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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12일 수요일

에스겔 33:1-33 파수꾼의 나팔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파수꾼의 나팔
에스겔 33:1-33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3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5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6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 7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8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10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11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12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 13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14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15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16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 17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18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19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20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 21우
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22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23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4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25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 보냐 26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 보냐 하고 27너는 그들에게 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28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29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 30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31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32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33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 

1. 파수꾼의 책임

파수꾼을 세운 목적 - 생명이 파수꾼에게 달려 있음

본문 1-2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
은”이라고 하였습니다. 만약에 백성들이 자기 중에서 파수꾼을 세운다면 그 파수꾼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스겔 3장 17절에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을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는 누구를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까? 오늘날 이 시대는 교역자들을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성도 전체도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특별히 교역자를 파수꾼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파수꾼으로 세우신 목적은 나팔을 불어서 원수가 오는 것을 경고하는 데에 있습니다. 원수가 들어올 때 나팔을 불어서 원수가 오는 것을 깨우쳐 나가서 전쟁을 예비하게 해야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파수꾼이 원수가 오는 것을 보고도 나팔을 불어 원수가 온다고 경고해주지 않으면 잠을 자다가 몰살을 당하고 맙니다. 그래서 생명이 파수꾼에게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이 파수를 잘하여 원수가 오는 것을 살펴서 막으면 백성들이 안전할 것입니다. 반면에 파수꾼이 파수꾼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여 원수가 오는 것을 잘 보지 못하고 경고하지 않으면 원수들이 들어와 죽이고 도망칩니다.

동해안 지역에 철망 쳐놓은 것을 봤습니까? 그것을 왜 쳐놓았습니까? 이북에서 간첩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쳐놓았습니다. 그리고 곳곳에 경비 초소들이 있지 않습니까? 밤에 파수를 섰다가 이북에서 간첩이 오면 즉시로 비상 연락을 해서 군인들을 동원하여 간첩을 격퇴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서서 자기만 하다가 원수가 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원수가 들어와서 죽이고 달아나므로 얼마나 비참해지겠습니까? 예전에 속초에 간첩들이 들어와서 사람을 죽이고 도
망갔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파수꾼이 그것을 잘 지켰다면 간첩 오는 것을 잡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제 역할을 잘못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영적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마귀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죽이려 하고 교회를 파괴시키려 하는데, 이것을 잘 살펴서 “원수가 어디로 들어온다. 누가 원수다”라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누가 원수인지 모릅니다. 알 수 있습니까?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말도 같고 의복도 같고 민족도 같으니 누가 원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파수꾼을 세워 원수를 잘 분별하도록 하면 원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생명이 파수꾼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에게는 나팔을 불어 경고할 책임이 있음

본문 3-4절에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팔 소리를 듣고도 깨어서 일어나 경비하지 않다가 사람이 죽으면 파수꾼에게 책임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의 피가 제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그가 경비를 하였던들 자기 생명을 보전하였을 것이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고 하였습니다. 파수꾼이 나팔을 불어줬는데 그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하지 않다가 죽었으면, 그 죽은 사람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갑니다. 경성하지 않아서 죽었기 때문에 파수꾼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본문 6절에 “그러나 파숫군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숫군의 손에서 찾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백성이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한 사람이라도 죽으면 그 죄는 파수꾼의 손에서 찾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책임이 파수꾼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나팔을 분다’는 것의 의미

이렇게 파수꾼의 책임이 중요합니다. 나팔을 안 불어주면 그 사람들이 자기 죄 값으로 죽지만 그 피 값은 파수꾼의 손에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나팔을 불어주어야 합니다. 나팔을 안 불어주면 모르니까 죄를 지을 수밖에 없고 나올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죄 가운데서 죽으면 그것은 파수꾼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나팔을 불어주어야 합니다. 나팔을 불어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로 전해주는 것이 나팔을
바로 부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바로 전해주고, 또 죄를 바로 지적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죄라는 것을 안 가르쳐주면 죄인 줄 모르고 죄를 범하다가 망합니다. 그러면 그 피 값은 그 파수꾼의 손에서 찾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교인들이 죄를 죄인 줄 모릅니다. 주일날 음식점에 가는 것이 죄인 줄 모르고,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도 죄인 줄 모르고, 또 그 외 여러 가지 죄를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나갑니다. 해방 신학이 잘못된 줄도 모르고, 그릇된 신비주의가 잘못된 줄도 모르고, 어떻게 믿어야 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또 세상에서 축복 받는 것만 따라가는 사람은 그것이 잘못된 줄을 모르고 그것만 따라갑니다. 그러면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주어야 합니까? 파수꾼들이 가르
쳐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주고 바로 일으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로 가르쳐줄 책임이 있습니다. ‘가르쳐주어도 안 들을 것인데 어떻게 하느냐?’라고 생각하지 말고, 안 들어도 괜찮으니 일단 가르쳐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 책임을 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들은 사람은 양심의 가책을 받을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면 회개할 수 있습니다. 알아야 회개를 하는데, 안 가르쳐주어서 몰라서 회개를 못하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는 알고 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인 줄 모르고 따라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대부분 입니다. 그것이 옳은 줄 알고 따라가기 때문에 바로 증거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괜찮다고 하는 목사가 많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전에 신사 참배 때에도 신사 참배가 죄가 아니고 “국민의례라 괜찮다”고 하는 목사들이 많아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괜찮은 줄 알고 많이 따라갔습니다. 목사가 죄가 아니라고 하니까 ‘죄가
아닌가 보다’하고 따라간 것입니다. 그때에 바른 파수꾼은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신사 참배하는 것은 우상에게 절하는 것이다. 죄다”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우상에 대한 죄가 3가지인데 복을 달라고 섬기는 것과 섬기지는 않지만 장사하려고 상업적으로 만드는 것과 마지 못해서 절하는 것입니다. 우상에게 복 달라고 하는 것, 우상을 만들어 파는 것, 우상에게 마지못해 가서 절한 것, 이렇게 죄가 3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가르쳐주고 괜찮다고 하니까 교인들이 다 따라간 것입니다.

그리고 파수꾼의 역할은 많은 사람에게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에게 할 수도 있고, 두 세 사람에게도 가르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여간 그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큽니다. 엘리사 한 사람을 바로 세워놓았기 때문에 엘리야가 대성공을 한 것이 아닙니까? 한 사람을 바로 세워놓았기 때문에 엘리사를 통해서 그 일이 계속되어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에게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만 바로 세워도 후대가 바로 세워져나갈 수 있습니다.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나팔을 불어야 함

본문 7-9절에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나가서 파수꾼의 역할을 잘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라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죄 가운데서 죽지만 피 값은 네 손에서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고했지만 그 사람이 회개하지 않으면 그때는 파수꾼에게 책임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이대로 믿었습니다. 나가서 경고하지 않으면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는다는 말을 분명히 믿었습니다. 그는 사도행전에서 모든 사람의 피가 내 손에 묻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20장 26절에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파수꾼의 나팔을 다 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이 회개치 않으면 파수꾼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팔을 안 불었으면 그 사람이 망할 때에
나팔을 안 분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전해주어야 합니다. 전해주지 않으면 그 피 값을 자기 손에서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전해주어도 안 믿으면 자기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2. 의인이 범죄하면 죽고 악인이 회개하면 살 수 있음

하나님께서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심

본문 10-11절에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 중에서 쇠패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돌이켜서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죄악 중에서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거기서 돌이켜서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백성이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나가서
파수꾼의 나팔을 잘 불라는 것입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 그 의가 그를 구원하지 못할 것임

본문 12절에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전에 이기선 목사님이 이 성경말씀을 가지고 여러 번 가르쳤습니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하고 악인이 돌이켜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이다.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한다”는 것을 늘 가르쳤습니다. 의인이 범죄하면 죄 값은 사망이니까 전에 의를 행했다고 해도 죽습니다. 또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그 악에서 돌이키면 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 가운데서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돌이켜 의를 행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의인이라도 범죄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와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전에 잘 믿고 의를 행했다고 해서 안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죄를 지으면 망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악에서 떠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으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고 바로 서는 것을 원하십니다.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게 됨

본문 13-16절에 “가령 내가 의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살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 곧 그 중에서 죽으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그 의를 스스로 믿고 죄악을 행하면 그 모든 의로운 행위가 하나도 기억되지 않으리니 그가 그 지은 죄악 중에서 죽으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아무리 의인이라고 해도 현재에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령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지만 그가 돌이켜서 
첫째는 자기 죄에서 떠나고, 
둘째는 하나님의 법과 법도에 바로 서고, 
셋째는 의대로 바로 서고, 
넷째는 전당 잡힌 물건을 돌려보내며, 
다섯째는 강제로 빼앗은 것(억탈물)을 돌려보내면 산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여섯은 생명의 율례를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냥 율례라고 하지 않고 왜 생명의 율례라고 하였습니까? 이것은 생명이 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는 말씀을 지키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날마다 살아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곱째는 다시 죄를 짓지 않고 나간다면 정녕 살고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도 이것입니다. 이 일곱 가지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기를 원하시지,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첫째는 죄에서 떠나라, 둘째는 법대로 바로 하라, 셋째는 의의 길로 나가라, 넷째는 전당물을 도로 주라, 다섯째는 억탈물, 빼앗은 것을 돌려보내라, 여섯째는 생명의 율례를 지켜라, 일곱째는 다시 죄악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율례를 지키면서 자기 영이 날마다 말씀대로 살아나가며 다시 죄를 짓지 않으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습니다. 파수꾼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지만 실상은 공평함

본문 17-20절에 “그래도 네 민족은 말하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의 길이 공평치 아니하니라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고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 그러나 너희가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사실은 공평한데, 왜 그것이 공평치 않다고 합니까? 과거에 의를 행하고 믿음을 지키고 십일조를 드리며 믿는 일을 하려고 힘을 많이 썼는데, 왜 이렇게 망하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잘되고, 또 되는 대로 믿는 사람도 잘 되는데, 바로 믿으려고 십일조를 드리고 어떻게 하든지 주일날을 지키려고 애를 썼는데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차라리 되는 대로 믿는 교회로 갈까보다 라고 합니다. 몇 십 년을 있어도 되는 것도 없고 다 망하게 되었는데, 이제 되는 대로 믿는다고 더 망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일 지키려고 할 필요도 없고 바로 믿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공평합니다. 왜 공평합니까? 에스겔 22장 16절에 자기 까닭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남하고 비교하느냐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의 율례대로 걸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만한 것만 주시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있는 것을 다 없애신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욥에게 갑절을 주어야 되겠는데, 그것 가지고는 안 되겠습니다. 그래서 재산은 다 거두어 가시고, 칠남 삼녀의 자녀도 거두어 가시고, 건강도 거두어 가셨습니다. 그러나 연단을 시켜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것이므로 공평한 것입니다. 더 좋은 것을 받아 보면 공평한 것을 알게 됩니다. 더 좋은 것을 받아본 후에야 하나님께서 공평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
로 성경대로 해결해야 합니다.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첫째는 자기 까닭인 줄로 알아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는 줄로 알아야 합니다. 좋은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시려고 죽이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공평한 것입니다. 의인을 세상에 더 두면 되겠습니까? 환난이 오겠는데, 미리 피난 보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공평한 것입니다. 왜 공평치 않습니까? 공평한 것입니다. 공평치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공평하신 줄 알아야 합니다.

3. 전통(傳統)과 다수(多數)를 의지하며 교만한 자는 망함

예루살렘의 황무지에 남아 있는 자들의 말

본문 21-24절에 “우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 년 시월 오 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도망쳐 바벨론으로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
벨론에 있는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황무지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 말한 것을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아브라함의 계통이다. 둘째로 우리는 숫자가 많으니까 이 땅을 우리에게 안 주실 수가 있겠느냐?”라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자랑하는 것입니까? 예루살렘 황무지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이 회개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숫자를 자랑하고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보수를 자랑하고,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며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 생명의 신앙과 하나님을 떠나서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 땅은 아브라함의 땅으로 우리 땅이며, 우리의 수가 많으니까 하나님께서 더욱 이 땅을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땅을 기업으로 주실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와 그들이 받을 벌

본문 25-26절에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 보냐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 보냐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너희에게 주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첫째, 그들이 피 있는 고기를 먹는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상에게 눈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상을 섬기려고 하는데 어떻게 그 땅을 너희에게 줄 수 있겠느냐고하였습니다. 
셋째는 ‘(사람의) 피를 흘리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서로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미워하고 물고 찢으니 어떻게 이 땅을 내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넷째는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칼을 믿는다는 것은 세력, 권세를 믿고 사는 것을 뜻합니다.
다섯째는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간음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이런 다섯 가지 이유 때문에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그 땅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하셨다고 해도 너희의 행동이 지금 복을 받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숫자가 많아도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성경에는 피 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피 있는 고기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순대국 같은 것은 피를 먹는 것입니다. 또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목 메어 죽인 것을 먹고 있습니까? 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왜 우상의 제물을 먹습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개를 잡아놓고 사경회를 한다고 합니다. 목매어 죽인 것을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처음부터 목을 매어놓고 사경회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상에게 눈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고 사람이 우상이고 세상 권세, 단체, 자기가 우상입니다. 자기 생명이 우상입니다. 남편이 우상이고, 아들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더 위하는 것, 더 지배 받는 것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사람의 피를 흘린다는 것은 서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미워 하는 것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이 죽은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아이 위에 엎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그 아이를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한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이웃을 진정으로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는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넷째는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한 일입니다. 완력과 권세로 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영권으로 하여야 하는데, 완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이웃의 아내와 더불어 간음하는 일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고도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망하게 만들어놓았으므로 이제 올 것은 앙화와 저주밖에 없습니다.

본문 27-29절에 “너는 그들에게 또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가 바로 서야지, 하나님을 섬기는 이 백성이 바로 서지 못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시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시며, 들에 있는 사람은 들짐승에게 죽게 해서 망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말씀을 들으나 실행치 않는 자를 책망함

원리 원칙,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라

본문 30-31절에 “인자야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있는 유다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모여옵니다. 무엇을 하러 모여옵니까? 에스겔 선지자의 말을 들으려고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와서 에스겔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러나 잘 듣기는 했지만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나 마음은 이욕을 좇습니다. 이익을 쫓아가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모이기는 잘 모이고, 또 와서 도와달라고 하기에 열심히 돕기는 합니다. 자주 모여와서 열심히 배우기는 배우는데, 그 말씀대로 행하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 이익을 쫓아가려고 하니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를 몇 십 년 하다가 예배당도 잘 지었는데, 그 예배당이 지금은 몇 억짜리가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교단은 아닙니다. 다른 교단인데 내가 잘 아는 목사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그 교회를 그만 두고 미국에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면서 몇 십 년 동안 해놓았던 교회를 이억 오천인가 이억에 팔고 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를 팔고 사는 것은 자기 아들을 팔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옳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또 몇 십 년 목회를 했으면 자기가 떠난 다음에도 가르치던 진리대로 계속해서 바로 가르칠 후계자에게 교회를 맡기고 가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가룟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습니까? 이익을 따라가다가 팔아먹었습니다. 왜 자기 선생 팔아먹은 것이 잘못된 줄 모르겠습니까? 당연히 압니다. 그래도 이익을 따라가려고 하니까 팔아먹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익을 따라가려는 사람은 진리를 아무리 배워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10년을 배워도 안 됩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데, 진리가 무슨 상관입니까? 진리 대신 이익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머리로 배우긴 했지만 행하지 못합니다. 이익을 따라가니까 안 됩니다. 하여간 이익을 따라가는 사람은 쉬운 것을 하다가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것이 있으면 돌아섭니다. 이익이 날 것은 따라가고 조금이라도 손해를 볼 것 같으면 가다가 돌아섭니다. 이익 따라 가는
사람은 참 안 됩니다. 가룟 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아간, 발람, 고라 당이 다 이익을 따라가다가 망했습니다. 자기 권세도 이익 아닙니까? 그렇기에 이익을 따라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그러므로 절대 자기 이익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의를 따라가야 합니다. 원리 원칙,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지, 이익 따라가면 안 됩니다. 손해를 봐도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본문 32-33절에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에게 와서 배우는 것은 잘하였습니다. 그들이 에스겔에게 마치 노래 잘하는 사람한테 칭찬하는 것처럼 “좋은 말씀입니다. 참 잘합니다. 듣기가 좋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행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앞으로 지내보면 자기 가운데 선지자가 있었던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