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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1일 토요일

창세기 2:1~25 에덴동산과 선악과 이병규 목사 설교집 계약신학

창세기 2:1-25 에덴동산과 선악과 이병규 목사 설교집 계약신학

1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2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4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5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6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7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
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12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14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15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6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18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20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
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2:1 하늘과 땅과 그 만물이 완성되었다. 

2:2 하나님께서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시니,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하시던 모든 일로부터 쉬셨다. 

2:3 하나님께서 그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 날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신 모든 일로부터 쉬셨기 때문이다. 

2:4 이것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 그것들이 창조되었을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다. 

2:5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 위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땅을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땅에는 아직 초목이 없었고 채소도 나오지 않았다. 

2:6 다만 안개가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 

2:7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호흡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 *생령 

2:8 여호와 하나님께서 동쪽의 에덴에 동산을 세우시고, 지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2:9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모든 나무가 땅에서 나게 하셨는데, 그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다. 

2:10 강이 에덴에서 나와 그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개의 근원이 되었으니, 

2: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인데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감돌았고 

2: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며 거기에는 수정과 호마노도 있었다. 

2: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인데 구스 온 땅을 감돌았고, 

2:14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그것은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였다. 

2:15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2:16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명령하시기를 "그 동산의 나무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자유롭게 네가 먹을 수 있으나, 

2:17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마라. 네가 거기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하셨다. 

2:18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 라고 하셨다. 

2:19 여호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모든 들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그것들을 무엇이라 일컫는지 보시려고 그에게 데려오시니, 아담이 그 생물을 일컫는 대로 모두 그것의 이름이 되었다. 

2:20 아담이 모든 가축과 하늘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없었다. 

2: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므로 그가 잠드니, 하나님께서 그의 갈빗대 중 하나를 뽑고 그 대신 살로 채우셨으며, 

2:22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서 뽑은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 데려오시니, 

2:23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불릴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2:24 그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2: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 안식일

육신의 안식과 영적 안식을 주신 날

본문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엿새 동안에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제 7일에는 안식 하셨고, 그 날을 사람에게 안식일로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하나님의 거룩한날이며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날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육신의 안식과 영적 안식을 주시는 날입니다. 안식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며, 안식하며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 날에 세상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일을 범하는 죄입니다(출 20:10). 안식일은 성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며, 하나님
께서 성도에게 신령한 은사를 주시는 날입니다. 성도는 이 날에 받은 은혜와 말씀을 가지고 한 주간 동안 믿음으로 살아나가야 합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로 변경됨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신약 시대에는 주일로 바뀌었습니다. 히브리서 7:18절에 “전에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하였고, 히브리서 4:7절에는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날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고 하였습니다. 안식일이 주일로 변경되었는데, 이 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성도들에게 안식을 주셨고, 성부께서는 주일에 계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계 1:10). 또 성령께서 주일에 강림하셨습니다(행 2:1-3). 그리고 초대 교회 때부터 사도들이 주일을 지켰습니다(행 20:7; 고전 16:2).

이사야 58:13-14절에는 안식일에 하여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는 자기 발을 금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세상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락을 행치 말아야 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식일에 해야 할 것은 안식일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존귀히 여겨야 합니다.
성도가 안식일을 지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높이시고,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하시고, 야곱의 업으로 기르십니다(사 58:14).


2. 인간 창조의 대략

본문 4-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경작할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온 지면을 적셨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심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먼저 창조되었습니다(1:27).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의 육신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갑니다(전 3:20).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라고 하였는데, 생기를 코에 불어 넣었다는 것은 사람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진리와 영감을 사람에게 불어 넣어서 영적 생명을 살려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시킨 것을 가리킵니다.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어서 생령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과 연결이 된 산 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끊어지면 영혼이 죽은 것이고, 하나님과 연결이 되면 그 영은 산 영이 됩니다.

요한복음 20:22절에 있는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호흡이 성령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진리와 성령으로 예수님과 성도를 연결시켜 영적 생명을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린도전서 15:45절에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라고 하였는데, 이말씀도 예수님께서 진리와 영감으로 성도들을 연결시켜 영을 살려 주어 산 영이 되게 하실 것을 말합니다.


3. 에덴동산을 창설하심

본문 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죄와 사망이 없는 동산입니다. 에덴동산은 이 지구상에 있었는데, 사람이 범죄 하여서 에덴동산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만드신 때에는 마귀가 타락하기 전입니다. 마귀는 천사인데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조하신 후에 타락하였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런데 천사가 교만해서 하나님과 같이 되겠다고 하다가 마귀가 된 것입니다. 미가엘 천사의 경우도 미가엘은 천사장이고 그 부대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도 가브리엘이 천사장이고 또 그 부대가 있습니다. 마귀도 대장은 마귀이고 그 부대가 있습니다. 귀신도 마귀의 일종입니다.

세 가지 종류의 나무

본문 9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셔서 얼마든지 나무 실과를 먹고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육식은 하지 않는 때입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종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1)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는 하나님이 주신 자연은총으로서 아무리 먹어도 영적 생명과는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나무가 많이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어 그 나무의 과실을 먹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이런 나무는 육신의 욕구만 만족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적당하게 먹어야지 욕심으로 지나치게 먹으면 병이 나고 사고가 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분량까지,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버리고 모든 것을 분수에 맞도록 해야 됩니다. 그 이상의 것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욕심은 죄인데, 욕심에서 사고가 나고, 하나님의 심판이 오고 그만 마귀의 올무에 걸려 들어가게 되니 욕심으로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것을 허락한 방법과 분량까지만 취하고 그 이상의 것을 취하려하면 죄가 됩니다.

밥도 하나님이 허락한 만큼 먹어야 됩니다. 아무데서나 먹지 말고, 먹으라고 한 곳에서 먹어야 합니다. 또 먹을 만큼만 먹어야 됩니다. 한 그릇 먹을 것을 두 그릇 먹으면 소화불량 걸립니다. 밥 많이 먹어서 병이 난다면 말이 됩니까? 한 그릇 먹을 사람은 한 그릇 먹고, 반 그릇 먹을 사람은 반 그릇 먹어야 됩니다. 분량대로만 먹어야 됩니다. 아무리 맛이 있고, 먹기에 좋고, 보기에 아름다운 음식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먹으면 병이 됩니다.


2) 생명나무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로 실제로 있었습니다.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영생합니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나무가 되십니다. 우리는 그 생명나무에 접붙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액을 받아 살면서 다달이 열 두 종류의 생명나무 열매를 맺혀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이십니다(요일 1:2).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요 10:28).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해서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습니다(3:23)


3)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이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입니다.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지시하신 금단의 명령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하면 죄 짓는 것입니다. 죽음이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금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만 하면 됩니다.
허락하신 것도 하나님의 법대로, 하라고 지시하신 분량대로, 또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장소에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 에덴동산이 유지가 됩니다.


선악과를 내신 목적

그러면 하나님이 왜 선악과를 내셨습니까?

1)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동산임을 알게 하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려고 내신 것입니다. 즉 선악과를 내신 목적은 선악과가
있음으로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동산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2)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살 수 있음을 알게 하심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복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받을 수 있고,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킴으로 그 영혼이 장성하게 되는데, 이것을 알게 하시려고 내신 것입니다. 또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살수 있는 동산임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하신 명령들이 있는데, 그 명령을 잘 지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구원 받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하나님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영적 세계에서 살려고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즐겁게
하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려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이 계명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잘 섬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해야 됩니다.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주일에 일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등의 계명을 잘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 결혼식에 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죄짓는 것입니다. 아무리 친척 결혼식이라고 해도 주일에 예식장에 가면 안 됩니다. 계명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복 주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과동행하는 것이 에덴동산 생활입니다.


3)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심

다른 나무들은 하나님이 허락해 주신 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기 위해서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늘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들이 선악과를 내신 목적인 동시에 십일조의 근원이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방으로 에워싼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다가도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보면 ‘이 과실은 하나님의 말씀에 먹지 말라고 하였다. 이 동산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을 안 지키면 죽는다’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라고 복으로 주신 것이지, 아담과 하와를 죽이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동산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 위해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하시려고 주신 것입니다. 선악과가 없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에덴동산이 하나님의 동산인줄도 모르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될 줄도 모르고 나가다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온전케 하시며, 장성케 하시려고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선악과는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복으로 주신 것이지 죽이려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즉 금단의 명령은 계명인데, 이것을 하나님이 은혜로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명령을 거역하면 영적 생명의 역사가 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계명을 삼가 조심하여 잘 지켜야 영이 날마다 창성해 나가는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실 때에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고 내셨겠습니까, 아니면 모르고 내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내실 때에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고 내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모르고 내셨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이 아니십니다.


4) 그리스도와 일치되게 하심

선악과를 내실 때에 사람이 따먹을 줄 알고, 또 선악과로 하여금 사람에게 유익을 주시려고 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유익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리스도의 피로 택한 백성을 건져내서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치가 되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영혼이 죽었습니다. 

3:8절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하였는데, 동산나무 사이에 숨은 것이 영혼이 죽은증거입니다. 그러나 범죄하여 영혼이 죽은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아담, 하와가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리고 나무 사이에 숨은 것은 물질 가운데로 들어 간 것인데, 물질 가운데로 들어가서 숨어살려고 하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이 내어 버리시지 않고, 다시 살려 주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또 3:21절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만 우리의 모든 죄가 가려집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그리스도를 보내 주셔서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의 피로 구원해 주시기로 예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피조물인 사람이지 아담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처음 지위보다 낫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받았고, 그리스도와 일치가 되었습니다.


5)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하심

또 에덴동산에서 쫒아내므로 하나님의 공의를 알게 하시려고 선악과를 내신 것입니다.


4. 에덴동산을 찾아서 사는 생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언제나 에덴동산을 찾아서 사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에덴동산은 어떻게 해야 찾습니까? 우리 중생한 영이 하나님과 교통할 때에 에덴동산이 회복이 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해서 에덴동산을 잃어버리지 말고, 언제나 에덴동산을
찾아서 낙원에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에덴동산인 낙원에사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첫째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외부에서 오는 자연은총 면입니다. 자연은총은 하나님이 많이 주셨습니다. 이 나무는 어떻게 먹으면 됩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신 분량대로, 하나님이 허락한 법대로, 하나님이 허락한 위치에서 얼마든지 우리가 취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수를 넘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분량대로 취하는 게 좋습니다. 이것은 또한 안 취해도 괜찮고, 취해도 괜찮습니다. 거기에 무슨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생명나무가 있습니다. 동산의 나무 가운데 생명나무가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나무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가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어서 예수님께 참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셋째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여기에 다 있습니다. ‘이것을 하면 죽는다’, ‘저것은 안 된다’. ‘이것은 하지 말아라’, ‘먹지 말아라’, ‘가지 말아라’ 등과 같은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어기면서 취하
면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기 때문에 정녕 죽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악과는 절대 따먹으면 안 됩니다. 금단의 명령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죽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찾았다고 해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언제든지 이 금단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계속해서 생명나무에 참여해야만 되겠습니다.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는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한 분량 안에서 모든 것을 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생명나무를 계속해서 먹어나가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계속해서 먹어나가는 그 생활이 제일 중요한 생활인 것입니다.


5. 에덴동산을 지키는 법

다스리고 지키라

본문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시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 하와를 이끌어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잘 다스려라. 그리고 에덴동산을 잘 지켜라’했는데 잘 다스리지 않으면 에덴동산을 잘 지키지 못합니다. 에덴동산을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다스리고, 계속해서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에덴동산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어디에 살게 만들어 놓으셨습니까?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 에덴동산은 한번 찾았으면 계속해서 그 에덴동산을 다스려야 하고, 또 지켜야 합니다. 다스리지 않고 지키지 않으면 빼앗깁니다. 마귀가 다 빼앗아갑니다. 마귀가 침략해 들어옵니다. 그러면 다시 찾아서 살아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을 어떻게 유지해야 됩니까? 첫째는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다스리며 지키라고 하셨으니 에덴동산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대로 모든 것을 제자리에 있게 하는 것입니다. 제 직분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제자리에 있게 해야 됩니다. 자기 위치. 자기 직분에 맞게 만물을 정리하고 정돈하는 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돈하는 것입니다. 만물을 제 자리에 있게 하고 제 직분을 감당하게 하는 것, 이것이 다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인도대로 만물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미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만물에게 미치도록 하
고, 하나님의 법대로 만물을 다 정리하고 정돈하고, 각 종류대로, 구별할 것은 구별하고, 자기 위치에 딱딱 모든 것을 두는 것,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 이것이 에덴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데 인간은 순종을 잘 해서 하나님의 하시는 역사가 미치도록 하고,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시켜서 자기 직분을 잘 감당하게 만들고, 그 이상의 것을 품지 않도록 만들고, 자기 직무를 포기하지 말도록 하는 것입니다. 짐승도 개는 개로서, 말은 말로서 할 일을 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종류는 종류대로, 위에 것은 위에 것대로, 아래 것은 아래 것대로 바로 해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동산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잘 다스려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세워놓은 위치에다 세우라는 것입니다. 말씀의 위치, 하나님 법칙의 위치, 하나님이 정해준 위치, 그 다음에 정해준 직무 등을 하게하고 그 다음엔 ‘의’를 이루어나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의’에 이용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뱀이 다가왔을 때 하와가 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뱀이 와서 유혹할 때 “뱀아, 네가 왜 그 위치에 올라가 있느냐? 내려와라, 썩 내려와라. 네 위치가 아니다!”라고 발로 밟고 물리 쳤어야 합니다. 발로 대가리를 꽉 밟고 “너 어디라고 이런 위치에 올라가서 네 위치도 모르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느냐?” 고 했다면 뱀이 꼼짝 못하고 살살 기어갈 뻔 했는데, 그만 다스리지 못해서 뱀이 자기 위치를 초월한 것입니다. 벌써 간교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뱀을 간교하게 만든 것도 아니고 또 뱀의 위치는 간교한 위치가 아닙니다. 뱀이 말한 것이 무엇이 틀렸습니까? 뱀이 위치 지켰습니까?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 붙이는 위치에 섰는데 뱀은 하나님과 사람을 이간 붙이는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뱀은 사람의 아래 있
는 것이고, 사람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뱀이 사람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 붙이는 위치에 올라가 선 것은 뱀이 자기 위치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만일 그때에 하와가에덴동산을 잘 다스렸다면 자기 위치를 넘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간 붙이는 위치에 선 뱀을 상대 안 했을 것입니다. 상대해 준 자체가 틀린 것입니다. 상대할 바가 못 됩니다. 대화는 무슨 대화입니까?
자기 위치 못 지키는 사람하고는 대화할 바가 못 됩니다. 그것은 짐승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스려야 됩니다. “그것은 네 위치가 아니다. 어디라고 그런 허망한 마음을 가지고 품고 와서 참람되게 하나님과 나 사이를 이간 붙이려고 그런 소리를 하고 있느냐?” 라고 호통쳐 주었어야 합니다. 뱀이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를 다 먹지 말라고 하더냐고 말하는 것도 이간 붙이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하는 것으로 뱀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먹으라고 하는 것은 안 꺼냈습니다. 이것이 이간 붙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항상 이 동산을 잘 다스려야 되겠습니다. 모든 것을 각자의 위치에 서게 하고, 자기도 자기 위치에 서고, 그 이상의 위치를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직무를 담당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만 순종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해나가려고 하고, 인본주의 쓰지 말고, 하나님이 하시면 하고, 안 하시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 하실 때에는 가만히 있어야 됩니다. 가만히 있으면서 인내로써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회 주실 때에는, 명령하실 때에는 즉시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시키실 때는 즉시로 하고,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하실 때에는 가만히 있고. 하나님을 힘입어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위치에다가 놓고, 정리하고 정돈하고 모든 것을 바로 이루어나가야 하겠습니다. 불의를 용납하지 말고, 의에 서서 언제나 의를 세워나가야 되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동산을 지키는 법이요, 다스리는 법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늘 있도록 마음을 붙잡으라

또 하나님과 교통하는 곳이 에덴동산인데, 마음을 붙잡아서 마음이 다른데로 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리에 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잠언 4: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로 했습니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지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마음을 잘 지키면 생명의 근원이 거기에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빠르다고 하는데 얼마나 빠릅니까? 비행기만큼 빠릅니까? 비행기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니면 마음이 광선만큼 빠
릅니까? 광선보다 더 빠릅니다. 광선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오는데 8분20초 걸립니다. 태양에서 광선이 지구에 오는 데 태양 광선이 아무리 빨라도 8분 이상 걸립니다. 그만큼 광선이 빠른 것 같아도 8분 걸려야 옵니다. 그러나 마음은 몇 분 걸릴 것 같습니까? 마음은 1초쯤 걸립니다. 1초에 태양을 한 번에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보곤 합니다. ‘하나님이 지구 덩이를 태양만큼 크게 만들었으면 지금처럼 복잡하게 싸우지 않지 않겠는가’라고 말입니다. 태양은 지구의 130만 배나 되는 크고 붙는 불덩어리라고 배웠습니다. 자, 지구 덩이를 130만 배보다 크게 만들었으면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을 것 같습니다. 땅이 너무 넓어서 사람들이 여러 나라에 마음대로 가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짐승이 많고 나무가 많으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넓게 만들었으면 아직도 몇 만 년 더 지나야 지구에 사람이 가득 찰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구를 왜 그렇게 크게 안 만드셨을까? 태양같이 크게 만들 권능이 있는 하나님께서 이 땅 덩어리를 왜 크게 못 만드셨을까요? 말 한 마디면 능히 만들실 수 있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만들어놓으셨으면 아직도 말세가 되려면 멀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준 연대가 있는데 그때가 되면 끝나게 하시려고 지금의 지구의 크기로 만드셨을 것입니다. 세상이 끝나려면 지구가 사람으로 가득 채워져서 끝나야지 텅텅 빈 채로 끝나면 너무 심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구가 사람으로 가득 찬 다음에 종말이 오도록 딱 맞게 만드셨을 것입니다. 지구에 사람이 몇 천년이 지나면 가득 들어차고 그때 하나님이 심판을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마음은 광선보다 빠르고 전기보다 빠릅니다. 가겠다 하면 벌써 가는 것이고 오겠다 하면 벌써 와지는 것입니다. 그저 눈 깜짝할 새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이 마음을 어떻게 만드셨습니까? 번개같이 빠르게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1:14절에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 계셔서 마음을 하나님이 이용하시려면 하나님이 부릴만하게 되어있어야 부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영의 특성은 빠른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심령이 빠르지 못하면 어떻게 부리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부릴 만큼 하나님이 들어와서 내재하여 사람의 마음을 이용할 만큼 하기 위해서 마음을 이렇게 빠르게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을 붙들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하는 것이 에덴동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마음 지키는 것이 생명의 근원이라고 했습니다.


방심 부주의하지 말라

그 다음에는 방심 부주의하지 않아야 됩니다. 마귀가 어느 때에 쳐 들어옵니까? 방심 부주의할 때 쳐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언제 왔습니까? 방심 부주의할 때 들어왔습니다. 그러므로 방심 부주의하지 말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다 기울이고, 경계하고 깨어있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을 잘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들어와서 미혹 시켰습니다(3장).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악용하여 하와를 미혹했습니다. 그러면 왜 하와가 마귀가 들어오는 것을 몰랐습니까? 김현봉 목사님은 방심 부주의 하다가 몰랐다고 하였습니다.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간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뒤집어 놓았는데, 하와가 방심부주의 했기 때문에 마귀와 대화를 하였고, 결국은 마귀의 미혹을 받아서 따먹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을 잘 다스리고 지키려면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마음을 잘 지켜야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우리의 영적세계도 잘 다스리고, 지키려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에덴동산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적 세계를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면 마귀가 들어옵니다(눅 11:24).

금단의 명령을 지키라

그러면 에덴동산을 어떻게 해야 지킵니까?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을 지켜야 에덴동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으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일점일획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희미하게 만들고 변경시키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말씀을 확실하게 붙들고 나가며, 금단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말씀 안에서 사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아담이 이렇게 했다면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었으면, 마귀가 들어올 틈이 없었을텐데,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니까 마귀로 들어올 틈을 준 것입니다. 그 틈으로 마귀가 들어오니까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습니다. 이것은
마귀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성도를 범죄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발전성이 없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사람을 유혹시킵니다. 요한일서 2: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
다. 말세에도 마귀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성도를 미혹 합니다. 요새 인터넷의 각종 음란한 것들이 사람들을 미혹시키는데, 이것이 세상을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인터넷이 좋은 면도 있지만 각종 죄악이 인터넷을 통하여 안목의 정욕을 일으켜서 젊은
아이들을 죄짓게 만듭니다. 성도는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 마귀가 보는 것을 통해서 죄지을 생각이 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죄를 짓게 만듭니다.

우리가 에덴동산을 지키려면, 금단의 명령은 절대 지키고, 마음을 전심으로 하나님께 기울여서 방심 부주의하지 말고 깨어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동산을 지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잘 지키면 에덴동산이 그 사람 마음에 이루어지고, 그 사람 심령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
면 그 사람의 심령에서부터 발원하여 생명의 역사가 흘러서 사방으로 흘러 나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에덴동산을 소유한 사람에게서부터 그 생명의 역사가 주변의 분위기와 환경을 적셔나간다는 말입니다. 사방을 다 적셔나갑니다. 점령해 나갑니다. 생명의 강이 흘러나가는 것은 생명의 역사가 분위기와 환경과 가까이 있는 사람을 점점 적셔서 그를 생명체로 변화시키고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생명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생명의 강물이 사방에 흐르면 모든 곳에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공급해주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생명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에덴동산을 회복해서 동산에서 사는 사람이고, 그 동산에서 강이 흘러나가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에덴동산을 잘 다스리며 잘 지키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본문 16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임의로 먹
으라는 말씀입니다. 임의로 먹되 어떻게 먹으라고 그랬습니까? 각 분량대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법대로 먹으라고 했습니다. 임의로 먹으라고 해서 욕심으로 지나치게 먹으면 안 됩니다. 자기에게 맞도록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대로, 허락한 것만, 법대로 자연은총 영역의 것을 우리가 취하되 하나님의 법대로 분량에 맞춰 모든 것을 취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7절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금단의 명령’은 절대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금단의 명령을 범하면 “넌 정녕 거기서 죽는다. 언제나 사망이 너를 따라다니는 줄 알라”는 말씀입니
다. 금단의 명령을 범하면 사망이 옵니다. 범하는 즉시 죽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이라고 해도 선악과를 먹으면 죽습니다. 정녕 죽습니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에 사는 사람도 항상 깨어서 그 금단의 명령을 지켜나가야 되겠습니다.


6. 에덴동산에서 발원하는 생명의 역사

본문 10절에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에 둘렸고 세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편으로 흐르며 네째 강은 유브라데더라”고 하였습니다. 에덴에서부터 강이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어서 사방으로 흘러나간다고 했습니다.
강이 어디에서 발원합니까? 근원이 에덴입니다. 에덴에서부터 강이 발원을 해서 물이 흐르고 흘러서 에덴동산을 다 적시고, 그 다음에 사방으로 흘러나갑니다. 강이 네 개인데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서 다 적셔나가는 것입니다. 이 강은 생명 강입니다. 즉, 생명의 역사입니다.
생명의 역사가 강같이 흘러나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에덴에서부터, 하나님과 교통하는 데서 생명의 역사가 발원이 되고 샘통이 터져 나와서 에덴동산을 다 적십니다.
에덴에서부터 샘 통이 터져 나와서 네 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의 샘이 네 개를 다 적실만큼 큰 강이 된다는 것입니다. 샘 한 구멍이 터져서 강이 되는 것입니다. 강원도 마차리 교회에 가면 한 곳의 구멍 터져서 조그만 강같이 흘러내려가는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 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을 보니까 샘 통이 하나 터졌는데 큰 강이 흘러 나왔습니다. 샘에서 콸콸콸 물 흐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런 샘 통 하나 찾으면 논 몇 십만 평 농사짓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샘구멍이 터져서 많은 물이 나오느냐”고 물어보니까, 그 샘 뒤에 있는 강이 땅 속으로 와서 그 샘구멍으로 나온다고 했습니다.
산 밑으로 강이 흘러 내려오다가 그 샘구멍으로 터져서 올라온다는 것입니다. 제주도에는 그런 샘이 많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강이 땅 위로 흐르는 것이 아니고 땅 밑으로 흐릅니다. 계란 껍데기처럼 돌에 껍데기를 씌워놓은 것처럼 되어서 돌 속으로 강이 흘러갑니다. 그러다 어떤 곳에서 터지면 그곳에서부터 솟구쳐 나오는 것입니다. 강물이 땅속으로 흐르다가 구멍만 뚫어놓으면 냅다 솟아오릅니다. 그래서 제주도 물이 상당히 좋고, 세계에 수출까지 한다고 합니다. 물 수출해서 제주도 돈 많이 벌게 생겼습니다. ‘제주도 물이 얼마나 깨끗하겠나’ 를 생각해 보십시오. 땅 위에서 강물이 흐르면 여기저기에서 똥 싸고, 죽은 것들이 빠지고, 더러운 것들이 떨어지겠는데 땅 속으로 흐르다가 나오니까 얼마나 깨끗하겠습니까? 돌인 땅 속에서 흘러나오니 이건 진짜 깨끗한 샘물인 것입니다.

이처럼 생명 강수도 에덴에서 근원이 되어서 생명 강의 샘통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터져 나와 에덴동산을 다 적십니다. 그 다음에 생명의 역사가 에덴동산을 넘어나갑니다. 이리도 흐르고 저리도 흐르고 동서남북 사방으로 흘러서 내려가는 것입니다. 생명
의 역사가 강 같이 흘러나간다고 했잖습니까?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에덴에서부터 생명의 역사가 넘쳐서 강같이 솟아나온다는 것입니다. 강 같이 솟아 나와서 다 적시는 것이다. 그래서 전부 생명 강에 젖어서 살게 되고 다시 거기서 넘어서 사방으로 생명 강수가 흘러내려갑니다.
즉, 생명의 역사가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내려가는데 첫째 강이 무슨 강입니까? 11절에 “첫째의 이름은 비손 강이라 비손.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렸으며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베델리엄은 진주라고 했습니다. 비손의 뜻은 ‘창일하다’는 뜻입니다, ‘창일하다’는 철철 넘치는 것입니다.
생명 강수가 흘러나가는데, 생명 강수인 에덴동산을 소유한 사람은 생명의 역사가 전체를 적시는 동시에 그 생명의 역사가 철철 넘쳐서 내려간다는 말입니다. 철철 넘쳐 내려갑니다. 막을 자가 없습니다. 막으면 어떻게 됩니까? 막아도 넘어갑니다. 그 위로 계속 철철 넘어가는 것입니다. 좀 더 높이 막으면 옆으로 나갑니다. 계속해서 철철 넘쳐 내려갑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물이 철철 넘쳐서 내려오는데, 이것을 막을 자 없습니다. 막아도 넘어나가고, 또 높이 막으면 옆으로 가고, 또 막으면 다른 쪽으로 나가서 막아도 자꾸 새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의 역사가 있는 곳은 막을 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일시에 막아도 기차보다도 더 큰 세력으로 넘어 내려갑니다. 나중에는 못 막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는 로마 네로 황제가 막으려고 했지만 못 막고 댐이 다 터져서 관두었고, 이 생명의 역사를 그 후로 여러 나라들이 막으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댐 다 터져서 못 막았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는 계속해서 흘러나가는 겁니다. 핍박하는 세력도 반대하는 세력이 말할 수 없이 많아도 막을 수 없습니다. 강이 흘러내려가는 것을 막으면 막을수록 더 많이 고였다가 더 큰 세력으로 넘어 내려가기 때문에 그칠 수가 없습니다. 위에서 자꾸 철철 내려오는데 어떻게 그칠 수 있겠습니까? 막아도 당하지 못합니다. 우리도 생명의 역사만 있으면 막을 자가 천하에 없습니다. ‘무엇을 못한다, 누구 때문에 못했다’ 하지 말고 자기 속에 강이 흘러 넘쳐 나오지 못해서 안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넘쳐 나오기만 하면 아무리 막아도 괜찮습니다. “막으려면 막아라. 나간다. 넘어 나간다. 터트리고 나간다. 또 다른 데로 흐른다. 좀 더 높이 막으면 그 위로 또 나간다”며 계속해서 흘러 나가는 것이 생명운동입니다. 생명 강수가 가늘게 쫄쫄 흐르니까 시원치가 않은 것입니다. 가다가 길바닥에서 탁 막히고 또 일 년에 조금밖에 나오지 못하니까 진보도 없고, 발전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막는 세력이 나오면 꼼짝 못하고 한 번 막아놓으면 일 년이나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전도 못했습니까? 왜 이 생명의 역사가 창성하지 못했습니까?
에덴동산 생활을 잘 못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에덴동산 생활을 해야 강이 거기서부터 발원이 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강물이 흐르지 않아서 생명의 역사가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에덴동산을 다시 찾아야 되겠습니다. 잃어버린 걸 다시 찾으면 거기서부터 강이 흘러내려서 온 동산을 다 적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강이 철철 넘쳐서 나갑니다. 창일해 집니다. 철철넘쳐 나가는데 그 흘러나가는 곳에는 무엇이 있다고 했습니까? 금도 있고, 진주도 있고, 호마노도 있습니다. 금, 은, 보석이 가득합니다. 그러한 곳으로 이 강이 흘러나갑니다. 흘러서 다 적셔서 점령을 하고, 마지막에는 에덴동산을 소유하게 됩니다. 학개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했습니다. 생명강수가 흘러 내려가면 은도 내 것이 되고, 금도 내 것이 됩니다. 철철 넘쳐서 흘러 내려가면 생명 강이 미치는 데마다 에덴동산 것이 됩니다. 다른 데로 못 갑니다.

둘째 강은 이름은 무엇입니까? 둘째 강은 기혼입니다. 기혼이라는 뜻은 ‘누출한다’는 것입니다. 누출은 ‘흘러나간다’는 뜻입니다. 생명강수만, 에덴동산만 우리가 소유한다면 그 생명의 역사는 흘러나간다는 말입니다. 가만히 있는 생명의 역사가 아닙니다. 반드시 나가고 또 나
가서 자꾸 계속해서 나갑니다. 누출되어서 머물러 둘 수 없습니다. 나가는 강, 흐르는 강입니다. 웅덩이에 모인 것이 아닌 흘러나가는 강은 아무 곳이라도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셋째 강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힛데겔입니다. 힛데겔이라는 것은 ‘급류. 급하게 흐른다’는 말입니다. 나가도 천천히 흐르는 게 아니고, 급하게 계속해서 흘러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강은 급류로써 계속 해서 사방으로 흘러나갑니다.

넷째 강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유브라데입니다. 유브라데라는 뜻은 ‘강이 단 맛’이라는 것입니다. 생명 강수가 흘러나가면 무슨 맛이 납니까? 단 맛이 납니다. 쓴 맛이 아닙니다. 이 생명 강수가 이르는 곳마다 달고, 꿀보다 달고, 꿀송이보다 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 강수의 맛을 보면, 너무 달고 너무 좋아서 그 생명 강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사방으로 흘러 내려가는 생명의 역사는 달고 또 급하고 창일하게 넘쳐나가고, 철철 넘게 흘러나가는 것이 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다 점령할 수 있습니다. 구스 땅도, 그 어느 것도 모두 다 이 강물에 점령을 당하고, 강물로 적셔서 만물을 소생하게 만드는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는 곳마다 만물이 솟아납니다. 소생하게 됩니다. 점령하는 곳은 다 에덴동산이 됩니다. 에덴동산의 확장이 생명 역사의 창성입니다. 이렇게 단 맛이 있으면서 철철 넘어서 계속해서 급하게 흘러나가는 이 생명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부터 발원해서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7. 아담이 각 생물에 이름을 지음

본문 19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1장에 말한 것인데 다시 재론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고 했는데 아담이 이름 짓는 대로 모든 동물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3:14-15절에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며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짐승들을 다 아담 앞으로 데려오시니 아담이 이름을 짓는 대로 그 짐승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되었습니다. 범죄하기 전이라 하나님의 지혜로 충만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의 모습을 보면 벌써 ‘이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승의 이름을 지을 때 되는 대로 지은 것이 아니고 그 짐승의 생긴
대로 지은 것입니다. 그 짐승의 성품, 그 짐승의 생긴 모양대로 그 짐승에게 적당한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렇게 적당한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담의 지혜가 모든 것을 훤하게 통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 뚫어보고 있었습니다. 아담의 지혜로 모든 짐승을 다 꿰뚫어보고, 개다, 돼지다, 말이다, 소라고 지은 것입니다. 이렇게 범죄 하지 않고 에덴동산을 소유하고 있을 때에는 모든 만물의 가치와 위치와 그것들의 성품을 밝히 알아서 그것에 맞는 이름을 짓도록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밝히 알고, 넌 ‘베드로’다, 넌 ‘보아너게’라고 지어주지 않으셨습니까? 벌써 밝히 압니다. 사람을 잘 압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어느 정도인가. 또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를 말입니다. 이 사람은 인격이 어느 정도이고, 일 처리하는 데 어느 정도로 처리할 사람인가, 이 사람에게는 무엇이 부족한가, 이 사람의 장점은 또 무엇인가, 이 사람을 이용할 바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밝히 다 아십니다. 다 아시고 오는 사람마다 불러서 그 사람의 이름을 지어주시고, 이름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지혜가 얼마나 있다는 것도 아십니다. 아담이 짐승대로 정도와 분량과 성격과 그 용도에 따라서 그들의 이름을 밝히, 바로, 똑바로 지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모든 것을 바로 봐야 합니다. 관점이 바로 되어야 됩니다. 세계관, 역사
관, 인생관, 가치관 , 용도에 관한 바른 관념, 하나님께 대한 바른 위치 관념, 이것을 바로 알고, 바로 모든 것을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바로 못하면 그만 좋은 것을 가지고 일을 다 그르치게 됩니다. 똑바로 서면 괜찮은 건데 바꾸어 서면 그만 그릇도 버리고 일도 다 틀어지게
됩니다. 숟가락을 갖다가 바로 쓰려면 밥 먹을 때 쓰면 바로 쓰는 것인데 이것으로 연탄을 집어가지고 다니면 바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수저도 버리고 연탄도 버리고 다 버리게 됩니다. 연탄을 깨뜨리게 됩니다. 젓가락으로 연탄을 집고 가다가 툭 깨뜨려놓으면, 연탄
도 집어지지 않고 속만 상합니다. 그러면 연탄도 버리고 젓가락도 버리고 다 버리게 됩니다. 가정의 기구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밥그릇에는 밥을 담아먹어야 되고, 국그릇에는 국을 담아먹어야 되고, 솥에는 밥을 해야 됩니다. 만일 밥그릇에다 밥을 하고 솥에다 밥 담아먹
고, 그렇게 하면 집안이 시커멓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만민과 만물과 만사를 적재적소, 바른 위치에다가 놓고 그것의 이름을 바로 지어주어서 그것이 하나님께 바로 이용당하게 하도록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바른 것입니다. 무서워서 못하면 안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안 됩니다. 장 담굴 땐 장을 담가야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습니까? 구더기 나오면 잡아낼 예산을 하고, 장은 담궈야 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면 뭐 먹고 살겠습니까.

아이들 이름도 바로 지어주십시오. 작은 아이를 큰 아이 이름을 지어주고, 큰 아이는 작은 아이 이름을 지어주면 거꾸로 되었기 때문에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 이름이 무엇이었습니까? 사울입니다. 사울이 무슨 뜻입니까? 큰 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작은 자’입니다.
전에는 ‘큰 자’라 이름을 지었었는데 이제는 ‘작은 자’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작은 자라 이름 지은 게 겸손, 즉 말하면, 겸손한 위치에 있으라고 이런 이름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 이름도 하나님이 아이에게 준 은사를 봐서 이름을 지어주어야 됩니다. 무조건 ‘서울대학 가야 된다, 일류 대학에 가라’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아이들에게 하는 역사를 압니다. 정도를 알아야 됩니다. 정도를 봐서 그 아이에게 바른 것을 시키고, 또 바른 이름을 지어주어야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제 길이 있습니다.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했는데 일년 동안 배운 것이 ‘도레미파솔라시도’라면 피아노를 그만 두게 하고 다른 것을 하게 해야 됩니다. 그것은 마치 이름을 잘못 지어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정도를 봐서 이름을 지어주고, 그 길로 나가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름을 또 아버지가 지어주는데 어머니가 막으면 안 되고, 어머니가 바른 이름 지어주는 것을 아버지가 막아도 안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라는 것이 다르면 아이 입장이 난처해지게 됩니다. 아버지한테 가면 이것을해야 되고, 어머니한테 가면 저것을 해야 됩니다. 아이는 둘 다에게 비위 맞추느라고 왔다 갔다 하게 됩니다. 왔다 갔다 하면 둘 다 틀어집니다.

누구를 따라가야 됩니까? 호주를 따라가야 됩니다. 누가 호주입니까? 아버지가 호주인 집도 있고, 또 어머니가 호주인 집도 있습니다. 믿음의 호주를 따라가야 합니다. 믿음에 서서 신앙대로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고, 바로 인도하는 그 사람이 믿음의 호주입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신앙에 바로 서지 못하면 자녀들도 신앙을 버립니다. 자녀들 다 버리고 맙니다. 이름을 바로 지어주어야 아이가 바로 되겠는데, 이름을 삐뚤게 지어주니까 잘못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이름을 바로 짓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세상 나라에 대한 이름, 미국에 대한 이름, 소련에 대한 이름, 중국에 대한 이름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바로 보아서, 바른 세상관을 가져야 됩니다. 타락된 교회에 대한 이름을 전부 다 바로 해서, 바른 교회로 이름을 바로 지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바른관을 가지고 바로 판단해서 모든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바로 세워 나가야 되겠습니다.


8. 여자 창조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

본문 18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아담의 배필을 지으려고 작정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하였는데, 사람이 하나님과동행하면 만족할 수 있으나, 성도간의 교제도 즐거운 것이고, 큰 위로가 되므로, 사람에게 신앙적으로 돕는 배필이 필요한 것입니다. 독신이라 해도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자를 낸 목적이 무엇입니까?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라고 하시며 남자를 돕는 배필로 여자를 하나님이 창조했습니다. 여자는 그렇기 때문에 무슨 그릇입니까? 도와주는 그릇입니다. 남자를 도와주는 그릇입니다.
위치가 다릅니다. 남자는 머리라고 했고, 여자는 몸이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23절에 “남자는 머리고, 여자는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를 도와주는 위치에 하나님이 만드셨고, 또 도와주는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보조하는 그릇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언제나 보조하는 위치에 서야 그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질서가 바로 되는 것이고 모든 일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여자의 마음하고 남자의 마음하고는 다릅니다. 여자가 생각하는 것과 남자가 생각하는 것은 다릅니다. 원리로 볼 때 그렇습니다. 여자가 앞장을 서 나가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물론 남자보다 나은 여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원리로 볼 때 남자를 하나님이 들어서 창조하고 여자는 보필로, 돕는 배필로 했기 때문에 여자의 마음과 성질과 생각하는 바가 보조하는 그릇으로 창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는 마음도 보조하는 그릇으로 되어 있고, 신체 구조도 보조하는 그릇으로 되어 있고, 생각하는 것도 보조하는 면으로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남자를 중심으로 하고 여자는 보조하는 기관으로 만사를 해나가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대로 된 것이고, 일도 바로 되고, 일이 원만하게 되어나갑니다.

그러나 남자가 혼자 다 합니까? 남자에게 혼자 일을 다 하라고 하면 혼자 다 못합니다. 남자는 혼자 못합니다. 여자가 반드시 받들어 주어야 되게 되어있습니다. 남자가 힘들면 여자가 도와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남자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같이 가서 보조해주어야만 원만하고 힘이 안 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자가 도와주면 힘이 안 든다는 것입니다. 남자 혼자 하거나 여자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자가 남자를 도와주면 몇 배나 일이 잘 됩니다. 남자가 쌀 한 가마니 지고, 여자가 또 한 가마니면 두
가마니지요? 둘이 합해서 몇 가마니를 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도와나가면 일이 더 많이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나갈 때 몇 배 이윤이 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신앙의 호주와 돕는 자를 만들어 놓으심

이것이 우리의 신앙 원리에 맞습니다. 신앙 원리에도 믿음의 호주가 앞서 나갈 때, 즉 말하자면 선봉에 서서 신앙으로 끌고 나갈 때, 혼자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많이 만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도와서 일하는 배필자를 만들어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도와서 일하는 사람이 앞서 나가서 일하는 사람을 도와주면 그 일에 몇 배의 능률이 올라가서 힘도 안 들고 바로 됩니다. 그러나 거꾸로 도와주는 사람을 앞서 세워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고는 일이 다 틀어집니다. 거기에서 사고가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론과 훌과 미리암을 모세를 도와주는 배필자로 내셨습니다. 아론과 훌과 미리암은 모세를 도와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면 얼마든지 잘 됩니다. 자기도 잘 되고, 모세도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만 아론과 미리암이 그 역할을 바꿔 서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모세를 대항하여 “모세만 거룩하냐? 하나님이 모세와만 같이 하냐? 우리와도 같이 한다”고 하면서 그만 모세보다 자신들을 앞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앞서려고 하니까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또 고라 당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앞서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땅 속으로 들어가게 하지 않았습니까?
가정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교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든지 먼저는 신앙의 호주가 있습니다. 언제든지 앞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자기보다는 썩 낫습니다. 생각하는 바도 낫고, 일 처리하는 바도 낫고, 믿음도 낫고, 연단 받은 바도 낫다는 것입니다. 그런
데 하나님께서 돕는 위치에 둔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의 명예, 영광을 위해서 ‘자기 마음대로만 하느냐? 이것이 독재냐? 우리도 다 힘을 합해서 앞서자’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게 되면 일은 다 틀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편협주의로 나가고, 원만하게 나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이 형통하게 나아ㅍ가다가 결국에는 중단이 됩니다. 그래서 분쟁이 생기게 되고, 그 다음에는 옥신각신하게 되고, 흑암이 들어오게 되고, 마귀 역사가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신앙의 호주를 앞세우고 나가야 합니다. 어떤 가정은 여자가 신앙의 호주인 사람도 있습니다. 여자가 신앙에 앞선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남편이 가정의 호주이지만, 그러나 신앙 문제에 아내가 앞서는 경우에는 아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믿음이 바로 됩니다.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아내가 호주인 것입니다. 가정 문제에 있어서는 남편이 호주입니다. 그러나 자기보다 신앙이 나은 사람을 앞세우고, 나은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모든 것이 원만하게 되어나가는 것입니다.
배필을 지어주신 하나님, 돕는 자를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담에게 돕는 자, 하와를 지어주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돕는 자인 아론과 훌을 주셨고, 엘리야에게 돕는 자인 엘리사를 주셨고, 바울에게는 돕는 자로 디모데와 디도, 또 에바브로디도, 그리고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주셨습니다. 이렇게 돕는 자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나가도록 만들어놓으시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이제 신앙의 호주가 앞서나갈 때 반드시 돕는 자를 주십니다. 아내가 안 도와주면 자녀가 도와주고, 또는 형제가 도와줍니다. 누군가가 도와주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돕는 자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외로워하지 말고, 가다가 피곤해서 낙심하
지 말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돕는 자를 주실 것이니까 아무도 안 도와 준다고 섭섭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안 도와줘도 또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거기에 세워 놓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이 실패가 없도록 잘 이루어나가도록 해나가십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함

본문 21-23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돕는 자를 어디에서 취해주셨습니까? 갈빗대에서 취하셨습니다. 돕는 자는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몸에서 나와야 진짜 도와줄 수 있지 밖에서 떠돌아가다가 어떻게 도와주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몸에서 떨어져나간 자
기 심복, 곧 자기 몸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길러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피땀이 들어가야 되고, 실력이 들어가야 되고, 거기서 자기가 길러내는 사람이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아담이 자기 아내를 보고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고 사랑한 것처럼 도와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기 몸과 같이, 자기 살과 같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와 같이, 자기의 몸과 같이, 도와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됩니다. 얼마나 사랑해야 됩니까? ‘살 중의 살이요, 또 뼈 중의 뼈’와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살과 같이,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잘 못해도 사랑하고, 용납해주고, 사랑하는 남편이 되어야 합니다. 또 아내는 남편을 위하는 아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되어 나갑니다.

본문 24절에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고 하였습니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이 한 몸이 됩니다. 육신의 모든 것을 다 떠나라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하나님께서 짝 지어주신 신앙의 배필자와 더불어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야 됩니다.

본문 25절에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나타나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고, 서로 사랑 가운데 살기 때문에 허물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허물이 안 보이는 세계가 사랑의 세계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이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신앙의 세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세계에 살 때에는 모든 허물이 다 가리워지게 됩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사랑의 세계에서는 허물을 다 가리면서 벌거벗었으나 부끄럽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이 충만한 세계,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 세계가 되어
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은 우리가 다스려야 되지만,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것 이외에는 인간의 결점을 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