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하게 행하는 성도
시편 26:1-12
1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3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5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7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9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12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시편 26:1-12
1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3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4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5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6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7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8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 9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 10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하오나 11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12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
1. 완전함에 행함과 연단
진실하고 충성되게, 신앙양심대로 모든 일을 해나감
본문 1절에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언제나 자기의 죄를 두고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시편 25편 11절에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늘 회개하였습니다. 여기서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말은 현재 신앙양심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행할 바를 현재에 다 행하고 양심의 가책 없이 행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자책할 만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신앙양심에 가책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바인 의무와 충성을 최선을 다 해서 해나가는 상태입니다. 자기 의무를 진실하게 해나가고, 충성하며, 양심에 가책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선한 마음을 쓰고, 모든 것을 선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이나 자기가 완전하게 다 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재에 올바로 진실하게 행하고 양심대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려고 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지금까지 나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 왕을 대할 때 어떻게 하든지 선으로 대하려고 했습니다. 선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나 자기 양심에나 거리낌이 없이 바로 하려고 지금까지 힘써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 요동침으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지금까지 계속 자기의 깨끗함을 지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온전함을 지켜 나오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연단을 잘 받아야 함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온전함으로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제는 판단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여호와를 의뢰하고 온전함에 행동하였다고 해도 자기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하다고 자랑하지 못하며, 주님께서만이 오직 그것을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판단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자기가 온전히 나아가는 것을 판단해달라는 뜻과, 또 악한 원수 앞에서 자기가 옳게 나가는 것을 판단해달라는 뜻이 있습니다. 원수들은 비방하고 악평하며 정죄하고 있지만, 자신이 온전함에 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므로 판단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지금 온전함에 나아가고 온전함으로 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피셔서 시험하사 자신의 뜻과 마음을 연단시켜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완전히 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행하였사오니’라고 하는 것은 현재에 자기 양심대로 바로 하려고 하고, 진실하게 행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시험하사 내뜻과 마음을 늘 연단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자기의 부족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연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에 믿음이 없는 것도 나타나고 연약한 것도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셔서 자신의 연약한 것과 믿음 없는 것, 부족한 면을 나타내셔서 자신의 뜻과 마음을 연단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연단을 받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시험 가운데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연단이 되어 자기의 모든 믿음 없는 것과 여러 가지 잘못된 면, 결점, 연약한 면, 부패성 등을 깨닫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깨닫고 바로 서서 연단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 믿음 없는 것이 드러나곤 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강해진 것 같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에 약한 것이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에 회개하고 바로 서서 믿음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 회개하고 연단을 받아서 점점 바로 세워 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시험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거기에서 연단 받을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에 여러 가지 연단을 많이 받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연단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우리가 연단을 잘 받아나가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자기 목전에 있는 것을 지금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내 목전에다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이 언제나 주의 진리 중에 행했다는 것입니다. 진리 중에 행함으로, 최선을 다해 말씀대로 행하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을 다 행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쓰면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온전함을 온전하다고 깨닫지 않고, 도리어 여러 가지 시험 중에서 나를 연단시켜서 점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가 되어 나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본문에서 진리 중에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행해야 될 것을 다 행한다는 뜻입니다. 몰라서 못 행하는 것은 남겨두고, 아는 것은 다 행하려고 힘을 쓰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 일을 이루어나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와 양심대로 행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연단을 받으려고 힘을 써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언제나 진리대로 행하고 양심대로 행하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나가면서 충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시험 속
에서 연단을 잘 받아 회개하고 점점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 허망한 사람과 동행하지 않음
본문 4-5절에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사람은 진리를 떠나서 비 진리로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앉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리에 어긋나고 진리에서 탈선해나가는 사람과는 좌석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 친구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습니다. 간사하다는 것은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과 보조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여서 행악하는 집회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탈선되어 비 진리를 선포하는 집회를 미워합니다. 참여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단적인 집회와 진리에서 떠난 집회, 그렇게 모여서 일하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동참하지도 않고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한 번 와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집회를 미워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집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5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가보지말라는 것입니다. 나가보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주님께서 골방에 있다, 광야에 있다 해도 그 진리가 되지 않는 집회에 가볼 필요가 없습니다. 가보는 것 자체가 벌써 마귀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골방에 있다, 광야에 있다, 어디에 있다 해도, 그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진리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될 것인 줄 알면 가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집회를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편 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멀리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떠나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같이 한 좌석에 앉아서 신앙을 토론한다든지, 또 같이 보조를 취한다든지 하는 것은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같이 보조를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취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죄를 미워하는 신앙입니다.
3. 주의 집을 사랑하며 기사(奇事)를 전함
본문 6-7절에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손을 씻고 제사를 했습니다. 그릇에 물을 담아 손을 씻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제단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제사 드릴 때에 정성을 다 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두루 다닌다는 것은 정성을 드려 제단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께 정성과 충성을 다 드려 제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늘 날의 입장에서 손을 씻는 것은 회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회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주의 단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 기울이고, 또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언제나 계속해서 성전 생활을 하면서 정성과 충성을 다 기울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정성을 기울이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제단을 두루 다닌다는 것은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의 일, 그 나라에 가 있고, 언제나 봉사하며,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두루 다니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교회에 와보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그것은 새벽 기도에 나와서 기도하고 제단을 두루 다니는 신앙입니다. 새벽 기도에 나와서 모임에 참여하고 기도한 다음, 한 번씩 예배당에 가서 돌보는 것이 제단을 돌보는, 두루 다니는 신앙입니다. 회개하고 손을 깨끗이 씻고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진실하고 충성되게, 신앙양심대로 모든 일을 해나감
본문 1절에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요동치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윗은 언제나 자기의 죄를 두고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시편 25편 11절에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중대하오니 주의 이름을 인하여 사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늘 회개하였습니다. 여기서 완전함에 행하였다는 말은 현재 신앙양심대로 행한다는 뜻입니다. 자기가 행할 바를 현재에 다 행하고 양심의 가책 없이 행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4절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자책할 만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기 신앙양심에 가책 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바인 의무와 충성을 최선을 다 해서 해나가는 상태입니다. 자기 의무를 진실하게 해나가고, 충성하며, 양심에 가책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선한 마음을 쓰고, 모든 것을 선으로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것이나 자기가 완전하게 다 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현재에 올바로 진실하게 행하고 양심대로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행하려고 힘을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지금까지 나온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 왕을 대할 때 어떻게 하든지 선으로 대하려고 했습니다. 선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완전하게 행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나 자기 양심에나 거리낌이 없이 바로 하려고 지금까지 힘써 나왔다는 것입니다. 또 요동침으로 그 마음이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지금까지 계속 자기의 깨끗함을 지켜 나왔다는 것입니다. 온전함을 지켜 나오는 신앙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연단을 잘 받아야 함
그리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의지하고 온전함으로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지금 그렇게 계속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제는 판단해달라고 호소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여호와를 의뢰하고 온전함에 행동하였다고 해도 자기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하다고 자랑하지 못하며, 주님께서만이 오직 그것을 판단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판단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말에는 자기가 온전히 나아가는 것을 판단해달라는 뜻과, 또 악한 원수 앞에서 자기가 옳게 나가는 것을 판단해달라는 뜻이 있습니다. 원수들은 비방하고 악평하며 정죄하고 있지만, 자신이 온전함에 나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므로 판단해달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지금 온전함에 나아가고 온전함으로 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살피셔서 시험하사 자신의 뜻과 마음을 연단시켜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완전히 된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행하였사오니’라고 하는 것은 현재에 자기 양심대로 바로 하려고 하고, 진실하게 행하려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것이 온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시험하사 내뜻과 마음을 늘 연단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시험이 들어올 때에 자기의 부족한 것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연단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시험하실 때에 믿음이 없는 것도 나타나고 연약한 것도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셔서 자신의 연약한 것과 믿음 없는 것, 부족한 면을 나타내셔서 자신의 뜻과 마음을 연단시켜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연단을 받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합니다. 시험 가운데 자기의 부족한 것을 깨닫고, 연단이 되어 자기의 모든 믿음 없는 것과 여러 가지 잘못된 면, 결점, 연약한 면, 부패성 등을 깨닫고 바로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 깨닫고 바로 서서 연단 받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이 있는 것 같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 믿음 없는 것이 드러나곤 합니다. 평안할 때에는 강해진 것 같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에 약한 것이 드러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그럴 때에 회개하고 바로 서서 믿음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믿음 있는 자가 되어 회개하고 연단을 받아서 점점 바로 세워 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시험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거기에서 연단 받을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시험이 들어올 때에 여러 가지 연단을 많이 받습니다. 시험이 없으면 연단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험 속에서 우리가 연단을 잘 받아나가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이 자기 목전에 있는 것을 지금 믿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내 목전에다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다윗이 언제나 주의 진리 중에 행했다는 것입니다. 진리 중에 행함으로, 최선을 다해 말씀대로 행하며 나아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행해야 할 것을 다 행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님을 의뢰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양심을 쓰면서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온전함을 온전하다고 깨닫지 않고, 도리어 여러 가지 시험 중에서 나를 연단시켜서 점점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가 되어 나아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본문에서 진리 중에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행해야 될 것을 다 행한다는 뜻입니다. 몰라서 못 행하는 것은 남겨두고, 아는 것은 다 행하려고 힘을 쓰고 전심전력을 기울여 그 일을 이루어나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대로 행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리와 양심대로 행해 나가면서, 여러 가지 시험 가운데 연단을 받으려고 힘을 써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언제나 진리대로 행하고 양심대로 행하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최선을 다하여 해나가면서 충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시험 속
에서 연단을 잘 받아 회개하고 점점 자기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 허망한 사람과 동행하지 않음
본문 4-5절에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허망한 사람은 진리를 떠나서 비 진리로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앉지 않는다’는 것은 그런 사람을 친구로 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진리에 어긋나고 진리에서 탈선해나가는 사람과는 좌석을 같이 하지 않는다는 것, 친구로 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간사한 자와 동행하지 않습니다. 간사하다는 것은 속과 겉이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과 동행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들과 보조를 같이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모여서 행악하는 집회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진리에서 탈선되어 비 진리를 선포하는 집회를 미워합니다. 참여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단적인 집회와 진리에서 떠난 집회, 그렇게 모여서 일하는 모든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동참하지도 않고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이단들은 한 번 와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집회를 미워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집회에 한 번도 가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해도 가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25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가보지말라는 것입니다. 나가보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 주님께서 골방에 있다, 광야에 있다 해도 그 진리가 되지 않는 집회에 가볼 필요가 없습니다. 가보는 것 자체가 벌써 마귀에 끌려가는 것입니다. 골방에 있다, 광야에 있다, 어디에 있다 해도, 그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진리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잘못될 것인 줄 알면 가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집회를 미워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시편 1편 1-2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멀리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떠나서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같이 한 좌석에 앉아서 신앙을 토론한다든지, 또 같이 보조를 취한다든지 하는 것은 악한 일에 동참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악한 일에 동참하지 말고, 같이 보조를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행동을 취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죄를 미워하는 신앙입니다.
3. 주의 집을 사랑하며 기사(奇事)를 전함
본문 6-7절에 “여호와여 내가 무죄하므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 제사장들이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손을 씻고 제사를 했습니다. 그릇에 물을 담아 손을 씻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제단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제사 드릴 때에 정성을 다 해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두루 다닌다는 것은 정성을 드려 제단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께 정성과 충성을 다 드려 제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오늘 날의 입장에서 손을 씻는 것은 회개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회개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회개하면서 주의 단에 두루 다닌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정성을 다 기울이고, 또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으며, 언제나 계속해서 성전 생활을 하면서 정성과 충성을 다 기울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정성을 기울이고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제단을 두루 다닌다는 것은 떠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마음이 하나님의 일, 그 나라에 가 있고, 언제나 봉사하며, 그 자리에서 떠나지 않는, 두루 다니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하루에 한 번씩 교회에 와보는 신앙이 좋은 신앙입니다. 그것은 새벽 기도에 나와서 기도하고 제단을 두루 다니는 신앙입니다. 새벽 기도에 나와서 모임에 참여하고 기도한 다음, 한 번씩 예배당에 가서 돌보는 것이 제단을 돌보는, 두루 다니는 신앙입니다. 회개하고 손을 깨끗이 씻고 하나님을 충성되게 섬기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제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기로 작정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이 구원 역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참여하도록 작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이한 역사를 나가서 전하기 위하여 작정을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사랑한다고 했습니까? ‘주의 계신 집을 사랑하고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계신 집은 성전입니다. 영광이 거하는 곳도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전, 주님의 집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계신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계신 신령한 성전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거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의 계신 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가 계신, 영광이 충만한 그곳을 늘 사랑하고 사모하며, 신령한 곳을 찾아 가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서 계신 곳과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늘 그것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 나라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주의 계신 집이라는 것은 교회도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주의 계신 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 가운데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본문 8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사랑한다고 했습니까? ‘주의 계신 집을 사랑하고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주의 계신 집은 성전입니다. 영광이 거하는 곳도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전, 주님의 집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주의 계신 하나님의 나라와 주의 계신 신령한 성전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항상 신령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영광이 거하는 곳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의 계신 집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주가 계신, 영광이 충만한 그곳을 늘 사랑하고 사모하며, 신령한 곳을 찾아 가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과 신령한 교제를 하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늘 주님께서 계신 곳과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늘 그것들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그 나라에 가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주의 계신 집이라는 것은 교회도 될 수 있습니다. 교회도 주의 계신 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교회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그 가운데 있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교회를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며 사모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4. 완전함에 행하며 구속을 대망함
본문 9절에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고, 지금 신앙 양심대로 행하며 말씀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바로 살려고 애를 써서 나아가는 데, 하나님께 그런 자신을 살인자나 죄인과 함께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2절에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 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특함이라는 것은 외식과 비슷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악하지 않은 척 하지만 악한 것을 손에 숨기는 그 행동에 악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손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하오나’라고 하였습니다. 오른손에는 뇌물을 가득히 받아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뇌물 받기를 좋아하고 뇌물을 받아야 뭘 해줍니다. 그 손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의로운 척 하고 나가지만 그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불의한 일을 행해서라도 물질을 자기 손에 채우려고 합니다. 뇌물을 받아서라도 물질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속으로 거침없이 해나가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1절에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악한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하지 않고, ‘완전함에 행하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양심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살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구속하소서’라는 말은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가득하고 그들이 득세하는 이런 세대에서라도, 나는 완전함에 행하려 하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시오니 건져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는 ‘판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판단하셔서 옳은 것을 인정해주시고 주께서 여기서 건져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건져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온전하기 때문에 건져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온전하게 행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긍휼을 더욱 베풀어주셔서 그 하나님의 긍휼로써 건져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선 발은 언제나 평탄한 발입니다. 아무리 환난이 오고 풍파가 와도 하나님의 진리 안
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에 가까이 서면, 그 발은 언제나 평탄한 발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말씀대로 바로 나가는 길은 언제나 평탄합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즉 ‘믿음에 섰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에 섰고 말씀에 섰고 신령한 영적 세계에 선 사람은 언제나 그 발이 평탄한 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풍파가 많아도 그 발을 요동하지 못하고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진리 위에 굳게 섰고 하나님의 신령한 생명의 세계에 굳게 섰기 때문에, 그 발은 항상 평탄한 발이 됩니다. 그리고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 회중과 모든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앞으로 여호와 송축해야 할 것을 확신합니다. 반드시 여호와를 송축할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 확신이 있는 승리의 기도, 이런 기도로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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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9절에 “내 영혼을 죄인과 함께, 내 생명을 살인자와 함께 거두지 마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자신은 예수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았고, 지금 신앙 양심대로 행하며 말씀대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서 바로 살려고 애를 써서 나아가는 데, 하나님께 그런 자신을 살인자나 죄인과 함께 버리지 말아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12절에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 하오나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특함이라는 것은 외식과 비슷한 것입니다. 겉으로는 악하지 않은 척 하지만 악한 것을 손에 숨기는 그 행동에 악특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손은 행동을 가리킵니다. ‘오른손에는 뇌물이 가득하오나’라고 하였습니다. 오른손에는 뇌물을 가득히 받아서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뇌물 받기를 좋아하고 뇌물을 받아야 뭘 해줍니다. 그 손은 다른 사람 보기에는 의로운 척 하고 나가지만 그 속에 악한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불의한 일을 행해서라도 물질을 자기 손에 채우려고 합니다. 뇌물을 받아서라도 물질을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악한 일을 속으로 거침없이 해나가는 그런 악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 11절에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구속하시고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악한 사람들과 같이 그렇게 하지 않고, ‘완전함에 행하오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앙 양심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바로 살려고 하는 결심을 가지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구속하소서’라는 말은 구원해달라는 것입니다. 악한 자들이 가득하고 그들이 득세하는 이런 세대에서라도, 나는 완전함에 행하려 하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아시오니 건져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는 ‘판단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판단하셔서 옳은 것을 인정해주시고 주께서 여기서 건져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소서’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건져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온전하기 때문에 건져달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은 온전하게 행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긍휼을 더욱 베풀어주셔서 그 하나님의 긍휼로써 건져주시기를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진리 가운데 선 발은 언제나 평탄한 발입니다. 아무리 환난이 오고 풍파가 와도 하나님의 진리 안
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집에 가까이 서면, 그 발은 언제나 평탄한 발입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말씀대로 바로 나가는 길은 언제나 평탄합니다. ‘내 발이 평탄한 데 섰사오니’, 즉 ‘믿음에 섰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에 섰고 말씀에 섰고 신령한 영적 세계에 선 사람은 언제나 그 발이 평탄한 발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풍파가 많아도 그 발을 요동하지 못하고 움직이게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진리 위에 굳게 섰고 하나님의 신령한 생명의 세계에 굳게 섰기 때문에, 그 발은 항상 평탄한 발이 됩니다. 그리고 ‘회중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 회중과 모든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앞으로 여호와 송축해야 할 것을 확신합니다. 반드시 여호와를 송축할 것입니다. 이런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 기도, 확신이 있는 승리의 기도, 이런 기도로 끝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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