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의 신앙
사무엘상 1:20-28
20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28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상 1:20-28
20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21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22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23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젖 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떼기까지 기다리다가 24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 25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26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27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28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1. 환난 때에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감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는 내용입니다. 본문 20절에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서 기도를 많이 하였고 기도가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낳게 하셨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치는 내용입니다. 본문 20절에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서 기도를 많이 하였고 기도가 상달되어서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낳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장 6-7절에 “여호와께서 그로 성태치 못하게 하시므로 그 대적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동하여 번민케 하더라 매년에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동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대적 브닌나가
한나를 심히 격동시켜서 번민케 하였습니다. 엘가나는 아내가 둘인데, 본처는 한나이고 그 다음에 취한 여자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많이 낳았고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브닌나가 늘 한나를 격동시켜서 번민케 하며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고통스러워서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한나를 심히 격동시켜서 번민케 하였습니다. 엘가나는 아내가 둘인데, 본처는 한나이고 그 다음에 취한 여자는 브닌나입니다. 브닌나는 아이를 많이 낳았고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했는데 브닌나가 늘 한나를 격동시켜서 번민케 하며 괴롭게 했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고통스러워서 울고 먹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를 많이 하였습니다.
브닌나가 낳은 아이가 자라나서 제사하러 같이 올라간 것을 보면 열 살이 넘었을 것 같습니다. 브닌나가 낳은 자녀가 자라나서 같이 제사하러 올라 갈 때까지도 10년이 넘도록 한나는 아이를 못 낳았던 것 입니다. 거기다가 브닌나가 격동시켜 번민케 하니까 한나는 하나님밖
에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서 호소를 했습니다. 사무엘상 1장 10-11절에 “한나가 마음이 괴로와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슬퍼하고 괴로워하여 통곡하면서 기도할 때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을 주시면 평생에 그 아이를 하나님께 바쳐 나실인을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바친 사람을 나실인이라고 하는데 머리를 깎지 않고 성별(聖別)하여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긍휼을 베푸심
사무엘상 1장 8절에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뇨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브닌나가 핍박을 하여 한나가 울며 먹지 않으니까 남편이 불쌍히 여겨 자기가 열 아들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핍박 받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또 믿음이 있는 사람이 불쌍히 여깁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핍박하고 믿음 있는 사람은 불쌍히 여깁니다. 남편이 믿음 있으면 남편이 열 아들보다 낫고, 또 자녀들이 믿음이 있으면 자녀들이
열 아들보다 낫고, 또 형제가 믿음 있으면 형제가 열 아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열 아들보다 낫도록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생기게 하시고 또 도와주게 하십니다. 가족 가운데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생기고 더욱 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합니다. 이런 핍박이 없었다면 기도를 많이 못했을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못하면 이렇게 열 아들 보다 나은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없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니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또 식구들 가운데서 열 아들보다 나은 사람이 생기도록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한나를 보니까 입술만 동했다고 했습니다. 말소리를 안 내고 기도를 오랫동안 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12-18절에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동하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엘리 제사장 곁에 서서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6절에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고 하였는데 서서 기도하던 자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서서 기도를 했는데 음성은 내지 않고 입술만 움직였습니다. 그러니까 묵상 기도가 있고 또 이렇게 음성을 내지 않고 입으로만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고 하면 “감사합니다”는 말은 안 들리는데, “감”하니깐 입을 다물고 “사”하며 벌리고 또 “합”하고 다무니까 이렇게 입만 동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이 볼 때는 이 여자가 옆에 서서 입술만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포도주를 먹은 줄 알고 “포도주를 끊으라 언제까지 이렇게 포도주를 끊지 않고 취하겠느냐”하며 오해를 한 것입니다.
그때에 한나가 사실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 심정을 토한 것입니다. 당신 여종을 악한 여종으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술 먹었다고 하니까 “악한 여종으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술 먹은 것을 악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술 먹는 것을 악한 것으로 알고 술을 먹지 말아야 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라고 하니, 엘리가 그 말을 다 옳게 받아 인정을 하고 술 먹은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마음 가운데 간절함이 있어서 입술로만 기도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에 한나가 사실을 다 이야기 했습니다. “나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고 여호와께 심정을 토한 것입니다. 당신 여종을 악한 여종으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술 먹었다고 하니까 “악한 여종으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을 보면 술 먹은 것을 악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술 먹는 것을 악한 것으로 알고 술을 먹지 말아야 겠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라고 하니, 엘리가 그 말을 다 옳게 받아 인정을 하고 술 먹은 것이 아니라 이 여자가 마음 가운데 간절함이 있어서 입술로만 기도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1장 17절에 “엘리가 대답하여 가로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평안히 가라고 할 때에 그 말을 받아들이면 마음에 평안이 들어옵니다. 평안히 가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고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믿고 기도했지만, 또 제사장이 “하나님께서 너의 기도와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니 하나님이 허락해 줄 것을 더욱 더 믿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1장 18절에 “가로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색이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근심이 다 없어졌습니다. 왜 없어졌습니까? 믿으니까 없어진 것입니다. 믿으면 수색이 없어집니다. 수색은 근심 빛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근심 빛이 없어지고 믿지 못하면 근심 빛이 들어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잘 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엘리가 “네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기를 원한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또 “평안할지어다. 평안히 가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서 수색이 다 없어졌습니다.
믿으면 근심 빛이 없어지고 믿지 못하면 근심 빛이 들어옵니다. 한나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잘 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엘리가 “네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기를 원한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은 것입니다. 또 “평안할지어다. 평안히 가라”고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셔서 수색이 다 없어졌습니다.
사무엘상 1장 19-20절에 “그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경배하고 돌아가서 라마의 자기 집에 이르니라 엘가나가 그 아내한나와 동침하매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한나가 잉태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들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들을 주셨다는 뜻으로 사무엘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고 하였습니다. 한나가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들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셔서 아들을 주셨다는 뜻으로 사무엘이라고 이름 붙인 것입니다.
3. 사무엘을 바침
본문 21-23절에 “그 사람 엘가나와 그 온 집이 여호와께 매년제와 그 서원제를 드리러 올라갈 때에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그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 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이에 그 여자가 그 아들을 양육하며 그 젖떼기까지 기다리다가”라고 하였습니다. 엘가나가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리려고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실로로 올라갈
때에 한나는 올라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한나는 남편에게 아이가 젖떼기까지는 올라가지 않고 기르다가 젖 뗄 때에 올라가서 영영히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남편인 엘가나는 한나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젖을 뗀 후에 사무엘을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본문 24절에 “젖을 뗀 후에 그를 데리고 올라갈새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실로 여호와의 집에 나아갔는데 아이가 어리더라“고 하였습니다. 젖을 뗀 후에 하나님께 바치려고 데리고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몇 살 되면 젖을 뗍니까? 첫 돌 지나면 떼는 사람도 있고, 또 좀 더 세 살 날 때까지 먹이는 사람도 있고, 또 오래 먹이는 사람은 일곱 살까지 먹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사무엘은 몇 살에 젖을 뗐습니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젖 뗀 후에도 부모와 떨어져서 있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칭얼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살이나 세 살된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 혼자 살아야 되니까 ‘한 다섯 살이나 일곱 살까지 기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것입니다. 몇 살 되면 젖을 뗍니까? 첫 돌 지나면 떼는 사람도 있고, 또 좀 더 세 살 날 때까지 먹이는 사람도 있고, 또 오래 먹이는 사람은 일곱 살까지 먹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사무엘은 몇 살에 젖을 뗐습니까?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젖 뗀 후에도 부모와 떨어져서 있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칭얼거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살이나 세 살된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서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 혼자 살아야 되니까 ‘한 다섯 살이나 일곱 살까지 기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제사하러 올라갈 때에 같이 안 올라갔습니다. 왜 같이 안 올라갔습니까? 단번에 바치기 위해서 해마다 올라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단번에 성소에 와서 한 번에 바치고 다시는 데려오지 않으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젖떼기까지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젖 떼고 난 다음에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올라갈 때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에바는 22리터로 대두 한 말 한 되입니다. 포도주 한 가죽 부대니까 많은 양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올라가서 하나님께 사무엘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25-28절에 “그들이 수소를 잡고 아이를 데리고 엘리에게 가서 한나가 가로되 나의 주여 당신의 사심으로 맹세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나의 구하여 기도한 바를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 아이는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갈 때 수소 셋과 가루 한 에바와 포도주 한 가죽 부대를 가지고 같이 가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제물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구속해 줄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 드릴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제물 없이는 하나님께 바쳐도 합당치 않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구속, 예수님께서 제물
이 되어 주신 것, 속죄양 되어 주신 구속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바쳐야합니다. 또 가루는 예수님께서 희생해 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되어 주신 것, 속죄양 되어 주신 구속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바쳐야합니다. 또 가루는 예수님께서 희생해 주실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해 주신 그 은혜를 힘입고 나와서 바쳐야 됩니다. 예수님 없이 바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희생과 구속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사를 다 힘입어서 하나님 앞에 바치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4. 서원을 하고 서원대로 갚음
한나는 전에 서원하였고 그 서원한 것을 그대로 하나님께 갚았습니다. 사무엘상 1장 11절에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
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서원한대로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신명기 23장 21-2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대로 행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서원한 것은 더디 하지 말고 빨리 갚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서원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야곱도 어려울 때에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가다 벧엘에서 돌베게를 베고 자다가 꿈에 계시를 보고 일어나서 세 가지를 서원하였습니다. 창세기 28장 20절에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평안히 돌아오게 해주시면 성전, 즉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셋째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입니다.
‘어려운 데서 건져주시면 이 몸을 바치겠습니다’라고 서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구속의 은혜에 감격하여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이 없어 이 몸을 바칩니다’라고 하며 몸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또 죽을 병이 걸렸을 때 ‘낫게 해주시면 평생을 하나님께 다 바쳐드리겠습니다’하고 서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낫게 해주시면 자기의 모든 재산의 절반, 또는 다 바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것이 감사해서 재산 절반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고, 토색 한 것이 있으면 4
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삭개오는 그대로 했을 것입니다.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구제하였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인데 얼마나 돈이 많았겠습니까? 요새로 말하면 몇 억대, 몇 백 억대였을 것입니다. 재산 절반을 바치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바치면 자기 돈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너무 감사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서원하는 신앙이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이 잘되면 10분의 2를, 3을, 그리고 9까지를 바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그래서 사업이 잘 되어 10분지 9를 바쳤는데, 10분지 1만 가지고도 부자라고 합니다. 서원한 것을 갚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서원한 것을 안 갚으면 하나님께 죄라고 하였습니다. 또 서원한 것은 더디 하지 말고 빨리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한번 바치기로 서원했으면 더디 하지 말고 빨리 갚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연보 작정한 것도 일종의 서원인데 이것도 빨리 갚는 것이 좋습니다. 빨리 안 갚고 여기저기 다 쓰다가 일이 잘 못되면 못 갚을 수도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갚는 것이 좋습니다.
한나는 서원하였고 서원한 것을 그대로 갚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하나님께 바쳤는데 이것은 보통 신앙이 아닙니다. 아들을 하나님께 한 번 바치면 평생을 집에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런데 서원한 대로 수소 세 마리,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에 감사하여 바치는 생활을 했습니다. 우리가 바친다고 해도 무슨 공로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 죽을 것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구속해 주신 것이 감사해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아들을 바쳤어도 죽었을 것인데 안 죽게 해주셨으니 감사한 것입니다. 또 바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십니다. 한나가 아들을 바쳤는데 더 많이 주셨습니다. 사무엘상 2장 21절에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무엘을 바치니까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를 바치고 다섯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치면 하나님께서 잘라 먹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바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더 주십니다. 그래서 아들 셋을 더 주셨고 딸 둘을 더 낳게 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치는 것이 사실은 받는 것입니다.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안 바치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고 바치면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시고 또 하늘에 보화
를 쌓은 것이 됩니다.
우리는 서원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고 서원을 한 후에는 갚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는 서원을 하지만 나은 다음에는 서원한 것을 안 갚기도 합니다. 죽을 고비에 빠졌을 때는 낫게만 해주시면 재산을 다 바치겠다고 했지만 나으면 절반도 안 바칩니다.
그러나 서원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기 때문에 서원한 것을 갚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면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 죽이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일평생 자기 몸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면 몸을 바쳐야 합니다. 서원해놓고 안 바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작정한 것들은 다 서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원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고 서원한 다음에는 갚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서원도 안 하고 서원했어도 갚지 아니하면 감각이 둔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서원도 하고 갚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서원한 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기 때문에 서원한 것을 갚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다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면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안 죽이시고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일평생 자기 몸 바치겠다고 서원했으면 몸을 바쳐야 합니다. 서원해놓고 안 바치는 것은 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작정한 것들은 다 서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원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고 서원한 다음에는 갚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서원도 안 하고 서원했어도 갚지 아니하면 감각이 둔해져서 하나님 앞에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서원도 하고 갚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더 많이 주시고 기도를 들어주시고 평안도 주십니다. 우리도 한나와 같이 서원하고 서원한 것을 갚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