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뿌리를 박은 욥의 신앙
욥기 2:1-13
1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3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4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5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6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7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11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욥기 2:1-13
1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저기 다녀왔나이다 3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4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5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6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 7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8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9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10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11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12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13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1. 사단의 참소(讒訴)
하나님만으로 즐거워 한 욥
본문 1절에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호와 앞에 섰다는 것은 천사가 여호와 앞에 섰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마귀인데, 마귀가 천사들 가운데 끼어서 여호와 앞에
서 있었습니다.
욥이 시험을 당할 때에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하였습니다. 욥기 1장 3절에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소유한 재산이 엄청났습니다. 욥기 31장24-25절에 “내가 언제 금으로 내 소망을 삼고 정금더러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던가 언제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던가”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가지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정금이 많고 재산이 풍성해도 그것으로 기뻐하지 않았고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적신(赤身)이 본전(本錢)임을 아는 욥의 믿음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고 목적도 없이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움직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말썽이나 일으키고, 시험하고, 사람을 괴롭게 합니다. 그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사람도 할 일 없이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말썽이나 일으키면, 마귀의 시험에 든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또 마땅히 가야 할 길을 가야 합니다. 쓸데없이 여기저기 다니면 안 됩니다.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욥기 1장에 있는 사실입니다. 욥기 1장에 보면 마귀가 욥이 잘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소유를 풍성하게 해주셨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소유를 치면 정녕 주를 대면하여 욕하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소유를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단이 나가서 사고를 일으킨 것입니다. 소는 평안히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을 때, 스바 사람을 일으켜 그것들을 다 잡아가게 하고, 또 하늘에서 불로 양과 종을 살라버리게 하였습니다. 또 갈대아 사람을 일으켜 약대를 다 빼앗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재산을 하루아침에 다 도적맞은 것입니다.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하루아침에 다 잃었습니다.
욥기 1장 18-19절에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주인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시더니 거친 들에서 대풍이 와서 집 네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무너지므로 그들이 죽었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 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10남매가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태풍과 같은 큰 대풍이 와서 집 모퉁이를 치매 그 소년들 위에 집이 무너져 그들이 다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 일곱과 딸 셋이 하루아침에 다 죽은 것입니다.
욥기 1장 20-21절에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의 아들과 딸들이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괴로워서 옷을 다 찢고 머리털을 다 밀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습니까? 그래도 입으로는 자신이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의 아들과 딸들이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괴로워서 옷을 다 찢고 머리털을 다 밀었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많았겠습니까? 그래도 입으로는 자신이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본전이 무엇입니까? 본전은 적신입니다.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가는 세상입니다. 적신이라는 것은 벌거벗은 몸을 말하는데, 사람은 벌거벗은 몸으로 왔다가 벌거벗은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이시고 데리고 가시는 이도 여호와이십니다. 아들과 딸과 모든 것을 다 데리고 가시는 이가 여호와시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고, 자기 딸이 아니라 하나님의 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것을 주셨다가 다시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이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을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본전이 적신인 줄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 아들 죽었다. 내 딸 죽었다. 내 재산 없어졌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재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온 자기가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벗은 몸으로 온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본전 그대로, 벗은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찬송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기 본전이 적신인 줄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내 아들 죽었다. 내 딸 죽었다. 내 재산 없어졌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재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온 자기가 아들과 딸을 다 데리고 온 것이 아닙니다. 벗은 몸으로 온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본전 그대로, 벗은 몸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찬송해야겠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본전으로 감사하는 신앙
그런데 사람들은 큰 일이 생기면 낙심하고 마음이 새까매져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주저앉아서 낙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사람이든 물질이든 제 것으로 삼고 앉아 있다가, 하나님께서 가지고 가시자 아주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적신만이 자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에 범사에 감사할 줄 알게 됩니다.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하고, 한 끼만 먹어도 감사하고, 아무거나 해먹어도 감사하고, 아무거나 입어도 감사하고, 또 입을 것이 없어도 감사합니다. 적신이 본전이니까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적신이 자기 본전인지 알지 못하고, 마음을 높이고 욕심을 품고 마음을 높은 데 처하려고 하니까 범사에 불평, 불만,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믿음을 못 지킵니다. 마음을 높이고 사는 사람은 절대 믿음을 못 지킵니다.
욕심을 품고 사는 사람이 있는데, 어디 그 욕심이 채워집니까? 항상 불평, 불만으로 살다가 믿음도 못 지키고 죽는 것입니다. 큰 욕심을 품었는데, 작은 것을 주시면 만족함이 없습니다. 가령 욕심은 열 가지를 가져야겠는데, 아홉 가지를 주시면 ‘모자란다. 이거 어떻게 살겠느냐?’고 합니다. 또 스무 가지 욕심을 품었는데, 열 가지를 주시면 불만이 생깁니다. 열 아홉 가지를 주셔도 불만입니다. 서른 가지 욕심을 품었으면, 스물 아홉 가지를 주셔도 불만입니다. 백 가지를 품었는데 아흔 아홉 가지를 주셔도 불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욕심을 품고 마음을 높이며 사는 사람은 항상 불평하며 불만 속에 살다가 불만에 죽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살려고 합니까? 그렇다고 해서 잘될 것도 아닌데, 자기만 그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만에 살아도 자기 일생을 살게 되어 있고, 감사함으로 살아도 자기 일생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더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불만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보다 미리 죽을 것 같습니다. 감사함으로 살면 마음이 평안하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대로 다 살 것 같고, 불만에 살고 불평하면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좀 더 살게 해주실 수 있는데 미리 죽음을 당겨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품어서 불만에 사는 사람은 죽음을 당겨오고, 불행을 당겨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사는 사람은 적신이 본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나 감사하고 언제나 마음이 편안합니다.
경기도 파주에 수해가 나서 집이 다 무너지고 떠내려갔는데, 할머니 한 분이 다 떠내려 간 집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가서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집이 다 떠내려가서 안 되었습니다”라고 하니까 “아, 내 목숨만 살아 있어도 감사하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집이 다 없어졌어도, 의복이 다 없어졌어도 목숨이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또 본전입니다. 목숨이 본전 아닙니까? 본전만 있어도 감사하지, 남은 다 빚지는 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본전이라고 압니까? 기본금입니다. 장사 시작할 때 가진 그것이 본전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본전은 무엇입니까? 적신인 줄 알고 있으면 됩니다. 의복이 없어서, 또 뭐가 없어서 걱정이다, 남들은 다 잘 입고 다니는데 이것이 뭐인가 하면, 그것은 욕심이 속에 들어와서 그렇습니다.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합니다. 옷도 너무 두툼한 것보다는 얇은 것으로 여러 겹 입어 감기만 안 걸릴 정도로, 되도록 얇게 입는 것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두툼하게 가죽과 털로 둘러 입어봐야 정작 맥을 못 씁니다. 우리는 욥의 경우를 통해 적신으로 나왔다는 것이 언제나 본전인 줄 압니다. 다 없어졌어도 다 본전이라는 것입니다. 그 외에는 다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 당신께서 가져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욥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올찌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을 다 보신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드러내시며 연단시키시려고 욥에게 고통을 주심
본문 4-5절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찌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욥의 살과 뼈를 치면, 욥이 정녕 주를 욕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재산과 자식은 다 없어졌어도 욥이 아직은 몸이 건강하다는 것입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는 몸이 건강하오니, 그 몸을 치면 ‘정녕 주를 욕하리이다’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아시므로 사단에게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찌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붙이셔야만 마귀가 시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시험하지 못합니다. 시험하는 자는 마귀이지만,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겠습니까? 욥이 병이 나서 얼마나 고통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허락하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욥의 신앙을 드러내려고 하셨습니다. 그 모든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욥이 자신의 신앙을 넉넉히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신앙을 만방에 드러내 보이시려고, 그리고 연단을 시키셔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사단의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2. 욥이 질병의 고통과 아내의 훼방을 믿음으로 이김
본문 7-8절에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나아가서 욥을 쳤습니다. 그래서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되었습니다. 독한 헌데가 났습니다. 이에 욥이 너무 괴롭고 괴로워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욥기 7장 18-19절에 “아침마다 권징하시며 분초마다 시험하시나이까 주께서 내게서 눈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며 나의 침 삼킬 동안도 나를 놓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일 분, 일 초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욥이 이렇게 고통을 당할 때에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잘 참았습니다. ‘이것을 내가 이겨야 한다. 하나님께서 이기라고 주신 시험이다’라고 하며 하나님만 바라보고 잘 참았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갔습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하셨습니까?’라고 하지 않고,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려고 주신 줄로 알고 잘 참고 견딘 것입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고,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하면서 나아갔습니다. 매를 때림에도 부모를 잘 의지하듯, 매를 맞으면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간 것입니다.
본문 9절에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이렇게 고통을 당할 때에, 도와줄 아들과 딸도 다 죽고 이제는 아내 하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내라는 사람은 좀 도와줍니까?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설상에 가상이라고 합니다. 죽을 지경을 당했는데 말 한마디라도 위로해줄 생각을 하지 않고, 더 콕콕 쏘면서 죽으라는 것입니다. “살아서 뭘 하겠느냐?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대답이 이와 같습니다. 그리고 욥기 9장 17-18절에 “그가 폭풍으로 나를 꺾으시고 까닭 없이 내 상처를 많게 하시며 나로 숨을 쉬지 못하게 하시며 괴로움으로 내게 채우시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한 욥의 아내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달아났을까요, 그냥 있었을까요? 달아나는 것이 낫겠습니까, 그냥 있어서 계속 이렇게 괴롭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달아나야 별 수 없으니 달아났다가 다시 온 것 같습니다. 욥기 19장 17
절에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며 내 동포들도 혐의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내 숨을 내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보니, 아내가 달아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자기 남편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안 살겠다고 달아났다가 다시 와서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도 미국에서 카드가 하나 왔는데, 가족사진을 찍어 같이 넣어 보내 왔습니다. 그 사진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전에 제가 미국에 갔을 때 그 부인이 딸 둘을 낳아놓고 안 살겠다고 달아났었는데, 남편이 그 아내와 다시 살면서 사진을 찍어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아내가 욥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 욕하고 죽으라고 하였지만, 욥은 아내에게 뭐라고 하였습니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내가, 안 그래도 너무나 괴로운데 더 괴롭게 하고 죽을 지경에 더 죽을 지경으로 몰아세우고 있는데, 그 아내에 대해서 욥이 욕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렇게 나를 괴롭게 하려거든 “나가라”고 내쫓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자기 아내에게 욕을 하고, 내쫓고, 미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마귀 노릇을 해도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라고 하고, 자기 신앙을 그냥 지키는 것입니다. 옆에서 마귀 노릇을 하며 시험을 해도, 계속 자기 믿음을 잘 지켜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가만히 놓아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갈 사람이면 나갑니다. 그러나 욥의 아내와 같이 좀 돌아다니다보면 그만한 남편이 없는 줄 알고 바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3. 욥의 친구 세 사람의 내방(來訪)과 동정(同情)
하나님을 절대 의지하는 욥의 신앙
본문 11절에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 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서, 아내의 시험 다음에 친구들의 시험이 또 왔습니다. 친구 몇 사람이 왔습니까? 셋입니다.
본문 12-13절에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 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참 우정이 깊은 친구들입니까? 눈을 들어 멀리 욥을 바라보니 너무 헌데가 많이 나고, 독창이 나서 친구 욥인 줄 알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을 당하는 친구와 함께 밤낮으로 칠 일을 땅에 앉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요새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이처럼 처음에 말없이 있을 때는 괜찮았으나, 나중에 입을 열면서 말로써 욥을 시험하며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욥이 거기서 범죄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이 이처럼 처음에 말없이 있을 때는 괜찮았으나, 나중에 입을 열면서 말로써 욥을 시험하며 괴롭게 하였습니다. 그래도 욥이 거기서 범죄하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욥의 시험이 몇 가지입니까? 먼저 물질 시험입니다. 다음에는 자녀가 죽는 시험과 몸에 병이 나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그 병은 보통 병이 아니라, 온 몸 전체에 악한 독창이 나는, 아주 괴로운 병입니다. 분, 초마다 괴로운 병입니다. 또 도와줄 사람이 오히려 시험을 하는 시험입니다. 아내의 시험, 그 다음에는 또 친구들의 시험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러 가지 형언할 수 없는 고난의 시험 속에서 욥이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또 입으로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신앙이 참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들을 보면 욥의 신앙이 시험 받을 그때에 바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그 이전부터, 평소에 깊은 신앙의 뿌리가 있었기 때문에 시험이 들어와도 꿈쩍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며 절대 의지하는 신앙, 평소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는 신앙의 뿌리가 욥에게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뭐가 와서 흔들어도 뿌리가 깊어 끄떡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 무엇도 우리를 끊을 수 없음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하였습니다.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와도 끊지 못하고, 곤고가 와도 끊지 못하고, 핍박이 와도 기근이 와도 벌거벗은 적신이 되어도 끊지 못하고, 위험이 와서 칼을 들이대도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인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8장 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장 35절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하였습니다.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환난이 와도 끊지 못하고, 곤고가 와도 끊지 못하고, 핍박이 와도 기근이 와도 벌거벗은 적신이 되어도 끊지 못하고, 위험이 와서 칼을 들이대도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인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서8장 38-39절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욥의 신앙입니다. 욥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욥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의 뿌리가 깊이 박혀야 합니다. 환난이 조금 들어오면 뿌리가 쏙 빠지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뿌리를 박아서 그 어떤 것이 와도 끄떡없이 이겨나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