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 큰 자
마태복음 11:2-15
마태복음 11:2-15
2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3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5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6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8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9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려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 10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 12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14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15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1. 세례 요한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
세례 요한의 신앙이 잠 듦
본문 11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말씀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헤롯왕이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었고 오랫동안 감옥에 있는 동안에 세례 요한의 신앙이 잠이 들게 되었습니다.
본문 2-3절에,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고 했습니다. 오실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고 예수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가 당신입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전의 신앙하고는 아주 다릅니다. 예전 신앙은 예수님에 향해서 세례 요한이 제일 바르게 증거하고 제일 많이 증거 했습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누구에게든지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면 그가 곧 그리스도다”, “그는 손에 키를 들고 타작마당을 정결케 하실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께서시다”, “나는 그 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할 자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며 세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를 바르게 많이 증거를 하였었습니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서 오랫동안 있는 가운데 그만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신앙의 잠이 드는 경우가 때때로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신앙의 잠이 들어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고, 엘리야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는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여 달라고 했고, 요나도 신앙의 잠이 든 때에는 박 넝쿨 마를 때에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이북에서 어떤 사람이 와서 신앙에 대해서 “전에만 못합니다. 전에는 신앙생활이 잘 되었는데 이제는 잘 안 됩니다”하면서 물어보았었습니다. 이기선 목사님 답변에 “신앙이 잠이 드는 때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네가 신앙이 잠이 든 모양입니다”하고 답변해 주셨던 것이 생각이 납니다. 신앙이 잠드는 때가 때때로 있습니다. 신앙이 잠들었기 때문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자기의 제자들을 보내서 예수님께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
그리스도의 증거
“당신이 그리스도입니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할 때에 예수님께서 답변하시기를 “내가 그리스도라” 하지 아니하시고 “가서 요한에게 이렇게 이르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자에게 복음이 전파 된다 하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가 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육신의 소경만 고치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앉은뱅이만 고치는 것이 아니고 육신의 문둥병자만 고치는 것이 아니고 영적 소경, 영적 앉은뱅이, 영적 문둥병자 썩어져 들어가는 것, 영적 귀머거리, 이런 사람들을 살리는 것을 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 증거라는 뜻입니다. 외부적인 이적은 그리스도가 아니라도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도 바리새인들도 이적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은 외부적인 면만 아니라, 속 깊이 들어가서 영적인 면을 고치셨습니다. 외부적인 육신의 병도 고쳤지만 그것은 표상으로, 하나의 표징으로 하신 것입니다. 속에 있는 영적 소경을 고치셨다는 표상으로 육신의 눈을 뜨게 하신 것입니다. 영적 문둥병을 고치셨기 때문에 표징으로 육신의 문둥병도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올 때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해주시는 분인 줄을 믿고 나와야 합니다. 나와서 영적 눈을 떠야 되고, 영적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아야 하고, 영적 문둥병자가 깨끗해져야 하고, 앉은뱅이가 걸어야 되고, 힘이 없어 드러누웠던 자가 일어서야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야 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혈기 마른 자가 예수님께 나와서 나음을 얻어야 합니다. 나음을 얻지 못하고 예배당에 왔다 갔다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하면서 영적 병을 고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절름발이는 밤낮 절름발이이고, 늦어지는 사람은 밤낮 늦어지고, 앉은뱅이는 밤낮 앉은뱅이이고, 그런 것은 개꼬리 3년 묵어도 황모 못된다고 했는데 3년 묵어도 밤낮 개꼬리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나아져야겠는데 나아지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고쳐주시는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 오신 것입니다. ‘고쳐라’, ‘일어서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그것입니다. ‘힘이 없는 자가 힘을 얻어라’, ‘죄 짓던 자가 죄를 끊어버려라’, ‘믿는 일에 힘쓰지 못하던 자는 힘을 써라’, ‘고침을 받아라’, 이것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날에 이런 예수님을 영접해서 모든 것을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고침을 받지 못하고 왔다 갔다만 하면 쓸데가 없습니다. 오늘 해도 많이 늦어진 것인데 앞으로 더 늦어지는 사람은 얼마동안 늦어지는 것입니까? 몇 년 가도 늦어진 채로 있습니다. 작년에도 늦었던 사람이 금년에도 늦어집니다. 왜 늦어지는 것입니까? 우리가 정신 차려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와서 고침을 받는 저희가 되어야 합니다. 조금씩 나아져야 합니다.
세례 요한의 믿음
본문 6-8절에,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 저희가 떠나매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한 것을 보면 세례 요한이 일시적 실족 한 것이 분명합니다. ‘세례 요한이 부드러운 옷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알고 너희가 광야에 나갔더냐? 세례 요한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
의 뜻에 의해서 믿음에 굳게 서있는 반석과 같은 세례 요한입니다.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은 왕궁에 있다’고 했는데 세례 요한은 세상에서 명예 출세 부드러운 옷을 입으려고 하고, 권세 얻으려고 하고, 권세에게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에 굳게 서있고, 의를 생명 같이 여기고, 의를 위해서 왕을 면책한 강한 세례 요한이고 절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정조를 가지고 반석과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세례 요한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좋은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반석과 같은 신앙, 흔들리지 않는 신앙입니다. 바람에 흔들려서 동풍 불면 서쪽으로 기울어지고, 서풍 불면 동으로 기울어지고, 바람 부는 대로 따라서 기울어지는 세대주의, 대세주의, 변절자들과 같은 그런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언제나 신앙에 말씀에 굳게 서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여론에 의해서 흔들리고 인간의 여론에 의해서 일어났다가 인간의 요구에 의해서 쓰러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례 요한의 신앙을 본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굳게 서있는 신앙, 의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진리를 지키고 요동함이 없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세례 요한 같은 자가 참된 신자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없다
본문 10-11절에,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저가 네 길을 네 앞에 예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세례 요한이 예비한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비하러 온 사람입니다.
“내가 진실로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라고 하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여자가 낳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까? 제가 이 말씀을 오랫동안 연구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는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 이외에는 세례 요한 보다 큰 자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마리아가 낳았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것 같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위로부터 온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신 분이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해당이 안 됩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도다” 하는 말씀이 맞는 줄 알아야 합니다. 왜 맞는가 하면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이 클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는 세례 요한이 크다는 말을 하시고 계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한 것이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온 자라 하였습니다. ‘너희는 땅에서 났고 나는 하늘에서 났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왔다가 하늘로 간다’, ‘아버지께로 왔다가 아버지께로 간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낳았지만 여자에게서 낳은 자 중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제외되어야 하는가 하면 ‘위로부터 하늘에서부터 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이런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 이외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하는 것이 딱 맞습니다. ‘모든 인류 가운데 세례 요한이 크다’고 하면 예수님보다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
예수님도 마리아가 낳았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것 같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위로부터 온 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낳은 자가 아니라, 위로부터 오신 분이기 때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해당이 안 됩니다. “예수님 이외에는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일어남이 없도다” 하는 말씀이 맞는 줄 알아야 합니다. 왜 맞는가 하면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이 클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여자가 낳은 자 중에는 세례 요한이 크다는 말을 하시고 계십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 한 것이 확실 한 것 같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위로부터 온 자라 하였습니다. ‘너희는 땅에서 났고 나는 하늘에서 났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왔다가 하늘로 간다’, ‘아버지께로 왔다가 아버지께로 간다’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낳았지만 여자에게서 낳은 자 중에서는 제외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제외되어야 하는가 하면 ‘위로부터 하늘에서부터 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에 이런 말씀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예수님 이외에는 세례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하는 것이 딱 맞습니다. ‘모든 인류 가운데 세례 요한이 크다’고 하면 예수님보다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이외에 세례 요한 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세례요한보다 크다
박태선씨는 세례 요한이 지옥 가서 훌쩍 뛴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라는 말씀을 들어서,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세례 요한보다 크니까 세례 요한이 지옥 가서 훌쩍 뛴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아야 되므로 천국에 없고 지옥에 있다고 했는데,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본뜻을 잘 모르고 박태선씨가 잘못 안 것입니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면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는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천국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천국’이라 함은 교회를 가리키는 때가 많습니다. 천국을 ‘그물치고 고기 잡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그것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참 종자에 가라지의 씨를 뿌렸다’는 말도 전부 교회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천국을 교회라고 가리키고 있는데도 있고, ‘너희 마음에 천국이라’, ‘너희 가운데 천국이라’, ‘예수님을 중심한 성도 가운데 천국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영적 천국’, 그 다음은 ‘천년왕국’, 그 다음은 ‘영원한 하늘나라’인데 다 천국을 말합니다.
여기 본문의 ‘천국에서’는 신약교회를 말합니다. 신약교회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신약교회시대에는 매우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큰 자라는 것인데,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 큰 것입니까? 진리를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만 증거 했지,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세례 요한이 몰랐다는 것입니다. 왜 몰랐습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나타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몰랐는데,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 죽은 이후에 진리를 다 나타내십니다.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 놓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 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유년부 학생이라도 다 압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몰랐습니다. 진리를 아는 면에 있어서는 신약 교회시대 사람들이 아무리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 보다 많이 안다는 것입니다. 어떤 면을 많이 안다고 했습니까? 십자가, 부활, 승천, 성령강림입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신약교회 시대가 진리를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유년부 아이들에게 물어보아도 ‘예수님 어떻게 죽으셨냐?’고 물어보면 ‘십자가에 죽으셨다’하고 ‘누구 때문에 죽으셨냐?’고 물어보면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어보면 ‘삼일 만에 부활 하셨다’라고 하고, ‘부활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 물으면 ‘승천하셨다’라고 하고 다 압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몰랐습니다. 진리가 나타나기 전이기 때문에 몰랐습니다.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큽니다.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2. 천국에서 큰 자
진리를 많이 알고 행하는 자
마태복음 5:19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고 행하는 자가 크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크다’고 했는데 이것도 자기를 낮추어야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만하면 못 배웁니다.
마태복음 20:26-27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고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크다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첫째로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많이 배워야 되고 많이 알아야 됩니다. 알아도 바로 알아야 됩니다. 박태선과 같이 잘못 알면 모르는 것만도 못합니다. 신령한 뜻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통달했다고 해도 거기에 있는 신령한 뜻을 모르면 껍데기만 아는 것입니다. 내용의 신령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8:4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고 하셨습니다. 진리를 알고 행하는 자가 크다고 했습니다. 진리를 행하는 자가 큰 자입니다. 또,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크다’고 했는데 이것도 자기를 낮추어야 진리를 배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교만하면 못 배웁니다.
마태복음 20:26-27에,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고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크다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큰 자는, 첫째로 진리를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많이 배워야 되고 많이 알아야 됩니다. 알아도 바로 알아야 됩니다. 박태선과 같이 잘못 알면 모르는 것만도 못합니다. 신령한 뜻을 바로 알아야 됩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통달했다고 해도 거기에 있는 신령한 뜻을 모르면 껍데기만 아는 것입니다. 내용의 신령한 뜻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먼저 진리를 바로 알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그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지식적으로 안 다음에는 확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진리를 의뢰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신뢰한 다음에는 행해야 합니다. 그런 자가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고 깨닫고, 신령한 뜻을 깨닫고, 그 진리를 신뢰하고, 그 다음엔 진리대로 행하면, 큰 자가 됩니다. 한 가지 알아가지고서 한 가지 깨닫고, 한 가지 신뢰하면 그만큼 큰 자가 됩니다. 조금 더 알아서 조금 더 깨닫고, 조금 더 신뢰하고 조금 더 실행하면, 그만큼 큰 자가 됩니다. 또 진리를 조금 더 연구 하고 조금 더 알고, 조금 더 깨닫고, 조금 더 신뢰하고, 조금 더 실행하면, 또 그만큼 더 큰 자가 됩니다.
날마다 영적 양식을 먹고 자라난 자
진리가 있는 가운데,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 양식은 신령한 영적 양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영적 양식을 먹고 매일 자라나야 합니다. 육신의 양식은 영적 양식을 먹고 영이 자라나면 하나님께서 덤으로 주십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우리는 매일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되겠습니다. 성경을 상고하고 배운 것을 기도하면서 새김질 하고 매일 신령한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먹어야 합니다. 우리 주일날 예배시간에도 일용할 양식을 먹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먼저 목사가 먹고 그다음에 교인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신령한 양식을 먹고 나눠주고, 점점 그 말씀을 많이 깨닫고 많이 배우는 것입니다.
허송세월하는 사람은 안 됩니다. 하루 잠깐 지나가고 한 주간이 잠깐 지나가고 한 달이 잠깐사이에 지나갑니다. 구정으로 정월 초하루가 어저께 같은데 벌써 다 지나갔습니다. 이달도 많이 갔습니다. 화살같이 빠른 세월이라고 했는데 허송세월 안 했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내가 허송세월 안 했나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나간 한 주간 동안에 허송세월 안 했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허송세월 안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신령한 양식을 먹은 사람입니다. 양식을 먹고 그 양식대로 자기가 자라난 사람입니다. 그 말씀에서 새 힘을 얻고, 그 말씀에서 생명을 얻고, 그 말씀에서 즐거움을 얻고, 그 말씀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것은 절대 허송세월이 아닙니다.
아주 가치 있는 생활입니다. 말씀으로 조금씩 더 커나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매일 말씀을 먹고 자라난다면, 자라난 그 만큼으로 하늘나라에 그대로 갑니다.
말씀을 그대로 행하는 자
하늘나라에서 큰 자는 말씀을 행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자는 큰 자가 됩니다.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행했으면 큰 자입니다. 말씀을 두 개 받아서 그대로 행했으면 그대로 더 큰 자이고, 세 개 받아서 행했으면 그 만큼 더 큰 자입니다. 네 개 받았으면 더 큰 자이고, 다섯 개 받았으면 더 큰 자입니다. 여섯 개, 열 개, 스무 개, … …, 더 큰 자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많이 배워 쓸 데 없다’고 합니다. ‘행하지 못하는데 많이 배워 무엇 하냐?’고 합니다. 그 사람 생각은 한 가지라도 행해야지 배우기만 하면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십계명부터 행해야 합니다. 십계명도 행하지 못하는데 다른 것 배워도 필요 없고 교회도 나갈 필요 없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십계명부터 행하려고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보고 말하기를, “그렇게 죽도록 행해도 십계명 못 다한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말씀을 먹어야 영이 자라나는데 십계명만 하면 되겠습니까? 더 먹어야 하는데 계명으로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데, 조금 더 많이 먹고 조금 더 많이 깨달아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계명은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계명을 다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 나가야지, 계명 지키는 것 만은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잘못 생각했으니까 회개하라”고 하면서 “다시 교회 나가라. 바로 서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는 진리를 받고서 모르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학교도 하는 것이고 신학교도 하는 것이고, 성경도 많이 보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 이계순 집사 기록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기록했습니까? 느헤미야? 창세기부터 기록했습니까? 기록하는 것이 낫겠습니까, 많이 보는 것이 낫겠습니까? 기록하는 사람도 일리가 있습니다. 성경 보려고 하니까 잠만 오고 또 보아도 모르겠고, 뒤에 보면 앞에 잊어버리고 하니까, 아예 쓰는 것이 여러 번 보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생각으로 쓰는 것 같습니다. 성경 쓰는 것 괜찮습니다.
그러나 저는 많이 읽고 묵상하고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쓰는 사람 복 있다는 말이 없습니다. “읽는 사람, 듣는 사람,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했습니다(계 1:3). 시편 1편에는 즐거워하면서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즐거워서 주야로 묵상하고 읽는 자, 듣는 자,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니까 그런 자리에 나가야만 되겠습니다.
들어도 어느 정도의 가르침을 듣는가 하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건성으로 슬슬 가르치는 곳이 있고, 조금 깊이 가르치는 곳이 있고, 조금 더 깊이 가르치는 데가 있고, 아주 깊이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깊이 가르치는 곳에서 깊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 자기에게 새 힘이 됩니다. 그리고 그대로 자라나면, 깨닫지 못한 사람이 행한 것보다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깊이 배운 것을 행한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됩니다.
허송세월 하지 말고,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주일날 와서는 말씀을 배우고 듣고, 그 다음엔 그 말씀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천국을 침노하는 자
본문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는데, 침노하는 자는 천국을 빼앗는다고 하였습니다. 구역(옛 번역)에는 ‘힘쓰는 자가 빼앗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영어성경 킹 제임스에는 ‘폭력을 당하나니’라고 해석되어 있습니다. 아예 폭력으로 빼앗으려고 힘써 들어가서 빼앗는 것을 말합니다. ‘침노’라는 말 아주 좋은 말입니다. 침노라는 것은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적진에 상륙을 하라는 것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쳐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빼앗는 것입니다. 침노하면 천국에서 큰 자가 됩니다. 쳐들어가서 빼앗는 것을 많이 빼앗아야 됩니다. 그래야 큰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천국은 쉽게 먹는 것이 아닙니다. 쳐들어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쳐들어가는 것입니까?
예를 들면 세례 요한이 천국에 침노하고 쳐들어갔습니다. 광야에 나가서 세례를 주고, 광야에 나가서 기도하면서 약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몸은 하늘 이슬에 젖고, 세례를 주고, 헤롯왕에게로 쳐들어가서 “당신이 그 여자 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했고 그러다가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천국을 많이 침노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정처 없이 쳐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으로 쳐들어 간 것입니다. 그래서 얻었습니다. 빼앗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가나안으로 쳐들어갔고 가나안을 빼앗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천국에 쳐들어갔는데 어떻게 쳐들어 갔습니까? 바울이 가만히 살았으면 평안히 살 수 있었지만, 아예 희생정신을 가지고 아라비아 3년 쳐들어가서 거기서 많은 것을 얻었고, 예루살렘으로 쳐들어가고, 안디옥으로, 유럽, 소아시아 전체, 그 다음엔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 하지만 예루살렘에 또 쳐들어가고 로마에까지 서바나까지 가려고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천국이 침노당하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쳐들어가서 이기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나귀 타고 쳐들어가서 올라가셨습니다. 십자가 못 박히실 때가 되었을 때에도 예루살렘으로 다시 올라가셨습니다. 나사로 살리려고 쳐들어 올라가셨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힘써 전진하는 생활, 힘써 천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생활, 힘써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천국을 침노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내 몸을 힘써 복종 시킨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힘써 하나님만 의뢰하고 그 말씀대로 침노하는 것입니다. 가만있지 말고 침노해야 합니다. 자꾸 침노하다 보면 빼앗을 날이 옵니다. 식구가 안 믿어도 가만두지 말고 자꾸 침노해야 합니다. 기도하고 전도하고, 또 어떻게 하든지 잘해주려고 하고, 또 어떻게 하든지 교회로 자꾸 데리고 나오려고 해야 합니다. 자꾸 침노해야지 가만 두면 안 됩니다. 침노해야 빼앗지, 가만 있으면 빼앗지 못합니다. 침노하면 빼앗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말할 때 저도 그렇게 말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복을 받습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모른다”라고 합니다. 그러면 제가 가르쳐 줍니다. “교회 나와서 예수 믿으면
새해 복 많이 받는다”라고 “새해엔 교회 나오라”라고 말해줍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도 침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 도둑놈들’이라고 하면서 “정치가들이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거짓말 안 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고 또 저에게 물어봅니다. 그래서 ‘거짓말 안 한다고 하는 사람이 거짓말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죄 없다 하는 사람이 거짓말 하는 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다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도 죄가 있으니까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된다”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런 말하는 것도 침노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부패성을 벗어버리고 못된 것을 버리고 자꾸 침노해야 합니다. 언행심사를 하나님께 대하여서 옳지 않게 하고, 사람에 대해서 부덕이 되는 언행심사가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쳐들어가서 스스로 못하게 정복을 해야 합니다. 게으른 것도 쳐들어가서 정복을 해야 합니다. 게으르지 않아야 합니다. 쳐들어가면 됩니다. 늦어지는 것도 조금만 침노하면 안 늦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유년부 때부터 믿었는데, ‘새벽기도 어떻게 나갈 수 있을까?’ 큰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침노하자 힘쓰자’ 생각하고 새벽에 혼자 깰 수 없겠으니까, 이낙현 목사 오촌 조카한테 “내가 늦어지면 날 깨워주고, 네가 늦어지면 내가 널 깨운다”하고 새벽기도 나가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어떻게 깨우느냐 하면 대문간 두드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사촌형네 대문간 두드리다가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사촌형이 교회 안 나오니까 자다가 놀랬다고 혼이 났었습니다. “이제 다시 대문 두드렸다간 가만 안 둔다”라고 했었습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 해야만 대문 두드리지 않고 새벽 기도 나갈 수 있겠는가?’하고 둘이서 회담을 했습니다. “막대기를 하나 매달아 놓고 줄을 잡아당기면 막대기가 떨어지게 하자” 하고선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대문 안 두드리고 줄을 잡아당기면 막대기가 떨어지게 해 놓았습니다. 자기 아버지 모르게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그렇게 얼마동안 힘써 침노해서 힘써서 들어가니까 다 정복했습니다.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이젠 쉬어졌다는 말입니다. 안 나오는 것이 오히려 힘들어졌고, 이젠 막대기 다 치우게 되었습니다.
무엇이나 힘써 침노하고 정복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배워 가지고 그대로 되기를 힘써나가야 합니다. 미지의 세계를 정복해나가야 합니다. 밤낮 자기 현재 세계에서만 살지 말고 현재 세계보다 조금 더 다른 세계로 쳐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조금 더 넓어집니다. 그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면 큰 자가 됩니다. 영원히 큰 자가 됩니다. 이제 우리는 이렇게 세례 요한이 끼친 신앙을 본받아서, 우리가 천국에 가서 큰 자가 되도록 항상 천국을 침노해서 정복해 나가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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