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잔치의 비유
마태복음 22:1-22
마태복음 22:1-22
1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2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3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4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5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6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7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8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9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10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11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12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13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4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15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16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17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 대 18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19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20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21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22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1. 혼인잔치에 손님들을 청함
마태복음 22:1-14에,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가로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했습니다.
잔치를 거절한 사람들과 그 이유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혼인 잔치하는 임금과 같다고 했습니다. 임금은 하나님이시고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그 종들을 보내어 청한 사람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그래서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다른 종들을 보내며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라고 전달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비용을 들여서 혼인잔치를 배설하고 초대를 했습니까? 거저 와 먹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희가 돌아보지도 않고 하나는 자기 밭으로, 하나는 자기 상업차로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능욕하고 죽이니’,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14:6-20에,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
지라”고 했습니다.
세 가지 종류입니다. 하나는 ‘밭을 샀으니 못갑니다’, 하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갑니다’, 또 하나는 ‘장가들었으니 못갑니다’고 했습니다. 다 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혼인잔치를 베풀고 오라는데 안가면 되겠습니까? 왜 안 갔습니까? 하나는 밭 때문이었고, 둘째는 소 때문입니다. 소는 상업인데, 장사하느라 못 갔습니다. 셋째 장가들어서 못 간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육신중심으로 기울어져서 못가는 것입니다. 밭은 자기 근본 바탕, 본성입니다. 본토와 같은 것이 밭입니다. ‘소를 시험 한다’ 하는 것은 돈 버는 것이고, 장가간다는 것은 육신의 정욕생활이라고 봅니다.
장가가는 것은 장가가는 행동만이 아닙니다. 부부생활이나 자녀 낳아 기르는 것이 다 장가가는 것에 합해있습니다. 자녀 때문에 못가는 것도 ‘장가가는 것 때문에 못가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에서 일 좀 하라고 하니까 자녀 때문에 못한다고 하는 것은 자녀가 우상이 된 것입니다. 내버리고 가면 백배나 나은 자녀가 될 터인데, 이걸 몰라서 꽁지에 박는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될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는 꽁지에 박는 것입니다.
요새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르시면 가야지 무엇 때문에 못갑니다, 장사 때문에 못갑니다, 농사 때문에 못갑니다, 기업체 때문에 못갑니다, 직장 때문에 못갑니다, 가정 때문에 못갑니다, 부부간 자녀들 이런 것들 때문에 못갑니다. 주님께서 오라고 하시는데 못가는 것은 여기 속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 얽매이는 것들인데 얽매이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달음박질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바로 됩니다. 나를 위해서 부모나 전답이나 가옥이나 형제나 자녀나 버리고 따라가는 자는 백배나 받는다, 영생을 상속한다고 그랬습니다. 버리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요새도 이런 것들 때문에 못 따라가는 사람 많습니다. ‘신학교 가긴 가야 되겠는데 이것 때문에 못갑니다’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긴 해야겠는데 이것이 때문에 못합니다’하고, ‘전적으로 주님 앞에 충성되게 봉사해야겠는데 이것이 때문에 못합니다’라고 합니다. 걸리는 것이 많아서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라고 했습니다. 얽매이는 것들을 벗어 버리고 나가야겠습니다.
도적을 붙이심
이사야 42:24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믿는 일 안하고 세상 따라가면 하나님께서 가만히 안 두시고 도적을 붙이십니다. 청한 사람이 안 오니까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유대나라를 하나님께서 로마 군대를 보내어 진멸했습니다.
이방인을 초대하심
본문 8-10절에, “이에 종들에게 이르되 혼인 잔치는 예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치 아니하니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4:21에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입니다. 유대사람이 하나님 앞에 안 오니까 이방사람인 우리들,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를 하나님 앞으로 불렀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예수 안 믿습니다. 부족한 사람들만 믿습니다.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약한 사람들, 미련한 사람들, 멸시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약한 자, 병든 자, 무식한 자, 이런 자들을 다 불렀다고 했습니다. 와서 뭐하라고 했냐면 먹으라고 했습니다. 와서 마음껏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다 와서 마음껏 먹었습니다. 무료입니다.
예수님께서 거저 먹으라고 했습니다. 떡은 예수님의 살입니다. 음료수는 예수님의 피입니다. 다들 거저 먹는데 예수님의 살과 피를 마음껏 먹고 거기서 심령이 살아나고 새 힘을 얻고 새 생명을 얻고, 우리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삼아주십니다. 우리의 신랑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마음껏 먹고 여기서 자라나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얼굴이 환해지라고 하십니다. 마음껏 먹으면 얼굴이 환해집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자격을 갖추라고 여기 다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불러 모으시는 바람에 여기 다 왔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자
본문 22:11-13에,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손님이 가득한데 임금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에게 왜 예복을 안 입었는가 물어보는데 이 사람이 입이 있어도 말을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왜 예복을 안 입고 들어왔습니까? 혼인잔치에 들어갈 땐 예복을 다 주는 법인데, 입구에서 예복을 다 입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옷에 비해보니까 예복이 맘에 안 들어서 안 입었을 것입니다. 자기 옷을 내버리고 예복을 입어야겠는데 자기 옷이 더 좋은 것입니다. 자기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것을 내버리지 못하고 예복을 입지 못합니다. 자기 것을 내버려야 합니다. 공자 교훈 많이 배운 사람은 성경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세상의 지혜에 통달한 사람은 거기에 비교해서 믿지 않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주의 것이 좋아서 자기 것을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났습니다. 예복을 입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습니다. 천하인간에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행 4:12). 아무리 여러 종교가 많지만 예수 이름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 이외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믿지 않으면 자기 죄가 그대로 있습니다.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원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어떻게 사함 받겠습니까? 아담의 자손은 다 원죄가 있는데, 예수의 피가 아니면 사함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선을 많이 행해도 원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고, 자기가 지은 죄도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죄도 있는데 그 죄값으로도 지옥에 갑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예수님 이외에는 죄 사함을 받을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피 흘림 없이는 죄 사함을 받지 못하는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피 흘려주셨기 때문에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믿지 않으면 자기 죄가 그대로 있습니다.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선한 일을 많이 해도 전에 지은 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리고 원죄가 있습니다. 원죄는 어떻게 사함 받겠습니까? 아담의 자손은 다 원죄가 있는데, 예수의 피가 아니면 사함 받지 못합니다. 아무리 선을 많이 행해도 원죄를 사함 받을 길이 없고, 자기가 지은 죄도 사함 받을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에 도달하지 못한 죄도 있는데 그 죄값으로도 지옥에 갑니다.
예수의 피로만 원죄나 본죄나 과거의 죄나 모든 걸 다 사함 받고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옷이 구원받는 옷입니다. 안 입고는 못 들어갑니다. 안 입으면 들어갔다가도 쫓겨납니다. 다 예수의 옷을 입었습니까? 다 예수의 옷을 입고 들어가 많이 먹으십시오. 많이 먹고 기운을 도와야 됩니다. 살진 소와 떡과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놨으니까 얼마든지 먹으라는 것입니다. 무료입니다.
예수로 점점 옷 입으라
로마서 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라’ 이것이 세마포라고 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옷을 다 입었는데, 바울이 믿는 사람들보고 ‘어두움의 옷을 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계속 입어나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점점 입어나가야겠습니다. 그러면 빛난 세마포가 됩니다. 예수님의 옷을 점점 많이 입어나가는 사람이 돼야겠습니다.
입어나가다가 또 실수해서 죄짓습니다. 회개하고 또 입어나가야 합니다. 예수의 옷은 성도의 의로운 행실이라고 했는데(계 21:8). 의와 진리와 거룩입니다(엡 4장).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걸 입어 나가다가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옷을 입어나가다가 시험에 들어서 마귀에게 속아서 잠깐 어두움의 옷이 들어올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즉시로 회개하고 어두움의 옷을 버리고 나가야 합니다. 거룩한 성결의 옷, 거룩의 옷을 입어야 합
니다. 거룩하지 못한 자리에 잠깐 갔다가도 즉시로 회개하고 거룩한 데로 더 거룩한 데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점점 더 입어나갈 수 있습니다. 다 입어나가면 예수님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옷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수님의 옷을 입어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처음에 입은 옷하고 좀 더 입어나가는 빛난 옷하고 차이가 납니다. 점점 입어나갈수록 점점 더 영화로워 집니다. 입어나가던 사람도 실수할 수 있지만 즉시로 회개하고 더 빛나는 옷을 입어야합니다. 회개하고 더 지혜로운 데로 나가야합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예수의 옷을 더 많이 입어나갈 수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면 좋지만 실수한 사람도 실수함으로 인해서 회개를 더 하게 되고, 더 많이 입어 나가려고 힘을 쓰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의 옷을 점점 더 입어나가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2. 어느 것이 하나님의 것인가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본문 15-22절에,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로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론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 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한대 예수께서 저희의 악함을 아시고 가라사대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이니이다 이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기이히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시험하려고 헤롯 당원과 바리새인 당원이 서로 왔습니다. 서로 반대 세력인데 두 당파가 예수를 시험하려고 왔습니다. 와서 예수님을 좀 높였습니다. 그리고는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은지 아닌지 물었습니다.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면 바리새인들에게 걸리고 바치지 말라고 하면 헤롯 당원들에게 걸립니다. 이 사람들이 예수님을 매장하려고 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저희들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
돈을 내게 보이라’하십니다. 가이사의 형상이 그려진 돈을 보이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무엇인가? 국가에 세금 바치는 것입니다. 성경에 위반되지 않는 한 권세를 순종하는 것입니다. 평안하기를 기도해 주는 것이 가이사의 것입니다. 국민의 의무가 가이사의 것입니다.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무엇인가? 주일입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계명에 보면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이 날은 종일토록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라고 했습니다. 주일날 자기를 위해 사용하고 사사로운 말하고 오락을 행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주일은 하나님의 날이니까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라고 했습니다. 바치면 그것이도 열매 맺는 것입니다. 온종일 하나님께 바치고 시험을 이기면 그것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십일조 안 바치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조건 십일조부터 떼어 놓아야합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다음은 자기 몸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몸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값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는 것이 바로된 것입니다.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모든 걸 다 바쳐도 부족해서 이 몸 바칩니다. 우
리 몸이 주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합니다. 또 자녀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몸이 하나님의 것인데 자녀는 하나님의 것이 아니겠습니까? 재산은 누구 것입니까? 천지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 재산은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까?
시편 24:1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여호와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아야 하고 다 주께 바쳐야 하고 다 마음으로 바쳐놓고 살아야 합니다.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값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고 바쳐야 됩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면 가이사의 것은 어디 있습니까? 전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세금 내라 하시면 그 때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국가에 대해 감당하라 하시면 그것이 가이사의 것입니다. 다 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말로만 말고 실제로 바쳐라
말로만 바쳐놓지 말고 실제로 바쳐야 합니다. 맏아들은 말로 다 하고선 안 갔고, 둘째는 안 가겠다고 하다가 갔습니다. 말로만 바치는 것은 맏아들과 같습니다. 세리와 창기들은 다 바치고 눈물로 나아옵니다. 세리와 창기가 너보다 먼저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은 맏아들, 안 하다가 실제로 회개하고 하는 것은 작은아들입니다. 작은아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합니다. 못 바치는 것을 회개해야합니다.
바치라 했으니 바치는 것이 마땅합니다. ‘내 생명 바칩니다. 마음도 바칩니다. 몸도 바칩니다. 재산도 주님께 바칩니다’ 해야 합니다. 연보할 때에 주를 위하여 주의 명령대로 연보해야 합니다. 인색함이나 부득이함으로 하고, 자기 볼 장만 보려고 하면서 연보하는 것은 안 됩니다. 부스러기만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다 바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이사에게 바칠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부모에게 바칠 것은 부모에게 바쳐야합니다.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부모에게 바쳐라 하면 바치는 것입니다. 부모 잘 공경하는 방법은 첫째는 예수님을 잘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으면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 드려도 부모를 지옥에 빠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둘째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려야 합니다. 원하는 집에 마음 편히 계실 수 있게 해 드려야 합니다. 셋째는 용돈을 드려야 합니다. 용돈을 안주면 부모가 사회생활을 못하게 되고 연보할 돈도 없으면 안 됩니다. 넷째는 의복이나 잠자리를 춥지 않게 잘 해드려야 합니다. 효도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남편의 것은 남편에게 자녀의 것은 자녀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 바쳐야 합니다. 바칠 것은 바치면서 하나님 명령대로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