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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6일 토요일

이사야 56:9-12 소경이 되어 잠자는 파수꾼 이병규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소경이 되어 잠자는 파수꾼
이사야 56:9-12

9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10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 11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 12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1. 파수꾼들이 소경이 되어 잠자고 있음

파수꾼들이 소경이 되고 벙어리 개가 되어 잠자고 있음

본문 9-10절에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파숫군’은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요새로 말하면 목사, 전도사 등의 교역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파수꾼들이 다 소경이 되었고, 벙어리 개가 되어서 능히 짖지 못하고, 꿈을 꾸면서 누운 자로 잠자기를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이 되겠습니까? 파수꾼들이 경성해서 살피다가 대적이 오거나 도적이 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싸워서 이겨야 하는데, 파수꾼들이 소경이라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는 것도 모르고 있고, 보지도 못하고, 무지하여 벙어리
인 것입니다. 개가 짖어야 도적이 오는지 원수가 오는지 알 수 있는데, 개가 짖지도 못하는 벙어리라는 것입니다. 강도가 와도 모르고, 도적이 와도 모릅니다.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니까 주인은 방 안에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원수가 오는지 도적이 오는지, 멸망시키러 오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짖어야 합니다. 파수꾼들은 원수가 오면 “온다. 망한다. 죽는다.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못하는 것입니다. 다 소경이 되어서 보지 못하고, 무지해
서 알지 못하고, 벙어리 개가 되어 짖지 못합니다. 죄를 죄라고 짖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망한다.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진다”라고 짖어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파수꾼들이 이것을 알게 해줘야 교인들이 그것을 알고 정신을 차려서 그리로 가면 안 되는 줄 깨닫게 됩니다.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일은 꿈과 같이 지나가는 것인데, ‘꿈꾸는 자’라는 것은 세상 일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세상의 헛된 영화와 잘못된 이상을 따라가는 것도 꿈을 꾸는 것입니다.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는 신앙에 잠을 자는 자들을 말합니다. 교역자들이 세상 일에 도취되어 안일한 가운데 빠져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오늘날에도 소경이 되어 잠자는 파수꾼들이 많음

그런데 요새 교역자들이 죄에 대해서는 말을 안 한다고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책망하지도 않고 “잘된다. 좋으신 하나님이다. 복 받는다”는 것만 설교한다고 합니다. 죄에 대한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죄에 대해서 말하지도 않고 가만히 내버려두면, 원수가 와서 다 삼켜버릴 것이 아닙니까? “곰이 온다. 사자가 온다. 이리가 들어온다”라는 것을 알게 해줘야 하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잘된다고만 하는 것입니다. 벙어리 개는 죄에 대해서 책망하지도 못하고 망한다는 소리도 못합니다. 뻔히 망하는데 책망을 하지 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잘된다, 잘된다. 복 받는다”는 것만 말해주면 다 좋아합니다. 복 받는다고 하니까 다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받지도 못하게 하면서 다 속이는 것입니다.
복을 받도록 인도를 해야 하는데, 인도는 하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복만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이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게 해서 복이 오겠습니까?

어떤 교회에 목사님이 지나가다가 성도의 집에 들러서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대학교 시험을 친다고 하니까 좋은 대학교에 붙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꼭 붙는다. 이제 좋은 대학에 붙었으니 믿으라”고 했답니다. 또 여러 가지 복을 듬뿍 빌어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 어른들이 너무 고마워서 닭도 잡아주고 대접을 잘했는데, 그 아이가 시험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데 공부는 하지도 않고 어떻게 좋은 대학에 붙겠습니까? 그 목사가 괜히 속여서 대접만 잘 받은 것입니다.
신 신학 목사들, 기복 신앙을 주장하는 목사들, 교인들에게 대접 받으려는 목사들은 무조건 잘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지, 잘된다고만 하면 어떻게 잘되겠습니까? 농사하는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먹는 방법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농사하면 찰떡도 해먹고, 수수떡도 해먹고, 고구마도 먹고, 토마토도 먹을 수있습니다. 그러나 농사하는 법을 모르는데, 어떻게 농사를 하겠습니까? 다 헛수고인 것입니다. 농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합니다. 농사하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앞으로 먹고 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먹는 것만 가르쳐주면 먹을 수 있겠습니까? 벼농사를 하려면 볍씨를 물에 담가서 싹을 틔워 모판에 뿌리고 물을 채워서 길러야 합니다. 그리고 45일 후에는 모내기를 해야 합니다. 모내기를 한 다음에는 여러 번 김을 매야 합니다. 그 다음에 돌피를 뽑아주고 논에 물을 채워주고 농약을 치고 비료를 뿌려주어야 합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이렇게 일 년 동안 상당히 많은 수고를 해야 합니다. 요새는 기계로 하니까 좀 쉬워졌지만 옛날에는 기계로 하지 않았습니다. 모내기를 한 열흘 하면 얼마나 힘든 줄 압니까? 열흘 동안 내내 구부려서 일을 하니까 어떤 사람은 허리가 있나 없나를
만져보며 한다고 합니다. 허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더운 여름에 김을 매는 것도 힘이 많이 듭니다. 또 벼가 익으면 벼를 베어 실어다가 탈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탈곡한 벼는 햇볕에 잘 말려서 그것을 가져다가 정미소에서 빻아 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농사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런데 농사하는 방법은 안 가르쳐주고 잘 먹는 것만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족한 줄 알지 못하고 몰각(沒覺)한 목자에게는 심판이 옴

본문 11절에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개’는 벙어리 개, 즉 교역자들입니다. 짖지 못하는 교역자들이 죄에 대해, 심판에 대해, 의에 대해, 잘못 가는 것에 대해 말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라고 하였는데, 탐욕이 심하여 아무리 줘도 족한 줄을 모르며 계속 달라고 하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몰각한 목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몰각’이라는 것은 지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이 다 자기 볼 장을 보러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또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라고 하였는데, 자기 이(利)만 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피차 이르기를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우리가 독주를 잔뜩 먹자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내일도 오늘같이 넘칠 줄 알고 이렇게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에게 들짐승을 보내어 삼키게 만드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9절에 “들의 짐승들아 삼림 중의 짐승들아 다 와서 삼키라”고 하였는데, 원수를 보내어 삼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교역자들이 타락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목자는 포도주와 독주에 대해서 바르게 나가야 함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사람이 참 목자입니다. 포도주와 독주를 먹지 않는 교역자가 진짜라는 것입니다. 목자들 가운데 A, B, C 세 종류가 있는데, 여행을 가면 거기서 목사들이 서로 물어본다고 합니다.
A급인지, B급인지, C급인지를 물어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A는 몇이고, B는 몇인지를 알아서 A급에 속한 사람은 알코올(alcohol), B급에 속한 사람은 맥주(beer), C급에 속한 사람은 사이다(cider)를 시킨다는 것입니다. “A급에 속한 분은 몇 분이십니까? B급에 속한 분은 몇 분이십니까? C급에 속한 분은 몇 분이십니까?”를 물어서 그대로 가져온다고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A급, B급에 속한 목사들은 다 몰각한 목자입니다. ‘독주를 잔뜩 먹자’는 것에 반대는 술을 안 먹는 것입니다. ‘내일도 오늘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는 것에 반대는 ‘내일도 오늘같이 달음박질하리라. 경건 생활하며 달음박질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가는 목자가 참된 목사입니다. 신학생들은 이것을 잘 알아두어야겠습니다.
포도주나 독주도 먹지 말아야 합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조금만 먹으면 괜찮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술 한 잔씩은 괜찮다고 하고, 한 잔 먹으면 석 잔까지는 괜찮다고 하고, 석 잔 먹으면 구주 예수니까 아홉 잔까지는 괜찮다고 해서 아홉 잔까지 먹는다는 것입니다. ‘취하지 말라고 했지, 먹지 말라고 하였느냐?’고 하면서 한 두 잔씩은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면 술 한잔에도 취하지 않으면 백 잔에도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 잔 먹고 하나도 안 취하면 그 다음 잔에도 안 취해야 하고 백 잔에도 안 취해야 합니다. 한 잔씩 올라가서 백 잔이지, 한꺼번에 백 잔 먹습니까? 백 잔에 취한 사람은 이미 한 잔에 취한 것입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보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약으로는 사용해도 됩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 약에 쓰는 것은 괜찮다고 하였는데, 그렇다고 이 핑계로 포도주를 마시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잠언 23장 31절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를 먹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바른 목자

그러나 바른 교역자는 이와 반대로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바른 교역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본문 10절에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 능히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요 누운 자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을 반대로 하면, ‘바른 교역자는 소경이 아니요, 영이 밝아서 바로 보는 교역자이고, 무지하지 않고 영적 지혜가 있는 자이고, 짖는 자’입니다. 교역자들이 죄가 들어오면 죄라고 짖어야 하고, 망하면 “망한다. 회개하라”고 짖어야 합니다. ‘꿈꾸는 자’라는 것은 세상 일만 생각하는 것인데, 그 반대는 신령한 일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누운 자,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의 반대는 항상 깨어서 달음박질하는 자인데, 이러한 자가 참된 교역자입니다.

본문 11절에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요 그들은 몰각한 목자들이라 다 자기 길로 돌이키며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라고 하였는데, 참 교역자는 이와 반대입니다. 욕심이 없는 교역자가 진짜이고, 항상 감사하며 자족을 배우는 자가 참된 교역자입니다. 또 바른 지각으로 모든 것을 바로 가르치며, 자기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길로만 행하는 자가 진짜 교역자입니다. 또 ‘어디 있는 자이든지 자기 이만 도모하며’라고 하였는데, 그 반대는 자기 이를 도모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만 도모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유익 볼 것, 대접 받을 것만 도모하는 자는 몰각한 목자인데, 이와 반대로 희생적으로 하는 목자가 참된 목자입니다. 

반대로 한 번 더 해봅시다. 먼저 눈을 떠야 합니다. 소경은 안 됩니다. 또 지각이 있어야 하고, 짖어야 합니다. 죄가 들어오면 죄라고 말해야 하고, 죽게 되었으면 죽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일만 생각하지 아니하고, 신령한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또 깨어서 달음박질하는 것이 참된 종입니다.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욕심이 있으면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회개하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갖다 줘도 족한 줄을 모르는 사람은 몰각한 목자입니다. 항상 범사에 감사하고, 언제나 자족을 배우는 목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족을 배워서, 모든 것에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늘 감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