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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7일 금요일

시편 137:1-9 시온에 대한 기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시온에 대한 기억
시편 137:1-9

1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3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4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5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6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7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8여자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9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1. 시온을 기억하고 욺

본문 1절에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잡혀간 사람들이 여러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습니다. 강변은 고요한 자리로서 기도하는 장소로 삼을 때가 많았는데, 사도 바울도 사도행전 16장 13절
에 보면 강변에 기도하는 자리가 있나 나가봤다가 루디아를 만나 전도를 하여 빌립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강변 고요한 자리가 기도하기 좋은 자리입니다. 고요한 산도 좋은 기도 자리입니다. 거기서 기도하면서 시온을 기억한 것입니다.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섬겼던 것을 생각하고 울었던 것입니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며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에 여러 성도들과 동행하며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 성일을 지키고 기뻐 찬송하고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에는 감사한 줄을 몰랐지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자 그때가 가장 귀하고 복되며 즐겁던 때인 것을 기억하게 된 것입니다. 포로 생활을 할 때에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성전에 올라갈 수도 없고 성일을 지킬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큰 환난이 닥쳐 교회에 모이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되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때가 가장 복된 때였던 것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가 가장 복된 때였다’ 할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지나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에 올라가며 예배당을 짓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성경을 배우며 주의 일을 받들어 나가는 때가 참 복된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환난을 당할 때 그때를 기억하고 울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과거에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믿었는지를 늘 사모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처음 믿음을 사모하고 늘 기억하면서 처음 믿음을 찾으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현재는 종살이하지만 종살이하기 전에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겼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시온을 멀리 떠난 사람들이 전에 시온 생활하던 것을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전에는 밤낮 성전에 가서 있었고 새벽 기도 일찍 나갔던 것들을 기억하면서 처음신앙을 찾는 그 믿음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2. 이방인이 시온의 노래를 청함

본문 2-4절에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라고 하였습니다. 거문고를 버드나무에 걸고 그 거문고로 하나님께 찬송했다는 것입니다. 그 버드나무는 근심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모든 가지가 땅으로 내려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버드나무에 거문고를 걸고 찬송하면서 예전 시온 생활을 기억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유대사람을 잡아갔는데 노래를 청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서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라고 한 것을 보면 노래를 부르지 않은 듯합니다. 그러나 버드나무에 거문고를 건 것을 보면 노래를 부르기 위해 거문고를 걸었던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어찌 부를꼬’라고 한 것은 전도하기 위해서는 노래를 할 수 있지만 구경거리로는 어찌 부를 수 있겠는가, 즉, 부를 수 없다는 것 같습니다.

3. 예루살렘을 제일 즐거워함

본문 5-6절에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찌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늘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고 기억하고 사모하며 돌아가기를 늘 소망하는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 예루살렘 생활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것보다 즐거운 것입니다. 예루살렘 생활만큼 즐거운 것이 없습니다. 세상 즐거움은 외부적인 즐거움이지 속은 씁니다. 다 피상적인 껍데기일 뿐이고 점점 시시해집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것보다 더 즐거운 것은 예루살렘, 영적 생활인 것입니다.

4. 예루살렘을 해하는 자는 벌을 받음

본문 7절에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 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원수를 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에돔 자손은 원수를 가리키는데 바벨론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교회, 복음 운동을 훼파한 자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데 이런 사람들을 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여자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연약한 자를 가리키는데, 이제 곧 있으면 멸망을 당할 바벨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해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갚아주십니다. 그리고 악한 자를 심판하는 이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루살렘, 교회를 해한 자는 그 자녀까지 망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잘 도운 자는 자녀까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시온을 사랑하고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구원을 세워나가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