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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6일 수요일

호세아 1:1-11 음란한 아내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음란한 아내
호세아 1:1-11

1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3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4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5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6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7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8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10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11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1. 호세아가 소명(召命)을 받음

호세아서는 다니엘서 다음에 있는데, 구약의 마지막 부분에 있고 열두 소선지 가운데 첫 번째에 있습니다. ‘호세아’라는 말은 구원이라는 뜻인데, 호세아 선지자는 주전 8C 중엽에 활동하였습니다. 주전 800년경에 함께 활동한 선지자로는 이사야, 아모스, 미가 등이 있습니다. 호세아는 이들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나 미가는 호세아가 예언한 때에 아직 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왕 제2세 때에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을 하였는데, 60년에서 65년간 활동했다고 합니다. 지파로 말하면 아셀지파 사람이고, 벧세메스에서 출생한 사람입니다.

본문 1절에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는 유다 웃시야 왕 때로부터 시작해서 요담 왕, 아하스 왕, 히스기야 왕 때에 예언을 하였고, 북쪽 이스라엘 나라로 보면 여로보암 왕 2세 때에 예언을 하였습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비로소 호세아에게 임하였는데,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호세아가 실제로 음란한 아내를 취하였는지에 대한 이견들이 많습니다.

실제로는 음란한 아내를 취하지 않고 비유로 말했을 것이라는 주장과 실제 음란한 아내를 두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만일 실제로 음란한 아내를 취했으면 그 당시에 선지자 노릇을 어떻게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본문에 자녀를 셋이나 낳았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음란한 아내를 데리고 산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갖다가 이렇게 말했다고 하면 성경을 그대로 믿지 못하는 것이 되므로 실제로 호세아가 그런 아내를 취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음란한 아내’라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에 ‘에쉐트 제누님’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음란한 성질이 있는 자’라고 합니다. 실제로 음란을 하고 돌아다니는 부인이 아니고 음란한 성질이 있는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처녀이긴 처녀인데 음란한 성질이 많이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삼았다는 해석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그런 여자를 취해서 아내로 삼으라고 하셨습니까?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선지자의 행동을 통해서 보여주려고 음란한 성질이 있는 여자를 취해서 아내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2. 호세아가 음란한 아내를 취함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호세아

본문 3절에 “이에 저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취하였더니 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라고 하였습니다. 호세아가 실제로 음란한 성질이 있는 고멜이라는 여자를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고멜’이라는 말에는 ‘부패’라는 뜻이 있는데,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이러한 여자를 아내로 삼은 것입니다. 명예나 자신의 위신을 생각하면 그런 여자를 취할 수 없습니다. 본인 마음으로도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호세아는 자신의 명예나 위신을 생각하지 않고 고멜을 자기 아내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하고 평안하고 행복하며 출세하는 결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결혼하는 것이 원리 원칙인 것입니다. 고멜과 결혼하면 자신도 낮아지고 다른 사람들이 좋지 않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그대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가 고멜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아내를 취하게 하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호세아에게 왜 고멜을 아내로 취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남편이고 이스라엘은 아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아내된 이스라엘에게 음란한 것을 나도 데리고 산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신 것입니다. 이렇게 호세아 선지자가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렇게 참으시는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못했는가’하며 깨닫게 해주시려고 호세아 선지자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또 음란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고 회개시키시려고 호세아를 이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호세아는 실제로 이것을 보여주려고 실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말로 하나님의 명령을 전하기도 하고, 이렇게 실천함으로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리 속에 음란한 마음, 우상을 섬기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가증하게 보시겠습니까?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너희들도 똑같이 이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우리에 대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바로 서라는 것입니다. 여기 음란하지 않은 사람 손 한 번 들어보겠습니까? 음란을 여러 가지로 해석했는데, 거기에 하나도 안 걸리는 사람 손 들어보십시오. 왜 안 듭니까? 전부 다 음란한 사람만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하나님을 떠나 마음이 세상에 나가 있는 것이 다 음란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실 만한 일입니까? 사실 오늘날의 우리도 다 그와 같은 자들입니다. 이것을 회개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 고멜을 취하여 아내로 삼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상이 된 음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음란한 여자와 같은 자들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세상과 벗된 것이 간음하는 여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벗된 생활은 하지 않는지, 또 실제 음란한 성질을 가지고 음란한 마음을 품고 다니지는 않는지 잘 살펴보고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6장 4절에 보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음행이 가득한 세대라는 뜻도 있고, 하나님을 떠난 세대라는 뜻도 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그것을 좋아하며 그것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영적 음란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하나님을 떠나 세상이나 다른 것을 의지하며 다른 것에 소망을 두고 살면 음란한 여자와 같은 성도가 됩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음란인데,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우상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에 음란한 이스라엘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우상 섬기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다 음란한 여자와 같은 자들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하나님보다 더 의뢰하는 것, 더 귀히 여기는 것, 하나님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이 되고, 사람을 더 사랑하면 사람이 우상이 되고, 자기의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목숨이 우상이 됩니다.
탐심이나 직장, 자기의 좋아하는 오락이나 사업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그것에 애착을 가지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까지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그것들이 전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은 영적으로 음란한 행동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녀가 우상이 되기도 하고, 자기 남편이나 아내가 우상이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기 목숨이 우상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겠느냐? 목숨을 가지겠느냐? 둘 가운데 하나를 내놓으라”고 질문할 때 목숨을 살리기 위해 말씀을 양보하면 목숨이 우상인 것입니다. 실제로 말씀을 양보하지 않으면 죽인다고 할 때에 “죽어도 나는 말씀을 지키겠습니다”하고 목숨을 내놓아야 우상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목숨을 더 아껴서 죽을까봐 그것만은 할 수 없다면서 말씀을 양보하고 신앙 양심을 양보하면, 자기의 목숨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의지하려고 하는 것, 하나님 이외에 소망을 두는 것은 전부 우상이고 음란입니다.

3. 자녀들의 출생과 작명(作名)

호세아의 맏아들 이스르엘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멜이 호세아를 통해서 맏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셨습니다. ‘이스르엘’은 사마리아 동북방 20마일 지점에 있는 조그마한 고을의 이름입니다. 10마일이 40리이니까 20마일이면 한 80리 정도의 거리인데, 이 이스르엘은 왕들의 별장이 있던 곳이라고 합니다. 또 이곳은 각종 죄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곳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곳도 여기이고, 예후를 통해서 이세벨을 죽이고 아합의 집을 심판한 곳도 이곳입니다. 이스르엘은 씨를 뿌린다는 뜻인데, 이 의미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의 맏아들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지으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신 하나님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나옵니다.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라고 하였는데, 열왕기하 10장 10-36절에 보면 예후를 통해 아합의 집을 심판하신 내용이 있습니다. 이스르엘에서 이세벨을 죽여, 이세벨의 피가 이스르엘에 있었고, 또 개들은 이세벨의 살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예후를 통해서 아합의 집을 심판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후가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데 있어서 잘못한 것이 있는데, 그 잘못한 피를 갚으신다는 뜻입니다. 예후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것까지는 잘하였는데, 그만 너무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하나님을 대행하는 데까지 순종하지 못하고, 적대심을 가지고 살기가 등등한 마음으로 이세벨을 죽인 것입니다. 결국 미워하는 마음으로 잔인한 생각을 가지고 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자기가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순종한 것이 잘못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명예 영광심, 자기 출세심은 하나님께서 예후의 집에 갚으신 것처럼 심판하십니다.

로마서 2장 21-22절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예후의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잘 전했지만 돌아가서는 신사의 물건을 도적질하며 간음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이것을 예후에게 갚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만인에게 공평합니다. 아합 집의 잘못된 것도 갚으시고 예후의 집의 잘못한 것도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후가 이스르엘에서 아합의 집을 다 죽이고 본인은 정작 70년 후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오래 있다 오는 것이 아니고 불과 70년 후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때가 종종 있는데, 심부름을 바로 했는지가 문제입니다.
여기서 바로 하지 않았으면 그것에 대한 심판을 하십니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한 것, 혈기로 한 것, 살기가 등등해서 한 것, 화풀이를 한 것, 원수 갚는 것 등은 나중에 반드시 심판 받을 죄인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잘못된 것을 자꾸 얘기하면 며느리는 나중에 자기는 안 그런다고 하다가,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면 더 한다고 합니다. 독재를 반대하던 사람이 더 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권세가 돌아오면 더 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또 총회나 노회의 독재는 반대 하지만 자기 교회에 가서는 더욱 독재를 하는 것입니다. 옳은 말을 하는 것은 좋은데, 그와 반대되는 길을 걸어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삼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만 하시고 그만 두시는 것이 아니고 꼭 이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후와 같이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사람도 예후와 같은 길을 걸으면 예후와 같은 심판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5절에 “그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력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입니다. 열왕기하 19장, 이사야 37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앗수르로 인해서 다 멸망하였습니다.

호세아의 둘째, 딸 로루하마

본문 6절에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멜이 또 잉태하여 딸을 낳아서 그 이름을 ‘로루하마’라고 지었는데, 로루하마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긍휼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딸의 이름을 이렇게 짓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지으라고 하시니까 이렇게 지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우상을 섬기고 행음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긍휼히 여기시겠습니까? 회개하고 음란한 마음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본 남편이 되는 하나님께로만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섬기며 하나님께만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여전히 음란한 행동과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의 긍휼을 받지 못하고 긍휼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이 되지 못하면 결과가 어떻겠습니까?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셋째, 아들 로암미

본문 7-9절에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저희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로루하마를 젖 뗀 후에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이름을 로암미라 하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셋째로 아들을 낳았는데, 작은 아들의 이름이 ‘로암미’라고 하였습니다. 로암미라는 의미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지으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지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너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는 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호세아로 하여금 아들
에게 이러한 이름을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맏아들은 ‘이스르엘’인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뜻이고, 둘째는 ‘로루하마’인데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며, 셋째는 ‘로암미’인데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할 때에 회개해야겠는데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내 백성이 아니고 너희 하나님이 아니며 너희와 상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렇게 하십니다. 처음에는 심판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고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긍휼을 끊으십니다.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끊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세 번째는 ‘너는 나와 상관이 없고 너는 내 백성이 아니며 나는 너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음행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점점 하나님의 긍휼이 떠나가고 은혜에서 떨어져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적 역사가 없어지고, 나중에 가서는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 데까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상관이 없으니까 내버리실 것 아닙니까? 회개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거역하고 나가면 마지막에는 버림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얻는 방법

제 고집대로 나가는 것이 우상인데, 사무엘상 15장 23절에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고집, 완고한 것이 우상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고 날마다 자기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회개하겠는가’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는 음란한 아내인 줄 알아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마음의 정조를 지켰는가? 영적 신앙의
정조를 지켰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이 떠나지 않았는가? 세상에 가 있지는 않는가? 육신의 생각으로 돌아서지 않았는가?’를 늘 생각해서 날마다 하나님을 떠났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마다 날마다 회개하고, 시간마다 회개하고, 사건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엎드릴 때마다 회개하며, 또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올 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잠이 안 올 때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할 기도 제목이 없다고 생각되거나 생각이 안 나면 그저 음란한 여자인 줄로 아십시오. 이런 사람은 마음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늘 회개하면서 기도하면 점점 온유한 마음이 생기고 상한 심령을 가지게 되며 겸손한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오셔서 ‘나는 네 하나님이다. 너는 내 백성이다.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해주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신앙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4. 구원 약속 실현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

본문 10절에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되어서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밤낮 우상을 섬기지만, 장차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측량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만큼 창성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5장 5절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은 그리
스도를 가리키는데,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사람이 하늘의 별과 같이 측량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셔서 그 약속을 반드시 실행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이스라엘이 음행한 여자이지만 아주 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 책망하시고 권고하시며, 또 징계하셔서 쫄딱 망하게도 만드십니다. 그러나 그 자손을 통해서라도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변치 않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우상을 섬기고 간음하며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다가다 망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자손들을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셔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게 해주신 것입니다. 죄를 지은 이스라엘 백성은 다 멸망시키셨지만 쓰러진 사람의 자손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만드셔서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이처럼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으면 쫄딱 망하지만 그 사람들이 망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실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의 자손, 또는 전도해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됩니다.

구원의 약속을 실현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해야 함

그래서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고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곳에서 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였는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방 나라에서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부르셔서 구원해내시는 것을 보고 ‘과연 하나님은 사신 하나님이시다’라며 고백하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 바른 신앙에 서는 사람,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는 사람을 통해서 참으로 사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십니다. ‘너희들이 섬기는 우상은 죽은 것이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라는 것을 만 백성에게 증거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두목을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만 의뢰하며 하나님과 영적인 신령한 교통을 하면서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는 사람을 통해서 ‘사신 하나님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세상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돈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의 수단,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자기의 지혜,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사신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말입니다. ‘믿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온 세상이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습니다’하는 신앙으로 나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은 능력의 신이시기 때문에 능력으로 건져주실 것을 믿습니다.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리고 활이나 전쟁으로 건져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만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실패가 없고 성취되지 않는 것 같으나 반드시 성취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