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의 신앙
에스더 4:16-17
16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에스더 4:16-17
16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1. 에스더가 결사 각오하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심함
에스더가 자신의 위치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충실하게 감당함
본문 16절에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시녀로 더불어 3일 간 금식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하며 왕 앞에 나아가기를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일이 잘되게 해주셨습니다.
교회가 잘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교회를 붙들고 쓰시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효과가 난 것도 하나님께서 쓰신 증거입니다. 이처럼 에스더가 왕 앞에 들어가서 한 말이 효과가 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했을 때에
효과가 난 것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증거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습니다. 물론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이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해도 되긴 하지만, 꼭 내가 해야만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미 말한 대로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만 다
른 사람이 해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때는 ‘너와 네 집이 멸망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에 4:14). 즉,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에게 맡기느냐는 것입니다.
사명감을 느끼고 자원하여 나설 때에 하나님의 일이 잘됨
이사야도 하나님께서 ‘누가 나를 위해서 갈 것이냐’라고 하실 때에 ‘나를 보내소서 내가 가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가 갈꼬’라고 하실 때에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까지 하실 때는 꼭 보내시려는 것인데, 계속 그 말을 안 들으면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십니다. 그리고 본래의 사람은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양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소서’라고 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도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주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원해서 가는 사람을 보시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네가 가라’고 하실 때도 있지만, 마음으로 사명을 깨닫고 자원해서 나와야 일을 더 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명감을 깨닫고 자기가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자원해서 나설 때에 일이 더 잘됩니다. 얼마나 잘되겠는지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나는 말할줄 모릅니다. 또 입이 뻣뻣한 사람입니다. 보낼 만한 사람 보내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모세를 보내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려고 하실 때, 모세가 처음에는 그 뜻을
잘 깨닫지 못해서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불순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십 년 동안 신을 벗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는 너무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못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형편없어도 너를 써야 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몇 번이나 못 가겠다고 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내려 하셨습니다. 모세를 보내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자원해서 간 것입니다. 처음에 몇 번 자신이 부족하다고 사양한 것이지, 안 가겠다고 거역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하겠나’라고 생각해서 안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잘 깨닫지 못해서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불순종을 하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십 년 동안 신을 벗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는 너무 부족하고 형편없는 존재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못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형편없어도 너를 써야 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몇 번이나 못 가겠다고 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 끝까지 보내려 하셨습니다. 모세를 보내려는 것이지, 다른 사람을 시키려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모세가 자원해서 간 것입니다. 처음에 몇 번 자신이 부족하다고 사양한 것이지, 안 가겠다고 거역한 것은 아닙니다.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나 같은 것이 무엇을 하겠나’라고 생각해서 안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 같은 것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건설적인 사양(辭讓)입니다. 가지 않겠다는 뜻이 내포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와 애굽의 재산을 다 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간 것을 보면 스스로 자원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한, 두 번 사양하였지만,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가려고 해도 자신이 너무 부족해서 하나님의 일을 감히 감당할수 있을지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큰 몫을 멜 사람이 작은 몫을 메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한 가마니를 질 사람이 한 말을 지면 책망을 받습니다.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한 말 질 사람은 한 말을 지어야 하고, 한 가마니 질 사람은 한 가마니를 지어야 합니다. 또 반 말을 질
사람은 반 말만 지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고, 전체가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다해서 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체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자기 개인에 대해서만 잘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교회도 바로 안 되고 교역자도 바로 안 됩니다.
유다 백성 전체가 망하면, 에스더가 홀로 왕궁에 있다고 해서 망하지 않겠습니까? 본인 생각에는 자신은 왕궁에 있으니까 망하지 않을 것 같고 다치지도 않을 것이라 여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하만이 유다사람들을 다 죽인다고 해도 왕후까지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괜찮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왕후인 에스더도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어떻게 망하든지 다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전체를 다 살리려고 해야, 왕후도 살고 이스라엘 백성도 살고 자기 집안도 사는 것입니다. 진리 운동도 전체를 살리려고 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들어가기로 작정함
본문 16-17절에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들어가기로 작정을 하고 온 백성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을 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만 금식하는 것이 아니고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이 다 같이 금식을 하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다 같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에스더의 일이 성공합니다. 에스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고, 모르드개와 수산 도시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들어가기로 작정을 하고 온 백성들에게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수산에 있는 유다 사람들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을 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만 금식하는 것이 아니고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이 다 같이 금식을 하였습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으며 다 같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야 에스더의 일이 성공합니다. 에스더 혼자 일하는 것이 아니고, 모르드개와 수산 도시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이 모여서 같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큰 것만 하나님의 일인 줄 알면 안 됩니다. 수산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생명 없는 사람도 있고 아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보잘 것 없는 개인이어도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금식을 하며 기도하는 것은 정말 귀중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작은 것부터 충성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백성들이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에스더의 일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작은 일이 합해져서 큰일이 되고, 작은 일이 기초가 되어서 큰 일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큰 일이 되겠습니까? 찬송가에도 ‘천하고
무능한 나에게도 귀중한 일 맡기셨다’고 나와 있습니다. 다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보여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는 가사를 찬송하는데, 이 가사를 참 잘 지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하도 작지만 그것이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작은 것 같아도 작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큰 것입니다. 안 보이는 데에서 일을 할 때 누가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작은 일부터 충성하는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할 사람은 그 사명을 바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에스더의 일을 함께 감당함
그런데 지금 수산에 있는 사람들이 수백 명, 수천 명이 될 텐데 그가운데 한, 두 사람은 기도도 하지 않고 금식도 하지 않는다면 그 일이 잘되겠습니까? 사실 한, 두 명이 기도와 금식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일은 다 됩니다. 몇 명이 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 않아도 되긴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오면 ‘너와 네 집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협력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는 일은 이스라엘 전체 구원 운동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자기 집과 유다 사람들 전체가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
의 백성이 다 사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일을 잘 맡아 해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큰 몫을 감당할 사람은 큰 몫을 감당하고, 앞장설 사람은 앞장을 서고, 왕궁에 갈 사람은 왕궁에 가며, 문 밖에 있을 사람은 문 밖에 있어야 되겠습니다.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온 백성들이 자기 사명을 다 감당하였기 때문에 전부 살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작은 일이지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제자리를 지키며, 전체를 위해서 협력해 나가는 것입니다. 전체의 구원 운동을 위해서 몸을 바친 것입니다. 우리도 작은 일이라고 해도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다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에스더가 자기의 지위를 다 내려놓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나감
에스더는 지위를 다 내려놓았습니다. 존귀와 영광과 부를 다 내려놓고 죽을 각오를 하며 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왕이 금홀(金笏)을 들면 살 것이고 안 들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에스더를 삼십 일 동안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왕의 에스더에 대한 마음이 식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에 4:11). 마음이 식지 않았을 때 말하면 들어주겠는데, 지금은 왕의 마음이 식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마음이 식어질 때에 말을 하면 잘 안 들어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왕에게 안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사 각오를 하고 왕에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결사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위해서 살다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명예, 영광, 권세, 존귀, 왕후의 지위를 다 내어놓고 가다가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결사 각오하고 사명을 위해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들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무조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결사 각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어떻게 되든지, 죽이면 죽고, 굶기면 굶고, 때리면 맞는 결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지위를 다 내려놓았습니다. 존귀와 영광과 부를 다 내려놓고 죽을 각오를 하며 왕 앞으로 나갔습니다. 왕이 금홀(金笏)을 들면 살 것이고 안 들면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에스더를 삼십 일 동안 부르지 않은 것을 보면, 왕의 에스더에 대한 마음이 식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에 4:11). 마음이 식지 않았을 때 말하면 들어주겠는데, 지금은 왕의 마음이 식어진 것이 분명합니다. 마음이 식어질 때에 말을 하면 잘 안 들어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도 왕에게 안 나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들어가야 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고 결사 각오를 하고 왕에게 들어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언제나 결사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긴 사명을 위해서 살다가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명예, 영광, 권세, 존귀, 왕후의 지위를 다 내어놓고 가다가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어도 좋다는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결사 각오하고 사명을 위해서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붙들어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무조건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결사 각오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어떻게 되든지, 죽이면 죽고, 굶기면 굶고, 때리면 맞는 결심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심을철 목사는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하는 결심을 하고 모험적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모험적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만능으로 역사하셔서 그 사람을 붙드시고 일하십니다. 그래서 열매는 반드시 맺히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안일주의를 취하는 사람, 자기의 평안을 찾아서 나가겠다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일주의와 평안을 찾아가는 사람을 쓰지 않으십니다.
베드로는 배와 부친을 버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요한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아브라함도 본토와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을 따라갔습니다. 또 다윗은 모든 것을 버리고 골리앗을 향해 나갔고,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으며, 모세도 애굽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고난 받는 것을 즐겨하며 하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이와 같이 에스더도 모든 것을 버리고 고난 받는 길에 나섰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가졌습니다. ‘나는 고난 못 당한다. 과거에 이미 고난을 많이 당했는데 이제는 편안히 살아야겠다. 편안히 좀 살고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고난을 당했으면 얼마나 당했습니까? 당했으면 십 년을 당했습니까? 이십 년을 당했습니까? 고난을 당한 것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래도 한 사, 오십 년 고난을 당했어야 무엇을 좀 당했다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십 년이나 이십 년 가지고 고난당했다는 소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명함도 못 내밉니다. 많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의 실력이 되고 밑천이 됩니다. 고난 중에서 충성했던 것은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그에 대한 면류관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 동안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갔습니다. 날마다 죽음을 넘기면서 나갔습니다. 평안한 길을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늘나라에 가서 얼마나 많은 면류관 받겠습니까? 이제 여생(餘生)은 얼마 없는데, 우리가 고난을 많이 받아서 어떻게 하던지 좀 더 하나님께 충성을 해야 되겠습니다.
에스더의 신앙
1) 자신이 할 일을 생명을 내놓고 감당하는 신앙
예전에 내가 창광 교회 사무실 직원 중 한 사람에게 일을 시켰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사람이 그 일을 옆의 사람에게 맡겨놓았습니다. 그래서 어째서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느냐고 물으니 분주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내가 분주하면 다른 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지, 왜 내가 시킨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맡겼느냐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언제든지 자기가 해야 할 것이 따로 있습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면 안 됩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시켜도 일을 하기는 합니다. 가령 여러 교회에서 송금해 오는 돈들이 있습니다. 개척 교회 연보나 선교 연보 등 송금해 오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 일을 한 사람에게 맡기고 “네가 돈 들
어오는 것을 다 관할하고 장부에 기록해라. 또 줄 때도 네가 주어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켜놓았습니다. 그래서 대단히 책망을 하였더니 그 일을 그 사람이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도 안다. 그러나 내가 너에게 시킨 것을 왜 다른 사람에게 맡겼느냐? 다시 장부를 가지고 오라”고 혼을 냈습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각 분야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다 있습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야 할 사람은 나가야 하고, 국내에서 목회해야 할 사람은 국내에서 해야 합니다. 개척해야 할 사람은 개척을 해야 합니다. 또 기도원에서 봉사할 때에도 언제든지 자기의 할 일이 다 있습니다.
어제 여학생들에게 기숙사 봉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기숙사에서 연탄 냄새가 난다고 해서 창호지로 창문을 봉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너 명씩 기숙사에 들어가서 시킨 것은 하지 않고 놀고 있길래 내가 책망을 좀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북에서는 책망과 욕을 비슷하게 사용하는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서 책망이 욕처럼 들렸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강단에서 노인을 늙은이라고 하고, 여자아이를 계집애라고 하고, 고생했다는 것을 욕봤다고 하는데, 이북사투리 때문에 가끔 듣기 좋지 않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습관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하여간 언제든지 자기가 나서야 할 때를 알아서 나서야 된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교회, 가정, 교단에서도 나서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서야 할 사람이 고생이 된다며 나서지 않고, 그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시켜도 일이 되긴 됩니다. 그러나 자기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겠다는 사람은 점점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어버리고, 마지막에는 그 결과가 뻔합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해야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사람이 좋은 것입니다. 시키기 전에 자원해서 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 에스더가 왕궁에 있으므로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에스더가 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지 않겠다고 하면 일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해야 할 것은 보면 압니다. 자기가 해야 할 것은 하나님 앞에 마땅히 생명을 내놓고 해야 합니다. 그 일을 이루어 나가야만 합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때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윗도 자기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알고 나섰습니다. 골리앗이 나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능욕할 때에 ‘지금은 내가 나서야 할 때이다. 내가 안 나서면 안 된다’고 하면서 생명을 내놓고 골리앗을 대항해서 나간 것입니다. 기드온도 하나님께서 나가라고 하실 때에 군사 삼백 명만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아말렉의 군사가 바다의 모래알 같이 많이 왔지만, 기드온은 삼백 명만 데리고 나가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갔습니다.
우리도 사명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을 깨달으며 고난을 각오하고 나서야 합니다. 평안하면 뭐하겠습니까? 평안한 결과는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을 받으면 그 결과로 열매가 맺힙니다. 많은 고난을 받아야 거기서 얻어지는 것이 많은 것입니다. 자기 할 일을 다 해 나가야 합니다.
또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경제적으로도 한 몫을 해야 합니다. 앞장설 사람은 앞장을 서야 하고, 큰 몫을 멜 사람은 큰 몫을 메야 합니다. 또 작은 몫을 멜 사람은 그것을 잘 메고 가야 합니다. 수산의 유다 사람들처럼 작은 몫을 멜 사
람들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서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경제적 힘만큼 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살고 교회도 살고 전체가 다 살아납니다. 교회도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교회를 위하여 많이 일하려고 해야 합니다. 무조건 전체적으로 하는 것, 교단 적으로 하는 것에는 조금만 힘을 쓰고 자기 교회는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즉 몸에 힘을 써야 지체(肢體)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로 말하면 심장만 크게 만들겠다고 해서 힘을 안 쓰면 심장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에 힘을 써야, 위도 심장도 담(膽)도 건강합니다. 한 지체만 비대해지겠다고 전체 몸에다 힘을 안 쓰면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가 망하면 자기도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람들은 자기의 있는 힘을 다해서 구원 운동을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자신에게 있는 경제적 힘만큼 져야 합니다. 그러면 자기도 살고 교회도 살고 전체가 다 살아납니다. 교회도 자기가 능력이 있으면 교회를 위하여 많이 일하려고 해야 합니다. 무조건 전체적으로 하는 것, 교단 적으로 하는 것에는 조금만 힘을 쓰고 자기 교회는 크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양심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전체, 즉 몸에 힘을 써야 지체(肢體)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체로 말하면 심장만 크게 만들겠다고 해서 힘을 안 쓰면 심장병에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체에 힘을 써야, 위도 심장도 담(膽)도 건강합니다. 한 지체만 비대해지겠다고 전체 몸에다 힘을 안 쓰면 병이 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체가 망하면 자기도 망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을 써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전체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특히 개척 교회하는 데에 힘을 써 받들어야 하겠습니다. 개척 교회를 해마다 하나씩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에 빚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빚이 있어도 해야 합니다. 창광 교회는 아직도 빚이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데 개척 교회를 또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로들에게 또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빚은 있어도 그것은 차차 갚아나갈 생각을 하고 개척 교회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세울 사람들은 자꾸 내세우며, 어떻게 하던지 힘을 써서 하나님의 일이 되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에스더와 같이 자기 일을 해나가면서 전체 일을 위해 생명을 무릅쓰고 위험을 무릅쓰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나갈 때에 앞장설 사람은 앞서나가고 또 뒤에서 밀어줄 사람은 잘 밀어주어야 합니다. 대궐 문에서 밀어줄 사람은 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금식하면서 기도할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적은 힘을 다 가져다 바치는 것입니다. 다 갖다 바치고 계속 힘을 써야 합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자기 지역에서 예배당을 지을 때에는 다 힘을 합해서 며칠씩 가서 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예배당 건축비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적은 힘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에 한 몫 쓰는 것, 한 몫 메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리고 신학교 졸업을 하고나서 개척은 자립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단적으로 개척하는 것은 일 년에 하나 밖에 없으니까 특별히 선택해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신학교 졸업을 열 명이 했다고 해서 열 명에게 다 개척 교회를 세워줄 수는 없습니다. 또 신학교에 입학할 때
에 개척 교회를 시켜주겠다고 조건부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다 자립할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맡은 사명, 자신이 서야 할 위치, 자신이 감당해야 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수산 성의 유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에스더와 같은 일입니다. 에스더만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있어야 저것이 되는 것입니다. 저것을 하려면 이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있어야 열매를 맺힐 수 있습니다. 나무의 열매만이 귀한 것이 아니고, 나무도 귀하고 뿌리도 귀한 것입니다. 뿌리 없는 나무가 어떻게 열매를 맺겠습니까? 에스더를 열매라고 한다면 수산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금식 기도하는 것은 그 뿌리입니다. 뿌리에 힘이 있어야 열매가 힘 있게 맺힙니다. 열매만 귀한 것이 아니라 뿌리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 받들어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나감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2) 어떠한 환경에서도 동일한 믿음을 지켜나가는 신앙
우리는 비천함에 처할 때에도 믿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궁핍함에 처할 때에도 믿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낮아질 때에도 믿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하고, 높아질 때에도 믿음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제재를 받으면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높아졌다고 해서 평안한 가운데로 나가면 안 됩니다. 빌립보서 4장12절에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때에도 배부를 때에도 굶을 때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일체의 비결은 풍부에 처할 때에도 그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만 나갔다는 것입니다. 또 비천에 처할 때에도 그로부터 제재를 받지 아니하고 믿음을 계속 지켜나갔다는 것입니다. 궁핍할 때에도 풍부할 때와 다름없이 믿음을 지켜나갔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가난하면 도둑질을 하고 풍부하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며 방탕하고 향락주의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되면 믿음을 배반하며 떠나기 쉽습니다. 교역자들이 개척 교회를 시작할 때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힘을 쓰다가 좀 나아지면 힘을 안 씁니다. 그것은 벌써 비결을 못 배운 사람의 태도입니다. 음식점으로 자기 동료들끼리 모여 다니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 찾아서 먹으러 다니는 것입니다. 불광동에 밀알 기도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한 이십여 년 전에 기도하러 새벽에 한 번 갔습니다.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기도원에는 들어가지 않고 나무 아래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얼마쯤 있다가 아는 목사들 대, 여섯 명이 왔는데 그때가 한 아홉 시나 열 시쯤 되었습니다. 그 목사들도 전에는 나랑 같이 기도원에 나가던 사람들인데, 그때에는 떨어져서 따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저쪽에서 한, 두어 시간 기도하고 열두 시가 되어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점심을 싸가지고 갔으니까 나대로 먹고, 그 사람들은 모여서 한참을 떠들썩했습니다. 나도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가봤습니다. 가서 인사를 나누고 나는 다시 이쪽에 와서 성경을 보고 있는데, 한 두 시간을 ‘하하하’ 웃고 떠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한 네 시쯤 되니까 음식점에 간다고 합니다. 물어보니까 매주 토요일마다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코스가 다 있는 것입니다. 좋은 데는 다 돌아다니면서 서로 한 턱 내는 모양입니다. 이 사람들이 교회에는 산에 기도하러 간다고 해놓고 놀다가 좋은 음식점 찾아 먹고 다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생일날 돌아다니면서 먹는다고 합니다. 목사들끼리 생일에 부부끼리 이리 모이고 저리 모이고 해서 한참을 ‘하하, 호호’하는 것입니다. 음식점에 가서 사먹을 수도 있고, 또 사먹어도 좋습니다. 향토 음식이 어떤 것인지 내가 자세히는 모르지만 사먹을 수 있습니다. 향토 음식이 어떤 것입니까? 전주비빔밥, 경상도 매운탕, 추어탕, 또 무슨 함흥냉면 등 토속 음식들 다 사먹을 수 있습니다. 또 잘하는 음식점에서 다 먹을 수 있습니다. 먹는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떼거리로 모여 다니면서 먹자주의로 돌아가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특별할 때 한 번 가서 사먹는 것은 좋습니다. 손님 대접을 한다든지, 영양 부족이 걸려서 영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괜찮습니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교역자들이 떼거리를 만들어서 먹자주의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방탕이고 노라리가 아닙니까?
우리가 비천할 때나 풍부할 때나 가난할 때나 믿음을 지킬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에스더는 자기의 자리에서 신앙을 잘 지켰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고난을 각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환경을바라보는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환경을 바라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자신을 버리고 하나님의 도구로 온전히 사용되기를 바라는 신앙
만약에 이번에 에스더가 왕에게 나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 줄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은 이때에 한 몫 쓰려고 얻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번에 에스더가 왕에게 나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 줄 누가 아느냐’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은 이때에 한 몫 쓰려고 얻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때 나서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높은 지위나 존귀, 영광이나 명예도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물질도 하나님께서 한 몫 쓰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내 것인 줄 알고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용만 잘하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기회와 환경을 주신 것은 필요한 때에 한 몫 쓰시려고 주신 줄로 알아야 되겠습니다. 자동차를 주신 것도 한 몫 쓰려고 주신 것이지, 타고서 음식점 다니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일에 한 몫 쓰시려고 자동차 주신 줄을 알
고 한 몫 써야 합니다. 기도원 집회 때에도 한 몫 쓰고 교역자 수양회 때에도 한 몫 써야 합니다. 또 돈도 바로 이때를 위해서 한 몫 주신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한 몫 써야 합니다. 건강도 한 몫 쓰라고 주셨습니다. 또 기술, 지능도 한 몫 쓰려고 주신 것입니다. 교인들도 하나
님께서 주신 것을 한 몫 써야 합니다.
우리가 새로 나오는 교인들을 가르치는, 새 신자 교육 책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목사님이 두 분 있는데, 할 수 있으니까 한번 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반드시 하나님의 일에 한 몫 쓰시려고 주신 것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힘이 있어서 장작을 잘 패는 사람은 장작 패는 일에 한 몫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몫 쓸 데가 있어서 주신 것이 많습니다.
나도 하나님께서 강해서 출간하는 사명을 맡기신 줄 믿고, 이때 한 몫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줄 믿고 그것을 지금 매일하고 있습니다. 구정날도 안 쉬고 했습니다. 그런데 뒤에서 받들어주는 사람들이 설날에 다 놀러갔습니다. 다 쉬라고 했더니 놀러갔습니다. 그런데 내가 하라고 한 것을 다 해놓고 놀러갔으면 좋았을 텐데, 한 절반만 해놓고 놀러갔습니다. 그래서 강해서 절반 한 것만 가져오라고 전화를 했는데, 전부 어디 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찰 방에 있을 것이니까 찾아보고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고, 봉원동 기도실까지 가서 봤는데, 한 절반 정도 분량이었습니다. 그것 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져다가 했습니다.
4)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위태한 때가 되었는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안하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이것은 내게 맡기신 사명이고 내게 맡기신 십자가니까 내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서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될 것입니다. 개척 교회를 하는 것도 ‘내가 나서야겠다. 내가 어려운 데를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돈을 내는 것도 ‘내가 좀 더 내야겠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자기 교회에 하는 것이나 교단적으로 하는 것이나 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개체나 전체나 하나입니다. 전체가 안 되면 개체도 안 됩니다. 전체가 안 되는데 자기만 어떻게 살겠습니까? 에스더가 왕궁에 있다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달음박질하는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위태한 때가 되었는데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내가 안하면 안 된다’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내가 해야 한다는 정신을 가지고 ‘이것은 내게 맡기신 사명이고 내게 맡기신 십자가니까 내가 해야 한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서야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될 것입니다. 개척 교회를 하는 것도 ‘내가 나서야겠다. 내가 어려운 데를 가야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돈을 내는 것도 ‘내가 좀 더 내야겠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자기 교회에 하는 것이나 교단적으로 하는 것이나 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개체나 전체나 하나입니다. 전체가 안 되면 개체도 안 됩니다. 전체가 안 되는데 자기만 어떻게 살겠습니까? 에스더가 왕궁에 있다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전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달음박질하는 믿음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으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하여간 어떻게 하든지 우리는 자기에게 맡긴 사명을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결심을 가지고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생명을 내놓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면 우리 자신도 살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기 가정도 삽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나가시고 ‘너와 네 집은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이 구원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시켜서 일하십니다. 그러나 그러다가 우리와 우리 집은 다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면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이루어져나갈 것이고, 우리가 제대로 못하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다른 데로 옮겨가실 것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하며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일을 이루어 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서 ‘죽으면 죽으리라’하고 나가야 겠습니다. 그럴 작정을 해야 합니다. 왕후의 지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죽게 되었는데, 왕후의 지위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평안해도 얼마 있으면 다 망하고 말 것이
므로, 평안한 것을 내어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잘 해나가야 우리도 살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도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므로, 평안한 것을 내어버리고 고난을 각오하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잘 해나가야 우리도 살고 하나님의 구원 운동도 되어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