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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0일 금요일

역대하 2:1-18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
역대하 2:1-18

1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 2솔로몬이 이에 담꾼 칠만과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육백을 뽑고 3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4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 5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6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 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 7이제 청컨대 당신은 금, 은, 동, 철로 제조하며 자색 홍색 청색실로 직조하며 또 아로새길 줄 아는 공교한 공장 하나를 내게 보내어 내 부친 다윗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예비한 나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고 8또 레바논에서 백향목과 잣나무와 백단목을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알거니와 당신의 종은 레바논에서 벌목을 잘하나니 내 종이 당신의 종을 도울찌라 9이와 같이 나를 위하여 재목을 많이 예비하게 하소서 내가 건축하려 하는 전은 크고 화려할 것이니이다 10내가 당신의 벌목하는 종에게 용정한 밀 이만 석과 보리 이만 석과 포도주 이만 말과 기름 이만 말을 주리이다 하였더라 11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 12또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찌로다 다윗 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13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14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소서 15내 주의 말씀하신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는 주의 종들에게 보내소서 16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의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수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 17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
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육백인이라 18그 중에 칠만 인은 담꾼이 되게 하였고 팔만 인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육백 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

1. 솔로몬이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역군(役軍)을 뽑음

본문 1절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 건축하기를 결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솔로몬이 이에 담군 칠만과 산에 올라 작벌할 자 팔만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륙백을 뽑고”라고 하였습니다. 담군은 짐꾼입니다. 짐을 지어서 나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산에 올라 작벌할 자로는 나무 찍는 사람 팔만 명과 일을 감독할 자 삼천 육백 명을 뽑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짐군이 칠만 명입니다. 그때는 짐을 지어다가 건축을 한 것 같습니다. 또 산에 올라가 나무를 찍는 사람은 팔만 명입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동원되었습니다. 팔만 명이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찍고, 짐군이 칠만 명이면 얼마나 많습니까? 또 감독하는 사람이 삼천육백 명입니다. 아무리 일군이 많아도 감독이 없으면 일이 안 됩니다. 언제나 감독이 있어야 일이 됩니다. 감독이 없으면 할 줄도 모르고 또 한다고 해도 제대로 잘 안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감독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기도원 공사를 할 때 봉사를 많이 나갔는데, 감독이 필요했습니다. 감독이 없으면 일을 제대로 못합니다. 감독이 있어서 시켜야만 일이 제대로 됩니다. 그래서 주차장에 쌓아 둔 것을 산 위로 나르는 것을 오재팔 목사가 감독했습니다. 오재팔 목사가 감독을 했기 때문에
아주 잘되었습니다. 감독이 없으면 어느 것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우왕좌왕하다가 한쪽 일에 치우쳐 하게 되어서 일이 잘 안 됩니다. 기숙사 일도 사람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독이 있어야 기숙사 일도 다 잘됩니다. 이창옥 목사하고 박황우 목사를 감독으로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기름 탱크에 페인트칠하는 것과 대문에 페인트칠 하는 것은 이용덕 반장을 시켰습니다. 감독이 있어야 일이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또 사무실 안에 있는 책상과 의자 등을 정리하는 것은 이영훈 목사가 감독을 했습니다. 감독을 맡겨놓고 다음에 가보면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감독이 없으면 안 됩니다. 감독이 없으면 다 한 곳으로 몰려서 일하게 되고, 어디로 가서 일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일이 안 됩니다. 또 도배하고 장판 까는 것은 나철웅 집사가 총 책임자로서, 자기가 감독하면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제대로 하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넘어가고, 감독이 제대로 못하면 일이 잘 안 되는 것입니다. 또 기둥 쌓는 것과 길은 장광현 조사가 감독을 맡았습니다. 또 내려가는 도로에 풀을 베고 콘크리트 깨진 것을 땜질하는 것은 정진록 목사가 맡아서 제대로 해놓았습니다.

그러면 총 감독은 누구일 것 같습니까? 내가 책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담은 누가 쌓았습니까?” 또 “보일러는 누가 설계 했습니까?”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서 감독이 잘하면 되고, 감독이 잘 못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감독하는 자가 삼천육백 명이나 되어서, 예전에는 ‘왜 이렇게 감독이 많았을까’하고 생각을 했는데, 감독이 없으면 일이 잘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감독이 없이 일을 하는 것보다 감독이 있어서 일을 하면 한 세 배 정도 빠릅니다.
예전에 고천 기도원을 할 때에는 누가 감독인 줄 압니까? 김학조 장로가 감독이었습니다. 김학조 장로가 나가서 일을 시키면 일을 한 세 배 정도 잘했습니다. 그런데 김학조 장로가 시키지 않으면 삼 분의 일 밖에 못했습니다. 감독이 그만큼 중요한 것을 그때 기도원 지으면서 깨달았습니다. 김학조 장로가 고천 기도원을 할 때 기도도 많이 하고 상당히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손들이 지금 다 괜찮습니다. 김학조 장로님의 자녀가 아들이 셋, 딸이 셋인데, 큰 아들은 사업하고, 큰 사위는 목사입니다. 둘째 사위가 송완규입니다. 셋째 사위는 공진익 장로입니다. 또 아들 하나는 다른 교회에서 집사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김성관 집사, 셋째도 집사입니다. 다 잘합니다. 그러니까 감독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솔로몬이 두로 왕 후람에게 편지를 보냄

솔로몬이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는 편지

1) 성전 건축과 하나님을 위한 번제가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임

본문 3-4절에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내어 이르되 당신이 전에 내 부친 다윗에게 백향목을 보내어 그 거할 궁궐을 건축하게 한 것같이 내게도 그리하소서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사자를 두로 왕 후람에게 보냈습니다. 두로는 이스라엘 나라 북쪽, 지중해 해변에 있는 나라입니다. 레바논 백향목이 있는 곳을 후람이 다 관할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두로 왕 후람에게 사자를 보내서 백향목을 좀 보내달라고 한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여 구별하여 드리고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며 항상 떡을 진설하며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에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려 하니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두로 왕 후람이 하나님을 잘 모르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것을 바로 말한 것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하나님 섬기는 것을 바르게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솔로몬이 ‘이제 내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자 합니다.
주 앞에서 향 재료를 사르고자 합니다. 항상 떡을 진설하고 안식일과 초하루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려고 합니다. 조석으로 번제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영원한 규례입니다’라고 사실대로 말해주었습니다. 두로 왕 후람이 하나님을 몰라도 옳게 이야기한 것입니다.

2)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높임

본문 5-6절에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보다 크심이라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어찌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높으신 하나님이십니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합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하늘보다 높으시고 또 하늘들의 하늘보다 높으신 그 하나님! 이렇게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전을 건축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극히 충만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용납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을 건축하여 하나님을 거기에 모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을 어떻게 집에다 모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누구관대 능히 여호와의 전을 건축 하리요 그 앞에서 분향할 따름이니이다’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지극히 높인 것입니다. 높지 않은 하나님을 높인 것이 아니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바로 안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 높이는 것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을 높여주십니다. 복을 주십니다. 높지 않은 하나님을 우리가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본래부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인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이지 않은 사람은 높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높지 않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높으신 하나님을 높이는 것은 바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된 것이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높으신 하나님 국가적으로는 대통령이 높습니다. 대통령은 직위적으로 한국의 모든 관리 가운데 제일 높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대통령을 무시합니다. 뉴스에서 보았는데 대통령이 어느 고아원에 갔는데 아이들이 대통령께 “할아버지도 할머니하고 싸우냐”고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물으면 큰일 납니다. 대통령도 부부끼리 싸우느냐고 물어보면 아주 실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자기가 화가 나서 싸우려고 하면 할머니가 가만히 있어서 안 싸운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는 대통령 영부인이 좋은 모양입니다. 대통령도 이따금 화를 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영부인 할머니가 잘 참아서 싸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른들께 그렇게 물어보면 아주 실례입니다. 싸웠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모른 체하고 지나가야지 부부끼리 싸웠느냐고 물으면 되겠습니까?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높이지 못하는 것은 아이들이 대통령께 부부끼리 싸우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까 거기에 대한 답변을 했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높였나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을 높이지 못한 것은 죄입니다. 또 높인 것만큼 복을 받습니다. 주기도문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했습니다. 이름이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은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우리가 높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높지 않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한 하나님을 높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바로 알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도신경에는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라고 했는데, 전능하다는 것은 얼마나 높으신 하나님을 말합니까? 이 하나님은 성경에 천사가 ‘거룩 거룩 거룩’하신 하나님이라고 세 번이나 말했습니다. 세 번이나 말했다는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거룩을 세 번이나 말한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라서 ‘거룩, 거룩, 거룩하다’고 했다는 해석도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을 높이지 않은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회개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높으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세계 제일로 지혜가 많고, 세계에서 첫째 가는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 앞에는 자기가 감히 전을 건축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에다 모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관대 능히 위하여 전을 건축해서 거기 모실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분향한다는 것은 향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 앞에 향불을 피우는 장소이지 하나님이 거기 계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하늘들의 하늘보다 높으신 하나님이시고, 천지에 충만하신 하나님이므로 건물에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전에다 모실 수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저 그 앞에서 분향할 따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높으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겨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을 높인 것만큼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조금 높이면 복을 조금만 받고, 하나님을 많이 높이면 복을 많이 받고, 더 많이 높이면 복을 더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러나 안 높이면 복을 못 받고, 나아가 무시하면 하나님께 벌을 받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높으신 하나님으로 알고 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바로 섬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3) 이방 사람도 구원 운동에 참여할 수 있음

여기서 우리가 이방 사람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이방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이방 사람을 어떻게 참여시킵니까? 예배당 지을 때 안 믿는 사람을 기술자로 쓸 수 있고 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안 믿는 사람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정도로 우리가 사용해야 되겠습니다. 

가령 당국과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안 믿는 사람 세우는 것이 유리하면 그 사람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창광 교회 예배당을 짓는데 진정서가 들어가고 반대가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반대가 심한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극호 장로 친구 중에 안 믿는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민정당의 책임자입니다. 그 친구가 와서 밤새도록 얘기해서 무마시켜주었습니다. 그럴 때에는 안 믿는 사람도 한 몫 쓰는 것입니다. 사건 하나가 생기면 그 사람이 가는 것입니다. 장로가 가면 통하지 않습니다. 구청이나 어디 가는 것은 그 사람이 가면 잘 통합니다. 자지도 못하고 나와서 도와주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사례한 것도 아닌데,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적 성전을 건축하는 데는 불신자를 가담시키면 안 되고, 비진리에 선 사람을 가담시켜도 안 됩니다. 말씀이 우리하고 같은 사람, 교리가 우리하고 같은 사람은 외국 사람이라도 강단에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리가 바르지 못한 다른 교단 사람은 강단에 세우면 안됩니다. 솔로몬 당시,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 가장 나은 기술자입니다. 가장 나은 기술자라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가장 진리를 많이 깨닫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도리와 성전 건축하는 것을 가장 많이 깨달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 무슨 친구라고 해서, 안면이 있다고 해서, 서로 교제한다고 해서 우리 진리하고 같지 않은 사람을 강단에 세우면 진리 운동이 다 무너집니다. 일 년 동안 해놓은 것을 한 시간이면 다 무너뜨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진리와 같지 않은 사람을 세운 것은 기술자가 아닌, 우리 기술만 못한 사람을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영전 성전을 건축하는 것으로 비교한다면, 기술자는 진리를 가장 많이 깨달은 사람이고, 필요한 것들을 가장 공교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 성전 건축하는 법을 가장 잘 알고, 모든 것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우리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으니까 외국
사람이라도 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 진리가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은 진리면으로 보면 우리보다 나은 것이 아니라 못합니다. 그런 사람을 교회 부흥시킬 목적으로 또 교제할 목적으로 강단에 세운다면 교회가 다 무너집니다. 마찬가지로 연보를 많이 나오게 할 목적으로, 성전을 지을 목적으로, 아무 목사나 데려다 강단에 세우면 영적 성전이 다 무너집니다. 

어떤 목사님이 예배당을 지으려고 하는데 다른 교단에 있는 목사를 데려다가 하면 연보가 많이 나온다고 권면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몰래 연보가 많이 나오게 하는 목사를 데려다가 사경회를 했습니다. 여러 해 전 일인데, 나는 지난 후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를 왜
데려다가 사경회를 했느냐고 하니까 그런 이유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나 몰래 했느냐고 하니까 목사님께 말씀드리면 반대할 거니까 반대하면 못 할까봐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고 나서 말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됐느냐고 하니까 잘못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잘못되었으면 그만큼 너는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에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연보를 많이 작정해서 이천만 원이 나왔답니다. 그 강사 목사가 작정 헌금을 시키는데, 기술이 있는 목사인가 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목사와 그 교회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진리는 생각하지 않고, 예배당 짓는 것을 목적으로 연보만 많이 나오게 하려고, 다른 교단의 목사를 데려다가 사경회를 했는데, 그 교회가 잘될 것 같습니까? 그때는 그 교회가 우리 교단이었는데, 지금은 그 목사가 그 교회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이 결과적으로 그 교회를 그 목사가 못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 교단에서 떨어져나갔고, 진리를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이 그 강단에 왔으니 뻔한 것 아닙니까? 

외부에서 강사 청하는 문제가 중요합니다. 외부 강사 살짝 청해서 설교 한 번 하고 연보가 많이 나오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또 제가 모르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어리석지, 왜 모르겠습니까? 또 알면 가만 둡니까? 가만 안 두고 자꾸 얘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먼 장래에 진리를 다 떠납니다. 진리를 다 내버리고, 교인들도 이 진리를 다 떠나고, 자기도 하나님께 복을 못 받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진리가 나은 사람입니다. 우리보다 진리가 나은 사람 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진리를 깨달은 사람을 강단에 세울 수 있습니다. 가령 에큐메니칼이나 해방 신학은 우리가 많은 연구를 못했으니까 그 쪽을 많이 연구한 사람을 우리 교단
이 아니더라도 초빙해서 강의를 해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영엽 목사님에게 이따금 해방 신학이나 신 신학에 대해 해달라고 하는데, 앞으로도 좀 해달라고 해야겠습니다. 미국의 FAITH 신학 계통은 신 신학을 반대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입니다. 신 신학을 반대하는 것은 그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제일 선봉에 섰기 때문에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통은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진리도 모르는 사람을 왜 강단에 세우냐는 것입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강사로 세우면 교인이 정신이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는 것입니다. 한 길만 내내 가르쳐야지 이 사람이 와서 넓은 길을 가르치고, 저 사람이 와서 또
다른 길을 가르치면 교인들이 방황합니다. 그러면 신앙이 다 해이해집니다. 무엇이든지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세우고 시중을 들어야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4) 재정에 대해 보상할 것을 확실히 함

본문 9-10절에 “이와 같이 나를 위하여 재목을 많이 예비하게 하소서 내가 건축하려 하는 전은 크고 화려할 것이니이다 내가 당신의 벌목하는 종에게 용정한 밀 이만 석과 보리 이만 석과 포도주 이만 말과 기름 이만 말을 주리이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용정(舂精)은 방아를 찧는 것입니다. 도정(搗精)과 비슷합니다. 도정과 용정은 다 비슷한 것입니다. 그리고 ‘밀 이만석과 보리 이만 석과 포도주 이만 말과 기름 이만 말을 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상당한 보수를 주어야 합니다. 일에 대한, 상당한 보수는 물질로 늘 주는 버릇을 해야 합니다. 남을 거저 일시키고 얻어먹을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대가를 반드시 지불하라는 것입니다. 대가는 지불을 안하고 거저 얻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해서 대가를 지
불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재상분명대장부(財上分明大丈夫)’라고 했습니다. 돈 거래에 대해서 분명하고 속히 해야 합니다. 돈 문제를 질질 끌면 안 됩니다. 일군 고가를 언제 주라고 했습니까? 해지기 전에 주어야 합니다. 빨리 주라는 말입니다. 모든 것을 할 수만 있으면 빨리빨리 계산을 해야지, 계산을 안 하고 질질 끌고 나가면 그것은 신앙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양심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또 하나님의 일이 안 됩니다. 

이번에 공과지가 나왔는데 이것도 원칙은 맞돈을 내고 가져가야 하는 것입니다. 현금을 내고 가져가야 됩니다. 그런데 인쇄소에서 외상으로 가져온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받아서 인쇄소에 보내야 하는데, 이것을 안 보내고 두 주일, 세 주일, 한 달을 질질 끌면 인쇄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욕을 하게 됩니다. ‘이러면서 예수를 바로 믿는다고 하느냐? 책은 다 가져가고 돈도 안 준다’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져가면 즉시 내야 합니다. 현금을 내고 가져가고 안 가져온 사람은 다음 주에 온라인으로 보내야 합니다. 계산을 빨리빨리해야 ‘역시 믿는 사람이 다르다. 바로 믿으려는 사람이 다르다’고 인정하며 좋다고 생각할 것 아닙니까?

또 강해서도 어떤 교회는 이십만 원 깔아놓은 교회도 있고, 사십만원 깔아놓은 교회도 있는데 안 가지고 왔습니다. 강해서를 인쇄하는데 출판사에 삼백만 원을 외상으로 하였습니다. 이전에는 육백만 원이었는데 출판부에서 돈을 모아서 상당히 갚았습니다. 강해서 후원회에서 조금 들어오고 또 보조금이 조금 들어왔습니다. 또 어떤 분이 개인적으로 중공에 보내달라고 백만 원을 보내왔습니다. 또 유영길 목사가 울진에서 중공에 가면서 보내달라고 오만 원인가 연보를 해왔습니다. 내가 연보하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교회에다 광고를 해서 중공에 가면서 보낸다고 연보해 온 것입니다. 몇 교회에서 보조를 해주니까 지금은 한 삼백을 갚았습니다. 또 어떤 집에서 자기 아들이 죽었는데 그 집에서 강해서 외상을 많이 졌다고 보태야 되겠다면서 백만 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들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해야만 이것을 효과적으로 쓸까 연구해 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한 삼백은 물어주었고 아직도 삼백은 외상입니다. 삼백은 아마 우리 교단 여러 교회에 절반 이상 깔려있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 안 가져오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책은 다 팔고 돈은 안 가져오면 양심 안 쓰는 것입니다. 책이 팔렸으면 즉시 보내야 합니다. 또 교인들에게도 외상으로 가져갔으면 내라고 해야 합니다. 계산은 분명해야 깨끗합니다. 출판사도 외상을 안 져야 되는데, 외상을 몇 백만 원씩 지고 가면 안 되겠습니다. 

또 무엇이든지 신세를 졌으면 반드시 갚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신세를 졌으면 갚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신세를 졌으면 바로 갚습니다. 음식점에 가서 음식을 먹었으면 팁을 줍니다. 팁은 봉사료라고 합니다. 한 십분의 일은 줍니다. 삼천 원 어치를 사 먹었으면 일하는 사람에게 삼백 원은 주고 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습관이 되어 있습니다. 변호사에게 가서 한 마디 물어보는데 오십 불이고, 결혼식 주례를 해주면 오십 불입니다. 딱딱 정해져 있습니다. 여기는 결혼식을 해줘도 뚝 잘라먹고 양말 한 켤레도 안 사 옵니다. 그렇다고 무엇을 사오라는 것은 아닙니다. 안 사와도 좋지만 뚝 잘라먹고 양말 한 켤레도 안 사오는 것은 도리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신세를 졌으면 갚는 것을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재정에 대해서 모든 것을 분명하게 하여 깨끗하게 거래해야 합니다. 언제나 외상으로 하지 말고 외상을 졌으면 즉시로 갚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즉시 일군을 보내주면 이렇게 한다고 자원해서 한 것입니다. 흥정해서 정한 것이 아닙니다. 아마 넉넉히 했을 것입니다. 또 즉시 보내준다고 말했습니다. 이것도 우리가 배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3. 후람의 협조 약속

본문 11-16절에 “두로 왕 후람이 솔로몬에게 답장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그 왕을 삼으셨도다 또 가로되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찌로다 다윗왕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시고 명철과 총명을 품부하시사 능히 여호와를 위하여 전을 건축하고 자기 권영을 위하여 궁궐을 건축하게 하시도다 내가 이제 공교하고 총명한 사람을 보내오니 전에 내 부친 후람에게 속하였던 자라 이 사람은 단의 여자 중 한 여인의 아들이요 그 아비는 두로 사람이라 능히 금, 은, 동, 철과 돌과 나무와 자색 청색 홍색실과 가는 베로 일을 잘하며 또 모든 아로새기는 일에 익숙하고 모든 기묘한 식양에 능한 자니 당신의 공교한 공장과 당신의 부친 내 주 다윗의 공교한 공장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내 주의 말씀하신 밀과 보리와 기름과 포도주는 주의 종들에게 보내소서 우리가 레바논에서 당신의 쓰실 만큼 벌목하여 떼를 엮어 바다에 띄워 욥바로 보내리니 당신은 수운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리소서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답장이 참 잘되었습니다.

두로 왕 후람이 하나님을 어떤 하나님이라고 했습니까?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찌로다’라고 했는데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이 사람이 어떻게 알았습니까? 다윗과 이전에 교제할 때도 들었을 것이고 또 이번에도 솔로몬이 ‘하늘과 하늘
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이라고 편지를 하였습니다. 즉, 그가 다윗 왕과 교제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솔로몬이 편지할 때에 많이 깨달았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얼마만큼 높이는가를 보고 이방 사람도 그렇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영적 성전 건축하는데 진리가 얼마나 귀한 것을 먼저 깨닫고 이것을 안 믿는 사람에게도 나타내주면 그 사람도 이것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나를 만나서 무슨 인사를 하는가 하면, “목사님은 요새 금식 안 합니까? 목사님은 명동 성당 안 갑니까? 목사님은 성명서 안 냅니까?”라고 합니다. 그렇게 종종 물어봅니다. 그러면 내가 뭐라고 답변해야 합니까? 정당한 답변을 해주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나에게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성명서도 못 내는 걸까?’라고 하면서 깔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금식 안 합니까?”라고 물어볼 때에는 “성경에 금식은 세 가지 목적으로 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죄를 회개하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게 하는 것이고, 셋째는 자기 자신이 바로 서는 것,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것은 목적이 다 성경에 틀린 것입니다. 이 세 가지로 금식하는 것은 바로 된 금식이고, 이 세 가지 외에 다른 것 때문에 금식하는 것은 전부다 성경 탈선이고 성경대로 하지 않는 증거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러냐고 했습니다. 가만히 있었다면 금식하는 사람들이 성경대로 하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취급을 받을 뻔했습니다. 

그리고 명동 성당에 안 가느냐는 것입니다. 남들은 다 가는데 목사님은 왜 안 가느냐는 것입니다. 또 성명서를 냈느냐 안 냈느냐를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답변을 “성경에 교회와 정치는 갈라놓으라고 했습니다. 교회와 정치는 분리하여야 하며 교회는 세상 운동을 하는 데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 운동, 영적 운동으로 죄 가운데 빠져서 멸망으로 들어가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구원 하여 그 영혼을 천당 가게 하는 것이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즉, 세상운동하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고 영혼을 구원해서 천당 가게 하는 것이 기독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러면 목사님은 천당만 가렵니까?”하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천당 가려면 예수 믿고 지옥 가려면 믿지 말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들이 이제 나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저희들끼리 목사님 오신다고 목사님에게 물어보자고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대로 딱딱 답변해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안 믿는 사람도 ‘아, 이게 진짜로구나’하고 알게 됩니다. 

또 교회 나오라고 하면 “십일조 내라고 나오라고 하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십일조 내는 것을 어디서 들었냐”고 물어보니까 “자기도 다 안다고, 그것도 모르겠냐”는 것입니다. “목사님도 십일조 냅니까?”, 또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십일조 낸다”고 했습니다. 내는 것을 낸다고 해야지, 안 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십일조 내는데 그렇게 억지로 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교회 한 번 와보면 돈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자원해서 연보함에다 자기 스스로 원하는 대로 갖다 넣는 것이지, 얼마 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연보함은 또 무엇인가?”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연보함은 궤를 짜 놓고 넣고 싶은 대로 넣는 것이다. 한 번 와보라”고 하면 됩니다. 그 사람들이 배웁니다. 교회는 십일조를 강제로 받는 데가 아니고, 또 십일조 내라는 성경말씀이 있고, 자원해서 내는 것이라고 하니까 그 사람들도 다 이해를 하는 것입니다. 

후람 왕이 안 믿는 사람이지만 다윗 왕과 교제하며 또 솔로몬이 편지할 때 들어서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신 줄도 알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송하는 줄 알았습니다. 믿는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안 믿는 사람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바로 가르쳐주고 말하며, 바로 해야 됩니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도 다 이해를 합니다.

4. 성전 건축을 도울 이방인의 수

본문 17-18절에 “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거한 이방 사람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 오만 삼천륙백 인이라 그중에 칠만 인은 담군이 되게 하였고 팔만 인은 산에서 벌목하게 하였고 삼천륙백 인은 감독을 삼아 백성들에게 일을 시키게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방 사람도 성전 짓는 데 와서 일했습니다. 우리도 영적 성전을 건축할 때에 이방 사람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당 건축하는 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방 사람을 영적 성전 건축하는데 어떻게 이용합니까? 고린도전서 3장 21-23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울, 아볼로, 게바, 세계, 생명, 사망, 지금 것, 장래 것, 전부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나가는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불택자이지만 불택자도 예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당했습니다. 불택자는 불택자로 이용당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 운동하는데 안 믿는 사람도 많이 이용당하지 않았습니까? 안 믿는 사람도 이용당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이용당합니다. 빌라도도 이용당했고, 제사장도 이용당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우리 영적 구원 이루어나가는데, 다 이용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강단에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한테 무엇을 의논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세워 나가는데, 어떤 면으로든지 안 믿는 사람도 이용하고,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이용하고, 다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 영적 구원 운동에 이용당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 현재 한국 정부도 우리 구원을 이루어나가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일을 잘 해나가라고 지금 치안에 힘을 쓰고, 또 나라가 어지러워지겠으니까 노태우 대통령 마음을 감동시켜서 어지러워지지 않게 해서 믿는 일 해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이 세상 사람을 하나님께서 다 동원시키셔서 우리가 믿는 일 해나가는데, 좀 더 평안하고 안전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진리 운동을 하라고 다 이용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미국 사람도 이용하고, 학생도 이용하고, 선한 마음으로 이용당하는 사람도 있고, 악한 마음으로 이용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면에서 솔로몬이 이방 사람을 데려와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