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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8일 토요일

욥기 15:1-35 엘리바스의 책망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엘리바스의 책망
욥기 15:1-35

1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2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 3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 4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 5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6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 7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8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9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 10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11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12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13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느냐 14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 15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16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 17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18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 19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 20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 21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 22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 23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 24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25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 26그는 목을 굳게 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가나니 27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 28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 29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산업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이며 30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 31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 32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룰 것인즉 그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33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 34사곡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 35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 

1. 욥을 꾸짖는 엘리바스

욥을 오해하여 정죄함

본문 1-2절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대답하여 가로되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데만 사람 엘리바스는 욥의 친구입니다.
엘리바스가 “지혜로운 자가 어찌 헛된 지식으로 대답하겠느냐? 어찌 동풍으로 그 품에 채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말이 바람과 같이 쓸 데 없는 말이 아니고 지혜로운 말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 17장 10절에 “볼찌어다 그것이 심겼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이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고 하였는데, 동풍은 바람 가운데서도 곡식에 유익을 주지 못하는 바람이라고 합니다. 동풍은 곡식에도 유익이 없고 가축에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동풍이 부는 날은 가축이 아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바람과 같이 헛되게 지나가는 것도 아니고, 또 동풍과 같이 손해를 주는 말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에 “어찌 유조치 아니한 이야기, 무익한 말로 변론하겠느냐”라고 하였는데, ‘유조(有助)치 아니한 이야기’라는 것은 도움이 못되는 이야기, 무익한 말을 뜻합니다. 즉, 지혜로운 자는 헛된 말을 하지 아니하고 유익되지 않은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참으로 네가 하나님 경외하는 일을 폐하여 하나님 앞에 묵도하기를 그치게 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엘리바스가 욥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을 오해해서 정죄하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 경외하기를 폐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그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의 친구들은 욥을 오해해서 잘못했다고 몰아붙이는 것입니다. 

본문 5-6절에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치나니 네가 간사한 자의 혀를 택하였구나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욥을 잘못 이해한 말입니다. 오해해서 욥을 정죄하는 말들입니다. “네 죄악이 네 입을 가르친다. 그 입은 간사한 혀다. 또 너를 정죄한 것은 네 입이다. 네 입술이 너를 쳐서 증거한다”고 하면서 욥의 말을 억지로 돌려 잡아 정죄하고 비방하는 것입니다.

본문 7-9절에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 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제일 처음 난 사람이냐 산들이 있기 전에 네가 출생하였느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네가 그리스도와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잠언 3장 22-26절에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만세 전부터, 상고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입었나니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산이 세우심을 입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즉, 이것은 ‘네가 예수님과 같으냐? 네가 어찌 그리스도와 같다고 하겠느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의를 네가 들었느냐 지혜를 홀로 가졌느냐’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욥이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모의에 참여하지 못하고, 지혜를 갖지 못했으므로 그리스도 같은 자가 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욥을 무시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진리의 말씀을 욥에게서 빼앗으려 함

본문 9절에 “너의 아는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가 알지 못하겠느냐 너의 깨달은 것이 무엇이기로 우리에게는 없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는 지금 욥에게 네가 무엇을 안다고 하느냐며 무시하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욥이 깨달은 것은 그들도 깨닫고 아는 것은 그들도 아는데, 어째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믿음을 잘 지킨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 같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욥의 친구가 지금 욥이 하나님의 특별한 진리의 말씀을 지켜나가려 하는, 그 믿음을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말인 것입니다.

본문 10-11절에 “우리 중에는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하여 네 부친보다 나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엘리바스가 욥보다 상당히 나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머리가 세기도 하고 연로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 부친보다 나이가 많은 자가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욥은 아직 젊은 사람인 모양입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12장 6-7절에 “르호보암 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그 앞에 모셨던 노인들과 의논하여 가로되 너희는 어떻게 교도하여 이 백성에게 대답하게 하겠느뇨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 만일 오늘날 이 백성의 종이 되어 저희를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저희가 영영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노인들의 가르침이 젊은이들의 가르치는 말보다 좀 낫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에게 아버지 생전에 있던 노인들이 유익한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했으면 나라가 갈라지지 않을 뻔했는데, 르호보암이 젊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 의견을 따랐기 때문에 나라가 갈라졌습니다. 젊은 사람들보다는 노인들이 경험이 많습니다. 또 연구를 계속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 따라오지 못합니다. 어떤 노인들에게는 모든 것을 원만하게 처리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노인들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보통은 노인들이 젊은 사람들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노인들의 말이 보편적으로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지금 욥에게 하는 말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욥의 친구는 나이가 많은 노인의 말대로 따르지 않은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때에는 노인의 말이라도 들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서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바로 나가는 사람에게 노인의 말을 들으라면서 말씀대로 못 나가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으면 안 됩니다.

본문 11절에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노인들이 네게 해주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과 온유의 말씀을 왜 안 듣느냐’는 뜻입니다. 그러나 진리대로 바로 나가려는 사람에게 ‘노인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네게 말해준다. 하나님의 온유함으로 네게 말해준다. 이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 것입니다. 또 그런 말은 들으면 안 됩니다. 성경대로 나가려는 데 못 나가게 하는 것은 아무리 노인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위로의 말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이라고 가져다 붙인 것일 뿐입니다. 성경대로 나가려는 것을 못 나가게 하는 것은 마귀가 주는 시험입니다. 

본문 12-13절에 “어찌하여 네가 마음에 끌리며 네 눈을 번쩍여 네 영으로 하나님을 반대하고 네 입으로 말들을 내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욥이 하나님을 반대한다고 몰아세우는 말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하는 것이 아닌데,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하나님을 반대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욥이 자기 말을 안 들으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반대한다고 가져다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말 안 듣는 것을 하나님 반대하는 것에 가져다 붙인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2. 인간의 전적 부패

본문 14절에 “사람이 무엇이관대 깨끗하겠느냐 여인에게서 난 자가 무엇이관대 의롭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깨끗하다고 하니까 ‘네가 무엇이 깨끗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원리적으로 사람은 보통 다 부패했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의롭고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보통은 깨끗하지 못하고 의롭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나가는 사람은 깨끗하고 의롭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욥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본문 15-16절에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하물며 악을 짓기를 물 마심같이 하는 가증하고 부패한 사람이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악을 짓기를 물 마심과 같이 하고 가증하며 부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며 말씀대로 나가는 사람에게 의롭다 함을 주시며 깨끗하다고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보편적인 진리를 가지고 특수하게 나가는 욥에게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3. 고전적(古典的) 교훈의 중요성

본문 17-18절에 “내가 네게 보이리니 나를 들으라 내가 본 것을 설명하리라 이는 곧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서 받아 숨기지 아니하고 전하여 온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자기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들이 그 열조에게로부터 받아서 내려온 전통적인 교훈을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당장에 잘났다고 하지 말고 옛날부터 유명한 성도들이 전하여 내려온 말을 무시하지 말고 잘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좋은 말이긴 합니다. 열조의 전통은 좋은 것을 계승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 외인은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하였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은 그들에게만 주셨으므로’라는 것은 이 땅을 지혜로운 자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외인이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에게만 주셨다는 것입니다. 즉, 불택자는 그들 중에 왕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조로부터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들에게 이 땅을 주셨고, 그 믿음과 교훈을 받지 않은 사람들은 왕래하지 못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4. 악인은 멸망함

본문 20절에 “그 말에 이르기를 악인은 그 일평생에 고통을 당하며 강포자의 햇수는 작정되었으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도 조상 적부터 내려오는 지혜로운 말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인데, 그 지혜로운 말을 듣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에게 땅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사람은 일평생 고통을 당한다고 했는데, 그것도 진리입니다. 또 강포한 자의 햇수가 작정되었다는 것은 멸망의 날이 작정되었다는 뜻 입니다. 악인은 망할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에 “그 귀에는 놀라운 소리가 들리고 그 형통할 때에 멸망시키는 자가 그에게 임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이 아무리 형통해도 그는 갑자기 멸망하며, 그와 관련해서 놀라운 소리만 들려온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도 형통하게 나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갑자기 놀라운 소리가 들려오며, 그렇게 되면 멸망이 그 사람에게 불현듯 닥쳐온다는 것입다. 

본문 22절에 “그가 어두운 데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어두움에서 나오기를 바라지 못하고 칼날의 기다림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죽는 것을 기다릴 뿐이라는 말입니다. 

분문 23절에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하여 이르기를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유리하며 식물을 구한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사방을 떠돌며 먹을 것을 찾으러 구하러 다닌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다니면서 ‘어디 있느냐 하며 흑암한 날이 가까운 줄을 스스로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앞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흑암이 닥쳐서 망하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을 떠난 자의 최후

교만하여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의 결과는 비참함

본문 24-25절에 “환난과 고통이 그를 두렵게 하며 싸움을 준비한 왕처럼 그를 쳐서 이기리니 이는 그 손을 들어 하나님을 대적하며 교만하여 전능자를 배반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원수가 등장하여 반드시 그 악한 자를 쳐서 이길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곧 악한 사람은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며 교만하게 나가다가 반드시 망할 날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6절에 “그는 목을 굳게 하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목을 굳게 합니다. 목이 곧습니다. 그는 회개할 줄 모르고, 두터운 방패로 하나님을 치려고 달려 간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이렇게 하나님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역하면서 달려간다는 것입니다.

본문 27-28절에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었고 그는 황무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가 잘 먹어서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엉기어 그 기름을 가지고 죄를 더욱 많이 지으며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의 결과는 황무한 성읍에 거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에 거하게 되고, 돌무더기가 될 곳에 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과가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망한 것을 믿는 자는 반드시 그것이 자기의 보응이 됨

본문 29-31절에 “그는 부요하지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산업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이며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리니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 그는 스스로 속아 허망한 것을 믿지 말 것은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될 것임이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부요하지 못합니다.
일시적으로 부요하더라도, 그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다 없어질 날이 옵니다. 그리고 그 산업이 땅에서 증식하지 못할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이 땅에서 하는 일이 반드시 증식하지 못하고 재산도 항상 있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그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합니다. 

그리고 ‘불꽃이 그 가지를 말릴 것이라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나리라’고 하였는데, 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입김에 떨고 하나님의 말씀에 책망을 받고 떨며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는 죄 가운데서 벌벌 떨다가 하나님의 심판의 불꽃이 그를 심판할 때에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믿지 아니하고 허망한 것을 믿는 사람들은 그 허망한 것이 그의 보응이 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성경을 믿지 않고, 사람의 다른 말을 믿고, 헛된 것을 믿고, 전설을 믿다가 그것이 자기의 보응이 되어서 그것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무당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계룡산에서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은 앞으로 난리가 나면 거기에 가서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허망한 것을 믿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 때문에 망하게 생겼습니다. 성경을 믿어야지, 허망한 것을 믿는 사람은 그것때문에 망합니다. 그것이 자기의 보응이 됩니다. 다른 것은 믿으면 안됩니다.

예전에 한국 사람은 명당자리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명당자리에 조상의 무덤을 쓰면 그 자손이 잘된다는 것입니다. 참 허망한 것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조상의 뼈를 싸가지고 돌아다니면서 명당자리를 찾아 무덤을 쓰는 것입니다. 몇 십 리를 다니며 무덤을 씁니다. 우리 조상들도 그것을 믿은 것이 분명합니다. ‘몇 대 할아버지, 몇 대 할아버지, 몇 대 할아버지’의 무덤을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8월 추석에 가서 돌보는 무덤이 있고, 9월 9일에 가서 돌보는 무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이 사는 곳에서 삼십 리 밖에, 오십 리 밖에, 육십 리 밖에 있는데, 예전에는 차도 잘 없을 때니까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새벽에 떠나서 육십 리 밖으로 걸어가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또 거기에 가서 돌보고 다시 집까지 걸어오려면,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게 됩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걸어갔다가 오니까 다리가 아파서 오다가는 주저앉게 됩니다. 주저앉아서 못 간다는 사람도 있고, 또 한 번 갔다 오면 며칠 씩 앓아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다 미신에 빠진 것입니다. 무엇하러 며칠 씩 멀리로 갔다 옵니까? 그런데도 그것이 명당자리라는 것입니다. 뒤에 큰 용이 있어야 하고, 멀리에는 물이 좀 있어야 명당자리라고 합니다. 아니, 산 조상도 잘 살게 못해주겠는데, 죽은 뼈다귀가 무
얼 잘 살게 해주겠습니까?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렇게 허망한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망한 것을 믿다가 결국은 보응을 받는 것입니다. 

또 무당을 믿는 사람은 더 허망합니다. 정감록 믿는 사람도 허망하고, 사주팔자와 관상을 보는 사람도 다 허망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믿다가는 결국 그것이 함정이 되어 망합니다. 어디 가서 궁합을 보니까 “못 살 팔자다. 밤낮가도 못 살 팔자다”라고 하면서 “못 산다, 못 산다”
고 하니까 결국에 못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보면 안 됩니다. 궁합이나 날짜, 또 무슨 방향 등, 그런 것들은 볼 필요가 없습니다. 따스한 날이 제일 좋다고 한다는데, 아무 날이나 잡아도 좋습니다. 다른 것은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또 비가 오면 어떻습니까? 비가 내려도 믿음을 잘 지키는 날이 제일 좋은 날입니다. 세상적으로는 따스한 날이 좋은 날이라고 하지만, 신앙적으로는 비가 오든 눈이 내리든 자기 믿음만 잘 지켜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날이 좋은 날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날이 좋은 날이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허망한 것을 믿는 사람은 그 허망한 것이 반드시 보응이 되는 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한 자는 열매를 다 맺지 못하고 실패함

본문 32-33절에 “그의 날이 이르기 전에 그 일이 이룰 것인즉 그 가지가 푸르지 못하리니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곧 떨어짐 같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죽는 날이 이르기 전에 거의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푸르지 못하고 포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짐 같고 감람 꽃이 떨어짐 같다’는 것은 일이 죽기 전에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포도나무와 감람 꽃이 익기 전에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포도나무와 감참 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중간에 실패하는 것처럼, 반드시 그 목적한 바를 달성하지 못하고 중간에 다 실패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사곡한 무리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뚤어지게 나가는 사람은 결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비뚤게 쓰고 일을 비뚤게 하는 사람은 결실이 없습니다.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어떻게 됩니까? 불에 탄다고 하였습니다. 뇌물로 돈을 많이 벌어서 집을 잘 지어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반드시 불에 탈 날이 옵니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었어야지, 뇌물을 받아서 좋은 집을 장만한다고 해도 그것은 얼마 안 가서 불에 다 탑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정당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새 신문과 뉴스에 이런 일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뇌물을 받고 무엇을 하다가 결국은 잡혀서 쇠고랑을 차고 부끄럼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몇 십 년 동안 학교 선생을 하다가 또는 교수를 하다가 학교에서 뇌물을 받고 감옥에 가는 것입니다. 참 그 신세가 말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이 전국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뇌물은 절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당장은 뇌물을 받아서 잘되는 것 같고, 또 돈도 좀 버는 것 같지만 결국은 반드시 실패합니다. 불에 탈 날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뇌물을 받아서 학교를 지으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학교를 지으려고 했어도 그것은 뇌물이니까 다 불타게 될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학교를 못 지어도, 뇌물을 안 받는 것이 낫습니다. 또 학교는 조그맣게 지어도 됩니다. 뇌물을 받아서 학교를 크게 지었다가 감옥에 가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러니까 ‘사곡한 무리
는 결실이 없고 뇌물을 받는 자의 장막은 불탈 것이라’고 한 말씀을 명심해야겠습니다. 반드시 불타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본문 35절에 “그들은 악한 생각을 배고 불의를 낳으며 마음에 궤휼을 예비한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생각을 잉태한다고 하였는데,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생각이 잉태하면 불의를 낳고, 불의가 장성하면 마지막에는 사망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니까 뇌물이나 불의한 일을 절대 피하여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지키며 의에 서는 자는 창성함

아무리 가난해서 채소를 먹는다 할지라도, 손을 흔들어서 뇌물을 받지 아니하고 성경말씀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깨끗하게 양심을 쓰고 성경대로만 지켜나가면 장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심을 비뚤게 쓰고 불의를 행하면서 돈 좀 많이 벌어야겠다는 사람은 얼마 안 가면 망합니다. 그 얼굴에는 살이 찌고 허리에는 기름이 있다 할지라도 그는 반드시 황폐한 성읍, 사람이 살지 아니하는 집, 돌무더기가 됩니다. 또 부요치 못하고 재산이 항상 있지 못하며 그 사람의 땅에서 증식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흑암한 데를 떠나지 못하고 불꽃이 그 가지를 사름 같이 하나님의 입김에 그가 떠난다는 것입니다. 다 사라져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이기고 의가 이깁니다. 아무리 악한 짓을 해서 돈을 좀 벌었다고 해도 그것은 망할 날을 정해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가난해도 말씀과 진리를 지키며 의를 세워나가면 장래가 있습니다. 반드시 그 장래가 청청하며 하나님의 축복이 그 사람과 같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 위에 언제나 있습니다. 그래서 늘 창성해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