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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3일 토요일

누가복음 18:9-23 영생을 얻는 길,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생을 얻는 길
누가복음 18:9-23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15사람들이 예수의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8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3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1. 하나님께 상한 심령으로 나아오라

영생을 얻는 길에 대해서 성경 말씀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는데 세리와 같이 회개하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바리새인과 세리가 둘 다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는데,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불의․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는 죄인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은 죄인하고 같이 서면 자기도 죄인과 같이 취급 받을까봐 따로 서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토색하지 않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불의한 일이나 간음하지 않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또 세리와 같이 되지 않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레에 두 번 금식하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십일조를 드리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감사할 만하지 않습니까? 도
적질하지 아니하고, 남을 속여 먹지 아니하고, 불의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간음하지 아니하고, 또 세리와 같이 남의 돈을 먹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는데, 바로 ‘회개’입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하나님이 봐주신다고 했는데, 상한 심령이 빠졌습니다. “잘한 것 감사합니다”하는 것뿐이지 회개가 없습니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또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통회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멸시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잘하긴 잘했는데 상한 심령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세리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갈 염치가 없었습니다. 죄를 너무 많이 졌기 때문에 성전에 들어가서도 지성소 앞으로 나아갈 염치가 없어서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우러러 볼 수 있을까?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 뿐입니다. 죄송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잘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가슴을 친 것을 보면 원통히 여기며 회개한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왜
그런 죄를 졌을까? 죄 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원통해서 가슴을 쳤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함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세리가 바리새교인보다 의롭다 함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리의 기도는 기뻐 받으시고, 바리새교인의 기도는 받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교인이 기도를 잘못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느냐 하면 바리새인이 잘한 것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셔서 한 것이지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게 해주셔서 한 것이므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 바리새인이 실제로 하나님 앞에 불의하고, 간음하고, 또 세리와 같은 죄가 하나도 없었을까?, 죄가 실제로 없었을까?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놓았을 때 외부적으로는 다 안 했지만, 중심을 볼 때 언제나 진실한 신앙 양심을 썼을까?, 겉으로는 불의한 일을 안한 것으로 보여도 마음 깊은 곳에 불의한 부패성이 없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있었을 것입니다. 다 있게 되어 있습니다. 

육체적으로 간음은 안했지만 마음으로 음욕을 품지 않았을까? 설령 마음으로 음욕을 안 품었다고 해도 내적으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하셨는데,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난 시대가 악하고 음란한 시대입니다. 또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여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육체적 간음, 음욕을 품는 마음의 간음,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것,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간음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중심 속에 욕심이 없었을까? 물욕이 없었을까? “십일조를 드렸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을 했다”고 하였는데, 참된 금식을 했을까? 물론 이레에 두 번씩 안 먹었죠. 그러나 참 금식을 했을까?

금식의 목적은 이사야 58장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자기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목소리를 상달케 하는 것이 참 금식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바리새인은 금식을 이레에 두 번씩 했는데 이레에 두 번씩 자기의 죄를 깨달았을까? 또 목소리를 하나님께 상달하는 기도를 이레에 두 번씩 했을까? 또 십일조를 드렸다고 했는데 물론 십분의 일을 드렸겠지요. 십일조의 정신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동시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십분의 일만 하나님의 것이 아닙니다. 내 몸뚱이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다 청지기입니다. 욥은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 놓고 살았을까? 바리새교인이 자기 속의 것을 보지 못해서 그렇지, 그 속을 참으로 보았다고 하면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맞습니다. 속은 다 다른 것인데 껍데기 몇 가지 됐다고 해서 이것 가지고 감사하고, 진짜 속의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속의 부패성을 가지고 회개하지 못하고 잘한 것만 “감사하다”는 것은 껍데기이고 외식입니다. 바리새교인은 그래서 외식이라는 것
입니다. 세리는 잘못했지만 그것이 중심입니다. 몇 가지 잘하고 외식하는 것보다 잘못했다 하더라도 중심으로 회개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바리새교인도 참으로 선한 양심을 써서 자기 중심을 보았다고 하면 나와서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라고 세리와 같은 기도를 했어야 맞습니다. 그래야 바른 기도입니다. 잘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또 했어도 그것은 껍데기만 한 것이지 중심으로 볼 때 제대로 바로 못한 것입니다. 바리새교인은 외부적으로 잘한 것 몇 가지만 가지고 회개할 줄 모르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자기 책임을 다했다, 하나님 앞에 이만하면 괜찮다’는 태도를 가지고 나왔는데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죄를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그 앞에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마다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잘한 것 가지고 나오지 말고 잘못한 것을 붙들고 나와야 합니다. 외부적인 것만 보지 말고 중심을 보고 나와서 회개하여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라

본문 16, 17절에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해야 하고 사모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적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갓난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하였고 여기서는 낮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사람, 또 자기를 낮추는 사람, 그리고 신령한 젖을 계속 사모하는 사람, 이와 같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영생의 길을 걸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물리친다고 하셨습니다. 

3. 있는 것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좇으라

본문 20-21절에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관원이 나아와서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고 예수님께 영생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는데, 그 관원이 이것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다 지켰을까요?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종교생활을 잘한 것이 분명합니다. 경건한 신앙 가정에 태어나서 부모에게 잘 배우고, 선생에게도 잘 배워서 자기를 잘 단속하고 신실한 생활을 한 것이 분명합니다. 어려서부터 간음하지 아니하고, 살인한 적도 없고, 도적질한 적도 없고, 거짓 증거도 하지 아니하고, 부모도 공경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에 무엇인가 빠졌습니다. 상한 심령이 빠져 나갔습니다. 이 관원도 아까 그 바리새교인과 같은 바리새교인입니다. 바리새교인은 다 같은 종류인 모양입니다. 여기도 회개와 상한 심령이 없습니다. 잘한 것만 그저 말하고 상한 심령이 빠져 나갔습니다. 회개가 빠져 나갔습니다. 물론 이 관원도 잘하려고 힘을 많이 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인데, 잘한 것 가지고 나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잘한 것 좋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제가 한 것이 아닌 줄 알고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몇 가지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도적질하지 말고” 하셨을 때에 이 사람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했으면 “내가 외부적으로는 하느라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죄인입니다”라고 했어야 합격될 뻔 했습니다. 그런데 “어려서부터 다 행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본문 22절에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첫째로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어 하늘나라를 받들고,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하며, 그 다음으로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예수님을 좆는 것이 영생 얻는 방법입니다.

이 관원은 큰 부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그 재산을 팔아서 나눠주라고 하셨겠습니까? 이 사람은 돈 때문에 예수님을 못 믿을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돈이 우상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보다 돈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 따라가는 것이 크냐? 돈이 더 크냐? 어느 것이 더 크지요? 이 사람은 돈이 더 큽니다.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할 때 예수님을 못 따라갔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더 큰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 따라가는 것보다 돈이 더 큽니다. 우상이 속에 있는데, 우상 두고 그냥 따라 다니면 희망이 없습니다. 우상을 그냥 두고 따라 다니면 아무리 따라 다녀도 신앙이 안 되고, 자기 구원도 안 되며, 예수님 말씀을 끝까지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나를 따라 오려면 우상을 버리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네가 못 버릴 것,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리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버릴 수 없는 것이 우상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해도 사람이나 물질이나 직업이나 권세 등 때문에 못 따라갑니다. 예수님 말씀을 순종하는데 그것 때문에 순종을 못합니다. 사업이 안 될까봐, 직장에 떨어질까봐, 주일을 못 지킵니다. 그러므로 직장이 우상이고, 사업이 우상입니다. 돈 때문에 예수님을 못 따라가고, 사람 때문에 예수님을 못 따라가면 돈이 우상이고, 사람이 우상입니다. 권세 때문에 예수님을 못 따라가면 권세가 우상입니다. 우상을 버려야만 예수님을 참으로 따라갈 수 있는 것이지 우상을
그냥 가지고 다니면 예수님을 따라다녀도 헛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고, 하나님 한 분만 따라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가지고 따라다니면 그것은 마치 결혼하는 여자가 자기가 먼저 사귀었던 남자를 데리고 결혼식에 간 것과 같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신부될 여자가 남자 하나를 데리고 식장에 들어갑니다. 신랑이 이 사람이 누구냐? 할 때 “내가 이전부터 사랑하던 자로 두고 올 수가 없어서 같이 결혼식장에 왔습니다”하면 결혼식이 될까요? 자기가 사귀던 남자 데리고 와서 결혼하자고 하면 이에 응할 남자가 있을까요? 한 명도 없습니다.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못 따라가고, 하나님 말씀을 그것 때문에 어기는 것, 전부가 우상입니다.

또 그로부터 유익을 보는 것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가는데 ‘무엇 때문에 못 따라갑니다, 무엇 때문에 주일 못 지켰습니다, 무엇 때문에 십일조 못 드렸습니다, 무엇 때문에하나님 명령대로 못 했습니다’하는 것은 전부 우상입니다.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내가 주님을 따라가지 못 했습니다’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누구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전적으로 따라가지 못했습니다’하는 우상을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다 맡겨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물
질 버리고 따라오라고 할 때에는 “예, 아낌없이 다 바칩니다”하고 따라가야 합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은 하나님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께 필요한 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따라가야 제대로 따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수전노와 같이 꽁꽁 쥐고 하나도 안 내놓고 예수님을 따라가려 하면 우상을 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되어서 안됩니다. 우상을 가지고는 영생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자기의 영이 사는 길로 날마다 나아가야 합니다. 영생은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으로, 영이 날마다 사는 길로 가려면 막는 것을 제거하고, 매달리는 것도 제거하고, 붙잡으려
는 것도 제거하고, 오직 예수님 말씀만 따라가며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하였는데,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그 명령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명령을 따라 갈 때에 우상을 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며, 따라가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고 계속 앞만 보고 예수님을 따라가야만 영의 생명이 살고, 날마다 자라나며 점점 더 풍성해집니다. 재물을 주의 명령대로 사용하면 하늘나라의 보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상도 바로 사용하면 보화가 됩니다. 우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마음으로 다 내어놓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용하면 하늘나라의 보화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겠습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장롱 안에 있는 금을 다 내어다가 국가에서 그것을 외상으로 사가지고 외국에 팔아 달러를 수입하여 나라의 어려운 상황을 구하고자 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것 참 좋은 일 같습니다. 장롱 속 금반지를 다 가져다가 나라를 구하는 일에 쓰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도 동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 국가에 저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있는 우상의 요소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려고 내어놓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관원이 큰 부자이기 때문에 심히 근심하면서 돌아갔습니다. 참 안 됐습니다. 예수님이 영생의 말씀을 해주셨는데 재물을 못 버리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을 10년, 30년, 50년을 따라 다녔어도 우상을 버리지 못하고 따라가는 사람은 심히 근심하면서 돌아갈 날이 옵니다. 껍데기만 따라 다녔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영생의 길을 날마다 걸어가야 하겠는데 첫째는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바리새교인도 상한 심령, 세리도 상한 심령, 관원도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신데 속을 보면 다 상한 심령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라는 말씀입니다. 낮추고 하늘나라와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팔아서 주의 말씀대로 바로 사용을 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