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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역대하 31:1-2 유월절을 바르게 지키는 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유월절을 바르게 지키는 법
역대하 31:1-2

1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1. 절기를 지킨 후 백성들이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의 우상들을 파멸함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킴으로 은혜가 충만함

본문 1-2절에 “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온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께 감동된 자들이 예루살렘에 다 모여서 유월절을 성대히 지켰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유월절을 지키고 보니,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마운 것입니다. 이에 백성들이 감사가 넘쳐서 ‘이제는 하나님 을 위해서 살아야 되겠다.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다 끊어버려야 되겠다’고 하면서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우상, 산당, 아세라 목상들을 다 깨뜨리고 불살랐습니다. 우상들을 다 불살라 전국을 정결케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유월절 지키는 정신을 가져야 함

1) 유월절 양(羊)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해야 함

고린도전서 5장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 양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신약시대에도 유월절을 지키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유월절 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그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정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신 것을 깊이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는 믿음을 가지고 유월절 양을 먹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살에 참여하는 사람이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신약시대에 사는 성도는 이 유월절을 영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늘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 누룩 없는 떡을 먹어야 함

또 누룩 없는 떡을 먹으라고 했는데, 누룩은 죄악의 요소, 부패성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죄악적인 요소를 날마다 제하고 시기와 분쟁과 쟁투와 비방과 외식과 악독을 다 제거해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심령이 온전히 진실하고 순전하게 되어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또 성도들 간에도 진실하고 순전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 단합하고 합심하여 하나님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생활입니다. 

또 성도 간에 누룩 없는 떡으로 단결하여야 합니다.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들어오면 안 됩니다. 시기, 쟁투, 이기주의, 교만, 비방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누룩 없는 떡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싹 다 내어버리고 사랑과 진실과 성실한 마음으로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서로 단결하여 영의 자유와 영의 생명, 영의 해방, 죄에서 해방하는 것, 악마의 계교에서 해방 받아 영의 자유의 세계를 향해서 날마다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정신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부족해서 실수한 것은 하나님께서 다 싸매 주시고 또 잘못된 것도 고쳐주시고 실수를 안 한 것같이 대해주십니다.
그러나 애초에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양심을 쓰고 진실하고 참되게 하려고 하며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만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3) 내게 있는 모든 귀한 것을 다 기울여야 함

원래는 유월절을 지킬 때 양 한 마리만 잡았습니다. 그리고 문설주에 그 피를 바르고 고기는 먹어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역대하 30장에 보면 양이나 소를 만 구천 마리나 바쳤습니다. 그것은 제물로서 양 한 마리면 되지만 유월절 지키는 일에 전심전력을 기울여 많은 정성을 드린 것입니다. 값진 것을 바치고 희생을 많이 하고 또 모든 귀한 것을 다 갖다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마음이 많이 가야 하고 정력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힘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공력이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유월절로 지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솔로몬이 처음에 왕이 되어 일천 번제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그 다음 성전을 지은 후 십사만 이천 마리를 드렸는데 그때에도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을 많이 가져오는 것,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정성을 드리고 하나님을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것, 바로 그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정신과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정성을 다해서 섬겨야 합니다. 정성, 마음, 물질, 힘, 모든 것을 다 기울이고 피땀을 많이 기울여서 하나님을 섬길 때 비로소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리고 그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쉽게 먹는 것은 안 됩니다. 쉽게 먹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사경회에도 공력과 전심전력을 많이 드리면서 참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예 전날 밤부터 뭉개대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일심정력을 기울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늦어지고 하는 사람은 양 한 마리만 겨우 바치는 사람입니다. 양 한 마리도 귀는 다 잘라 먹고 바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 정성이 들어가지 않는 것입니다. 미리 예비하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전적으로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하나님 앞에 애를 쓸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양 십사만 이천을 가지고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이 세상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만큼 많은 정성을 기울이고 희생하는 것이 값진 것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역대하 30장에서 히스기야 왕이 제물 일만 구천을 바친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것을 귀히 여기시고 받으신 것입니다. 양의 숫자를 귀히 여기는 것이 아니고 바치는 믿음과 정성과 그 마음을 귀히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히스기야의 기도가 하나님께 들으신 바 되고 거룩한 처소인 하늘에 상달되었다고 하였습니다.

4) 우상을 제거해야 함

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집에 돌아가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더러운 것들, 우상 단지들, 아세라 목상들,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들을 싹 다 제거시켜야 합니다. 때려 부술
것은 때려 부수고 불태울 것은 불태우고 다 없애치워야 합니다. 아예 끊어 버릴 것은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담배 먹는 사람은 담배도 끊어버리고, 술 먹는 사람은 술을 끊어버리고, 또 못된 행실을 하던 사람들은 그 행실을 싹 다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서 돌아가셨는데 그것도 하나 끊어버리지 못합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써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으라고 하셔도 바로 죽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그것 하나 못 끊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다시 말하는데 죄악의 여러 가지 끈, 가증한 것들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양심에 가책되는 것들,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들을 전부 싹 다 끊어버려야 됩니다. 우상을 다 제거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유월절을 지킨 것이 전국에 하나님의 은혜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래야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나갑니다. 유월절 양의 빛이 비춰나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양을 먹고 나서 여전히 그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리스도의 빛이 비춰나가지 못하고 도리어 흑암에 싸이게 됩니다. 어두움에 싸이고 맙니다. 유월절을 잘 지내고나서는 우상을 다 제거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인가? 과거에 양심 안 쓴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일한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하면서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물어줄 것은 물어주고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어야 합니다. 합당치 않은 것을 싹 다 정리해서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 집안을 깨끗하게 만들고 동네를 깨끗하게 만들고 그리스도의 빛이 전국에 비춰나가도록 하고 자유와 생명의 길을 열어주어야 되겠습니다. 

새로운 것, 좋은 것을 다시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안 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역사는 새 술의 역사인데, 새 술을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5장 37-38절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부대가 터져서 포도주도 버리고 부대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새
포도주는 무엇입니까?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어나가시는 새 생명의 역사입니다. 새 포도주가 새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루어나가시는 새 생명의 역사, 자유와 해방의 역사, 새 생명이 전진하는 역사가 새 포도주입니다. 

그러면 낡은 가죽 부대는 무엇입니까? 낡아빠진 의문과 제도입니다. 로마서 7장 6절에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낡은 가죽 부대가 의문이고 영이 살아나가는 것이 새 포도주라고 하였습니다. 새 포도주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의 자유와 생명을 얻어서 계속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낡은 가죽 부대는 얽매이는 것들, 제도와 의식과 의문에 얽힌 것들인데, 이것들은 새 포도주의 길로 걸어 나가려고 할 때에 못 걸어가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에 얽매이고 그것들이 막고 매달리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다 벗어버려야 합니다. 

또 새 포도주는 팽창력이 있기 때문에 힘이 있어서 낡은 가죽 부대에 넣으면 그 부대가 다 터지고 맙니다. 진짜 새 포도주면 낡은 가죽부대를 터트리고 나옵니다. 터지지 말라고 해도 터지게 되어 있습니다. 툭툭 다 터트려 내버리고 영의 역사의 길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여기
를 가야 내가 산다고 하면서 사는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낡은 가죽 부대에 얽매어서 터치지 못하는 것은 새 포도주의 역사가 시원치 않은 사람입니다. 새 포도주의 역사가 강한 사람은 다 터치고 나오게 되어 있으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 부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진리의 말씀 속에 새 생명의 역사가 들어가야 점점 힘 있는 새 생명의 역사가 계속 확장되어 나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는 정신으로 더러운 것들을 다 제거해야 합니다. 우상을 다 깨트려 내버려야 합니다. 안 내버리면 도리어 우상의 종이 됩니다. 노예가 해방되었다가 다시 얽매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다 벗어버리고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가서 얽매이는 것들, 계하는 것들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여기도 아마 계하는 사람이 왔을 것입니다. 계하다가 쫄딱 망한 사람 봤습니다. 집어치울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모든 것들은 다 우상들입니다. 우상과 더러운 것들, 다 집어치우십시오. 사치,향락주의, 노라리 다니는 패들, 언제나 노라리 다니는 패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다 집어치우지 않으면 믿음을 못 지킵니다. 믿음 못 지키는 모든 요소들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고 영의 자유의 길을 걸어 나가야겠습니다. 자유의 길을 걸어 나가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을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5) 애굽을 떠나 자유와 해방을 누려야 함

그 다음에는 애굽을 떠나서 자유와 해방을 받아 영의 자유, 영의 해방, 신앙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쓰며 날마다 새 생명으로 걸어 나가는 생활을 하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생활입니다. 날마다 모든 얽매이는 것과, 압제당하는 것과, 거리끼는 것들을 벗어버리고 영의 자유를 써서 새 생명의 길을 걷고 새로운 가나안 땅을 향해서 힘 있게 전진하는 것이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상한테 종살이하고 있는 것을 다 제거시켜야 생명의 길을 걸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집에 돌아가서 이 길을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 모여서만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도 지키는 것입니다. 해방과 영의 자유가 계속해서 자라나고 향상 하며 전진해야 합니다. 

6) 얽매이기 쉬운 죄, 무거운 것들을 벗어버려야 함

얽매이는 것들이 하나씩 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예수를 따라가도 돈이 있어야 산다는 생각이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을 깨뜨려야 되겠는데 그 우상을 깨뜨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중에 예수를 팔아먹었습니다. 또 삼손은 여자가 우상이 되어 기생을 끊어버리지 못함으로 마지막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아들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남편이 우상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베냐민의 지파다. 양반이다’, 이런 것들이 자기 속에 들어가서 자유와 생명의 세계로 제대로 못 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얽매어서 못 가는 것입니다.

또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은 얽매이기 쉬운 것들인데, 이것을 집어치워야 합니다. 집안의 부모님 생일은 가족끼리 모여서 챙기는 것은 괜찮으나 젊은 사람들이 자기 생일을 차린다고 하는 것은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생일은 자손들이 간단하게 해드리는 것이 괜찮습니다. 그래도 다들 자기 생일은 안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뭘 잘했다고 생일을 해먹습니까? 생일은 예수님하고 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12월 25일 예수님과 합해놓았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내 생일만큼 잘 지키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 생일하고 합해 놓았으니까 세계적인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지키는 데 얼마나 좋습니까? 뭘 하려고 따로 하고 있습니까? 

이제 얽매이는 것은 싹 다 집어치우고 가는 것입니다. 훨훨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고 온 사람입니다. 그래야 또 빛이 비춰나가지 않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유월절은 생명과 자유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동네에 가서 생명 운동과 자유 운동을 해야 합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간 사람이 생명 운동, 자유 운동을 해야 합니다. 그 동네 사람들에게 해방을 시키고 자유를 주어야 됩니다. 그런데 우상을 다 가지고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제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영의 해방 운동가요, 자유 운동가입니다. 우리가 가는 데마다 그리스도의 빛을 비춰서 마귀에게 얽매인 사람을 불러내고, 죄악에 얽매인 사람을 해방시켜 주어야 합니다. 각처에 영의 자유와 영의 힘을 쓰게 만들어서 영의 길을 힘 있게 걸어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유월절 양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그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 신 신학자들은 영의 해방과 자유를 사회 해방과 사회 자유에다 붙여서 ‘예수 믿는 사람이 이제 사회를 해방시켜야 한다. 사회에서 자유 운동을 해야 된다’라고 하며 기독교 사회주의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도를 이 세상에 이용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가이사에게서 해방 운동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가이사에게 투쟁하라고 하셨습니까? 또 가이사에게 해방이 되어서 자유 운동을 하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또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와 정치를 갈라놓고 영의 운동을 하라고 했는데, 요새는 영의 운동은 안하고 사회 운동에 기독교를 이용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를 사회 운동 기관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전 기명을 세상에 사용하는 것으로, 신성 모독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성전 기명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 이렇게 세상에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벨사살 왕은 자기 잔치하는 데에 성전 기명을 가져다 놓고 그것으로 술을 먹다가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와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고 하셨고, 바로 그 밤에 그가 망했습니다. 성전 기명은 거룩하기 때문에 하나님께만 사용되어야 합니다. 거룩하게 사용해야 하고 신령한 성전에 사용해야지, 이 세상에 사용하는 것은 죄입니다. 즉, 기독교가 세상 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 운동을 하는 것은 성전 기명을 세상에 쓰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