좋은 땅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서 목축을 하면 소돔 고모라 도시에 팔기도 좋으니까 판로가 좋게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롯은 그리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곧 롯의 신앙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세상 것을 붙들고 나가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베드로 후서 2:7-8절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롯도 신앙이 좋고, 경건하다고 했습니다. 또 롯은 의인이라 하였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살았어도 ‘그들의 음란한 행실을 보고 의로운 심령이 상하니라’ 한 것을 보면 롯은 의인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롯은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소돔 고모라 들판, 세상 것을 붙들었습니다. 그것이 롯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한 분만 붙드는 신앙이고. 한손에 세상을 붙드는 신앙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나님 한 분이면 됩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
붙들고 또 한쪽은 이 세상과 땅의 것을 붙들고 나가는 신앙입니다. 그래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롯의 신앙과 같이 ‘나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어야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롯과 같이 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북에서는 예수 잘 믿다가 3.8선 넘어와 잘 살아보려다가 도리어 쫄딱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 평양에서 신학교를 같이 다닌 사람이 처음에 양계를 해서 돈을 잘 벌었습니다. 그러다 얼마 후에 망해서 여기 저기 돈 한 푼씩 얻으러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롯의 신앙은 가다가 실패합니다. 아무리 처음에 돈 좀 벌었어도 소돔 고모라 멸망할 때 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위들은 소돔 고모라 불타서 죽었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모아 놓았던 재산, 살림살이들도 다 불타져 쫄딱 없어졌고 롯의 처는 그것들을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롯은 벌거벗은 몸으로 나온 것과 같은 그런 구원을 얻었습니다.

5. 아브라함의 신앙

그러면 아브람이 왜 조카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한다고 하였습니까? 양이 상당히 많았을텐데, 양을 먹이지 못하는 돌밭이나 산골 같은 데로 가면 어떻게 양을 치려고 합니까?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며 사는 신앙

아브람은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한분으로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람이 물질을 의지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으로 생명과 재산을 삼고 살았기 때문에 “나를 살려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신앙으로 롯에게 우선권을 준 것이었습니다.

롯이 얼마 동안은 상당히 잘 되어 나갔을 것 같습니다. 들판에 물이 넉넉하고 초장이 좋아 양들도 새끼도 잘 낳았을 것입니다. 또 번식도 많이 하고 양털을 깎아 소돔 고모라에 갖다 팔면서 양 가죽도 파니까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돈도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브알세바라는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은 산골 구석입니다. 비가 오면 흡수하는 땅, 모든 것이 잘 되지 않는 산골 구석. 돌짝 밭인 땅 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이 외면한 땅, 가나안 땅 헤브론, 산골 구석으로 양떼를 끌고 갔습니다. 롯은 한 편으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면서 한 편으로는 세상을 붙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세상을 둘 다 가지겠다는 것이 롯의 노선이고, 그저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겠다는 것이 아브람의 노선입니다. 그래서 롯은 세상 적으로 풍부해 보이는 소돔 고모라로 갔고, 아브람은 헤브론 산골로 갔습니다.

즉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창세기 12:7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셨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거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신명기 11:11-12 상반 절에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가 권고하시는 땅이라”고 하였습니다. 가나안은 산과 골짜기로 된 땅이라, 비가 내리면 흡수하는 땅이라 곡식도 안 되고 풀도 무성하지 않는 곳이지만 하나님의 권고가 함께 하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하나님의 권고하심 바라고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려고 가나안 땅으로 간 것입니다.

그 땅은 세초부터 세말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얼마나 좋은 땅입니까? 하나님 한분이면 모든 것을 가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만 즐거워하며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는 생명의 세계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브람의 신앙 노선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한 분만 붙들고 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롯의 신앙 노선은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붙들고 나가는 것입니다. 즉 한 손으로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으로는 세상을 붙들고 살겠다는 것이 롯의 신앙 노선인데, 그 결과는 실패입니다(창 19:24-26).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신앙

또 롯과 갈라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함께 있으면서 서로 싸우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물질 문제로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이방사람들에게 덕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롯에게 양보하며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신앙이고, 하나님 제일주의의 신앙입니다.

영적 생명의 신앙을 우선으로 하는 신앙

또 아브람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고 하나님으로 만족하였습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산중이나 사막이나 황무지나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살고자 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로 싸우다가 하나님과 동행하고 교통하며, 성결을 유지하는 신앙을 빼앗긴다면 요긴한 것을 다 빼앗기는 것입니다. 물질보다 하나님과 동행하고, 자기의 영적 성결을 이루어 나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높이는 것이 물질보다 몇 만 배 낫습니다. 즉 자기 속에 영적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일, 영적인 생명의 역사가 계속 되는 일이 물질보다 더 낫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5: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브람의 신앙입니다. 속옷을 가지고자 할 때에는 겉옷까지 주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성결을 이루어 나가서 영적 신앙의 알맹이를 빼앗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복을 빼앗겨도 영적생활, 즉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왼편 뺨과 오른편 뺨을 맞아도 영적 생명의 신앙은 빼앗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 생명이 중요하지 물질, 의복, 뺨 맞지 않는 것, 오리 가고 십리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영적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는 것이냐? 영적 신앙의 길을 걸어 나가지 못하는 것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영적 신앙생활만 빼앗기지 않으면 신앙의 열매를 맺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빼앗기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영적 신앙생활만 빼앗기지 않으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알맹이가 중요한 것입니다. 가령 왕의 딸을 데려다가 아내로 맞은 사람이 있는데 도적이 들어왔습니다. 그때 다른 것을 다 빼앗겨도 왕의 딸만 잘 지키면 그 다음에 왕이 더 좋은 것을 줍니다. “네가 도적한테 얻어맞
으면서도 내 딸을 빼앗기지 않았으니 참 착한 사위이다. 필요한 것이 없느냐? 무엇을 잃어버린 것이 없느냐?”하며 헌 것을 잃어 버렸으면 새 것을 주고,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줍니다. 그러나 물건을 안 빼앗기겠다고 벌벌 떨며 물건을 붙잡고 있다가 도적이 왕의 딸을 데리고 갔다면 왕한테 칭찬을 받겠습니까? 도리어 책망을 받습니다. 물건이 큰 것이 아니고, 아내가 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를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즉 영적 생명만 안 빼앗기면 다른 것을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십니다. 이것이 제일 요긴한 것입니다. 아브람이 롯과 싸운다면 영적 생명의 역사는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은 “네가 먼저 선택하라”며 양보한 것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이 나의 상급이요, 내 생명입니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간 것입니다.
아브람의 신앙은 차원이 높은 신앙입니다. 그런데 롯은 무엇을 크게 생각했습니까? 세상 것을 더 크게 여겼습니다. 즉 한 손에는 하나님을 붙들고, 한 손에는 세상을 붙들고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모든 것을 다 내어 놓고 하나님 한 분만 붙드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첫째로 하는 신앙

아브라함은 헤브론에 가서 산골 구석에 가서 여호와를 위해서 단부터 쌓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첫째입니다.
그럼 롯은 첫째가 무엇입니까? 역시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한테 잘 배워서 첫째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의로운 심령이라고 하였습니다. 둘째는 무엇입니까? 세상 붙잡는 것입니다. 그것이 롯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의 첫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도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셋째도 하나님 섬기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섬기는 한 가지 뿐입니다. 둘째는 없습니다. 첫째도 하나님 섬기는 것, 둘째도 하나님 섬기는 것, 셋째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분만 섬기려는 아브라함 신앙은 첫째도 하나님 섬기는 것, 둘째도 하나님 한 분만 섬기는 것, 셋째도 하나님 한분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방패와 병기, 상급으로 삼은 신앙

하나님으로 자기의 방패와 병기를 삼은 아브라함은 원수가 많아도 하나님이 방패가 되신 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아무리 일이 안될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상급이 되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이 상 주실 것을 믿고 주께서 인도하는 대로 산골이나 돌밭이나 헤브론이나 아무데나 가는 것입니다. 방패와 상급을 모시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원수가 있어도 걱정이 없고 또 아무것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상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상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믿음 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걸 믿는 게 믿음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굶겨 죽이시겠습니까? 아브라함이 굶었을까요? 안 굶었습니다. 하나님이 상급이 되시기 때문에 하나님 한분만 모시고 살려고 하면 반드시 먹을 것, 입을 것 다 주십니다.

제 생각을 해 보았는데 저는 6.25사변 때 가방 하나 들고 3.8선을 넘었습니다. 이북에서 들고 온 돈이 조금 있었는데, 오다가 3.8선에서 다 빼앗기고 돈 한 푼 없이 가방에 성경, 찬송가만 넣고 온 것입니다. 이북에서 보던 그 성경, 찬송가가 지금도 있습니다. 빈 손 들고 왔는데 3.8선 넘어 오늘날까지 50여 년 간 하나님이 굶기지 않고 먹을 것, 입을 것 다 주셨다는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이처럼 좋은 옷을 입혀 주시지 않았습니까? 3.8선 넘어 올 때는 이런 옷이 없었습니다. 50년 동안 하나님께서 다 좋은 것으로 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믿음으로 살면 먹을 것과 입을 것, 모든 것을 다 책임지고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6.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

보이는 땅을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주시고 영원히 이르게 하심

본문 14-15절에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 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 붙드니까 하나님께서 찾아 오셨습니다. 찾아 오셔서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바라본 땅은 다 준다는 것입니다. 거기 있는 동서남북을 바라보면 몇 리나 바라 볼 수 있겠습니까? 한 100리는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맑은 날 북한산에 올라가면이북 땅도 보인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는 바라볼 때 좀 더 바라보려고 했을 것 같습니다. 조금만 높아져도 아마 몇 십리는 더 보이는데 아마 발꿈치를 들고 더 보려고 애를 썼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을 다 준다는 뜻은 네가 바라보고 믿는 것을 다 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 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의 실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왜 바라보라고 하였습니까? 바라보는 건 소망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을 바라봐
라, 하나님의 허락하신 것을 바라보면 실상이 된다. 네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 말씀에 약속한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실상이 됩니다. 실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당을 바라본다고 합시다. 그럼 천당이 다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네가 믿는 것, 하나님 말씀으로 믿는 것이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믿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것을 믿고 바라보면 내 것이 됩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봅니다. 또 성경에 바라보
는 것 많습니다. 내게 대한 기업, 열 고을 권세, 다섯 고을 권세, 므나 남겨서 바라보면 그것이 다 내 것이 됩니다. 소망을 하면 내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네가 이 하나님 말씀 지키면 창성해 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창성해 집니다.

또 여호와를 공경하는 사람의 자손은 빌어먹는 법이 없다고 하였는데 그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손이 빌어먹는 법이 없습니다. 반드시 다 잘 됩니다. 하늘의 별과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바라보면 예수님이 나셔서 믿음의 자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집니다.
또 믿는 사람이 그것을 바라보고 믿으면 앞으로 자기를 통해서 믿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또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복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바라보면 후대가 복 받습니다. 반드시 복 받습니다.

바라보는 것은 다 네게 준다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 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면 면류관을 바라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그것은 네 것이 된다, 바라보는 것은 네 것이 된다, 다 너를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21-22절에 “그런즉 누구든
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현재일, 장래일, 사망, 생명이 다 너를 위해서 있다는 것입니다. 만물이 다 너희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럼 만물이 다 자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이 만물이 다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말입니다. 또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장래에 것도 다 우리 위해서 해 주셨습니다. 현재 것도 사망이나 생명이나 다 우리를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바라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 됩니다. 바라보는 것이 그렇게 큰 것입니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이 전도한다고 광고를 써 붙였더니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모였더랍니다. 나이아가야 폭포 주인의 아들이 온다고 광고를 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후 목사가 나가서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 주인의 아들입니다. 내 말을 좀 들으세요. 내 아버지가 하나님이시니 이 나이아가라 폭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이 왔습니다’ 하면서 전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이 맞습니까? 맞습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하나님의 것이고 자기는 하나님의 아들이니 그 폭포 주인의 아들이 온 것입니다. 바라보고 믿으면 다 너희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참 좋은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약속한 것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자기 것이 됩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근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근심이 들어 올 때는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없애 주십니다. 성경 말씀을 믿고 바라보는 사람은 다 자기 것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러한 신앙으로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에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주리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습니다.

종과 횡으로 행한 것은 다 주심

본문 16-17절에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찐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네가 종과 횡으로 가는 곳 모두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루 동안 앞으로 몇 십리를 가든지 몇 백리를 가든지 가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만큼 또 옆으로 가도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났겠습니까? 하루가 시작되는 동 틀 때부터 해 넘어 갈 때까지 쉬지도 못했을 것 같습니다. 다리가 아무리 아파도 계속 달려 갔을 것 같습니다. 한 발자국만 더 떼어도 땅이 얼마입니까? 점심 먹을 시간이 있었겠습니까? 6.25때 피난 나올 때도 중공군한테 잡히면 끝장나는데 앉아 먹을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저고리에 밥을 싸가지고 가면서 먹었습니다. 종으로 횡으로 행하여 보라, 그것을 다 주겠다는 것은 얼마나 큰 복 입니까?

하나님 한분만 섬기는 사람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롯에게는 허락한 것이 아닙니다. 롯이 떠난 다음에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것입니다. 종과 횡으로 행하라. 그러면 그것을 다 네게 준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만큼 다 준다는 것입니다. ‘네가 말씀대
로 행하는 것만큼, 말씀대로 믿는 것만큼, 말씀대로 걸어가는 것만큼, 네가 믿음을 쓴 것만큼 그것은 다 네 것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믿음 쓰지 않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걸어가지 않은 것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남의 것입니다. 말씀대로 걸어가면 그때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발로 밟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예 바라지도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도 안 바라봅니다. 그저 가나안 복지에 사니까 됐다고 바라보지 않습니다. 누가 안 바라 봤습니까? 롯은 바라보지도 않고 또 밟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 공경하고 세상에서 잘 살면 되지 하면서 바라보지도 않고 밟지도 않습니다. 천국에서 도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었으니까 구원 얻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에서 복 받고 잘 살면 되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 생활 얼마나 좋은가 하면서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섬기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배울 생각을 안하는 것입니다. 롯은 진리를 배울 생각도 안하고, 진리의 세계를 새로이 발견할 생각도 안 합니다. 그 세계를 받을 생각도 안 하고, 즐거워할 생각도 안 하고, 그 세계를 개척할 생각도 안 합니다. 그저 자기 삼촌 따라다닐 때 조금 배운 것이 다입니다.
더 바라보고 더 배울 생각을 안 하고 롯은 그저 세상에서 재미있게 살려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에서 돈이 점점 쌓여 나가자 그 즐거움으로 살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바라보고 걸어가려고 분주합니다.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을 가지려면 여간 분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라보고, 걸어가려니까 분주합니다. 또 십자가가 오고 환난이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 주시겠다고 하셨기에 더 무궁무진 한 것들이 거듭 거
듭 와서 보이지 않는 모든 축복이 자꾸 쌓입니다.

아브라함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이 점점 쌓여 나갑니다. 그래서 얻어 쓰는 것이 다릅니다. 외부로 볼 때는 아브라함에게서 볼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세계가 점점 쌓여 나가는 것입니다. 반면 롯은 현재에 보이는 물질이 점점 쌓여 나가는 것입니다. 둘 다 쌓이는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는 땅에 쌓는 것이고, 하나는 하늘에 쌓는 것이고, 하나는 신령한 곳이고, 하나는 썩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그 후에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 둘 다 같이 잘 쌓았습니다. 롯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세상 것을 쌓았고, 세상 것이 풍성해졌고, 아브라함은 세상 것을 내 놓고 하나님만 따라 갔기 때문에, 신령한 가나안 복지의 것이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본문 18절에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고 하였습니다. ‘너와 네 자손이 영원히 이를 것이다’ 는 말씀을 아브라함이 받고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마므레, 헤
브론이 아무리 땅이 좋지 않아도 하나님의 허락이 풍성하게 임했기에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서 단을 쌓았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노선을 걸어가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을 다 받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