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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4:1-21 욥을 책망하는 엘리바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욥을 책망하는 엘리바스
욥기 4:1-21

1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2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찌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 3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4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5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 6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 7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8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9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 10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11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 12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13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 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14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15그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16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17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 18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19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20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21장막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 

1. 엘리바스가 욥을 책망함

본문 1-2절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누가 네게 말하면 네가 염증이 나겠느냐 날찌라도 누가 참고 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욥의 세 친구가 왔는데, 그 가운데 엘리바스가 제일 처음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욥의 친구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자인 엘리바스가 제일 먼저 욥에게 충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욥이 염증을 내고 안 들으려고 해도, 욥에게 바른 말을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전에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 주었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거늘 이제 이 일이 네게 임하매 네가 답답하여 하고 이 일이 네게 당하매 네가 놀라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이 잘한 것들을 들어서 책망을 하였습니다. 즉, 전에는 욥이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을 강하게 하고, 넘어져 가는 자를 말로 붙들어주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해주었으나, 정작 자신이 환난과 고통을 당해서는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을 가진 사람은 환난을 당할 때에 욥과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다고 전에 그 사람이 믿는 일 잘한 것과 현재의 믿음을 무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또 우리가 여기에서 배울 점은 욥이 환난 당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힘을 쓴 것처럼, 우리도 일할 기회가 있을 때에 선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할 수 있을 때에 선을 행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일에 수종들 수 있을 때에 수종을 들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셨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힘을 쓰며 나가야 합니다.
엘리바스는 욥에게 “네가 어려움을 당하여 답답해하며 놀란다”라고 하며 욥을 책망하였는데, 욥이 답답해하고 놀란 것은 사실입니다(욥3:24-26). 전에 믿는 일을 잘한 사람도 어려운 환난을 당할 때에 답답해하고, 놀라며, 고통 가운데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그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됩니다.

본문 6절에 “네 의뢰가 경외함에 있지 아니하냐 네 소망이 네 행위를 완전히 함에 있지 아니하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욥에게 네가 이만한 고난을 못 견디고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전에 네가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며 섬겼던 것은 다 거짓이라고 하였습니다. 껍데기라는 것입니다. 즉, 욥이 고통을 당하여 놀라고 답답해하는 것을 보면, 그가 과거에 믿는 일한 것이 참 신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엘리바스를 이용해서 욥으로 하여금 신앙의 달음박질을 못하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때에 욥이 엘리바스의 말을 듣고 “네 말이 옳다”고 하며, 엘리바스의 말을 받아들이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욥은 지금까지 하던 신앙 생활을 다 포기하고 잘못된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오늘날에도 마귀는 성경대로 바로 믿으려고 하던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면, 친척이나 믿음이 적은 사람을 통해서 보이는 결과만 내세워 초보적인 진리로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훼방을 합니다. 엘리바스가 말한 것이 비 진리는 아닙니다.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가지고 말했어도, 그것은 욥으로 하여금 바른 신앙을 가지고 나가게 하지 못하게 하는 마귀의 역사입니다. ‘과거에 네가 넘어진 자를 말로 붙들어주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 무릎이 약한 자를 강하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바스의 말은 “네가 현재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답답해하고 놀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네 믿음이 헛된 것임을 보여 주지 않느냐? 또 네가 바로 믿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왜 이렇게 해주시겠느냐? 네가 지금까지 진리대로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복을 받았어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귀는 예수 믿는 사람을 통해서 이치에 맞는 말, 진리에 맞는 말을 하면서 신앙을 지키지 못하게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2. 죄로 인하여 멸망이 온다고 함

본문 7절에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마귀가 엘리바스를 통하여 욥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욥이 망한 것을 보면, 그가 죄가 있고 정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의 말은 일반적인 진리입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죄 때문에 온 것이 아닙니다. 후에 욥이 복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믿는 사람도 자녀가 죽고, 재산이 없어지고, 몸이 병드는 환난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도리어 영적으로 유익이 됩니다. 단편적으로 생각해보면 욥은 지금 망했고,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종말까지 두고 보면, 욥은 망한 것이 아니고, 잘된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유익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받는 환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롬 8:18).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서 영적으로 유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8-9절에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내가 보건대’라고 하였는데, 엘리바스는 지금 자신의 체험과 지식을 통해 깨달은 것으로 욥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을 밭간다’는 것은 악을 심는다는 뜻입니다. 즉, 지금 욥이 당하는 환난을 볼 때에 그것은 욥이 지금까지 악을 행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욥의 고난은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입 기운에 멸망하고 그 콧김에 사라진다’는 것은 악을 심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 10-11절에 “사자의 우는 소리와 사나운 사자의 목소리가 그치고 젊은 사자의 이가 부러지며 늙은 사자는 움킨 것이 없어 죽고 암사자의 새끼는 흩어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사자’는 악한 자를 가리킵니다. 악한 자가 위엄과 권위 있는 소리를 발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그 소리를 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욥이 전에 남에게 좋은 말을 많이 해주었지만, 그가 악하였기 때문에 지금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책망을 하는 것입니다. 엘리바스는 지금 욥이 큰 고난을 당하여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상해 있는데, 그것을 위로하기는커녕 도리어 죄 값으로 환난을 만난 것이라고 하면서 욥으로 낙심케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이 환난으로 연약한 가운데 있을 때에, 아무리 바른 말일지라도 그 사람을 잔인하게 책망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병이 났을 때에 심방을 가서 그 사람에게, 이 사람이 회개하라고 하고 저 사람이 회개하라고 하면 환자는 “너희들은 얼마나 잘했기에 나한테 회개하라고 하느냐?”고 하면서 도리어 시험에 들기 쉽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병이 들 수 있
습니다. 그러나 매 번 가는 사람마다 죄 값으로 그렇게 되었으니 회개하라고 하면 도리어 마음이 더 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 값으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위로해주고, 싸매주고, 낫도록 도와주며, 살려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엘리바스와 같이 혹독하게 책망한다고 해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회개하는 여부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지금 엘리바스가 욥을 공격하는 것은 욥으로 하여금 바른 신앙에서 떠나게 하려는 마귀의 시험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마귀의 시험이 때때로 오는데, 우리는 말씀에 굳게 서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욥은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바른 신앙을 지켜 나갔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잘될 때에만 말씀대로 나가고, 환난이 들어오면 말씀을 내버리고 나가는 것은 욥의 신앙이 아닙니다. 

3. 엘리바스가 자기가 본 이상(異像)을 말함

본문 12절에 “무슨 말씀이 내게 가만히 임하고 그 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자신이 하나님의 어떤 세미한 영감을 받은 것을 말하며 들어보라는 것입니다.

본문 13-17절에 “곧 사람이 깊이 잠들 때쯤 하여서니라 내가 그 밤의 이상으로 하여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골절이 흔들렸었느니라 그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었느니라 그 영이 서는데 그 형상을 분변치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때 내가 종용한 중에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기를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잠들 때에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두려워서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상을 볼 때에 두려워서 떠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니엘도 두려워서 떨었고(단 10:8, 16-17), 사도 요한도 이상을 볼 때에 주의 발 앞에 엎드러졌습니다(계 1:17). 그것은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상을 볼 때에 그 영광의 눈 앞에 자신이 너무 부족한 것을 깨닫기 때문에 두렵고 떨리는 것입니다. ‘인생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성결하겠느냐’라는 말은 인생이 하나님보다 의로울 수 없고 성결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바스는 지금 욥의 의와 성결 생활을 무시하고 정죄하기 위해서 이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믿음으로 의롭고 성결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 정직하고, 순전하고, 악에서 멀리 떠난 높은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본문 18-19절에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종’과 ‘사자’는 천사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그 천사라도 믿지 아니하시고 사자라도 미련하다고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대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사들도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는 절대 완전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앞에서도 다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해나갈 수 없습니다. 즉, 천사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라도 하나님의 지배를 받지 않고 내버려두면 하나님의 일이 되지 않습니다. 영물(靈物)인 천사라도 이처럼 완전하지 못한데, 하물며 흙 집에 살고 티끌로 터를 삼으며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흙 집’은 사람의 육신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육체를 하나님께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창 2:7). 그리고 ‘티끌로 터를 삼는다’는 것은 사람이 흙 속에서 살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또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라는 것은 하루살이와 같이 미약한 벌레, 또는 세균에 침해를 당해 죽는 것이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즉, 보잘 것 없는 세균에도 꼼짝 못하고 병들어 죽는 미약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내놓을 것이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바스는 욥에게 의를 지킨다는 말, 성결을 지킨다는 말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 영원히 망하되 생각하는 자가 없으리라 장막줄을 그들에게서 뽑지 아니하겠느냐 그들이 죽나니 지혜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조석 사이에 멸한 바 되며’는 사람의 일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짧다는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장막줄은 육체를 가리킵니다(고후 5:1). 그리고 장막줄을 뽑는다는 것은 육체의 죽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인간의 죽음이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엘리바스가 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욥의 경건한 신앙을 부인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시 91:11-12), 예수님을 시험한 것과 같습니다(마 4:5-6). 엘리바스가 영감 받은 것은 사실이며 진리이나 그것을 잘못 이용하였습니다. 

그러나 욥은 여기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의와 성결과 순전함과 정직함을 지켜 나갔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끝까지 신앙 양심을 양보하지 않고, 진리를 지켜 나간 욥의 신앙을 본받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