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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9일 일요일

에베소서 4:13-32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법.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는 법
에베소서 4:13-32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으므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17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25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28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13 우리는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고, 온전한 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4:14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사람들의 속임수, 곧 거짓된 간계를 위한 술책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는 어린아이가 되지 말고, 

4:15 오히려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함으로 모든 일에 그분에게까지 자라나야 한다. 그분은머리시니, 곧그리스도이시다. 

4:16 온 몸은 그리스도께 속해 있으며,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아 함께 연결되고 결합된다. 각 지체가 자기의 분량대로 역사함을 따라 몸이 자라나며, 사랑 안에서 자신을 세워 간다. 

4:17 그러므로 내가 주님 안에서 이것을 말하며 당부한다. 너희는 이방인들이 그 마음의 허망함 가운데 행하는 것처럼 더 이상 그렇게 행하지 마라. 

4:18 그들의 지각은 어두워져 있으며, 그들속에 있는 무지와 완고함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4:19 그들은 감각 없는 자들이 되어 자신들을 방탕에 내어 줌으로 정욕 가운데서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한다. 

4:20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와 같이 배우지 않았다. 

4:21 너희는 참으로 진리가 예수님 안에 있는 것같이 그분에 대해 듣고 또한 그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으니, 

4:22 너희가 거짓된 욕망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라 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4:23 너희 마음에 영으로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어라. 

4:25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 각자 자기의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여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4:26 화를 내어도 죄를 짓지 마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4: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마라. 

4:28 도둑질하는 자는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고, 도리어 빈곤한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자신의 손으로 선한 일을 하여 수고하도록 하여라. 

4:29 더러운 말은 어떤 것도 너희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하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필요한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하여라. 

4:30 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시게 하지 마라. 너희가 성령 안에서 구속의 날까지 인 치심을 받았으니 

4:31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고함치는 것과 욕설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라. 

4:32 서로 친절하고 인자하게 대하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여라.


1. 사람의 궤술에 빠져 요동하지 말라

어린아이와 같이 거짓 유혹에 요동하지 말라

본문 13-14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요동하는 것은 어린아이와 같은 것입니다. 14절에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라고 하였는데, 요동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거기에 요동하고, 또 저 사람이 저렇게 말하면 거기에 요동하고, 거짓말에 요동하고, 또 추측으로 한 말에 요동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믿는 일이 되지 않습니다. 남이 거짓말로, 간사하게 말을 전할 때에 요동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목사님이 너를 미워한다, 너를 지목해서 설교했다, 너를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켰다, 너 그런 죄 안 지었는데 왜 목사가 자꾸 너 왜 그런 죄 지었다고 하느냐”는 말로 교인들은 교인들끼리 요동시킵니다. 은혜 못 받게 하려고 요동시킵니다. ‘너보고 지적 설교했다’고 하는데, 한 사람 보고 설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강단에서 성경 원리 원칙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씀이지, 왜 한 사람 보고 지적하여 설교하겠느냐 말입니다. 그런 간사한 유혹에 요동되지 말고, 돌아가는 말에 요동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동되면 안 됩니다. ‘그 목사가 무엇이 틀렸다, 무엇이 틀렸다’ 해놓으면 알아보지도 않고 목사가 틀렸다고 같이 요동된다는 말입니다. 요동되면 안 됩니다. 사실인가 아닌가 알아봐야 됩니다. 사실이 아니면 마귀에게 속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사실이라 하면 목사가 잘못한 것을 고치면 되는 것입니다. 고치면 되는 것이고, 사실이 아닌 돌아가는 말에 요동이 되어 목사 틀렸다고 비방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그건 자기도 손해고, 하나님의 일도 손해입니다. 

우리는 무엇 하는 것이 원 목적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 원래 목적입니다. 여러 직분이 합하여 서로 봉사해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 우리의 목적입니다. 

이단의 유혹에 요동되지 말라

여기의 에베소 교회에서 어린아이에 대한 증거가 무엇이라 그랬습니까? 본문 14절 읽어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는 이것입니다. 너희가 어린아이가 되지 않아야 되겠는데 요동하는 걸 보니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뭘 보니까 어린아이입니까?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는 것을 보니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이단에 요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교회가 박태선파가 나와서 한마디 하니까 요동되고, 구원파가 한 마디 하니까 거기에 또 요동되고, 또 10월29일 시한부 종말론자가 나오니까 거기에 또 요동됩니다. 또한 목사들도 요동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락방 운동이 나오니까 요동되고, 하여간 뭘 하나 나오면 요동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박태선 운동 처음 일어날 때에 어떤 교회는 절반 이상이 거기에 갔습니까. 아예 박태선 파로 가기도 했고, 목사들도 수십 명 박태선 주석단에 올라가서 박수치며 열광했는데, 요새는 또 빈야드 운동이 나오자 또 요동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목사들이 빈야드 운동에 많이 가담했다고 하는데, 빈야드 운동은 마귀역사입니다. 마귀역사도 분별 못하고 거기에 많이 요동됐습니다. 또 사흘 동안에 사람을 뒤집어 놓는다는 뜨레디아스(Tres Dias) 운동이 있는데, 그것은 스페인 말인데, 사흘 동안에 해결 보는 것입니다. 사흘만 거기 갔다 오면 뒤집어지고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흘이면 변하여 새사람이 된다는데 그것 할 만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저더러 이 목사님도 거기 가서 배우라는데, 이게 뭐 철이 없기에 한정이 없지, 아니 어떻게 영적운동이 사흘 만에 되겠느냐는 말입니다. 사흘에 무슨 영이 자라나겠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어떻게 일시적으로 그 의식을 돌려서 어떻게 좀 새로운 길을 걷게 할지는 몰라도, 그건 영적운동은 아닙니다. 영적운동이 무슨 사흘에 되겠습니까? 이것은 레마 선교회의 이명범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멕시코에서부터 시작되어서, 미국으로, 그리고 한국으로 오고, 이젠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동요되고 있습니다. 아마 여기도 거기 갔다 온 사람 혹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려면 가라고 예수님이 그러시지 않았습니까? 가려면 가는데, 몰래 가지 말고 아예 솔직하게 “나는 뜨레디아스 갑니다”라고 선언하고 가십시오.

요동하는 자와 같이 의심하지 말라

믿음에 굳게 서서 별소리 다 들려도 동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또 충성되이 받들어 나가고 진리를 세워나가야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얼마 안가면 이리 흔들, 저리 흔들하며 흔들리니까 야고보서 1장에 보면, ‘의심하는 자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아무것도 못 얻는다’고 했습니다. 동요가 되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안 됩니다. 게다가 남에게 손해만 주는 것입니다. 

왜 손해를 줍니까?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왜 손해를 줍니까? 자기가 싫으면 자기 혼자 그만두면 될 것을 남에게 왜 손해를 주느냐는 말입니다. 구원운동에 손해주면 저주 받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소자 하나를 범죄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했고, 노아의 작은 아들 함이 아버지가 술 먹고 벌거벗고 누운 것 폭로해서 저주 받지 않았습니까? 왜 저주 받을 줄 모르고 남을 요동시켜서 구원 운동에 손해 줍니까? 구원 운동에 손해 주는 자는 반
드시 저주가 옵니다. 성경대로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틀림없지 않습니까? 풍조에 요동되지 않는 자, 간사한 유혹에 빠져서 요동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야 자라날 수 있습니다.

2.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라나라고 했습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점점 자라나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나라 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라나야 됩니다. 중생한 영이 자라나야 됩니다. 자라나지 아니하고 그냥 어린아이대로 있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자라나서 한 살짜리가 두 살 되고 세 살, 네 살 이렇게 나이 먹음에 따라서 아이가 기어 다니다가, 그 다음에 일어서다가 또 발자국을 떼다가, 그 다음에 천천히 걸어가다가 그 다음에 뛰어가고, 힘도 점점 세져야 되고, 자라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우리 영의 사람들도 점점 자라나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자라나는 도를 깨달으라

교인들에게 자라나는 도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회가 대부분입니다. 자라나는 것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라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만 믿으면 된다”며 예수 믿고 천당 가는데 까지만 가르치고, 그 이상 자라나는 것을 안 가르칩니다.
자라나는 도리를 배운 사람도 자라나야 되는데, 자라나지 못하고 아직도 어린아이로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때가 오래므로 네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될 터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그랬습니다. 믿는 때가 오래고, 진리를 배운 때가 오래인데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장성한 자가 되지 못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단단한 식물로 먹지 못하고 너희는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신령한 성도에게 하는 것 같이 말할 수 없다고 하면서,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육에 속한 자요 어린아이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인 증거는 무엇입니까?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시기와 분쟁하는 것을 보면 어린아이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

그 다음에 또 어떻게 해야 자라납니까? 본문 15절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참된 것을 해야 자라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난다고 했습니다. ‘사랑 안’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안, 믿음 안을 말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에서 참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말씀대로 하면 자라납니다. 입술로만 한다고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라나라고 했습니다. 마귀의 역사를 고쳐야만 자라납니다.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야 자나랍니다.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누가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으로는 자라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것을 행하여 자라나는 것입니다. 참된 것을 하고 선한 것을 하여 많이 자라라나
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지내다가 막힌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참된 것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뭘 해야 자라납니까? 사랑 안에서 믿음 안에서 영적 신앙으로 참된 것을 해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또, 참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참된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만 자라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리이까?”하고 물으니까 모든 사람 앞에서 세례요한이 뭐라 그랬습니까?
누가복음 3장 10-14절에,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안에서 참된 것이라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주는 것이고,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않는 것이며,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지 못하던 사람은 족한 줄로 아는 것이 참된 것을 하는 것입니다. 

참된 것, 즉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고 했는데, 십일조 못하는 사람은 그것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다른 것은 잘하지만 그 십일조에서 막히면, 그 막힌 것 때문에 못 자라납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에 예배에 안 오고 놀러 가는데, 주일 잘 못 지키면 못 자라납니다. 아침에 예배 한 시간 보고는 놀러 가는 것과 같은 신앙으로는 못 자라납니다. 남을 비방하고 원망하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 해야 참된 것을 하는 겁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만날 비방하고 원망만 하
다가는 마귀 종노릇이나 하고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렇게 망하고 그만 두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비방하고 원망하는 것입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해야 자라나는 것입니다. 연보해서 하나님 일하라 하실때, 연보해야 합니다. 연보 안하는 것은 참된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 하실 때에는 물질을 아낌없이 바치고 힘써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을 잘 해나가는 것이 참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라납니다. 교인들이 예배당 짓기 위해 연보하고 힘쓰면 자라납니다. 우리가 기도원 짓기 위해 연보 많이 했는데 그러면서 많이 자라났습니다. 그렇게 해야 자라납니다. 안하면 안 자라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 나가라

본문 16절에,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것이 원 목적입니다. 여러 직분들의 목적도 그리스도의 몸 세워나가려고 있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세워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조금이라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개척교회가 합해져서 교단을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좀 더 크게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 세워나가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직분은 명예 영광 직이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는 직분이 아닙니다. 봉사의 직무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워나가는 일에 다 희생하고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허망한 우상을 버리라

본문 17-18절에,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려야 자라납니다. 옛사람은 ‘그 마음에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그랬는데, 마음의 허망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상입니다. 이방 사람들이 허망한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까? 우상을 버려야만 자라날 수 있습니다. 우상이 있으면 못 자라납니다. 우상이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겠습니까? 우상을 섬기는데 어떻게 하나님과 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에게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지배받는 것, 하나님보다 더 섬기는 것,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귀히 여기고 따라가고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 사랑하면 사람이 우상입니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돈을 의지하고 살려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돈을 따라가면 돈이 우상입니다. 또 세상 명예 영광 따라가면 그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 지배보다 더 지배받는 것이 우상입니다. 말씀보다 더 지배받고 따라가는 것이 다 우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시무하는 교회가 우상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성경보다 하나님보다 더 크게 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목숨이 우상 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목
숨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습니다. 죽인다고 하면 뭐든지 다 합니다. 자기 자신이 우상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척교회 하는 것이 우상 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개척교회 하는 걸 더 크게 여깁니다. 그런 게 우상입니다. 

말씀대로 하려면 안 가야 하는 곳에 자기 욕심대로 가서 그것이 우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 생각, 제 뜻, 제 주장이 우상 된 사람도 있습니다. 옛날을 보면 우상이 가득해 있었는데, 요새도 보면 우상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모든 사람들 속에 우상이 가득합니다. 우상 때문에 일이 안 됩니다. 우상을 버려야 믿음이 자라납니다.

온유하라

본문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는데, 마음이 굳어지면 생명에서 떠납니다. “굳어짐”이라고 있는데, 간경화 같이 굳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낫지를 못합니다. 온유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완고하고 고집 부리는 굳어진 자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기가 깨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온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와서 온유하고 겸손할 때에 생명이 그 속에 있습니다. 감동이 됩니다. 그래야 자라납니다. 

방탕하지 말라

본문 19절에,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방탕하는 생활을 하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오늘날은 향락주의의 시대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고, 방탕하는 것을 더 사랑하며, 이 시대가 노아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되었습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교역자 수양회를 한다고 임마누엘 기도원을 왔는데, 올 때에 장기판 40개를 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한 주간 모여서 장기만 두다가 오려는 모양입니다. 교회에다가는 수양회 간다고 돈 받아다가 와서는 노는 것입니다. 어떤 교단에서는 교역자 수양회 한다고 개를 몇 마리 아예 잡아 간다고 합니다. 개고기를 나누어 먹고 오나봅니다. 목매어 죽인 것은 먹지 말라고 했는데, 보통 개를 목매어 죽이지 않습니까? 어떤 곳에서는 교역자 수양회 한다고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하고, 설악산 호텔에 묵었다가 오기도 하는데, 그렇게 가면 놀다가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 방탕입니다. 호텔에 가서 무슨 교역자수양회가 되겠습니까? 교인들에게는 기도하러 간다고 해놓고는 모여서 기도 안하고 놀고 방탕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연보한 것을 그렇게 쓰면 속이 편안한가요?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자유방종, 방탕하면 못 자라납니다. 못 자라나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을 모시라

그리고 욕심이 있으면 못 자라납니다. 욕심은 마귀에게 속한 것인데, 마귀의 특징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 둘째는 거짓, 셋째는 욕심입니다. 마귀는 교만, 거짓, 욕심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만하면 벌써 마귀에게 붙잡힌 자이고, 거짓말하고 거짓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마귀의 종이고, 욕심을 품고 나가면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을 빼버려야 합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 믿으면서도 욕심 차리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예수 믿는 것이겠습니까? 예수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치라는 말은, 욕심 채우려고 욕심대로 다니는 것을 먼저 고치라는 말입니다. 

욕심으로 하지 마십시오. 욕심을 다 빼버려야 빈 마음이 됩니다. 빈마음이 되어야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계십니다. 욕심과 예수님하고 같이 계실 수가 없습니다. 욕심은 마귀의 것인데, 마귀의 것과 예수님과 같이 있을 수 있습니까? 마귀에게 속한 욕심을 빼버려야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같이 계십니다. 변하여 새사람이 됩니다.
욕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모시려고 하는 것은, 두 가지 욕심이 있는 것입니다. 욕심하나 있고, 예수님 모시려는 욕심이 또 있는 것입니다. 욕심을 마음에 두고는 “주여 오시옵소서. 주여 오시옵소서”하면 예수님이 들어오십니까? 욕심을 그대로 두고 예수님을 자꾸 오시라고 하면 오시겠습니까? 예수님 대신에 마귀가 쏙 들어옵니다. 마귀 하나가 더 옵니다. 자꾸 오라하면 마귀가 더 들어와서 결국 일곱 마귀가 됩니다. 

욕심 안 버리고 예수님을 오시라하면 예수님이 오시지 않습니다. 욕심가지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그런 기도는 안 들어주십니다. 야고보서 4장 2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했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도 안 주십니다. 너희가 무엇이나 구하는 것은 좋은데, 욕심으로 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께서 안 주십니다.
예배당도 욕심으로 지으려 말고 하나님께서 짓게 해주시는 대로 지어야 합니다. 교회일도 욕심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저 길 열어 주시는 대로 해야 합니다.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으로 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시겠습니까? 진리대로 원리원칙대로, 하나님보시기에 합당하게, 의롭게 해야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욕심으로 하는 것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고 했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성령의 감동이 오게 되고, 예수님이 임하시게 되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고, 자라나게 됩니다.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

본문 20-22절에,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냄새나는 것, 썩어져가는 것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을 다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3절에,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고 했습니다. 음행이 옛사람의 썩어져가는 것입니다. 온갖 더러운 행동, 말이 썩어져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탐욕도 옛사람인데 이것을 버리지 않으면 못 자라납니다. 썩어져가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생활을 좇는 생활, 구습을 좇는 생활을 다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욕심을 따라 사는 생활은 일시적으로는 좋은 것 같아도 조금 있으면 다 썩어지고, 없어지고, 망합니다.

로마서 13:13에는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하는 것,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들이 옛사람입니다. 이것들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방탕하는 마음이나 술 취하는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니까 술 마시면 안 됩니다. 또 음란과 호색이 가득한 이 세상에서 음란하지 말고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호색은 이성을 탐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또 고린도후서 12:20에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치 아니함을 인하여 근심할까 두려워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다툼,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중상 모략하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 등 이런 죄가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다 물리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옛사람으로, 이것을 다 버려야 합니다. 또 어지러움과 음란과 호색함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썩어져 가는 옛사람입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로마서 13:12에는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새사람을 입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는데,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성도가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의에 서야 합니다. 또 성도 간에도 의를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진실하여야 합니다. 한번 말한 것은 변치 않아야 합니다. 또 거룩한 곳으로 날마다 나가야 합니다.
거룩은 죄를 날마다 떠나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 떠나고, 진실해지고, 의로와지는 것이 새 사람입니다.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

로마서 13:12-14에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고”란 죄악의 일을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 사람을 입으려면 빛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 갑옷이라고 하였는데, 갑옷은 싸울 때에 입고 나가는 옷입니다. 이것은 싸우는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으려면 옛 사람을 벗어버리려고 싸우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옛 사람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 싸우고, 새 사람을 입기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언제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 방탕, 술 취함, 쟁투, 시기 등을 싸워서 내버려야 합니다. 그
리고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신(迎新)입니다. 즉 새로운 것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으로 옷을 입어,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면 순종했을 것이다, 예수님이면 절대 복종했을 것이다”하며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야 합니다. 마귀를 닮아가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예수님과 같은 말을 하고,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품고, 예수님이 행하신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어서 의를 닮아가고, 진실을 닮아가고, 거룩을 닮아가야 합니다. 이전보다 예수님을 좀더 닮아가야 합니다. 이전에 예수님을 닮아간 것보다 앞으로 예수님을 더 많이 닮아가야 합니다. 결국, ‘얼마나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을 많이 닮아갔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또 썩어져가는 옛 사람을 얼마나 벗어 버렸나?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옛 사람을 벗어 버리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또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닮아가려고 결심해야 합니다. 갑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싸우는 군대의 정신을 가지고 나가서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귀와 싸워서 마귀를 이기고, 옛 사람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이겨야 합니다. 아는 것이 진짜가 아니고 벗어 버리는 것이 진짜입니다.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종살이 하시다가,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세월이 다 가기 전에 옛 사람을 다 내어 버려야 합니다. 썩어져 가는 것을 그냥 두면 썩어지므로, 썩어져 가는 것을 다 베어 내버려야 합니다. 한 쪽에 썩어져 가는 것을 그냥 두면 다 썩어지고 맙니다. 그것을 잘라 내버려야 합니다. 암 걸린 사람도 그 부분을 잘라 내버리지 않습니까? 옛 사람은 썩어져 가는 것이므로 잘라 내버려야 합니다.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의, 진리, 거룩, 빛의 갑옷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싸우면서 입어
나가야 합니다. 의를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의를 입어 나가고, 진실을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진실을 입어 나가고, 거룩을 입어 나가려고 싸우면서 거룩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듣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말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싸우면서 입어 나가야 합니다. 즉 싸우면서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희생 하는 것, 양보하는 것, 낮아지는 것, 봉사하는 것 등을 배워 나가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배워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 버리지 않으면 여러 해 신앙 생활하여도 진보가 없습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신앙이어야 진보가 있습니다. 즉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입으면 다른 사람이 볼 때에 “아, 저 사람이 예수인가보다”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전쟁터에 나갔다가 잡혀 가게 되었으므로 신하가 왕에게 자기의 옷과 바꿔 입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왕이 신하의 옷을 입고, 신하는 왕의 옷을 입고 나갔다가 왕의 옷을 입은 신하가 적에게 잡혀서 죽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예수인줄 알고 나갑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생겼는가 보다, 예수 믿는 것이 좋긴 좋다, 나도 예수 믿어야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옷을 입고 나가면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옷을 다 입었습니까? 

오늘부터 싸우는 정신을 가지고,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완전히 다 벗어 버리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야 합니다. 의를 이루지 못할 때에 의를 이루고, 진실을 이루지 못할 때에 진실을 이루고, 거룩을 이루지 못할 때에 거룩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참으로 송구영신한 사람이 됩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고 예수님의 옷을 입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심령으로 새롭게 되라

본문 23절에,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라고 했는데,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영적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이고,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하여 새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가운데 심령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영적 세계를 발견하고, 중생한 영이 일어나 새 힘을 얻고,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마음과 몸으로 순종해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심령이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심령이 새롭게 되면 그 속에서 감사가 나오고, 기쁨이 나오고, 세계가 새로워집니다. 자기 심령이 새로워지니까 다 귀하고 아름답고 감사하게 됩니다. 심령이 새로워져서 새로운 심령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살지 말고, 옛사람으로 살지 말고, 영적 세계에서 영으로 말미암아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새롭게 되어야만 자라납니다. 

새 사람을 입으라

본문 24절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새 사람을 입어야 자라납니다. 새사람은, 의의 사람, 진리의 사람, 거룩의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모든 것을 의롭게 해야 합니다. 의가 아니면 천하를 주어도 안 바꿔야 하고, 의가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3:15절에, “우리가 이와 같이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것도 의를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전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70인이 사방으로 나가서 전도하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 하면서 아주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요새 중국 선교보고를 들으면 이 ‘70인 보고’와 비슷합니다. 가서 몇 주간 가르치고 오면 큰 역사가 나타났다고 보고합니다. 다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하루 9시간 10시간씩 가르치는데, 얼마나 말씀을 사모하는지 모른답니다. 중국선교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이익 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하나님의 의를 이루느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에 1억을 내고 예배당을 사려고 하는데, 1억 연보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게 차려놓고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모스크바교회는 한 달에 얼마씩 계속 돈이 들어갑니다. 통역비, 목사 생활비, 건물비, 여러가지 비용으로 한국 돈 한 달에 백오십 만원씩 들어갑니다. 그것도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알마타에 교회를 지으려고 하는데, 십만불을 연보해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십만 불이면 요즘 한국 돈으로 팔천만 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의 이익을 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돈을 이렇게 쓰면 참으로 가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데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 기도원 짓는 것도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새사람입니다. 

진리는 진실인데, 진실한 사람이어야만 자라납니다. 거룩은 구별된 것인데, 구별된 생활을 해야만 자라납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는 지식에까지 자라나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지혜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말씀을 많이 배워서 지식에까지 자라나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3. 덕을 세우라

거짓을 버리고 진실하라

본문 25절에,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25절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거짓은 마귀에게 속했는데, 거짓을 버리고 진실해야 합니다. 마음과, 말과 행동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말 한번 하면 이익이 많이 온다고 해도,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진실하게 하면 손해를 본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거짓말 한마디 하면 한 1억을 받는다고 합시다. 거짓말 안하고 진실하면 한 10만원 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한 마디만 하면 1억인데, 거짓말 한마디 하고 1억 버는 게 괜찮습니까? 괜찮긴 괜찮은데 마귀가 괜찮은 것입니다. 마귀의 일을 해준 것입니다. 1억하고 하나님 하고 바꾼 것입니다. 진실하게 했으면 괜찮았을
뻔 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일을 하면 하나님이 1억만 주시겠습니까? 필요하다면 몇 백억도 더 주실 텐데, 거짓말해서 1억 받아봤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게 아닙니다. 마귀만 좋아합니다. 진실하게 해야 합니다.

성경 어기면서 아무리 유익이 많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성경 어기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진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의 진실, 말의 진실, 행위의 진실입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자의 편입니다. 성경 지키는 자의 편입니다. 손해를 봐도 성경 지키십시오.

분내지 말고, 분을 품지 말라

본문 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분을 안 내야 합니다. 분을 안 내야 하지만, 사람이 실수해서 분을 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로 분을 냈다 해도 죄를 짓는 데 까지는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분이 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김에 무얼 하면 안 됩니다. 분이 나서 무얼 하면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됩니다. 분김에 가정 깨뜨리는 사람도 있고, 분김에 바람피우는 사람도 있고, 분김에 사람 죽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는 데 까지는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분이 나왔다고 해도, 그날 해지기 전에 다 풀고 회개하고 밤을 맞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일 아침에는 새 사람이 됩니다. 분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분을 품지 않아야 하고, 분을 내어도 해가 지기 전에 그 분을 다 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어야 합니다. 

분을 내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원망하려면 한정이 없습니다. 요셉이 원망하려면 얼마든지 원망할 수 있습니다. 형들이 팔아먹고, 보디발의 아내가 음행하자고 해 놓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고, 술 관원이 약속대로 돌봐주지 않았을 때에 얼마든지 분을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분 내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팔아먹은 형에게 “내가 이곳에 오게 하신 이는 당신들이 아니고 하나님이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형들에 대해 앙심을 품고 만나면 복수하려고 했다면, 요셉이 총리가 못됩니다. 꿈도 해석 못합니다. 그저 감옥에서 세월만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분을 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일이 되고, 허락 안하시면 일이 안 되는데, 안 되는 것에 대하여 분할 것이 없습니다. 겉옷을 빼앗겠다고 나오면 하나님께서 새로이 의복 줄 것을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오른 뺨을 맞아 분하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내가 맞아야 할 줄을 아시고 맞게 하셨다고 알고, 거기서 왼뺨까지 맞아도 ‘내가 믿음만 지키면 된다.’ 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고 나가야 합니다. 

성결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만 잘 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그 이상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용서해주고 억울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께서 해주실 것을 믿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해주고, 분을품지 말고 나가야만 자기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기 믿음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께서 거기에 함께 계셔 주십니다. 

분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려 하면 기도도 안 됩니다. 벌써 하나님께서 떠난 것입니다. 해가 지기 전에 분을 풀라 하십니다. 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집니다. 분이 처음에는 콩알만 합니다. 그런데 하룻밤 지나면 도토리 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지나면 밤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자면 사과 알 만해집니다. 또 하룻밤 자면 호박 만해집니다. 그 다음에 얼마 지나면 큰 항아리 만해집니다. 나중에는 큰 독 만해집니다. 그러다가 결국 자기가 거기에 쏙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쏙 빠져 죽게 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그것을 풀지 못하고 나가면, 분에서 분, 분에서 분, 이렇게 머리끝까지 분을 품고 나가다가 살인도 하고 못할 짓이 없습니다. 여자들이 남편 잡아 죽이는 일도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게 분을 풀지 못하고 나가다가 그러는 것입니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한눈 파는 남편 바로 잡아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이기지 마귀가 이기겠느냐!” 하면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고 잘 해주면 그 다음에는 돌아올 날이 옵니다. 본처가 잘해주겠는가, 첩이 잘해주겠는가 왔다 갔다 하다가, 남자들이 아이 같아서 잘 해주는 대로 옵니다. 그러니까 분을 품지 마십시오.

자기에게 없어진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기에 없어진 줄로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분을 품지 말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가십시오.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러면 자기가 살고,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집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본문 28절에,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 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했는데, 에베소 교인들이 도적질 많이 해먹은 모양입니다. 교인들이 무슨 도적질을 해먹었을까? 십일조 도적질을 할 가능성이 있는데, 말라기에 보면 십일조 안 드리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해먹은 거라고 했습니다. 도적질 하는 사람은 다시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 도적’이 있습니다. 주일은 주님의 날인데,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은 주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주일에 자기 볼 장 보러 다니고, 결혼식 보러 다니고, 놀러 다니는 것은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서 살겠습니까?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못살겠는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해서 살 수 있겠습니까? 도적질하는 것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도 도적질인데, 남의 물건을 얻어오고 안 돌려준 것은 도적질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는 것입니다. 또한 마땅히 남에게 줄 것을 안 주는 것도 도적질입니다. 십일조 이외에도 하나님께 마땅히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것 안한 것도 도적질입니다. 김현봉 목사님 말씀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질을 준 목적은, 첫째는 우리가 먹고 살라고 주신 것과, 둘째는 그것 가지고 믿는 일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라고 주신 것이지 쌓아놓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쌓아놓는 것은 하나님
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

본문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 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악담이나 음담패설 같은 말을 하면 자신이 더러워지고 교회의 덕을 해치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 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농담하지 말며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도가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본문 30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앞에서 기록된 죄, 즉 거짓말 하는 것, 분내는 것, 도적질 하는 것, 더러운 말 하는 것 등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손해가 날뿐 아니라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속의 날까지’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즉, 천국 가는 날까지라는 뜻입니다. ‘인치심’은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이기 때문에 성령의 인치심을 받은 자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중심은 십자가 구속)을 믿게 한 것이 인친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 말씀이 우리 심령 속에 인같이 박혀 지워지거나 도말할 수 없도록 하였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죽여도 이 인 박힌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성도에게 불멸의 인을 쳐 놓고, 구속의 날까지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 완성시키고자 역사하십니다.

악의를 버리라

본문 31절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 속에 악독이 있습니다. 그 악독이 노함으로 노함은 분내는 것으로 분내는 것은 떠드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훼방하는 것은 남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모욕적인 언사입니다.

‘악의’는 인간의 악한 의지로서, 앞에 말한 모든 악이 악의에서 나옵니다. 악의는 남을 해하려 하는 마음입니다. 성도가 믿는 일을 하려면 이 악의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용서하라

본문 32절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인자하게 하며”라고 하였는데 친절과 호의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며”는 성도가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손해를 주는 악한 사람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터이니 얼마나 불쌍한 자들입니까?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