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으로서 우리를 체휼하시는 그리스도
히브리서 5:1-10
히브리서 5:1-10
1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 3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 6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5:1 대제사장마다 사람들 가운데서 선택되었고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들을 위하여 임명되었으니, 이는 그가 예물과 속죄를 위한 희생 제물을 드리게 하려는 것이다.
5: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들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5:3 그러므로 그는 백성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한다.
5:4 누구나 이 존귀를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5: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시려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분께 말씀하시는 분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라고 하셨으며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곳에서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5:7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 경외하심 때문에 응답을받으셨다.
5:8 그분은 아들이시나,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5:9 온전하게 되셨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5:10 하나님에 의하여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대제사장으로 불리셨다.
5:2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들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신도 연약함에 싸여 있기 때문이다.
5:3 그러므로 그는 백성을 위해서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 제사를 드려야한다.
5:4 누구나 이 존귀를 스스로 취하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
5:5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시려고 스스로 영광스럽게 하신 것이 아니다. 다만 그분께 말씀하시는 분께서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라고 하셨으며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곳에서 "너는 영원히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제사장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5:7 그분은 육체에 계실 때 자신을 죽음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와 소원을 올리셨고, 그 경외하심 때문에 응답을받으셨다.
5:8 그분은 아들이시나,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5:9 온전하게 되셨고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으며,
5:10 하나님에 의하여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대제사장으로 불리셨다.
1. 대제사장의 네 가지 특징
구약 시대에 대제사장이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아론과 그 아론의 자손들이 대제사장이 됐고, 그리고 예수님이 대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우리의 대제사장입니다.
사람가운데서 취한 자
본문 1-2절에,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대제사장 특징이 네 가지입니다. 대제사장은 첫째,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여야만 됩니다. 사람이어야만 됩니다. 사람이어야만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고 사람이 아니면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 시대 대제사장은 사람 가운데, 아론 자손 가운데서 취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시고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사람으로서야만 대제사장이 되는 것처럼 예수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사람을 위해서 사람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려야 됩니다. 속죄제를 드려야 됩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도 사람을 대표해서 하나님께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으로 속죄 제물을 삼아서 우리 죄를 사해주는 속죄 제사를 드렸습니다.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자
본문 2절에, “저가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싸여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어야만 됩니다. 연약한 자를 용납할 수 있고, 무식하고 미혹한 자를 용납할 수 있는 자라야만 대제사장이 됐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무식하고 연약한 우리를 용납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께 제사 드려주시는 대제사장입니다. 용납한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에도 저희를 용납하셨고, 무식하고 미혹 되고 죄 많은 자들을 예수님이 용납하셨습니다. 승천한 다음에도 하나님 우편에 가 앉으셔서 무식하고 연약하고 미혹되기 잘하는 저희들을 용납하시고 위해서 기도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고서 우리 위해서 기도해주는 것은 로마서 8장 34절에 나타나 있는데,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대제사장의 직분도 계속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용납해주시고, 미혹된 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애쓰시고, 연약한 자와 쓰러진 자를 일으켜 세워주시려고 애쓰시고,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입니다.
자기와 백성을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자
본문 3절에, “이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했습니다. 구약 시대 대제사장은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그랬습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은 자기도 죄인 아닙니까? 죄인이니까 자기를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기 때문에 자기를 위해서 속죄제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을 위해서만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불러서 세운 자
본문 4절에,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의 넷째 특징은, 하나님이 세워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세워놓은 사람만 대제사장이 됩니다. 누구나 다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러서 세운자만 된다는 것입니다. 아론 자손을 불러 세웠습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라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 대제사장으로 세워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십니다.
2.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된 경위
도성인신하심
본문 5절에,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대제사장이 될 때에 스스로 취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대제사장이 되겠다고 해서 대제사장이 된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세워놨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예수를 세웠기 때문에 대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세워놓았는가? 시편 2장 7절에,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워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너는 내 아들이라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도다’라 하십니다.
‘너를 낳았도다’ 하는 말은 메시야의 임직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도성인신입니다. 동정녀 탄생할 때에 메시야로서, 그리스도로서 탄생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세워놨다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제사장이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이 구약 시대에 ‘내가 너를 낳았다’하고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세웠기 때문에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10장 4절에,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고 했습니다.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고 그리스도를 향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세워놓은 영원한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이 세워놨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시험을 받았지만 시험을 이기신 예수님
이런 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같이 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4장 14절에,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대제사장이 이루어놓으신 그 믿는 도리, 구속의 도리를 굳게 잡으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예수님입니다. 같이 고난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고난을 받고, 백성들을 위해서 당신이 친히 연약한 가운데 있었고, 또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체휼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이겨주었습니다. 이겨주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이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받았습니다. 우리가 받는 시험 다 받았습니다. 다 받은 다음에야 우리의 연약한 것을 체휼해 주시고, 또 거기에 대해서 대제사장의 일을 해주시고, 또한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죄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시험 받았습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40일 금식 기도할 때에 마귀가 와서 세 가지 시험을 했습니다. “돌을 떡이 되게 하여 먹어라”, “성전에서 내리뛰어라”, “내게 경배하면 천하만국의 영광을 준다”는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겼습니다. 예수님이 시험 받을 때에 졌으면 그만 이 구속 사역이 다 틀어질 뻔 했는데, 한결같이 시험받았지만 다 이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를 이기고, 모든 시험을 이기고, 그 이긴 능력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이긴 능력을 우리에게 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제 그 능력을 쓰면 모든 마귀 시험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준 능력을 쓰면 모든 마귀 시험, 모든 연약한 것, 모든 미혹되는 것에서 다 이깁니다. 지각을 쓰고, 능력을 쓰면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3. 육체에 계실 때 눈물로 간구하신 예수님
그리스도께서 드린 통곡의 기도
그리스도께서 드린 통곡의 기도
본문 7-10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가 육체에 계실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이것도 예수님께서 연약에 싸인 증거입니다. 대제사장은 연약에 싸여있고, 능히 다른 사람을 용납할 수 있어야 되고, 무식하고 연약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연약에 싸여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그 십자가를 승리적으로 통과하게 해달라고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간구와 소원을 올렸습니다.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는데, 겟세마네 동산에 가서 기도한 것은 십자가를 안 지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이 십자가를 지려고 왔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살아난다고 자주 제자들에게 말씀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하셨고, 성전을 사흘 만에 짓는다고 예수님이 하셨는데, 정작 십자가가 당도했을 때에 십자가 안 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세상에 오신 목적이 십자가 지려고 왔는데, 일생동안 십자가 지려고 하였는데 정작 십자가가 당도했을 때 안 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하면 그건 맞지 않습니다. 십자가 안 지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면 구주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마지못해서 십자가 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마지못해서 드리는 제물은 받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와 소원을 올렸다는 것은 고난을 지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下)”, 십자가를 져도 고난을 지나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말하면 고난 없는 십자가, 십자가를 지긴 지되 고난 없는 십자가를 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또 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를 하다가, “아버지의 뜻이 고난 받아야 될 것 같으면 고난을 받겠습니다. 또 이길 만한 힘을 주시옵소
서. 고난을 승리적으로 통과할 만한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힘쓰고 애써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사자를 보내주셔서 힘을 줬다고 그랬습니다. 힘을 주셔서 십자가의 고난 다 승리적으로 통과하게 해주셨습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게 그 말입니다.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것에서 들으심을 얻었다는 건 하나님이 이길만한 힘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승리적으로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연약함으로 우리를 다 체휼하심
예수님께서 연약해야 우리의 연약한 것을 담당할 수 있고, 연약해야 우리의 연약한 것을 체휼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가운데 빠져보지 못하면 어떻게 체휼하시겠습니까?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받고,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고, 우리와 똑같이 시장하고, 피곤하고, 낮잠 자야 되고, 잠자야 되고,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연약에 싸여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 넉넉히 되고도 남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체휼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감당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우리 모든 사정을 다 아시는 예수님입니다. 자기 사정을 누가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억울한 사정, 딱한 사정, 죽을 고통에 빠진 사정, 섭섭한 사정 그거 다 누가 알겠습니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것을 다 체휼했기 때문에, 우리 사정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알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대제사장이십니다. 사람은 우리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고 그랬습니다. 시편 27장 10절에,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우리를 버렸지만 여호와는 영접해 주십니다.
부모가 아이들 버리는 거 봤습니까? 자기가 죽게 되면 못할 짓이 없습니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버렸으나 하나님은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 다 체휼했습니다. 우리의 어려운 사정, 괴로운 사정, 병든 사정, 남에게 억울함 당하는 사정, 핍박당하는 사정, 버림당하는 사정, 말 못할 사정이 우리에게 많이 있는데 그거 예수님이 다 알고 계십니다. 다 알고 다 감당해 주십니다.
사람이 몰라주어도 예수님이 해결해주면 다 되는 것입니다. 다 해결해주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걱정이 있습니까? 걱정이 없습니다. 이런 대제사장이 내게 있는데 아무 걱정 없습니다. 왜 걱정이 없습니까? 대제사장이 있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우리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다 해결해 줄 수있고 다 승리해 줄 수 있는, 또한 승리를 벌써 해주신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에 우리는 걱정할 게 없습니다.
대제사장에게 모든 것을 다 맡기고, 기도해서 대제사장을 찾고 영접하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모든 사정을 다 맡기고 대제사장이 인도하는 데로 가면 됩니다. 가라는 데로 가면 됩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인도하는 데로 가면 됩니다. 동으로 인도하면 동으로 가면 되고, 서로 인도하면 서로 가면 되고, 남으로 인도하면 남으로 가면 되고, 앉아있어라 하면 앉아있으면 되고. 그러면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해결해 주십니다.
대제사장이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십자가 지라고 하면 십자가를 지면 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고 하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되고, 궁핍한 생활하라고 하면 궁핍한 생활하면 되고, 풍부한 생활하라고 하면 풍부한 생활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는 혼자 살라고 하면 혼자 살면 되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은 혼자 살라고 하면 혼자 살면 됩니다. 결혼하라고 하면 결혼하면 되는 것이고 뭘 걱정입니까? 하라는 대로 하면 되지 않습니까? 풍부하게 살라고 하면 풍부하게 살면서 그것 가지고 하나님 일하는 것입니다. 궁핍하게 살라고 하면 궁핍하게 살면 됩니다.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든 사정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다 체휼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체휼이라는 것은 같이 고난받아준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같이 고난 받아주십니다. 내가 혼자 받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같이 받아준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체휼입니다. 굶는 것도 혼자 굶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같이 굶어주시고, 매 맞아도 혼자 맞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같이 매맞아주시고, 쫓겨나도 혼자 쫓겨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같이 쫓겨나주십니다.
대제사장은 우리와 같이 연약에 싸여 있었기 때문에 심한 통곡과 눈물로 하나님께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시고, 그 모든 것을 다 같이 담당해 주십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본문 8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뭘 배웠습니까? 순종을 배웠습니다. 무엇으로 순종을 배웠습니까? 고난으로 배웠습니다.
우리도 순종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는 장성한 자가 못 되고 아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순종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하였듯이, 순종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늘 순종을 배우려고 힘을 많이 썼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순종할 수 없지만, 성경 위반 안 되는 것에는 순종을 배워야 믿음도 되고, 또 자기도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이라고 하였는데, 자라나고 온전하게 되었습니다.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자기가 순종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순종하는 본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본문 10절에,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젠 예수님을 하나님이 세워놓은 대제사장이라 칭했습니다. 그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크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되시는 이런 예수님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예수님, 지금도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예수님, 보호해 주시는 예수님, 순종을 시키시는 예수님,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게 하시는 예수님이신데, 우리는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믿음으로 순종해 나가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