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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0일 토요일

누가복음 22:35-45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누가복음 22:35-45

35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40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41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45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1.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내 보내실 때에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심

본문 3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내 보내실 때에 필요한 것을 다 주어서 먹고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다른 사람을 의지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의지하여 얻어먹으려 하고, 받아먹으려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을 의지하게 되면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또, 의지하면 그 사람이 싫어합니다. 교인들이 무엇을 대접해 줄까?, 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대접 받지 않으려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 좋고, 교인들은 교역자를 대접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역자들은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대로 먹는다”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하나님이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안 주시지만, 의지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지나간 주일 우리 교단이 아닌 어떤 교회에서 그 교회 장로들이 목사에게 천 만원권 수영장 표를 사주겠다고 하였으나 그 목사님이 거절했다고 합니다.
걸어 다니는 운동, 좋습니다. 하루에 만보 걸으면 좋다고 합니다. 신문에 기사가 실렸는데, 병으로 쓰러진 사람이 매일 3km를 뛰어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걷는 것이 좋은 운동입니다. 유병선이라는 내과 의사의 처남이 미국에서 큰 병원을 하는데, 미국인 의사를 20명쯤 두었다고 합니다. 예전에 한국에 왔을 때에 만났는데, 자기 사무실은 5층인데 엘리베이터를 안 타고 매일 5층까지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자기 건강이 유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병원장인데다 상당히 큰 부자로 건물 아래층에 사무실을 둘 수도 있는데, 5층에 자기 사무실을 두고 매일 몇 번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건강 유지법이라고 합니다. 걸어서 자기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도 걸어야 합니다. 저는 노인 목사들을 만나면 아침에 걸으라고 합니다. 매일 아침에 걸어서 기도하러 가라고 하고 또, 자전거 타고 가라고도 합니다. 자전거 타는 것도 좋습니다. 자전거 하나 구입해서 매일 기도하러 한 반시간 타고 갔다가 또, 한 반시간 타고 오면 좋습니다. 자기 건강을 자기가 유지해야 합니다. 자기 건강을 스스로 유지하지 못해서 병이 나면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떤 분들을 보면 하루 종일 집 안에 가만히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 안에만 가만히 있으면, 쇠로 말하면 점점 녹이 슬어 기계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걸어 다녀야 녹이 다 벗겨지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새 아침에 보면 세브란스 병원 뒷산에 사람이 하얗게 올라갑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물통 하나씩 짊어지고 몇 백 명이 올라갑니다. 올라가서는 산 꼭대기에서 물 한 통씩 지고 내려옵니다. 아침에 가는 사람, 해 뜬 다음에 가는 사람, 또 오전 10시쯤에 가는 사람, 11∼12시쯤에 가는 사람, 오후 1시에 가는 사람 등 많이 올라갑니다. 아침에 가면 물이 새끼손가락만큼 나오는데, 그 앞으로 물통은 한 20~30개 놓였기 때문에 한 통 받아가려면 한 시간 이상 걸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따로 할 일 없는 사람들은 한 10시쯤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11시쯤 올라가고, 또 점심 먹고 올라가고, 거기 한 번 올라가면 운동이 상당히 잘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멀리서 자동차 타고 와서 그 아래 차를 세워 놓고 물통을 가지고 올라갔다 옵니다. 자기 건강을 유지하도록 힘쓰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면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 의지하면 안 됩니다.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실 때에 “없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6절에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환란이 임박한 때이므로,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대접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일을 자기가 하면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할 수 있게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쌀 한 말 지고 소금 한 봉지 싸가지고 누가 안 도와줘도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곤로 하나 가지고 밥 해먹고 전도하며, 자는 것은 산에서 자든지 아무데서 나 자는 것입니다. 6.25 사변 때에 산에서 상당히 오래 잤는데, 산에서 자도 젊었을 때는 거뜬합니다. 그러므로 대접해 주지 않아도 괜찮으리만치 준비해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영적 무장을 하라는 뜻입니다. 이제는 영이 먹을 것, 영이 쓰고 살 것을 준비해야 합니다. 검 없는 사람은 겉옷을 팔아 사라고 했는데, 이것은 영적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 무기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생명이 되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길만한 그런 능력의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본문 38절에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검 둘이 있다고 하니까 예수님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족하다, 는 말은 검 둘로 족하다는 말이 아니고 오늘은 그만큼 알아도 족하다는 뜻입니다. 오늘은 검을 준비하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족하다, 알기만 해도 족하다, 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다음에 가면 참 뜻을 알 것이다, 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2.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의 기도를 하심

본문 39-44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습관을 좇아 가셨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하러 가셨습니까?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기도하시러 가는 습관을 세워 놓았습니다. 그 습관을 좇아서 감람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어지간하면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이 멀지 않다고 합니다. 걸어서 가도 얼마 안가면 도착하는 것 같습니다. 걸어서 한 30분쯤 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 걸어가셔서 기도하시고는 했습니다. 또, 제자들도 예수님을 따라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았습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기도하러 좇아가고 했을 것입니다. 습관을 세우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러 가서 기도한 사람은 그때 은혜 받은 기억이 영원히 남습니다. 또, 그것이 영적 무장이 되고 옷을 팔아 검을 사는 것이 되고 주머니나 전대를 준비하는 것이 됩니다. 감람산에서 기도하는 것이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 안하는 사람은 준비 하나도 못합니다. 그리고 남는 것이 없습니다. 기도 안 하고 집에서 잠 잤다고 하면 잠잔 것 가지고 남는 것이 있습니까? 또, 기도 안 하고 집에서 놀았다고 하면 논 것의 열매가 있습니까? 기도 한 것은 열매가 있고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습관을 세우는 것이 참 좋습니다. 

우리도 기도원에 가는 습관이 얼마나 좋습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는 습관을 세워 놓는 것이 아주 좋습니다. 광주 기도원에 기도하러 가는 버스가 매일 한 차례씩 있습니다. 어제 그저께 가서 또 자고 왔다고 하지요? 몇 사람 자고 왔습니까? 자면서 기도하고 오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여간에 기도하러 가는 습관을 세워 놓는 것일 좋습니다. 안 간 사람은 무엇을 했지요? 안 간 사람은 아들네 집에 가고 딸네 집에 가고 부모네 집에 가고 친척 집에 가고 또, 떡 해 먹고 노라리 다니고... 남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기도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설이나 추석 등 큰 명절에 고향에 갑니다. 그런데 천안 가는 데, 열세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천안 가는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으면 보통 한 시간이면 갑니다. 새벽에 가도 한 시간 안에 다 갑니다. 그리고 어제 제가 신갈에 교회 할 자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들렀다 기도원에 가려고 한 시간 반으로 시간 계산을 하고 움직였습니다. 고속도로가 밀리지 않을 때는 한 시간도 안 걸립니다. 그래서 한 시간 반이면 가지 않겠나?, 하고 김성진 목사보고 먼저 가서 기다리라고 했는데, 고속도로에 차가 빽빽이 들어서서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하는 겁니다. 결국 천안에서 신갈 가는 데 3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김성진 목사가 기다리다 기다리다 가고 말았습니다. 제가 시간 어기는 성격이 아닌데 아마 두어 시간 기다려도 오지 않으므로 이것은 분명히 안 오는 것인가 보다, 하고 달아나고 그만두었다는 말입니다. 그날은 추석날인데, 보통 천안 가는 차들이 추석 전날 다 갑니다. 추석 전날 다 갔기 때문에 추석날 오후는 괜찮을 것이다, 하고 갔는
데, ‘괜찮을 것이다’하는 사람이 너무 많이 나온 것 같습니다. 추석날 오후에 가면 안 막힐 것이다, 라는 얉은 꾀 있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날 차가 연휴 중에 제일 많이 밀렸다고 합니다. 꾀 있는 사람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있을까요? 한 시간이면 갈 것을 열세 시간 걸리는 고속도로 다니는 것 말입니다. 오늘도 서울로 올라오느라고 또 그 모양 났을 것입니다. 우리 한국에 못된 풍속, 습관이 있어서 이렇게 길바닥에서 시간 다 보냅니다.
또, 정부에서 사흘 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0, 11, 12일 사흘 놀라고 했는데, 그 전날 다 떠났다고 합니다. 또, 9일은 오전만 하고 오후는 다 떠나버린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놀기 좋아하고 허영심이 많고 허풍을 좋아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동차 하나 사가지고 고향 가서 자랑하려고 기를 쓰기 때문에 길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자기 영이 사는 길이고 영적 무장을 하는 길이고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는 일이고 전대나 주머니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제자들도 좇았습니다. 

본문 40절에 “그 곳에 이르러 저희에게 이르시되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 안 하는 사람은 시험에 듭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여야 합니다.

본문 41-42절에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 제자들을 머물러 두고 예수님께서는 앞에 나가서 기도하셨습니다. 돌 던질 만큼은 한 50m쯤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기도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한 거리입니다. 그러므로 음성을 좀 내어서 기도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음성을 내지 않고 기도하는 것도 좋고 음성을 내서 기도하는 것도 좋습니다.

본문 42절에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내용 첫째는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자기 뜻대로 기도하면 안 됩니다. 제 욕심을 채우려고 계획을 세워 그대로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렇게 되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순종의 기도를 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기도하는 것은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그대로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이면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려고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되게 하려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라는 기도는 십자가를 지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래 이 땅에 십자가를 지러 오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이미 여러 번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삼일 만에 살아난다”라고 여러 번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 정작 십자가가 닥쳤을 때에 이 잔을 옮겨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구속이 이루어지겠습니까? 이것은 고난의 잔을 옮겨 달라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지되 고난을 안 받도록, 고난을 조금 면케 해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질 때 너무 고통이 심하니, 이 고난을 조금 면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하는 것은 고난을 다 받아야 할 것 같으면 “아버지의 원대로 다 받게 해주시옵소서”라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순종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5:7-8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편안한 것만 좇아가지 말고 좋은 것만 하겠다고 하지 말고 고난의 자리도 순종을 배워서 따라가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많아도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곳으로 가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좋은 것만 하겠다는 것은 믿음을 안 쓰는 것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고난도 은사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고난으로 순종을 배워서 온전케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문 43절에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하였는데,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예수님께도 힘을 도와서 더욱 힘써 기도하게 하시고, 앞으로 오는 십자가의 모든 고난도 이길만한 힘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본문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같이 되더라”고 하였습니다. 더욱 힘쓰고 애써서 기도하니 땀이 핏방울 같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5절에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을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깨어 기도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마태복음에는 한 시간도 깨어 있지 못하느냐, 고 하였는데, 매일 한 시간만이라도 깨어 기도하는 것이 큰 기도 입니다.

2017년 9월 23일 토요일

누가복음 18: 1-8 간절한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간절한 기도를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
누가복음 18: 1-8

1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2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3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5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본문 1-2절에“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도시에 한 재판관이 있는데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입니다.

본문 3-4절에“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라고 하였습니다. 이 과부는 도와줄 자도 없고 의지할 자도 없는 외로운 자였으며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줄 자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재판관에게 가서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하였지만 듣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과부가 낙심치 않고 자주
재판장에게 가서 간구하였습니다.

본문 5절에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얼마동안은 그 과부의 부르짖음을 무시하였으나 과부가 자주 와서 부르짖으므로 그 재판관이 번거로움과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그 원한을 풀어주게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기도할 때에 이 과부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자인 줄 알고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뢰하여 간절히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반드시 들어 주십니다. 원수에 대한 원한을 가진 성도라야 이 과부와 같은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날마다 원수와 싸워 이겨야 하겠으나 우리에게는 그 능력이 없고, 실패한 일도 많아 그 원한을 갚을 길이 없으므로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품고 기도하여야 함

본문 7절에“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 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었는데 하물며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시7:11)께서 왜 사랑하는 자녀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원한을 품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원한을 풀어 주십니다.

성도의 원한의 뜻

① 마귀입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쉬지 않고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벧전 5:8). 마귀의 충동을 받아서 항상 기뻐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영의 생명으로 살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야 합니다.

② 죄입니다.

히브리서 12:4에“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싸우지 못하여 옛사람을 정복하지 못하며, 거룩한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야 합니다.

③ 자기입니다.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한다고 하였습니다(고전 9:27).성도는 항상 자신을 쳐서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혈기 부리는 성격, 싸우고 다투는 성격, 방탕하는 성격 등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야 합니다.

④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데 방해하고 막는 세력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8에 바울은 내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막았다는 것은 사단의 역사로 인해서 데살로니가에 가지 못할 형편과 사정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사단의 역사로 인해서 사명을 다하지 못한 것을 원통히 생각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는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는 베드로에게“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마 16:23).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여야 함

야고보 5:17-18에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본성이나 인체의 구조가 같은 사람입니다. 엘리야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다시 기도한즉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자기의 뜻대로 구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였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다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주실 줄 믿고 기도하여야 함

히브리서 11:6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이루어 줄 것을 믿고 “믿습니다”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중언부언하는 기도는 믿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므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밤새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꼭 이루어 주실 것을 믿는 간절한 기도가 들어가야 하며 성령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려면 회개하면서 자기가 다 깨어져 나아가야 합니다.

야고보서 4:3에“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정욕으로 기도하면 안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도하여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찾는 방법

㉠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 성령의 감동에서 찾아야 합니다.
㉣ 신앙 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이 들었는데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낫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수 없을 때, 낫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기도하면 다 낫고, 낫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기도해도 낫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를 경우에는 나을 줄 믿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아들이 떡을 달라고 하면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고 하면 뱀을 주겠느냐? 했는데(마 7:10)아들이 돌을 달라고 하면 부모가 떡을 줍니다. 또 뱀을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고기가 먹고 싶어서 뱀을 달라고 했는가보다 하고 생선을 줍니다. 잘못 기도했어도 하나님은 다 아시고 더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북한에 문이 열릴 줄 믿고 북한에 교회 세우게 해 달라고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이면 북한에 교회가 세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기도하되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면, 하나님의 뜻에 맞으면 다 주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은 다른 것으로 주십니다. 때가 안 되었으면 좀 더 연기했다가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손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기주의, 욕심대로 구하는 것은 얻지 못합니다(약 4:3).

항상 기도하여야 함

기도를 중단하면 마귀에게 지는 것이고, 육신에 지는 것이고, 옛사람에게 지는 것입니다. 성경말씀대로 행하려고, 마귀를 이기려고, 시험을 이기려고, 사명을 다하려고, 탐심을 이기려고, 옛사람을 이기려고, 음란한 마음을 이기려고, 원한을 품고 항상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나가며 달란트을 잘 남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온전케 되어 나가며, 능력있는 사람, 지혜있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만들어져 나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3. 말세에 원한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을 보기 어려움

본문 8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로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올 때에 이런 믿음을 보겠느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 과부처럼 성도들이 부르짖는 믿음을 보겠느냐는 뜻입니다. 원한을 품고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을 보기 힘든 말세에 우리가 기도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누가복음 18:9-14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누가복음 18:9-14

9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11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12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13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해서 가르치실 때에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들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1. 바리새인의 기도

본문 11절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의를 행하기 위하여 많이 힘을 쓴 것이 사실입니다. 토색하지 아니한 것, 불의한 일 하지 않은 것, 간음하지 않은 것, 십일조를 철저히 드린 것,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한 것 등 여러 가지 종교예식을 잘 지켰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바리새인들은 흠이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요, 또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2. 세리의 기도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하는 기도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태도입니다. 본문 13절에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가슴을 치면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는 기도

하나님은 죄를 통회하며 자기를 부인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는 자를 찾으십니다. 이사야 57:15에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라고 하였고, 시편 51:17에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 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세리는 자기가 지은 죄 때문에 그 죄를 통회하며 자기를 부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자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9:13에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노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4절에 의롭다 하심은 받고 집에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세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롭게 된 것이 분명합니다.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하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1:17).

그가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것을 보면 죄를 얼마나 미워했으며, 죄를 얼마나 원통히 여겼으며, 자기를 얼마나 부인했으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온 것이 분명합니다. 죄에 대해서 이같이 회개하는 자, 자기를 이같이 부인하는 자, 하나님의 긍휼을 이같이 입으려고 하는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영접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죄와 칭의를 입혀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려고 갈망(사모)하는 기도

세리는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입지 못하면 못살 줄 알고 하나님께 긍휼을 입혀 달라고 간구하며 갈망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은혜받는 자세입니다.

그가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한 것은
①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요
② 사죄를 갈망하는 마음이요
③ 구원을 갈망하는 마음이요
④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찾아 사죄와 칭의를 입혀 주십니다(마 9: 13).

3. 바리새인의 잘못

바리새인은 자기가 의를 행한 것을 가지고 감사하기는 했으나 중요한 것이 다 빠졌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에그러나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했는데 자기가 어느 정도 된 것은 자기가 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줄 알았어야 합니다. 몇가지 잘한 사람은 그것을 내세우고 자기가 죄인인 줄 모르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어야 될 자인 줄 모르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몇 가지 잘한 것 때문에 자기정체(죄인인 것)가 가리워져서 죄인
인 줄 모르고 회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는 모든 사람이 다 죄인입니다. 요한일서 1:8에 만일 우리가 죄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자기 눈속에 들보가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7:3-5에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자기 속에 있는 부패성(죄악성)입니다. 누구나 자기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만 보고, 자기는 속에 있는 죄악성까지 발견하여 회개하여야 합니다. 바리새인은 이 회개를 못한 것이 잘못입니다.

몇가지 잘 한 사람도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죄인데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일을 지켰어도 24시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하고, 십일조를 드렸어도 온전한 십일조 못 드린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무엘은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삼상 12:23). 기도하기를 쉬는 것도 죄입니다.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것도 죄입니다. 고린도전서 16:22에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보다 자기, 돈, 가족, 직장, 국가 등을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고 더 지배받는 것이 우상이요, 죄입니다.

바리새인이 이 같은 죄를 발견했더라면 회개하였을 것이요, 하나님의 긍휼을 구했을 것이요,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구원을 받았을 것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의를 더 잘 이루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세리보다 더 큰 의를 얻었을 것입니다. 세리는 자기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자기를 쉽게 부인할 수 있었고, 상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기가 쉬웠고,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기가 쉬웠습니다. 바리새인은 잘한 것 때문에 죄가 가리워서 하나님의 긍휼을 갈망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기가 바리새인보다 먼저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으며, 너희는 문밖에 쫓겨나 어두운 가운데 있겠다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7:22~37 이때를 알고 신앙 준비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이때를 알고 신앙 준비하라
누가복음 17:22~37

22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번개가 하늘 아래 이 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 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
기 날에 그러하리라 25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26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31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 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롯의 처를 생각하라 33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34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없음) 37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1. 이 시대는 노아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음

시기를 바로 분별하여야만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아침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궂겠다 하고,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개겠다 하며 천기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왜 시대의 분별을 할 줄 모르느냐? 라고 책망을 했습니다. 이 시대를 우리가 잘 알고 모든 준비를 해야만 되겠습니다.

본문 26-30에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노아의 때와 같이 그 시대가 타락이 되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이 죄악이 관영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노아의 때에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방주를 준비하느라고 모든 것을 다 투자하고 전심전력으로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시대에 이 세상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일을 하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일을 하다가 망했습니다. 먹고 마시는 일, 먹자주의, 물질주의로 모든 사람들은 나갔습니다. 또 장가들고 시집갔다는 것은 정상적인 장가, 시집이 아닌 음란 방탕을 가리킵니다. 음란 방탕이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소돔, 고모라도 음란 방탕으로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서 다 멸망했습니다.

그러면 이 시대를 우리가 바로 분별해야 되겠는데 이 시대가 노아시대보다 어떤가? 얼마나 이 시대가 타락이 되었고, 얼마나 지금 음란방탕이 가득했는가? 요새 뉴스 나오는 것을 보면 고등학생들이 다 창기가 되었습니다. 술집에 가서 방탕한 가운데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악한 시대가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또 초등학교 학생들도 술집에 가는 학생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래가지고야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각 처에 여관만 많이 섭니다. 우리 예배당 근처에도 여관이 많이 섰는데 그게 정상적인 여행자가 와서 자는 여관이 아니고 대개가 음란 방탕 하는 여관입니다. 또 많아지는 것이 술집만 많아 집니다. 한 집 건너면 단란주점, 호프 그런 것들이 생깁니다. 이것이 노아시대와 같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깨달아야 됩니다.
노래방, 오락실, 카지노, 슬롯머신 등, 국회의원들도 도박한다고 합니다. 자기네들끼리 기름보일러 많이 틀어 놓고서 너무 더우니까 웃통 벗어놓고 도박한다고 합니다. IMF시대에 국회위원들이 기름을 많이 때서 방을 너무 덥게 하고 웃통을 벗어놓고 도박하니 이 나라가 뭐가 되겠습니까? 또 지금 노라리 하러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일날 교회에 안 나오고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고 또 아침에 한 시간 나왔다가 가서 놀러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암만 없다, 없다 해도 고속도로가 막혀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도로가 밀리는 것이 제대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 때문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태반이 전부 노라리꾼들입니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보고 한국은 IMF를 다 잊어버렸다고 합니다. 와 보면 얼마나 사치향락하고, 얼마나 외국제 사느라고 돌아 다니고 이제 앞으로 이렇게 나가다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쪽에서는 직장을 잃은 실직자가 150만이 넘는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방탕하고, 노동자들은 데모하고 이것 여간 문제가 아닙니다. 외국 사람들이 투자하러 왔다가 질색을 해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여기다가 누가 투자하느냐? 했다간 앞으로 감당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이 시대를 바로 알아야겠습니다.
한국이 경제에도 점점 더 혼란한 가운데 빠져 내려갑니다. 또 외국사람들이 투자하기를 바라고 여러 가지 방편을 많이 쓰지만 안정되지 않은 나라에 누가 투자하겠느냐? 하는 말이 돌아갑니다. 어디까지 내려가겠느냐? 좀 더 쑥 내려가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납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바로 알아야 됩니다. 즉, 노아시대와 같이 되었고, 소돔 고모라와 같은 시대가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이것은 한 사람의 힘으로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바로 세우려고 하지만 이것은 대통령의 힘으로 역부족입니다. 점점 타락 되어 내려가고, 구렁텅이로 점점 내려가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렇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때 정신을 차려야 됩니다.

2. 죄를 애통히 여기라

이것을 바로세우는 방법은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믿음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하나님이 바로 세워주면 바로 세워질 것이고, 신자들이 믿음 잘 지키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바로 세워주지 않으면 끝장 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하나님이 열어주시면 열릴 것이고, 하나님이 닫으시면 닫힙니다.

열왕기하, 역대하에 요시아 왕 때에 시대가 너무 타락이 되었습니다. 므낫세왕 때도 너무 신앙이 타락이 되었습니다. 므낫세 왕 때에 여러 우상을 많이 섬겼습니다. 성전에 태양 섬기는 제단을 만들어 놓고, 사람을 잡아 죽이고,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우상에게 제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므낫세의 손자인 요시아 왕 때 와서는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모든 우상을 다 타파하고,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율법책을 발견해서 율법책을 읽고 옷을 찢고 회개하고, 유월절을 성대히 지키는 바로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서는 역사가 일어난 것은 하나님이 그 시대에 은혜를 준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므낫세 왕이 악을 행한 것 때문에 그 다음 시대에 가서 그만 다 망했습니다. 악을 행하면 그 죄 값으로 멸망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면 믿음 지킨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본문 37절에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검은 죄를 가리킵니다. 독수리는 심판을 가리킵니다. 죄가 있는 곳에는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공자도 어느 시대나 죄악이 들어차면 하늘이 그것을 멸망시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고 말한 것 같습니다.

죄악이 들어차면 어느 시대나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것은 절대 진리입니다. 소돔, 고모라시대도 그렇고 노아시대도 그렇고 여러 악한 왕들 시대에 죄악이 들어차면 하나님의 심판이 오곤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북이 갈렸는데 북쪽은 이스라엘이고 남쪽은 유다입니다. 남북이 갈린 이후 주전 722년에 죄 짓다가 북쪽 이스라엘이 아주 망했습니다. 남북이 솔로몬 아들 왕 때에 갈라져 191년 만에 망했습니다. 191년 동안 북쪽 나라가 유지되어 내려오다가 호세아 왕 때에 가서는 아주 망했습니다. 북쪽나라가 없어졌습니다. 앗수르 나라에 포로로 가고 나라가 없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죄 값은 사망인 줄 알고 우리가 죄를 무서워해야 되겠습니다.

그 시대에 죄악이 들어차면 ‘아! 이젠 하나님이 심판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정신 차려야 됩니다. 노아가 방주를 예비한 것처럼 우리는 믿음의 방주를 예비해야 됩니다. 믿음의 방주라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고, 성경 말씀을 순종해서 자신의 실력을 만드는 것입니다. “믿는다”하며 성경대로 안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참으로 산 믿음을 가지고, 앞날에 오는 심판을 바라보고, 자신을 잘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성경 말씀대로 하나씩, 하나씩 자기를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방주를 예비하는 기간이 한 70년간 걸렸는데 그 동안에 먼저 밑에 댄 나무가 썩어지면 또 다른 나무 대는 것입니다. 떼어내고, 또 하나 썩어지면 또 다른 나무 대는 것이고, 그래서 자신의 부패한 부분, 믿음 지키지 못한 부분 이것을 하나씩 떼어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충을 시켜서 말씀대로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자신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에 죄악이 관영했지만 롯이 경건한 생활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같이 멸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구출해 주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이 심판하시지만 경건한 자는 그 시험에서 건져주신다고 베드로후서 3장에 말씀 했습니다. 롯이 소돔, 고모라에서 나갈 때까지 그 백성들이 알지 못했습니다. 불과 유황이 비 오듯 내려오는 날까지 그 백성들이 죄만 짓다 망했고, 롯은 경건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건져냈다고 했습니다.

3. 신앙에 퇴보하지 말고 전진하라

본문 30절에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지붕에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돌이키지 말라”고 하였는데 지붕에 올라가는 생활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베드로가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지붕은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또 마태복음 24:15-16에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볼 것 같으면 이제는 산으로 도망쳐야 됩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다는 것은 교회 위에 세상 국가가 올라가는 것입니다. 즉 세상나라가 교회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나라 밑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주후 70년에 로마군대가 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다 점령하고 거기에 로마 국기를 끼워 놓았습니다. 성전 위에 국가가 올라선 것입니다. 교회 위에 세상나라가 올라 간 것입니다. 교회가 어용기관이 된 것입니다. 세상나라 기관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너희는 산으로 도망치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성도가 산으로 도망쳐야 합니다. 시온 산 정복을 향해서 도망치는 생활을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올라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산으로 올라가라는 말입니다. 또 기도하러 지붕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생활을 하지 말고, 올라가는 생활을 해야 됩니다. “좀 더 신령한 세계로 올라가야 되겠다, 좀 더 기도의 자리로 올라가야 되겠다”하며 계속 시온 산 정복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하는 성도가 말세에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내 그대로 나가도 안 되고, 내려가면 더 안 됩니다. 성도의 신앙이 점점 타락이 되면 더 안 됩니다. 또 그대로 현상 유지해도 안 됩니다. 올라가야 합니다. 지붕위에 올라가고, 산으로 올라가고, 또 일심정력을 다해서 신령한 세계를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 기도하는 생활, 좀 더 세상을 초월해서 나가는 신앙, 이런 신앙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세간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 지붕 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생활, 즉 영적 생활은 올라가는 생활인데 집안에 있는 세간 가지러 내려가지 말라는 것은 뒤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밭에 있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밭은 농사하는 곳으로 곡식을 심어서 농사해서 거두어들입니다. 씨를 뿌리고, 김을 맵니다. 밭에 있다는 것은 전도하는 일입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또 농사하는 일은 교인들을 잘 돌보는 일, 또 열매를 많이 맺도록 잘 돌보는 일로 밭에서 일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 혼자만 믿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전도하여야 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을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밭에서 곡식을 잘 가꾸는 것과 같습니다. 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즉 말씀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밭에서 일하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올라가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하고, 밭에서 일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내내 해야지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취하려고 뒤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32절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롯의 처가 어떻게 되었는가? 소돔, 고모라에서 나오긴 나왔지만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는 자는 소금기둥이 됩니다. 앞으로 전진만 해야지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 조금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합니다. 살림살이가 다 타서 없어지지 않겠나? 유황불로 집이 다 없어지지 않겠나? 하며 롯의 처가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돌아보다가 뭐가 되었어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뒤로 돌아보는 사람은 소금기둥이 됩니다. 주일을 잘 지키던 사람이 ‘아! 이거 주일을 잘 지키다가 앞으로 생활이 곤란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 교회에 나왔다가 “가게를 조금씩 열자”하며 세상일을 하는 것은 뒤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벌써 롯의 처와 같이 된 것입니다. 또 주일을 잘 지키던 사람들이 직장에 나갑니다. 벌써 소금기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죽으면 죽자”하고 생명 내놓고 나가야 됩니다. 그러면 안 죽습니다.

본문 33절에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제가 보존하고자 하면 반드시 영의 목숨을 잃어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나가는 사람은 영의 목숨이 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숨이 둘입니다. 육신의 목숨이 있고 영의 목숨이 있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잃지 않으려고 하면 신앙을 못 지킵니다. 그리고 영의 목숨을 잃어 버립니다. 육신의 목숨을 내놓고 영의 목숨만 지키려고 나가면 즉 믿음만 지키려고 하면, 영의 목숨이 삽니다. 그러면 육신은 어떻게 될까?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영의 생명 길로만 걸어가는 사람은 굶어 죽느냐? 절대 안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이 다 먹을 것을 예비해 놓았습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고 했습니다. 다 먹을 것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날아다니기만 하면 먹을 것을 하나님이 예비해 놓았습니다. 새가 낮은데 가서 먹을 것을 찾아야 될 것 같으면 낮은데 가서 찾아야 하고, 돌짝마루에 가서 찾아야 될 것 같으면 돌짝 마루에 가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합니다. 또 흙에 묻힌 데서 먹을 것을 찾아야 될 것 같으면 흙에서 찾아야 합니다. 낮아져서 찾으면 다 찾습니다. 높은 데의 것만, 좋은
것만 먹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새들이 가을에는 좋은 것을 먹을 수 있습니다. 오곡백과가 다 익었으므로 좋은 것으로 맘대로 골라 먹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봄이나 초여름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낮아져서 아무데고 가서 주워 먹어야 됩니다. 영의 생명을 내놓고 육신의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어버리고, 육신의 목숨을 잃고자 하면 영의 생명을 얻습니다.

롯의 처는 소돔, 고모라에서 나왔지만 뒤를 돌아다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는데 그 소금기둥이 참 비참합니다. 소금이라도 맛 잃은 소금기둥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버린다고 했습니다. 맛 잃은 소금은 하나님은 버리시고, 자신에게는 맛이 없어지고, 세상 사람들은 발로 밟습니다. 뒤를 돌아다보다가 맛 잃은 소금이 되면 하나님이 내어 버리십니다. 자신의 속에는 믿음의 맛이 없어집니다. 기도하는 맛도 없어지고 기도하러 가면 잠만 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따위가 예수 믿는 거냐? 네까짓 것이 천당 가면 나는 만당을 간다”하며 비방을 합니다. “너보다 낫다”하며 이렇게 발로 밟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해서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겠습니다. 육신의 목숨을 내놓고 말씀을 지키십시오. 그러면 영도 살고 육도 삽니다. 육신의 목숨을 얻으려고 말씀을 못 지키면 하나님이 내어 버려서 영도 못살고, 육신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4.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함

본문 34-35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두 남자가 누워서 잠잔다는 것은 환난의 밤입니다. 큰 환난이 와서 활동을 못합니다. 활동을 못하니까 누워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활동 정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잘지라도 마음이 깨어 있는 성도가 있고, 육신과 마음이 다 자는 성도가 있습니다.

아가서 5:2에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 구나” 라고 하였습니다. 잘지라도 마음이 깨었다는 것은 환난이 심해서 교회도 세울 수 없고 또 교회에 나갈 수도 없는, 외부적으로는 활동이 정지되어서 잠자는 것과 같으나 내적으로는 심령이 깨어서 믿음을 잘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영이 깨어 있는 신자, 환난이 와도 생명 내어 놓고 나가면서 영이 깨어 있는 신자가 있고, 환난이 오면 그만 심령이 잠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큰 환난의 날에 심령이 잠자는 사람은 내어 버리고 심령이 깨어서 믿음 지키는 사람은 데려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우리는 깨어 있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두 여자가 매를 간다는 것은 그 식구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맷돌로 강냉이나 무엇을 가루로 갈아서 집안 식구의 음식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도 두 가지 종류입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교역자들이 교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려고 준비하는 상태가 맷돌 가는 것과 같습니다.
교인들에게 양식을 갖다가 공급하려고 주일날 준비를 잘 한단 말입니다. 여자가 둘이서 다 준비합니다. 그러나 하나는 내어 버립니다. 하나는 왜 내어 버리는가?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내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사람. 직업적으로 하고, 자기 명예 영광으로 하고, 다른 것 할 것이 없으므로, 직업적으로 교역자 일을 보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어 버립니다. 육신중심으로 하고, 자기중심으로 하고, 세상중심으로 교역자 일 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내어 버립니다.

그러나 한 여자는 신앙중심으로 영적양식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면서 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자기가 먼저 발견해서 먼저 먹고 교인들에게 공급하려고 하고 믿음으로 합니다. 믿음으로 잘 준비해서 교인들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교회는 생명이 삽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고 세상 책이나 좀 보고 나와서 세상 이야기나 하고, 책 이야기나 하고, 영을 살리는 영의 역사가 없는 그런 교역자는 하나님이 데려가지 않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교회는 영이 살지 못하고 껍데기만 그저 나와서, 세상이야기만 좀 듣고 가는데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합격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됩니다. 교역자도 믿음으로 하고, 환난도 영으로 깨어서 믿음으로 승리함으로 통과하고, 날마다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주를 위해서 “이 말씀 지키다 죽자” 하면 하나님이 그 생명을 살려 놓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간
또 앞으로 직장 떨어지지 않겠나? 이렇게 나가다간 장사 잘 안되지 않겠나? 이렇게 나가다간 생활 곤란이 생기지 않겠나? 이렇게 염려해서 주일을 지키지 않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벌써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하나님은 내어 버리십니다. 하나님이 내어 버린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생명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떡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면 영도 살고 육도 살려 주십니다. 말씀을 안 지키면 하나님이 내어 버리기 때문에 영도 죽고, 육신도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말씀을 안 지키는 것은 죄인데 죄 값은 사망입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인다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가서는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이 시대가 어느 때인 줄을 알고 방주를 준비하는 일, 또 지붕에 올라가는 일, 산으로 도망치는 일, 밭에 나가서 일하는 일을 잘해서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영접할 때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는 저희가 되어야겠습니다.

누가복음 17:11-19 감사하지 않는 자와 감사하는 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감사하지 않는 자와 감사하는 자
누가복음 17:11-19

11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 가시다가 12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에 하나가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여기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은혜를 받았지만 감사하는 자가 있고, 감사하지 않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에 한 촌에 들어가시니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나와 고쳐 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레위기 13:45-46에 문둥병에 걸리면 부정한 자가 되어 자기 집안이나 그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동네 밖으로 나가서 혼자 살거나 다른 문둥병자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오면 접근하지 못하도록부정하다, 부정하다하고 소리를 질러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문둥병자들은 멀리 서서 예수님께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을 예수 선생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선생으로 또는 오실 그리스도로 믿은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구원 역사에 대하여 들은 그대로 믿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들의 병도 고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긍휼을 입어야만 문둥병이 나을 줄 믿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본문 14절에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
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고 하였습니다. 제사
장들에게 몸을 보이라고 한 것은 레위기 14:2에문둥 환자의 정결케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
요라는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문둥병이 걸렸다가 나은 자는 제사장
에 가서 보이고 예물을 드리는 율법의 규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하신 것은 그 병이 나은 증거를 보
이라는 것입니다. 문둥병자들은 그 병이 나을 것을 확신하고 제사장에
게로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
불치의 병인 문둥병이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을 받았습니다.

문둥병자 열 명이 다 깨끗함을 받았으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께 돌아와 사례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인은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겸손히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예수님께 사례하였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죽을 자
이고, 희망이 없는 자인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낫게 해주신 것을 깨닫
고 감사하였습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멸
망한다고 하였습니다(호 4:14). 우연히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을 모르는 배은망덕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라도 하나님이 해 주셨기 때문에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지 않으면 절대 안됩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모든 것, 특별 은총의 모든 것,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대한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시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내가 나 된 것은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자기가 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까지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여기까지 온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붙들어 주셔서 오게 된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영원히 멸망 받을 자인데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곳까지 인도해 주시고, 오늘 날까지 모든 것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잘 되지 못할 때에도 감사해야 합
니다. 범사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자기 욕심에 차지 않으면 감사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책임을 지시고, 좋은 목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운명론자와 예정론자의 다른 점은 운명론자는우연한 세력이 이렇게 와서 이렇게 되었다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과부가 된 것도 운명론자들은신수가 나빠서 과부가 되었다하며 팔자 타령을 합니다. 그러나 예정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어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선을 이루기 위해서 주셨다하고 믿습니다. 과부가 된 것도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더 좋은 것, 더 영원한 것을 주시기 위해서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운명론자들은 팔자 타령만 합니다. 남을 원망하고 자기 팔자를 한탄합니다.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연단 시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자로서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신부로 만들려고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환난도, 궁핍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어 나가기 때문입니다.

버림당한 아이(신호범)가 서울에서 거지 노릇하다가 미국인을 만나 미국인의 양자로 미국에 가서 변호사가 되었고, 교수가 되었고, 장로가 되었고,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아가 되어서 내어 버림 당했지만 하나님이 인도해서 서울로 오게 되었고, 하나님이 좋은 미국인을 만나게 해서 공부할 길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영원히 사는 생명을 주셨으므로 죽어도 감사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게 되었으므로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감사할 것뿐입니다.

예수님께 와서 감사한 한명의 문둥병자에게 예수님이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네 믿음은 깨달은 믿음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예수님이 낫게 해 주셨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니 이렇게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이 나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육신의 소욕으로 돌아갔습니다. 육신으로 기울어진 사람들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때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왔고, 돌아와서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진정으로 사례를 하였습니다.

본문 17-18절에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문둥병을 고치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예수님을 기쁘게 하였으나 감사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님을 섭섭하게 했습니다.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온 자가 없느냐,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나을 수 없는 병을 고쳐 주셨는데 왜 감사할 줄 모르냐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암, 중풍과 같은 고칠 수 없는 병에서 하나님이 고쳐주신다고 하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감사하는 이 사마리아 사람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셨습니다.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영화롭게 해주십니다. 요한복음 13:32에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면 그 사람에게도 영광을 주십니다. 하나님만 계속 영화롭게 하면 자기에게 영광이 돌아 옵니다. 또 구원을 이루어서 장성한 자가 되어 하나님 앞에 가게 됩니다.

본문 19절에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구원 하였다는 것은 3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문둥병에서 건져준 것 둘째, 영이 구원 받은 것 셋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감사하는 사람에게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누가복음 17:5-10 믿음을 더하는 법,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믿음을 더하는 법
누가복음 17:5-10

5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본문 5절에,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믿음이 연약합니다. 그래서 ‘믿음을 더해 주옵소서. 너무 믿음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소원은 신자들이 대개 다 가지고 있을 줄로 압니다.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이 가르쳐주십니다.

1.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더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는데,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도들이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 달라고 말하자,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라고 하셨는데,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는 것은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을 가리킵니다. 겨자씨는 좁쌀알의 10분의 일 정도 될 만큼 아주 작습니다. 좁쌀알도 우리가 작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것보다 10분의 일 정도 되면 얼마나 작겠나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만 있으면 거기서 역사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생명 있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힘을 못 쓰고 또 자라나지도 못하고 세상으로 떠내려가고 맙니다.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 생명의 역사가 있는 믿음, 그 믿음이 중요합니다. 죽은 믿음은 아무리 커도 아무 일도 못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고 했는데 역사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속에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믿음의 감동, 역사, 감화, 믿음의 운동력, 믿음이 있어야 됩니다. 역사하는 믿음, 생명 있는 믿음, 작아도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그 다음엔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뽕나무 뿌리가 깊이 박혀있다고 하는데 뽕나무에게 “뽕나무 뿌리가 뽑혀라!” 하면 뽑히고, 뽑힌 다음에 “바다에 가서 바다에 심기우라!”고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그랬습니다. 작은 믿음이라도 생명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면 뽕나무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우라 명령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순종해서 그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2. 믿음을 더하는 법

뽕나무 뿌리를 뽑으라

뽕나무 뿌리를 뽑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에서처럼, 떠난다는 뜻이 있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서’, 뿌리를 뽑으라는 말입니다.
또한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뽑으라는 말이 됩니다. ‘물욕에서 뿌리를 뽑아라’라고 하시는데, 어떤 젊은 부자가 예수님께 왔었지만 물질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부자는 물질이 우상이 되어있고, 물질에 붙잡혀 사는 것인데, 그런 물질에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사욕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로마서 13장에 보면 방탕과 술 취하지 말고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이렇게 6가지가 있습니다. 로마서 13:13-14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는 것을 뽑아버리란 말입니다. 그러한 뿌리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담배 붙이고 술 먹는 사람들 그거 뿌리 뽑기가 힘든 모양 같습니다. 이전에 제가 열여덟 살 났을 때에 봉천에 가서 공장에 다녔었는데, 같이 기숙사에 있는 한 사람이 밤에 자지 않고 왔다 갔다 합니다. 왜 자지 않고 남도 못 자게 왔다 갔다 하냐고 그러니까 담배가 떨어졌다고 합니다. 담배가 떨어졌으면 잠을 자고나서 해결해야지 왜 남도 못 자게 다니느냐니까 잠이 안 온답니다. 담배 피는 사람 담배 떨어지면 잠이 안 온답니다. 그거 끊는 게 상당히 힘든 모양입니다.
또, 술 먹는 사람이 술 끊는 것이 뽕나무 뿌리 뽑는 것처럼 아주 힘이 드는 모양입니다. 안 먹겠다고 결심하고도 또 먹고 그럽니다. 안 하겠다고 손가락 자르고 또 하는데, 어떤 도박하는 사람이 다시 안 한다고 손가락 잘랐다고 합니다. 손가락 자르고 싸매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게 다 낫기 전에 또 와서 도박을 했답니다. 경매하는 사람, 그 뿌리를 뽑아야 되겠는데 뿌리가 잘 안 뽑아 지는 모양입니다.
그래도 뽕나무 뿌리가 뽑혀야 됩니다. 뽑을 수 있습니까? 여기서 못 뽑는다고 하지 않고,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여도 하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고 했습니다.
네, 뽑을 수 있습니다. 생명 있는 믿음만 있으면, 작은 믿음이라도 뿌리를 뽑을 수 있습니다. 뽑고 바다에 갖다 심기 울 수 있습니다.

뽕나무 뿌리를 바다에 심기우라

바다라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17:15에 보면 백성과 나라와 방언이라고 나옵니다. 이 세상이 바다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세상이 바다이고, 둘째는 생명수가 흘러 내려간 바다를 말합니다.
사해바다는 바다인데 에스겔 47:8-9에,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찌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사해바다가 다 죽은 바다 같지만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내려가니까 다 소생해 올라왔다고 그랬습니다. 살아있는 바다가 되었다고 그랬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살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이 물이 흘러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에서 바다는 사해바다입니다. 사해바다에 생명강수가 흘러들어가니까 생명이 사는 바다가 되었습니다. 물고기가 많이 산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다입니다.
사해바다는 사해바다인데 거기에 생명수가 흘러 들어가니까 소생함을 얻었습니다. 많은 물고기가 살게 되었습니다. 사해바다는 생명의 바다가 되었고, 뽕나무는 그 바다에 심기운다는 겁니다. 뽕나무가 과거에는 땅에 뿌리를 박고 그저 거기서만 살았는데, 이제 그 뿌리를 그냥 둬두면 안 되겠으니까 “뿌리를 뽑아라. 그걸 들어서 바다에 갖다 심기워라”라고 했습니다. 나무를 바다에 심기운다는 게 이상하지만 바다에 심기운다고 그랬습니다.
바다라는 것은 사해바다인데, 사실 이 세상이 사해바다입니다. 거기에 생수가 흘러들어 가니까 생명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가 된 겁니다.

이 세상에 ‘생수가 들어가서 생명의 바다가 되는 것’은 교회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해바다에 생수가 흘러들어가서 생명이 살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심기우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심기우라”라고 했고, 그래서 뿌리가 뽑혀서 바다에 심기운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겁니다.
믿는 사람들 보면, 과거에 왜 믿을 거 같지 않던 사람들이 교회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홍풍완 장로도 그 부인만 나왔었는데, 심방 가서 교회 나오라고 하면 교회 안 나온다고 했습니다. 술 먹고 돌아다니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뿌리를 뽑아서 하나님의 교회로 인도하셨습니다. 나중엔 그 사람이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뿌리를 뽑아서 이 생명의 바다, 이 바다로 인도된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깡패 대장하던 사람도 뿌리가 뽑혀서 교회 나오고, 변하여 새 사람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바다라는 것, ‘바다에 옮기운다’는 것은 생수가 흘러들어간 바다, 생명의 역사가 있는 바다, 생명이 사는 바다, 그 바다로 옮겨진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라

본문 6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바다에 심기우라’ 하는 그것이 보통이 아닌데,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나는 것이 보통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1:21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라고 했는데, ‘산을 옮기는 믿음’을 말하는 본문은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보면 거기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에서는 그저 그 일이 ‘될 것이요’라고 했지 어디 ‘순종하였을 것이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의 본문에선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있으면 산을 옮긴다고 했는데, 그저 옮긴다고 했고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순종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말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다에 심기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바다에다 어떻게 나무를 심기우겠는가 해도, 그래도 심기운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또 나무가 어떻게 순종하겠나 싶어도 그래도 순종한다고 그랬으니까 순종했습니다. ‘산이 옮겨 질 것이요’ 할 때에는 산이 순종하는 게 아니라, ‘옮기우라 하면 옮기워 질 것이요’라고 그랬지 그 본문에는 순종한다는 말이 없습니다.

여러 가지로 성경 번역한 것이 많이 있는데,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번역한 성경이 여러 성경이고, 표준 새번역은 순종한다는 말을 빼버렸습니다. 표준 새번역 그것은 못씁니다. 그래서 우리가 표준새번역성경을 반대하는 겁니다. 원어에 ‘순종’이란 말이 있는데 왜 빼버리느냔 말입니다. 영어번역에도 ‘순종’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 보십시오. 영어 성경에도 ‘순종’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원어에도 ‘순종’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에도 순종이 있으니까 순종이 있게 번역한 것이 맞는 번역이고 표준새번역은 못씁니다. ‘순종’을 빼버렸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순종하였으리라”라고 그랬는데, 여기서 이 ‘순종’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뭐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까? 뽕나무가 순종한다고 그랬습니다. 뽕나무가 육지에 뿌리를 깊
이 박고 살았는데, 뿌리가 하나의 줄기만이 아닙니다. 여러 개 입니다. 나무들이 뿌리가 여러 개 인데, 그걸 쭉 뽑아가지고 ‘바다에 심기우라’하면 그것이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순종하였으리라. 순종 할 것이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세상뿌리가 아직도 많습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지 못하는 그 뿌리,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함과 쟁투와 시기하는 뿌리, 세상을 사랑하는 뿌리, 인정에 깊이 빠져있는 뿌리, 인간적인 사랑인 에로스에 빠져있는 뿌리, 물욕과 정욕과 사욕, 이 세상 명예 영광에 박혀있는 뿌리, 돈 물질에 뿌리를 박아가지고 물질만 있으면 사는 줄 알고 거기 깊이 박혀있는 뿌리, 이 뿌리를 빼내버리라는 것입니다.

빼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뿌리가 뽑혀야 합니다. 뿌리를 빼지 못하면 바다에 옮겨 심을 수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바다에 가지 말고 뿌리째 옮겨져야 합니다. 혈기, 신경질 부리는 것, 남 미워하는 것, 시기 원수 맺는 것 그거 다 뿌리 뽑아야 됩니다. 뿌리를 쪽 뽑아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고 하면 그것이 순종한다고 했습니다.
뽕나무가 순종한다는 것은 우리 성도의 순종하는 걸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뽕나무더러 “뿌리를 빼 가지고 바다에 갖다 심기우라!” 하면 그대로 순종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된다는 말입니다. 그게 믿음 자라나는 법입니다. 믿음 더하는 법은, 뿌리를 뽑고, 바다로 가고, 그곳에 갖다 심고, 그 다음엔 순종하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로 가서 순종하는 그것이 믿음을 더하는 법입니다.
뿌리 안 빼고 그냥 다니는 사람은 자라나지 못합니다. 믿음을 더하지 못합니다. 믿음 더 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뿌리를 뽑고, 그 다음은 바다에 가서 심기우고. 그 다음은 순종입니다.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명령은 무조건 순종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매일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박혔던 뿌리, 흙에 박혔던 뿌리 매일 뽑으란 말입니다. 여러 뿌리가 많이 있는데 뽑아가지고 생명수 바다가 있는 데로 가야합니다. 거기다 심어야 합니다. 그렇게 심습니다. 거기서 살아야 합니다. 거기서 생명을 얻어야 됩니다. 그렇게 다 하고 난 뒤에 순종을 하란 말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믿음 있는 사람이 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믿음이 강한 사람이 됩니다. 지금 이것이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저도 알지 못했던 것인데 엊저녁에 봉원동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지금 새로 발견한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옮기워지고, 바다사람이 되고나서 그리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밭을 갈거나 양을 치라

본문 7-8절에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라고 했는데,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양은 성도인데, 양을 치라는 것은 성도를 길러나가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라는 것은, 마음 밭을 갈아서 옥토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가시덤불을 옥토로 만들어야 합니다. 언제나 성도는 나가서 밭을 갈고 농사하라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하고, 김매주고, 물주고, 곡식 거둘 때가 되면 추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금 밭을 갈거나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양을 치거나, 교인들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한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그것도 뽕나무 하나를 옮기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세상에 속했던 사람의 뿌리를 뽑아가지고, 생명강이 있는 데로 인도한다는 것은 뽕나무 하나 옮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양을 치거나 잘 기르라는 말씀입니다.
교회에 나오게 하고 잘 기르는 게 양 치는 것입니다. 잘 돌봐주는 것이 양을 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도는 밭을 갈거나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씨를 뿌리고, 밭을 갈고, 또다시 씨를 뿌리고 자라나게 만들어서 열매를 거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이 다 전도해야 됩니다. 밭을 갈아서 곡식을 뿌리고, 거기서 추수할 때에 단을 묶어서 교회로 가져와야 됩니다. 또, 양을 발견해서 가서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해서 양을 잘 기르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밭 갈고 양치고 돌아와서는 자기 대접 받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하십니다. 돌아와서 “내가 밭 얼마나 갈았습니다. 양 몇 마리 쳤습니다. 보상해 주십시오”하면 못씁니다. 와서 뭐라고 한다고 했습니까? 본문 8절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밭을 갈고 양치다 돌아와서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도리어 돌아와서 뭘 하라고 했습니까?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와서 하나님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일하고 돌아와서 자기 대접 받으려는 생각 그만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는 것입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다가 돌아왔어도, 아무리 수고 많이 했다고 해도, 와서 수고했다는 보상 받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 대접을 잘 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걸 하나님께만 돌리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가 영광 받으려고 하면 그건 안 됩니다.
자기를 나타내면 안 됩니다. “내가 양 얼마나 치고 돌아왔다. 내가 밭을 얼마나 갈고 돌아왔다”는 그런 것은 못씁니다. 하나님만 대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자기는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함

본문 9-10절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명한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고 해야겠습니다.

‘무익한 종이라’, 세례요한이 “그는 흥하여야 되겠고 나는 쇠하여 되겠다”라고 그랬는데, 예수님만 잘되게 하고, 하나님의 일만 잘 되게 하고, 자기는 쇠하여야 되겠다고 그랬습니다. ‘나는 쇠하여야 되겠다’,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고 하는 자기 부인, 겸손을 가져야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해야합니다.
이렇게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하고 돌아온 다음에, 어떠한 자기 공로도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다”, “내가 뭘 많이 했다” 이렇게 자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이라,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라는 모습 가져야 합니다.
연보 많이 했어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주께 받아서 한 것뿐입니다’라고 그랬습니다. 많은 연보를 했지만 ‘주께 받아서 주의 것을 드린 것뿐입니다’라고 했고, 그게 바로 된 것입니다.

믿음을 더하는 법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믿음을 더하기를 다들 원하는데, 믿음을 더하려면, 생명 있는 신앙이 있어야 됩니다. 작아도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생명이 없으면 아무리 커도 쓸 데가 없습니다. 생명이 있는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첫째가 뭐라고 했습니까?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이 순종하였으리라’는 것입니다.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는 일, 우리 자신부터 뿌리를 뽑아서 바다에 심어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순종해야 합니다. 세상 여러 곳에 뿌리를 다 박고 사는 데 그걸 다 뽑아야겠습니다.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헬라인이나 로마인이나 유대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뿌리를 다 뽑아버려야 됩니다. 자기 지역, 지방에 관련된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자기 지방에 얽매여서 거기서 뽑혀 나오지 못하는 사람은 신자 구실을 못합니다. 다 뽑아 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북 사람은 이북 뿌리를 뽑아버려야 됩니다. 경남사람, 호남사람 다 뿌리를 뽑아야 됩니다.

우리에게 뿌리 뽑을 것이 많이 있습니다. 애착심, 물욕, 정욕 이 세상에 뿌리박고 사는 것, 너무 뿌리가 깊습니다. 지금 뽑아서, 뽑혀 바다에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바다, 생명의 바다로 가야 합니다. 거기서 순종하여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절대 순종’입니다. 뿌리는 뽑아서 바다에 갖다 던져 놓고, 그리고 나면 ‘순종’입니다. 

그 다음엔 양을 치거나 밭을 갈거나 해야 됩니다. 양을 잘 먹이라고 하십니다. 밭을 갈고 곡식을 심어서 곡식 단을 하나씩 교회로 가지고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다 한 다음에 자기대접 받는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자기대접 받으려 하면 안됩니다. 하나님 대접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기는 무익한 종이라. 나의 하여야 할 것을 한 것뿐이라” 라며, 스스로 무익한 종인 줄 알아야 됩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항상 자기는 한 것이 없는 줄 알고 무익한 종인 줄 아는 자리에 서야 믿음이 더해집니다. 

이렇게 믿음 더하는 법을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셨는데, 이 법대로만 가야 믿음이 더해져 나갑니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믿음이 더해집니다. 믿음 더해지는 사람은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백부장에게 그랬고, 또한 가나안 여인 보고도 “네 믿음이 크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믿음이 자라나서 큰 믿음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성도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6:19-31 부자와 나사로 비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부자와 나사로 비유
누가복음 16:19-31

19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고민하나이다 25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자는 자색 옷을 입고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 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고 했고 개들이 와서 나사로의 헌데를 핥았다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거지 나사로가 죽어서 천사들에게 받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인데 아브라함 품에 들어간 것은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나사로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품에 간 것은 예수 믿었기 때문에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믿는 일을 잘 하고 간 나사로입니다. 부자는 예수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자도 마침내 죽어서 장사 되었고 그 영혼은 마귀에게 끌리워서 지옥에 갔습니다.

1. 부자는 예수님을 안 믿고 지옥에 감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는 부자

본문 23절에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음부는 지옥입니다. 부자는 예수님을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지옥은 불꽃가운데서 고민하는 곳입니다. 물 한 방울 없이,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는 곳으로 다시 나올 수 없는 곳입니
다. 지옥은 한번 가면 못 나옵니다. 불이 훨훨 붙는 그 불꽃 가운데서 세세 무궁토록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아야 됩니다.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속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나사로의 손 끝에 물을 좀 찍어다가 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 한방을 찍는 것 얼마나 찍겠습니까? 그래도 잠시라도 물 한방을 찍어다가 혀를 서늘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물 한방울 없는 맹렬한 불꽃이 계속 되는 그런 무서운 곳입니다. 얼마나 고난을 당했길래 이렇게 말했나 생각해 보십시오. 지옥이란 곳은 말할 수 없는 고난이 계속 되는 곳입니다.

그러나 천당은 생명수 강이 흘러 내려 가는 낙원입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도 없는 기쁘고 즐거움이 충만한 곳입니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여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는 곳이 낙원입니다. 이제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 가서 영원히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세세 무궁토록 물 한방울 없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계속 당하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가 늘 기억해야 됩니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줄도 모르고, 그저 어떤 사람은 전도하면 자기는 지옥가겠다는 것입니다. “천당이 만원이다”하며 그래서 자기는 “지옥에 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고통이 심한 자리인지도 모릅니다. 지옥은 한번 가면 못나옵니다. 세상 감옥도 여러 가지 고난이 많이 있는데 그러나 세상감옥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옥은 불이 훨훨 붙는 그런 불구렁텅입니다. 한번가면 나오지 못하는 곳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하나 생각해야 될 것은 부자는 왜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는가?입니다. 예수를 믿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부자는 예수 믿기가 힘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 귀로 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19:24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가 하나님 나라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또 실제로 부자들이 예수님을 믿기가 힘이 듭니다. 젊은 부자 한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할 때 예수님께서 내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부자는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네가 오히려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늘에 보화가 있고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주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쫓으면 하늘에 보화가 있고 또 영생을 얻는다고 하였는데 부자가 재물이 많은고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에 재물이 우상이 되어서 그것을 팔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불가능 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누가 구원을 얻겠습니까?라고 제자들이 물어 볼 때에 마태복음 19:26에 “사람으로 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자가 천국 가는 것은 사람으로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부자도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예수님을 믿으면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실제로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야 할 때도 있지만 부자가 재산이 있어도 없는 것 같이 하고 주님을 따라가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재물을 의지하고 나가는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사람은 믿지도 못하고, 믿어도 껍데기만 믿는 것이지 실제로 속에 믿음이 안 들어갔으므로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면 부자는 어떻해야 되는가? 그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재산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이 생각하여야 합니다. 재산을 의지하지 말고 그것을 가지고 살려고 하지도 말고 또 그것에 소망을 두지도 말아야 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없는 것 같이 하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부자도 하늘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1:5에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파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됩니다.

야고보 1:9-10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찌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습니다. 낮은 형제는 예수를 잘 믿어서 부해졌다는 것입니다. 즉, 영적 부요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한 형제는 부한 것 의지하고 살므로 믿는 일을 못하였기 때문에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볼 때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부자들은 예수를 잘 믿지 않습니다. 양반들 예수 많이 믿지 않고, 부자들 예수 많이 믿지 않고, 또 학자들, 문벌 좋은 사람들 예수 믿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에 가난한 사람, 약한 사람, 멸시 받는 사람, 없는 사람, 무식한 사람 이런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강한 사람 위에 올라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 거지 나사로는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감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는 일 한 나사로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으며, 헌데가 났으나 병원에 갈수도 없고 또 누가 와서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개가 와서 헌데를 핥아 주는 것이 다입니다.
나사로는 믿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이런 사람도 예수님을 안 믿었으면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세상에 의지 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에 바라볼 것 없으므로 하나님만 바라보고, 세상에 소망을 둘 곳이 없으므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세상에 사랑할 데가 없으므로 하나님만 사랑하고, 세상에서 사랑해주는 사람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도움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합니다. 다른 것 할 것이 없습니다.

나사로가 예수를 잘 믿으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믿는 것 하나밖에 할 게 없단 말입니다. 그것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일만 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으로 즐거워하고, 예수님의 사랑만 받고 좋아 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신령한 영적 교제하며 즐거워하고, 예수님의 명령만 좋아하고, 그 말씀만 순종하려고 애를 쓰고, 선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고, 선한 행실을 가지려고 합니다. 나사로만큼 믿는 일을 잘 한사람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자가 예수 믿었어도 부자는 나사로만큼 믿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왜 할 수 없겠습니까? 세상에서 호화로이 연락할게 있지 않습니까? 연락하느라고 언제 믿는 일 할 시간이 있나요? 예수 믿어도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또 왜 할 수 없었겠습니까? 세상 것을 사랑하고, 세상 것을 의지하고,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고, 세상 사람의 사랑을 다 받고, 세상 사람과 더불어 즐거워하고, 세상 것으로 자랑하고, 세상에서 향락을 다 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껍데기만 믿는 것입니다. 세상 것 하느라고 믿는 일에 보낼 시간이 없고, 정력을 기울일수도 없고, 정성을 기울일 수도 없단 말입니다. 예수 믿어도 껍데기만 하는 것입니다. 믿는데 시간을 조금만 기울입니다.

모든 정성을 하나님께 기울인 나사로

나사로는 믿는데 얼마나 기울였겠습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전체 다 믿는 데만 기울였습니다. 부자는 예수 믿었어도 온종일 세상 것누리느라고 믿는데 시간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업 하느라고 마음도 세상에 쓰고, 정성도 세상에 기울이고, 사랑도 세상에 기울이고, 즐거움도 세상 것을 가지고 살려고 하고, 돈도 세상에다 기울여서 세상 것을 좀 더 풍성케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사로는 세상 것을 할래야 할 게 없습니다. 모든 정성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모든
시간을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마음 전체를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사랑 전체를 다 하나님께 기울입니다. 몸 전체를 하나님께 다 기울입니다. 또 하나님의 것만 받아 가지고 삽니다. 사람의 것은 받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것을 받으려면 떨어지는 부스러기 조금 밖에 없습니다.

이젠 하나님의 것을 받아가지고 살려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하나님의 나라만 소유 하려고 하고, 하나님으로 즐거워하려고 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 하려고 하고, 하나님의 것을 풍성하게 하려고 하고, 신령한 것을 좀더 많이 가지려고 하고, 하늘의 위로와 평강을 좀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일을 제일 많이 한 사람은 나사로로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정성이 100이라고 합시다. 내게 있는 모든 정성, 마음, 시간, 재산을 전부 100으로 잡아 놓으면, 부자는 예수 믿었다고 해도 정성과 마음과 시간과 돈이 한 50%는 세상으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70~80%가 세상으로 가고 남는 것만 하나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99%가 세상으로 가고 남는 것 1%만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세상으로 갈래야 갈 데가 있나요? 자기의 마음, 정성, 시간, 힘, 사랑, 정력 전부 100% 다 하나님께만 갖다 기울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것이 몇%이고, 세상으로 가는 것이 몇%인가? 생각해 봅시다. 마음이나 시간이나 정성이나 사랑이나 의지하는 것이나 즐거워하는 것이나 세상으로 가는 것이 얼마이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세상으로 가는 것이 몇 %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몇 %입니까? 어떤 사람은 세상으로 가는 것이 90%고,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10%랍니다. 우리 마음, 시간, 정성, 사랑, 의지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 소망, 세상의 소망이 몇 %고 하늘나라 소망이 몇 %인가? 세상 것을 붙들고 살려는 것이 몇 %고, 하나님의 것을 붙고 살려는 것이 몇 %인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100%가 못됩니다.

나사로는 믿느라고 힘을 조금만 쓰면 100% 다 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갈 데를 다 끊어 놓았기 때문에 갈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만 전부 다 가는 것입니다. 의지하고 사는 것도 하나님만 의지하려고 하고, 소망도 하나님께만 두고, 또 사랑도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려고 하고, 자기 사랑도 하나님께만 다 기울이고, 시간도 하나님께만 다 기울이고, 돈도 있으면 하나님께만 다 바치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말입니다. 세상 것으로 부유 한 것은 예수 믿는데 손해입니다. 세상 것이 가난한 것은 세상 편으로 볼 때는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IMF가 온 것이 세상 편으로 볼 때는 안 되었지만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위해서만 살려고 하는,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려는 하나님의 큰 사랑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것으로 부유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저께 신문을 보니까 가난한 것이 유익이 많다고 나왔습니다. 아이들도 가난한 집 아이들은 죄 안 짓는다는 것입니다. 부유한 집 아이가 술 먹고 방탕하게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부유할 때는 마음이 헤이해지기 쉽습니다. 가난할 때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거기서 만족합니다. 부요하면 마음에 허영심이 들어오고, 만족이 없이 늘 모지라고, 기쁨이 없고, 방탕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집 아이보다 부요한 집 아이들의 방탕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나사로의 신앙을 우리가 본받아야 되겠습니다. 나사로와 같이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하나님께만 다 기울여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7:29-30에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와 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바울도 이 신앙입니다. 아내 있는
자는 어떻게 하라구요? 아내 있는 자는 없는 것처럼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 같이, 울 일이 생겼어도 “울 일이 없다”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세상 일을 위해서 기뻐하는 자는 기쁘지 않는 것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또 매매 하는 자들은 매매하지 않은 것처럼 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세상 물건을 쓰는 자는 다 쓰지 못하는 것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다 빼앗기고, 시간을 다 빼앗기고, 세상에 소망을 두고, 세상 것으로 향락을 삼고, 세상 것으로 살려
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없는 자와 같이 하여 심령이 가난해져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의 것만 찾으라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처럼 있는 것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구제하고,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는 것은 하늘나라에 보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정성, 모든 시간, 모든 사랑, 모든 의지하는 것, 모든 즐거워하는 것 등을 전부 하나님께로 돌려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없는 것과 같이 만들어 놓고 하늘나라의 것을 추구하고, 하늘나라의 것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영이 부요 하려고 애를 쓰고, 영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를 쓰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세상을 이기려고 애를 쓰고, 영적 부요한 생활을 하려고 애를 쓰고, 그래서 하늘나라의 것으로 부요해지는 자가 큰 복을 받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나사로가 큰 자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하늘나라에만 기울였습니다. 세상에 기울일래야 기울일 데가 있어야지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 할래야 의지할 데가 있어야지요. 하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만으로만 즐거워했습니다. 다른 것으로 즐거워 할래야 즐거워 할 게 있어야지요. 하나님으로만 즐거워하는 나사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것을 가지고 즐거워합니다.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 한잔 마시고 “캬~,하하하하”하며 한잔 더 합니다. 그 바람에 즐거움이 세상으로, 기쁨이 세상으로, 오락이 세상으로 다 갑니다. 그러나 이것을 다 끊어 버리면 하나님께로 전부 가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얼마나 믿는 일을 잘하였는가? 생각해 봅시다. 부자는 안 믿었기 때문에 지옥에 갔습니다. 부자는 믿었어도 그저 세상으로 다가고 하나님께 보내는 것은 조금밖에 없었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고운 베옷을 입고, 호화로이 연락하고, 매일 잔치 하
느라고 믿는 것은 그저 조금 기울였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해야 됩니다. 재산이 좀 있어도 없는 자와 같이 마음이 가난해야 합니다. 아내 있는 사람도 아내를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남편 있는 사람도 남편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 말고, 없는 자와 같이 하고, 이젠 하나님만 기쁘게 하란 말입니다. 그러나 남편 대접은 잘 해야 됩니다. 대접 잘해도 사랑은 누구만 하라고요? 예수님만 사랑하란 말입니다. 대접하라고 성경에 그랬기 때문에 성경대로 하려고 대접하는 것이지 사랑은 예수님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사는 것입니다. 남편 의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직장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돈 의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의지하고 사는 사람이 진짜 믿는 사람입니다.

믿는 일에 다 기울여야 합니다. 믿는 일이라 하면 발 벗고 나서는 것입니다. 앞장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전진하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믿는 일 하는 것이 첫째이고, 세상 것은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없어도 됩니다. 없다고 해서 나사로 굶어 죽었습니까? 하나님이 살려 주십니다. 나사로가 뭘 먹고 살았습니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반드시 있게 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부자의 나라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삽니다. 미국이 부자라고 볼 수 있는데 가난한 나라들은 미국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고 사는 것입니다. 제가 부스러기를 먹었습니다. 언제 먹었는가? 하면 6.25사변 때 사진관 하는 집사가 한명 있는데 우리 졸업 사진을 찍어 준다고 오셨습니다. 감사해서 맛있는 것 대접 하겠다고 하였더니 따라 오셨습니다. 그 집사님이 어디를 가려고 하냐?고 물어 볼 때 “남포동 시장 꿀꿀이 죽을 먹자”고 하였더니 이 집사님이 냉큼 놀랍니다. 그때 우린 이따금 가서 사 었먹는데 꿀꿀이 죽처럼 좋은 것이 없었습니다. 꿀꿀이 죽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꿀꿀이 죽은 미군 부대에서 미군들이 고기 먹다가 남긴 것을 통에다 모아 가지고 가져다가 끓여서 파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이 먹던 부스러기 먹는 것입니다. 그래도 학생들이 많이 나가서 사먹었습니다. 그것이라도 사먹지 않으면 영양 부족에 걸릴 것인데 부스러기 먹는 바람에 영양부족에 안 걸렸습니다.

떨어지는 부스러기 먹어도 믿음만 잘 지키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소망을 두지 말고, 세상 것으로 즐거워하지 말고, 세상 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지 말고,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고, 세상 것을 없는 자 같이 여기고,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께만 소망을 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모시고, 예수님으로만 즐거움을 삼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으로 부요해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2017년 9월 22일 금요일

누가복음 16 :1~13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누가복음 16 :1~13

1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뇨 6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불의의 재물

세상 재물은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세상 재물이 왜 불의의 재물인가? 그 이유는 세상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인데 사람들이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불의의 재물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역대상 29:11-12에,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라며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그랬고, 시편24:1에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
호와의 것이로다”라고 그랬습니다.

전부 다 여호와의 것인데 여호와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다 불의의 재물입니다. 사람은 청지기라고 그랬습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은 다 청지기입니다.

본문 1-2에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천지만물이 다 주의 것이고, 우리는 주님의 것을 임시로 맡아서 주님의 심부름을 하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종이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다 종입니다. 우리가 주인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올 때에 우리는 빈 손들고 왔고 갈 때도 빈손 들고 세상을 떠나갑니다. 천지만물은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또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께서 주장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을 위해서 있는 자이고 또 주인의 뜻대로 맡은 모든 것을 사용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를 위해서 제 뜻대로 사용하는건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그건 도적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은 다 주의 것임을 알고,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로서 가진 것을 임시로 맡아 있다가 주님이 어느 곳에 지출하라 하시면 지출하고, 무엇에 사용하라고 하시면 거침없이 우리는 순종해서 사용해야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사용해야만 되겠습니다.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해고하고자 함

그런데 본문에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주인의 귀에 들렸다고 그랬습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습니다. 주인의 뜻대로 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자기의 뜻대로, 자기를 위해서 그 맡은 바 재물을 사용했습니다. 주인이 볼 때 그것을 허비한 것입니다. 청지기 노릇을 잘 못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의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청지기 노릇을 오래 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불러가시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한 이후로 모든 사람이 다 범죄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얼마 살다가는 하나님께서 다 불러 가십니다. 그렇게 얼마 살다가 청지기 일을 결산하고, “이제는 청지기를 그만 두고 나가라, 세상을 떠나라” 이런 명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청지기로써 얼마동안 일 하다가, 이 세상에서 청지기 노릇을 계속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청지기를 내놓고 가게 되어있습니다.
주인이 그럴 때에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하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청지기 쫓겨 난 다음에 무엇을 해 먹어야 되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아직 그 일에서 나간 것이 아닙니다. 기간이 남았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로운 대책

이제 얼마 있다가 ‘청지기 내놓고 나가라’는 명령이 떨어지는데, 그럼 ‘내가 청지기 내놓고 나가면 무엇을 해 먹어야 되겠나,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어떻게 해야 될까?’하며 많은 생각을 하다가,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 하리라’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하고 청지기가 물어보니까 “기름 백 말이니이다”하고 답변을
했습니다.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서 오십이라고 쓰라”며 청지기가 말합니다. 또 한 사람을 불러다가 “너는 얼마나 빚졌냐?” 하고 물어보니까 “나는 밀 백 석이니이다”하고 말했습니다. “빨리 앉아서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이렇게 청지기가 해 놓았습니다. 아직도 주인의 금고가 자기 손에 다 있습니다. 열쇠도 자기 손에 다 있습니다. 또 금고 안에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모든 차용증서는 아직도 청지기가 다 관할하고 있습니다. 이제 청지기가 얼마 안 있으면 열쇠, 금고 다 내놓고 나가야 되겠는데, 나가기 전에 아직도 자기에게 모든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빚 진 사람들을 불러왔고, 그리곤 불러다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무개입니다”. “당신은 우리 주인에게 얼마를 빚졌습니까?”. “기름 백말입니다”. 금고를 열고 차용증서를 보니까 그 사람 이름이 나왔습니다. “이것 당신 것이 맞습니까?”. “기름 백말 맞습니다”라고 그러니까, “그럼 여기 백말을 오십이라고 고치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백말을 오십이라 고쳐놨습니다. 그리곤 주인의 도장이 있으니까 도장도 다 찍어 놨습니다. 빚진 사람의 도장도 다 찍었습니다. 그 다음도 다른 사람을 불러다가 “당신의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입니다”. “우리 주인에게 얼마를 졌느냐?”. “밀 백석입니다”. 금고 열고 그 사람 차용증서 보니까 밀 백석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당신 것인가?”. “예, 제 것입니다”. “이걸 팔십 석이라고 쓰라”고 했습니다. 백석을 팔십 석이라고 고쳐서 주인의 도장도 찍고, 그 사람 도장도 찍어서 다 고쳐놨습니다.
왜 청지기가 이렇게 했냐 하면, 이제 이 집에서 쫓겨난 다음에 그 사람한테 달라고 하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찾아가면 백만을 오십만으로 해 줬으니까 오십만을 탕감해 준 것 아닙니까? 오십만을 탕감해줬기 때문에 그 집에 가면 그래도 ‘한 열 말이나 스무 말은 주지 않겠나?’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밀 이십 석을 탕감해준 집에 가면 못해도 열석이나 다섯 석은 주지 않겠나 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에게 다 이렇게 해 놨습니다.

이제 쫓겨 난 다음에 그 빚진 사람 집들 다 찾아가서 “나 청지기 쫓겨났습니다. 당신네 사정 봐 줬지만 여러 가지 때문에 쫓겨났는데 이렇게 형편없이 됐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얼마씩 주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 가지고 살려고 이렇게 해 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불의한 청지기라고 아예 처음부터 기록해놓았습니다. 불의한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또한 성경에 말해 놨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이지만 그 일만은 지혜롭게 했다는 말입니다. 청지기 그만두고 쫓겨 난 다음에 먹을 궁리를 다 해 놓았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입니다. 사건은 불의한 일이지만은 청지기 그만 두고 나가서 먹고 살 궁리 해놓은 것만은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한 가지만 말하는 것입니다. 옳지 않은 그 일을 본받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잘못 해 놨다는 것을 말해 놓았지만, 쫓겨 난 다음에 가서 자기 살 것을, 권한이 있는 동안, 청지기 그만두기 전에 다 해 놓았다는 이것만 지금 가르쳐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 방법은 우리가 본받으면 안 됩니다. 이 사건은 불의한 일입니다. 그러나 주인의 집에서 쫓겨 난 다음에 자기 살 예산을 다 해놓은 것, 살 궁리를 다 해놓은 것, 가서 살 일을 다 해놓은 것, 이것만은 지혜로운 일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는 그것 하나만 본받아야 됩니다.

2.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내세를 준비하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청지기노릇 하고 있다가 ‘청지기 그만 두고 세상을 떠날 때, 떠난 다음에 내세에 가서 다음 세상에 가서 살 모든 준비를 다 해 놔라’ 하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청지기 노릇 하고 있다가 얼마 안 있으면 다 내놓고 가야 되지 않습니까? 요즘도 청지기 내놓고 가는 사람 많습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 지난주 간에도 청지기 내놓고 가셨고, 어제 그저께도 청지기 내놓고 가신 분 있고, 늘 그렇게 갑니다. 세상 떠나서 내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서 살 궁리를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가서 어떻게 살아야 될까? 현재 내가 청지기의 권한이 있고 내 재산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그 동안에, 세상을 떠나서 이다음에 하늘나라에 가서 살 모든 준비를 다 해 놓을 수 있을 때 다 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걸 여기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예수님을 사귀는 법

우리에게 준 재물, 우리에게 준 권한이 있을 때에 내세에 가서 있을 준비를 하라셨습니다. 청지기로서 일 끝마치고, 세상 떠난 다음에 하나님 앞에 가서 살 만한 모든 준비를 다 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우리가 얼마나 해 놨는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늘나라에 가서 있을 모든 준비, 가서 쓸 만한 준비를 해 놨는가?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하는 말은 예수님을 사귀라는 말입니다.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사귀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1) 재물이 다 주의 것으로 알아야 한다. 

불의의 재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첫째는, 재물은 다 주의 것인 줄로 아는 것이 첫째입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내 것이 아니다. 이걸 첫째 알아야 됩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남의 것인 줄로 알아야 되는 데, 제 것인 줄 알고 있으면 도적입니다. 그렇게 되면 친구가 사귀어 지질 않습니다.

첫째는, “ 저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고 예수님의 것이다”, 우리의 재물 다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아야 됩니다. 그래야 양심 똑바로 쓰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네 생각이 바로 됐다. 사람이 참 바로 됐다”고 생각 하실 것 아닙니까? 자기 것으로 만들어 놓고 앉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도 도적으로 취급하실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제일 기본자세가 바로 되어야 되는데, 청지기의 기본자세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맡아가지고 있긴 있지만 이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아는 것이 기본자세입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것으로 삼아 놓으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것인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본자세입니다. 제 것인 줄 알고 있는 자체가 양심삐뚤게 쓰는 것이고, 욕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기에 친구를 사귈만한 증거를 삼을 정도가 되질 못 합니다.

친구를 사귀려면 친구 것을, 친구 것으로 알아야 친구를 사귀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냔 말입니까? 예를 들어 친구가 외국에 갈 때 자기집을 임시로 좀 빌려 줬다고 합시다. 외국에 가서 여러 해 있는 동안에 무슨 수단을 써서 그 집을 자기 것으로 등기 다 이전시켜놓았다고 합시다.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내 것으로 대신 다 해 달라고 도장까지 맡겨놓았습니다. 도장도 있고 하니까 인감 띄어가지고 그 집을 자기이름으로 다 넘겨 놨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 해 만에 친구가 왔는데 친구로 사귈 수 있습니까? 반갑다고 나가서 비행기 앞에서 영접했습니다. “아, 음식점에 가자”고 “고급 음식점에 가서 한턱 잘 내겠다”고, 그래서 친구가 “내 집 어떻게 됐나?” 하면 “뭐 어떻게 되긴 등기 다 내 이름으로 넘어 와서 내 것 삼았지” 그러면 아무리 대접을 잘 하고, 아무리 뭐 송아지 잡아서 한 마리를 대접하고 별 대접을 잘 해도 그 친구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친구 것은 아예 친구 이름으로 놔두고 그 다음에 가서 사귀면 얼마나 사귀기 좋습니까? “얼마나 수고가 많았나, 내 집 봐주느라고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느냐?” 친구가 많이 생각해 줄 것이고 이다음에 집 팔면 수고 했다고 한 몫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남의 것을 제 것으로 삼아 놓는 것은 친구를 사귈 무슨 정도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언제나 그저 “내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이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은 주인의 것이다. 나는 청지기다”하는 이 자세부터 먼저 바로 세워야만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사귈 수가 있겠습니다.

2) 주인의 명령대로 사용해야 한다. 

둘째로는, 친구를 사귀려면 주인의 명령대로 그걸 사용해야 됩니다. 주인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주인이 “아무데 좀 써야 되겠다” 하면, 써야 주인이 기뻐하지 주인이 얼마 좀 저기 쓰라고 하는데 안 쓰고 가만히 있습니다. 그러면 주인이 다 토라집니다. 그러면 친구하고 대적이 되겠는데 어떻게 친구를 사귈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인의 것을 맡아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인이 무엇에 좀 필요하니까 써야 되겠다고 하면 “예”하고 주인의 것을 갖다가 써야 됩니다.
돈 통을 가져다가 주인이 쓰라는 대로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보험을 내라고 하면 보험도 내야 되고 무엇에 쓰라 하면 무엇을 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내 재산 절반을 저기다 갖다가 쓰라 하면 저기다 써야 되고,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다 쓰라고 하면 또 다 써야 합니다.

협력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귀는 것이 됩니다. 주께서 이제 맡겨 주셨으니까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 위해서 이걸 사용하려고 한다. 그 다음에 주님이 하는 일에 협력하고 보조하고 주님의 일에 주의 것을 가지고 협력하고 보조 하는 일 이걸 잘 해 나가면 그 주인이 기뻐서 그 친구가 더욱 더 깊은 친구가 됩니다. 예수님의 일에 협력하고 예수님의 일에 봉사하고 예수님의 일을 위해서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용하면 주님이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기쁘고 자기를 협력해 주는 것이 얼마나 좋고 자기의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치게 얼마나 기뻐서 더욱 더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랬습니다. 재물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귀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가지고 잘하면 예수님을 사귈 수 있습니다. 좀 더 깊이 사귀고 예수님께서 좀 더 기뻐하시는 자가 될 수 있고, 좀 더 예수님의 그 뜻을 잘 이루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사귀는 데 재물을 사용하는 자가 지혜로움

본문 8절에,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그랬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과 ‘빛의 아들’, 빛의 아들들보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빛의 아들과 이 세대의 아들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빛의 아들’은 예수 믿는 사람을 가르치고 ‘이 세대의 아들’은 안 믿는 사람을 가르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왜 빛의 아들이라고 했나 하면 빛에 속해 있기 때문에 빛의 아들이고, 또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빛의 아들이고, 빛을 세상에 나타내기 때문에 빛의 아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5에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는 빛에 속해 있습니다. 빛은 무엇을 가르치나 하면 하나님의 빛, 영적 빛, 진리의 빛을 가르칩니다. 어둠이라는 것은 하나님도 없고, 진리도 없고, 영적면도 없고, 죄만 있는 것이 어두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고, 영적 세계에 사는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 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 믿음으로 영접한 것은 벌써 빛의 세계에 들어간 것이고, 그것이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가 빛입니다. 또 진리가 빛입니다. 하나님이 빛이십니다. 요한 1서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니 털끝만치도 어두움이 없다”고 그랬습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비취신다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빛이요, 그리스도가 빛이요, 진리가 빛입니다.

중생한 영이 빛인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접 했으니까 빛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또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아니까 빛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또 영적으로, 말씀대로 사는 것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 성령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입니다. 빛 가운데서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을 통해서 빛이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진리대로, 또 믿음으로, 영적으로 살면 이 세상에 빛으로 나타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빛의 아들입니다. 빛의 아들 얼마나 밝습니까? 하나님도 알고, 예수님도 알고, 천당을 알고, 영적 영혼을 알고, 성령을 알고, 성령의 인도를 받고, 말씀대로 살고 이게 전부 다 빛입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빛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전부 어두움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고, 예수님도 알지 못하고, 죄도 알지 못하고, 의도 알지 못하고, 또 천당도 알지 못하고, 자기 속에 있는 영혼도 알지 못하고 전부다 어두움에 쌓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내세도 알지 못하고, 지옥 가는 것도 모르고 지옥 가는 것입니다. 몰라도 지옥 갑니다.

안 믿는 사람은 어두움에 속했고 예수 믿는 사람은 빛에 속했습니다. 그러니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빛하고 어두움하고 마주해 보면 통하지가 않습니다. 빛이 하나도 없으니까 전부 세상 것이고 하나님의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믿는 사람은 전부 하나님의 것이고 전부 진리의 것이고 영의 것이고 전부 예수님의 것입니다. 믿는 사람끼리는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고 그랬는데, 이 세상에 있어서 ‘이 세대의 아들’, 즉 말하면 안 믿는 사람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그랬습니다. 이 세상 흐름만 보면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런가 하면 내세를 준비하다 보면 이 세상에서 손해를 많이 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내세를 모르니까 하나님도 모르고 전부 자기 볼 장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볼 장을 안 보고 내세, 하나님의 나라 여기를 표준으로 삼기 때문에 세상 적으로 볼 때는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7-8에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제자들이 보고 분하여 가로되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라고 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삼백 데나리온어치 향료를 갖다가 부었습니다. 한 데나리온이 한 사람이 하루 일한 고가니까 한 사람이 하루 나가서 만원씩만 번다고 해도 삼백 데나리온이면 삼백만원이고, 이만 원씩 벌면 육백만원입니다. 요새 장정이 나가서 하루 얼마 받습니까? 만 오천 원? 만 오천 원 삼백 데나리온 이면 얼마입니까? 사백 오십 만원, 마리아가 사백오십 만 원짜리 향료를 예수님의 머리에 갖다가 다 쏟아 부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볼 때 “그 얼마나 허비하느냐 어리석다. 그 많은 돈, 사백 오십 만원 어치나 되는 향료를 갖다가 예수님의 머리에 몸에 쏟아 부으면 몸에 흘러서 발까지 내려갔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백 오십 만원이나 되는 돈을 이렇게 허비 하느냐, 예수 믿는 사람도 믿음 안 쓰는 제자들은 이렇게 비방을 했습니다. ‘아 사백 오십 만원이나 되는 돈을 갖다가 저금을 해두든지, 아니면 자기를 위해서 사용 하든지 했으면 얼마나 좋을 뻔했는데, 그
걸 갖다가 허비하느냐’ 생각을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그것을 허비하지 않고, 사용하지 않으니까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갖다가 예수님께 부었으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지혜가 없어 보입니다. 허비했으니까 지혜가 없는 것 아닙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자기 것으로, 자기를 위해 사용했으면 자동차나 하나 사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것 무엇을 하나 사든지 했으면 좋았을 것인데 그것을 무엇 때문에 갖다가 허비하느냐’하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이 세상 편으로만 보면 안 믿는 사람이 더 지혜롭습니다.

내세적으로 보면 믿는 사람이 지혜롭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사용한 것은 하늘나라에 쌓아지는 거니까, 이제 마리아는 이다음에 삼백 데나리온 어치 부은 것이 하늘나라에다가 지금 다 쌓여지는 것입니다.
허비한 것 아닙니다. 예수님을 기쁘게 하고 예수님에게 만족을 시키고 예수님 구원운동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 보면 아주 큰 보화로 상급으로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 적으로 보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세대에 있어서는, 즉 말하면 이 세상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세를 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수님을 사귀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많은 희생도 하고, 손해도 보고, 믿는 사람이 낮아지기도 하고, 또 믿음 지키다가 쫓겨나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직장을 빼앗기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산업을 빼앗기기도 하고, 믿음 지키다가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 영이 살고 내세에 가서 영원한 상급을 받으려고 믿는 사람이 그렇게 희생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는 그게 어리석은 일입니다. ‘뭣 때문에 그렇게 쫓겨납니까?’ 하는 것입니다. “주일날 좋은 직장, 돈 많이 벌고 대접 잘 받는 직장인데 그걸 뭣 때문에 내놓고 주일날 하나 지킨다고 해서 좋은 직장 내놓고 직장 없이 돌아다닙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제사 안 한다고 하다가 매 맞고 쫓겨나고 그 얼마나 어리석게 돌아다니나” “제사상 차려 줬으면 대접 잘 받고 존경을 받을 것인데 왜 이렇게 됐는가”라고 말합니다.

또한 믿음 지키다가 감옥에 가고, 주기철 목사 순교당하고, 이기선 목사 감옥에 가고, 한상동 목사 감옥에 가고, 이런 식으로 많은 매를 맞고 다 쫓겨나고 빼앗기고 희생당하고, 믿음 지키다가 그렇게 하는 것이 많이 있는데, 그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내세에 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있는 재산 다 갖다 바치고, 있는 것 다 바치고, 희생하고 또 자기 목숨도 바치고 많은 환난과 핍박을 받고 쫓겨나고 빼앗기고 하는 이것은 예수님을 사귀는 것이고 영이 사는 길이고 내세
에 가서 영원한 복을 받는 길이고, 상급을 받는 길입니다.

그러나 세상 적으로 볼 땐 그것이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다 자기 것으로 삼아다가 그것 가지고 잘 삽니다. 호화생활하고 잘 산다는 것입니다. 이런 면을 볼 때에 빛의 아들들 보다는 이 세대의 아들이 자기 세대에서는, 이 세상 면으로만 볼 때에 더 지혜롭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은 세상 면으로만 볼 때는 어리석은 것이 많습니다. 손해 보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사귀려고 하는 것은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갖고 나가는 것이고 하늘에 재산을 쌓는 것
이고, 하늘나라에다 보물을 쌓는 것이기 때문에 내세에 가보면 이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로운 자입니다.

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귄 결과

본문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고 하십니다. ‘불의의 재물로 친구 되시는 예수님을 잘 사귀면 그것이 없어질 때에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의 재물을 쌓아 놓고 있어봤자 그것은 없어질 날이 옵니다. 다 내놓고 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잘 사귀어 놓으면, 주를 위해서 사용하고 주의 것으로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바치고 주님의 일에 사용 한다고 하면, 명령대로 사용하면 이것은 친구를 사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가면 세상 다 내놓고 갈 때에 예수께서 영원한 처소로 우리를 하늘나라로 영광스러운 자리로 인도하고 상급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갈 때에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여 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거기 가면 다 있습니다. 다 거기에 가 있습니다.

어떤 혼자 살던 성도가 있었는데, 자기에게 큰 집이 있었습니다. 세상 떠날 때에 하나님께 바치고 갔으면 하늘나라 예수님 앞에 갈 때에하나님이 기쁨으로 영접해 주시고 상급으로 갚아주시고 하늘나라에 다 가 있을 뻔 했는데, “나를 교회에서 장례해 주면 오만 원을 감사연보로 바쳐라”하고 조카보고 집을 팔아서 연보하라고 했습니다. 그때가 한 20년 전인데, 그 때 오만 원을 연보하라고 했습니다. 20년 전인데 집값이 아마 상당히 많았을 것 같습니다. 집값이 상당한 돈이니까 오십만 원 됐는지, 오백만원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걸 팔아서 오만 원 감사연보하고 그 나머지는 조카 너 가지라고 했답니다. 그때는 그 집이 몇 백만 원짜리였는데, 그렇게 하고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뒤에 교회에서 가서 장례를 잘 치러줬습니다. 그런데 그 조카가 그 오만 원을 아직도 바치지 않았습니다. 20년이 지나도록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명륜 교회 나갔었는데,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에 제대로 잘 처리하고 갔으면 하늘나라에 남아있었을 텐데, 무엇 때문에 조카 다 주고 갑니까? 조카에게 그것 안 준다고 해서 못살겠습니까? 또 돈을 바치려면 살았을 때에 바쳐야지 믿음 없는 조카보고 바치라면 바치겠습니까? 결국은 도리어 하나님께 빚지고 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주셨는데 하나님께 빚지고 간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고 가면 예수님이 너희를 기쁨으로 영접해 주고 그 공로 자리를 영접해주는 것입니다. 공로가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상급으로 주시는데 하늘나라에 쌓아놓고 갔으니까 거기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늘나라 갈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5.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됨

그 다음 본문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지극히 작은 것은 물질, 세상 재물을 가르칩니다. 큰 것이라는 것은 영의 것, 신령한 것입니다. 물질이 제일 초기 단계이고 제일 작은 것입니다. 신령한 것은 큰 것입니다.
이 육신 보다는 영혼이 큰 것이고 물질보다는 신령한 것이 더 큽니다. 몇 백만 배 더 큽니다. 그 ‘지극히 작은 문제 때문에 네가 충성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 가지고 안하면, 더 큰 신령한 것 영의 것 그것을 어떻게 하겠나?’ 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하면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물질이 지극히 작은 것인데 ‘물질에 대하여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큰 것에도 불의 하니라’ 이것은 신령한 면에 대해서도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재물은 불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자기 것으로 삼아 놨으니까 충성하지 않는 자체가 벌써 불의한 것이고 그것을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그랬는데 참된 것이라는 것은 신령과 진리 문제입니다.
재물에 대하여 충성치 않으면, 벌써 이런 사람은 재물에 우상이 된 사람이고 불순종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신령한 면과 진리 면을 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주셔도 받지 못합니다. 양심을 안 쓰고 그저 불의한 마음을 갖고 욕심을 품고 있기 때문에 신령과 진정한 문제는 그 사람에게는 받아지지 않습니다. 물질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물질을 크게 생각했으니까 말씀보다는 물질이 더 크고, 신령한 것보다는 물질이 더 크기 때문에 그 사람에게 신령한 것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참된 것, 신령한 것을 줄 수가 없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했는데, 물질은 남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 남의 것인가? 세상 올 때 가지고 온 것이 없고, 또 세상에서 남에게 있던 것이 나에게 온 것이란 말입니다. 다 남의 손에 있던 것이 온 것 아닙니까? 또 갈 때는 남에게 넘겨주고 가는 것 아닙니까? 물질은 내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있는 동안에 그저 임시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이걸 생활하면서 하나님께 쓰라고 주신 것이고, 갈 때는 다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물질이 남의 것인데,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하시는데, 너희의 것은 무엇인가? 영의 것, 하늘나라의 것, 우리의 것은 영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한 영이 자라나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또 하늘에 쌓은 것, 하나님의 것, 하늘나라의 것, 그것이 우리의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그게 우리의 것입니다. 우리의 나라는 하늘에 있고, 하늘에 가서 받아야만 진짜 우리의 것이고, 영혼이 내 것이고, 세상 것은 그저 임시로 가지고 있다가 내놓고 가는 것입니다. 세상 생활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나그네 생활 잠시 끝마치고 다 내놓고 갈 때에, 이제 하늘나라에 갈 때에 신령한 것, 우리 영이 사는 것, 하늘나라 기업 그것은 영원한 우리 것입니다. 

남의 것에 충성 해야만 자기 것을 받을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왜 그런가? 세상 것을 크게 생각하는 사람은 돈이 우상이 돼서 하늘 나라의 것을 귀중히 여길 줄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물이 우상이 안 되어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이 더 큰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더 크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또 하늘나라에 쌓는 것이 더 큰 줄을 아는 사람이어야만 하나님의 신령한 것과 하늘의 것을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채워주십니다.

2017년 9월 21일 목요일

누가복음 15:11-32 탕자의 회개와 장자의 잘못,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탕자의 회개와 장자의 잘못
누가복음 15:11-32

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25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 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작은 아들이 탕자가 되어 나갔다가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장자 맏아들은 집에 있었지만 깨닫지 못한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여기 아버지의 사랑, 용서, 아버지가 주시는 풍성한 선물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탕자는 죄 짓고 나가다가 궁핍한 가운데 빠져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맏아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것을 가리켜주는데,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바로서야 되겠습니다.

1. 탕자의 회개

둘째 아들이 탕자가 되어 허랑 방탕함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고 아버지에게 간청을 하므로 아버지가 재산을 각각 나눠주었습니다. 나눠 줄때에 장자는 두 몫을 주고 작은 아들에게는 한 몫을 준 것 같습니다. 구약성경에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라고 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그 재산을 가지고 멀리 다른 나라에 갔다고 했습니다. 왜 먼 나라로 갔는가 하면 가까이 있으면 아버지가 간섭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쓰지 말아라, 술 먹지 말아라, 주색잡기 하지 말아라 하고 여러 가지로 아버지가 자기에게 대해서 간섭할거니까 잔소리 듣기 싫다 생각해서 마음대로 해보려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마음대로 돈도 써보고, 하고 싶은 것 다해보고 방탕도 해보려고 아버지의 품을 멀리 떠나서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허랑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했습니다. 주색잡기하고, 방탕이라는 방탕은 다 해보고, 모든 죄는 다 지어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못된 행실도 다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친구가 상당히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친구 몇 백 명, 몇 천 명, 여자들 사귀고, 술 먹고, 노름하고 그 바람에 재산이 다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탕자가 있는 거기가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가 그 나라 백성가운데 가서 붙어서 살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그 나라 백성이 “그러면 우리 돼지 치는데 와서 돼지를 먹여라”하였고, 그 탕자는 돼지 치는 직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그때 유대나라에는 돼지를 많이 길렀습니다. 몇 백 마리, 몇 천 마리를 들에서 쳤는데 풀을 먹이고 쥐엄 열매 같은 사료를 먹이면서 돼지를 쳤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어서 주인이 먹을 것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탕자가 너무 시장해서 돼지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면서 배를 채우려고 했지만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쥐엄 열매는 돼지가 먹는 사료인 모양입니다. 조그만 열매라고 하는데 구역 성경에는 파 껍질로 배를 채우고자 했다고 했습니다. 돼지 먹는 파 껍질, 쥐엄 열매입니다. 사람으로서는 그것 먹고서는 살수 없는 그런 돼지 사료입니다. 그것 먹고 살려고 해야 시장이 면해지지 않고 여전히 시장한 것은 계속되고 그것 먹어가지고는 살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고통이 심하고 시장해서 주려서 죽게 될 것 같아지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을까?’하는 생각이 이제야 났습니다. 그동안 다 잊어 버리고 있던 아버지 집도 한번 생각해 보고, 전에 살던 것도 한번 생각해 보고 할 때에 무슨 생각이 났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하고 돌아 온 탕자

본문 17-19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내 아버지 집의 품군들이 잘 먹고 양식이 풍성하면서 일을 많이 하는 일꾼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하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쥐엄 열매 많이 먹어도 그것 가지고는 못삽니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쌀뜨물이나 파 껍질로 배를 채운 때가 있었는데, 쌀뜨물 먹고 사람이 살겠습니까?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 무슨 생각이 났는가 하면,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라고 했는데, 아버지께 돌아갈 생각이 났습니다. ‘이젠 돌아가야겠다’했습니다. 그 다음엔 무슨 생각이 났는가하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하늘과 아버지께 죄 지은 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이 탕자의 집안이 하나님을 공경하는 집안입니다. 아버지도 하나님을 공경하는 아버지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라고 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진짜 회개는 아들이라 칭하기를 감당치 못할 줄을 알고 아들의 지위와 권리를 다 내놓은 것이 회개입니다. 자기의 권리, 지위, 세력 다 내놓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이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주옵소서 하는 품꾼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이 진짜 회개입니다. 회개는 다 내놓는 것이 회개입니다. ‘내가 뭣이다’, ‘과거에 무엇을 했다’ 이런 것을 다 내놓아야 진짜 회개입니다. 참으로 회개하면 무(無)요 공(空)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의 자리에 내려가는 것입니
다. 품꾼의 하나로 나를 여겨주시옵소서 하는 그게 진짜 회개입니다.
자기 권리 쓰려고 하고, “나는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내 아버지입니다”하며, 또 “이전에 재산 나눠줬지만 1/3만 주지 않았습니까? 절반 내놓으십시오. 같이 나눠야지 왜 날 1/3만 줬습니까?”라고 나오는 그런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 권리 쓰고, 자기 지위를 나타내고 자기라는 것을 내세우려고 하면서 아버지에게 따지고 들어오는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라는 것은 다 내놓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일컫음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하며, “아들노릇 한 것이 뭐가 있습니까? 아들이 아닙니다, 이제는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 주옵소서”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를 한마디로 말하면 다 내놓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내놓는 것이 회개이고, 야곱이 베냐민 내놓는 것이 회개이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서 이방여자와 결혼해서 이방여자 내보내는 것이 회개이고, 자녀를 낳았어도 내보내야 하는데 그것이 회개입니다.
자기의 지위와 영광과 권세와 자존심 이것을 다 내놓게 되는 것이 회개이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는 게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다 종이 되어야 합니다. 종이 되었으면 회개한 것이고, 아직도 “나는 뭐다. 나는 집사다. 나는 권찰이다”하며 가슴 뚝 내밀고 다니는 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다 내놓으라는 말입니다. 다 내어 놓고 종의 자리에 내려가면서 “나는 아들이라 함을 감당치 못하겠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나를 사용해 주옵소서”하는 이게 진짜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아들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아버지를 떠난 삶의 상태

아버지 집을 떠나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으로 나가서 허랑방탕하고 제 마음으로 해봤지만 그것은 완전 실패였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것은 완전실패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먹을 게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돼지와 같이 생활했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조금 있던 것도 다 없애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 없앱니다. 신령한 진리와 은혜가 다 없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돼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되고, 돼지가 먹는 파 껍질이나 쥐엄 열매를 먹게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돼지 먹는 것을 먹고 살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떠난 다음에는 아무리 풍성하게 먹는다 해도 그것은 돼지가 먹는 파 껍질입니다. 배가 안 부릅니다. 하나님을 떠났는데 무슨 배가 부르겠습니까? 항상 영적 배가 굶주리고, 고달프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있고, 목마르고, 굶주린 것을 금할 수 없습니다. 다른 것을 암만 먹어도 배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신령한 양식을 먹어야 배가 부르지, 아버지 집을 떠나서 신령한 양식 다 잃어버렸는데 무엇을 가지고 배가 부르겠습니까?

세상 것 암만 가지고 가져도 그것은 다 파 껍질입니다. 껍데기입니다. 껍데기 먹고 배부를 수 있습니까? 아버지 집을 떠난 교인이 많습니다. 그들은 껍데기만 먹고 돌아갑니다. 목사들도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서 사는 목사가 있는데, 그것은 교인들에게 껍데기만 먹여주는 목사입니다. 신령한 양식, 알맹이가 있는 양식을 먹여주지 못하고 껍데기만 먹여주는 것입니다. 그 밑에 교인들도 껍데기만 먹고 삽니다. 심령은 언제나 고달프고 곤고하고 가련하고 목마르고 영적으로 갈급합니다.

돌아온 탕자를 품으시는 아버지

탕자는 나는 아들이라고 할 수 없고 품꾼의 하나로만 취급해달라고 해야겠다고 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데 모양을 좋게 하고 돌아오겠습니까? 돼지 먹이다 돌아온 형편에, 파 껍질 먹다 돌아온 형편에 무엇 모양이 좋겠습니까? 꾀죄죄해가지고 거지와 같이 냄새나고 돼지 먹이다가 세탁이나 제대로 했겠습니까? 냄새가 나고 양말이나 신었겠습니까? 머리털이 독수리 머리털 같이 해가지고 돌아올 것 같습니다. 한심하게 해가지고 돌아오는데 멀리서부터 아버지가 보고 자기 아들인 것을 알았습니다. 내 아들이 온다. 그래서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입도 더러울 것 같은데 그래도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이와 같이 큰 줄 알아야 합니다. 돼지 치는 데서 돼지 생활하다가 돌아와도, 먹을 것 먹지 못하고 파 껍질만 먹다가 돌아와도, 보기에 아주 흉하게 하고 돌아와도 아버지의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다가 “내 아들이 돌아오는구나!” 하고 너무 기뻐서, 불쌍히 여겨서 달려가서 입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버지 마음입니다. 잘못한 것 때문에 미워할 것 같은데 잘못하는 아들을 더욱 불쌍히 여겼습니다.
우리도 아버지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더욱 불쌍히 여기고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 돈 다 없앴지. 넌 모양이나 꼴이 그 꼴인가. 의복이 뭔가? 무슨 냄새 피고 돌아왔냐? 머리카락이 그게 뭐냐 독수리 털처럼 해가지고”하며, 재산 다 없앴다고 책망 하는 게 이치로 말하면 옳습니다. 그러나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야 합니다. 그게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다른 형제가 잘못할 때에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그게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돈 없앴다고 생각하면 밉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면 또 얼마나 불쌍합니까? 전에 귀공자로 자란 아들이 이제 이런 모양이 되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돼지 생활하다 돌아왔으니 참 불쌍합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미워하지 말고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 얼마나 불쌍합니까? 잘못하니까 이제 가다가 함정에 빠질 것이고, 잘못하니까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고, 잘못하니까 징계 받을 것이고, 잘못 하니까 가다가 이제 그 대가를 받을 것이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만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탕자가 와서 말하기를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나를 품꾼의 하나로 사용해 달라고 하였지만 아버지께서는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고선 잔치하며 즐거워했습니다.

2. 맏아들의 잘못

본문 25-30절에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웠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함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잃었다가 얻었다고 아버지가 대단히 기뻐하는 날인데, 이날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한 아들은 맏아들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좀 더 기쁘게 하고 같이 기쁨에 동참해야 되겠는데 이 좋은 날에 왜 아버지의 마음을 근심하게 했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남들은 다 즐거워하는데 이 좋은 날에 왜 노했는가 말입니다. 근처사람은 다 즐거워하고, 아버지도 즐거워하는데 이 맏아들은 노했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권면하도록 까지 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섬김

누가 맏아들이 이럴 줄 알았겠습니까? 생각 밖으로 맏아들이 삐뚤어졌습니다. 왜 삐뚤어졌을까? 맏아들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지만 아버지 마음을 잘 모르고 섬겼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제대로 섬긴 게 못 됩니다. 효도를 제대로 못한 셈입니다. 순종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순종을 제대로 못한 것이 다 나타났습니다. 아버지가 나와서 들어가자고 해도 안 들어가고 순종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껍데기로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지만, 중심에 들어가 보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마음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섬겼습니다.

이 맏아들은 자기중심적이요, 물질 중심으로서 사람보다 물질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왜 자기 중심인가 하면, ‘나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으되’라고 한 것을 보면 압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잘못 섬긴 것은 알지 못하고 자기는 잘했다고 하며 교만하게 말했습니다. 염소새끼 하나라도 주지 않아서 벗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것은 자기중심인 것입니다. ‘창기와 함께 재산을 먹어버린 작은 아들 돌아왔다’고 말한 것은 물질중심입니다.

자기는 하나님을 섬기느라고 여러 해 동안 명을 어긴 것이 없다고 생각할 만큼 행동했지만, 결국 아버지 마음을 모르고 섬긴 것입니다. 맏아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하나님을 잘 배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다 자기 중심인 것입니다. 염소새끼 하나라도 자기가 먹어야 일이 되는 것이고,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창기와 같이 다 먹어버린 작은 아들 돌아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물질중심입니다. 물질보다 형제가 귀하고, 형제보다 부모가 중요하고, 부모보다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물질을 잃는 것은 조금 잃은 것으로 생각하고 형제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부모를 잃는 것은 더 많이 잃는 것이고, 하나님을 잃는 것은 전부를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물질이 첫째이고 자기가 첫째입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중심, 물질 중심, 아무리 하나님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형제를 귀히 여길 줄도 모르고, 형제가 사망의 구렁텅이에 빠졌다가 나왔는데 이것을 기뻐하지도 않으니 얼마나 이 맏아들이 잘못되었습니까?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음

아버지께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탕자도 하나님과 부친께 죄를 얻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아버지께 잘못한 것은 동생에게도 잘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효도를 해야 합니다. 도덕적으로도 효도를 해야 합니다. 부모를 잘 공경해야 합니다. 군사부일체라고 했는데, 나라의 왕이나 스승을 잘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동생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고르반 사상이라고 바리새교인들에게 있었는데 부모에게 드릴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하는 사람은 부모에게도 바로하고 부모에게 바로 하는 사람은 형제에게도 바로 합니다. 믿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되는 것이 믿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못 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로 되겠습니까? 또 형제와 바로 못되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떻게 바로 되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 자가 눈으로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는 것이 거짓말이라 했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보이는 형제에게와 부모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바로 해야합니다.

많은 복을 받고 있음을 깨닫지 못함

맏아들이 깨닫지 못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맏아들이 자기에게 아버지가 준 복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큰 복을 맏아들은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자기 동생보다 더 많은 복을 받고 있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맏아들을 ‘본래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고 본다면, 우리가 큰 복 받은 것을 깨닫지 못하면 안 됩니다. 탕자는 ‘죄짓다가 돌아온 사람’으로 보면, 맏아들이 무슨 큰 복을 깨닫지 못했는가 알 수 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동거하는 것이 큰 복인 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와 동거하기를 여러 해 동안 했다고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긴 것이 없으되’라고 말했는데, 아버지와 동거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복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제일 큰 복은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내버려도 나는 하나님과 같이 사는 것이 복이다”라고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6장 마지막 절을 보면 너희가 다 나를 버려도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으로 만족함으로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또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내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했는데, 이런 마음이 아버지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하나님의 집에 있는 것이 제일 좋은 줄을 알아야 됩니다.

그리고 맏아들은 아버지 것이 다 자기 것인 줄을 몰랐습니다. 요한복음 17-10에 ‘아버지의 것은 다 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31절에도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10에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내 것을 다 아버지의 것으로 삼아놓으면 아버지의 것은 전부 내 것이 됩니다. 아버지의 것이 전부 자기의 것인데, 이 얼마나 많은 복인데, 동생이 3분의 1을 없애고 왔다고 해서 불평할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인데, 아버지를 참으로 잘 모시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입니다. 하나님을 참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 동거, 동락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전부 다 그 사람의 것입니다. 이같이 큰 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라시며 아버지의 것이 전부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사람의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 얼마나 큰 복입니까? 잃어버렸던 형제를 찾았는데, 자기 형제가 죽었다가 살아났는데 얼마나 큰 복입니까? 제일 큰 복을 맏아들이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복인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입니다. 동생이 돌아왔는데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금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겼다고 해도 아버지의 재산이 다 자기 것인데, 동생에게 해준 그것이 몇 푼이나 되겠습니까? 좋은 옷은 얼마나 할까요? 가락지는 얼마짜리나 될까요? 제일 좋은 가락지 100만원 잡고, 옷도 넉넉히 해가지고 100만원 잡고, 신 한 켤레에 10만원 한다고 해도 다해봐야 210만원입니다. 거기에다가 송아지 잡은 것 200만원 잡아도 410만원 밖에 안 됩니다.
그 아버지의 재산이 상당히 많은 것 같은데, 요새로 말하면 몇 억대 될 것 같습니다. 집값만 해도 얼마짜리입니까? 품꾼이 많은 것을 보니까 아마 10억대는 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거 400만원 썼다고 해서 주둥이가 쭉 나와 가지고, 돼지처럼 두두두 하고 들어오지도 않고, 아버지의 마음을 걱정 시키는 것이 말이 되겠는가 말입니다.

자기의 잘못을 알지 못함

회개를 해야 하겠는데 이것을 볼 때 맏아들이 회개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잘못한 줄을 알아야 회개하겠는데 잘못했다는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잘했다고만 합니다.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으되 명을 어김이 없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아버지 섬긴 것을 잘한 줄 알고 있습니다. 또, 명령을 어긴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자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야 회개하는데 깨닫지 못합니다.

따지고 들어가 보면, 여러 해 섬겼으면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섬겼습니까? 아버지의 마음을 지금도 모르는데 과거에 알았겠습니까? 지금도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잖아요? 또 아버지를 기쁘게 하고, 아버지를 공경하고 아버지를 편안하게 해드리고 아버지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는 것 이것을 못한 것이 분명 하잖아요? 오늘 아버지를 걱정스럽게 것을 보니까 과거에 무얼 편안하게 해드렸겠습니까.

명을 어김이 없다고 했는데, 아버지의 명령을 과거에 잘 지켰으면 오늘도 지키겠는데 집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안 들어갔습니다. 오늘 명령 지키지 않는 게 과거에도 그러지 않았겠는가 싶습니다. 지켰다고 해도 껍데기나 지켰겠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는데, 아버지 섬기는것을 제대로 모르고 섬겼기 때문에 무엇 제대로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 알고, 아버지가 무엇을 요구 하는가 이것을 알아야 명령을 제대로 지킵니다. 그것을 모르고 그냥 일 갖다 해치우면, 하긴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맞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 안 맞았던 것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 기도원에 봉사 하는 것도 제가 시키면 하긴 하는데 가보면 마음에 안 맞는 것이 많습니다. 강당에 피뢰침을 하라고 했더니, 가보니까 어디서 가는 것을 가져다가 한 3미터 높이 해가지고 바람에 흔들흔들 합니다. 그게 넘어갈 것 같으니까 또 버팀줄을 사방 매어놨던데, 제 맘에 도무지 안 맞습니다. “아니 피뢰침 갖다놓고 버팀줄 매놓는 것이 어디 있느냐? 풀어라”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도 뭐하나 해놓은 다음에 보면 마음에 맞추어 하는 게 5~60%됩니다. 제가 시킨 것도
그렇습니다. 한 7~80%, 100%되어야겠는데 거기 맞는 게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60%만 되면 가만둬 둡니다. 잘했다고 해야지, 그것을 다 고치라하면 어떻게 고치겠는가 말입니다.

이 사람이 아버지 섬긴 것도 아버지의 마음도 모르고, 아버지의 뜻도 모르고,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도 모르기 때문에 아버지를 제대로 섬기지 못했을 것입니다. 명령 순종하라면 했을 것입니다. 갔다 오라면 가긴 갔을 것입니다. 갔어도 제대로 했겠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잘못해 놓고도 잘못한 것을 모르는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것이 문제입니다. 교만하고 자기가 잘한 줄 알고, 제가 잘못한 것은 모르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 동생만 잘못했다고 하는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느냐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섭섭하게 한 것은 작은 아들이 아니고 큰 아들입니다. 작은 아들은 전에 섭섭하게 했지만 오늘은 아버지를 기쁘게 했는데, 오늘은 맏아들이 섭섭하게 했습니다. 맏아들은 오늘만 섭섭하게 한 것이 아니라, 전부터 내내 섭섭하게 한 것 같습니다. 때때로 섭섭하게 했을 것입니다. 맏아들이 속에 품고 있다가 오늘 다 터져 나온 것입니다.

맏아들이 회개하기가 힘듭니다. 먼저 예수를 믿은 사람이 맏아들이라고 볼 수 있고, 죄를 짓다가 회개하고 교회로 들어온 사람을 탕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맏아들의 죄가 사실은 더 지독한 죄입니다. 탕자는 나가서 돈 없앤 것뿐이지 다른 것이 없습니다. 탕자에게는 교만이 없고, 아버지에 대한 불평도 없고, 명을 다 지켰다고 내대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맏아들은 아버지 속이거나 명을 어기지 않고 재산을 없이 하지는 않았지만, 하는 것을 볼 때에 교만하고 방종하며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 없습니다. 공경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버지를 우러러 공경했다고 하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조그만 염소새끼 하나 안줬다고 불평하고,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 것인데 그것 하나 안줬다고 무엇을 불평하냔 말입니다.

3. 탕자와 같은 우리, 맏아들과 같은 우리

탕자와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탕자 노릇 했습니다. 파 껍질 먹다가 왔습니다. 또한 맏아들 같은 우리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만하고, 껍데기만 하나님을 섬기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모르고, 형제 귀한 줄을 모르고 했던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서, 아버지 마음을 이제부터는 기쁘시게 하고,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해서 형제 구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형제가 구렁텅이에서 나와서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형제 구원하는데 협력해야 하고 기뻐해야 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아버지의 뜻을 잘 배워서 그 뜻대로 바로 하나님을 섬기고, 그 뜻을 우리가 이루어 드려야합니다. 형제 구원하는 일이 아버지께서 제일 기뻐하시는 일인데, 전적으로 협력하고 동참하고, 그 기쁨에 동참하는 그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누가복음 15:1-23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잃은 탕자의 비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잃은 탕자의 비유
누가복음 15:1-23

1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5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7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10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11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12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4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을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17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18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19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20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 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21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22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23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님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본문 1-2절에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옴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하며 비방을 했습니다. 그럴 때에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서 가르쳐주셨습니다.

1. 잃어버린 양

본문 3-4절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2에도 양 비유가 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양 때를 산에 두었다고 했고, 본문에는 들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산에 있는 우리, 들에 있는 우리에 두고 산지사방으로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러 다닌다고 했습니다.

본문 5-6절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13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소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도 한 마리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으면 더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떠났던 양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아주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에, 하나님은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 사람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나가서 전도해서 교회에 안 나오던 잃어버린 양을 한 사람이라도 구원해 내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교회 나오는 아흔 아홉 사람보다 더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 하나를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시고 또 찾으려고 애를 쓰시고 찾으면 아주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전도하러 다니다 보면 잃어버린 양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예수 믿다가 그만 둔 사람, 타락된 사람, 믿으려고 하는 사람, 교회 나가려고 생각하고 있는 이런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면 하나님은 이미 있는 여러 사람보다 그 한사람 하나님 앞으로 새로 인도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잃어버린 양 하나라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일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줄 알아야 합니다. 전도하는 이일을 위해서 우리가 전심전력을 다해서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2.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

본문 8-10절에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드라크마는 은전의 명칭입니다. 어느 여자가 은전 열 개가 있었는데 열 개 가운데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방안에서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방안에서 잃어버렸으니까 등불을 켜고 집을 쓸고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않았겠나 생각해봅니다. 돈 은전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그것을 찾으려고 등불을 켜고 집을 쓸고 찾도록 부지런히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 돈을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었던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것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 죄인 하나를 잃어버렸는데 부지런히 찾으려고 노력을 하고, 전도하고, 심방하고, 돌봐서 하나를 찾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것으로 이웃과 더불어 아주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뜻으로 드라크마는 ‘중생한 영’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 생활을 못하는 사람, 즉 영의 세계를 잃어버린 사람입니다.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고 하는 이것은 회개하는 것입니다. 집안을 쓴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쓸어버리고 복잡한 것을 다 제거하고, 빈 마음을 가지고 중생한 영을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찾는단 말입니다. 그리곤 중생한 영을 다시 찾으면 아주 기뻐합니다. 영적 빛을 잃어버렸던 것인데 영의 세계를 회개하면서 찾고, 모든 복잡한 것을 다 제거하면서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면서 영적 세계를 다시 찾으려고 애를 쓰면 다시 찾는다는 말입니다. 찾으면 더욱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고 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3. 잃어버린 탕자

탕자가 자기 분깃을 가지고 허랑방탕함

본문 11-12절에 “또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은 탕자비유인데, 둘째아들이 재산 중에서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와서 아버지께 간청을 했습니다. 좀 있다가 나누어 준다고 해도 자꾸 나눠달라고 해서 결국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맏아들 몫을 맏아들에게 주고 작은 아들 몫은 작은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옛날에는 맏아들이 두 몫을 가지고, 3분의 1은 작은 아들에게 상속을 해주었습니다. 구약성경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작은아들에게 한몫을 줬습니다. 아들이 나눠가지고 갔습니다. 그 아버지가 부자이니까 아마 3분의 1이라도 상당히 많을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작은 아들이 먼 나라로 갔습니다.

본문 13절에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라고 했습니다. 1억이나 2억 가지고 갔어도 허랑방탕하기 시작하면 얼마 못갑니다. ‘주식형제(酒食兄弟)는 천개유(千個有)로되 급란지붕(急難之朋)은 일개무(一個無)니라’ 라고 했는데, 술 먹고 방탕할 때 친구는 천 사람도 넘지만 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결국 그런 친구는 다 달아납니다. 잠언에 형제는 어려울 때를 위해서 있다고 했는데, 어려울 때 그런 방탕할 때 친구는 다 달아납니다. 잠언 17:17에,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 위급할 때는 형제가 와서 돌봐주게 돼 있습니다.
둘째가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했습니다. 본문 14-15절에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라고 했습니다.

그 탕자가 재산을 다 없이한 후에,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게 없어지고 궁핍해졌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일을 좀 하자고 하니까 들에 가서 돼지를 치라고 했습니다.
그때 돼지 몇 천 마리씩 먹이는 집이 있었습니다. 2천 마리 먹이다가 예수님 당시에도 다 바다에 빠진 때가 있었습니다. 몇 천 마리씩 먹이는 일이 있었습니다. 돼지를 들에서 풀을 먹여서 키운 모양입니다. 돼지 먹이려면 들에 나가서 끌고 다녀야 하므로 사람이 필요해서 돼지를 먹이라고 했습니다. 이건 아마 들의 풀만 먹인 것이 아니고, 쥐엄 열매도 먹인 것을 보니까 밤에는 우리에 가두어 놓고 사료도 먹인 모양입니다. 사료가 쥐엄 열매입니다. 구역에는 파 껍질이라고 했고, 여기는 쥐엄 열매라고 했습니다. 돼지 먹는 사료입니다.

본문 16절에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끊어졌습니다. 사료나 늘 주면 돼지의 사료라도 얻어먹고 살겠는데 흉년이 심히 들었기 때문에 그것도 끊어졌습니다.

회개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 탕자

본문 17절에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라고 했습니다. 이제서 아버지 집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여기서 죽게 되었는데,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많은데 나는 왜 여기서 주려서 죽게 되었는가 생각해 봅니다.

탕자가 전에는 아버지 생각을 안했습니다. 죽게 되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어야 자기 부모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이 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게 되어야 하나님을 찾을 생각이 납니다. 임사(臨死)요 호천(呼天)이라는 말이 있는데, 죽게 되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죽게 된 때에는 하나님도 찾고 전에 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전에 어떻게 받았는가? 전에 어떻게 믿었는
가? 전에 내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가? 그것을 한번 생각해 본다는 말입니다.

본문 18-19절에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에게 돌아갈 생각이 났습니다. 돌아가야겠다고 작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도 이제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떠나고 아버지를 배반하고 나왔었는데,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는데 내가 어떻게 아버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며, 품꾼의 하나로 아버지가 사용해 주지 않겠는가 하면서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하고 결심을 하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상상 밖의 큰 사랑, 아버지의 사랑

본문 20-23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 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했습니다.
아들이 돼지우리에서 일하다가 그대로 돌아오는데 아버지는 멀리서도 자기 아들인줄 알았습니다. 자기 아들이 돌아오는가 하고 매일 아버지는 나가서 기다리는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거지같이 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하나 있는데 보니까 자기아들이므로 빨리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춥니다.

상거가 아직 먼데 측은히 여겨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더니 아들이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라고 하십니다. 

아들은 상상도 못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거역하고 나갔고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했기 때문에 돌아가서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수가 없었고, ‘그저 품꾼의 하나로만 붙여줘도 감사하다. 배나 안고프고 잘 먹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멀리서부터 벌써 아들이 돌아온 것을 알고 나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곤 데리고 들어가서 종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게 하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하고 즐기자 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사랑은 상상 밖의 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이와 같이 우리가 측량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이렇게 상상 밖의 큰 사랑으로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017년 9월 20일 수요일

누가복음 14:25 -35 제자 될 자의 각오,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제자 될 자의 각오
누가복음 14:25 -35

25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26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28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29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30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31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32만일 못할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33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1. 세상 것을 내놓고 예수님을 따르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따라가고, 그 말씀을 사모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따라오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25절)”라고 했습니다. 따라오는 사람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환영해주시거나 좋아해주시거나 대접 하시지 않고 아주 어려운 말을 해주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제자가 되려면 부모, 형제, 자매, 처자,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된다는 겁니다.
미워하지 못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부모, 형제, 처자, 자매, 자기 목숨 다 내 놓고 예수님과 그 말씀을 따라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을 내 놓지 않고 따라오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중한가? 예수님이 더 중한가? 가족이 더 중한가? 어느 게 첫째인가? ‘예수님이 첫째인가? 가족이 첫째인가?’, ‘말씀이 첫째인가? 가족이 첫째인가?’ 하십니다. 목숨을 내 놓고 말씀을 따라가야 되는데, 말씀을 따라가려면 목숨을 내 놓아야 될 텐데, 그때에 말씀을 내놓으면 살고, 목숨을 내 놓으면 말씀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목숨 내 놓으면 말씀을 따라올 수 있고, 목숨을 안 내 놓으면 말씀을 못 따라오게 되는 그런 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다 하면
죽인다고 하고 안 믿는다 하면 살려준다고 할 때에, “죽어도 나는 믿는다”하는 것은 목숨을 다 내 놓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말씀하나 지키려면 다 내 놓아야 말씀을 지킬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안 내 놓은 사람은 말씀 못 지킵니다. 친척, 부모, 자매를 내 놓고 따라가면 말씀을 지킬 수 있고, 안 내 놓으면 말씀을 못 지킨다는 말입니다.

주일날 대사를 거행한다 할 때가 있습니다. 주일날 결혼식이나 장례식이나, 주일날 가까운 친척이 무얼 한다고 합니다. 주일날 안 가면 서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친척 다 끊어버리고 다시 거래하지 않고 상종하지도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때에 친척 다 끊어질 예상을 하고 말씀을 따라가고 주일날은 하루 종일 주일로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 행사에 안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부모 형제를 내 놓고 예수님을 따라오는 사람입니다.

주일날에 회사 나오면 직장 안 떨어지는데, 주일을 지키면 직장에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때에 그 직장을 내 놓고 말씀을 지키면, 주일 지키면,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 된 자격이 됩니다. 주일날 시험 쳐야 된다고 하고, 시험 안치면 앞길이 딱 막힌다고 그래도 다 내 놓고 나가야 합니다. 앞길이 막혀야 뭐가 막히겠습니까? 출세하는 길 막히는 것 밖에는 더 막히겠습니까? 직장, 출세, 돈 버는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주일에 시험 안치면, 그것이 다 내 놓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내 놓고 말씀만 따라가는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되고, 안 내놓고 주일날 시험 치면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지 참 제자는 아닙니다. 다 내 놓고 예수님과 말씀만 따라가면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놔야 될 때에 못 내 놓고 말씀을 양보하고 나가면 그것은 예수님의 참 제자가 못됩니다.

2. 자기 십자가를 지라

자기 목숨을 내 놓은 다음에는, 본문 27절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지 않는 자도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셨는데, 십자가를 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난, 죽음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아예 고난을 각오하고 가다가 죽을 예산하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안 죽으면 또 뭘 하겠습니까. 안 죽고 진리를 양보하고 좀 더 산다고 하면, 그렇게 평안하게 산다고 하면 얼마나 유익이 되겠습니까? 내 놓아야 할 때에 안 내 놓고 평안하게 살았다고 한다면, 또 죽어야 될 때에 안 죽고 진리 양보하고 살았다고 한다면 그러면 몇 년 더 살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몇 년 더 평안하게 살면
몇 년 더 살겠습니까. 몇 백 년 삽니까? 불과 몇 년도 못 삽니다.
스데반이 순교 안 당했다고 하면 몇 년 더 살았겠습니까? 스데반이 순교 당했을 때에 나이가 가령 서른다섯 살로 잡으면 수명이 80세라고 할 때에 몇 년 더 살았겠습니까? 45년 더 살았을 텐데 45년 더 살면 뭐하겠습니까. 그냥 순교 안 당해도 45년 후에는 죽을 것입니다. 45년 후에 죽고 나서 그때로부터 지금이 1500년 이상 지났습니다. 벌써 15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는데, 45년 더 살았으면 뭐하고 덜 살았으면 뭐하겠습니까? 벌써 1500년, 이제 몇 천 년, 만년, 몇 만 년, 억년, 몇 억년 이렇게 시간이 지납니다.

이제 사람이 죽으면 가야 되겠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45년 더 산거 뭐하겠냐는 것입니다. 그 잠깐 동안 일시적 평안으로 일시적인 세상에 사는 것, 이것 때문에 영원한 것을 잃어버리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 영원한 것을 잃어버린 자입니다. 사탕 한 알하고, 땅 몇 만평과 집 한 채 하고 바꿔 먹는 것 하고 마찬가지입니다. 영원한 것을 잃어버린 자는 사탕하나하고 땅 몇 만평하고 바꿔먹는 사람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목숨 내놓고 순교의 신앙을 가지고 가다가 순교 당하면 큰 복이고 또 순교 안 당해도 예수님의 참된 제자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진리를 양보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오래 살고, 몇 년 더 살면 뭐하느냐는 것입니다. 몇 년 더 산 것이나 몇 년 미리 세상을 떠난 것이나, 몇 천 년 후에 보면 그 차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또 조금 잘 산 것이나 잘 못 산거나 몇 천 년 후에 보면 그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될 것 같아도 하나님이 잘되게 해주어야 잘되지, 신앙과
진리를 양보한 사람이 뭐가 잘 되겠냐는 것입니다.

또 방탕하는 사람들, 술 먹고 떠들어대는 사람들 그 사람들 참 이상합니다. 밤새도록 먹다가 우리가 새벽기도 나올 때에 잡니다. 그런 것을 보면 마귀와 우리는 반대입니다. 밤새도록 떠들고 그 사람들 잠 안자고 떠들고 돌아가다가, 우리 새벽기도 나올 때는 가서 자는 겁니다.
그것을 제가 어떻게 아는가 하면 밤에 파는 포장마차가 있는데, 밤새도록 팔다가 우리 새벽기도 끝나고 갈 때 보면 그때는 장사를 걷습니다. 들어가서 자려고 걷어치웁니다. 밤새도록 그 사람들이 포장마차 해놓고 팔았던 것을 보면 압니다.

그렇게 방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게 몇 년 가겠습니까. 불과 몇 년 못 갑니다. 또 그렇게 밤에 자지 않고 방탕하고, 술 먹고 방탕하면 몸이 오그랑 망태기가 되어서 건강에도 상당히 해롭습니다. 그런 것이 여간 해로운 게 아닙니다. 방탕하다가 죽은 사람이나 십자가 지고 나가 죽은 사람이나 이제 죽을 때가 되면 다 죽는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가가 문제입니다.

영원한 세계에 가서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아예 예수님을 믿으려면 바로 믿으십시오. 믿으려면 아예 제대로 믿고, 아예 부모 형제 자매 처자 다 이것을 내 놓고, 자기 목숨까지 내놓고, 십자가 지고 고난을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라 가라는 말입니다. 고난을 각오하지 않고 예수님 따라가면 안 됩니다. 평안하게 믿겠다는 사람은 제대로 믿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제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가 됩니다.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만들어서라도 져야 합니다. 어떻게 만들어서져야 하는가 하면 성경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면 십자가가 옵니다. 전도 하려고 하고, 봉사하려고 하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하면 십자가가 옵니다. 안 하려고 하니까 십자가가 안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믿음을 지키고 믿는 일을 하려고 하고 선을 행하려고 하고, 봉사하려고 하고 전도하려고 하면 십자가가 오게 돼 있습니다. 또 성경말씀 지키려고 하면 십자가가 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참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을지 예산해 보고 실력을 기르라

망대의 비용을 예산하라

본문 28-30절에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고 했습니다.

망대를 세우고자 할 때에 먼저 비용을 예산해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망대하나 세우려면 얼마나 들지, 요새로 말하면 한 2억 든다고 합시다. 2억 공사를 해야겠는데 자기에게 얼마나 있는가 생각해 봐야합니다. 몇 백 만원이나 몇 천 만원밖에 없든지, 혹은 전세방 하나 얻을만한 비용밖에는 없다고 한다면, 망대 쌓으려면 2억이 들어야 되겠는데 미리 예산해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돈으로 망대를 다 지을수 있겠는가 예산해 본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남이 지으니까 나도 짓는다 하고 시작했다가 기초만 쌓고 그다음에 돈이 모자라서 못 지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요?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는 시작하였으나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하고 남의 비방거리 밖에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시작한 것은 다 지어야합니다. 아니면 시작을 안 하던지 해야지, 예산을 해보고 달라붙어야 됩니다.

어떤 목사가 예배당 짓는데 예산해 보지 않고 무조건 크게 지을 예산만 했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는 크게 지으라고 더러 말하는 것입니다. “크게 계획을 해가지고 하면 된다”고 하길래, 교인도 얼마 안 되는데 큰 예배당 지을 계획을 하고 시작을 했답니다. 그런데 가다가 중간에 돈이 모자라니까 외상값 받으러 들어오고 공사가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가서 금식기도 하다가 이십 몇 칠하고 죽었습니다. 얼마나 마음고생 하고 얼마나
안타까우면 가서 죽었겠는가 말입니다.

그 목사가 가서 기도할 때, 예배당 다 지을 돈을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죽여주시던지 둘 가운데 하나 해달라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산 없이 달라붙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어느 정도 될 만해야 시작하는 것이지, 되지도 않을 것을 기초만 해놓고 그만둘 형편인 줄 뻔히 알면서 어떻게 해 보려다가 실패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산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 갈 때에 내가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그것을 예산해 보라는 말입니다. 끝까지 따라갈 수 있을까? 가다가 환난이 들어오면 뒤로 넘어가지 않겠나, 또 가족문제 때문에 진리를 양보하지 않겠나, 또 고통이 들어온다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중단하지 않겠는가, 그것을 예산해 보라는 말입니다. 아무리 큰 고통이 와도 다 승리함으로 통과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가 예산해 보라는 말입니다. 자기 가진 비용을 한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자기 현재있는 실력이 앞으로 올 환난을 다 이길만한 실력이 있는가? 승리함으로 통과할만한 실력이 있는가, 그것을 예산해 보라는 말입니다.

예산이 없으면 실력을 기르라

없으면 이제는 실력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실력 양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됩니다. 어떻게 하여야만 능력을 받는가? 다 내버리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 망대 다 쌓을 수 있습니다. 예산해보고 자기 있는 것으로 안 되겠으면 실력을 받아야 되는데, 실력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다 내놓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라가면 능력이 점점 자기에게 와서 머문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망대 다 짓고도 남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안 하면 안 됩니다. 내놓지 않으면 안 되고, 십자가 안지면 안 되고, 그리고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예산을 해보니까 망대를 지으려면 많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이 나면, 현재 내게 있는 실력가지고는 안되겠다고 생각이 들면, 안되겠으니까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실력을 기르려면 첫째는 다 내놓는 것이고, 둘째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셋째는 끝까지 따라가면 됩니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다 내 놓을 때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내 놓아야 합니다. 처자 하면 아내와 자식뿐 아니라 남편까지 다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남편 내놓고 남자들은 아내 내놓고 자녀 내놓고 그 다음에 목숨 내놓고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라가야 합니다. 십자가 지지 않고 편안히 믿겠다는 마음은 낙제입니다.
봉사하는 것도 십자가 지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내일 좀 봉사하러 나오십시오. 십자가 없는 사람들 내일 좀 와서 해보십시오. 내일 무슨 봉사를 하려냐 하면, 소련에 보낼 의복들을 전부 박스 안에 넣어서 짐짝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일 봉사하고 싶은 사람은 오고 그저 평안히 예수 믿고 싶은 생각이 있으면 오지 마십시오. 아예 ‘봉사 좀 해야겠다. 가야되겠다’하는 생각이 있는 사람만 오십시오.
망대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앉아서 내게 있는 비용 가지고 망대를 다 지을 수 있을까 이것을 예산해 보라고 했습니다. 예산해 보니까 부족하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망대 다 지을만한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실력을 기르려면, 첫째는 다 내놓고, 둘째는 십자가를 지고, 셋째는 끝까지 따라가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현재에 망대 다 짓는데 비용이 넉넉한 사람 있습니까?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실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습니다. 비용을 많이 저축을 해야 된다고 했는데, 저축하는 방법 3가지입니다. 첫째는 다 내놓고, 둘째는 십자가를 지고, 셋째는 끝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다 아는데 쉬운 것 같아도 이게 힘든 것입니다. 알기는 쉽지만 이것을 하기는 힘듭니다.

예산이 없을 때 하나님을 의뢰하라

본문 31-33절에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어떤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과 전쟁을 하려고 할 때에, 자기 나라 군대가 일만이라는 것을 알고 대적은 이만을 가지고 온다고 할 때에, 자기네가 일만을 가지고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군대를 다 이길 수 있을까 미리 앉아서 예산해 본다는 말입니다. 미리 앉아서 예산해 보다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 판단이 들게 됩니다. 일만이 어떻게 이만을 이길 수 있겠는가 하며 안 될 것 같으면, 아예 멀리서 올 때에 사자를 보내서 화친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싸우다 지면 얼마나 큰 낭패인가 말입니다. 많은 사람이 죽을 것이고 또한 싸우다가 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원수하고 미리 화친하면 어떻게 됩니까? 미리 화친하려면 즉 항복하는 것인데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원수가 올 때에 거기서 뭘 달라고 할지 모릅니다. 그것 다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줄만한 것을 요구하면 괜찮은데 주지 못할 것을 요구하는 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원수가 처음에는 네 은금을 다 내라고 해서 그것을 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번에는 네 처자, 네게 있는 모든 것, 네 자녀 다 내라고 했는데 그것은 못 준다고 하므로 전쟁이 일어 났습니다.

우리 대적은 마귀입니다. 마귀의 군대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온다고 할 때 그들과 싸워야 하는데 마귀는 아주 강한 군대입니다. 내게 있는 군대는 일만 밖에는 없는데 이길 수가 없으면 항복할 생각은 하지 말고, 내 힘이 너무 약해서 내게 있는 힘 가지고는 이길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군대를 지원 받아야 되겠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군대의 지원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줍니다.

열왕기하 6:14-17절에,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 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 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 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람군대보다 몇 십 배 더 많은 불 말과 불 수레가 와서 엘리사를 둘러쌌습니다. 여기서는 엘리사가 평소에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갔기 때문에 아람군대도 이겼습니다. 우리가 일만을 가지고 이만을 감당할 수 없으면 평소에 하나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계속 힘입어 나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이길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몇 만, 몇 십 만 되는 천군천사를 보내서 지켜주십니다. 

본문 34-35절에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소금인데, 맛이라는 것은 믿음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 지킬 때에 소금의 맛이 납니다. 믿음을 안 지키면 맛 잃은 소금이 되는데, 그러면 내버려지고 사람들에게 밟히게 되며 하나님께서도 내버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